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서늘하고

말갛게 세수한 하루가

지구에 앉아있는 순간

하루의 휴식처럼

그대가 내려앉는다.

 

그리움의 얇은 천이

투명하게 펼쳐지면

그제서야 나는

이토록 아릿한 마음을

그대인양 품고

짙푸른 밤의 공간을

천천히 걸어간다.

 

온몸을 감싸고돌다

스르르 달아나는 사람

햇살인 듯 내리쬐더니

물기인 듯 스며들더니

오늘은 바람이라니

 

귓가를 스치는 바람처럼

불었다 또 불었다

내게로 불어오는 사람

그대는 안으로부터

생각나는 대상이 아니다.

나의 밖에서 불현 듯

다가오는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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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선율 위에
음표인 듯
실려오는 그대

텅빈 온음표의
테두리만큼이라도
그저 따스해

빛을 쬐 듯
비에 젖은 나를
잠시 기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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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을 긁는 것처럼
말라버려 뾰족해진 감정이
심장을 긁고 있구나
혼자서 하는 공놀이가
지치고 서러웠을까
뻑뻑해지는 목구멍이
바투 깎은 손톱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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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공간을 떠돌던 우주가

나의 우주와 마주쳤던 순간

시간은 여전히 무심했으니

처음부터는 아니었으리라

 

하루에도 몇 번씩

빨라지다 느려지다

불규칙한 맥박이 되었을 때

시간은 공명의 파도로 출렁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환해지다 깊어지다

당황스런 홀로그램이 되었을 때

공간은 손가락 깍지로 맞닿았다

 

휘몰아치는 시공의 강물을

연어인 듯 거슬러 올라가면

운명적인 빅뱅의 순간을

불현 듯 만날 텐데

 

우주적인 사건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마주친 점에서 생긴 불꽃은

지금도 달려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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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향했던

마음의 크기는

그가 떠난 후에야

알게 되는 걸까

 

함께 했던 풍경을

천천히 더듬어볼 때

하루의 시곗바늘은

그를 향해 움직여

 

그가 없는 하루가

오늘도 끝나 가는데

그를 품은 하루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참을 달려도

아득한 시선 너머엔

눈부신 그가 있으니

눈물겨운 그가 있으니

 

한 사람을 향했던

마음의 크기는

보이지 않는 그를 품는

시간의 크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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