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공감필법 공부의 시대
유시민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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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학창시절, 시험에 임박해서 교과서 대신 만화책을 정독했을 지라도 결과는 그리 나쁘지 않았으니. 이 책을 보니 알겠다, 그게 착각이었다는 것을. 나는 공부를 잘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시험을 조금 잘 보았던 것뿐이라고. 뇌에 잠시 머무르던 지식은 시험이 끝나면 증발되는 물처럼 사라졌다. 교과서를 통해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한 기억도, 삶의 의미를 찾아본 기억도 없다. 16년의 공부가 허무하게 느껴질 만큼.

 

공부와 글쓰기를 주제로 저자가 강연한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된 책이다. ‘공부란 무엇인가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뒤표지 안쪽에는 공부의 정의가 네 가지로 제시되어 있다. ‘1. 세상의 겉과 안을 동시에 바라보는 일, 2. 더불어 나의 바깥을 이해하는 일, 3. 타인과 함께 사회를 고민하는 일, 4. 읽고 쓰고 말함으로써 참여하는 일.’이다. 작가는 공부,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는 작업(p17)’이라 말한다.

 

공부했던 경험이 그렇게도 없나. 한참을 생각한다. 그러다 스스로 찾아서 했던 세 가지의 공부가 떠오른다.

 

첫째, 우주에 대한 공부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백과사전에서 천체에 대한 부분을 정독한 경험에서부터 시작된다. 혜성의 꼬리가 생기는 방향, 3개의 고리(당시 백과사전에는 그렇게 나왔다.)로 둘러싸인 토성과 카시니 틈 등.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용어를 알게 되다니! 된장 넣고 쓱쓱 비빈 보리밥을 든든하게 먹은 기분이었다.

고등학교 때, 내 마음을 사로잡은 별은 시리우스’였. 우연히 읽은 순정만화주인공 이름이기도 했던. 만화영화 캔디테리우스처럼, ‘시리우스, 시리우스는 발음만 해도 혀끝에서 설레는 남자주인공이었다. 실제로 있는 이름일까 궁금했다. 사전을 찾아봤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름이었던 거다. 그 후로 시리우스의 팬이 된다. 편지든 크리스마스카드든 직접 작성하는 모든 문구에는 ‘Sirius’라는 글자가 배경으로 포함된다. ‘시리우스는 음식에 들어가는 소금과도 같았다. 야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나 밤하늘을 바라볼 때면 마치 내 별 인양 시리우스를 찾곤 했다.

삼십대 초반, 이번에는 별자리에 필이 꽂힌다. 한동안‘Starry Night’란 별자리 검색 프로그램으로 미친 듯이 성도를 들여다본다. 그러다보니 실제로도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지는 거다. 도시의 불빛은 별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한숨을 유발한다. 그것은 시야를 흐리게 하는 매연과도 같아서 광해로도 불린다. 인적이 드물고 음침한 곳에 갈 여건이 안 되었던 나는, 인적이 없고 음침한 한겨울 새벽, 아파트 옥상에 혼자 올라가는 무모함을 보인다. 지금 생각하면 무섭고 손 시려서 엄두도 못 낼 일을, 그 때는 뭐가 그리 궁금했던지. 처음으로 겨울철의 다이아몬드(시리우스, 프로키온, 폴룩스, 카펠라, 알데바란, 리겔)를 보고 우와! 생각보다 크구나!’하며 두근거렸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오리온자리 옆에 있던 토끼자리를 보던 기억도.

 

둘째, 운명에 대한 공부이다. 이건 사실 공부를 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얄팍한 깊이지만 스스로 찾아서 했다는 점에서 꼽아본다.

시작은 대학 다닐 때 읽었던 <주역>이다. 집에 있는 책꽂이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펼쳤던 책이다. 뭔 뜻인지 심오한 깊이도 이해하지 못한 채 무작정 64괘를 짚어나간다. 성냥개비를 이용해 이리저리 배치해가면서 문장들을 읽고, 오늘의 운세인양 나름대로 점을 치고 심각하게 해석까지 해보는 같잖은 일을 한다.

운명에 대한 관심은 고미숙의 <나의 운명사용설명서>를 읽으면서 사주에 대한 공부로 이어진다. 주변 사람들의 사주를 따져보고, 인터넷의 각종 사이트를 뒤져가면서 공부를 한다. 그러다 수그러들었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은 분야이다.

 

셋째, 야생화에 대한 공부이다. 디카를 장만하고, 접사 기능을 사용하면서부터였다. 몇 달 동안 퇴근 후에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무작정 찍어대다 보니 이름이 궁금해지는 거다. 노란 꽃이라고는 민들레와 호박꽃 밖에 구분하지 못하던 나는, 맨땅에 헤딩하듯 꽃 이름을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검색어가 봄 노란 꽃이런 식이었으니까. 그것으로 모자라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식물도감>을 구입한다. 쌍둥이처럼 비슷하게 생긴 드넓은 식물의 세상을 접하고 겸손해진다. 생각보다 많은 야생화가 도시에서도 피어난다는 사실과 작은 꽃이 주는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

 

생각해보니 공부에 대한 내 작은 기억에는 독서가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책은 독서를 어떻게 해야 하고, 글쓰기가 공부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마음속으로 정리할 수 있게 해준다.

독서는 글쓴이가 텍스트에 담아둔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껴야’(p8)하며, ‘타인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을 느낄 능력이 없다면, 타인이 공감을 느낄 수 있는 글을 쓸 수 없다’(p43)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한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건축자재가 없으면 집을 지을 수 없다’(p81)며 어휘의 중요성을 강조한 문장이 인상 깊다. ‘구사할 수 있는 어휘의 양이 생각의 폭과 감정의 깊이를 결정’(p81)하며, ‘자기의 생각과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해야 글로 표현할 수 있다’(p81)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From one Sapiens to another’이 의미하는 정체성과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저자가 느꼈다는 공감이 궁금하다. ‘세상과 사람과 인생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가 조금 또는 크게 달라지는 순간을 체험’(p30)하고 싶다. 알라딘 장바구니에 두 권을 담는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진다. 읽은 시기에 따라 가슴에 와 닿는 문장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려준 책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였다. ‘내가 달라지면 같은 텍스트도 다르게 해석하게 되고, 텍스트를 다르게 해석하면 그 해석을 토대로 한 삶의 태도도 달라진다는 것을 경험했다’(p64)는 저자의 말이 와 닿는다. 달라진 내가 책을 읽으면 또 달라진 내가 만들어질 것이고 그렇게 계속 책을 읽다보면 도미노처럼 생각의 폭이 확장되겠지.

 

강연 내용 뒤에 나온 질의응답 내용에서는 세 개의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평소 책 읽는 속도가 지나치게 느린 것이 일종의 콤플렉스였는데, ‘독서에서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맛입니다.’(p103)라고 한 저자의 말이 힘이 된다.

책을 읽을 때마다 그래야 할 것 같은 삶과 그러지 못하고 있는 내 삶과의 간극에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다.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까지’(p124)라는 저자의 말에 마음이 다소 편해진다.

남에게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책과 더불어 스스로 위로하는 능력을 기르는 쪽이 낫다고 저는 믿습니다.’(p131)는 말에 동의한다.

 

무중력 공간에 놓인 촛불은 동그란 모양으로 탄다고 한다. ‘공부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동일하게 산소가 공급되는 촛불을 상상했다. 어떤 방향에서 무슨 공부를 하든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목적은 같을 것이다. 결국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삶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이니까.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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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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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일까. 정리되지 않았다. 실려 있는 7편의 소설들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그렇다고 던져버리고 싶은 느낌과는 또 달랐다. 유쾌한 양지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아주 극한 상황 속 인물들도 아니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각사각 연필 소묘로 묘사된 그림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6편의 이야기에는 모두 누군가의 죽음이 담겨있다. <쇼코의 미소>에서는 암으로 돌아가시는 소유의 할아버지가, <씬짜오, 씬짜오>에서는 엄마가,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에서는 순애 언니가, <먼 곳에서 온 노래>에서는 미진 선배가, <미카엘라>에서는 미카엘라가, <비밀>에서는 손녀 지민이 죽는다. <한지와 영주>에서 죽는 사람들은 없지만, 영원히 만나지 못할 이별이라면 관계에 있어서는 죽음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물론 죽음이 이 책의 주요 테마는 아니다. 7편의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도달하는 주제는 이별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별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관계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단지 이별의 경계일 뿐이다.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이별이라는 마침표가 찍힐 때까지 이루어지는 관계는 세밀화를 보듯 자세하게 묘사된다.

 

사랑하던 마음이 변하면 이별을 하지만, 어떤 경우의 이별은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레 일어난다. 계기는 사람일 수도 있고, 갑작스런 죽음일 수도, 사회적인 사건일 수도 있다. <씬짜오, 씬짜오>의 베트남 전쟁이나,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의 인혁당 사건이나, <미카엘라>의 세월호 사건처럼. 혹은 <한지와 영주>의 이별처럼 무엇 때문인지 명확한 원인도 모른 채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도 있다.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p89)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p164)

 

가족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말이 있다. 가족이 어느 한 구성원의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를 간혹 본다. 흔히 엄마라 불리는 희생자이다. <씬짜오, 씬짜오><미카엘라>의 엄마를 보고 속이 많이 상했다.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삶을 사는, 가까운 이들로부터 가장 많은 상처를 받는 사람들. 이런 이야기가 소설 속 상황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답답했다.

 

학창 시절, 1차적인 관계는 가족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고 배웠다. 가장 기본적인 핵가족은 엄마, 아빠, 나로 구성된다. 그런데, 소설을 보면 가장 친밀한 관계가 반드시 가족 사이에서 형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쇼코의 미소>에서 소유의 할아버지와 공감대를 형성했던 사람은 친손녀 소유가 아니라 일본인 쇼코였다. <씬짜오, 씬짜오>에서도 누구보다 엄마를 인정해주었던 사람은 베트남인 응웬 아줌마였고, <비밀>에서 할머니 말자의 동무가 되어준 사람은 딸이 아니라 손녀인 지민이었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에서 해옥과 끈끈한 관계를 형성했던 사람은 먼 친척언니인 순애였고, <미카엘라>에서는 처음 본 할머니와 함께 할머니의 친구를 찾아주려 하는 엄마가 있고, <한지와 영주>에서는 영주를 깊이 이해해준 케냐인 한지가 있다. <먼 곳에서 온 노래>에서는 선후배 사이인 소은과 미진도 있지만, 러시아인 율랴는 두 사람과 각각 중요한 관계를 맺는다.

 

관계의 매개물은 물건 이상의 의미를 지닌 상징으로 남는다. <쇼코의 미소><비밀>에서는 편지가,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에서는 해옥이 순애 언니에게 주었던 가죽지갑이, <씬짜오, 씬짜오>에서 주인공의 엄마가 투이네 가족을 위해 짰던 목도리, 털모자, 털장갑이, <한지와 영주>에서 영주가 썼던 일기가 그렇다. 그러므로 <한지와 영주>에서 영주가 빙하 속에 일기를 묻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묻는 행위가 아니라 한지에 대한 마음을 묻는 이별의 의식이다. 마음이 담겨있는 물건은 곧 그 사람을 상징하니까.

 

마냥 어둡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7편의 먹먹함 뒤로 올라오는 이 느낌은 무엇 때문일까. 며칠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오늘에서야 어렴풋이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것은 작가의 시선 때문이었다.

신영복 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는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소설 속에는 함께 비를 맞아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심하게 묘사된 아픔을 담담하게 그릴 수 있던 힘은 그들처럼 기꺼이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가려는 작가의 마음에 있었다.

시선이 다시 책에 닿는 순간, 자그마한 구멍이 생긴 물 풍선에서 따뜻한 물이 흘러나와 마음을 적시는 듯 했다. 나도 누군가와 함께 걸어갈 수 있을까.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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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가지 소원
브랜던 로브쇼 지음, 강미경 옮김 / 두레아이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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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많다. 소시지 붙였다 떼어버린 것으로 허무하게 소원이 날아가 버린 그림형제의 동화에서도, 여기저기서 주워들었던 이야기 속에서도 대부분 소원은 세 가지였다. 주인공들은 무엇을 원할지 고뇌하지만 대부분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결론은 욕심 부리지 마라이다. 그런데, 100만 가지 소원이라니. 뒤표지에 나온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만약 100만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면 이 소원으로 무엇을 하고 싶나요?’머리 속이 갑자기 분주해진다. 너무 많다.

숫자마다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다. 3에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8은 따뜻하다. 9는 설레고 1은 외롭다. 그리고 100만은 크다. 어렸을 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돈은 백만 원이었다. 이 다음에 크면 백만 원도 넘게 돈을 벌고 싶다 바랬던 기억이 있다. 100만이 물론 큰 숫자이기는 하지만 내게는 천만이나 억이나 조보다 큰 느낌으로 다가온다. 100만이 커다란 이미지로 다가오기는 다들 비슷한가 보다. 백만장자, 6백만 달러의 사나이, 100만 가지 소원이란 말들이 나오니 말이다.

 

결말을 상상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짧은 동화 안에 어쩌자고. 보나마나 몇 가지 들어주다 욕심 부리면 안돼요, 어린이 여러분! 이러다 말겠지 싶었다. 책 선정을 할 때 잠시 망설였지만, 그래도 100만인데, 뭔가 특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이끌렸던 것 같다.

주인공 샘은 100만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소원을 빌어 주변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커졌다 작아졌다 걸리버 아저씨 코스프레부터 헐크, 슈퍼맨, 배트맨 콜라보 등 다양한 모험에 뛰어든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예상할 수 있는 전개이다.

하지만, 소원을 이루어가면서 주인공이 깨닫는 점이 상당히 심오하다. 가족들이나 친구의 고민을 해결하였을 때는 뿌듯해하지만, 스스로를 위한 모험은 곧 시들해져 식상함을 느끼는 샘.

노력 한 번 기울이지 않고 원하는 건 뭐든 가질 수 있다면 실제로 뭘 한다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p80)

삶은 고생을, 배움을, 향상을, 연습을, 그 끝에 마침내 얻는 성취를 의미한다. 하지만 뭐든 빌기만 하면 이루어진다면 성취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p179)

어린이 독서모임을 위해 책을 선정하고 읽지만, 읽고 나서는 종종 어른인 내가 더 많은 깨달음을 얻는 기분이다. 독특한 이야기 전개와 기발한 결론의 도입도 그렇지만, 짧은 이야기에 담긴 촌철살인의 메시지에 깜짝 놀란다.

 

나만 아니면 돼!’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려운 미션을 부여받았을 때, 출연진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역으로 나만 그런 건 아니야!’라는 말은 어려운 순간들을 맞닥뜨릴 때마다 위안을 주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삶에는 늘 문제가 있다는 거야.'(p172)

고등학교 때 지각을 한 적이 있다. 만원버스를 한 대 놓치고 학교까지 그 다음 버스를 타고 가면서 조마조마 마음을 졸였다. 그런데, 교문을 들어섰을 때, 나와 같은 처지의 친구들이 대거 포진한 모습을 본 순간, 어찌나 마음이 편안해지던지. 동병상련을 체험한 기분이랄까. 동병상련이란 생각보다 따뜻한 의미를 지닌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몰려온다. 이 순간만 지나면 앞으로는 모든 것이 다 문제없을 것 같다. 하지만 막상 그 일이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이런 사실이 까마득할 때도 있지만, 바꿔 생각하면 나만 그런 건 아니니까. 모든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이 책 속의 상황처럼 문제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위로가 된다.

그래, 아마도 살아있는 한 죽을 때까지 크고 작은 문제들이 내게 다가올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에 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넘어서느냐에 따라 내 삶의 방향은 달라질 것이다. 삶의 폭이 더욱 넓어지기도 하고 깊어질 때도 있을 것이다.

 

지나온 삶을 생각해보면 벅찬 기쁨을 느꼈던 순간에는 늘 과정들이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좋아하던 사람과 처음으로 안아본 순간을 기억한다. 그를 바라보고 그리워하고 생각했던 수많은 낮과 밤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설렘으로 두근댔다. 시험에 합격했던 순간도 생각난다. 눈이 시뻘개지도록 책을 들여다보던 시간들과 이 시험을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빛이 났다. 아이를 낳았을 때에도 열 달 동안 삐질 삐질 땀 흘리고 뒤뚱거리고 조심하며 견뎌온 시간들이 있었기에 울컥했다.

하늘거리는 광섬유가 아름다운 이유는 끄트머리에서 반짝이는 빛 때문이다. 그 빛은 가느다란 길을 거치지 않으면 결코 나올 수 없다. 기다란 광섬유는 삶에서 경험하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제 어떻게 그 길을 지나야 하는가의 문제만 남았다. 나는 빛나는 나의 삶을 위해 기꺼이 그 길을 갈 것이다.

100만 가지 소원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질문을 바꾸어야할 것 같다. 만약 100만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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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06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에 힘들었던 경험의 기억이 지금에서야 그리워질 때 있어요. 예를 들면 수능을 코앞에 둔 고3 시절을 그리워해요. 그때는 미래를 알 수 없던 시절이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문제를 안고 살면서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지만, 자신의 선택을 믿으면서 살다보면 행복한 일이 찾아올거라 믿어요.

나비종 2016-08-06 21:57   좋아요 0 | URL
지나온 일이 그리운 것은 이미 지나와서 일거예요.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고, 어떤 선택을 하여 걸어가든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니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cyrus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선택을 믿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박카스 광고 중 `대한민국에서 ***로 산다는 것`편이 생각나네요. 그 때가 좋았다며 회사원, 백수, 이등병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광고요. 저 역시 힘들었던 과거였지만, 그 때가 좋았지 하며 그리워질 때가 있거든요^^
 
표현의 기술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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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 깨졌다. 정치인이 쓴 글은 고리타분하고 제 잘난 맛으로 도배되어있을 거라는, 만화가의 글에 정치나 사회가 연결되면 재미없어지거나 감동을 느끼기 어려울 거라는.

이 책을 통해서 두 사람의 글을 처음으로 접했다. 별 기대하지 않고 읽어서인지 예상하지 못한 보물을 발견한 듯 뿌듯하다. 두 작가의 팬이 되었다. 작가 이름으로 검색해서 그들의 작품을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한 권의 책으로 마음이 확 당겨지는 작가 두 명을 알았으니, 전문 용어로 일타쌍피.

글쓰기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도 많고,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도 생각해보게 해 주니, 고마운 책이다. 같은 주제로 표현된 두 작품. 큰 맥락은 이어져있지만 독특한 개성을 지닌 두 사람의 글은 각기 다른 색깔의 매력을 지닌다. 독후감도 그래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쓰고자 한다.

 

 

<유시민의 표현의 기술이란>

 

솔직함과 당당함이 인상적이다. 고정관념 없는 쿨함이 깔끔하다. 인간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도 느껴진다. 간혹 TV 패널로 등장한 모습을 지나치듯 본 적은 있지만, 정치인이라는 거부감에 전혀 궁금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의 다른 글을 읽고 싶어진다.

 

1왜 쓰는가에서 한참을 머무른다.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명확하다. 조지 오웰이 나누었다는,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 미학적 열정, 역사에 무엇인가 남기려는 충동,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p18)’ 등 네 가지 목적 중 마지막에 언급된 정치적인 목적이다. 글쓰기 뿐 아니라 세상의 많은 정치가 이런 의도로 이루어진다면 좀 더 밝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나를 돌아본다. 나는 왜 쓰는가. 딱히 돋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고,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을 타인과 나누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역사적인 사명감도, 정치적인 의도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왜 쓰는가. 고대인이 생각했다던 4원소설을 넘어 영화 5원소가 나온 것처럼, 오웰이 제시한 목적과 미세한 차이가 있는 다섯 번째 이유로 내가 쓰는 목적을 결론짓고자 한다. 나는 내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서 쓴다. 마음이 복잡할 때 글을 쓰면 속이 후련해질 때가 있다. 슬픔이나 외로움이나 분노 같은 감정을 글로 꺼내 놓다보면, 1인칭의 글을 쓰는 나는 3인칭의 인물이 되어 글을 읽게 된다. 객관화된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침잠시키지 않는다. 욕심을 더 부리자면 나를 위한 글이 다른 이들의 공감을 얻어 동병상련식의 위로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유 작가처럼 뚜렷한 정치적 목적은 아니지만, 조금 쉬다 다시 나아갈 그루터기의 역할이라도 한다면 정치적인 목적의 변방에라도 서성이는 것이 될 지도.

 

틀린 생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마다 다른 의견이 있을 뿐. 2장에서는 야구에서 직구를 던지 듯 진보와 보수에 대한 편견을 정면으로 깨뜨린다.

진보보수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본 적이 있다. 둘 다 나름 장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의미대로 실현만 된다면공산주의역시 유토피아 급으로 이상적인 개념이다. 문제는 이권이 개입되어 변질 적으로 표현되는 과정이다. 한 쪽이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생각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적용되어야 할 방법이 다를 뿐이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쪽 저 쪽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내 생각과 감정을 나다운 시각과 색깔로 써야 한다. 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진부하고 상투적인 생각과 표현에서 멀어져야 한다.(p42)’

이 문장들을 보고 놀랐다. 오규원의현대 시작법에서 말하는 내용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에는 진보냐 보수냐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작가 의견에 동의한다. 오로지 아름다운 것과 옳은 것만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는 의견에도.

예술적으로 쓰고 싶다면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정해진 도그마보다 자기 자신의 눈과 생각, 마음과 감정을 믿는 게 현명합니다.(p60)’

내가 쓰는 글에 부끄럼 없이 당당하려면 끊임없이 열려 있는 시선을 가지고 가치 판단을 해 봐야 하리라. 이것이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주는 이가 가져야할 책무라고 생각한다.

 

악플에 대해 말한 3장에서는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첫째, 화살로 비유한 내용이다.

악플 때문에 화를 내거나 속상해 하거나 우울해 하는 것은 악플러가 쏜 화살을 주워서 자기 스스로 자기 심장에 꽂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p75)’

살아가면서 내가 악플러의 화살을 맞을 일은 없을 것이다. 만천하에 글을 공개하는 유명 인사도 아니고, 기껏해야 온라인 블로그 서재에 쓰는 개인적인 독후감에 악플이 쏟아질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살아가면서 받게 될 크고 작은 자극에 대한 반응에 응용해도 손색이 없겠다. 저마다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는 다른 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막을 길은 없다. 하지만 다른 이를 100%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무리 가까이서 쏜 화살일지라도 깊숙하게 심장을 가격하는 일은 없다. 문제는 내 곁에 떨어진 화살의 처리 방법이다. 나의 행동에 따라 내게 미칠 영향력이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화살에 대한 비유는 적절하면서도 지혜로운 대처 방법이다.

둘째, 처세술에 대한 생각이다.

저는 타인에 대한 기대 수준을 바닥으로 내리는 것을 현명한 처세술로 여깁니다.(p81)’

철학자 강신주와 법륜 스님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타인에 대해 그분들이 제시하는 대처 방법 때문이다. 인터넷 강연 동영상에 나오는 답변 내용이 위 문장과 연결된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이 없다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선물을 주거나 메시지를 보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돈을 주고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면 기대 수준을 최대한 낮춰야 한다. 주는 행동을 하면 은근히 그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의식적으로라도 기대 수준을 낮추면 의외로 큰 기쁨이 따라온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40대 중반을 넘어 경험으로 깨달은 사실이다.

 

그의 서술 방식이 마음에 든다. 한 가지 문제에 대해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우기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의견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말한다.

말이나 글로 남의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것이죠. 사람은 스스로 바꾸고 싶을 때만 생각을 바꿉니다.(p95)’

4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사람이 가진 고정 관념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다. 여러 사람들을 대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다. 작가의 의견대로 스스로의 의지만이 생각을 바꿀 수 있다. 데미안에서 말하는 알을 깨고 나오는 새처럼. 기존의 세상을 깨뜨려야 달라진 세상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기 위해 계속 글을 쓸 것이라 말한다. 나 역시 생각이 바뀐다는 사실에는 희망을 갖는 쪽이다. 바뀌기 어렵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과 분명히 다른 것이니.

 

자기소개서를 써본 적은 없다. 굳이 자기소개서를 제출해야 했던 직업군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쓴 자기소개서를 볼 일은 간혹 있었다. 내용의 손상 없이 글자 수를 맞춰준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문맥의 수정이었을 뿐, 직접 써본 것은 아니기에 내용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5장에서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방법이 나와 있다.

자기 자신에 관한 진실과 사실을 쓰되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사람이 자기한테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도록 써야 한다.(p112)’

자기소개서는 자기 자신보다는 그것을 읽을 사람이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여길 만한 사실을 중심으로 정해진 분량만큼만 써야 합니다.(p119)’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둘째 아이가 2학기 때 써야 할 자기 소개서로 고민했을 때, 문장은 둘째 문제이고 일단은 써야 할 내용이 중요하니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5장에 진정한 표현의 기술에 대한 노하우가 적혀있다며 좋아라 웃었다. 자기 소개서를 작성하는 방향을 잡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이에게 5장을 보여줘야겠다.

 

내 알라딘 서재는 방문자 수가 적다. 하루 방문자 수가 내 서재의 몇 달치 방문자 수를 훌쩍 넘는 서재를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 부러우면 지는 건데, 꼿꼿하게 나의 길을 가겠다는 처음의 패기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서재에 글을 쓰는 첫 번째 목적이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함이니 뭐 그리 개의치는 않지만, 사실 부러운 점은 방문자 수가 아니라 댓글이다. 독후감에 담은 생각이 옳은 지, 매번 허접하다는 생각을 이겨내고 올리는 시가 잘 써진 건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이다. 글 쓰는 사람은 자신만의 세계가 있어야 하지만 너무 빠져있다 보면 스스로를 좁은 세상에 가두어 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6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읽는 글이라는 베스트셀러가 갖춰야 할 요소가 나와 있다. 문장을 쓰는 기술, 훌륭한 생각과 감정,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도록 공감을 일으키는 글 등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평소 싫어하는 유형의 글이 있다. 첫째, 지 잘난 맛에 온통 어려운 용어로 도배한 글이다. 읽는 이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다. 어설피 알면 설명이 장황해진다.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조차 초등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긴 문장으로 된 글이다. 아나콘다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글은 어디서 숨을 쉬어야 할지 난감하다. 매력이 없다.

텍스트 자체만 읽어도 뜻을 알 수 있도록 써야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이 책 역시 이해가 쉽고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368페이지의 책을 사흘도 안 되어 독파하는 기적이 일어난다. 책만 붙들고 있던 것도 아니고 독서 속도가 상당히 느린 내게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독서모임에 참여하다보면 잘못 탄 가리마처럼 나와는 맞지 않는 책을 읽어야 할 때가 있다. 시험공부를 하듯 꾸역꾸역 읽어낸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감정이입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7장에서는 그런 책을 일단 덮어 두라고 조언한다. 내게 재미있는 책,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책, 내가 감동받는 책을 읽으라고 한다. 그렇다고 마냥 덮어두는 건 아니고 내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 나중에 다시 도전해보라고 한다. 읽어보려다 실패하고 잠시 덮어둔 몇 권의 책이 떠오른다. 억지로 읽을까 말까 엉거주춤 고민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때가 아닌가 보다. 좀 더 내공을 쌓은 후에 다시 도전해보아야겠다.

느끼는 책읽기에 도전하려면 텍스트를 넘어 다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한다. 뭐든 대상을 알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관심이 가는 사람을 알기 위해서 세심하게 관찰을 해야 하듯이, 책이라고 다를 건 없다. 모르면 메모하고 찾아가며 파고들다보면 어느 순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깨달음이 온다.

고미숙의나의 운명사용설명서를 읽을 때 그랬다. 노트에 메모해가면서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사주에 대한 이론을 공부했다. 어려웠다. 어렵게 기술되어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생소한 분야여서였다.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마도 그 책은 나와는 맞는 책이었나 보다.

학창 시절을 지나온 지금, 뭔가를 공부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우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준다. 7장을 읽고 책장을 바라본다. 꽂혀있기는 하지만 절반 이상은 손길이 닿지 않은 책들이다. 깊이 있게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른다. 앞으로 이 책들 중 얼마나 많은 책들과 공감할 수 있을까. 마음이 설렌다.

 

특허 검색을 하면 발명 분야 역시 완전히 독창적인 작품은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많은 발명품들이 기존의 것을 바탕에 두고 더하거나 빼기를 한다. 나쁘게 보지 않는다. 그런 점진적인 시도들이 세상을 조금씩 편하게 만들고 있으니까.

8장은 표절에 대한 글이다. 홍세화는 생각의 좌표에서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 질문을 던지며 생각의 주인이 되어야함을 말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하는 말이나 생각도 온전히 나의 것이라 말하기 어렵다.

음악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표절. 글 역시 표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글을 쓰다보면 누군가의 말을 인용해야 할 때가 있고, 독후감을 쓰고 있는 지금 나 역시 다른 이의 저서와 말을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표절은 인용과 다르다. 저자는 표절과 아닌 것의 차이를 의도의 문제라 해석한다. 표절로 허세를 부리려는 욕망이 없다면 표절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 의도가 전혀 없는 나는 그래서 표절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인터넷 알라딘 서재에서 ‘cyrus’님의 페이퍼 중 리뷰와 독후감의 차이에 대한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서평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댓글을 남겼다. 알라딘 내 서재에 올리는 리뷰는 독후감에 가깝다. 독후감이든 뭐든 기록을 남겨야 책의 내용이 마음에 좀 더 깊숙이 들어온다고 생각한다. 읽은 책 모두를 쓰지는 못하지만 되도록 독후감을 남기려고 노력한다.

9장은 서평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저자가 말하는 서평의 조건은 객관적 정보와 주관적 해석이다. 이 기준에 비추어 봐도 주관적 해석이 주를 이루는 내 감상문은 여전히 독후감이다.

서평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른 사람의 글을 평한다는 것이 내게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취향과 맞지 않는 것이지, 글 자체의 단점은 아니라는 생각에 섣불리 글로 드러내기 어렵다. 다 읽고 나서도 마음에 안 들거나 내게 미친 영향이 없다고 판단되는 책은 아예 독후감을 쓰지 않는다. 맘에 안 든다는 내용을 굳이 시간을 내서 쓰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독후감을 쓴 책에 대한 평점이 항상 높은 이유다. 5점 만점에 3점 정도라 생각되면 아예 글을 쓰지 않으니까. 5점을 매기는 경우는 내 취향일 때,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진 책이었을 때다. 4점을 매기는 경우는 대부분 내 취향과 썩 맞지는 않을 때, 취향과 맞지 않아도 저자의 노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때이다.

9장을 읽고 나니 감상이 주를 이루는 내 독후감에 책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다 보니 이 지경으로 길어져서 누가 읽을까 싶지만. 그래도 책의 내용도 정리하고, 내 생각도 정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업무적으로 일을 요구하는 메신저를 보낼 때가 있다. 그럴 때 창작의 고통을 살짝 느낀다. 목적은 분명하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일을 하게끔 하는 것. 이 때,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두 가지이다. 웃으면서 하게 만들 것, 무엇을 해야 하나 명확하게 알릴 것. 아직까지는 성공적이다. 다른 메시지가 오면 짜증부터 나지만, 내 메시지의 팬이 되었다는 분도 있으니.

10장에서는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과, 생활 글부터 보고서와 회의록에 이르기까지 글을 잘 쓰기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을 소개한다.

일상적으로 쓰는 글은 무엇보다 유머코드를 살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려면 자신부터 행복해야 합니다. 글로 사람을 웃게 만들고 싶으면 글 쓰는 사람 자신이 웃으며 살아야 합니다.(p232)’

번거로운 일을 부탁할 때 소개한 팁을 읽고 살짝 소름이 돋는다. 평소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흡사하다. 저자가 제시한 방법은 두 가지이다. 되도록 짧고 명확하게 쓸 것, 읽는 사람이 웃을 수 있도록 쓸 것. 유명한 사람이 책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나의 방식이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글이든 행동이든 관계든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진리인 것 같다. 그 중심에는 자신이 있어야 하고.

글쓰기는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자기표현은 강제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표현하고 싶어야 잘 표현할 수 있습니다.(p250)’

 

 

<정훈이의 표현의 기술이란>

 

10대에 접했던 순정만화 속에는 상상하는 모든 로망이 담겨있었다. 만화 속 캐릭터들은 분위기 쩔게 폼 잡고 때로는 나쁜 남자 포스로 야성미 팍팍 풍기면서 소녀의 심장을 확 끌어당겼다. 내게 만화는 두 종류였다. 순정만화와 순정만화가 아닌 것.

명랑 만화에 대한 인식을 바꾼 건 최규석의 울기엔 좀 애매한이었다. 찡한 감동을 준 최초의 명랑 만화였다. 글자 하나하나를 샅샅이 읽다보면 풋 웃음이 나왔다. 이로서 순정만화가 아닌 것의 지위는 대폭 상승한다.

 

만화로 감동받은 경험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그의 작품은 최 작가와는 다르다. 두 작가의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겨우 한 작품씩만을 읽고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는 것 자체가 시건방진 시도이기는 하지만, 순정 만화의 세계만을 헤엄치던 인간이 어느 날 명랑 만화 두 편에게서 받은 신선한 충격을 기록하고 싶어서라 해두자. 최 작가의 작품이 사회의 그늘에 서서 그늘에 사는 사람들을 토닥토닥 보듬는 느낌을 준다면, 정 작가의 그것은 그늘에 있는 사람들을 햇살 아래로 끌어와 장난을 걸며 위로하는 느낌을 준다.

 

차분하게 1장을 읽다가 p21입새에서 빵 터졌다. 쉬는 시간처럼 읽는 이들의 경계를 풀어 무장해제 시킨다. 동떨어져 보이는 정치와 사회를 친숙하게 끌어와 펼쳐놓는다. 이모티콘 하나(p69)로도 웃길 수 있는 사람, 단 몇 글자로 보는 사람의 심장에 임팩트를 주는 그는 진정 촌철살인의 달인이다. 어떻게 매 작품마다 웃음을 끌어낼 수 있는지 감탄스럽다. 결정적인 한 방이 있는 정훈이식 유머는 그의 다른 작품까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의 가장 큰 매력은 기발한 유머 코드를 담고 있는 인간적인 시선이다. 그것이 웃음 속에서도 찡함을 이끌어낸다. 11, ‘정훈이의 표현의 기술은 이 모든 매력을 다 담고 있다. 남의 얘기에 이렇게 몰입되는 것이 얼마만인지. 11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 중에 가장 좋았다. 10장까지 중간 중간에 등장했던 그의 만화가 큭큭 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했다면, 11장에 등장한 그의 자서전에는 뭉클하게 하는 감동이 있다. 전체적으로 담겨있는 담담함과 솔직함도, 가슴 찡하게 하다가도 웃음 포인트를 자극하는 점도,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의 구성도 좋다.

 

한 장의 그림으로 사람을 웃게 하든,

한 줄의 글로 사람을 울게 하든,

한마디 말로 감동을 주든,

그냥 무심코 한 행동이든 간에

 

가장 좋은

표현의 기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p360)’

한 편의 시 같은 그의 말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아서 행과 연을 모아서 쓸 수가 없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정훈이는 표현의 고수임에 틀림없다. 내 마음을 이리도 많이 움직여놓았으니. 명랑만화에 감동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 만화에 대한 독후감을 쓰게 될 줄이야. 여러 가지로 새로운 경험이다.

주인공을 가운데 두고 사람들이 오버랩 되며 지나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은 (p364) 컷도,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에피소드와 같은 (p366~367) 컷도 인상적이다. 깔끔한 마무리이다.

 

 

<그렇다면 나의 표현의 기술이란>

 

유시민의 글이 어떤 주제에 대한 정의와 해석을 내려준다면, 정훈이의 만화는 적절한 비유를 들어 요약 정리하여 이해를 돕는다.

몇 층으로 쌓아놓은 샌드위치를 맛본 기분이다. 유 작가의 글이 담백한 식빵이라면, 글 사이사이에 끼워진 정 작가의 만화는 햄, 치즈, 계란, 양배추와 같다. 그 자체가 독립적이면서도 빵의 맛과 묘하게 어우러져 맛깔난 샌드위치를 만든다.

 

책이란 여러 가지를 보여주는 존재이다. 무생물이지만 생물인 듯 존재감을 뿜어낸다. 이 책을 통해 나와 마음의 코드가 맞는 두 명의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 작가가 보는 세상을 보았고, 그 세상을 바라보는 나를 보았다.

이 책은표현의 기술에 대한 이론서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고, 두 작가의 표현의 기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표현의 기술이란? 릴레이를 하듯 바톤을 건네받은 기분이다. 나만의 표현을 위해 달려가는 일만 남은 듯이. 어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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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7-29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소개서가 ‘자소설’이라는 좋지 않은 별명을 갖고 있어요. 소설 다음으로 제일 어려운 장르(?)가 자기소개서일 거예요. ^^;;

방문자 수에 연연하지 마세요. 그냥 한 번 우연히 클릭한 것도 조회 수에 들어갈 거예요. 북플 접속자 수가 많아져서 그런지 서재 방문 수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사실 상대방이 쓴 서평을 읽고, 댓글을 남기는 일이 쉽지 않아요. 제가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의 서평을 읽으면 어떠한 생각이 금방 떠올리지 않아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으면, 그냥 ‘좋아요’ 누르고 지나갑니다. 저는 글을 읽고 나면 떠오른 생각을 솔직하게 밝히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을 꼭 해야 하는 성격인거죠. 문제가 있다면, 글과 전혀 상관없는 딴소리를 하거나 생뚱맞은 아재개그를 할 때도 있어요. 그리고 항상 조심하게 생각하지만, 필터링을 세삼하게 하지 않아서 해선 안 될 말을 드러낼 때가 있어요. 이러면 저와 상대방과의 관계가 서먹해져요. ^^

나비종 2016-07-29 21:16   좋아요 0 | URL
자소설ㅎㅎ 맞아요. 정말 어려운 분야예요. 자신을 한정된 지면을 통해서만 보여줘야 한다는 게. 이것이야말로 표현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댓글이 쉽지는 않죠. 어떤 분이 그러더군요. 댓글도 본문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어야 쓸 수 있는 거라구요.^^
cyrus 님의 글이 주는 무게도 만만치 않아 비슷한 무게의 댓글을 다는 게 고민스럽기는 합니다ㅎㅎ(고민의 결과물이 대부분 새털처럼 가벼워서 뻘쭘하기는 하지만요^^;)
제가 세운 댓글의 원칙은 `읽었으면 뭐라도 단다`이거든요.
딴소리, 아재개그 좋아합니다ㅋㅋ 제가 한 리액션하거든요~
음, 저는 관계가 서먹해졌을 땐 잠시 물러나 사태를 지켜보다 틈새시장을 노립니다만ㅎㅎ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 몸과 우주의 정치경제학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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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G 폰을 아직도 충전한다. 10년 가까이 되었을 성 싶은데, 0시가 넘어 하루가 시작되면 살짝 기대하는 마음으로 전원을 켠다. 메뉴-신나는 애니콜-마이펫과 놀기. 반갑다고 뛰어나오는 개새끼에는 미안하지만 관심이 없다. 나의 관심사는 4, 오늘의 행운이다.

매사를 차근차근히 풀어나가면 결코 흉하지 않는 날입니다.’여러 일이 버겁게 겹쳐왔을 때 여기 나오는 문장을 보고 힘을 얻은 적이 있다. 한 줄 문장이 뭐라고. 그 후로 생각날 때마다 이 메뉴를 찾곤 했는데, 이게 은근히 잘 들어맞는 거다. 엄청난 노하우를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흔한 잠언 집에서 나올 법한 문장들이건만. 스마트폰으로 바꾼 후에도 2G폰을 처분하지 않고 간헐적으로 충전하는 이유다.

어느 날 나는 위클리 일기장 구석에 하루하루 이 문장들을 적어보는 쓸데없는 짓을 시도하게 된다. 한 달이 지나도 결코 같은 문장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한 후로 궁금해지는 거다. 어차피 일정한 문장으로 돌릴 텐데 얼마나 많은 문장이 심어져있을까. 222일에 시작해서 711, 드디어 문장의 사이클을 알아냈으니 대략 4개월 20일 가량, 140여 개쯤 되겠다.

역은 반복이 아니라 리듬이다. 매번 돌아오지만 다르게 돌아온다. (중략) 우주는 탄생 이래 한 번도 동일한 순간을 반복한 적이 없다. 이 차이가 곧 생성의 동력이다. ”(p53)

1년 뒤면 다시 매미소리 징하게 울어대는 여름이 오고, 오늘이 지나면 24시간의 사이클로 내일이 반복되는 듯 흘러갈 것이다. 그러한 삶의 전 과정에서 같은 순간은 단 1초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때론 나를 낮추고 소소한 용기도 얻어가면서 그 문장들과 시간을 보냈다.

 

종교에 매달리거나 운명에 끌려 다니는 인간형은 아니지만, 사주라든지 음양오행의 원리라든지 주역이라든지 이런 분야에 관심이 많다. 수많은 운명을 한정된 숫자로 분류하는 것이, 삶에 비추었을 때 간혹 들어맞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 꽤 흥미를 자극한다.

이런 이유로 몇 년 전 만났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도 내용을 메모해가며 시험공부를 하듯 읽게 된다. 읽고 나서는 적용을 해봐야한다며 생년월일을 아는 부모님, 남편, 자식, 친구, 직장동료 등 주변인부터 생년월일이 인터넷으로 공개되어 있는 드라마 인간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사주를 따져보는 무모한 행동을 저지른다. 생활 무대가 다르기에 멀리서나마 얼굴이나 볼까 싶은 이민호나 정준영과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라는 게 도대체 왜 신이 났을까. 태어난 시각까지는 모르니 네 개의 기둥 중 에 해당하는 부분까지 4분의 3만 알 수 있지만, 명리학에 관련된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나는 정화, 그들은 임수야.’따져보며 혼자 히죽거리며 좋아라했던 기억이 있다.

 

정치라든지 경제라든지 이런 용어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삿대질하며 눈을 부라리는 인간들도 마음에 안 들 뿐더러 돈 때문에 휘둘려야하는 초라하고 지리한 삶이 지겨워서 의식적으로 외면했던 이유도 있다. 아웃 오브 안중이라 독서모임의 토론 도서로 읽힘을 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관련 책을 굳이 찾아 읽어본 적은 없다. ‘몸과 우주의 정치경제학이라는 비호감 용어가 포함된 이 책의 겉표지에서부터 거부감을 느낀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고...이니까. 그녀의 책에 대한 좋은 기억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주니까. 첫 장을 펼치고 마지막 장까지 순두부를 목구멍으로 넘기듯 부드럽게 책장을 넘긴다. 결과는 역시나 성공적이다. 나처럼 정치나 경제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명쾌하다. 초록빛 수박을 반으로 쩍 가르고 선명하게 붉은 수박을 서걱서걱 숟가락으로 퍼먹은 기분이다. 콩나물, 고사리, , 김치 등을 잘 버무려 쓱쓱 비빈 소박한 비빔밥처럼 정치, 경제, 몸과 우주의 콜라보가 조화롭다. 저자가 지닌 방대한 지식을 결코 뽐내지 않는다. 토할 듯이 난해하고 현학적인 언어로 읽는 이를 어지럽히거나 뭐 좀 아는 체하지 않는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시원시원하게 말해주니 속이 후련하다. 날카롭지 않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풍자적인 문장이 좋다. 인위적인 에어컨 바람이 아닌, 서민의 삶이 담긴 김홍도 그림이 그려진 부채로 일으키는 자연스런 바람을 맞은 기분이다. 그래서 좋다. 마음에 들어온 문장이 하도 많아서 무엇을 꺼내놓아야 할지 난감할 만큼.

 

탈정치, 탈경제의 삶을 살고 싶지만 정치와 경제의 영향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잘 안다.

한 정의에 따르면 경제학은 '인생,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관한 궁극적 질문을 다루는 학문이란다. 정치는 본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탐구다.”(p23)

몸과 우주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정치와 경제를 바라보며 해석하는 시선이 신선하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정치와 경제를 끌어와 관계에 대한 자연스러움으로 흘러 절로 내 몸을 들썩이게 한다.

운명의 핵심은 창조와 순환이다. ”(p75)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신체 깊숙이 새겨진 리듬과 강밀도를 변환하라!”(p83)

요컨대 핵심은 관계와 활동이다. 관계가 활동을 낳고, 활동이 곧 관계를 생성시킨다. ”(p109)

그렇다, 문제는 돈이 아니다. 책을 읽고 나니 답을 알 것 같다. 정치건 경제건 과학이건 그 어떤 분야이건 핵심은 삶과 사람이다. 그 삶을 살아가는 나의 몸과 내 몸을 담고 있는 우주이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사람이고, 나만큼 소중한 또 다른 사람이고, 나와 그를 연결하는 관계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럭셔리한 건물이 있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p140~141)

 

다시 읽어보니 독후감에 별 내용이 없다. 328페이지에 담긴 내용을 눈꼽만큼 제시해놓고 그저 좋단다. 하지만 무엇이 좋았을까, 리뷰를 읽는 나도 좋을까 궁금한 마음에 한 번 읽어볼까 생각이 들지도 모르니, 이것으로 리뷰의 역할은 충분할지도.

 

늘 그렇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 나를 아끼게 되고, 또 다른 내가 담긴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사람 냄새가 나는 글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뜨뜻한 아랫목에서 이불 하나 둘러 덮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군고구마를 먹는 기분이다.

길은 가면서 만들어지는 법, 가다 보면 다른 길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중요한 건 계속 가야 한다는 것. ”(p278)

뭐가 됐건 핵심은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것이다. ”(p280)

걸어가고 싶다, 내 발로 나의 길을. 자신의 길을 가는 또 다른 이들의 손을 잡고 싶다. 그들과 의지하며 우주의 시간을 나누고 싶다. 결코 외롭지 않을 이 세상을 향해 한 발 힘껏 대딛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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