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많은 햇살을 함께 바라본 기억이 없다. 친정아버지의 휠체어를 끌고 어머니와 함께 병원 밖으로 나왔다. 탁 트인 시야에 바삭한 잔디와 싱싱한 브로콜리들이 들어왔다. 지금껏 가져보지 못한 부모님과의 시간들이 연둣빛 조각에 담겨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얼핏 불어오는 바람에 5월이 흘러들어왔다. 당신들과 보낸 병원에서의 시간들이 도미노처럼 좌르르 넘어지며 떠올랐다. 병원 냄새가 향기로웠다. 나와 당신들의 5월이 겹쳐진 시간. 괜히 눈물이 나왔다.

 

작년 5월 초, 여든이 되신 친정아버지께서 왼쪽 무릎 수술을 하셨다.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뛰시다가 넘어지셨다고 했다. 당황하신 당신들은 119를 부를 생각도 못 하셨다. 가방 속에 있던 화장지로 철철 흐르는 피를 닦고 또 닦아내다 가까스로 몸을 부축하여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하루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에 며칠을 지내신 후 뒤늦게 자식들에게 말씀을 하셨다.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무릎뼈가 몇 개의 조각으로 부서지셨다고 했다. 어쩐지 도무지 걸을 수가 없더라. 아버지는 멋쩍게 웃으셨다.

 

먹고 살기 바빴다. 10년 동안 계속되었던 아버지의 실업으로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 찾아서 하셨던 어머니. 경제적으로 늘 어려웠기에 제대로 된 5월을 누린 기억은 없다. 그러다 나는 결혼을 했다. 직장 일에, 육아에 끌려가던 나는 당신들을 한 달에 한 번 찾아뵙기도 힘들었다. 둘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될 만큼 커서 시간적인 여유가 다소 생겼어도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 죄송한 마음을 밀어두고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가정 안에서 살아갔던 건 어찌 보면 습관 비슷한 것일지도 몰랐다.

 

딸 딸 딸 아들 중 나는 둘째 딸이다. 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의 간병은 어머니의 몫이었지만 여든을 1년 앞둔 당신 혼자 감당하시기 에는 벅찼다. 대전에는 언니와 내가 사는데, 하필이면 그때 즈음 언니는 해외교육을 받는 일정이 잡혀있었다. 나머지 형제들은 다른 지역에서 직장을 다니는 지라 주말이면 모를까 평일에 병원을 들르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나의 몫이 되었다. 퇴근 후 병원을 배경으로 한 5월의 시간들이 펼쳐졌다.

 

어버이날에 무릎사진이나 찍어보자고 동네병원에 모시고 갔다가 그 길로 종합병원 응급실과 입원실로 직행하신 아버지. 고통은 느끼셨지만 괜찮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며칠을 버티셨던 당신은 무릎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왜 이제야 오셨냐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심적인 부담이 크셨나보다. 치매에 걸리신 게 아닐까 철렁할 정도로 가끔 정신이 오락가락하셨다. 일시적인 스트레스로 나타나는 증상이라 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 역시 많이 힘드셨을 터 였다. 근 한 달 가까이의 입원 기간은 당신들이 감당하기에는 커다란 시간이었다. 자식으로서의 나는 뭐라도 해야 했다.

 

퇴원하실 때까지 퇴근 후 매일 병원으로 출근을 했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어서, 조금씩 나아지시고 부터는 이 때가 아니면 언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나 싶은 생각에 갔다. 뭐라도 하기 위해 병원을 갔지만 사실 내가 한 일은 별로 없었다. 병원 밥 나온 거 많다 하셔서 같이 밥을 먹고, 가끔 휠체어를 끌고 물리치료실로 가고, 샤워하실 때 보조한 것, 어머니께서 집에 다녀오실 동안 아버지 곁을 지켜드린 것 밖에 없었다. “피곤할 텐데 내일은 오지마라.” 내 모습만 보면 활짝 핀 꽃이 되시는 당신들의 웃음은 매번 나의 발걸음을 병원으로 끌어당기셨다.

 

집으로 가기 위해 차의 시동을 걸면 늘 병원의 소독약 냄새가 훅 끼쳤다. 오십여 년 살아오면서 병원 냄새를 가장 많이 맡아본 5월이다. 1년이 지나 다시 오월. 작년 이 시간 병원에 있던 나를 생각한다. 병원 마당에서 바라보던 5월이 당신들과 겹쳐진다. 난 참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구나. 가장 향기로운 5월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자 따뜻한 물에 던져진 수란이 된 양 물컹해진다.

 

 

* 2019.5.18. H백일장(글제: 향기로운 5월),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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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30주년 기념 특별한정판)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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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상상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가늠할 수 없는 심해의 깊이라든지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는 우주의 넓이라든지 아이를 출산하는 고통이라든지. 첫 아이를 낳던 순간을 기억한다. 심호흡을 고르고 준비했던 두근거림이 무색하게도 예상을 훌쩍 뛰어넘던 경험의 느낌표를. 고통과 희열이 미묘하게 겹쳐지면서 몸 전체로 스며들었다. 극과 극을 안는다는 건 이런 느낌일까.

침대 맡에 두고 겉표지만 바라보며 두 주를 보냈다. 인공의 첨가물이 묻지 않은 한지를 연상시키는 표지가 마냥 좋아서, 하얀 바탕에 쓰인 제목의 글씨체가 그저 좋아서, 책안에 담겨있을 2020일의 시간이 감히 무거워서, 2016년에 찍힌 신영복 선생님의 마침표가 불현듯 아쉬워서. 섣불리 첫 걸음을 떼기가 두려웠다.

 

1988, 대학 1학년 때 이 책을 처음으로 접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p396)’는 문장이 남았다. 그로부터 30년 후, 50세가 된 나. 다시 펼쳐보니 이번에는 다른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교도소의 우리들은 (중략)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중략)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p396)’

그 때의 나는 왜 이 문장을 보지 못했을까. 같은 책을 읽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생소했다. 486페이지에 차곡차곡 담긴 문장들을 곱씹어보며 불쑥 불쑥 당황스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20세의 내게는 가난하게 살던 자신만 보였지만, 이제는 주변과의 관계가 보였다. 30년이란 시간은 내 영혼을 보다 높은 곳으로 끌어올렸나보다.

 

감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이렇게나 많은 사색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마술사의 좁은 봉 안에서 화들짝 나오는 꽃다발인양 당신의 생각은 좁은 공간에서 쉴 새 없이 피어났다. 아버님께, 어머님께, 형님께, 동생에게, 형수님께, 계수님께 보내는 서간문은 단순한 안부 편지를 넘어서는 장르였다. 몸이 담긴 공간만큼이나 제한된 지면에는 인간과 자연과 세상과 삶과 관계가 진하게 묻어있었다. 인간의 사유는 몸이 담긴 공간의 크기에 제한되는 대상이 아님을 알았다.

소소하게 발견한 기쁨과 웃음과 행복을, 스스로의 숨결로 당신을 데우며 느꼈을 고통과 번민과 슬픔의 흔적을 진솔한 색채로 보여주는 글이었다. 내내 먹먹했다. 수인이라서 답답했겠다, 불쌍하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되레 감옥 밖의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당신은 매순간 당당했고, 따뜻했고, 여유가 있었고, 깊었다. 그 모습을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며 나의 삶을 돌아보고 나태함이 섞여있던 시간들을 반성했다.

 

1cm의 토양이 생성되기 위해서는 80년에서 400년 가까이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간간이 삽입된 엽서에 친필로 빼곡히 적힌 글자들을 보면서 토양을 떠올렸다. 커다란 영혼에서 부스러진 흙 알갱이들이 낮은 곳으로 겸손하게 놓였다. 한 글자도 허투루 쓰이지 않은 또박또박한 글씨체는 보는 것만으로 찡했다.

몇 년 전부터 카카오 톡 배경 화면으로 걸린 노란 바탕의 처음처럼’. 휴대폰을 열어 물끄러미 네 글자를 바라보았다. 드라마 중간에 삽입되는 광고처럼 50세의 삶에 등장하던 소심함과 나약함이 작아지는 듯했다. 다시 처음처럼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게 무엇이든.

 

영혼에도 물리량이 있다면 어느 만큼일까. 줄줄 이어진 천 조각처럼 당신에게서 나오던 사색의 길이라든지, 시야의 넓이라든지, 마음에 담긴 세상의 부피라든지, 체감하는 생명의 무게라든지, 심장에 담긴 열정의 온도 같은 거 말이다. 2020일의 사색을 덮는 순간, 첫 장을 열던 순간과의 온도차로 인해 뭉클했다. 왠지 알 것 같았다. 책장을 넘기는 손끝을 통해 당신의 문장들이 강물처럼 나의 심장으로 끊임없이 흘러들었다. 그 물방울들이 온통 영혼을 그득하게 채워 바다처럼 깊이 출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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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2-07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 다섯 번 읽었어요. 제 머리속에 그림을 그리시네요.

나비종 2018-12-07 18:09   좋아요 0 | URL
어떤 느낌의 그림이었을지 궁금한데요?^^
 

<제목> 도수치료사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떡 드세요" 들으며 출근길 자동차 시동을 거는 청취자입니다. “떡 드세요와 음악 한 곡 정도 듣는 시간은 자동차 쓰나미가 밀려오기 전이라 직장까지 5분 정도면 도착을 해요. 어쩌다보니 거의 매일 방송을 청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몇 주 전부터 방송을 들으면서 생각했어요. 나도 사연을 보내면 될까? 에이, 저런 건 특별하거나 행운이 많은 사람이나 채택되겠지 하구요. 오늘, 드디어 결심을 했습니다. 제 마음을 전하고 싶은 분이 생겼거든요. 사연을 쓰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망설여져 손끝이 주춤거리지만 그분에 대한 고마움이 제게 용기를 주네요.

 

저는 올해로 오십 세가 되었습니다. 반백에 남들 한다는 거 다 해 보려나 제게도 오더군요. 한 달 넘게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이요. 충돌 어쩌구 하며 무슨 전문용어로 설명해주시던 의사선생님의 친절함에도 불구하고 병명은 도통 못 알아듣겠더라구요. 제 왼팔이 저 하늘의 별을 당당하게 가리킬 그날을 위해, 퇴근 후 정형외과와 물리치료실로 일주일에 서너 번씩 출근하고 있습니다.

 

어깨 주사, 팔 꺾기, 충격파, 전기 치료, 약 등 고통의 나날을 안고 지낸지 3주쯤 지났을 때, “도수치료라는 것을 받게 되었어요. 전문 물리치료사 선생님께서 손으로 통증 부위를 마사지하고 운동시켜주시는 거라더군요. 오늘까지 다섯 번을 받았는데요, 제게는 그 어떤 첨단 기계로 하는 치료보다 훨씬 효과가 있더라구요. 치료가 끝나고 집으로 걸어오면서 저를 맡아주시는 OOO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시도 지었어요. 제목은 <도수치료>예요.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이 환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글에 담아보았어요. ^^;;

 

도수치료

 

 

맨손으로

몸을 치료받는다는 것은

매번 뭉클하고

벅차오르는 일이다

 

금속성의 날카로움이나

화학물질의 건조한 치유에는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가

내 안으로 조금씩 흘러든다

 

아픔에 반응하는 몸이

정직하게 움츠러들면

정성스레 조절되는

세심한 강약의 다독임

 

36.5도를 품은 경계가

나의 경계와 맞닿을 뿐인데

따뜻한 물에 뿌려지는 소금인양

나의 고통은 서서히 녹아든다

 

손과 몸 사이

그 미세한 간극을 통해

설명될 수 없는 무언가가

건네어지는 걸까

 

앞으로 몇 달은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하겠지만, 조금씩 당당해지는 왼팔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더라구요. OOO 선생님! 부족한 저의 시가 선생님 손끝의 고단함을 0.1그램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부록으로 배달되는 떡을 직장동료 분들과 기분 좋게 나누어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내주시는 팔 운동 숙제도 부지런히 해 갈게요.

 

 

*2018.11.21. 인터넷 게시판에 사연 올림, 내일 소개된다고 함, 신기하고 재미있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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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11-27 0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방송인지 알 것 같아요 ^^
그나저나 치료 열심히 받으셔서 불편이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도수치료 효과가 좋은 것 같더라고요.

나비종 2018-11-27 09:37   좋아요 0 | URL
가끔 들으시는군요. 출근 시간과 맞아들어가서 5분 내외로 듣고 있습니다.
옷을 입고 벗는 데 큰 불편함은 없어졌어요. 초기에만 해도 항상 왼팔 먼저 끼고 오른팔이 거들었거든요.^^;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퇴근 후 시간을 병원에서 많이 보내고 있지만, 몸이 말을 하는 거라 생각하고 성실하게 치료받고 있습니다.^^
 
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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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막연한 것이었다. 길을 걷다 언제 죽어도 상관없어, . 삶에 미련 따위 하나도 없어. 해탈의 가면을 쓴 나는 쿨 한 척 어설픈 말을 번지르르 늘어놓았다. 죽음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운 적도 없으면서, 그 순간의 느낌을 디테일하게 상상해본 적도 없으면서 종종 죽음을 입에 올렸다.

수많은 죽음과 삶을 지켜본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기록. 첫 장을 펼쳐드는 마음은 여느 책과 다르지 않았다. 기쁨이나 슬픔, 사랑이나 아픔 같은 감정들과 죽음은 별반 차이가 없는 색깔이었다. 내가 상상해온 죽음은 한없이 쉬운 것이었으므로.

 

흑백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30대의 많은 날들이 있었다. 퇴근길에는 무거운 납덩이를 발목에 매달고 또 다른 직장과 다를 바 없는 일터를 향했다. 의무만으로 꽉 매인 24시간. 나에게 집이란 ‘home’이 아닌 ‘house’이였다. 한밤중 아파트 13층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며 어두운 바다와 같은 저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무표정한 얼굴은 경직된 심장의 아바타였다. 뾰족한 세상의 모서리에 한 발로 서 있는 기분에 혼자 된 장소에서는 자주 눈물이 흘러내렸다. 익숙하지 않은 발걸음인 듯 삶을 한 발 두 발 내딛으며 비틀거렸다. 걸을 때마다 생각했다. 우연인 듯 차에 치이거나 사고가 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차마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지는 못했다. 운이 없어 의도치 않게 살아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기는 싫었으니. 그저 자연스럽게 나의 삶이 끝나기를 바랐다.

 

부끄럽다, , , 부끄럽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점점 이런 생각이 차올랐다. 꾹꾹 눌러쓴 기록은 단순한 글자의 조합이 아니었다. 피를 토하듯 문장을 토해냈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수면제를 먹거나 12층에서 추락하거나 목을 매거나 철로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한 사람, 재혼한 남편이나 동거남, 동거녀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 루게릭병이나 담도 암 말기의 사람, 눈에 대못이 박힌 사람에 이르기까지 죽음은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수시로 다가왔다. 시간의 화살표 위에 예고 없이 불쑥 다가와 너무도 다양한 방법으로 삶의 마침표를 찍었다. 안락사에 대한 갈등, 시신을 바라보며 죽음을 마주하는 의식, 의사로서 가까이해야 하는 수많은 죽음들이 0.1mm펜으로 그린 정밀화처럼 선명하게 묘사되었다. 뚝뚝 떨어지는 시뻘건 피의 비릿한 냄새가 훅 끼얹어지는 착각이 들었다. 죽음이 담겨있는 19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먹먹하다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느낌이 느린 무게감으로 가슴을 짓눌렀다.

 

죽음의 동굴을 빠져나오니 2부에는 삶에 담긴 자잘한 유머가 기다렸다. 19편의 이야기를 지나면서 중간 중간 풋 웃음을 터뜨렸다. 치열한 삶에 담긴 유머는 구름 사이로 떨어지는 햇살 조각처럼 반짝였다. 죽음의 순간을 기록하면서도 줄곧 삶을 보여주던 그를 생각하니 이조차 물컹하게 녹아들었다.

겉표지에 적힌 부제가 눈에 띈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경계를 마주한다는 것은 경계를 중심으로 양쪽에 존재하는 대상의 온도 차를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이리라. 땅과 대기의 경계에 있는 인간은 가벼운 공기를 호흡하면서 생명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차가운 우주에서 날아온 유성은 대기권의 경계를 마주한 순간 불에 타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맞이할 테지만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의 경계를 바라보는 순간은 얼마나 먹먹하게 스며들어올까. 더군다나 경계를 긋는 일이 자신의 손에 달려있는 인간이라면. 경계를 걷고 있는 이의 고독을 상상했다. 아득하게 깊고 짙푸른 바다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살아야 합니다, 꼭 살아야 합니다. 그의 모든 기록은 같은 주제로 점철되었다. 어떠한 사람이 오든 절대 비켜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 스스로 말하는 사람, 죽어가는 사람이 빨려들 듯 다가온다 하는 사람.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뛰어들어 삶의 끈을 붙잡으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죽음이란 말을 입에 자주 달고 살았던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십여 년 간 내가 안고 있던 죽음이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나는 절실했고, 20년이 지났어도 생생하게 복기되는 느낌은 눈가를 시큰하게 만드니. 묵직한 강으로 흐르던 시간들을 건너온 지금, 책 안에 담긴 죽음의 사례들을 보며 깨닫는다. 사실 죽음이란 내가 지녔던 마음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서 길어 올려야하는 심연의 대상이었다. 나의 것은 죽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말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그건 차라리 죽음의 색깔에 가까운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마음에 기대어 그 어느 때보다 살고 싶었던.

 

내 글을 그렇게 읽는 사람이 세상에 한 분 있다.(p315)’ 저자는 후기에서 자신이 쓴 글을 마냥 편하게 읽을 수 없던 어머니를 언급한다. 친정어머니를 떠올리며 공감한다. 작년 봄, 백일장에 나가 상을 받은 적이 있다. 현장에서 제시된 세 가지 주제 중 하나를 택해 두 시간 가량 글을 써서 내는 대회였다. <이팝꽃처럼 솔솔> 이란 제목의 시를 썼다.

공양주로 일하던 / 어미의 소원은 / 이팝꽃처럼 솔솔 / 갓 지어낸 밥 한 공기 / 내 새끼 뱃속에 담아 / 배불리는 것이었다 // 부처님 공양하고 / 남은 밥 찐 도시락 / 어느 날 삭아버려 / 축 늘어진 이팝꽃 / 자식은 밥을 버리며 / 철없이 투덜댔다 // 30년 뒤 절 마당 / 갓 지어낸 밥 한 공기 / 이팝꽃처럼 솔솔 / 지어주고 싶었지 / 버려진 이팝꽃은 / 노모의 마음속에서 / 여전히 뜨겁게 / 피어나고 있었다

며칠 후, 대회 결과가 발표되자 우쭐했다. 자랑스러운 둘째 딸이 쓴 시라며 전화로 한껏 자랑하고 어머니께 메일로 시를 보내드렸다. 한참 지나 친정에 갔을 때 당신은 시를 읽고 우셨다고 했다. 더불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날은 쉬어버린 밥을 버린 하루였는데, 밥을 먹지 못하고 집으로 가져왔던 날들이 종종 있었다 하셨다. 자식에게는 우연히 떠오른 하루가 당신께는 늘 안고 사시던 날들이었던 거다. 내가 가난의 온도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 것은 그런 날들을 통과해서였을 테니 오히려 감사한 경험인 것을.

 

책 표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동판화를 새기듯 한 자 한 자 쓰인 제목 만약은 없다의 의미가 새삼스럽다. ‘만약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경우의 수이다. 과거를 기억하며 되뇌는 만약은 후회의 다른 말이며, 미래를 상상하는 만약은 발뒤꿈치를 들고 팔을 한껏 뻗어도 닿지 않는 별이다. 우리는 단지 현재만을 절실하게 살아갈 뿐이다. 살아가야 할 뿐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라틴어가 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나바호 인디언은 이와 관련해서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아라."라고 했다 한다. 여러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등장했던 책이지만 이 모두를 삶이라는 보자기로 묶어 짊어지고 걸어가는 한 사람의 삶이 담긴 책이기도 했다. 그의 삶은 묵직하면서도 징 했다. 획 하나도 허투루 긋지 않고 한 자 한 자 정성껏 써 내려간 초등학생의 8칸 국어 공책이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불현듯 꾹꾹 내딛고 싶어졌다. 나의 삶을 향하는 발자국을 8칸 국어 공책 속 한 글자처럼 찍고 싶어졌다.

 

*2018.10. J독후감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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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6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18-11-16 23:07   좋아요 0 | URL
하루 하루를 정성껏 살아야 하는데 가끔 나태해질 때가 있어서^^; 그래도 계속 노력을 해야겠지요?

zzakzi 2018-11-16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본 후기 중 가장 멋진 글인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나비종 2018-11-16 23:10   좋아요 0 | URL
원래의 책에 비하면 제 글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걸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제가 받는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는데, 잘 전달되었나 싶어 기분이 좋습니다.ㅎㅎ
 

잃어버린 것이지

잊어버릴 것은 아니다

찾아야 했던 거지

참아야 했던 것은 아니다

눈물 흘려야 했던 거지

눈감아야 했던 것은 아니니

 

세월 지나 잊히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제는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차마 목적어를 뱉지 못하고

지킬 수 없었던 자는

지켜볼 수밖에 없던 자는

알아야 하는 거다

안아야 하는 거다

 

차라리 목적어를 삼키고

남겨야 하는 거다

남겨져야 하는 거다

남은 자의 몫인 거다

남겨진 자의 몫인 거다

 

 

* 2018. 10. J시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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