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피엔스 - 문명의 대전환, 대한민국 대표 석학 6인이 신인류의 미래를 말한다 코로나 사피엔스
최재천 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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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다니는 바이러스를 상상하게 되었다. 보이지도 않는 존재가 우리의 삶을 이토록 헝클어놓을 줄이야. 마스크를 쓰지 않은 상태가 특별함이 되어버린 요즘,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중이다. 평범한 일상이 그립다. 당장 다음 주,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갑갑한 마음을 품고 종종 생각에 잠긴다. 언제쯤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오는 걸까.

여섯 명의 석학이 신인류의 미래를 말하는 이 책을 반갑게 펼쳤던 이유는 미래의 모습을 대략 그려볼 수 있어서였다. 정확한 상황 판단은 삶의 방향을 보다 쉽게 정할 수 있도록 해주니까.

동물행동학자, 경제학자, 진화 인류학자, 정치학자, 독일유럽학자, 심리학자가 바라본 미래를 예측해보며 변화될 세상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변화를 공통분모로 분석한 코로나19 사태의 원인과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답은 전공 분야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뚜렷한 색채를 띠었다. 이런 게 학자의 역할이지 싶었다. 삶이라는 여행지의 가이드가 되어주는 일 말이다.

 

동물행동학자이자 생태학자인 최재천은 생태와 인간의 관계에서 코로나19 사태의 근본 원인을 찾는다. 첫째, 인간의 자연 침범으로 생태계가 파괴되어 바이러스의 창궐 시기가 짧아진다고 보았다. 둘째, 지구온난화로 인해 바이러스와 세균을 옮기는 매개동물들의 분포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대안은 자연과 절제된 접촉을 하자는 생태백신과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행동백신이다. 전문가의 시각으로 상황을 명확하게 해석한 점이 마음에 든다.

다만 인터뷰어의 질문 중 몇 가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석학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에서는 전문가적인 답변을 얻기 위한 목적이 클 터이다. 우리가 사상누각 위에 경제를 세웠나? 라며 이에 대한 답변을 요구한다든지, 비대면 분야의 경제가 커지겠지요? 라 말한다든지, 인터뷰의 정리 단계에서도 거품에 의한 경제에 생길 많은 변화만을 언급한 점이다. 학문에는 궁극적으로 경계가 없다고 하지만 생태학자에게 경제 관련 질문을 한 부분이 논지를 산만하게 했다는 느낌이다.

 

경제는 실질적인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분야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여섯 명의 인터뷰이 중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가 두 명이나 포함된 이유도 같으리라.

경제학자 장하준이 주장하는 바는 명쾌하다. 국민의 안전과 건강, 복지를 위한 근본적인 경제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 성장중심주의의 경제 질서를 재편하여 금융이 아닌 사람을 살리기 위한 고용 유지와 소득 보전을 향해 자본이 움직여야 한다는 거다.

그와의 인터뷰에서는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말을 하다 중간에 끝내버린 느낌이 든다. 결말이 약하고 짧다. 가장 중요한 분야라는 생각에 내심 기대했는데 기본 개요 정도의 내용만 언급되어 있어 다소 아쉬웠다.

 

대안적 정치경제를 연구하는 홍기빈의 주장은 한마디로 결단이다.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고 어떤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지, 어떤 원칙을 세워야 할지를 우리 스스로 결단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원칙은 세 가지이다. 첫째, 사회적 방역시스템을 갖추는 것. 둘째, 실업자들을 국가가 고용하는 것. 셋째, 무한한 욕망에 대한 반성이다.

고용보장제의 실례를 구체적으로 들어 이해를 도왔고 살아온 방식을 전환해야 함을 질문 형식으로 주장하여 설득력을 높였다. 바이러스가 좋은 삶을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일지도 모르겠다는 마지막 문장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문명을 읽는 공학자 최재붕은 4차 산업혁명의 관점에서 대안을 찾는다. 디지털 문명을 정해진 미래로 보고 디지털 플랫폼 중심의 삶을 제안한다. 디지털 세상에서 형성되는 인간관계를 수용하며 스마트폰을 신체 일부처럼 쓰는 인류인 포노 사피엔스의 문명을 가속화 하기 위해 마음의 문을 열자고 한다.

그는 디지털 세상의 긍정적인 면을 말한다. 디지털 기기 사용이 주는 부작용이 염려되었던 차에 다소 안심이 되었다. 디지털 분야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례가 듬뿍 들어있어 현실감이 피부로 와닿았다. 역동적인 인터뷰였다. 인터뷰어의 질문에 즉각 답을 하며 다양하고 심화된 예를 제시하는 문장들이 탁구 게임을 보는 듯 경쾌했다. 수치화된 통계 자료를 자주 곁들이며 주장의 신뢰도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세상을 맞은 어른들의 망설임에 내재된 심리를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았다. 많이 공감하며 위안을 얻었다.

 

독일유럽사회를 연구하는 김누리는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언급하며 자본주의의 인간화를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자본주의의 치명적 결함은 두 가지이다. 첫째, 그냥 풀어놓으면 인간을 잡아먹는 야수가 된다는 야수자본주의. 둘째, 과잉 생산 단계로 넘어온 무계획성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미국화를 비판하며 성찰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유럽 사회를 연구한 학자로서 북유럽형 복지 모델을 인간화한 자본주의의 모델로 제시한다. 인간 소외, 사회적 공동체 파괴, 무한히 자연을 침탈하는 자본주의적 요소를 인간화해야 함을 주장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방법으로는 세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존엄성 사고로 바꾸는 거대한 인식의 전환. 둘째, 코로나 대응 모델을 사회 개혁과 한반도 평화 문제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 셋째, 재난 자본주의의 위험을 경계하는 것이다.

전환적 사고의 계기를 맞은 한국인의 세계관과 사고가 넓고 깊어졌다는 그의 맺음말이 희망적이다.

 

행복의 척도를 말하는 심리학자 김경일의 인터뷰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은 우리의 감정을 분노가 아니라 불안이라 정의한다. ‘사실진실의 차이점으로 불안분노의 차이점을 설명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불안은 사실을 알려달라는 감정이고 분노는 진실을 말하라는 감정이라는 문장에 크게 공감했다.

경쟁보다 공존하는 삶, 인정 투쟁에서 벗어나 보람을 느끼는 삶, 사회적으로 강요된 원트(want)가 아니라 나만의 라이크(like)로 기준을 변화시키며 적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삶으로 향하는 나침반을 얻은 기분이었다.

 

여섯 명의 인터뷰를 접하며 코로나19 사태를 해석하는 전반적인 가이드라인을 잡을 수 있었다. 최재천 교수는 코로나19 사태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진단했고, 최재붕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자라나는 포노 사피엔스의 속성을 설명하며 이미 우리 주변에 들어와 있는 디지털 세상을 보여주었다. 장하준 교수, 홍기빈 소장, 김누리 교수의 인터뷰는 체제와 이념의 전환 등 주로 거시적인 시각에서 해석한 내용이라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다. 김경일 교수는 낯선 세상 안에서 당황하지 않고 당당한 나만의 삶을 찾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을 제시해주어 가장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살아가는 시대가 전환점이 될 줄은 몰랐다. 한쪽은 비가 오고 다른 쪽은 비가 오지 않는 경계에 서 있는 듯 묘하다. 변해가는 온도 차이를 체감하는 중이다. 신문물을 접한 구 시대인이 된 기분으로 지난 몇 달간 여러 기기를 접하고 시도해본 적 없는 기능들을 배웠다.

구글폼의 유용성과 간편함에 감탄했으며 교과서 pdf를 띄우고 수업을 녹음하면서 아이패드를 처음 써보았다. 용어 하나 잘못 언급해서, 불쑥 방문을 열고 들어온 가족 때문에, 위층에서 나는 드르륵 드릴 소리 때문에, 발음이 꼬이는 바람에, 혼자 말하고 혼자 농담하고 혼자 웃는 억양이 내가 봐도 어색해서, 새벽녘 졸린 목소리로, 10분 남짓한 영상을 원테이크로 녹음하느라 몇 시간씩 걸린 날들이 떠오른다. 300MB의 용량 제한으로 힘들게 찍은 영상을 업로드하는 데 실패하여 다시 찍어야만 했던 분노의 시간도 있었다. 영상 편집 기술을 몰라 비루했던 나는 다음 날 바로 용량을 줄이는 방법을 배웠다. 녹음된 내 목소리도 질릴 정도로 들어보았다. 태블릿 펜이 손에 익지 않아 그 위치를 감지하지 못해 몇 번이나 헤매었던 기억도 난다. (zoom)을 이용한 실시간 조회, 수업을 시도해보았고 교육청의 원격 회의에도 참석해보았다.

모바일뱅킹과 G마켓을 처음 사용했을 때가 생각난다. 처음에는 그렇게도 접근하기가 망설여지고 두렵더니 금세 익숙해졌더랬다. 이제는 은행을 방문하는 일이 드물게 되었다. 온라인 주문도 자연스러워졌다. 익숙하지 않았던 올해의 경험들도 조만간 익숙한 일상으로 자리 잡으리라 믿는다.

 

반쪽 얼굴로 띄엄띄엄 수업하며 어느덧 2학기의 한 가운데에 있다. 제대로 된 얼굴도 모른 채 중학교 졸업을 시키게 생겼다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찡하다.

지난주 수업 시간에는 실시간 온라인 수업을 처음으로 시도해본 학급의 아이들에게 마음을 전했다.

저번 주, (zoom) 수업이 너무 미약해서 미안하다. 너희 반이 처음이라 선생님이 실시간의 장점을 다양하게 활용할 줄을 몰랐다. 선생님이 녹음한 영상을 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허접한 수업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좀 그랬다. 두 번째 반부터는 간단한 문제나 시사 퀴즈를 내서 채팅으로 답도 하고, 한 줄 소감이나 질문도 받았는데.”

괜찮아요, . 끝은 창대해질 거예요.”

서투른 선생님을 이해해주는 한 마디가 어찌나 기특하던지. 다음에 실시할 혈액형 가계도 관련 줌(zoom) 수업에서는 이모티콘으로 혈액형 통계조사도 해보고 삼행시도 하고 시사 퀴즈도 내봐야겠다. 내신성적에 반영되는 기말고사가 끝나면 소회의실을 활용해서 간단한 토의를 한 후 의견을 교환하는 방식도 시도해볼 생각이다.

 

변화가 어려운 이유는 그 예측 불가능함에 있다. 뜨고 지는 태양처럼 느리든 빠르든 규칙성을 지닌 대상은 안정감을 준다. 수시로 방향을 바꾸는 바람처럼 변화하는 세상의 풍경을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모순일지 모른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의문에 대한 답은 나왔다. 뒤표지에 나온 말처럼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 불어오는 바람을 향해 걸어갈지, 잠시 쉬어갈지, 살짝 빗기어갈지 판단하여 결정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 여러 학자의 가이드라인을 참고한다면 조금은 덜 힘들게 결정할 수 있으리라.

이제는 내 삶의 속도를 조절하며 나만의 방향을 정할 수 있을 것만 같아 뿌연 안갯속에서 한 줄기 불빛을 발견한 듯 반가웠다. 새로운 지도를 들고 가야 할 우리는 모두 처음이지만 서로 의지해가며 함께 걸어간다면 덜 외롭고 덜 불안한 마음으로 앞으로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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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를 사서 친정에 가니 

주섬주섬 분주해진 손길로 

인스턴트 볶음밥을 들려주신다 

요즘 밥하기 싫으면 이거 먹는다 

한번 먹어봐라 너무 편하다 

 

한 장씩 재운 향긋한 파래김을 

작은 조개 닮은 새하얀 송편을 

코 틀어막던 누런 메줏덩이를 

무지개를 품은 고소한 김밥을 

추억의 상자에 담아주신 당신 

 

인스턴트의 시간처럼 휘리릭 

여든 너머도 후다닥 흘러갈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느릿느릿 

가슴 속 상자를 꺼내어 보다 

포도알처럼 톡 물기가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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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꺼진 눈꺼풀 뒤로 

작아져만 가는 눈 

반걸음만치 좁아진 보폭 

어기적어기적 걷는 당신 

 

니 아부지 아까 또 

도롯가에서 넘어지셨다 

불긋불긋한 손바닥으로 

괜찮다며 내젓는 당신 

 

요즘 뭐가 기억이 잘 안 난다 

당신의 웃음은 허허 퍼지는데 

나두 그래요 맞장구치는 

자식의 웃음은 흐흐 시리다 

 

휘몰아치는 여든의 시간이 

덜 서럽기를 조금만 두렵기를 

아이였던 내게 그랬듯이 

톡톡 어깨 두드려드리고 싶어 

 

천천히 당신 걸음 좇아가다 

시간아 느릿느릿 흘러가라 

간절한 주문을 걸어보며 

총총 발길을 재촉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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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쪼그라드셨나 

이렇게 자그마하게 

팔 두르니 내 품 안에 

쏙 들어오는 어깨라니 

 

목욕탕에서 나를 안고 

머리 감겨주시던 당신이 

종종 내 손 붙들고 

시장 데려가시던 당신이 

 

바스락 이파리 떨군 

앙상한 나무인 양 

스르르 녹아버릴 듯 

흩날리는 눈꽃인 양 

겨울을 닮아가는데 

 

가을을 서성이는 나는 

줄지 않는 거리를 품고 

희끗희끗한 겨울을 향해 

먹먹한 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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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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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처음부터 존재해온 것이 아님을. 세상에 당연한 것이 있을까. 당연한 듯 마시는 공기도 당연히 내리쬐는 햇살도 초록을 흩뿌리며 서 있는 저 나무도 처음부터 당연한 존재는 아니었을 터이다. 까마득한 시공을 거슬러 올라가면 분명 우연처럼 일어난 시작이 있었으리라.

유형의 것뿐 아니라 무형의 것도 마찬가지이다. 문화나 정치, 경제, 사회 체제도 말이다. 정치는 먼 나라의 일이었다. 국가나 사회는 처음부터 나를 둘러싼 테두리였다. 그 당연함이 이 책을 읽으면서 무너졌다. 이 글은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 여기며 살아온 한 사람의 짧은 반성문이자 역사와 정치에 무지몽매했던 평범한 인간의 부끄러운 고백이다.

 

작가 조지 오웰의 대표작은 예전부터 툭 치면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1984동물농장이 책장에 꽂힌 건 한참 전의 일이다. 자리만 잡았을 뿐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지만. 고전을 읽어야겠어. 더워지기 시작하던 몇 달 전, 지적 허영을 채우려는 마음으로 꺼내 들기는 했다. ~ 배우형일세. 표지에 나온 작가의 얼굴만 구경하다 웽웽거리는 모기 한 마리 때려잡고 책꽂이로 컴백했다.

왜 이제야 만났을까. 동물농장이 이런 내용이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원제도 ‘Animal Farm’이고 두께로 짐작했을 때 그저 동물들에 얽힌 에피소드 정도려니 했다. , 틀린 말은 아니다.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이에 얽힌 소설이니까. 하지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나면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아니! 이렇게 깊은 뜻이!

처음 몇 장은 나의 짐작대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동물들이 전투를 하고, 풍차를 건설하고, 일곱 계명을 발표했다. 판타지스러운 동화 정도인가. 돼지를 시작으로 말, , 염소, 고양이, 당나귀, 까마귀, , , 오리 등 소나기처럼 후두둑 쏟아지는 동물들에 이름과 캐릭터가 부여되었다. 몇 페이지 읽다 되돌아갔다. 빈 종이를 펼쳐놓고 동물의 종류-이름-캐릭터를 짝지어 메모하면서 읽어내려갔다.

부제도 없고 1번에서 10번까지 번호만 붙은 채 비교적 빽빽하게 이어진 내용에 이토록 몰입하게 될 줄이야! 동화 속 상황에 이렇게 답답하고 화가 치밀 일인가. 이 소설이 어린이용 동화가 아님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치밀한 내러티브를 지닌 저격용 이야기였다. 소설의 배경을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한 국가의 체제를 겨냥하고 이에 대하여 깊이 사유케 하는 날카로움이 담긴 책이었다.

 

인간이 경영하는 농장에서 노예처럼 시달리던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인간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 동물들은 수퇘지를 필두로 자신들만의 <동물농장>을 만든다. 처음에는 유토피아인 듯 이상적인 사회가 유지되지만 머지않아 그들 사이에는 지배와 피지배로 분리된 계층이 형성된다. 나중에는 반란 전과 다를 바 없는, 도리어 동족으로부터 대놓고 사기를 당하듯 상황이 악화된다. 돼지들은 반대 세력을 권모술수로 차례로 제거하고 지배 계급으로 부상한다. 이들과 사람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풍자하는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독자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깔끔한 결말이다. 이런 체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라고.

작품 해설을 보고 스탈린 체제를 희화화한 작품이라는 사실에 전율이 일었다. 정치 상식이 없어도 체제가 돌아가는 전 과정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점차 변질되어버리는 순수한 의도, 지도자의 자질, 알지 못함으로 이용당할 수밖에 없는 대중들,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답답하리만큼 순응하게 되는 체제의 묘한 테두리, 지배와 피지배의 연결고리로 작용하는 존재의 간사함, 체제와 관계없이 묵묵히 살다 희생되는 존재들을 생각했다.

비판받는 체제가 만들어지는 건 나쁜 지도자 한 사람의 영향만은 아님을 깨닫는다.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바닷물에 잠긴 빙하처럼 거대한 배경으로 자리하는 것이다. 그들 모두는 100% 선함과 악함으로 구분할 수 없는 애매한 지점에 놓인다. 동물이 주인공인 이 소설은 어느 순간 동물의 탈을 쓴 인간의 일로 인식된다. ‘스탈린 체제라는 다섯 글자를 초고속카메라로 촬영하여 한 올 한 올 살랑거리는 털끝까지 관찰하고 난 느낌이다.

저자는 영리한 사람이다. 우화의 형식으로 주제를 표현한 점은 탁월한 선택이다. 체제가 지닌 맹점과 그것이 만들어져가는 처음과 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인간을 주인공으로 했더라면 보지 못했을 요소들이다.

 

한 편의 문학 작품은 당대를 대변하는 목소리로 가치가 매겨진다고 생각한다. 코로나로 둘러싸인 요즘에 포스트 코로나를 말하는 작품이 많은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작가가 코로나와 관련된 작품을 썼다면 100년 후의 독자에게도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까. 고전으로 이어지느냐 반짝스타로 묻히느냐는 여기에 있다. 특정 사회의 이슈로부터 보편적인 요소를 발견하여 표현하는 능력이 작가의 역량이며 작품의 수명을 결정한다고 본다. 정치와 체제에 기본 상식조차 없는 나에게 시대를 아우르는 공감을 끌어냈다는 건, 조지 오웰의 작품이 75년을 건너와서도 여전히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내용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의외로 읽어본 사람은 적다는 고전 분야. 학창 시절에는 시험공부로 활용되는 의무감으로 꾸역꾸역 머리에 집어넣기 바빴다. 그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중년이 되어서야 고전이라 불리는 책을 한두 권씩 펼쳐본다. 경험의 폭이 넓어지고 인생의 산에 조금은 높이 올라가 있는 지금, 예전에 읽었더라면 보지 못했을 것들이 보인다. 천천히 음미하며 나의 삶과 주변을 돌아보는 이 시간이 좋다. 잔잔했던 내 삶에 당연히 여겨왔던 것들이 바람처럼 스며들어와 나를 흔드는 이 느낌이 생소하면서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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