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1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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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끈한 바디감을 자랑하는 옷장이 한쪽 벽면을 채운다. 무수히 많은 서랍에는 깔끔한 라벨도 부착되어 있다. 갑자기 순간 이동하여 이번엔 거실이다. 왼쪽에 타조 한 마리가 우뚝 서 있다. 기린, 코끼리 몇 마리쯤은 훗! 애완동물로 보유한 동물원 주인 모드를 장착한 인간이 1m 거리에서 태연하게 타조를 바라본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시체를 봐도 눈 하나 꿈쩍 않는 담대 인간. 누구냐, !

당신의 짐작이 맞다. 나의 꿈 이야기다. 이야기라 부르기에는 한없이 빈약하다. 몇 장의 스냅 사진이거나 전송 불량으로 버벅대는 TV 방송사고 영상에 가깝다. 시간은 느리게 흐르다가도 갑자기 정지 버튼이 눌린다. 밥 잘 먹다 눈 한 번 깜빡하면 우아한 조류로 빙의하여 하늘을 쏘다니다 응가의 바다에서 허우적댄다. 기승전결 따위는 눈 씻고 찾아보기 전에 그냥 없다. 혼자서 다 해 먹는 모노드라마의 주인공. 맥락 없음이 이토록 당당한 갑툭튀. 내 안에서 꺼낸 세상인데 나도 모른다.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 존재. 내 안에 있는 꿈속의 너, 도대체 누구냐?

두 팔을 활짝 벌린 인간이 서 있는데미안의 겉표지. 흐릿한 경계를 보니 꿈이 연상된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이게 나야! 외치는 듯 당당한 뒷모습이다. 어느 순간 어깻죽지 양쪽에서 날개가 뻗어 나와 순식간에 날아버릴 것 같기도 하다. 그림일까, 사진일까. 누구의 작품일까. 검색해보니 작가는 Kamil Vojnar, 체코 슬로바키아 모라비아 출신으로 사진을 이용하여 회화적 작품을 만드는 화가라고 한다. 사진과 그림의 합체인 셈이다. 그의 작품들을 훑어보니 대체로 몽환적이다. 안개 낀 숲 너머의 형체들을 보는 듯하다. 책을 읽고 나서 다시 표지를 보니 책에 담긴 내용과 닮은 속성이 보인다.

 

201812, 데미안을 처음으로 만났다. 두 번째 만나는데미안은 어떤 느낌일까. 2년 치의 경험과 사고를 품은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때 쓴 리뷰는 일부러 다시 읽지 않았다. 똑같은 거리를 걸어도 어제와 오늘의 내가 느끼는 마음은 분명 다를 테니. 글자로 이루어진 거리의 풍경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호기심이 점점 강해졌다.

매력적인 1분 듣기인양 3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 작가의 관점에 확 끌려든다. 인간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언급하는데도 억지스럽지 않다. 공감이 가는 문장이 많았다. 40대 초반의 헤세가 지녔던 생각에 반해버렸다. 주인공도 등장하지 않은 데다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도 않았건만. 차례에도 표시되어있지 않는 3페이지를 건너며 벌써 좋았다.

이 책에는 상반된 매력을 지닌 두 세계가 겹겹이 담겨있다. 대륙붕에서 심해저 버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커플이 준비되어 있다. 어디까지 다녀왔니? 발만 담그고 돌아온 대로, 잠수복 장착하고 해구까지 갔다 온 대로 독자들이 체험한 풍경은 다양하다.

두 개의 세계라 하니 마리아가 포함된 노래가 떠오른다. 파이프오르간 BGM이 우아한 공기 위로 성스럽게 울려 퍼지는 <아베마리아>. 반면 자 지금 시작해 조금씩 뜨겁게 우~~ 두려워하지마 펼쳐진 눈앞에 저 태양이 길을 비춰 우~~ 절대 멈추지마라 외치는 <마리아>도 있다. ‘태양이란 단어가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크 모드 상남자 포스를 뿜어대며 후련함을 선사한 노래이다. 아베마리아의 두 가지 버전은 상반된 색채를 띤 채 모두 매력적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두 개의 세계처럼.

 

레벨 1. 처음에는 빛과 그림자로 비유할 수 있는 세계를 가볍게 묘사한다. 말 잘 듣는 모범생과 말썽만 피우는 소위 문제아가 살아가는 세계이다. 양지에 있던 주인공 싱클레어의 방황은 음지의 세계에 발을 담그면서 시작된다. 두 세계는 모두 겉으로 드러나 있어 각각의 차이점이 구체적으로 와 닿는다.

레벨 2.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시작으로 주인공의 양대 산맥, 데미안이 등장한다. 책 제목이기도 한 데미안은 주인공의 여정에서 도화선이 되어주는 친구 이름이다. 이는 악마를 의미하는 단어와 관련성을 보인다. 작가는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대화를 통해 선과 악이라는 주제에 접근한다. 종교적 색채가 짙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 이야기, 베아트리체, 야곱의 싸움 등을 언급하면서 인간의 본질에 한 걸음 더 들어간다. 데미안의 주장은 혁신적이다. 신만큼 악마의 존재도 인지해야 함을 말한다.

종종 인간의 본성은 성악설에 가깝다고 생각하곤 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어쩌면 인간은 선과 악을 모두 지닌 채로 태어나는 게 아닐까. 그러다 개개의 기질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는 것이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타고난 성과 반대쪽 성호르몬이 많아진다는 말처럼 두 가지를 모두 지니고 있다가 말이다. 그렇다면 뼛속부터 천사일 것 같은 분과 반대 성향의 인간과 착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쁜 놈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레벨 3. 껍질을 까서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정신세계를 만나게 된다.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이다. 의식 세계에만 머물던 주인공 싱클레어는 무의식 세계의 존재를 깨닫는다. 몽환적인 분위기로 꿈속을 넘나들면서 현실과의 경계가 무너진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등장한다. 하긴 데미안의 등장부터가 살짝 설화적인 냄새가 나기는 했다. 이 순간만을 기다린 작가. 지금껏 드러났던 내용을 모아 모아서 심리학적 세상으로 끌고 들어간다. 제목만 보면 데미안은 분명 싱클레어와 쌍벽을 이루는 주인공 투탑이다. 하지만 데미안은 대나무의 마디처럼 싱클레어의 삶에 중간중간 경계로 작용할 뿐이다. 나머지는 싱클레어의 몫이다. 주인공은 여러 인물과 만나면서 허들을 넘듯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이 책을 연극화한다고 가정했을 때 대화 장면만을 따로 놓고 보면 오르간 연주자인 피스토리우스의 대사도 만만치 않다. 대사량이 엄청 많았던 오르간 연주자를 통해 삶의 전체성을 의미하는 아프락사스를 향하는 본격적인 포문이 열린다.

밝은 세계, 오롯이 천사만 살 것 같은 세계에는 우리가 의식하는 ’, 에고(ego)가 있다. 이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어두운 세계가 있다. 그 안에 있는 무의식적인 를 포괄하여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 버전이 진짜 나, 자기(The Self)이다. 두 세계를 상징하는 경험의 허들을 넘으면서 방황하던 주인공은 결국 두 세계가 통합된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찾는다. 진정한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레벨 3까지 조금이라도 들어갔다 온 걸까. 자신은 없지만, 이 책의 별칭을 하나 지어본다. 일명 양파 북’? 깐 만큼 보이니까.

 

꿈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꿈에서 깨어난 직후에는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검색부터 했다. 신묘한 분위기의 도사님 말투부터 취미 정도의 가벼운 말투까지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검색어 옷장에 이토록 수많은 해석이 존재할 줄이야. 옷장이 열리는 꿈, 닫히는 꿈, 옮기는 꿈, 사라지는 꿈, 정리하는 꿈, 부서지는 꿈, 거기서 뭔가 나오는 꿈. 256색상 환을 연상케 하는 해석들이 옷장이란 두 글자 뒤에 줄줄이 매달렸다. 몇 가지 해석을 읽은 다음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나를 가장 잘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라고. 각자의 삶이 다르고 대상들과 연결된 수많은 요소는 개별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같은 단어를 사용할 뿐 개개인에게 옷장의 의미는 고유할 수밖에 없다.

무의식적인 세계는 꿈속에서만 표현되는 건 아닐 터이다. 무의식에 끌려 행동하게 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들었다. 나도 모르는 손짓, 무심코 바라본 눈길을 통해서도 내면의 조각들이 떨어져나온다고 생각한다. 미워하는 인간에 대한 반응 역시 그의 모습이 내 안의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무의식의 세계를 중요하게 다룬다. 보이지 않아 알지 못하는 세계를 무시하기에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유명 심리학자의 저서 중 유일하게 읽은 작품이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다. 프로이트 못지않게 언급되는 심리학자가 융이다. 두 학자가 주장하는 이론의 차이점을 언급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융의 이론이 꽤 흥미로웠다는 느낌은 기억한다. 데미안의 심리학적 해석 기반은 융의 심리학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융의 책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의외로 자신을 자세히 관찰하는 사람은 적다. 데미안이 싱클레어를 포함하여 다른 이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과정의 핵심은 관찰이다. 헤세는 무의식의 세계를 진지하게 알아가야 함을 말한다. 무의식은 누구나 품고 있지만, 단순히 지니고만 있느냐, 이를 알기도 하느냐는 아주 큰 차이라고.

 

200쪽도 안 되는 얇은 책을 일주일 넘게 붙들고 있었다. 삶의 가장 원초적인 부위에 접근한 책이어서일까. 문장 하나하나에 빠질수록 책장은 느리게 넘어갔다. 묵직한 심해저의 바닷물에 마음을 실으면 이런 기분이 들까. 깊고 느리고 차가운 메시지가 마음으로 들어왔다. 예전에는 새의 알까기가 은근히 간지나 보이더니 이번에는 다른 느낌이다. 작가는 양면성을 지닌 대상들을 그대로 인정해야 함을 주장한다. 빛과 어둠이 분리될 수 없는 커플로 존재하듯 신과 악마의 존재 역시. 두 가지 세계를 인정한 란 존재가 의식 세계와 무의식 세계를 모두 안고 진짜 가 되는 것처럼.

이 책에는 세계가 담겨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담고 있는 세계를 의미한다. 한데 의미를 확장한다면 프랙탈의 원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내 몸 안에 있는 바이러스의 입장에서는 나의 몸이 우주가 되는 것처럼. ‘라는 한 사람을 정확하게 알아가는 과정은 우주를 알아가는 과정과 본질적인 면에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무의식에는 어떤 본성이 담겼을까. 꿈을 통해 무의식의 방으로 들어가는 거라면 꿈속의 세계야말로 굉장하지 않은가. 바라보는 것들이, 듣고 만지고 오감으로 흡수되는 모든 것들이 무의식의 세계에 차곡차곡 쌓인다면?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순간 저절로 튀어나온다면? 살짝 소름이 돋는다. 데미안을 읽고 나니 밖으로 향하던 시선이 내 안을 향하게 된다. ‘이지만 내가 모르는 를 알고 싶어진다. 일생이 걸리는 여정을 조금 더 걸어가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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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1-02-27 2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은 유일하게 두번째 읽은 고전인데 첫인상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아는만큼 보인다 말하기엔 좀 오만해보일지 모르나 전보다는 이해되는게 늘어난걸보니 독서력이 늘긴 했나봐요^^

나비종님 말씀처럼 인간이 성악설이다, 또는 성선설이다 말이 많을때 헤세는 공존한다는 쪽으로 접근했던가 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느쪽이든 컨트롤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일까요? 많은 판타지물에서 신족과 마족 사이에 항상 있는게 인간인데, 데미안을 통해서 왜 중심에 인간이 있는건지 알것도 같고요. 몇년뒤에 읽어보면 더 정확히 알라나요ㅎㅎ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버전이 진짜 나,라는 말이 참 알다가도 모를듯한 말이에요. 결국 단맛 쓴맛 다 봐야한다는 말이니까요ㅎㅎㅎ 하긴 성장은 그렇게 하는거죠. 싱클레어가 친구를 상담하는 장면에서 보여준 성장이, 크로머와의 일이 없었다면 불가했을테고요. 금지된게 허용되어 본인을 알아간다는 말이 이해가 확 됩니다.

시선이 밖에서 안으로 향하게 된단 말, 너무 좋은데요?ㅎㅎ근데 고전이 다 그런거같아요.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인간다움을 생각해보게 하는 보이지않는 힘이 작용할때마다 무의식의 우주를 느낍니다. 언제 그 우주들을 다 둘러볼수 있을지 까마득하네요^^; 부지런히 독서하는걸로ㅎㅎㅎ 2월도 고생하셨습니다. 3월도 즐거운 독서와 리뷰로 만나요~^^

나비종 2021-02-27 22:57   좋아요 1 | URL
다른 장르보다 소설이 그런 면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읽을 때마다 다른 페이지에서 공감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 <데미안>을 읽어보니 그 차이가 확 느껴지더라구요. 이렇게 조금씩 마음의 키도 자라고 있는가봅니다.^^

인간에게서 드러나는 모든 본성을 포용하는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어느쪽이든 컨트롤을 하려면 운동하는 인간들처럼 마음의 근육이 강해져야겠어요. 그래서 수련, 고행, 이런 걸 하는 걸까요?ㅎㅎ
신족과 마족 말씀을 하시니 저는 로판 웹소설이 떠오르네요.ㅋㅋ 음, 중심에 인간이 있다... 맞는 것 같아요. 선과 악의 경계에서 금을 밟고 있는 존재.ㅋㅋ
몇 년 뒤에 읽어보면 느낌이 또 다르겠죠?^^

의식과 무의식을 실물로 묘사할 때 빙산을 예로 드는 경우를 많이 보았거든요. 수면 위로 드러난 의식과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무의식으로요. 빙산의 90%가 잠겨있듯 무의식의 비중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죠. 한데 빙산의 존재는 물 위, 아래에 있는 전체 덩어리를 다 가리키는 거니까. 수면 위로 드러난 모가지 부분만 똑 떼어내는 게 아니라요. ‘진짜 나‘의 의미를 저는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ㅎㅎ
혓바닥 같은 거겠죠. 단맛, 쓴맛 다 맛봐야 건더기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ㅋ
비열한 크로머가 결국 열일한 셈이네요. 성장하기 위해서는 참, 이런 고뇌와 고통의 고비를 넘겨야한다는 게. 음, 세상 쉬운 거 하나도 없습니다.^^
금지와 허용의 비교 버전은 곱씹을수록 의미하는 바가 커지네요. 저도 확 이해가ㅋㅋㅋ

알다가도 모를 나란 인간. 가끔은 외면하고 싶어지기도 하죠.ㅋ 우리 고전과 다양한 책들을 타고 부지런히 우주여행 다녀요~ㅎㅎ
3월에는 겁나 바쁘겠지만 벼락치기를 탈출하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쳐볼게요.^^
 
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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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파놓은 함정 앞에서 어찌 좁쌀 한 톨의 융통성도 발휘하지 못한단 말인가! 학창 시절, 역사 시험문제를 풀 때마다 꼿꼿한 대나무가 되어버리던 나는 간장 종지만 한 함정에도 어김없이 걸려들었다. 허탈한 미운털이 그... 역사에 하나둘씩 박혔다. 내게 있어 역사는 지긋지긋한 대뇌 관절염으로 주름마다 켜켜이 들러붙던 암기과목이었다. ‘역사한문과 더불어 이과 선택의 결정적 계기가 된 양대 산맥이었다.

세월은 나에게서 점점 기억력을 앗아가고 그 자리에 통찰력과 이해력을 두고 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에 대한 나의 시각에도 약간의 변화는 있었다. 조선 시대 역사에서 왕들의 이야기를, 미국의 역사에서는 콜럼버스의 대단한 발견을 떠올리던 사고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 역사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그것을 당당히 기록할 수 있게 된 승자의 관점일 뿐이라고.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예전만큼의 거부감은 줄었지만, 여전히 접근이 꺼려지는 분야였다.

역사의 쓸모역사를 왜 배우는가?’에 대한 답이 적힌 책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그 안에서 우리는 삶을 향한 나침반을 들고 있는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역사라는 분야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사람에 대한 기록이라는 당연한 명제를 왜 이제껏 잊고 있던 걸까. ‘기록에 방점이 찍혀 사람을 무심코 지나쳐왔다. 사람이 빠진 역사는 페트병을 둘러싼 비닐만큼이나 허무한 껍질에 불과했다. 목이 마를 때는 그 안에 담긴 생수를 마셔야 했건만 라벨에 적힌 설명문만 읽다 만 거다.

 

4개의 장, 22개의 소주제로 구성된 이 책은 역사의 쓸모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접근한다. 건조한 논설문 형식이라기보다는 저자의 의견을 어필한 다음 그 근거를 역사와 접목하여 설명하는 방식이다.

1장에서는 삼국유사로 문을 연다. 삼국유사의 ()’버리다, 유기하다로 해석될 수 있다. 직역하면 삼국에서의 버려진 것들을 모은 역사라는 것.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정통적인 역사라면 신화 등 판타지 요소가 더해진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는 야사로 대비된다. 최태성은 쓸데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발휘하는 영향력에 주목한다. 어렸을 때 동화를 읽으면서 정서적인 삶의 활력을 얻게 되는 것처럼.

2장은 저자가 역사를 통해 배운 7가지에 관한 내용이다. 혁신, 성찰, 창조, 협상, 공감, 합리, 소통 등을 역사와 관련 지어 풀어놓았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이야기가 예로 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주제가 스며든다. 그 중 조합을 통한 창조를 설명하는 방식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글쓰기를 떠올렸다. 글을 쓴다는 것도 조합을 통한 창조 아닌가. 의미를 아는 글자들의 조합으로 내용을 구성하는 창조행위이니까.

3장에서는 정도전, 김육, 장보고, 박상진, 이회영 등 역사적 인물의 삶을 통하여 삶에 접근하는 태도를 말한다. 저자는 교과서에 피상적으로 적혀있는 업적보다 그들의 삶에 주목한다. 정도전을 통해서는 지금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게 하고, 김육과 이회영을 통해서는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자신의 일생이라는 답을 찾아준다. 장보고의 삶에서는 자신의 단점을 메꾸기보다는 장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인물의 여정을 보여준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낫기를, 비교는 오로지 나 자신과 해야 함을 말한다. 삶에 대한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는 희망 메시지를 전해준다는 점에서 이 인물의 이야기를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을 꾸어야 함을 말한 박상진의 삶은 진로 상담을 할 때 아이들에게 적용할만한 이야기로 마음에 담아두었다.

현장에 있는 사람의 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있다. 어설픈 흉내가 아니라 이라 말할 수 있는 것 말이다. 이를테면 연애를 글로 배운 게 아니라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서 절로 우러나는 과 같다. 4장에서는 역사를 향한 저자의 고백을 듣는 듯하다. 이 사람은 역사를 정말로 좋아하고 역사의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이 온다. 역사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린 저자는 인생의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역사적 관점에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준다. 각자의 삶에는 자신만의 궤적이 필요하며 수많은 사람의 일생이 담긴 역사 공부를 통해 이를 찾아가는 좋은 방법도 있다고.

 

고전을 읽을 때마다 종종 놀라는 점이 있다. 몇백 년 전에도 사람들이 이런 문제로 고민했던가. 형태는 다를지언정 사람에게 발생하는 일에는 보편적인 면도 있구나. 근본적인 삶의 방식은 되풀이되는 건가. 고민하던 문제에 적용할 답을 우연히 발견할 때면 이런 생각들이 더욱 선명해졌다. 한데 역사에서도 답을 찾을 수 있는 거였다. 저자는 말한다. 길을 잃고 방황할 때마다 역사에 몸을 기대었다고. 미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과거를 알 수 있어 다행이라고.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인 거다. 1주씩, 2주씩 근근이 연명하며 지나오던 작년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작년에 가장 힘들었던 요소는 알 수 없음에서 오는 어정쩡함이었다. 일정이 확실하게 정해지면 가장 이상적인 플랜A를 세우던가, 그도 어려우면 플랜B, 플랜C까지 마련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당장 다음 주에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은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마스크로 버텨낸 시행착오의 역사는 많은 해결법을 남겨주었다. 여전히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적어도 어찌해야 할지 두어 개의 답 정도는 움켜쥐게 되었다. 학급 담임을 맡으면서 시도했던 몇 가지 중 버릴 것과 한 번 더 적용해보고 싶은 방식에 대한 윤곽을 그릴 수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학습 지도 방식과 업무에서의 노하우를 얻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렇게 하고, 저런 상황이라면 저렇게 하고, 이런 건 좀 더 보완해야겠다며 조금이나마 계획이라는 것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32일의 마스크 개학을 앞두고 적어도 갈팡질팡하게 되는 속 터짐은 사라졌다.

 

삶에서 역사가 왜 필요한가라는 주제에 접근하는 저자의 발길에는 거침이 없었다. 역사를 향한 맑은 신념과 열정에 반해 버렸다. 음성 지원이 되듯 구어체로 서술된 문장과 쉬운 내용으로 인해 꽁꽁 닫아두었던 편견의 문이 스르르 열렸다.

이런 사람이 하는 역사 강의는 어떨까. 궁금증을 참다못해 새벽 1시에 인터넷으로 역사 수업을 듣고 있는 나를, 며칠 전의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고구려 소수림왕의 업적을 듣고 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 줄이야!

역사를 다시 한번 공부하고 싶어졌다. 교과서 시험대비용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한 삶을 살다간 이들의 이야기로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역사적 사고란 얼마나 커다란 틀인가! 살면서 하게 되는 수많은 선택이 어떻게 해석될지 가늠하며 다른 이들에게 미칠 영향력을 고려하면서 판단한다는 것.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삶에 적용한다면 사고의 폭이 곤충 탈피하듯 도약적으로 확장되리라.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나니 여행을 떠나기 직전인 듯 두근거렸다. 역사 공부를 하기 전에 준비운동으로 접근하기에 매우 좋은 책이라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충분히 준비운동을 한 듯 마음의 근육이 몰랑몰랑해진다. 역사 속으로 유연하게 헤엄칠 수 있을 것만 같다. 흑역사로 꽁꽁 둘러싸인 분야였기에 역사 관련 책을 읽고 뭉클하게 될 줄 몰랐다. 뭉클함을 넘어서는 감정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맴돌았다. 중간중간에 소개된 역사적 인물들에 얽힌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었숲 전체가 뭉텅 다가온 느낌이랄까. 개별적인 이야기들이 퍼즐 조각처럼 모이자 거대한 느낌표가 찍혔다. 미운 오리 새끼로 자리 잡고 있던 역사라는 분야가 하얀 백조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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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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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몇 명의 힘이 필요할까. 거대한 시공간을 가늠한다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필요할 듯한데 간혹 한 사람만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가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바꾼다는 의미가 아니라 큰불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는 경우이다. 사소해 보이는 까닭에 당시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훗날 선을 거슬러 올라갔을 때 발견하게 되는 최초의 점 같은 존재 말이다.

한 사람이란 말을 가만가만 음미하다 보면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 떠오른다. 애니메이션으로 접하고 나서 한동안 뭉클했던 느낌이 생생했던 동화이다. 원작에 사용되었다는 사천여 개의 단어들은 빠르게 스며들어 마음을 무장해제 시켰다. 몽환적이었지만 실화인지 판타지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초반의 의구심은 마지막에 가서는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바뀌었다. 한 사람의 일생을 통틀어 오십 년짜리 계획을 세운다는 건 얼마나 징한 의미인가. 남은 삶을 올인한 이의 힘이란 얼마나 깊이 있는 위대함을 품고 있는가.

뜬금없이 이 짧은 동화를 떠올린 건 <침묵의 봄>을 통해 전해지던 레이첼 카슨의 마음이 동화 속 주인공과 닮아서였다. 노인이 심은 나무 한 그루에서 숲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그녀의 책 한 권으로 변화를 겪은 세상의 모습과 겹쳐져서였다.

 

이 책은 토양과 물에 뿌려진 무분별한 살충제의 남용으로 파괴되어 가는 야생생물계의 실태를 세밀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기대감은 반반이었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그만큼 재미있을까 싶다가도 몸에만 좋은 약일지도 몰라서였다. 책의 내용보다 이 점이 궁금했다. 20세기 환경학 최고의 고전이라는 유명세는 어느 쪽에 속할까.

카슨은 지구 곳곳에서 인간에 의해 자행되는 자연 파괴의 실상을 제시하고 그 원인을 거슬러 추적하며 고통받는 생태계의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과학적으로 면밀하게 파헤치는 과정에서는 살충제의 기본 성분부터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에 이르기까지 조목조목 나열한다. 연어처럼 힘차게 거슬러 올라가 범인을 기어이 잡아낸다. 이 모든 사태가 인간 스스로 만들고 뿌려버린, 어쩌면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뿌려지고 있을지 모를 살충제에 맞닿아있음을 증명한다. ‘살충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한 편의 시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현장감이 긴박하게 와닿는다.

저자의 위대한 점은 서술 방식의 탁월함에 있다. 싫증이 나거나 딱딱하지 않은 문체로 인해 대중들은 내용에 쉽게 접근하게 된다. 화학적인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사람을 위해 약간의 기초 설명을 곁들이는 친절함도 보인다. 통계의 힘과 다양한 사례들을 적절히 활용하여 많은 이들을 설득한다. 거대한 지렛대 하나로 지구를 들어올리겠다며 당당히 외친 아르키메데스의 패기를 닮은 그녀의 도전이 감탄스럽다.

 

식물의 집단 재배는 문제 발생의 시발점이다. 똑같은 작물들이 줄지어 있는 장면을 상상하면 바이러스가 연상된다. 단세포 생물의 장점은 무한해 보이는 증식성에 있지만, 환경이 바뀌었을 때 전멸한다는 단점은 치명적이다. 먹이사슬로 연결된 1차 소비자의 대량 증식이 시작되면서 식물의 대량 전멸을 막기 위한 살충제의 대량 살포가 시작된다. 문제는 끈질기게 살아남는 곤충들의 내성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살충제의 생산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양으로 줄이도록 노력해보자는 것이다. 그녀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천적을 이용한 현명한 대안도 더불어 제시한다. 하지만 효과를 기다리지 못하고 비행기로 살충제를 휘리릭 뿌려대거나 강물에 흘려보내는 조급한 인간들이 내성을 지닌 곤충에 빙의하여 여전히 나타난다.

우주 안에서의 지구는 닫혀있는 동그란 상자와 같다. 중력장 안에서 모든 물질은 지구 중심을 향해 당겨진다. , 공기, 땅덩어리까지도. 음식과 식수와 공기 속의 위험 물질은 닫혀있는 지구 안에서 돌고 돈다. 이 세계의 모든 생명체가 운명 공동체로 묶이는 이유이다.

숲의 아름다움은 다양성에서 나온다. 복사해 붙인 듯이 한 종류의 나무로만 이루어진 숲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연의 작품은 아니다. 그렇게도 다양했던 생물이 스러져간다. 자연스러운 생명의 빛을 뿜어내던 생명체의 운명이 인간으로 인해 도미노처럼 차례로 흔들리며 마지막에 서 있는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길거리 바위의 줄무늬를 볼 때면 가끔 아득할 때가 있다. 그 안에 담긴 시간을 상상하면서부터이다. 퇴적암을 볼 때면 암석이 품고 있는 시간의 무게에 압도당한다. 변성암처럼 갑작스러운 열과 압력이 작용했던 것도 아니고 화성암처럼 뜨거운 마그마가 굳어진 것도 아니다. 물렁물렁한 흙이 단단한 도자기로 완성되기까지는 불가마 속 뜨거움을 통과해야 하건만. 단지 알갱이가 쌓이는 주요 과정만으로 단단한 암석이 되다니. 퇴적 이후의 후속 과정에서도 뜨거움은 찾아볼 수 없다. 퇴적암은 물밑에서 주로 만들어지니까. 얼마나 많은 인고의 시간이 켜켜이 담겨있을까. 라르고의 속도로 움직이며 오로지 앞으로만 진행하는 맑고도 묵직한 속성이라니. 자연이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묵묵히 흘러가는 시간의 직진성 때문이리라.

되돌릴 수 없는 살충제가 느린 시간에 실려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면서 쌓이고 있다. 대량으로 살포되던 살충제에 대하여 읽으면서 암 치료제를 떠올린다. 암 환자의 머리카락이 빠지는 이유는 치료과정에서 암세포만 죽는 것이 아니라 머리카락을 자라게 하는 세포도 파괴되어서라고 한다. 생물은 제각기 고유한 특성으로 존재하지만, 생명체로서의 동일한 속성도 분명히 있다. 벌레를 죽일 수 있는 약품을 살포하면서 사람을 포함한 다른 동식물이 멀쩡하기를 바란다는 게 오히려 무모한 억지인 거다. 그 억지스러움이 자연의 역린을 건드린 걸까. 봄바람처럼 가뿐한 문장들이었는데 깊이 쌓인 내용의 무게추가 마음을 잡아당긴다.

 

1962년에 발간된 책이 현실적으로 와 닿는 이유는 책 속에서 언급된 현상들이 지금까지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난 23일에는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에서 온수를 쓰던 주민들이 기준치 8배의 페놀에 이상 반응을 일으켜 어려움을 겪는다는 뉴스 기사가 떴다. 1991년의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을 모티브로 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란 영화도 언급되었다. 처음에 인간은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몰랐을 수도 있다. 유해성이 알려진 다음에는 멈춰야 하는 것을. 인류 스스로 파멸의 길로 걸어가는 무모한 행위가 언제까지 계속될까.

침묵의 봄을 그려내기 위해 작가는 침묵하지 않았다. 남들이 침묵하며 주변만 바라보고 있을 때 담담하게 현실을 직시하며 미래의 모습을 전망했다. 인간이라 하여 다른 생명에게 고통을 줄 권리가 있는가. ‘방제법에 관해 열심히 연구를 해야겠지만 이 방제법이 생물학적 관점이어야지 화학적 관점이어서는 안 된다. (중략) 생명이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기적이기에 이에 대항해 싸움을 벌일 때조차 경외감을 잃어서는 안된다.(p304, 브리예르 박사)’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닐지라도 우리 대다수는 스러져가는 생명을 그저 바라만 보는 방관자로 있다. 내가 그런 물질을 만들지는 않았으니까, 적어도 내가 뿌린 것은 아니니까, 당장 내 입으로 들어가지는 않으니까, 곤충이나 식물은 말이 없으니까.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면서도 진실을 외면하는 수많은 군중이 된다. 당연한 질문을 외면하며 아이로서의 순수한 눈을 감아버린 건 아닌지. 침묵하는 방관자는 암묵적으로 가해자의 편임을 잊고 사는 건 아닐까.

 

 

p21, 2번째 단락 밑에서 2번째 줄: 혼돈을 불어오기 위해 ~불러오기~

p56, 밑에서 5번째 줄: 활동이 무력화한다. ~무력화된다.

p131, 첫째 줄: 집중적인 살포가 일상화했다. ~일상화됐다.

p239, 5번째 줄: 심상치 않는 위협이 ~않은~

p244, 7번째 줄: 체세포의 수가 염색체의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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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짐승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5
에밀 졸라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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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벗은 여인의 뒷모습을 담은 표지. 어멋! 대놓고 짐승이래. 제목과 표지의 콜라보는 자정을 맞이한 시침과 분침인 듯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심지어 이토록 든든한 분량이라니! 으흐흐. 침을 꼴까닥 삼키며 겉장을 넘겼다.

오리너구리는 오리인가 너구리인가. 오리와 닮은 부리와 물갈퀴를 지니고 있지만 젖을 먹여 새끼를 기르는 동물. 두 종류의 특성이 섞였다는 점에서 시조새스럽다. 분류학적으로 오리너구리는 포유류에 속하니 뒷부분에 악센트가 실리리라. 오리를 닮은 너구리랄까.

이 책의 제목을 보니 오리너구리가 떠올랐다. 인간 짐승. 오리너구리 화법대로라면 인간의 형상을 한 짐승이 되나. 불어의 어법을 몰라 당당하게 외치려니 살짝 소심해지지만, 원제의 ‘humaine’과 영어의 ‘human’을 대응시켜 직역한다면 짐승 인간인데. ‘짐승을 닮은 인간이랄까. 짐승 인간이라책의 내용을 생각한다면 보다 적절한 제목일 터이다. 한데 뭔가 어색하다. 강조를 위해 제목을 도치시킨 걸까.

어쨌든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제목을 통해 다가오는 느낌이 확 달라진다. 이토록 간결하고 깊이 있는 제목이라니! 내용을 접하기 전의 이미지가 단순한 골짜기라면 내용을 지나온 다음은 태평양 가장자리의 마리아나 해구로 다가온다. 주제가 깊은 느낌표로 선명하게 찍힌다.

 

원래 등장인물들이 피 질질 흘리고, 지지직거리는 저질 흑백 TV를 연상케 하는 배경은 딱 질색이다. 취향이 아닐뿐더러 거부감조차 있다며 부르짖곤 했던 말이 이 책을 읽으면서 무색해졌다. 631쪽을 이틀 만에 다 읽어버렸다. 유머스런 구석이 전혀 없는 범죄 소설에 이토록 몰입할 일인가! 책장이 정신없이 넘어갔다. 사전에 올라 있는 표현이 아니므로 국립국어원에서는 답변이 어려워 양해를 구하는 두 글자의 비속어와 우연히도 동음이의어인 작가의 이름. 대놓고 말하기에 주춤거리게 하는 어감이지만, 이보다 더 피부에 확 와닿을 수 있는 표현을 찾지 못해 조심스럽게 한 번만 언급하고자 한다. 이 소설, .. 흥미진진하다고.^^;;; 범죄 스릴러는 내용이 드러나면 김빠지는 스포일러가 될 터이니 소설의 내용은 되도록 배제하고 커다란 틀만 적으려 한다. 내가 졸라의 소설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 몇 가지를 정리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 같다.

 

첫째, 뻔한 전개가 아니다.

추리 애니메이션이나 어릴 때 읽었던 범죄 소설에서는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대개 나는 술래가 되곤 했다. 나 잡아봐라~하며 작가가 곳곳에 배치한 복선을 따라가며 갖가지 추리를 하였다. 마지막 부분에서 나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 그럴 줄 알았어!’ 내지는 ! 그 인간이 그 인간이었어?’라고. 이런 이유로 전체 열두 장 중 1장까지 읽은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오십여 페이지 만에 대놓고 범인이 드러나는 설정이라니! 범죄 소설에서 범인이 드러나면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 소신에게는 아직도 열한 고개와 오백이십 보가 남았사온데 나머지는 어찌 채우시려고?

 

둘째, 모든 서사 구조가 연결된 탄탄한 구성이다.

버릴 내용이 없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이름 모를 인간들의 몰살은 제외하더라도 캐릭터가 부여된 등장인물 일곱 명이 시간 차를 두고 죽는다. 죽었는데 또 이야기가 있을까 싶으면 남아있는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먹이사슬인 양 꼬리에 꼬리를 문 기차인 양. 한 명이 또 죽으면 남은 이들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네버 엔딩 스토리이다. 주인공 외에도 주변 인물들의 향방에 대한 궁금증에 계속 책장을 넘기게 된다. 사건이 마지막에 어떻게 마무리가 될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다. 진행 중이라 끊어지지 않는 쾌변처럼 중간에 책장이 덮어지지 않는다.

 

셋째,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물음을 던진다.

성선설과 성악설 중 당신은 어느 쪽인가. 나는 성악설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누구나 마음 깊숙한 공간에 짐승 캐릭터 하나쯤은 품고 있다고.^^;; 이 소설만으로 판단한다면 작가는 성악설에 가까운 듯싶다. 이토록 적나라한 심리 묘사라니! 아름답기만 한 동화 속 공주 이미지의 인물은 몇 되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이 하나 같이 야수의 땀 냄새를 훅훅 뿜어낸다. 내내 감탄하면서 읽었다.

사람은 합당한 이유에서 살인을 하는 것일까? 아니다, 사람은 피와 신경의 충동 때문에, 옛날 옛적 서로 투쟁했던 기억의 잔존 때문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과 강해졌다는 기쁨 때문에 살인을 하는 것이다.(p516)’ 소설 속에서는 얼핏 사이코패스가 연상되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심리 묘사를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진짜 저런 인물이 있을까.

이 글을 쓰기 전까지도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다가 인터넷 뉴스 기사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강남역에서 여성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범죄 행각을 벌인 20대 남성에 대한 사건(2021. 1. 30일자)이다. 술이나 마약에 취한 상태가 아닌데도 여자만 보면 때리고 싶다는 여성 혐오적 이유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에서 소설 속 인물이 겹쳐졌다. 동물로 분류되는 인간에게 짐승의 기질은 유전자의 어딘가에 새겨져 있는 걸까.

 

넷째, 시공간적 배경과 사건의 어우러짐이다.

사건은 모두 기차와 연관된 공간에서 발생한다. 기차 안이거나 철로 위이거나 기찻길 주변의 집이다. 작가는 왕복하는 기차 주변의 공간을 정밀묘사로 스케치한다. 기찻길 주변의 고립된 집안에서 창문을 통해 기차를 타고 가는 인간들을 묘사한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기차 안에 앉아있는 이들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찰자의 입장으로 보면 죽은 사람이나 다를 바 없다.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움직이는 그림처럼 스쳐 지나가니. 운행 시간과 계절에 따라 배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으스스하거나 평화로운 색채에 따라 사건의 긴박한 분위기는 극대화된다. 증기기관차의 운행 기작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석탄의 투입에 따라 달라지는 증기압과 속도감이 선명한 테두리가 되어 사건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사건은 시간적 배경과도 어우러진다. 소설 속에서는 시간이 자주 등장하는데 등장인물들은 시계를 볼 필요가 없다. 시계 역할을 하는 물체가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시간에 출발하여 역을 통과하는 기차이다. 기차 시간은 사건의 긴박함을 드러내는 도구로 이용된다.

 

다섯째, 기차에 생명을 불어넣은 점이다.

왜 하필 기차인가. 집필이 이루어진 시대적 상황을 보면 당시 기계 문명의 극치를 보여주던 대상 중 하나가 기차였다고 한다. 작가가 기차를 통해 독자에게 보여주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기차는 현대적인 문명의 상징이면서도 저돌적으로 달리는 야생적인 짐승을 연상케 한다. 인간의 짐승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대상으로 보인다. 이게 기차인지 기차의 모습을 한 인간의 모습인지 구분이 애매한 장면들이 묘사된다.

기차를 먼 곳에서 바라보면 뱀이 연상된다. 직장 내에서의 사이코패스를 양복을 입은 뱀이라 일컬으니 작품 속 등장인물과도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 작가의 의도가 다분히 담겨있다고 판단된다. 사건의 출발점이 된 반지부터 뱀 모양이라는 점을 깨닫는 순간에는 소름이 돋는다. 도시의 양 끝을 왕복하며 뿜어내는 하얀 증기, 시뻘건 석탄을 품고 달리는 기차는 설경 위에서 시커먼 뱀처럼 움직이며 동물의 본성을 지닌 인간과 동일시된다.

 

여섯째, 진실을 향하여 던지는 물음이다.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는 사법 체계의 비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세상이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필요한 경우 그 진실을 보다 효과적으로 은폐하기 위해서였다.(p142)’ 재판 현장에서는 진실을 말해도 거짓으로 치부되는 웃픈 현상이 나타난다. 모순투성이이고 허술한 진실과 완벽하게 짜인 퍼즐 조각 같은 거짓. 이 둘의 대비가 빚어내는 아이러니는 진실이란 명제를 향해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얼마나 현혹되고 있는가. 누가 봐도 범죄자 같은 사람과 어디를 봐도 범죄자일 리 없어 보이는 사람. 범인을 알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사건의 흐름을 바라보는 독자는 작가의 경고메시지를 분명하게 읽게 된다. 누구든 어떤 상황이든 겉모습으로 쉽게 판단하지 말라는 것.

 

일곱째, 마지막 장면이 주는 메시지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대개 방탄조끼를 입지 않은 채 총알받이가 되어도 불사신이다. 어쩌다 주인공이 죽는 작품은 잡고 있던 고무줄의 한끝이 갑자기 끊어진 듯 허탈감을 안겨준다. 한데 이 작품은 많은 인물이 죽었는데도 찜찜함이 남지 않는다. 분명 해피엔딩은 아닌데 팽팽하게 당겨지던 활시위에서 화살이 쏘아지면서 마무리되는 듯 깔끔하다. 열린 결말 포스를 풍기는데 그게 뭔지 알 것 같은 기분이랄까.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가면서도 악을 쓰며 노래를 부르는 군인들. 그들을 싣고 기관사도 없이 무한 질주하게 된 기차는 기계의 탈을 쓴 한 마리의 짐승을 연상시킨다. 누가 죽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달려가는 장면에서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정도로 후련하다.

 

한번 야만적인 짐승은 영원히 야만적인 짐승일 뿐이야. 훨씬 더 나은 기계를 발명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야만적인 짐승들은 그 밑에 어쨌든 여전히 존재할 텐데.(p68)’ 살인도 피도 잔혹한 묘사도 다 증발해버리고 처음 부분에서 읽었던 문장이 메아리처럼 돌아온다.

외설적인 묘사는 거들 뿐이다. 묵직한 해일로 다가오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이 평소 환장하며 읽던 장면을 너무도 가볍게 덮어버린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면 외설적인 내용이 무로 돌아간 듯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책 표지의 그림조차 짠하게 다가온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웅크린 태아를 연상케 하는 뒷모습이 인간 본성에 던지는 민낯의 물음표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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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1-01-31 1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졸라는 졸라짱이라죠 ㅋㅋㅋ어색해하지 마세요...다들 그만한 표현이 없다고 할거에요.
오리너구리라, 괜찮은데요?ㅋㅋㅋㅋㅋ포유류냐, 조류냐 정체성혼란ㅋㅋㅋㅋㅋㅋ
정말 버릴내용과 장면이 하나도 없었어요. 어떻게 이럴수 있는지, 재미는 재미대로, 주제는 주제대로 퍼펙트하더군요. 말씀하신것처럼 네버엔딩 스토리... 와 후덜덜합니다. 작가가 마음먹고 쓰면 계속 이어갈수도 있겠던데요...이런 책은 1000페이지여도 즐겁게 읽겠어요^^

말씀하신 성악설... 저도 요즘은 이쪽으로 기울었어요. 교육과 훈련을 통해 사람은 선한쪽으로 변하지만, 잠깐만 풀어져도 금세 원래의 모습이 나오는 걸 자주 보고 느껴서요. 근데 작품속 고모의 딸의 행동은 100% 악일까 싶긴 해요. 동기를 알고나면 악인의 행동도 이해가 되곤 하는데, 이런 서사를 잘 다루는 작가들을 보면 인간에 대해서 얼마나 연구한건지도 궁금하고요 ^^

이 책이 신기한게 미스터리, 스릴러, 심리, 사회소설의 복합장르를 전부 소화해냈다는 거였어요. 그중 하나만 성공하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에요. 특히 사법 체계에 대해 고발한 점은 출간 당시에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을텐데, 정말 거침 없는 작가였네요. 작품속 법조인들도 짐승이나 마찬가지인듯. 무생물인 기차마저 짐승으로 살린 것을 보면 뭐 인간다운 인간이 세상에 있기나 한걸까요. 에밀 졸라는 정말 화두를 몇개나 던지는건지 ... ㅎㅎㅎ

꽤 분량이 많았는데 이틀만에 읽었다니요, 대단한 독서력이십니다. 전 죽어도 그렇게 못하거든요. 이번달도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하셨네요 ^^ 제가 너무 바쁜 사람 붙들고 모임을 강요하는게 아닌건지 ㅋㅋㅋ 1월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2월은 얇은 책이니까 파이팅하세요 ㅋㅋ

나비종 2021-01-31 15:58   좋아요 1 | URL
ㅋㅋㅋ그렇죠? 졸라~~ 다만 졸라를 졸라쓰는 인간들을 저지해야 하는 입장이라서 대놓고 쓰기엔 쫌 그랬습니다. ^^; 수년 간 갈고 닦은 네이티브 억양을 소유했다는 건 비밀로 해주세염~ㅎㅎ
오리너구리를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ㅋㅋㅋ 스스로도 오리페이스가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정체성 혼란ㅋㅋㅋ 여기서 이리도 적절한 문구를 끄집어내시다니, 역시 물감님이십니다.ㅎㅎ

예. 저도 성악설 쪽에 마음이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험악한 뉴스들을 보면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원래 저런건가 싶어서요.
음, 고모 딸에 대한 저의 해석은 조금 다릅니다. 한마디로 ‘질투는 나의 힘?‘ㅎㅎ 억울하게 희생된 다수의 사람들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오랫동안 건널목에서 일하면서 그림처럼 지나치는 풍경들에 무감각해진 것이 아닐까요. 너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이니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거죠. 폭설 속에서 라리종이 널브러졌을 때 그제서야 집으로 찾아온 몇몇 사람들의 실재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인간에 대한 연구. 맞아요. 저도 얼마나 깊어져야 보편적인 인간의 감성으로 연결될까 대륙붕 수준의 글을 쓰면서도 매번 고민이 되더라구요.^^; 그런 면에서 졸라의 졸라 대단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ㅎㅎ

동감입니다. 그렇게 다양한 요소들을 건드리면서도 어찌 그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방대한 깊이로 묵직한지. 처음 부분을 읽을 때만해도 잘은 몰랐거든요. 갈수록 창대해지는 문장의 힘에 반해버렸습니다.
작품속 법조인들은 교활하면서도 잇속을 챙기며 꾀를 부리려는 여우 정도였을까요.
기차의 짐승화에 감탄했어요. 처음에는 방울뱀 정도의 스케일로 인식되다가 그 장면 있잖아요. 도시와 도시를 잇는 거대한 지네스러운 묘사요. 모든 구간에 걸쳐 발을 뻗고 누워있는 거대한 이미지가 연상되는 순간 빅뱅 수준으로 스케일이 확 커지더라구요.ㅎㅎ
투척하는 화두마다 물에 띄운 꽃차처럼 생명력을 지니게 하는 힘. 저는 그게 탄탄한 구성력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빅픽처를 먼저 그리고 세부적인 그물로 짜고 들어갔던거죠.

이틀의 비결 알려드릴까요? 오랜 시간 단련된 벼락치기 근육의 힘이랍니다.ㅋㅋㅋ 닥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책장을 펼치게 하는 놀라운 원동력이죠.^^; 사실 졸업식이 있었던 20일까지는 업무와 생기부 마무리 작업으로 정말 바빴습니다. 숨돌리고 21일부터 원래 하던 독서모임 책 먼저 읽고 하루 근무하고 작은 슬럼프 겪고 나니 오늘까지 나흘 남더군요. 분 단위로 쪼개가면서 하루 죙일 집에 틀어박혀서 밥 먹고 책만 읽었습니다. 졸라의 작품이 아니었더라면 어림도 없었던 일이죠.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이리 정곡을 찌르시니ㅋㅋㅋ 바쁘지만 책 읽을 시간을 버릴 정도로 바쁘고 싶지는 않습니다. 2월은 벼락치기 탈출해보겠습니다!!ㅋㅋ
 
총 균 쇠 (양장)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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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워낙 명성이 자자한 책이라 지적 허영심을 드러내려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읽으려는 시도를 몇 번 하기는 했다. 번번이 겉장도 넘기지 못하고 두께에 압도당해 발걸음을 돌려야 했지만.

이번의 시도는 독서 모임의 강제성이 아니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일이었다. 제목만 보고 내용이 총, , 쇠 등 세 분야로 나뉘어있으리라 지레짐작했다. 비장하게 모임 도서를 정하고 753쪽을 한 달 안에 소화하기에는 급격한 멘붕이 오리라 예상되는바, 두 달에 걸쳐 읽어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첫 달에는 어디까지? 총까지 읽자, 균까지 읽고 나머지는 다음 달에 읽자 말들이 오갔다. 목차를 검색해보고야 우리의 의논이 허망한 것이었음을 알았다. 3종이 묶여있는 세트였던 거다. 4부로 구성되어 있으니 첫 달 모임에서는 2부까지만 읽기로 했다. 지난 10월 말의 일이다.

11, 심호흡을 하고 드디어 ··의 본문을 영접하였다. 한데, 그리 어렵게만 보이던 태산도 한 걸음씩 걸으니 가속이 붙었나 2부를 지나도 걸음을 딱 멈출 수가 없었다. 드라마도 아닌 것이 투 비 컨티뉴드가 이토록 궁금할 일이더냐! 언제부터 인류 역사에 관심을 가졌다고. 사회나 역사 분야라면 질색을 하던 내가 인물과 지명과 고대에 사용되던 석기와 도구들을 검색하며 보고 있는 거다. 후반부에 가서는 아예 책장 구석을 뒤져 먼지를 먹으며 연명하던 사회과부도를 찾아냈다. 본격적으로 아프리카·동남아시아·유럽·오스트레일리아·남북아메리카 지도를 펼치면서 도시와 섬 사이를 손가락으로 누벼댔다. 있는지도 몰랐던 도시와 나라들이 손끝에 닿는 점자처럼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책은 인류의 발전이 각 대륙에서 다른 속도로 진행된 이유를 과학적으로 밝힌 책이다. 결론이 도출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 4부에 걸쳐 체계적으로 증명이 되어있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큰 건가. 우수한 문명이고 나발이고 원초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궁극적인 원인은 식량 생산이다. 문명과 식량(루스 디프리스, 눌와, 2018.2.)의 확장 디테일 버전인 듯 자세한 근거가 제시되어있다.

식량을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가 문명의 발달이나 존속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며 이를 둘러싼 다양한 수단들이 등장한다.

첫째, 식량 생산을 도와줄 가축이다. 원래부터 그곳에 살았던 가축에 따라,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집단의 운명이 갈린다.

둘째, 식량을 생산할 땅을 확보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총, , , 문자 등이다.

셋째, 이제는 식량 생산을 위한 정보력과 기술력의 싸움이다. 자체 보유력도 중요하지만, 사방팔방에서 흡수하는 외부의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시점에서 다양한 유형·무형의 것의 전파속도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지리적 환경이 등장한다. 유라시아는 대륙 축의 방향이 동서 방향으로 길고, 아메리카나 아프리카는 남북 방향으로 길다. 남북 방향의 대륙은 위도를 넘나들어야 하므로 적도에 사는 인간들이 극지방에 적응하기 어려운 것처럼 이 모양새가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거다.

넷째, 식량의 다양성도 중요하다. 야생 먹거리가 작물화로 되기까지의 과정 역시 기후, 지형 등 환경적 요인이 크다. 수렵 채집민과 식량 생산민의 경쟁력의 차이도, 정치 체계도 마찬가지다.

 

먼저 시작했다고 더 발달하는 건 아니다. 인류의 기원지로 알려진 아프리카의 상황처럼. , 백인이냐 인디언이냐에 따라 개척자와 침략자로서 자리매김된다. 정복하고 정복당하는 세계사를 보면서 100% 객관적인 시각은 존재하지 않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중립에 선 듯하다. 과학적 데이터로 증명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의 글은 명쾌하다.

인구 밀도에 따라 대륙별로 인간이 그려진 그림을 본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는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호주는 2명 정도가 그려져 있었던 것 같다. 그땐 막연하게 거긴 넓어서 참 살기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했던 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몇 배나 되는 땅덩어리에 적은 수의 인간이 거주할 때는 그에 합당하는 이유가 있었으리라는 사실 말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척박한 환경과 인구 몰빵 지역 사이의 차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우면서 이제껏 참 많은 것을 모르고 지내왔구나 싶었다.

가축화 및 작물화된 야생동식물의 종류와 수의 차이, 기술혁신과 정치제도의 확산과 이동속도의 차이, 대륙 면적과 인구의 차이,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결론은 단순하다.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지리적, 생태적 환경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 원래 그리 태어난 게 아니라 우연히 주어진 환경들이 인류의 문명에 대한 운명적인 큰 그림을 그려냈던 거다.

 

백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푸른 눈에 하얀 피부 고급진 옷을 입고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흑인을 연상할 때면 칙칙하고 축축한 할렘가의 악취가 어둠과 함께 떠올려졌다. 타고난 유전자의 차이인 줄 알았다.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편견이다.

사람의 유전은 연구하기가 까다로운 분야이다. 개체 수가 많지 않고 한 세대가 길며 형질이 복잡할 뿐 아니라 마음대로 교배하기도 어려운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간접적인 방법이 동원되는데 그중 하나가 쌍둥이 연구이다. 일란성 쌍둥이는 타고난 유전적인 특징이 똑같으니 이들 사이에 차이가 나는 형질이 있다면 환경 탓이라고 해석하면 되는 것이다. 유전과 환경의 차이를 연구할 때 유용한 방법이다.

백인은 잘났고 흑인은 못났다는 편협된 생각이 언제부터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걸까.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은 가지고 있는 지도 몰랐던 잘못된 생각을 일깨우며 나를 부끄럽게 했다.

우연의 산물로 얻어진 것치고는 선택된 이들이 걸어온 길이 너무 불공평하고 냉정하지 않은가. 환경으로 인해 각기 다른 길을 걸어야 했던 다양한 대륙의 인간들. 때로는 억울하고 심지어는 억울한 줄도 모른 채 일생을 마쳤던 수많은 영혼의 무게가 책의 두께만큼이나 묵직하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때 꽤나 가까이했던 교과서류는 사회과부도였다. 세계 지도를 펼치고 나라 이름 찾기, 수도 이름 맞추기를 하며 놀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과부도를 뒤적거리며 위치를 찾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여행에 지도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두 가지 정도를 준비하면 훨씬 알차게 읽을 수 있겠다. 사회과부도와 핸드폰이다. 전자는 나라, 도시, 섬 등의 위치 찾기용이고, 후자는 용어, 인물 등의 검색용이다. 처음에는 핸드폰을 옆에 두면서 수많은 나라와 도시의 위치를 수시로 검색했는데 직접 해보니 위치 찾기에는 차라리 사회과부도가 편했다. 검색하려는 나라 하나만 나오는 게 아니라 주변 나라들의 배치도 덩달아 파악이 되기 때문이다.

언어에도 관심이 생겼다. 한글이 언급될 때에는 반가웠고 덩달아 한글의 우수성에 자부심도 느끼게 되었다. 언어라는 게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라는 사실을 새삼 음미했다. 언어의 존재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가 있었음을 증명한다. 동아시아와 태평양 민족이 사용하던 수많은 언어의 생성과 전파와 파생과 소멸의 과정을 집요하리만큼 파헤친 작가의 집중력이 놀라웠다. 언어를 통해서도 문화 전파의 방향을 짐작하다니! 인류의 문명 정도의 메가톤급 주제를 다루려면 얼마나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연결되어야 하는 걸까.

 

가독성이 좋아서,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벌써부터 좋았다. 한 달도 안되어 완독하게 되었다. 외국인의 저서라는 생소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정신없이 따라갔다. 마지막 참고 문헌의 기술 방식까지 흥미로웠다. 참고 문헌의 도서명과 인용된 영문은 읽지 않았지만, 문헌이나 발췌 문장을 소개하는 방식까지도 허술함이 없었다.

이런 장르의 책에 매력을 느낄 줄 몰랐다. 그만의 특이점은 과학적으로 역사를 분석했다는 점이다. 생태지리학, 생태학, 유전학, 병리학, 문화인류학, 언어학 등 종합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냉철함과 통찰력에 속이 후련했다.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5년의 연구 결과라는 말에는 경외감까지 들었다.

20206, 서울 시장과의 코로나 관련 대담을 실은 뉴스 기사도 찾아보게 되었다. 1937년생이면 80대의 우리 부모님 정도의 연세이신데. 책날개에 실린 작가의 사진을 보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이 맑아서 총명함이 뚝뚝 떨어지는 듯했다. 이 책을 뉴기니인 친구와 스승들에게 바친다며 그들을 혹독한 환경에 대한 전문가로 여긴 서두의 문구에서는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가 엿보여서 이 또한 좋았다.

 

한 권의 책에 담겨있는 시간은 제각각이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처럼 하루가 담겨있는가 하면 이 책에서처럼 인류 전체의 시간이 담기기도 한다. 역사가 담긴 책을 만날 때면 책장을 넘길 때마다 호흡이 느려지고 길어진다. 13천 년이라니! 빅뱅 이후 흘러온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시간이지만 하루를 24시간으로 살아가는 우리로서 이 시간은 아득하기만 하다.

노래가 2~3분의 시간에 임팩트 있는 이야기로 쉽표처럼 짧은 휴식을 준다면 이 책은 봄, 여름, 가을 동안 식량 생산을 모두 마치고 나서 겨울철에 화롯가에 앉아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로 노곤한 몸을 천천히 풀어주는 휴식에 어울린다. 크로키와 정밀묘사의 차이처럼.

13천 년 모든 대륙의 역사를 700여 쪽으로 압축한 책. 캐나다의 버제스 셰일이 쪼개지면 조각조각에 숨겨져 있던 화석이 나타나듯 내가 넘어온 책장의 낱장 낱장에 화석이 담겨있는 듯했다. 종이로 만들어진 화석이랄까. 인류의 거대한 역사가 켜켜이 종이에 담겨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입체 카드처럼 펼쳐졌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을 읽고 나서 바깥으로 나올 때마다 넓어진 시야만큼 마음이 확 넓어진 듯했다. 13천 년의 역사가 이 한 권에 담겨있다고 생각하니 더이상 책이 두껍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적은 분량 안에 13천 년이 담겨있다며 놀라는 것이 더욱 적절한 반응인지 몰랐다.

 

 

p55 밑에서 2째줄, p483 마지막 줄: 디프로토돈트 → 디프로토돈

p131 밑에서 5째줄: 탄소14가 붕괴되어 탄소12로 바뀌기 ~붕괴되어 질소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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