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더욱 마음이 안 좋았던 건 아이가 떠나기 하루 전에도 나는 그 반에서 아이들을 웃겨가면서 수업을 했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을 갈등했던 영혼 앞에서 나는 무엇을 가르쳤던 걸까. 그날 밤 늦게까지 뒤척이며 시를 적어 내려갔다. 시 말미의 독백 사이사이에 툭툭 떨어지던 말줄임표가 교사로서의 무기력을 자책하던 눈물처럼 점점이 박혔다. 한 아이의 죽음이 내 시의 시작이었다.

 

*****

 

마음의 색맹

 

수업을 한다 // 색맹을 얘기하고 / 유전자를 말하고 / 가계도를 칠판에 그려낸다 // 아이들은 듣는다 / 푸른빛 마음으로 / 분홍빛 마음으로 / 회색빛 마음으로 // 나는 바라본다 / 각기 다른 빛깔의 마음으로 // 어디를 바라보고 / 무엇을 바라보고 / 누구를 바라보고 수업한 것일까? / 나는 // 누구를 바라보고 / 무엇을 듣고 / 어떤 것을 느끼며 앉아있는 것일까? / 아이들은 // 마주 서 있다고 / 서로를 보는 것은 아니다 // 마음의 색을 보지 못하는 나는 / 마음에 대한 색맹일지도 모른다

 

*... 견디기 힘든 것은...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영혼을 보지도 못하고. 그 앞에 서 있었는데도 이미 그 존재 앞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조차 되어주지 못했었다는 거지... 알아볼 수 있었다면... 따스한 말 한 마디 안겨주었더라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때늦은 후회를 해 본다는 거지... 인생이라는 것이...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만하는 것을 말하고 있고, 말해야하는 위치에 있는 이 순간에... 인생 참 허망하다... 라는 느낌을 안고 있다는 거지... 이제는 어깨를 눌렀던 그 짐을 툭툭 털어내고 날아가기를... 하늘로 올라 별이 되기를...

 

*****

 

16년 만에 먼지 앉은 기록을 들춰본다. 운율도 안 맞고 서툴지 그지없다. 형식은 허술하지만 내용 앞에서 나의 심장은 여전히 뛴다. 건조하게 푸석거리던 꽃차에 물을 부은 듯 마음이 물컹해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OECD 국가 중 여전히 자살률이 1위인 나라. 하루 평균 36.1명이 삶을 저버리는 나라.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9년 연속 자살인 나라. 절반에 가까운 1318 청소년들이 공부 문제로 고민하는 나라에서 나는 교사다.

공부를 꽤 잘하는 아이였다는 말을 들었다. 그 아이가 어떤 이유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이유가 절반의 범주 안에 포함되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주변에 있던 어른들은 그 이유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리라. 더욱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을 영혼들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눈물짓고 있으리라는 사실이다.

 

가끔 상상한다. 마음의 색깔이 나타난다면 어떨까. 몹시 곤란할 때도 있겠지만 흑백의 마음이라도 눈에 보인다면 좋을 텐데. 무채색이 색깔을 띠는 순간에는 초신성처럼 폭발한 다음 은밀하게 사라지더라도 말이다.

색맹은 관련 유전자가 성염색체인 X염색체 위에 있는 반성 유전이야. 유전자형은 XX, XY로 표시해. 열성으로 유전이 되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욱 많이 나타나. , 이제 가계도에서 유전자형을 분석해볼까?’ 지금도 나는 여전히 색맹을 가르친다. 색맹을 둘러싼 과학지식을 창고 대방출하며 각기 다른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나에게 색맹이란 과학을 넘어서는 뜨거움이다.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다보니 각기 다른 표정이 눈으로 들어온다. 문득 깨닫는다. 강아지풀의 솜털을 바라보듯 바라본다면 이들의 색깔을 구분할 수도 있음을. 마음의 색맹에는 관심이라는 치료제가 있다는 사실을. 어쩐지 눈동자에서 색깔이 보이는 듯하다.



* 2021. 10. 6. J칼럼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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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 제목: '빛'을 품은 아이에게


몹시 난감하다. 무릇 이라 하면 찬란하게 물결치는 신묘한 장면을 연상해야 하거늘. ‘파동이냐 입자냐 요것이 문제로세햄슈타인 모드를 장착하면 어쩌란 말(이냐! ‘직진밖엔 몰라요 외길 선생 레이저?’ 이런 이런 쯧, 여기서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과학 선생님!)인가.

(그렇다.) 나는 과학교사다. (빛을 가지고 이토록 고뇌에 빠진 이유? 수식어를 구구절절 붙이면) 시인을 꿈꾸는 과학교사(이기 때문이). 몇 년 전부터 닥치는 대로 글짓기 대회에 도전 중이며 이번엔 온라인 시조 대회다. 삼사삼사 삼사삼사 삼오사삼. 글자 수만 맞추면 될 줄 알았건만, ‘이라는 주제 앞에서 방황하는 A 교사. 태초에 있던 빛부터 몽땅 끌어 모아 삼라만상에 담긴 오묘한 깨달음을 펼쳐도 시원찮을 판에 직진, 파동, 입자 따위의 지식만 둥둥 떠다니니. (어쩌실 건가요.)

 

"(-)! 어제 공고에서 선생님 오셔서 설명해 주셨잖아요. 근데 지금 공고에 왔는데 어떡하죠..ㅋㅋㅋ",

지난 6(,) 퇴근 후 뜬금없이 녀석에게(서) 카톡이 왔다. 아끼는 자전거 뒤에 원하던 특성화고가 배경으로 펼쳐진 사진. 너무 멀다고, 진짜 죽는 줄 알았다는 아이의 메시지에 함박꽃이 그득하다. 아이의 메시지를 따라 박하사탕을 먹은 듯 마음이 화해진다.

 

! 아무래도 집 가까운 데 가야겠어요.(”

? 무슨 소리냐? 그 학교 많이 원했잖니.”

“)요즘 집안 사정이 안 좋아져서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을 그만 두셨어요. 차비를 생각하니 (거기는) 무리일 것 같아요.”

평소 아버지를 대신해 거의 모든 집안일을 섭렵하던 녀석이 두어 달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을 말한다. 빛을 잃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담담한 표정 앞에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당장 결정해야 할 건 아니니 조금 더 고민해보자며 돌려보냈다.

 

그날 밤 나는 새벽까지 뒤척였다. 잠들지 못하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시조로 적었다. 이 시조가 너에게 힘이 될까. 글 안에 녀석의 마음을 담아서, 그 녀석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을 넣어서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

빛을 품은 아이에게)

 

그날의 자전거는 오십분을 굴러갔지

교정을 바라보며 일 년 뒤를 그려본 너

비로소 갖게 된 꿈을 빛으로 품고 왔지

 

자전거론 무리인데 차비는 짐이라며

두 달 뒤 찾아와선 집 근처로 간다는 너

벌게진 눈 속의 빛이 이리도 선연한데

 

아버진 너를 품듯 짐을 안고 가실 테니

네 안의 빛을 따라 그대로 걸어보렴

그 빛이 흘러나오면 길을 보여 줄 테니

(*****)

 

녀석이 담긴 시조를 예선 작품으로 제출했다. (그 후) 본선에서 대상을 받았다.

한 달 여 뒤, 환한 햇살을 품고 쪼르르 달려오는 아이.

! 저 거기 가기로 했어요!”

너에게 아직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를 나는 졸업식 날 건네주려 한다.

 

아이들은 시가 된다. 그 시는 때론 따끔거리지만 빛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보이는 모습을 담을 뿐인데 나의 심장은 덩달아 뜨끈해진다. 빛을 품고 있는 영혼이어서 일까.



* 2021. 10. 5.  CCT 보냄, 2021. 10. 18. 게재


연두색: 주최측 편집 시 생략된 거

빨간색: 주최측에서 추가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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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죽교

 

흩어진 방울방울 화석이라 하더냐

심장이 뿜은 눈물 서럽지는 않았으니

당당히 붉은 꽃잎아 꽃차인 듯 피어라

 

 

갯벌 체험

 

구멍 쏙 뽀글뽀글 두더지를 잡아라

미끄덩 질척질척 도망가도 까르르

태양도 같이 놀자며 퐁당 몸을 감추네

 

 

지구온난화

 

북극곰 쿵쾅쿵쾅 물범 쫓던 얼음 강

우르르 흘러내려 교과서에 박제되니

진공 속 그림에 갇혀 꺼내 달라 아우성



* 2021. 10. 5. P문화제 시조백일장 응모(시제: 포은 정몽주 or 생태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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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소리

 

사락사락 풀잎들 빽빽한 몸 비벼대나

스르렁 안개 타고 가만가만 넘어와선

어스름 누운 귓가로 속삭이듯 흐르네

 

찌르찌르 산새들 가뿐한 몸 들썩이나

드르렁 여름 덮고 잠자던 날 깨워놓곤

가을 숲 한가운데로 쪼르르 달아나네

 

 

불면

 

노곤해진 대지와 나란히 뒤척일 때

초록의 소리 덮는 나지막한 숨소리

태양이 달아난 시간 푸른 빛깔 영혼아

 

거무스름 눈발이 사락사락 흩날릴 때

네모난 하늘 향해 조금씩 날아올라

가만히 두 팔을 벌려 잠든 우주 품어보자

 

 

눈 오는 날

 

포슬포슬 눈방울 춤을 추는 오후 두 시

느린 화면 재생되듯 하얀 점 채워질 때

눈 걸음 속도에 맞춰 느릿느릿 걷는다

 


외로움

 

내 안에 나만 아는 자그마한 사막 있어

시끌벅적 둘러싸인 오아시스 가운데서

날마다 시린 별들을 고요하게 품어내

 

 

지친 날

 

날카로운 눈빛에 이리저리 베이다

앙상한 사과되어 덩그러니 누운 밤

마지막 과즙 한 방울 시큼하게 맺히네

 

 

시조

 

서툴게 빚어놓은 자그마한 자기 하나

까르르 울먹울먹 몰랑몰랑 뒤척뒤척

이 중에 무얼 꺼내어 찰랑찰랑 담을까

 

삼사삼사 삼사삼사 삼오사삼 흥얼흥얼

걸음 맞춰 담다보니 처진 어깨 들썩들썩

그릇을 어루만지며 시린 마음 녹이네



* 2021. 10. 2. 시조~ S상 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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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담긴 얼음 가까스로 꺼내보니

뼛조각 부서지듯 허공 향해 우수수수

새하얀 사막을 타고 검은 강물 흐른다.

 

막막한 종이 위를 하릴없이 서성이다

찐득이 흐르는 글 물끄러미 바라보니

시 안에 물컹한 얼굴 거울인 듯 나를 봐

 

칼바람 덩그러니 여전히 난 혼자지만

신문지 덮은 듯이 살포시 따스해져

또 다시 기대어보다 세상 향해 흐른다.


*2021. 9. 25. H시조백일장 본선, 대상(글제: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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