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시 몇 분 전. 신데렐라라도 된 듯 벌떡 일어났다. 어쩌다보니 오늘도 최후의 1인이 되었구나. 나의 독서에 방해라도 될까 조심조심 행사대형 의자를 세팅하고 있던 주인장에게 인사를 했다. 서점 문손잡이를 미는 손길이 가뿐했다. 0. 참 적절한 마감시간이다 싶었다. 운동화 한 짝이라도 슬쩍 투척하고 왔어야 했나. 비실비실 새어나오는 상상에 웃음 한 모금 머금고 집을 향한 발걸음을 옮겼다.

심야책방 독서의 밤 : 편 김에 끝까지’. 이번으로 세 번째 참여이다. 교통수단의 마지막 운행시간을 검색할 필요도 없이 가볍게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 동네서점 <삼요소>가 내가 사는 동네에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행운이다.

이제껏 마셔보았던 최고의 커피를 내리던 친구가 있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던 내입으로도 부담감 없이 흘러들던 부드럽고 향긋한 맛을 기억한다. 그녀는 현실적인 경영난에 근근이 버티다 결국 커피숍을 접었다. <삼요소>에 들를 때마다 그 친구가 종종 떠오른다.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이 장악하는 요즘 동네서점을 운영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터이다. 책만 판매하는 서점이라면 건조하게 푸석거렸을 지도 모르는데 정성스럽게 내린 커피가 물기를 더하는데다 각종 문화공간까지 겸한다는 점이 매력적인 공간이다.

내가 생각하는 <삼요소>의 최고 매력은 주인의 운영 철학이다. 올해 참여한 세 번의 심야책방 운영방식은 매번 달랐다. 커다란 틀을 굳건히 유지한 채 운영시간이나 책 선정 방식 등 디테일한 부분에 변화가 있었다. 캐논인 듯 일어나는 변주는 주인장의 깊은 고민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조금씩 다른 방식을 시도해보려는 그의 열정에 <삼요소>를 향한 애정이 느껴져서 좋았다.

 

지난 223. 심야책방에 처음으로 참여했다. 집에 있던 이강산 소설가의나비의 방을 가져가서 읽었고 김영민의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구매했다. 다음 날 새벽 310분에 마지막 주자로 서점 문을 나섰다.

426. 두 번째 참여한 심야책방에서는 <삼요소>에서 직접 구매한 책을 읽는 방식이라서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선택했다. 우수독후감을 제출하면 준다는 상품에 눈이 멀어 노트북까지 가져가서 의욕적으로 글을 썼다. 마감시간을 지정했다는 주인장의 말을 듣고 새벽 310분의 주인공인 나는 살짝 찔렸다. 읽을 책으로 가뿐한 책을 선정했지만 독후감까지 써서 제출하다보니 마지막으로 나오게 되었다.

며칠 후, 내 맘대로 고른 은유의다가오는 말들을 독후감의 상품으로 받고 서점에서 인증 샷을 찍었다. 그 새벽까지 주인장의 귀가를 저지한 인간이 자랑스럽게 할 말은 아니지만 미안하면서도 어쩌나 기분이 좋던지.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싶은 내가 유일하게 물욕을 부리는 물건이 책이다. 꼭 필요한 물건만 구입하는 소비패턴에서 유일하게 벗어난 대상이다. 당장 보지도 않을 책을 구입할 때도 많다. 표지가 좋아서, 제목이 좋아서, 작가가 좋아서 등 이유는 다양하다. <삼요소>가 운영하지 않는 날이면 들르는 커피숍 주인이 어느 날 물었다. ,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 봐도 되요? 네에. 매번 여기서 읽으시는 책이 바뀌시던데 그거 대여하시는 건가 직접 구매하시는 건가 궁금해서요. 주문한 커피를 가져다주면서 내가 읽고 있는 책들을 보았나보다. 직접 사는 거예요. 남들 옷 사듯이 책을 산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웃으며 답했다.

어제로 세 번째 심야책방. 신청 마감일까지 고민하다 신청문자를 보냈다. 요즘 일이 많아 몸이 피곤한데다 1050분에 하는 드라마 <멜로가 체질>이 갈등의 원인이었다. 마음에 꽂힌 드라마를 포기한다는 것은 웬만한 의지로는 어려운 일이다. 중력을 거스르는 또 다른 인력이 필요하달까. 결국 <심야책방>이 이겼다. 너무 늦게까지 운영하니까 다음 날 몸이 피곤해서 일하는데 어렵더라고요. 사건현장에 온 듯 찔렸다. 너무 늦게까지 운영하게 한 범인이 바로 나라서. 이번에는 12시까지로 정했습니다. 주인장의 멘트를 들으며 독서속도가 느린 나는 이번에도 마지막을 장식하겠구나 싶었다.

 

점점 업그레이드되는 버전에 참여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설렘이다.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하려는 주인장의 과감한 용기를 응원한다. 엄청 거대한 미션은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 없던 운영방식의 현장에 동참하는 것은 그래서 두근거리는 모험을 떠나는 기분을 건네어 준다. 이번 심야책방은 다섯 가지 면에서 마음에 들었다.

첫째, 휴대폰을 끄고 독서한 점이다. 평소 휴대폰을 테이블에 뒤집어놓고 책을 읽기는 하지만 그래도 간혹 카카오 톡 메시지를 확인할 때가 있다. 어제는 아예 휴대폰을 끄고 진행하는 것이 어려우신 분들은 아쉽게도 참석이 어렵습니다.’ 라는 규칙을 정해주니 깔끔하게 가방에 넣고 시작을 하게 되었다. 휴대폰이 없다면 시간은 어떻게 알지? 안내 문자를 읽으며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다음 문장에서 나의 염려는 말끔하게 해결되었다. ‘시계는 화면에 띄워둘 예정입니다.’ 나는 이게 좋다는 거다. 휴대폰을 끄고 책을 읽자는 규칙을 정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 점이다. 새로운 규칙을 적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고민한 그 마음이 마음에 들었다. 하얗고 거대한 스크린에 검은 글씨로 흘러가는 숫자들을 보면서 웃었다. 80대 어르신도 알아볼 만한 디지털시계의 숫자 크기로 느껴지는 배려가,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그 어떤 배경 화면도 없이 시계만 띄워져 있는 깔끔함이 주인장을 닮았다 싶었다.

둘째, 책읽기에 앞서 세 문장 자기소개와 책 선정 사유를 돌아가면서 말한 점이다. 전날 안내 문자를 받고 살짝 고민이 되었다. 자기소개라... 독서모임이나 새로운 자리에 참석할 때면 인트로에 자주 언급되는 순서이다. 몇 십 년 전, 여럿이 바라보는 자리에서 나를 소개하며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많이 떨었던 기억들이 스쳤다. 이후 여러 독서모임이나 작은 행사의 참여 횟수는 남들 앞에 서는 것이 그리 떨리지 않게 되는 단단한 심장을 만들어주었다. 이번에는 이전에 하지 않던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이름, 나이, 직업, 꿈 등 비슷한 패턴의 자기소개 말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은 뭘까. 새삼스럽게 나라는 존재를 고민하게 된 거다. 직업이나 나이 등 외적인 요소 말고 나란 인간을 뭐라 설명할 것인가. 심야책방에 참여하러 가는 길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책방 입구로 들어가는 계단을 오르며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려워하는 인간인지 알려야겠다 싶었다.

제 이름은 ***입니다. 동네주민이구요, 글을 쓰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말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하아! 근데 어쩌다 말하는 직업을 가지게 된 인간이구요. 속으로 말했다.) 제가 선정한 책은 정신과 의사이신 정혜신 님의 당신이 옳다입니다. 제가 정말 옳은지 궁금해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의 소개를 했다. 요즘은 군더더기 없는 말을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사람들은 듣기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서 나온 말에서 지겨움을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다.

셋째, SNS에 후기를 남기게 한 점이다. 독후감대신 후기쓰기를 제시한 점이 신선했다. 일석이조를 얻을 수 있는 지혜로운 방식이라며 감탄했다. 참여자는 참여 소감을 정리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주인장은 ‘#삼요소 #심야책방이라는 태그를 통해 홍보 효과를 볼 수 있다. 세 분을 골라 추천도서를 선물로 드린다는 말에 혹해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중이다. 선물이 취향저격이다. 다른 물건이었다면 별 욕심이 안 났을 텐데 책을 준다는 말은 매번 나의 물욕을 자극한다. 궁금하기도 했다. 주인장이 추천하는 도서는 무엇일까.

넷째, 자정까지로 시간을 지정한 점이다. 그전에 가도 좋고.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 기분 좋게 행사를 진행할 적절한 시간을 고민한 결과물일 거다. ‘저 인간 언제 가나. 시간제한 없다고 했더니 정말 제한 없이 죽치고 있네.’ 라는 생각으로 시계만 보게 되는 상황보다 서로 부담 없이 함께할 무게중심을 찾았다는 느낌이랄까. 이번에도 마지막으로 서점을 나왔다. 3분의 1 조금 넘게 111쪽까지 읽고 일어섰다.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부담이 없어 후련했다.

다섯째, 음료 하나와 소소한 간식이다. 소소하다고 표현하기에는 많이 푸짐한 간식 옆에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배고프리라 생각하고 저녁을 든든하게 먹고 온 인간 맞나. 10시 즈음 되자 나의 위는 무소유가 되었고 살짝 간식 뚜껑을 연 나는 먹음직스러운 김밥을 집어 들었다. 딱 한 개만 먹자던 초심과는 다르게 이것만 더, , 더 하다 보니 어느새 김밥초밥세트 안에는 깨알 몇 개만 남게 되었다. 엄청 큰 김밥 6, 초밥 3, 컵 과일을 아메리카노와 함께 클리어 했다. 시리얼 바는 집에 와서 먹었다. 나는 위대했다.

 

한 명이라도 진행하겠다는 부담 없는 행사는 7명의 참여로 진행되었다. 소소한 분위기에서 포근함이 스며들었다. 다른 내용의 책을 들고 각기 다른 이유로 선정한 이유와 함께 독서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시간. 오롯이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좋았다. 퇴근 후 커피숍에 혼자 가서 책을 읽으며 가끔 외롭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틈에서 이어폰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독서나 글쓰기에 집중할 때 나는 혼자였다. 나를 독대하는 이는 오로지 작가 뿐이었다. <심야책방>은 그런 면에서 묘한 경험이었다. 서로 대화 한 마디 나누지 않는 각자의 세계가 공존하는 공간은 책이라는 공통분모로 연결이 되면서 따로 또 같이가 되었다. 책을 읽는다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저마다의 이유로 함께하는 시간은 따뜻한 울림을 주는 장면을 건네주었다.

디지털에 쫓겨 오다 잠시 아날로그의 세상을 여행하고 난 기분이 들었다. 0시의 거리는 잠들지 않는 불빛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면서 다시 고요로 빨려들어 간 나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반짝이는 별 하나. 휴대폰을 꺼내어 별지도 앱을 켜고 하늘을 향했다. 알타이르였구나. 오랜만에 보는 별 하늘이었다. 하늘에 구름이 하얗게 나풀거렸다. 어둠속 하양이 숨죽이는 깊이를 지닌 채 흘러가고 있었다. 천천히 걷는 발걸음 사이로 풀벌레 소리가 찌릿찌릿 귓가를 두드렸다. 그래, 가을이 오고 있구나. 살짝 서늘한 바람이 뒷목을 간질이며 스쳐갔다. 머리카락의 작은 흔들림조차 고스란히 느껴지는 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