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무렵에 저절로 눈이 떠질 때가 있어요. 빛이 흔들어 깨운 것도 아닌데 그냥 자연스럽게 떠질 때요. 그럴 때 어두운 공간을 가만히 응시하면 몸이 붕 뜨면서 새로운 세상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들어요. 점점 무거워지는 저를 잠시 잊게 되어요. ”

핏기 엷은 그녀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잠시 비쳤다.

아름답고 밝은 생각은 몸의 고통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요.”

그녀의 미소만큼을 머금은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글쎄요. 그게 밝은 생각일까요? 지금 보이는 세상과는 다른 것이기는 해요.”

설명해줄래요? 궁금해지네요.”

새벽은 완벽하게 어둡지는 않거든요. 공간을 바라보면 빛과 어둠의 알갱이가 덜그럭거리며 섞여 있는 것 같아요. 그때 저는 하아 입을 조그맣게 벌려요. 공기를 머금고 우물우물 씹으면 과립의 촉감이 느껴지거든요.”

공기를 머금고 씹는다, 공기의 촉감이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이다. 고통에 예민해진 그녀의 몸이 공기의 감촉마저 감지하는 걸까.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 안으로 들락거리는 공기의 존재감이 새삼 느껴진다.

 

녹두전 만드는 거 보신 적 있으세요?”

불쑥 엉뚱한 말을 꺼내는 그녀의 얼굴에 오랜만에 생기가 돈다.

언젠가 전통시장을 들렀을 때 지나치면서 본 적이 있습니다.”

부치는 거 말고 녹두전의 반죽을 만드는 과정이요.”

그건 본적이 없네요.”

어렸을 때 집에서 제사를 지냈거든요. 설날에는 직접 녹두전을 만들어서 부쳤어요. 어머니께서는 불린 녹두를 믹서기에 갈아서 반죽을 만드셨어요. 저는 어머니 옆에 쭈그려 앉아 구경했고요. 그때 하셨던 말씀이 기억나요. 녹두가 너무 많이 갈아지면 전을 부쳐도 밋밋하고 덜 갈아지면 먹기에 부담스럽다고, 적당히 갈아져야 씹는 맛이 난다고요.”

그렇군요.”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까 말씀드린 새벽녘 공기가 딱 그런 느낌이에요. 너무 미세하지도, 굵지도 않게 적당히 갈아진 녹두 알갱이들이 씹히는 느낌이요. 제 현재의 삶과 비슷하다 생각을 해요.”

어떤 점이요?”

환한 낮이 생생한 삶의 알갱이이고 어두운 밤이 죽음의 알갱이라면 새벽은 그 둘이 적절히 섞인 시간이거든요. 나는 지금 가장 맛있는 녹두전을 맛볼 만큼의 삶을 보내고 있다, 삶의 질감을 최대한 느끼면서 씹어보다 밤으로 걸어가고 싶다. 이런 생각이요. 죽음을 떠올리면 삶이 소중해지면서 차분해져요.”

새벽의 느낌을 닮은 웃음이 그녀의 얼굴에 조용히 번졌다.

 

한낮의 햇살이 한참 전에 달아난 시각에 병원을 나왔다. 살짝 서늘한 공기가 뺨을 스쳤다. 삶의 질감을 느끼는 그녀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노곤한 몸, 그만그만한 이야기, 자동응답 기계처럼 반복되는 멘트들. 나는 죽음의 무게에 익숙해져 버려 지구의 중력을 어느 순간 잊는 듯 살아가고 있었던 걸까. 죽음을 너무 많이 지켜보다 보니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걸까.

그녀의 삶을 상상해보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누구보다 생생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녀만큼의 진지함으로 삶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나.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겠다. 거리를 걸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그리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공간을 응시하였다. 덜 갈아진 빛과 어둠의 알갱이가 보이는 듯도 했다. 입을 살짝 벌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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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었다. 깔끔한 인상이었지만 예쁘다고 말할 정도의 외모는 아니었다. 간혹 CF에나 등장하는, 눈을 부라리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절대로 눈에 띄지 않는 몸매의 소유자는 더더군다나 아니었다. 자그마한 체구의 N에게 무엇이 있길래 볼 때마다 나의 시선을 붙드는 걸까. 업무처리 역시 깔끔했지만, 감탄이 나올만한 수퍼울트라급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녀보다 능력이 많다고 인정받는 사람들보다 더욱 빛나 보이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 물론 나는 남자를 좋아하는 이성애자다.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설레는 감정은 아니라는 거다. 오다가다 마주치는 그녀를 볼 때마다 호기심이 점점 커지면서 나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문문이 자리를 잡았다.

사람을 가장 빛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빛나 보이는 사람들에게 어떤 법칙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수도하시는 스님의 화두처럼 마음에 박힌 생각의 농도는 점점 짙어졌다.

 

하아! 이게 뭐라고 이토록 궁금하단 말인가. 본인에게 직접 물어볼까? 아니지. 다짜고짜 그녀에게 물어보는 것도 상당히 뻘쭘하지 않은가. 뭐라 물어볼 것인가.

당신은 왜 이렇게 나의 시선을 붙드나요? 이렇게?

아니면, 당신이 빛나 보이는 이유를 말해주세요. 이렇게?

질문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니 별 싱겁고 이상한 인간이 다 있나 싶은 거다.

 

의문의 실마리는 엉뚱한 데서 풀렸다. 여럿이 함께한 모임 자리에서 나의 건너편에 앉았던 사람이 옆에 앉은 그녀에게 웃으면서 말을 건네는 거다.

-N씨는 늘 자신감이 있고 능력 있고 편안해 보여요. 뭐 비결이라도 있나요? 알려줘요.

나는 짐짓 무심한 척 그녀의 답변에 귀를 쫑긋 세웠다.

-자신감이 있다뇨? 생긴 대로 살 뿐인걸요. 부족한 점이 얼마나 많은데요. , 다만 저의 부족함이 부끄럽지는 않아요. 그게 저이니까요. 할 수 있는 만큼 하다 안되면 내 것이 아닌가 보다 해요. 마음이 편하기는 해요. 제 몸도 마음도 제 것이니까 그대로 인정한 것밖에는 없는데요. 몸과 마음의 주인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것밖에는 없어요.

그녀가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몸과 마음의 주인.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머릿속에 물결파가 떠올랐다. 사람의 몸과 마음에는 저마다 고유한 에너지가 존재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 에너지는 물결파처럼 파동의 형태로 뿜어져 나오고. 존재만으로 느껴지는 강한 아우라 비슷한 거 말이다.

노예의 몸은 주인에게 있다. 자신의 몸인데도 그 몸의 주인이 아니다. 노예의 몸이 비참해 보이는 건 본인에게 맞지 않는 파동이 그를 교란하여 파동 자체가 만들어지지 못하거나 괴상한 파동이 만들어지기 때문 아닐까.

마음도 마찬가지이리라. 자신의 마음인데도 아바타처럼 다른 이의 의지대로 조정된다면, 주체적인 마음 없이 앵무새처럼 다른 이의 생각을 제 것인 양 착각한다면 그 마음의 주인이 아닌 거다. 들쭉날쭉 뒤섞이는 마음의 에너지로 인해 마찬가지이리라.

 

몸과 마음의 파동이 모두 자신의 것이라면 어떨까. 두 개 이상의 물결파가 발생하면 출렁출렁 파동의 에너지가 퍼져나간다. 파의 가장 높은 부분이 마루, 가장 낮은 부분이 골이다. 사건은 두 파동의 만남에서 발생한다. 마루와 마루, 또는 골과 골이 만나면 보강 간섭으로 파동이 증폭되어 빛을 낸다. 반대로 마루와 골이 만나면 상쇄 간섭으로 어두워진다. 그게 밝고 어두운 직선으로 번갈아 나타나는 게 간섭무늬이다.

몸과 마음의 주인이었던 그녀에게는 보강 간섭이 일어나 그토록 빛나 보였던 거다. 며칠 동안 품고 있던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면서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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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두 번째 산이었어! 간이 밥상 위에 낙엽처럼 수북하게 쌓인 캐러멜 봉지들이 반짝인다. 희열에 찬 눈을 번득이는 남자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성취감으로 찌릿한 손끝을 문지른다.

 

끔벅끔벅 눈뜰 때쯤 창문 너머로 간간이 들리는 철벅 철벅 발소리. 젠장! 오늘도 공쳤군! 짐작은 했다. 사흘째 이어지는 장맛비다. 일을 못 나간 지가 사흘째라는 말이다. 일하지 않으면 배가 덜 고파야 하는데 어찌 된 게 일하지 못하는 날은 텅 빈 뱃속의 존재감이 더욱 커지니 환장할 노릇이다. 일찍 일어나면 하루 두 끼만으로는 버티기 힘들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애매한 끼니를 때워야겠어. 그는 다시 잠을 청한다.

서너 시간은 지났을 법했지만 사위는 여전히 어두컴컴하다. 얼마간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보던 그는 이불을 발치로 밀어낸다. 빗소리에 섞여 들어온 흙냄새로 코끝이 간질거린다.

어기적어기적 일어나 싱크대 위 수납장을 연다. 덩그러니 놓인 라면 두 덩어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비좁은 반지하 공간에 놓인 자신의 처지가 라면 봉지와 겹쳐지며 입안이 껄끄러워진다. 오늘은 한 개로 버텨 보아야겠어. 내일도 끼니가 될 라면 사리 한 개를 꺼내어 반으로 두둑 뽀갠다. 봉지를 부욱 뜯어낸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싱크대 아래쪽을 뒤적거려 유통기한이 작년이던 후첨 양념 수프 봉지 하나를 북 뜯다가 그는 후두둑 가루를 흘리고 만다. 이런! 절반은 이따 써야 하는데. 낭패한 얼굴로 물 끓는 냄비의 불을 얼른 꺼버린다. 가루를 확보하는 게 먼저다. 물기 없는 부위에 떨어진 가루를 집게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눌러 수프 봉지에 도로 담는다. 그러다 뾰족한 산처럼 물결치는 끄트머리에 표시된 작은 삼각형 화살표와 뜯는 곳이란 세 글자를 발견하게 된 거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은 가장자리로부터 두 번째 산이 있는 위치이다. 그곳에서 두 개의 산이나 지나친 곳이 뜯겨있다.

아까 뜯은 라면 봉지를 살펴본다. 뜯는 곳, 글자는 없지만 무심코 뜯었던 흔적을 살펴보니 역시 오른쪽에서 두 번째 산이다.

주변을 휘 둘러본다. 현장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가 줬던 미니 파이 봉지가 베갯머리에서 뒹군다. 얼른 집어서 봉지를 앞뒤로 살펴본다. 뜯는 곳, 글자가 있다. 삼각형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이 가장자리에서 두 번째 산이다. 조금 망설이다 봉지를 뜯는다. 제조회사에서 지정해준 장소이니 짐작대로 깔끔하게 뜯긴다.

 

입에 들러붙은 미니 파이의 파편을 혀로 핥은 그는 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눈에 띄는 곳에 뜯을만한 봉지는 없다. 세 번이나 반복된 두 번째 산은 허기짐을 호기심으로 바꾸어놓는다. 아하! 불현듯 뜯을 만한 봉지가 떠오른다. 라면이 동났을 때 아껴서 빨아먹으려고 두었던 땅콩 캐러멜 무더기를 싱크대 위 수납장에서 주섬주섬 꺼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커다란 봉지를 버리지 않는 건데. 확인할 대상 하나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쉽다. 낱개로 싸인 땅콩 캐러멜의 작은 봉지를 앞뒤로 샅샅이 살펴본다. ‘뜯는 곳이란 글자가 없다. 위치를 지정해주지 않은 땅콩 캐러멜. 짐작이 가는 뜯는 곳이 갑자기 너무 궁금해진다.

캐러멜 한 개를 집었다 놓았다 서너 번 반복한 그는 이윽고 결심한다. 엄지와 검지, 양 손톱 끝으로 봉지를 잡고 두 번째 산을 지난 골짜기 부근을 조심스럽게 뜯는다. 맞았어! 땅콩 캐러멜을 우물거리며 껍질을 반 바퀴 돌려 다른 귀퉁이를 뜯어본다. 깔끔하게 뜯긴다. 더 확인하고 싶다. 다른 봉지를 뜯어본다. 역시! 캐러멜을 먹는 것도 잊은 채 그는 다음 봉지를 집어 든다.

 

내용물을 손상시키지 않고 껍질을 벗길 수 있는 적절한 시작점을 발견한 그는 진득하게 둘러싼 삶의 봉지에서 탈출한 캐러멜인 듯 희열마저 느낀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는 자전거처럼 봉지를 뜯는 그의 손길이 점점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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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햇살은 입자성을 띠고 있을 거야.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자잘한 비눗방울처럼 통통 튀는 햇살이 방울방울 흩날릴 것 같은 날이었다. 빛은 이중적이라던데. 어떨 때 파동성을 띠고 어떨 때 입자성을 띠는지 과학적으로 복잡한 원리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봄 같은 햇살이었다. 봄 같은 공기가 출렁거리며 간간이 봄을 닮은 바람을 만들어냈다. 해동된 듯 흐물거리는 가로수 사이로 손가락으로 찌르면 말랑말랑한 젤리처럼 푹 들어갈 것 같은 자동차들이 느린 화면으로 지나갔다.

 

~ 날씨 앱을 한 번 보고 나올걸. 옷을 갈아입고 나올까. 오리털 패딩에 머플러를 칭칭 동여매고 길을 나선 그녀는 아파트 경비실 옆에서 주춤했다. 잠시 망설이다 머플러만 느슨하게 풀고 계속 걸었다.

느슨해진 옷 때문이었는지도 몰라. 한 시간 뒤의 그녀는 와르르 풀어진 감정의 끈을 거슬러 올라와 처음 길을 나설 때의 옷차림을 떠올렸다. 어쩌면 그 시작은 빛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뺨에 흘러내렸던 빛의 감촉이 너무 따스해서였는지도.

 

부드러운 바람을 뺨으로 느끼며 천천히 걷던 그녀의 마음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얼어붙은 심장에 동결건조된 건더기 수프처럼 쪼그라들어있던 생각이 물속에라도 들어간 듯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봄 같아서 좋아. 여름을 닮은 뜨거운 열정은 부담스럽고 가을은 쓸쓸하고 겨울은 추워서 싫은데 그 사람은 꼭 봄 같아.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해서 좋아.

봄이라는 욕조에 마음을 푹 담갔다 빠져나온 사람처럼 약간 상기된 얼굴의 그녀는 과거의 그를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녀가 봄에 빠져있는 동안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관계는 계절처럼 변화한다는 사실을. 언제까지 계속될 줄 알았던 봄은 낭떠러지 같은 겨울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변화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니, 오래 걸렸을지도 모른다. 둔감했던 그녀가 미처 깨닫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조금씩 변해가는 온도를, 조금씩 증발해버리는 빛의 입자들을. 계절이 바뀌는 임계점을 놓쳐버린 걸지도 몰랐다. 변화의 원인조차 희미해진 관계의 끈을 붙들고 있는 그녀의 눈에 결과가 또렷이 보였다. 선명한 현실이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심장을 쿡쿡 찔렀다.

 

오히려 봄에는 이런 상념에 젖어 들지 않았다. 겨울의 한복판에 갑자기 봄이 머무르는 날,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것 같은 날이면 그녀는 불 꺼진 성냥을 들고 있는 성냥팔이 소녀가 되곤 했다. 처량함과 서러움이 조금씩 섞인 마음을 품고 어정쩡한 공간을 서성였다. 빛의 파동에 실려 그럭저럭 견디다가도 입자의 감촉이 끼어들면 이글루의 에스키모인처럼 한기에 무감각했다가도 고요하게 잠재웠던 마음이 다시 들썩였다. 빛의 이중성처럼 과거와 현재의 그를 한꺼번에 불러와 온도 차를 감지하며 목적지 없이 마냥 먼 곳을 응시한 채 걷고 또 걸었다.

 

관계를 계절로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었을지 모르지. 법칙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걸지도. 씨앗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 언젠가는 다시 싹을 틔울 거라고? 그녀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계절이 다시 돌아오듯 봄 같던 그가 다시 올 거라고? 뭘 기대하는 거지? 뭘 기다리는 거야? 애초에 계절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 억지를 부리는 거잖아.

봄이었던 그의 곁으로 다시 돌아가는 그녀의 마음이 쟁반 위에 놓인 과일 껍질처럼 조금씩 말라갔다. 여전히 봄빛을 닮은 공간 속으로 으슬으슬한 기운이 스미는 것 같아 그녀는 머플러를 다시 동여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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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소설이라면 인물, 사건, 배경 등을 설정하고 전체적인 플롯에 따라 써 내려가야 하는 거 아냐?

 

-일반적인 문학작품의 장르에서는 그렇지. 근데 그 장르라는 게 말이야. 소설, , 수필 등으로 구분되는 틀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잖아. 어차피 문학은 창작이야. 세상에 없는 장르 하나쯤 추가되는 거, 썩 나쁘지는 않잖아?

 

-그래서 그, ‘조각 소설이란 게 뭔데?

 

-조각 케이크 알지? 비슷한 맥락의 문학 버전이랄까?

 

-문학? 뭐가 그리 거창해?

 

-카메라도 자동, 수동, 폴라로이드 등 다양한 종류가 있지? 케이크도 원통형만 있는 게 아니라 조각 케이크도 있잖아. 조각 피자도 있고. 드라마 영상도 2~3분짜리 클립 영상이 있는 것처럼. 일종의 조각 글들이 담긴 소설집인데 아주 짧은 장면만 등장한다는 거지. 결정적인 장면을 뜯어낸 한 장의 페이지를 보여주는 거지.

 

-인물도 사건도 제각각이라면 그게 잡글과 무슨 차이가 있겠어?

 

-어차피 독자들이 한 편의 소설 전체를 다 흡수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에 따라 전혀 다른 소설로 받아들이지. 모든 사람의 마음이 작가가 의도한 주제대로 움직이지는 않으니까. 주제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사소한 표현 하나가 어떤 이의 마음에는 선명한 자국을 남길 수 있거든. 글의 예측 불가능성이자 매력이지.

조각 소설이란 각기 다른 음식이 차려진 소규모 뷔페식당이라고 생각하면 돼. 양이 많다고 해서 모든 이들에게 만족할만한 식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아니면 간편하게 먹는 디저트 정도의 개념일 수도 있고.

너는 우리의 기억이 디지털이라고 생각하니? 아날로그라고 생각하니?

 

-소설 얘기하다가 갑자기 기억은 뭔 소리야?

 

-갑자기가 아니라 다 아우를 수 있는 얘기야.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우리는 끝없이 살아가니까. , 아날로그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디지털적인 요소가 많아. 예전 생각을 하면 어떤 장면들이 단편적으로 조각조각 떠오르지 않니? 앨범 속에 끼워진 사진처럼 말이야. 그 사진이 짧은 동영상처럼 몇 분간 움직일 뿐이지.

우리의 기억이라는 거, 일종의 짤막한 소설 같은 거라 생각해. 과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비꼬아서 말할 때 이러잖아. 소설 쓰고 있네~ 하고. 그거 정말 적절한 표현이지 않니? 그 기억에는 자신이든 자신이 관찰한 제삼자이든 주인공이 등장해. 사건이 있고 당연히 배경도 존재하지. 기억을 보강하기 위해 더 오래전의 사건도 끌어오는 플롯을 만들기도 하고. 이게 흥미로운 건 똑같은 기억이라도 회상 시점에 따라 주제가 달라진다는 거지. 홀로그램처럼. 똑같은 사람의 것인데 해석하는 시점이나 감정 상태에 따라 사랑이라는 주제에서 순식간에 증오로 변신하기도 하지.

내가 쓰고 싶은 조각 소설은 그런 기억의 소설 버전이라고 보면 돼.

 

-그런 짤막한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책을 읽을 때마다 가끔 생각해. 책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으면 참 좋겠다 싶은 이들에게 독서의 세계란 게 너무 길고 어렵고 거대한 세계가 될 수도 있겠구나. 세상에는 삶을 펼쳐내느라 종이 한 장 펼치기 어려운 사람들이 참 많은데 말이지. 모든 사람에게 거대한 바닷물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아주 목마른 상태에서 황량한 사막을 걸어가는 이에게는 한 모금의 물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살아가기 급급한 사람들이 너의 글을 볼까? 책 한 장 펼치기 어려운 노곤함 속에서? 네가 쓰는 글이 무슨 의미가 될까?

 

-그렇긴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의 힘을 믿어보고 싶어서. 새벽에 갑자기 깨어났는데 마음 둘 곳이 없어 허허로운데 우연히 클릭해서 읽은 나의 글에 공명하기를 바라는 거지. 전자레인지가 물 분자와의 공명으로 음식을 데우듯이 누군가의 마음이 따뜻해진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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