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새벽 다섯 시를 연탄불에 올리셨다

어두운 밤 한껏 품고 출렁이는 물을 담아

커다란 솥 한가득 데워 하얀 아침 건네주셨다

 

걸레 꽁꽁 얼던 방 안 코끝까지 덮은 이불

부스스 눈뜬 아침 모락모락 김나는 물

한 바가지 찬물과 섞어 따뜻하게 세수를 했다

 

뜨거운 물 나르시다 뜨거운 물 쏟아진 날

화들짝 부어올라 벌겋던 당신의 발등

당신 삶의 쓰라린 물기가 어린 기억에 내려앉아

녹지 않은 눈이 되어 가만가만 쌓인 걸까

 

시린 새벽 다섯 시에 하얀 아침 꺼내어본다

온수에 손 적시는 계절이 올 때마다

당신의 나날들을 종종 그러안는다

촉촉해진 눈으로 덴 듯한 심장으로

차가운 겨울 아침 뜨거움을 안는다

 

 

* 2017. 11. D 시 공모전(겨울에 어울리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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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걸린 선생님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43
이은재 지음, 신민재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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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맨날 저만 가지고 그러세요?”

수업시간마다 눈에 거슬리는 녀석. 작년에 발표 잘한다고 칭찬해주었을 때는 그렇게 열심이더니만 올해는 속이 터진다. 엉뚱한 얘기를 픽픽 해대는가 하면, 방금 전까지 짝꿍과 얘기를 하다가도 지적을 하면 시치미를 뚝 뗀다. 여간 얄미운 게 아니다. 녀석이 속한 반을 들어갈 때면 미리 심호흡을 한다. 의식하지 말자 하면서도 강아지풀처럼 곤두서는 신경은 어쩔 수 없다.

 

우연히 펼쳐본 책장에서 네잎클로버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한동안 고민거리이던 문제의 답을 동화에서 찾게 될 줄은 몰랐다. 잘못 뽑은 반장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어린이 독서모임의 토론도서로 선정한 책이었다. 최근에 접한 어떤 책을 읽을 때보다도 많은 생각을 했고, 교사로서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조손 가정에서 자란 말썽쟁이 5학년 장우와 다이아몬드처럼 완벽하다고 자부하는 신규 교사 고결 선생님과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유쾌하면서도 찡하게 다룬 동화이다. 흔히 문제아라 불리는 아이가 등장하면 아이를 거의 헌신적으로 이끌어가는 교사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작가의 이야기 전개는 이 부분에서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는다. 툭하면 일등, 최고 타령을 하는 교사는 반 평균을 깎아먹는 학생의 자리를 따로 마련하는가 하면, ‘최고가 되자는 급훈을 걸고 아이들을 경쟁의 도구로 생각한다. 학생보다 문제가 많은 교사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등장하는 옆 반의 나이 지긋한 강 선생님의 교육 방법은 참된 스승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고결 선생님은 시골 학교를 홍보하는 동영상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몇몇 뛰어난 아이들만 뽑아 가식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1반 애들은 좋겠다. 전부 다 주인공이라서.(p164)’ 반 전체가 참여하는 동영상을 제작한 옆 반을 부러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잠시 멈칫한다. 공개수업을 좀 더 잘해내고 싶어 일부러 잘하는 학생들에게만 발언의 기회를 주었던 적이 있다. 고결 선생님을 통해 극단적으로 드러나지만 그 안에 내 모습이 전혀 없다고는 자신할 수 없다.

무덥고 짜증나던 6, 수업을 하러가다 문득 우울했다. 아이들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에 그만 두고 글만 쓰고 싶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따뜻하게 품을 줄 모르는 사람은 우리 사회 어디에서도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p207)’ 교사를 그만 두고 법을 공부하려는 고결 선생님에게 강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가슴이 뜨끔했다. 아이들을 품지 못하는 마음으로 무슨 글을 제대로 쓸 수 있느냐며 동화 속 선생님이 갑자기 튀어나와 나를 꾸짖는 것만 같아서.

그런대로 괜찮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정말 괜찮은 교사였던 걸까. 교과서 지식을 잘 가르치고 말 잘 듣는 아이들에게는 좋은 교사였을지 모른다. ‘참된 스승은 아이들에게 빨리 가라고 채찍질하는 사람이 아니라 앞에 놓인 길을 잘 달려갈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 뛰어 주는 사람이라고 하시더구나.(p207~208)’ 이 문장 앞에서 한동안 숙연해진다. 맨날 저만 가지고 그러시느냐 하던 그 녀석에게도 나는 참된 스승이었을까. 한 번이라도 옆에서 함께 뛰어 준 적이 있던가. 답변이 궁색해진다. 곰곰 생각해보니 유독 녀석에게 신경이 곤두서서 딴 아이들이었다면 그냥 넘겼을 일도, 녀석 말대로 저만 갖고 그랬던 적도 있던 것 같다.

 

잘못 끼운 단추는 더 늦기 전에 풀어서 처음부터 다시 끼우면 되잖아.(p208)’ 갈등이 풀리면서 고결 선생님이 장우에게 한 말이다. 녀석이 떠오른다. 꾸벅꾸벅 졸지도 않고 무관심한 모습을 보인 적도 없었지. 내 수업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갔을 뿐 녀석이 한 말이 아예 관련이 없지는 않았다. 선생님과 제자 사이에는 마음을 여는 용기가 필요해요.(p6)’ 작가의 말에 작은 용기를 얻는다. 함께 뛰어 주고 싶다. 녀석과의 관계에 탄성이 생겨 또 다시 투탁거릴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조차 사랑스럽게 보일 것만 같다. 갑자기 지긋지긋했던 그 녀석이 보고 싶다. 동화가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

 

 

* 2017. 8. H독서 공모,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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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내 공간만 바라보던

햇살 담은 12세의 5월은

마냥 맑기만 한 파랑 이었다

 

2007

<화려한 휴가> 속에서

충격이던 39세의 여름은

어쩔 줄 모르던 빨강 이었다

 

2010

수많은 비석 앞에서

고요했던 42세의 5월은

할 말 잃어버린 무채색 이었다

 

기억해야 할 사실을

제대로 몰랐다는 건

기억되어야 할 영혼들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나에겐 파랑이던 5월이

파랑이고 싶었을 누군가에겐

색깔을 잃어가던 치열함이었음은

순간순간 얼마나 눈가 시큰한 일인가

 

당당한 빛으로 살아내며

자유와 민주에 색깔 입히던

수많은 삶의 이야기는

뜨겁게 스미는 역사는

 

2017, 다시 이 곳

먹먹한 색깔로 지나갔다

가슴 깊이 생생하게 새겨진

49세의 5월은

 

* 2017. 9. H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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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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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낀 렌즈로 뻑뻑해진 눈과 같은 관계. 당신과의 만남은 늘 아귀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였다. 1995, 사랑하는 사람과의 새로운 시작은 그로부터 갈라져 나온 또 다른 관계의 출발이기도 했다. 어설프게 끓인 김치찌개의 맛처럼 같은 공간에 섞여있으면서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만남. 어머님과 나와의 관계에서는 자주 그런 맛이 났다. 드러나지 않는 묵직한 갈등은 당사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묘한 씁쓸함이었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처음으로 접했다. 사색이란 말이 감옥이 주는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펼쳤다.

존재 자체가 미움이 되는 비좁은 감옥의 여름을 묘사한 문장 중 앞부분의 문구가 선명하게 남았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는 말씀이다. 겨울이 다가올 때마다 연탄 들여놓을 걱정을 하시던 엄마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아왔던 터라, ‘맞아, 맞아!’하며 공감했다. 여름은 그냥 벗고 물 끼얹어가며 견디면 되지만 없는 형편에 겨울은 난방을 위한 돈이 필요해 더욱 시린 계절이었다.

2020일의 수감 기간은 20세를 갓 넘은 나에게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세월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마음조차 초라해지는 무게감으로 스러졌다. 20대에 걸 맞는 몇몇 문장만이 어설프게 흡수되었다.

 

18년이 흘러 책과 함께하는 삶이 시작될 즈음,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을 만났다. 40세를 바라보는 나이였으나 이과를 전공한 입장에서 인문학 책의 존재는 넘어서기 힘든 거대한 산이었다. 당시의 내가 감당하기에는 책에서 소개하는 고전들과 저자가 그리는 세상이 너무 컸다. 꾸역꾸역 읽었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읽기는 읽었지만 마음에 남은 내용은 거의 없었다. 좋았다는 느낌만 희미하게 남았다.

 

그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던 책은 그 다음 해에 나온 처음처럼이었다. 내용도 좋았지만 나를 사로잡은 것은 글씨와 그림이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투박하고 힘찬 글씨와 그림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는 지나간 후에 돌아보게 되는 향기처럼 깊었다. 2016, 개정판으로 나온 노란 겉표지를 사진으로 찍어서 카카오 톡 배경사진으로 올렸다. 네 글자가 나타내는 의미가 좋아서 볼 때마다 마음에 되새기고 있지만, 글씨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참 좋았다.

 

다시 11년을 지나 담론을 마주했다. 표지를 넘기는 데에만 몇 분이 걸렸다.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하얀 글씨가 먹먹해서였다. 한지 느낌의 소박한 표지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힘차게 뻗어나간 검은 색의 한자 속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앞표지를 넘겨 저자의 소개를 읽다가 ‘~재직하고 있다.’는 마지막 문장에서 뭉클했다. 손에서 놓쳐버린 물건이라도 본 양 아쉽고 허전한 느낌이었다. 벌써 1년도 넘었구나. 이제야 겨우 당신의 책을 집어들만 한 수준이 되었건만 더 이상 다른 책을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한참을 머물었다.

이제껏 읽었던 저자의 책을 모아서 보는 듯했다. 1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을 읽으며 강의를 떠올렸다. 2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에 나온 감옥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연상시켰다. 강의하신 내용을 모은 글이라 책 속의 당신이 말을 거는 것 같았다. 현장에서 경청하는 마음으로 2주일동안 천천히 읽었다. 읽은 기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생각했다.

30년의 시간에는 30년만큼의 기쁨과 상처가 존재한다. 스무 살 이후로 내 삶의 중간 중간에 쉼표처럼 들어오던 당신의 글은 내 기쁨과 상처와 어우러지며 세상과 사람을 찬찬히 둘러보게 했다.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무르익어갔다. 10여 년 동안 천 권 넘게 책을 샀다. 구입한 수의 절반도 채 읽지 못했다. 걸어온 길보다 걸어갈 길이 아직도 멀었지만, 이 책은 깊이 우러난 곰국의 맛처럼 깊었다. 갈수록 넓어지는 사유가 서서히 스며들었다.

 

1부에서는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묵가, 법가, 춘추전국시대의 담론 등이 이어졌다. 고전 사상의 핵심을 요약해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논어에서도 맹자에서도 어머님 생각이 책갈피처럼 행간에 끼워졌다. 당황스러웠다. 난해한 수학 문제처럼 항상 어려웠던 관계. 강의의 중심 개념이 관계이다보니 자연스레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관계가 생각날 수밖에 없던 걸까. 아픈 손가락으로 마음이 모아지듯이 가장 삐걱거리던 당신과의 관계를 읽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내 딸 둘을 헌신적으로 돌봐주셨다. 지켜보는 나는 아이들을 위하시는 마음이 과하게 느껴져 종종 버거워했다. 이성적으로 판단한 당신은 너무나 고마운 분이셨다. 다만 당신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렀을 뿐이었다. 투박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닌 것을. 불편하고 낯설다는 이유로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최소한의 도리만 하며 당신과의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껄끄러운 관계의 어색함을 당신 탓으로만 돌리던 매정한 며느리였다.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가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발까지의 여행이라는 문장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론과 실천은 함께 간다는 내용에서는 이성적으로 판단한 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나를 돌아보며 달아오른 얼굴을 문질렀다. 이제껏 헛공부를 해왔구나. 감춰왔던 위선이 고스란히 드러나 버린 나를 거울로 보는 것 같았다.

텍스트를 통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책을 읽는 것은 필자를 읽는 것이고, 결국 자신을 읽는 것이라는 문장이 강하게 새겨졌다. 조그마한 갈치 가시를 삼켜 다른 음식을 넘길 때마다 따끔하게 느껴지는 목 안의 감각처럼 결혼이후 시시때때로 마음에 걸리던 당신이 서서히 떠올랐다.

 

2부도 가시방식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실천이 없는 독서를 비유한 표현, ‘한 발 걸음이 정곡을 찔렀다. 어머님과의 관계에서 한 발조차 움직이려하지 않던 나였다. 관계의 시작은 가정이다.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조차 편안하지 못하다면 그 어떤 타인과의 관계를 제대로 맺을 수 있을까.

가슴이 공감과 애정이라면, ‘은 변화라는 문장에서 주춤했다. 어머님께 나는 머리만 있는 며느리였을까. 끊임없이 먹을 것을 주셨던 당신. 중학생이 된 막내가 아파트 옆 라인에 있는 할머니 댁에 가기를 귀찮아하자 빨간 법랑냄비에 국이나 반찬을 담아 매일 저녁 우리 집까지 날라 오셨다. 직장일로 종종 퇴근이 늦는 며느리를 대신해 끼니를 챙겨주시던 고마움이 그 때는 왜 그리 부담스러웠는지.

올해, 아이가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아이 학교 근처로 이사를 왔다. 시댁에서 자동차로 10분 남짓한 곳이라 물리적인 거리감은 멀지 않았지만, 심리적인 거리감은 그보다 더 컸다. 처음에는 홀가분한 느낌이 들어 너무 좋았지만 그 기분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두어 달쯤 지나자 무언가를 두고 온 듯 마음이 다시 껄끄러웠다. 분명 당신 탓은 아닌 마음이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인지 몰랐다.

처음 한두 달 정도는 퇴근길에 들러서 먹을 것을 가져가라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전화를 하셨다. 살짝 귀찮은 마음을 안고 들렀더니 저녁 먹고 가라며 밥을 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목이 살짝 메었다. 바리바리 먹을 것을 싸들고서 돌아오는 길이 혼란스러웠다.

인간만큼 간사한 존재가 또 있을까. 감동스럽고 감사하던 마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면 용수철의 탄성처럼 원래의 건조한 마음으로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팽팽하던 용수철은 늘어나고 줄어들기를 반복하면서 느슨해지고 있었다. 당신과의 관계에서 진하게 느껴지던 어색함은 점점 옅어졌다.

 

경계에 있는 사소함은 더 이상 사소하지 않다. 그것은 때로 어떤 상태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1의 차이라 해도 99의 물과 100의 물 사이에는 엄청난 틈이 존재한다. 상태의 경계에 들어서는 순간, 물은 더 이상 되돌아갈 수 없는 수증기로 날아가 버린다.

이 책이 어머님과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몰랐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강의 이후를 시작하라는 문장이 결정적으로 마음을 들썩이게 한 걸까. 물처럼 스며들던 427쪽의 문장들이 어머님의 사랑과 어우러져 모르는 사이 마음을 가득 메웠던 것일까.

집에 가져가서 먹으라며 나를 위해 해놓으신 찰밥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에서 따뜻함이 배어나왔다. 오늘 어머님 댁에 들렀다 나오면서 이제는 당신과의 관계에 두 발 걸음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신혼 초, 한 아름 주신 조기를 손질하면서 난생 처음 생선을 다듬어본 며느리가 생선 눈깔이 무서워 울었다는 일화가 있다. 조만간 웃는 당신과 나누게 될 이야기의 시작이다.

 

수감 기간 동안 신영복 선생님이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감옥의 창을 통해 들어오던 햇볕때문이라고 했다. ‘햇볕이라는 낱말을 보는 순간 아까 보았던 어머님의 표정이 떠올랐다. “잘 먹을게요, 어머님. 도착하면 전화 드릴게요. 얼른 들어가세요.” 자연스러워진 내말에 활짝 피어나던 당신의 얼굴. 아름답고 참 고왔다. 며느리의 무정함을 묵묵히 지켜보시던 넓고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눈부신 웃음을 보는 순간 코끝 찡한 마음이 굴러다니며 실타래처럼 뭉쳐졌다. 물건을 올려놓고 집으로 돌아오는 뒷좌석이 햇볕을 받은 듯 내내 따뜻했다. 당신의 환한 얼굴이 몇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마음 언저리를 맴돈다. 호박고구마 한 상자와 뜨끈한 찰밥과 엄청난 양의 곰국이 한 가득 담긴 커다란 통에 묻어있는 햇볕을 만졌다. 눈이 시큰해졌다.

신영복 선생님이 좋아하는 글귀라며 책의 마지막 부분에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를 소개하신다. 22년 동안 불안하게 이어지던 어머님과의 관계. 당신과의 만남이 이제야 꽃으로 피어나려는 걸까. 눈에 고인 맑은 꽃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2017.10. H독후감 공모,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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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7 0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17-11-07 08:39   좋아요 0 | URL
항상 지나고 나서야 깨달아진다는 것이 참.. 마음이 아프네요...
오늘,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해야 나중에 후회가 덜 할텐데, 바쁘게 움직이다보면 간혹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바디무빙 - 소설가 김중혁의 몸 에세이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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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야 한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녀석이다. 이 녀석은 내 안에 숨어있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말을 건다. 강조하려는 글씨에 밑줄을 긋거나 음영을 드리우는 것처럼, 이봐! 여기야! 라는 표식을 남긴다. 빨간 반점으로 나타나기도, 열을 내기도, 콕콕 찌르기도 한다. 며칠 물 안 준 화분의 흙처럼 쩍쩍 갈라지기도 하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반드시 찾으리라 결심하고 한참을 바라보면 아뿔싸!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잊을 만하면 불쑥 불쑥 나타나서 말을 건다. 여간 치밀한 녀석이 아니다. 존재감은 확실한데, 도무지 거주지가 분명치 않다. 지금부터 이 녀석을 공개수배 한다!

 

난감할 때도 있다. 보기 싫은 인간이 내 앞을 지날 때 특히 그렇다. 반가운 표정을 장착하고 어머! 반가워요! 다음에 밥 한 번 먹어요!”라 가식적인 멘트를 날릴 때마다 이 녀석은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 내 얼굴 근육을 어찌나 미세하게 조절하는지. 성질은 또 얼마나 급한지. 내뱉는 언어와는 상반된 표정과 시선과 눈빛을 재빠르게 드러낸다. 사회생활이라곤 도무지 모르는 융통성 제로인 녀석이다. 이 녀석이 무서워 고개를 숙이고 걸은 적도 있다. 말이 포장하고 있는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녀석이라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참을성도 없다. 코가 간질간질하면 끝내 수많은 침방울을 분수처럼 뿜어내며 표시를 내고 나서야 직성이 풀린다.

행동 모사의 달인이다. 반쯤 눈이 감긴 옆 사람이 하는 행동은 잘 따라하며 그 옆 사람에게 전염시킨다. 덤으로 꺽 소리를 내뱉을 때에는 심히 민망하다.

기억력도 좋다. 고소한 빵이나 테두리 세 겹 정도 둘러준 피자, 특히 찬란하게 회오리치는 우유와 얼음의 콜라보레이션에 최적화되었다. 실물 그대로를 완벽하게 재현하며 입안을 옹달샘으로 만든다.

 

얼마 전에는 이 녀석이 이제껏 나타난 적이 없는 장소에 출몰하여 일주일 넘게 머문 적이 있다. 평소 관심을 갖지 않던 사막 같은 곳이었는데 온종일 꼼짝 않고 천장만 바라보았다. 일상의 거의 모든 활동이 중지된 채 비상이 걸린 사건이었다. 중요한 곳이었구나, 한가운데 있었는데 보지 않고 지나치던 곳이었구나, 그동안 정말로 소홀 했구나 반성했다. 누워서 안방 창문 아래 놓인 하늘을 바라보며 바쁘게 달려왔던 일상을 돌아보았다.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느닷없이 느려진 삶의 시계는 관성인 듯 앞으로 달려가는 나를 잠시 붙들었다. 이 녀석이 내게 준 것은 느린 시간이었다. 압축되어서 보이지 않던 장면들을 펼쳐보게 하려고 그곳에 머물렀다 싶었다.

 

네이버캐스트의 다큐사이언스 코너에는 <숫자에 담긴 일생>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있다. 사람이 일생동안 배설하는 배설물의 무게와 먹는 양과 손톱이나 머리카락, 수염의 길이 등을 수치화한 영상을 담았다. 수업 시간에 보여줄 때마다 매번 아이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 것은 진흙으로 추정되는 배설물 모형이 하늘에서 질척하게 쏟아지는 장면이다. 사람이 일생동안 이만큼이나 싼대요, 뭐 이런 식이다. 50여 톤 입으로 들어가고 3톤이 조금 안 되는 양을 배설한다니 참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마지막에 있다. 가장 오래 사는 세포들은 뇌 안에 있는데 이 세포들이 우리의 모든 기억을 담고 있다는 내용이다. 기억을 담고 있는 세포라니. 곱씹을수록 철학적이면서도 신비한 느낌이다. 기억은 세포에서 어떤 형태로 있을까. 사람의 몸은 세포로 이루어져있고, 세포는 혈액에 의해 운반된 산소와 영양소를 결합시켜 필요한 에너지를 얻어 활동한다. 대뇌의 해마에서 기억을 담당한다는 사실도 알지만 가끔 과학 이론을 떠나서 상상해보면 신기한 현상들이 많다. 기억이라는 무형의 것이 세포의 어느 부분에 심어져 있는 걸까. 기억이 없어지는 건 그 자체가 아예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인식의 영역으로 단지 전달만 안 되는 상태일까. 일반인은 일생동안 뇌의 10%도 사용 못한다던데, 기억의 영역에서 버려진 기억들은 혹시 사용되지 못한 90%의 곳곳에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김중혁의 글을 읽을 때마다 엉덩이에 뿔이 난 송아지가 된다. 문장 곳곳에 볶은 소금처럼 톡톡 튀어나오는 유머 코드에 낄낄거리다가도, 후텁지근한 바람처럼 한순간 훅 끼얹어지는 가슴 뭉클한 느낌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책 제목Body Moving은 사전을 찾아볼 필요도 없이 중학생 정도면 알 수 있는 단어이다. ‘몸의 움직임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까. 영화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니 ‘movie’라는 단어가 연상되기도 한다. 작가의 의도를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해석을 하자면 ‘moving’이 지닌 또 다른 의미,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이란 뜻도 얹고 싶다. 가만히 생각하면 찡해지는 존재이니. 몸과 마음이 합체가 되어야 완벽한 인간이 된다. 예전의 내게는 마음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는데, 몸도 마음 못지않게 중요한 대상임을 나이 들어갈수록 느낀다. 작가 말대로 한 사람의 몸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 모든 걸 기억하는 것은 바로 몸이므로.

 

어딘가 아프다는 것은 몸이 말을 거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 좀 봐달라고, 가끔은 쉬어가라고. 종종 말을 걸어주는 몸 덕분에 자만하지 않고 살아간다. 속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비언어적 표현 때문에 겉과 속이 같은 인간이 되려고 애쓴다. 몸이 거는 말은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심호흡을 하다보면 몸이 거는 말이 들리는 것 같다. 요즘에는 왼쪽 허벅지가 말을 건다. 더 뻣뻣해지기 전에 요가라도 하라고. 살짝 허물이 벗겨지는 왼쪽 발가락들이 말을 건다. 피곤하다고 그냥 자지 말고 제발 퇴근하면 발 좀 닦으라고요! 다른 사람은 매일 씻나 궁금하지만 결코 묻지 않는다. 이 말은 곧, ‘나는 매일 안 씻는다.’는 말과 동급이기 때문이다. 침침해지는 눈이 말을 건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고 드러나지 않는 풍경을 보라 한다.

내 모든 이야기를 기억하는 몸이 갈수록 수다스러워진다. 허리가 아팠던 이후로 자주 뭉클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고 몸을 대한다. 드디어 찾았다! 내게 끊임없이 말을 걸며 존재를 표현하던 녀석을. 이 녀석을 오랫동안 아끼며 내게 거는 말에 귀 기울이려 한다. 나는 내 몸을 사랑한다.

 

 

* 2017.10. S독서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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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4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17-11-04 13:56   좋아요 0 | URL
그렇죠? 어지간히 많이도 먹습니다. 그게 다 에너지로 소모되어야 하는데 살로 가니^^;;
맞습니다. 아프지 않게 사는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주변을 보면서 많이 절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