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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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흰 색이 적절할까, 검은 색이 적절할까?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검은 옷을 입고 검은 옷을 입은 직장 동료를 마주한다. 아버지를 잃은 눈이 슬픔을 넘어 처연하다. 젖어있는 흰 자위에 검은 눈동자가 탁한 듯 맑아 보인다. 오래 전 우리의 선조들은 죽음의 자리에서 흰 소복을 입었다. 그렇다면 죽음은 흰 색과 가까울까, 검은 색과 가까울까?

 

한강의 소설 <>은 죽음을 흰 색으로 묘사한다. 제목만 보고 흰 색 표지만 보고 깨끗하고 맑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상상하며 책장을 넘겼다가, 먹먹한 마음을 안고 마지막 장을 덮게 되는 책이다.

전체적으로 주인공 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스물세 살의 엄마가 낳았다 두 시간 만에 죽어버린 언니의 죽음이다. 하얀 배내옷이 수의가 되어버린 아기의 죽음을 전해들은 는 배내옷과 수의 사이에 펼쳐질 수 있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조심스레 펼친다.

1에서는 내 시각에서 바라보는 흰 것들에 대한 사유가, 2그녀에서는 그 때 태어났으면 내가 존재하지 않았을 언니의 시각을 상상하며 이끌어간 흰 것들이 있다. 3모든 흰에서는 그녀로 일컬어지던 주인공의 언니가 당신으로 지칭되며 그녀와 나의 이야기가 마무리하듯 서술된다. 소설인 듯 수필인 듯, 산문인 듯 시인 듯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서술 방식은 소설에 흐르고 있는 흰 것의 상징과 어쩐지 닮아있다.

글을 쓸 때에는 반복을 경계한다. 같은 의미라도 그것을 표현할 다른 낱말을 찾아 대체하려 한다. 어떤 단어나 문장을 반복한다는 것은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은 죽지마라 제발’(p21 배내옷, p36 빛이 있는 쪽, p38 그녀, p128 작별)이다. 언니가 죽지 않았기를, 자신과 함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존재가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이 바탕화면처럼 주인공의 마음에 깔려있다.

찬란한 컬러 사진이 등장했을 때 한동안 흑백 사진이 볼품없어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사진이 고급스럽고 우아해 보인다. 흑과 백을 사이에 두고 스펙트럼처럼 펼쳐지는 채도로도 무언가를 표현해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흑백 사진에는 그 미묘한 색감의 차이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

소설 중간 중간에 삽입되어있는 차미혜 미술가의 흑백 사진이 글과 잘 어우러진다. 눈인지 별인지 얼핏 보면 구별이 되지 않는(p102~103)사진이 가장 좋다. 한낮에 펑펑 내리는 눈도 벅차지만, 한밤중에 펑펑 내리는 눈은 별이 쏟아지는 것 같아서 더욱 포근하다. 별의 본질은 스스로 타는 천체이니 뜨거운 별이 쏟아지는 느낌이라서 일까.

 

한글 문서를 작성하며 글자색을 바꾸려 할 때 간혹 묘한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하양을 클릭하면 ‘RGB 255, 255, 255’, 검정은 ‘RGB 0, 0, 0’으로 뜬다. 흔히 흰 색은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인식되는 데, RGB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숫자라니.

초등학교 때 물감을 사용하며 여러 색이 겹쳐질수록 어두워지는 장면만 보다가, 빛의 3원색을 배우고 나서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겹쳐질수록 점점 환해지다 모든 빛이 합쳐지면 흰 빛이 된다는 사실이 모순처럼 느껴지면서도 놀라웠다.

흰 색의 물체는 부딪히는 모든 종류의 빛을 반사한다. 그 빛들이 합쳐져서 우리 눈에는 흰 색으로 보인다. 어떤 종류의 빛도 허용하지 않으니 흰 색은 그런 면에서 차갑다. 반면, 검은 색은 모든 빛을 흡수하여 우리 눈에 도달하는 빛이 없어 검게 보인다. 그런 면에서 검은 색은 따뜻하다. 그런데, 어쩐지 검은 색은 차갑게 느껴진다. ‘차가운 어둠이라는 말이 자연스럽다. 빛이 있는 낮이 따뜻해서 그런 걸까, 늘 빛과 공존하는 색이라서 일까. 흰 색은 차가우면서 따뜻하다고 표현하는 게 적당해 보인다.

 

작가의 말을 연상케 하는 서두에서 강보, 배내옷, 소금, , 얼음, , , 파도, 백목련, 흰 새, 하얗게 웃다, 백지, 흰 개, 백발, 수의’(p9~10)라는 단어들을 나열한 작가는 독백처럼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단어들을 들여다보는 일엔?’(p10)이라 내뱉는다. 잠시 작가의 마음이 되어본다. 그녀는 흰 색 죽음을 통한 깊은 사유의 치열함 끝에 삶을 매달고 싶던 것은 아니었을까.

빛의 본질에 대해 알게 된 후로 흰 종이에 검은 펜으로 글씨를 쓸 때 이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모든 것을 흡수하는 검은 펜으로 쓰는 글이 모든 것을 반사하는 흰 종이 위에 따뜻함을 꾹꾹 불어넣고 있는 장면을. 검은 펜으로 쓰는 글은 어쩐지 따뜻한 마음의 숨결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물끄러미 표지를 바라본다. 헝겊처럼 보였던 표지의 배경이 배내옷이며 수의였음을 깨닫는다. 검은 글씨로 쓰인 이란 제목을 바라본다. 삶과 죽음이 동시에 담긴 소설의 내용을 생각한다. 작가와 나 사이에 경계처럼 놓인 책을 바라본다. 갑자기 흘러나오는 찡함이 내게서 온 건지 책에서 온 건지. 모든 경계에는 찡함이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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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13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나미 검정색 펜을 흰 종이에 쓰면 똥이 생겨서 오래전부터 잘 안 쓰게 됐어요. ^^;;

나비종 2016-11-13 21:01   좋아요 0 | URL
한동안 나의 친구(mon-ami)였는데 말이죠ㅎㅎ
필기감은 ㅈㅌㅅㅌㄹ이 정말 좋더군요^^;
 
그럴 때 있으시죠? - 김제동과 나, 우리들의 이야기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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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빠졌다. 이 나이에, 스무 살 가까이 어린 사람에게 반하다니! 나의 눈과 귀와 집게손가락을 사로잡은 <, , >.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는지 모른다. 수십 번의 조회 수는 한 사람의 소행임을 살짝 고백한다. 방탄에 빠진 딸내미의 마음을 거의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뮤직 차트 순위 좀 올려보겠다고 스트리밍을 해놓은 채 방에 폰을 놓고 등교하고, 멜론 자유이용권을 넘어 앨범 구입으로 충성도를 증명하던 마음을.

평소 음악을 좋아해서 <판타스틱 듀오> 동영상을 자주 찾아 노래를 듣는다. 리듬깡패와 태양이 부른 그 노래, 조회 수가 우월하게 많아서 호기심에 그냥 한 번 본 것뿐인데. 그 날 이후 며칠 째 노래 한 곡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었다. 출근길에는 음악으로 듣고, 퇴근 후 집에 왔을 때나, 밤에 자기 전에는 동영상을 반복 재생한다. 중간 중간 생각했다. 나만 그런 건가, ~

그즈음 접하게 된 책이다. 마음속에 맴돌던 말이 제목으로 떠억 나타나니, 그럴 때가 있던 나는, 약간은 절박한 마음으로 후루룩 책장을 넘긴다. 남들도 그럴 때가 있는 걸까.

 

책의 내용은 크게 3부로 구성된다. ‘그럴 때 있으시죠? 우리가 보이기는 합니까? 우리 이렇게 살 수 있는데라는 제목 안에 작가와 그의 주변, 사회적인 사건에 얽힌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350쪽의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흡인력 있는 입담 덕분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장 넘어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중간 중간 맞장구도 치고 때로는 코끝 찡한 마음을 안고 가끔은 나를 돌아보기도 하면서 그의 이야기 속에 나의 이야기를 자연스레 비벼 넣었다.

글을 읽었는데 몇 시간 동안 따뜻한 대화를 나눈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구어체로 이루어진 문장들이 토크콘서트의 분위기도 이와 비슷하리라 짐작케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문장을 읽었다는 표현보다 이야기를 들었다 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바라고 언제나 웃는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원한다. ‘제 인생 목표는 모두가 함께 웃는 거예요.(p6)’ 라는 그의 목표가 특별해 보이는 것은 중간에 섞인 단어 때문이다. ‘모두가 함께는 이 책 안에서 배경음악처럼 흐르는 마음이다. 나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나만 웃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하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라니. 부록으로 실린 <성주 사드 연설 전문>에는 모두와 함께 하려는 그의 노력이 담겨있었고, 그 연설은 행동이 답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어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적인 마인드가 좋다. 책표지 안쪽에 있는 친필 사인 복사본에 적힌 글귀를 보고 들던 생각이다. ‘아직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은 달’(p7)이란다. 그가 한 말이니, 그의 말이라면 왠지 믿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 때 가장 좋아하던 말은 자유였다. 구속받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받침도 없는 두 글자에서부터 풍겨 나오는 자유로운 분위기부터 좋아서였다. 그의 시각은 독특하고 깊이가 있다. ‘자기 이유로 사는 것, 그게 바로 자유겠지요.’(p18) 이 문장에서 한참 마음이 머문다. 나의 이유는 무엇일까. 내 삶에 대하여, 내 삶의 이유에 대하여 좀 더 진지하고 깊게 생각해야겠다.

 

그 노래를 부를 때의 태양은 강렬한 인상을 남길 정도로 섹시했다. 남성적인 매력이 훅 다가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내 마음 한 가운데로 들어온 것은 세 가지 면이었다. 눈빛과 목소리와 발걸음. 함께 하는 파트너에 맞춰 배려하며 노래하려는 마음이 눈빛에서 드러나는 순간, 마음이 두근거렸다. 가성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목소리도 좋았고,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발걸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발의 움직임이었다. 무대 바닥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 편의 이야기와 같던 노래. 감정이 고조되면서 한 걸음씩 상대와의 거리를 좁혀가던 발걸음은 몇 번을 보아도 숨을 멈추고 바라보게 했다. 그 장면이 섹시하면서도 아팠다.

이제는 모든 감정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감정이 올라온 거 아닐까요? 슬픈 건 나쁜 감정이 아니고 이유가 있으니까 슬픈 거겠죠. 그러니 그 슬픈 감정을 존중해줘야죠.’(p112)

이 문장을 읽는 순간, 태양의 발걸음이 다시 떠올랐다. 발걸음이 불러일으켰던 나의 감정을 생각했다.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슬픔이, 외면하고 늘 덮어버리기만 했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한 곡의 노래와 한 권의 책에 담겨있는 몇 개의 문장들이 봉인을 풀어버린 것 같았다. 이제 조금은 덜 아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책에서 가장 좋았던 말은 당신은 늘 옳다!’(p115)였다. 느낌표가 가슴에 찍히는 것처럼 보는 순간 뭉클했다. ‘누구도 당신만큼 당신 인생을 고민하지 않았고, 누구도 당신만큼 당신을 잘 알지 못해요. 그러니 당신은 늘 옳다!”이 한마디, 믿으셔도 좋아요.’(p115) 어쩌면 이제껏 누군가로부터 가장 듣고 싶던 말은 아니었을까.

 

책표지를 감싸고 있는 그의 모습을 다시 바라본다. 깊은 데서 우러나온,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에 확 끌린다. ! 섹시하다는 생각까지! 조만간 투덜대는 딸내미를 소년들의 앨범으로 유혹한 뒤 콘서트 현장에 같이 앉아있을 지도 모를 일이겠다.

난롯가에서 딱 한 개 남은 군고구마를 나눠먹은 기분이랄까. 둘 다 배고프지만, 둘 다 든든하고, 둘 다 따뜻해져있는. 두 손 가득 뜨끈한 고구마를 감싸 안고 절반 딱 갈라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 호호 불어가며 달짝지근하고 노오란 속살을 한 입 가득 베어 문 느낌이다. 읽는 내내 찡한 코끝을 지나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를 알지만 그는 나를 모르는 상대에게서 이런 친근감이 느껴지다니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의 힘이 놀라웠다.

 

오매불망 동영상의 댓글을 훑어본 순간 웃음이 나왔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내 나이또래의 글로 추정되는 수많은 댓글은 사람의 느낌이란 게 다르면서도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나만 본 줄 알았던 그 눈빛을 이 사람도 보았고, 나만 느낀 줄 알았던 영화 같은 분위기를 저 사람도 느꼈던 거다. 사람에게 반하는데 나이는 걸림돌이 되지 않음을. , 내가 태양과 어찌 해보자는 것도 아니고, 평생 만져(^^;)보기는커녕 만나보지도 못할 남자 인간 한 명 잠시 마음에 둔다고 남편에 대해 역모를 꾀하는 것도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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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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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었습니다. 아침을 먹었습니다. 점심이 되었습니다. 점심을 먹었습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저녁을 먹었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잠을 잤습니다.’8세 때 썼던 그림일기의 문구이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일상. 생각 없이 살아도, 생각을 하며 살아도 시간은 흘러간다.

<시지프 신화>를 읽어본 적은 없다. 돌을 굴리며 반복되는 형벌을 받는다는 신화. 도서 보를 찾아본다. 돌만 굴리는 이야기는 아닌가보다. 중간에 다른 일을 하지 않고서야 내용이 이리 길 수 없다. 돌덩이와 관련된 철학적 사유가 궁금해진다.

 

책을 볼 때마다 겉표지를 유심히 살핀다. 한 권의 책이 시작되는 지점은 1페이지부터가 아니라 표지부터라는 생각 때문이다.‘ : ’. 콜론. 그 다음에 무슨 말인가 쓰고 싶어지게 하는 기호. 표지에서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이다. 동양화의 여백이 연상된다. 오직 글씨로만 이루어진 표지, 무채색의 구성. 조선 백자를 본 듯 솔직한 소박함이 책의 내용과 잘 어울린다.

장맛비처럼 쏟아지는 책들 중에 이 책을 선택했고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산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선택의 연속이다.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모든 선택에는 '만약'이 남는다. (중략) 그 모든 '만약'에 대한 답은 하나뿐이다. '나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라는 답. (p91)’

좋은 사람과는 나와 공통점을 찾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과는 차이점을 찾게 된다. ? 악을 좋아하네? 사진 찍는 것도,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도. 작가와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이 작가 마음에 든다. 사람의 일상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개인의 신변잡기적인 기록에 뭉클할 줄이야! 순간순간 삶에 뛰어드는 열정적인 모습은 수작업으로 만든 퀼트 작품을 연상시킨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삶의 걸음 사이에 살랑거리는 바람이 자유롭다.

 

우표를 모으고, 껌 종이를 모으고, 빵 봉지를 묶는 금속 끈, 봉지를 묶는 하얀 플라스틱, 냥갑과 편지지를 모았다. 지금은 어디로 사라졌나 기억도 안 나지만 꽤 진지했고 신상을 득템 했을 때 느꼈던 뿌듯한 기억이 있다. 왜 그랬을까? 대가가 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유는 하나다. .. 작가의 취미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동료의식을 느낀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그냥이라는 말은 순수를 연상케 한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타당해보일 때가 있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상상을 한다. 베토벤처럼 귀가 들리지 않는다면, 장금이처럼 갑자기 미각을 잃는다면, 웹소설 주인공처럼 밀가루 알러지를 갖게 된 제빵사라면,...... 상상이 부챗살처럼 펼쳐질수록 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참 다행인 삶에 감사한다.

눈을 감고 걸을 때가 있다. 몇 걸음 못 가서 눈이 떠진다. 눈부시다. 이 아름다운 빛을 볼 수 없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다. 머리 뒤 커다란 방에서 쿵쿵 울리는 음들이 심장을 두드린다. 나이 들면서 감각 기관은 무뎌지지만 시각과 청각은 제일 더디 쇠퇴했으면 한다.

 

카피라이터가 쓴 글 이어서일까.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다. 15초로 사람을 움직여야 하는 광고는 단 몇 줄로 감성의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시와 흡사하다. 광고의 특성이 배어나오는 심플함과 삶에 대한 긍정적인 기록에 내 삶을 돌아보고 자꾸 움직이고 싶어진다.

도자기 만들기에 도전하고, 벽 사진을 찍는 작가를 상상해본다. 일상적인 수필인데 가슴이 뛴다. 연필 초상화를 배우고 싶던 20대가, 오카리나를 불고 싶던 30대가, 작사가가 되고 싶던 40대 초반이 생각난다. 좋은 가사는 와 같다는 생각에 요즘 시 쓰기에 도전 이다. 산문과는 또 다른 작업이다. 한 편의 시와 한 편의 산문이 주는 무게감은 같다. 의 가치만큼 살점을 떼어준다 하고 무게를 재어보니, 사람이 온전히 저울에 올라가서야 수평을 이뤘다는 이야기처럼. 시는 단 한 줄의 행만으로도 마음을 울려야 한다. 서투르고 투박할 지라도 계속 도전하고 싶다.

 

열 번을 실패했다는 것만큼 가슴 뛰는 열정이 있을까.’자신감을 잃은 아이에게 이런 기를 해준 적이 있다. ‘여기에서 방점은 실..가 아니라 열..이야. 열 번을 실패했다는 것은 그만큼 도전해보았다는 얘기니까. ’아이는 뭔가를 얻은 표정으로 돌아갔다. 조만간 다시 시도를 할 것이고, 아마도 또 다시 실패를 경험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과 삶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리라. 경험과 시간은 손을 잡는 이에게 뭔가를 안겨주니까.

 

작은 감성의 떨림까지도 줄에 얹어 울리는 기타 소리와 같은 삶. 그런 삶을 글로 쓰고 싶다. 그래서 쓴다. 되도 않는 리뷰나 시일지라도, 지가 쓴 글에 지가 감동받는 어이없는 상황을 연출할지라도 개의치 않기로 한다. 고마운 책이다. 언젠가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며 다독여주는 친구를 만나고 온 기분이다. 김민철의 글이 주는 힘이다. 시지프처럼 인내의 시간을 통과하면, 마음에 새겨진 기록들이 눈처럼 쌓일 것이다. 마음이 화해진다. 어쩌면 나도, 쩌면 좋은 토양이 만들어질 어느 날엔가는, 사람들에게 따스함을 건네주는 글을 쓰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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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리를 먹는 오후
김봄 지음 / 민음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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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편하게 수업을 마친다. 매시간 실실 웃으며 주변 친구들과 속닥거리는 녀석의 책상 위에 교과서가 없는 것은 이미 당연한 일이다. 웃는 모습만 이쁜 녀석! 점심시간에 팔씨름을 하다가 팔이 잘못되어서 병원에 갔단다. 한 이틀 학교에 못나오더니 한동안 기브스를 하고 다닌다. 삼일천하가 된 수업시간, 녀석과의 실랑이가 다시 시작된다. ‘좀 더 푹 쉬어도 될 텐데, !’다친 아이에게 잠시 미안한 생각까지 든다.

 

이 책에 실린 8편의 단편에는 청소년들이나 아이가 등장한다. 이들은 소위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생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나의 수업을 방해하는 그 녀석보다 더 선생님들을 힘들게 하거나, 부모님이나 세상을 향해 뾰족한 날을 세우고 있거나 어른들에 의해 상처를 입고 있다. 학교조차 다니지 않는 가출 청소년, 오토바이 폭주족, 미혼모, 성폭행으로 죽은 아이, 자신의 방에서 칩거하는 아이, 섹스가 아무렇지 않고 타인의 죽음에도 무감각해진 아이들이다.

 

죽음, , , 섹스, 담배, , 냄새, 쓰레기. 책 속에서 줄줄 꿰어져 곰팡이처럼 떠다니는 단어들에 거부감이 일어난다. 나무 위에 뒤엉켜 크리스마스 시즌을 매번 장식하는 전등이 생각난다. 전등에 꽁꽁 묶인 채 생기를 잃어가는 나무가 아이들과 겹쳐진다. 이런 단어들에 둘러싸여 눈물 대신 마음의 피를 흘리며 축축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소설이라는 표지에 둘러싸인 다큐적인 삶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작가의 말>에서내게 온 작은 단어들을 곱씹으며 한 발 한 발 지치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p262)라고 한 말처럼, 김 봄은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꼭꼭 씹어 드러낸다.

 

세상과 부모와 어른들은 절대 온도처럼 차갑다. ‘유일하게 자신의 붉은 속살을 제 몸에 붙여주는 녀석이었으니까요.’(p38, 무정) 라 하며 가족이 아닌 자신을 핥는 개에게서 온기를 찾고, ‘그러니까 차가운 것도 정도가 있는 거지. 아무리 추워도 너도 딱 거기까지만 차가워질 거야.’(p191, 절대 온도)라며 273에서도 위안을 찾으려는 아이들의 모습은 한겨울 성냥팔이 소녀를 보는 듯 애처롭다.

 

그들에게 세상은 더럽고 잔인하다. ‘세상이 다 화장실 같다면서 말이다. 수완의 말이 맞았다. 더럽고 냄새나는 것들만 가득하다.’(p97~98, 내 이름은 나나) 화장실만을 찾아서 나나와 섹스를 하는 수완의 행위는 세상에 대한 배설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인다. ‘삼촌은 씨방만 남은 사과를 빼앗아 들고 어금니로 으깨 먹었어요. 그 순간 삼촌이 짐승 같았어요. (중략) 왠지 모르게 삼촌의 모습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뜯어먹는 것처럼 보였어요.’(p119, 아오리를 먹는 오후) 성폭행으로 죽기 전에 엄마의 애인인 삼촌이 사과를 먹는 장면을 묘사한 문장이다. 소녀의 모습이 연두빛 아오리와 겹쳐진다.

 

엄마의 눈에서 파리지옥을 연상하는 아이에게 부모는 천적과 같은 존재이다.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조차 외로움을 느끼는 아이는 자신의 방에서조차 설 자리를 찾지 못한다. ‘내가 아닌 게 없는 방이었지만 나인 것도 없는 방이었다.’(p161, 문틈)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면서도 가장 먼 남인 것 같다.’(p230, ! 해피) 엄마를 남으로 느끼는 딸에게 엄마의 의미는 무엇일까. ‘더 이상 어리광을 부릴 수 없을 때, 부모는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p267)라는 말이 아프다.

 

이 책의 인물들에게 죽음은 허무하리만큼 쉽고 대수롭지 않다. ‘납작한 종이 인형이 죽은 것처럼 여자의 테두리는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죽음 자체도 그렇게 간단해보였다.’(p41, 림보) 죽음의 현장을 일상의 공기처럼 들이마시는 형사에게 자신의 집에 있는 지하실은 유일하게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장소이다. 제목이 왜 림보일까 한참을 생각하다 나름대로 추측해본다. 하늘을 바라보며 죽은 여자의 모습, 낮게 수그리고 들어가야 하는 지하실에서 림보를 할 때 취해야 할 자세가 연상된다.

그냥 등지고 나가면 되는 거야. 뭐가 어려워.’(p198) 팸을 결성했다가 의도치 않게 죽은 가출 청소년을 버려두고 몰래 도망가려는 아이들은 그들을 등진 세상과 섬뜩할 만큼 닮아있다.

 

작품을 해설을 하는 문학 평론가 강유정의 관점은 이 책의 핵심을 제대로 관통한다. ‘문제는 이 아이들의 속도가 파괴하는 것이 그들이 조종하는 세계가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다.’(p271) ‘아이들이 아무리 나쁘다고 해도 세상보다 더 나쁘지는 않다.’(p283)

어른들이 읽어야하는 책이다. ‘어른들한테 꼭 배워야만 하는 것은 어른들처럼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시의 숲에서 길을 찾다, 서정홍, p91)이라던 봄날 샘의 말씀도 생각난다. 아이들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무난하게 모범생의 길을 걸어온 교사의 시야를 넓혀준다. 부모들이 읽으면 자신의 아이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리라 생각된다.

 

보는 순간, ! 이쁘다! 했던 책 표지를 다시 바라본다. 얼마 전, 사이버 폭력에 대해 연수했던 강사가 한 질문이 생각난다. ‘수박은 초록색일까요, 빨간색일까요?’ ‘바나나는 노란색일까요, 흰색일까요?’표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책 안에 담겨있는 아이들의 상처를 생각한다.

이 책에서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문장도 생각난다. ‘스키드 마크 대신 수완의 피가 길게 수완의 그림자를 만들었다.’(p100, 내 이름은 나나) 자신의 존재를 피로 남길 수밖에 없던 오토바이 폭주족의 리더. 아이가 세상의 차가운 바닥에 스크래치를 남기며 죽는 순간은 내 마음 속을 할퀴고 지나가며 스키드 마크를 남겼다.

학교에서의 그 녀석이 떠오른다. 이제껏 녀석의 겉모습만 바라보고 판단해왔던 건 아닐까. 녀석의 웃음 뒤에 또 다른 상처가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아이의 마음속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가고 싶은 욕심이 드는 순간, 갑자기 녀석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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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숲에서 길을 찾다 - 농부 시인 봄날샘과 산골 아이들 단비 청소년 문학 42.195 12
서정홍 엮음, 산골 아이들 시감상 / 단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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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었고?” 친정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들려오는 첫마디이다. <밥 문나>를 읽은 순간, 엄마를 떠올렸다. 지금보다 좀 더 젊었을 때에는 이 질문이 얼마나 식상해보였던지. 배고프면 알아서 먹겠지 아이도 아닌데 매번 물으신다며 참 싱거우시다 했다. 그런데, 갈수록 밥이 소중해진다. 밥이 감사하고 밥을 물어보는 순간이 행복해진다. 소박하고 따뜻한 여러 편의 시 중에서 <밥 문나>가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다.

 

이 책에는 봄날 샘으로 불리는 농부 시인이 지은 67편의 시와 그 시를 읽고 느낀 11명 산골 아이들의 짧은 글이 담겨있다. 식구, 동무들, 목숨, 생태, 더불어 사는 삶, 농부, 농사를 그려낸 정겨운 시와 이에 못지않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솔직 담백한 감상평이 조화롭다. 각각의 콜라보는 때론 유쾌하게 때론 먹먹한 느낌으로 가슴 한 복판을 조용히 두드린다. 초등학생은 초등학생대로, 19세는 그 나이에 걸 맞는 시각으로 자신과 사람들과 세상을 돌아보고 문장으로 표현한다.

 

<겨울 문턱에서>를 읽은 고2 민호는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와드리지 못한 자신을 반성한다. ‘아버지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p23) 라 말하는 마음이 울컥하고 대견스럽다. 민호를 바라보며 고2 때의 나를 떠올린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다니시느라 고생하셨던 그때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후회는 늘 시간을 지난 후에 따라오는가. 좀 더 도와드렸더라면 좋았을걸. 불현듯 아쉬움이 올라온다.

농사를 짓고 생명과 더불어 사는 시는 자연스레 생명과 밥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를 생각한다. 작은 생명에게조차 저절로 머리를 숙이는 <아내는 언제나 한 수 위>.

넉넉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차이>는 김혜진의 소설 어비에 실린 단편 <치킨 런>를 연상시킨다. 죽기보다 살기가 두려운 사람들. 그들의 치열한 삶의 모습이 아리다.

<손금을 보면서>에서는 여러 갈래로 나 있는 손금을 사람이 사는 길도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p122)라 표현한 시인의 발상이 놀랍다. 손금을 고작 잎맥으로나 비유하며 아이들에게 말하는 나를 본다. 같은 손바닥을 보면서도 이렇게나 차이가 나다니! 표현의 차이가 생각의 차이임을 절감한다.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를 묻어주면서 좋은 일을 한 거 같았는데 오히려 죄책감이 들었다.’(p79)는 민호, ‘친구들에게 따뜻함을 주는 친구를 인간 난로’(p81)라 표현한 경락이, ‘잘난 것들보다 못난 것들에게 눈길을 주는 시인의 체온은 몇 도쯤 되는 걸까’(p89) 궁금해 하는 심정이, ‘어른들한테 꼭 배워야만 하는 것은 어른들처럼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p91)이라 하신 봄날 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시가 나를 부끄럽게 하고 불편하게 한다.’(p173)고 말하는 기범이, ‘시가 길이 되고 위로가 된다.’(p123)는 수연이는 시인 못지않게 시를 쓰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다.

 

<나와 함께 모든 것이>에 나온 나와 살던 모든 것이 / 나와 함께 늙어가나니’(p130)라는 문장은 깊은 중년으로 향해가는 나에게 토닥토닥 위로의 말이 되었다. 햇볕이 잘 드는 시골길을 천천히 걷는 듯했다. 함께 하는 내내 느린 화면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갓 지은 밥을 입 안에 넣고 꼭꼭 씹어 먹는 기분이었다. 세상을 바라본 시인은 그 마음을 시로 표현하고, 그 시를 바라본 아이들은 그 마음을 감상평으로 표현하고, 그 글들을 바라본 나는 그 마음을 또 다른 글로 표현하니, 도미노처럼 마음이 전달되면서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마자 엄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그냥 했어요.” 싱겁게 웃으며 말을 꺼내니, “밥은 먹었고?” 오래도록 듣고 싶은 소중하고 찡한 말이 귓가로 느리게 흘러들어왔다.

 

 

*오타

p150, <이름 짓기>12행에서

아침부터 아침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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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21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수록 혼자 사려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겠지만, 정말 가족 없는 1인 시대가 된다면 ‘밥 묵고 다니냐?’라는 사소한 말 한 마디 나누면서 전화 통화하는 모습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암울한 상상을 해봅니다.

나비종 2016-10-22 06:10   좋아요 0 | URL
이어폰을 꽂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볼 때, 그들만의 세상을 생각합니다. 세상 속에 있지만 혼자 있는 것 같은. 세상의 소리보다 스스로 선택한 소리를 듣고 싶은 거겠죠.
저 역시 자주 그러고 다니지만^^; 갈수록 대화없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 삭막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