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 제목: '빛'을 품은 아이에게


몹시 난감하다. 무릇 이라 하면 찬란하게 물결치는 신묘한 장면을 연상해야 하거늘. ‘파동이냐 입자냐 요것이 문제로세햄슈타인 모드를 장착하면 어쩌란 말(이냐! ‘직진밖엔 몰라요 외길 선생 레이저?’ 이런 이런 쯧, 여기서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과학 선생님!)인가.

(그렇다.) 나는 과학교사다. (빛을 가지고 이토록 고뇌에 빠진 이유? 수식어를 구구절절 붙이면) 시인을 꿈꾸는 과학교사(이기 때문이). 몇 년 전부터 닥치는 대로 글짓기 대회에 도전 중이며 이번엔 온라인 시조 대회다. 삼사삼사 삼사삼사 삼오사삼. 글자 수만 맞추면 될 줄 알았건만, ‘이라는 주제 앞에서 방황하는 A 교사. 태초에 있던 빛부터 몽땅 끌어 모아 삼라만상에 담긴 오묘한 깨달음을 펼쳐도 시원찮을 판에 직진, 파동, 입자 따위의 지식만 둥둥 떠다니니. (어쩌실 건가요.)

 

"(-)! 어제 공고에서 선생님 오셔서 설명해 주셨잖아요. 근데 지금 공고에 왔는데 어떡하죠..ㅋㅋㅋ",

지난 6(,) 퇴근 후 뜬금없이 녀석에게(서) 카톡이 왔다. 아끼는 자전거 뒤에 원하던 특성화고가 배경으로 펼쳐진 사진. 너무 멀다고, 진짜 죽는 줄 알았다는 아이의 메시지에 함박꽃이 그득하다. 아이의 메시지를 따라 박하사탕을 먹은 듯 마음이 화해진다.

 

! 아무래도 집 가까운 데 가야겠어요.(”

? 무슨 소리냐? 그 학교 많이 원했잖니.”

“)요즘 집안 사정이 안 좋아져서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을 그만 두셨어요. 차비를 생각하니 (거기는) 무리일 것 같아요.”

평소 아버지를 대신해 거의 모든 집안일을 섭렵하던 녀석이 두어 달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을 말한다. 빛을 잃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담담한 표정 앞에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당장 결정해야 할 건 아니니 조금 더 고민해보자며 돌려보냈다.

 

그날 밤 나는 새벽까지 뒤척였다. 잠들지 못하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시조로 적었다. 이 시조가 너에게 힘이 될까. 글 안에 녀석의 마음을 담아서, 그 녀석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을 넣어서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

빛을 품은 아이에게)

 

그날의 자전거는 오십분을 굴러갔지

교정을 바라보며 일 년 뒤를 그려본 너

비로소 갖게 된 꿈을 빛으로 품고 왔지

 

자전거론 무리인데 차비는 짐이라며

두 달 뒤 찾아와선 집 근처로 간다는 너

벌게진 눈 속의 빛이 이리도 선연한데

 

아버진 너를 품듯 짐을 안고 가실 테니

네 안의 빛을 따라 그대로 걸어보렴

그 빛이 흘러나오면 길을 보여 줄 테니

(*****)

 

녀석이 담긴 시조를 예선 작품으로 제출했다. (그 후) 본선에서 대상을 받았다.

한 달 여 뒤, 환한 햇살을 품고 쪼르르 달려오는 아이.

! 저 거기 가기로 했어요!”

너에게 아직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를 나는 졸업식 날 건네주려 한다.

 

아이들은 시가 된다. 그 시는 때론 따끔거리지만 빛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보이는 모습을 담을 뿐인데 나의 심장은 덩달아 뜨끈해진다. 빛을 품고 있는 영혼이어서 일까.



* 2021. 10. 5.  CCT 보냄, 2021. 10. 18. 게재


연두색: 주최측 편집 시 생략된 거

빨간색: 주최측에서 추가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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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죽교

 

흩어진 방울방울 화석이라 하더냐

심장이 뿜은 눈물 서럽지는 않았으니

당당히 붉은 꽃잎아 꽃차인 듯 피어라

 

 

갯벌 체험

 

구멍 쏙 뽀글뽀글 두더지를 잡아라

미끄덩 질척질척 도망가도 까르르

태양도 같이 놀자며 퐁당 몸을 감추네

 

 

지구온난화

 

북극곰 쿵쾅쿵쾅 물범 쫓던 얼음 강

우르르 흘러내려 교과서에 박제되니

진공 속 그림에 갇혀 꺼내 달라 아우성



* 2021. 10. 5. P문화제 시조백일장 응모(시제: 포은 정몽주 or 생태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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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소리

 

사락사락 풀잎들 빽빽한 몸 비벼대나

스르렁 안개 타고 가만가만 넘어와선

어스름 누운 귓가로 속삭이듯 흐르네

 

찌르찌르 산새들 가뿐한 몸 들썩이나

드르렁 여름 덮고 잠자던 날 깨워놓곤

가을 숲 한가운데로 쪼르르 달아나네

 

 

불면

 

노곤해진 대지와 나란히 뒤척일 때

초록의 소리 덮는 나지막한 숨소리

태양이 달아난 시간 푸른 빛깔 영혼아

 

거무스름 눈발이 사락사락 흩날릴 때

네모난 하늘 향해 조금씩 날아올라

가만히 두 팔을 벌려 잠든 우주 품어보자

 

 

눈 오는 날

 

포슬포슬 눈방울 춤을 추는 오후 두 시

느린 화면 재생되듯 하얀 점 채워질 때

눈 걸음 속도에 맞춰 느릿느릿 걷는다

 


외로움

 

내 안에 나만 아는 자그마한 사막 있어

시끌벅적 둘러싸인 오아시스 가운데서

날마다 시린 별들을 고요하게 품어내

 

 

지친 날

 

날카로운 눈빛에 이리저리 베이다

앙상한 사과되어 덩그러니 누운 밤

마지막 과즙 한 방울 시큼하게 맺히네

 

 

시조

 

서툴게 빚어놓은 자그마한 자기 하나

까르르 울먹울먹 몰랑몰랑 뒤척뒤척

이 중에 무얼 꺼내어 찰랑찰랑 담을까

 

삼사삼사 삼사삼사 삼오사삼 흥얼흥얼

걸음 맞춰 담다보니 처진 어깨 들썩들썩

그릇을 어루만지며 시린 마음 녹이네



* 2021. 10. 2. 시조~ S상 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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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담긴 얼음 가까스로 꺼내보니

뼛조각 부서지듯 허공 향해 우수수수

새하얀 사막을 타고 검은 강물 흐른다.

 

막막한 종이 위를 하릴없이 서성이다

찐득이 흐르는 글 물끄러미 바라보니

시 안에 물컹한 얼굴 거울인 듯 나를 봐

 

칼바람 덩그러니 여전히 난 혼자지만

신문지 덮은 듯이 살포시 따스해져

또 다시 기대어보다 세상 향해 흐른다.


*2021. 9. 25. H시조백일장 본선, 대상(글제: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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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자전거는 오십분을 굴러갔지

교정을 바라보며 일 년 뒤를 그려본 너

비로소 갖게 된 꿈을 빛으로 품고 왔지

 

자전거론 무리인데 차비는 짐이라며

두 달 뒤 찾아와선 집 근처로 간다는 너

벌게진 눈 속의 빛이 이리도 선연한데

 

아버진 너를 품듯 짐을 안고 가실 테니

네 안의 빛을 따라 그대로 걸어보렴

그 빛이 흘러나오면 길을 보여 줄 테니


*2021.8. H시조백일장 예선(글제: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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