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전 -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성철.법정 지음 / 책읽는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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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제를 샀다. 은은한 라벤더 향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통을 들고 살짝 흔들어본다. 손에도 냄새가 짙게 밴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이거였구나! 향수병 주변에 있으면 나에게도 향기가 배는 거였어! 다시 한 번 책을 펼친다. 책 속의 문장들이 처음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종교에 대한 나의 시각은 회의적이었다. ‘수행이란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불교의 수행 방식이 철저한 고행을 통한 깨우침이라면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남을 위할 수 있다는 걸까.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지 않고 중생들에게서 제공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먹고 살기 위해 몸을 움직이며 아등바등해야 하는 사람들을 수행자보다 못하다 할 수 있을까. 기도해주는 것이 진정 그들을 위하는 길일까. 기도를 해서 결국 편안해지는 것은 기도하는 이 아닌가.’ 이런 의문들로 가득한 나는 그리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종교인들을 삐딱하게 바라보곤 했다.

 

법정 스님이 묻고 성철 스님이 답한 책. 두 번째로 책을 읽으며 종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글자들이 마음의 표피만을 두드렸다면, 두 번째에는 그 아래 진피까지 스며들어온 느낌이다. 처음과는 다른 의미들이 눈 녹듯이 마음으로 흘러들었다.

스님의 존재 의미를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해본다. 향수병처럼 그 곁에 있으면 뿜어져 나오는 향기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나아가 나도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향기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존재라고. 스님의 가르침은 향기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과 같은 의미라고. ‘나도 했어. 너도 될 거야. 해 봐.’ 라며 용기를 주는.

책속에서 종교적인 내용 못지않게 자주 등장하는 이란 말은 끊임없이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돕는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이었다. 그러기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비우고, 욕심을 버리는 행동이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목의 의미를 다시 해석해본다. 처음에는 <설전>이라고 해서 논쟁의 의미를 지녔다고 여겼다. 두 스님이 종교적인 견해를 열띠게 주고받으면서 진리를 파헤치는, 대략 이런 내용이리라 짐작했다. 자세히 바라보니 '눈 설'자를 쓰는 전쟁이다. 새삼 한자 사전을 찾아본다. ‘雪’이란 한자가 더러움을 씻다라는 의미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세상의 번뇌가 일으키는 더러운 욕심을 씻기 위한 대화의 치열함을 의미하는 걸까. 눈이 내리는 것처럼 고요하고 냉철하게 이루어지는 전쟁을 상상하니 참으로 적절한 제목이다 싶다.

 

눈을 배경으로 수록된 사진들도 참 좋았다.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라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사진에 담겨있다는 것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현실이라는 뜻이니. 현실에서도 수행을 한다면 충분히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메시지와 맞닿아 있는 것만 같아서 좋았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158페이지와 159페이지에 펼쳐진 사진은 보는 순간 헉! 감탄사가 나왔다. 마음이 저절로 깨끗하게 씻기는 기분이었다. 새하얀 눈과 맑은 물에 비친 푸르른 하늘, 그 경계에 고요한 생명체인 나무가 존재하는 장면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명경이란 말이 이런 느낌 비슷하지 않을까.

 

적게 드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다른 이에게 빚지는 기분, 한 때는 모두 생명이었던 음식을 섭취할 수밖에 없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불문율은 이런 맥락으로 보면 남기지 않는것이 아니라 남길 수 없는것이었다.

마음을 맑게 하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향기로운 사람이 되어 주변을 향기롭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적게 자고, 적게 말하고, 적게 먹고, 지식에 안주하지 말고, 제자리를 지키라는 가르침(p190)’을 내비게이션인 듯 따라가는, 그런 일상을 살아가고자 한다. 그러다보면 희미한 들꽃 향기라도 나지 않을까 해서. 존재 자체가 향기가 된다는 것, 정말 의미 있는 삶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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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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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산한 기운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 같은 으스스함. ‘죽음이란 글자는 매번 이런 분위기로 찜찜함을 전해주는 말이었다. 막연함이 불러오는 공포와 존재의 마침표라는 느낌이 주는 허무함이 뒤섞여 실체를 알 수 없는 가상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죽음에서 풍기는 강렬한 두려움은 아침이 쏟아내는 환한 햇살을 가려 개기일식이라도 된 양 어둠을 건네었다.

자주 가는 독립서점의 주인장이 포스트잇에 메모해놓은 추천사가 없었더라면 손길조차 닿지 않을 책이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었다는 그의 안목을 믿어보기로 했다. <프롤로그>를 읽으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 읽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과 사람들이 좋다 말하는 책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다. 나의 판단기준은 하나다. 생각을 얼마나 변화시키고 나아가 몸을 들썩이게 만드느냐는 거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하다. ‘좋은이란 극히 주관적인 말이니. 사상의학에서 체질에 따라 어울리는 음식의 궁합이 존재하듯 마음의 양식이라는 책도 독자와의 궁합이 분명 존재하리라. ‘좋은 책이라는 말 앞에는 두 글자가 생략되어있다고 여긴다. (내게) 좋은 책이라는.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들썩였다. ‘우리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좀 더 다르게 살게 되겠지. 그래, 근심을 버리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다.(p6)’ 지금까지와 조금은 다르게 살고 싶어졌다.

 

특히 마음에 드는 점은 세 가지이다.

첫째, 관점이다. '설거지의 이론과 실천'(p39-42)에서는 설거지를 담당하는 이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촌철살인의 문장에 통쾌했다. 독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책이라는 걸 읽는 행위 자체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잖아요.(p317-318)’ 글을 통해 전하는 소리 없는 말을 소리 없이 들어주는 독자를 상상하니 숙연함조차 느껴졌다.

둘째, 기발한 비유이다. ‘이 달걀은 암탉이 될 운명이었을까, 수탉이 될 운명이었을까.(p339)’ 몇 십 년 동안 달걀을 보고, 먹고, 사면서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하지 못했던 생각을 누군가는 세상 어딘가에서 하는 거다. 세상은 넓고 창의적인 인간들은 그보다 더 많구나. 겸허해져야겠다. ‘황사처럼 닥칠 식후의 피로(p339)’라든지, ‘복날 쉬는 삼계탕집처럼(p341)’이라든지, ‘임플란트를 거부하는 코끼리처럼(p341)’, ‘네덜란드를 떠난 풍차처럼 촌스러워서(p341)’, ‘목도리도마뱀이 목도리를 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p342)’등의 표현이 쓰나미처럼 몰아닥쳤다. 스스로 생각해도 기발한 비유다 싶을 때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 난 아직도 멀었구나. 고수의 세계를 접하며 그동안 너무 오만했음을 깨달았다.

셋째, 표현 방식이다. ‘저는 글에 리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p307)’라 말한 대로 그의 글은 리드미컬하게 내용을 전달하고 있었다. 유머가 섞인 글이 최고의 경지라고 생각한다. 마음이든 지식이든 글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언가를 전달하는 거라면, 받아들이는 이의 마음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식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웃음은 심장을 몰랑몰랑하게 만든다. 쉽게 마음을 열도록 하는 힘이 있다.

그가 권하는,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책도 읽고 싶어졌다. 나와 비슷한 코드를 지닌 사람이 추천하는 책이니 결코 실망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기대하지 않고 펼쳤던 책이라 즐거움은 더욱 컸다. 웃음이 곁들여있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음이 좋았다.

 

커피숍에서 글을 쓰다 보니 처음 듣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어머! 참 좋다! 기타 전주가 너무 좋아 노래를 검색해본다. Car Seat Headrest ‘High To Death’이란다. 우연일까. 자세한 가사는 당연히 모르지만, ‘죽음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노래도 이런 느낌일 수 있구나 싶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을 직면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잠시 후 모두 죽는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괴롭히던 정념으로부터 다소나마 풀려날 것이다.(p5)’ 이전보다 담담하게 죽음이란 삶의 사건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든 언젠가는 죽는다.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소멸의 여부가 아니라 소멸의 방식이다.(p125)’ 오래 머무르게 되는 문장이다. 어찌할 수 없는 소멸 여부를 두고 두려웠던 건지도 모른다. 선택지가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은 채. 어떤 모습으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할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간다면,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밋밋하게 사드라드는 불씨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다른 이들에게 온기를 나누어주며 활활 타는 모닥불이거나 환하게 부스러져 밤하늘 같은 이들의 눈동자에 순간적이나마 작은 기쁨이라도 담아줄 수 있다면 그런 삶도 괜찮겠다.

 

 

p136, 1째줄: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잃어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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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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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볼 때가 있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나이와 표정이 짐작될 때가 많다. 뒷모습의 무엇이 그를 그런 모습이게 하는 걸까. 읽기도 전에 며칠 동안은 책표지만 바라보았다. 오도카니 앉아있는 뒷모습이 많은 말들을 담고 있었다. 제목과 잘 어우러지는 그림이구나 싶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죠? 그걸 증명하려고 마구 걸어갔던 인간이 마젤란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시선 끝을 쭉 연장하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자신의 뒤통수도 볼 수 있겠네요? 지구가 둥근 이유를 설명하며 수업 시간에 했던 말이다. 아이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웃었다.

 

언제 슬프더라. ‘슬픔이란 글자를 바라보며 나의 슬픔을 더듬는다. 슬픔과 가깝다고 여기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럭저럭 순간적인 즐거움으로 찢어진 마음을 기워내며 걸어왔다. 슬픔인지 외로움인지 콕 집어서 표현하기는 어려웠지만 내 안 깊숙이 존재감을 나타내는 감정이 따끔거렸다. 그것은 종종 표면으로 떠올라 온몸을 감싸는 피부처럼 영혼을 감쌌다. 삶의 바닥에 머무르며 중력이라도 되는 양 즐거운 순간들을 끌어당겼다. 단편적인 서운함이나 쓸쓸함 같은 거 말고, 가슴 깊은 곳에서 느리게 흐르는 묵직한 감정. 차마 떨치지 못하고 지그시 내리누르는 느낌을 그러안은 채 그렁그렁 서성이는 발자국 같은 것. 이 감정의 정체를, 슬픔이려니 했다.

왜 슬펐던 걸까. 책의 말미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길어 올린다. ‘한때 내가 가장 사랑한다고 믿은 대상이 이제는 내 삶의 무의미를 극명하게 증명하는 것처럼 보일 때의 그 비감(p407)’ 글자들이 나의 시선을 타고 올라와 심장에 담기는 순간, 몇 주 동안 어떤 글도 써내려갈 수 없었다. 내 슬픔이 어디에서 시작되어 흐르고 있는지 알 것 같아서. 흐릿하던 슬픔의 실체가 선명해졌다. 많은 장면들 속에 한 사람이 있었다. 그래, 무의미였구나, 무의미였어. 꽤 오랜 시간, 삶의 목표로 생각해왔던 사랑이 무너져 내렸다는 생각에 나는, 이미 깨어져버린 파편들을 꼭 쥐고 그 허무함에 아팠던 것일까.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p27)’ 이 문장을 보며 생각한다. 인간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의 슬픔이라고.

 

저자가 여러 매체에 연재했던 85편의 글들을 슬픔, 소설, 사회, , 문화등의 내용으로 분류하여 실은 산문집이다. 문체나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은 내가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다. 진지한 글들을 읽다보니 건조해진 피부처럼 마음이 푸석하게 당겨졌다. 문장의 대구를 이루기 위해 작위적으로 삽입한 듯 느껴지는 문장 앞에서는 거부감이 일기도 했다. 나에게 재미있는 글은 아니었다. 마음을 훅 당기는 매력적인 유머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문장들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단지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옷이었을 뿐, 충분히 높은 수준과 깊은 사유와 내공이 느껴지는 글들이었다.

‘<5> 넙치의 온전함에 대하여에 나온 세 가지 내용에 특히 공감했다.

첫째, 욕망과 사랑의 구조적 차이에 대해 서술한 내용이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중략)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p331)’ 이토록 정확한 정의가 있을까. 내게로 다가오는 마음에 기대고 싶은 생각이 들 경우, 상대가 누구냐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인이 아니다. 나를 향하는 상대의 마음으로 나의 외로움을 채울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니 이런 종류의 갈망은 욕망에 가깝다. 한참을 거슬러 나의 결여와 그의 결여가 만나던 순간도 떠오른다. 과거형이지만 무의미 이전의 한 순간이나마 사랑이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뜨거워진다.

둘째, 휴대폰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원래 당신은 하나의 얼굴이었다. (중략) 전화가 발명된 이후에 당신은 하나의 음성이 되었다. (중략) 휴대폰 덕분에 당신은 마침내 글자가 되었다.(p351~352)’ 언젠가부터 가까운 지인들과 주로 카카오 톡으로 대화하고 안부를 주고받게 되었다. 목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대부분 꽤 오래전의 것이다. 휴대폰을 열어 대화창의 글자들을 휘리릭 되짚어본다. 글자가 되었다는 말이 손끝으로 와 닿는다. 차가운 액정 아래 존재하는 친구들이라니!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셋째, 글을 쓰는 의미에 대한 내용이다.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극도로 천천히 말한다는 것이다.(p385)’ 슬픔이 담긴 책을 읽으며 나의 슬픔에 한 걸음 다가갔다. 먹먹한 마음에 이번 달은 거의 글을 쓸 수 없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새벽에 일어나 떠오른 생각을 휴대폰 메모장에 저장했다. 퇴근 후 커피숍에 와서 천천히 문장을 다듬었다. 아주 오랜만에 시 한 편을 썼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며칠 째 붙들고 있던 이 리뷰도 오늘은 마무리하려 한다. 천천히 글을 적어 내려 가다보니 천천히 내딛는 산책처럼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노트북 옆에 놓인 책표지에 다시 눈길이 머문다. 뒷모습이 전해주는 느낌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김 서린 유리창 너머로 투영되는 조명을 바라보는 순간처럼 그림 속 인물의 삶이 번져 보인다. 인간의 삶은 그의 몸집보다 묵직하고 커다란가. ‘인간의 뒷모습이 인생의 앞모습이라는 것을.(p55)’ 말도 안 되는, 그 말도 안 될 상상이 이 문장을 본 순간 떠오른다. 내 시선의 끝이 투명하고 가느다란 화살표로 뻗어나가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뒷모습에 닿게 되는 상상이. 궁금해졌다. 나의 뒷모습은 어떤 삶을 담고 있을까. 세상을 향해 무슨 말을 건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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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방
이강산 지음 / 실천문학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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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깊이가 두려웠던 걸까. 읽기 전에 앞세웠던 망설임이 쓰기 전에도 고스란히 옮겨졌다. ‘빈 문서 1’이 무거웠다. 1/1-1-1-1칸에서 나의 손가락을 기다리는 커서가 심장처럼 쿵쿵 뛰었다. 마음을 지그시 누르는 무게감은 돌덩이의 단단함이 아니라 태양의 그것에 가까웠다. 구석구석에 감추어두었던 마음의 조각들이 기체로 날아와 한꺼번에 심장을 향해 몰려들었다. 어떤 식으로든 내게서 하얀 종이로 쏟아질 묵직함이 버거워 잠시 숨이 막혔다.

짙은 회색이라 생각했다. 시집 모항으로, 소설집 황금비늘, 흑백 사진으로 들여다본 작가의 세계는 온통 무채색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첫 장을 펼치기가 어려웠다. 첫 걸음을 디뎠던 모항은 그런 이유로 내게 재미없는 책이었다. 두 번째로 접했던 황금비늘은 어느 정도 긴장된 마음으로 읽었다. 큰 호흡을 하며 나비의 방으로 들어갔다.

 

스스로 위로하는 주문을 걸곤 했다. 이건 별 거 아냐, 나만 그런 건 아닐 거야,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얼마간은 있을 테지, 그래도 최악은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하고. 이 책이 애써 묶어두었던 봉인을 풀어버렸다. 깨진 거울 조각을 들여다보듯 곳곳에서 나를 보았다.

시린 공간과 시간이 오선지로 펼쳐졌다. 소설 속 인물들은 낮은음자리표에 맞춰 제각기 다른 선에 걸린 음표가 되어 삶을 찍어나갔다. 주인공에게도, 섬처럼 등장하는 많은 여인들에게도 조금씩 내 모습이 담겨있었다.

날카로운 말에, 눈빛에, 몸짓에 베이던 쓰라림을 아직도 나의 심장은 기억하고 있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흘러가는 장면이 작가의 문장에 묻어 따끔거렸다. ‘영영 바다로 떠나지 못하고 호수에 갇혀 살게 된 빙어(p53)’의 상실감을, ‘어디로든 떠날 수 있도록 사방이 트였지만 아무 곳으로도 떠날 수 없는 섬(p58)’의 막막함을, ‘따뜻한 사람의 체온이 그리운(p73)’ 이가 감내하는 한기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말 외엔 일체 하지 않(p83)’는 건조한 서러움을, ‘사람의 말(p88)’을 갈구하는 쓸쓸함을, ‘사랑과 결혼과 행복이라는 피사체가 (중략) 이미 그들의 과거가 되어버린 풍경일 것이었다.(p95)’ 말하는 허무함을, ‘냉소와 침묵(p161)’이 내는 아린 맛을 알 것 같았다. 외면하고 싶었다. 어떤 문장에 공명하였는지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커다란 진폭으로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움켜쥐며 다만 침묵하고 싶었다.

 

지난 주 토요일, <심야책방>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책으로 가져 간 책이었다. ‘편 김에 끝까지라는 부제로 저녁 8시에 첫 페이지를 펴기 시작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어야 집에 갈 수 있다. 주관하는 독립서점 주인장이 내건 규칙이다. 낯선 환경에 나를 데려다놓고 싶어서 참여 신청을 했다.

작가의 성향으로 짐작해보면 묵직한 내용이 담길 테지만, 휘리릭 넘겨보았을 때는 대화도 많고 가독성이 좋은 문장을 구사해왔던 지라 만만하게 보았나보다. 더군다나 소설이라 완독하는 데 이리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9명의 신청자 중 제일 마지막으로 귀가했다. 화장실 한 번 안 가고, 의자에서 조금씩 자세만 바꾸면서 꼬박 읽었는데도. 새벽 310분에 귀가했으니까 7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중간 중간 멈추던 시간이 잦았다. 책을 읽으면서 나를 읽으려니 그토록 오래 걸린 걸까.

<빙어>의 눈물을 떠올리자 여전히 나를 관통하고 있는 추위가 새삼 뜨거워졌다. 나는 <하모니카를 찾아서> 나답게 살고 있을까. 모니터에서 마주보고 있는 나다운 글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나비의 방>에서 자유롭게 떠나는 나비를 그려보았다. 영혼을 뒤덮고 있던 무거운 껍질을 몇 번이나 벗겨내어야 비로소 가뿐해지는 삶. 시간의 무게를 견딘 후에야 홀로 얻어지는 나비의 자유를 상상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왠의 <오늘>을 들으며 이 글을 쓴다.

'새벽4시 잠들지 않아/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을 생각하곤 해/ 습관처럼 마음이 아려와/ 집으로 가는 길은 자꾸만 멀어지는데// 저만치 멀어지는 찾을 수 없는 잡을 수 없는// Take it easy/ 나만 왜 이렇게 힘든 건가요/ 오늘밤이/ 왜 오늘의 나를 괴롭히죠// 아무것도 한 게 없는 하루인데/ 나는 왜 이렇게 눈치만 보고 있는 건지/ 아쉬움은 나를 찾아 다가오네/ 창문 밖은 벌써 따뜻한데// Take it easy/ 나만 왜 이렇게 힘든 건가요/ 오늘밤이/ 왜 오늘의 나를 괴롭히죠// 한번만 다시 또 일어설 수 있나요 음음음/ 오늘도 슬픔에 잠겨 밤을 지우고 있나요// Take it easy/ 나만 왜 이렇게 힘든 건가요/ 오늘밤이/ 왜 오늘의 나를 괴롭히죠// Take it easy/ 왜 오늘의 나를 괴롭히죠'

슬픔이 슬픔을 위로하는 노래이다. 상처가 상처를 위로하는 이 책과 어쩐지 닮아있다.

 

얼어버릴 것 같은 냉기를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이토록 뜨거울 수 있을까. 차가운 얼음을 입에 물면 뜨거운 고통이 느껴지듯이, 이야기를 따라가는 나의 마음은 그의 글이 품고 있는 담담한 차가움에 내내 반응하면서 아팠다. 그냥 뱉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차마 뱉을 수 없는 이끌림에 어정쩡하게 물고 있었다.

새벽까지 책을 읽고 돌아온 날, 옷을 갈아입으면서 사타구니 양쪽이 붉어진 것을 발견했다. 한 자리에 7시간 내내 앉아있으면 이렇게 되는구나. 부어오른 부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깨달았다. 한 호흡으로 책을 읽고 나서야 그의 글이 나타내는 색깔이 보였다. 무채색이 아니었다. 극적인 사건이나 입체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소설도 아니건만 그 안에는 위태위태하면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 삶이 투영되었다. 상처를 마주하는 글에서는 생명을 연상케 하는 핏빛의 붉음이 깊게 배어나왔다. 그 빛은 또 다른 상처를 마주했을 때 담담한 위로를 건네며 선명하게 붉어지고 있었다.

 

 

p160, 밑에서 5째줄 : 진도 7.8 규모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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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해석 - 개정판, 무의식의 세계를 열어젖힌 정신분석의 보고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8
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이환 옮김 / 돋을새김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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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오늘 같은 날이 있어. 참기가 어려운 날. 참아야지, 참아야지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날. 생크림 맛이 날 것 같은 눈빛과 대사. 그런 너를 지켜보는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TV 속으로 입수할 각이다. 참지 마! 참지 마! 제발 참지 마! 으헉! 오예! 나의 바람은 꿈처럼 이루어진다. 아마도 많은 여인들의 바람이었을 것 같은 수채화가 화면 속으로 예쁘게 펼쳐진다.

<로맨스는 별책부록> 같은 드라마는 이스트가 되어 나의 욕망(^^;)을 부풀린다. 꿈속에서 다시보기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비눗방울 같은 장면들이 버퍼링되며 불꽃놀이처럼 터져준다면 밤을 건너는 나의 마음은 얼마나 달콤해질까. 로맨틱코미디 드라마가 꿈에 나타나기를 꿈꾼다. 그 꿈의 여주인공은 기필코 나여야만 한다. !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간질거리잖아. 오늘밤에 그런 꿈을 꾼다면 전생에 나라를 구한 느낌일 텐데. 참 좋을 텐데, 내가 원하는 꿈을 꿀 수만 있다면.

그래, 자꾸 생각하면 꿈에서도 나타난다고들 하잖아. 잠들기 직전까지 그새 업로드된 티저 영상을 두어 번 보지만 소용이 없다. 선명한 색깔의 책들이 여러 권 꽂힌 무늬가 그려진 벽장문 서너 개. 그 앞에 서서 물끄러미 문들만 바라보다 깨어났다. ! 찬란한 남자주인공을 보여 달랬지 누가 찬란한 책들을 보여 달랬냐 말이다. 이런 얄미운 세상 같으니! 간절히 바란다 해도 뜻대로 꾸어지지 않고, 생각지도 않은 장면이 두더지 게임인양 불쑥 나타난다. , 만만치 않은 세계다.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어젯밤 꿈은 어떤 의미일까. 혹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아닐까. 내 안에서 펼쳐지는데 내가 모르는 세상. 단 한 번도 같은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 놀랍도록 다채로운 세상. 꿈속의 나는 나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1인칭 시점의 소설이 되었다, 전지적 시점의 시가 되기도 한다. 이야기를 주도하다 탈피를 하듯 관찰자가 된다. 꿈은 오래전부터 내게 흥미로운 관심사였다.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내려다보며 날아가다 깨어난다. 한껏 폐가 부풀어 오른 듯 크게 숨을 내쉰다. 새벽 세 시. 하루를 시작하기에 다소 이르다. 구글에 접속한다. 바다 꿈. 날아가는 꿈. 도사님들의 해석이 즐비하다. 디테일한 상황에 따라 흉몽이 길몽으로 바뀌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꿈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해석하고 싶다는 갈증은 늘 있어왔지만, 꿈의 해석은 워낙 유명하면서도 거대한 산처럼 느껴지는 책이라 선뜻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언젠가는 읽으리라 막연한 생각만 했다. 그러다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청소년용으로 만들어져 비교적 이해하기 쉬울 거라는 생각으로 구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벼운 마음으로 펼치기는 어려웠다. 망설임의 손가락은 여러 번 표지만을 스쳤고, 지난주에 드디어 표지를 넘겼다. 편역한 책이라 원저와는 다를 테지만, 체계적인 구성 덕분에 기본 개념을 잡기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꿈에 관한 학문적 성과들, 꿈의 해석과 정신 분석, 꿈의 목적, 꿈의 왜곡, 망각, 퇴행, 꿈의 재료와 출처, 꿈에서의 압축 작업, 전위 작업, 묘사, 상징, 부조리함, 정서 등에 대한 예시와 서술들을 따라가면서 무의식의 세계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나흘 동안 이 책을 읽으면서 전날 꾸었던 꿈들을 기록했다.

1. 여름에 즐겨 입는 꽃무늬 플레어스커트가 있다. 색동저고리의 문양처럼 화려한 그 치마를 어깨에 척 걸친 나는, 멋진 컬로 찰랑거리는 외국 소프라노가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지켜본다. 어릴 때 살던 집으로 장면이 전환된다. 둘째 아이가 한자로 된 책을 펼치고 있고, 나는 빨간 체크무늬 남방에 회색 티셔츠를 입은 채 아이 앞에 있다.

2. 식탁에 두루마리 화장지가 있다. 목이 말라 물병을 여니 약간의 부유물이 떠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의 푸른 불빛이 보이고, 아까 그 화장지가 화르르 불타버린다.

3. 남동생이 서류 비슷한 종이들을 정리하고 있다.

4. 반도막 난 비행기가 연기를 내며 가까운 언덕으로 불시착을 한다. 열차처럼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있다. 나는 나머지 반도막에 혼자 있다가 꽤 아득한 높이에서 지면을 향해 뛰어내린다. 장면이 바뀌어 주황색 치마를 입은 나. 거울 앞에서 언니가 골라준 꽃무늬 블라우스를 몸에 대보다 구입한다. 여동생은 치마가 어떠냐고 물어본다.

이토록 맥락 없는 드라마라니! 뜬금없이 나타나는 재료들이 우습지만 이런 요소들이 아주 뜬금없지 않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주장이다. 꿈의 목적은 소망 충족에 있다며 다양한 사례를 들어 꿈을 해석한다. 왜곡되어 나타나지만 무의식에 담겨있던 재료들이 다양한 작업을 거친 후 재현된다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딱 한 사람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 마음을 알아주고 토닥여줄 수 있는 손길이 그리울 때 그렇다. 책을 읽다 생각하니 그런 존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프로이트의 해석에 따르면, 꿈의 목적은 소망을 충족하는 데 있다고 하니까. 외로움을 다독일 수 있는 따스함을 바란다면 꿈이 그것을 이루게 해준다는 것 아닌가. 비록 꿈일지라도, 꿈속에서나마. 내 안에 존재하는 정신적인 세상을 스스로 만든다고 생각하니 묘하면서도 위안이 된다.

진위 여부를 떠나 그의 이론이 맞았으면 좋겠다. 겹겹의 포장지로 덮으려했던 본심이 의도치 않게 드러날 수도 있지만. 마음의 민낯을 보며 당황스러울 때도 있을 테지만.

찬란한 남자주인공 대신 책들을 보았던 꿈이 아예 뜬금없지는 않았다. 드라마 속 배경이 되는 출판사에 방대하게 꽂혀있는 책들을 보며 저런 서재를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순간적으로 생각한 적이 있으니. 잠시 소름이 돋는다. 스치면서 했던 생각이 고스란히 보여 지다니! 나의 무의식은 멋진 남자보다 멋진 책을 더 우위에 두고 있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의식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일어난다는 것. 모순처럼 생각되지만 우리 몸에도 종종 일어나는 현상이다. 무조건 반사 말이다. 책상 위에 올라앉아 무릎 밑을 실험용 망치로 치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리가 불쑥 올라온다든지, 뜨거운 물체를 만졌을 때 순간적으로 움찔하는 손동작 같은 것이다. 이 책을 따라가는 길에 다양한 꿈을 꾸면서 무조건 반사를 떠올렸다. 표현되는 형태는 신체반응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하지만, 꿈의 세계란 마음에서 일어나는 무조건 반사가 아닐까 하고. 외부 자극에 정직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의식이 배재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으니.

무의식도 매력적이지만 전의식이라는 영역도 마음에 든다.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해주는 교량과 같은 역할을 한다나. ‘전의식은 꿈의 무의식적 흥분을 제압해 해 없는 방해물로 만들어버린다.(p257)’ 우리 몸에 해로운 암모니아를 독성이 적은 요소로 바꾸어주는 간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말 아닌가. 정신세계에서도 보호 장치가 존재한다니 든든하다.

프로이트의 해석이 전적으로 옳지 않을 수 있지만 맞다 틀리다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라고 본다. 꿈의 세계에 대한 해석은 누구도 명확하게 입증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몇 개의 조각난 화석을 보고 과거 생물의 모습을 유추하듯 우리는 다만 가능성이 높은 확률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리라.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내 안에 있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세계. 내가 원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바라는 것을 잠시나마 보여주는 세계. ‘꿈을 해석한다는 것은 그 의미를 삶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다.(p4)’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꾸는 꿈을 보다 관심 있게 살펴보았다. 나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이 글을 마치는 대로 나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울 것이다. 암전.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꿈의 두 세계를 경계 짓는 어둠을 가물가물 몇 분간 서성일 테고 어느 순간 쏘옥, 꿈의 세계로 빨려들어갈 것이다. 그 안에서 내 마음은 드라마로 구성될 것이다. 오늘 하루를 지나오면서 보았던 것, 들었던 말, 했던 일, 만났던 사람, 걸었던 길, 맡았던 냄새, 먹었던 음식들을 햇살과 함께 떠올린다. 궁금해진다. 자유로운 무의식은 이 재료들을 이용해서 또 어떤 기상천외한 일일드라마를 만들어낼까. 단 한 번만 방영되는 드라마를 감상한다는 것은 매혹적인 모험이다. 그나저나 나여야만 하는 여주인공은 언제쯤 등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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