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다시 가까워질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하루하루가 버거웠던 시절, 짊어진 짐의 무게가 모두 그의 탓인 양 서럽게 내뱉었다.

먼저 다가가고 싶지 않아, 절.대.로.

곁에 머문다는 이유로 탓해왔던 수많은 환경들 가운데 풍선의 출구처럼 한탄을 분출할 대상이 필요했나.

건조한 관계.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매번 푸석거렸다.


<본론> 

이러다가는 말라버리겠어. 이슬 방울만큼의 시도라도 필요하다.


시작은 단순했다. 하루 한 번씩 가벼운 허그를 해보자. 
그렇다면 언제? 
1. 집으로 들어왔을 때: 이후에 함께 머무는 시간이 다소 어색해질 수 있다.
2. 뜬금없이 갑자기: 맥락없이 더더욱 어색하다.
3. 집을 나설 때: 너를 간택한다. 뻘쭘해도 그 인간 이미 사라졌으니 그나마 나은 선택지다.
집을 경계로 바뀌는 환경으로 나아가기 전, 마지막 기억이 조금이라도 남지 않을까. 인간의 체온이 주는 여운 효과를 노려보기로 한다. 
"잘 다녀와요." (심리학적 해석:. 으~ 어색하게 끼워진 볼트와 너트 같아.)
 
뭐든 처음이 어렵다는 말은 진리다.
족히 한 달이 넘어가는 지금은 기름칠 처발처발한 양꼬치 같다.

이제는 두 팔을 벌리면 미량의 인력조차 느껴지는 경지에 이르렀다.

최종 목표는 '라면 먹고 갈래'~! 

빅픽처의 전략은 그에게 알려지면 아니된다. 이 공간으로 그가 입장할 일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나'라는 주어를 어디에도 사용하지 않는 용의주도함을 장착한다.  


<결론>

다시 가까워질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던 말이 무색하게도

먼저 다가가고 싶지 않다던 말이 무안하게도

아침, 저녁으로 오갈 때마다 현관 입구에서 두 팔을 벌려 그를 안는다. 그가 거실에 누워 TV를 보고 있을 때도. 책을 읽다 뜬금없이 안방에서 튀어나와 거북이 등딱지인 양 몇 초 얹혀졌다 다시 돌아간다. 정면으로 들러붙어 걸리적거리다 시야를 방해하여 척력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정도의 현명함은 있다. 

호시탐탐 노리는 자는 기회를 함부로 흘려보내지 않는다. 선택지 1,2,3을 시도때도없이 시전해도 으흐흐~ 상대는 간지러움에 꼬물락거릴지언정 집어치라고, 저리 가버리라는 말은 없다.


절.대.로.는 절.대.로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말임을 서서히 깨달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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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위 문장에서 '라면 먹고 갈래?'를 연상한다면 해석의 오류가 발생한다.

드라마의 '라면 먹고 갈래? '는 내재된 의역을 읽어야 문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않는가. 이를 테면, '그러니까, 두근두근, 수줍수줍, 으흣~, 이 정도면 알아 듣지?' 랄까.

한편, 위 문장의 '라면 먹을래?'의 의역은 다음과 같다.

라면 먹을래?

무릇 말과 행동은 일치해야 할지라도 뭐 이런 데까지 직역과 의역의 싱크로율이 100%가 되냐 말이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어쨌든, 라면 먹고 가지 않고 그냥 눌러앉는 닉네임 '내사랑 **'은 무심코 위 문장을 구현한다.

내가 끓이지 않는 거니 무조건 '좋아요'다.


<본론>

라면 구성물부터 차이가 나는 두 사람.

나비종: 라면 + 물 + 분말스프(feat. 가끔 건더기 스프)

내사랑: 위 기본 재료 + 파, 계란(feat. 가끔 진짜 건더기-가지나물 남은 거, 깍두기 남은 거, 뭐든 냉장고를 뒤져서 나오는 거)

오늘은 무려 명란젓 한 덩이도 추가. 우훗! MSG를 업그레이드한 맛이 나겠군! 알탕 맛 비스므레할라나? 나름 기대감을 주는 구성물이다.

10여분 뒤, 화려할 수밖에 없는 고퀄의 비주얼을 자랑하는 결과물을 사이에 두고 식탁에 마주 앉는다.

그가 한 국자를 먼저 듬뿍 뜬다.

순간, 눈을 의심하게 되는 건더기의 이동을 목격한다. 명란젓 한 덩이를 몽.땅. 자신의 그릇으로 퍼 넣는 인간.

어랏? 아까 한 덩이만 넣은 것 같던데, 두 덩이를 넣었나?

국자를 건네 받은 나비종은 자신의 몫을 뜨면서 아까 제대로 봤음을 확인한다.

고마웠던 마음이 순식간에 증발된다. 고작 명란젓 하나 가지고 치사하게! 고작 명란젓 하나에 서운한 마음을 품게 된 나비종은 소심한 복수를 계획한다.


<결론>

나비종은 국물을 휘휘 젓다 이 내용물의 또 다른 왕건이를 발견한다.

무심한 듯 자연스럽게 계란 덩이를 몽.땅. 분리수거하여 그릇에 투척한다.

내가 끓이지 않은 라면은 무조건 맛있지. 알탕 씻은 맛이 날랑말랑하는 국물을 후루룩 마시며 뿌듯한 마음으로 라면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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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을 눈다.

방금 전까지 뱃 속에 있었을 모습을 상상한다.

이게 내 몸에 있었다니, 이런 걸 몸 안에 담고 있었다니.

눈으로 보면서도 믿고 싶지 않다.


우리 몸은 노폐물(땀, 오줌, 이산화 탄소)과 노폐물로 여겨지는 불필요한 건더기(똥 등등)를 가차없이 퇴출시킨다.

물론 디테일하게 따져들면 몸에서 분비되는 ㄱㄹ, ㅋㄸㅈ, ㄴㄲ, ㅊ, ㄱㅈ 등(상상만으로 오감의 추억이 생생하게 소환될지 몰라 거북할 소지가 있는 그대들은 자체 삐 처리함을 알린다.) 지저분한 건더기와 국물이 꽤 많이 튀어나올 것이지만

노폐물계에서 묵직한 부피감을 자랑하는 고체, 액체, 기체의 3대 대표물만 언급하기로 한다.


똥과 오줌은 식물에게 얼마나 좋은 거름이 되는가.

이산화탄소는 광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식물의 먹이 아닌가.

나는 앞 단락의 첫 줄에서 간접목적어가 빠져있음을 발견한다.

'우.리.에.게' 불필요한 건더기라 해야 정확한 표현인 거다.


나에게 노폐물인 것이 다른 존재에게는 필요한 물질이 될 수도 있는 것을.

따라서 내가 내리는 결론은 이거다.

세상에 노폐물은 없다.

쓰이는 대상이 어긋나는 동안만 노폐물로 존재하는 거라고.


간혹 내가 쓴 글이 감정의 노폐물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한없이 쓸모없고 초라하고 음침하고 어디다 내보이기 꺼려지는 생각의 산물들. 

이게 내 맘에 있었다니, 이런 걸 맘 안에 담고 있었다니. 

글로 보면서도 믿고 싶지 않은 순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내보이려고 한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런 마음에 공감하며

나같은 인간이 한 명은 아니구나 위안을 삼을 지도 모르니까.

노폐물의 정체성에 기대어 작은 생각이라도 이렇게 써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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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처진 어깨 뒤로 느릿느릿 폐지 더미가 뒤따른다.

그림자인 듯 연결된 짐으로 낯선 이의 삶이 보인다.

그 삶의 무게와 질감을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때마침 가로등이 켜진다.

조심조심 뒤따르던 나의 그림자가 나를 앞선다.

시침이 되었다 분침이 되었다 걸어가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나의 삶은 이 그림자를 닮았을까.

어떤 모습으로 앞서가는 이를 바라볼까.

흑백의 몸뚱이로 어떤 삶을 내보이고 있을까.


그림자처럼 내 삶을 따라오는 흑백의 글씨들은

나의 호흡을 섞고 천천히 시간을 묻힌 이 문장들은

세상을 향해 무엇을 보이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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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om.'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am'이다.

'am'은 동떨어진 'I '와 'Tom'을 관계맺고 동등하게 만들어주며 'I '와 'Tom'에 정체성을 부여하니까.

내가 무엇이든 누군가이든, 보다 중요한 건 누군가 '이고' 무언가 '이라'는 거.

'am'보다 앞에 있는 '나'는 그러므로 당당하다.


주방 창가에는 이름 모를 작은 화분들 몇 개가 있다.

모야모 사이트에 물어봐도 끝내 알아내지 못한 식물들.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닐 터이다.

이름을 알든 알지 못하든 그 친구들은 여전히 존재할테니.


물건이 쓰임으로 의미를 찾는다면

생명은 존재로서 의미가 있다.

이미 '있다'는 것 그래서 우주를 이루는 퍼즐의 일부일 수 있다는 건

존재 자체로 의미를 다하는 경이로운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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