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그친 아침살랑따뜻한 눈송이 하나 소복이 쌓인 가을 위로살포시 내려앉을 때울긋불긋 눈 위를저벅저벅 걷는다 오후 거리는 커다란 도화지하늘이 뿌린 촉촉한 물 위로은행나무투두둑노란 점묘화를 그릴 때가을이 그린 그림 속으로천천히 걸어들어간다
지금 있어주지 못하는 이가나중이라고 곁에 머물까눈물은 하얗게 말라가고심장은 감각을 잃어가는데 미래를 가리키는 손끝을끝내 내려놓지 못한 채하루도 함께 못하는 이를기다리는 막연한 허무라니한 방울의 눈물도닦아주지 못하는 이를한 점의 온기조차나눠주지 못하는 이를
세수를 하다보면 가끔 엄마 생각이 나뽀득뽀득 내 얼굴 문질러주시던 손길아아아아 코 쥐고 팽 풀어주시던 손길이엄마가 겹쳐지면 스르르 내 손길은 느려져 꾹 감은 눈 삐질삐질 스며들던 비눗물입으로만 킁 콧속 찌르던 알싸한 물이엄마의 온기를 품고 수증기로 날아갔었나지구 어딘가로 떠돌다 돌아와꿈인 듯 톡 얼굴을 두드리니
언젠가 필요할 것 같다면대개는 필요없는 물건이다 그 언젠가가 지금이 되면필요는 다시 언젠가의 너머로막연히 미뤄지기 일쑤다 필요의 물기는 점점 날아가그렇게 낡아가는 거다
구름 낀 날이면 말없이 온기어린 손 하나 내밀어주는 사람 눈부신 날이면 빛바랜 나뭇잎의 시간을말할 수 있는 사람 비오는 날이면 함께뜨끈한 수제비를먹으러 갈 수 있는 사람 한 방울의 눈물한 번의 미소를나눌 수 있는 사람 그저 잠시만이라도일상의 작은 짐들을기댈 수 있는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