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여기로 옮겨온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용하지 않는 방에 여기 올 때 넣어왔던 박스째 넣어두고 살았는데 이젠 책 찾는 일도 일이고 여기와서 구입한 책들로 방 그득 상자들이 잠식하는 바람에 발 옮기기도 힘들어져서 도저히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가지고 있는 책이 얼마 되지 않아서 괜찮겠다 싶었는데 짐이 되어버렸다.

책을 그만 사야겠다는 마음을 다시 먹으며 아픈 허리며 무릎을 주물렀다(밤에 또 몇 권 주문했다..,,;;;)

그러곤 눈도 아프고 몸도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유투브 훑어보다 알라딘 크레마 사운드 개봉후기를 보고 말았다.

 

이제껏 한번도 전자책단말기를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데 어제 그 영상을 보고 담박에 이거 사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아, 이런, 하늘이 말리시나... 잠시 품절. 4월에나 입고된다나 어쩐대나. 중고매장에 가면 구할수 있는데 그렇게 할까..

다른 기기들 비교도 해보고 사야하나. 그래도 일단 크레마사운드에 꽂혔는데.

어떻게 종이책이 주는 위안과 흥미, 전자책이 주는 수동성이 단 일초도 떠오르지 않고 이거 사야지 라는 생각을 했을까.

무모한 즉흥성에 휘둘리는 사태가 발생한 것인지.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지금쯤은 종이책 읽는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을지라도 그 맛을 잃지 않으면서도 편리한 기능을 탑재한 전자기기가 되었을 것이야.. 주문을 걸어본다. 

 

종이책과 전자책이 집중도에서 어떠한 차이를 보일지 궁금하다. 전자책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집중도의 차이였다.

글자가 아니라 그냥 이미지였다. 해독이 잘 안되는. 그냥 들여다볼 뿐 그것이 의미로 전달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첫문장부터 몇번을 다시 읽어야했다. 모니터로 인터넷 기사를 읽는다든지 하는 것과는 다른, 책이라는 부담을 미리부터 지우고 읽는 거라서 그런건지 여튼 전자책으로는 독서가 힘들었다. 지금부터는 달라질 것인가. 달라질 것 같다.

종이책으로 읽을때도 집중이 잘 안되는건 마찬가지가 됐으니까.

앞으로 이사나 일시적으로라도 거주지를 옮기는 일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때마다 책상자 들고 다니고 배치하는(책을 책꽂이에 나름의 질서대로 꽂아두는 작업을 할때의 왠지 모를 충만함이나 즐거움은 종이책이 주는 즐거움의 하나였다. 지금 가지고 있는 종이책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일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젠 진짜로,심각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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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4부작에 대한 한줄평, 추천사가 많지만 그중 내게 신호를 보내온 말은 브라질의 시사잡지 <베하>의 것과 영국 <가디언>지의 것이다.

 

- 자전소설을 쓴 노르웨이의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와 이탈리아의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은 정말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지금 그들에 대해 토론해야만 한다. (베하)

 

 

-  ‘나폴리 4부작’은 활기차다기보다는 매우 열정적이다. 특히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후보작에 오른 ‘나폴리 4부작’의 마지막 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는 정말 최고다. 페란테는 여성의 성과 그것이 갖는 모순적 충동성에 대해 당황스러울 정도로 노골적이고 솔직하게 썼다. (가디언)

 

 

엘레나 페렌테라는 필명으로 대중에게 드러내지 않으며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로 알려졌는데 이 나폴리4부작은 자전적 소설이라 할만하다. 자신의 모든 게 이 소설에 들어있다고 밝혔다 한다.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가 1968년생인데 엘레나 페렌테의 출생연도는 알 수 없다.1992년에 첫작품을 발표했다. 크나우스고르의 데뷔는 1998년이다. ....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은 1권을 읽다가 중단한 상태인데 비교하며 읽어볼만 하겠다.  

(두 작가의 작품 모두 공교롭게도 한길사에서 출간한다. 기획을 잘 잡은 것인가.)

 

또 프루스트와 톨스토이와도 비교한다는 페란테. 나 역시 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를 읽으면서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니나]를 떠올렸다. 두 작품 모두 불륜을 다룬다. 시간을 견뎌온 고전과 동시대의 작품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는 뭘까 고민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도. 자전적이며 지독히 내밀한 의식의 밑바닥까지 훑어가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가디언지의 '여성의 성과 그것의 모순적 충동성'도 생각해볼 여지가 많은듯하다

피에트로가 레누를 평했듯이, '어중간한 페미니즘, 어중간한 마르크시즘, 어중간한 프로이트주의, 어중간한 푸코이즘, 어중간한 체제전복주의'(잃어버리 아이 이야기, 552)에 근접할 것이다.

평생 릴라를 쫓고 릴라가 뭘 하는지 궁금해하며, 그녀를 평하는 기준으로 자신을 학대하고, 혹여라도 자신을 뛰어넘고 그때문에 자신의 발밑이 허물어뜨릴 수 있는 무언가를 들고 나타난날지 모른다고 상상하며 초조해하는 마음을 안고 사는 레누. 끝까지 이러한 질시를 놓치지 않고 묘사해내는 걸 읽으면서 지독하다는 생각을 했다.

장르소설로 가지 않고 이런 주제로 써낸 소설이 또 어디 있나. 과문해서, 언뜻 떠오르는 게 없다.

차라리 장르를 차용해 썼다면 더 솔직하고 더 지독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릴라의 얘기를 보고 싶다. 그런면에서 레누의 얘기는 옮긴이가 '변명'이라고 했지만 솔직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눈부신 친구'란 .. 얼마나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지.

질투(嫉妬)와 질시(嫉視)의 질'嫉' 모두 계집녀변이 들어간다는 게 참 .. 생각해볼 일이다.

질투의 투'妬'에도 계집녀변이 들어갔으며 두 낱말 모두 시샘하다는 뜻이 들어있다.

'질시'라고 나는 썼지만 릴라와 레누의 관계를 질시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로 읽는다는 건 남의 다리 긁는 느낌이기도 하고. 좀더 생각해볼 일이다.

<베하>의 말처럼 우리는 당장 '토론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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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2-26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의 투쟁 1권을 읽다가 포기한 사람으로서
오늘 포스트잇님의 글은 안 읽을 수가 없네요.
이 두 작품이 또 톨스토이와 프루스트를 관통하고 있다니
상당히 의미있는 독서가 될 것 같군요. 읽게다면 말입니다.ㅋ

나의 투쟁 1권을 중고샵에 넘길까 생각중이었는데
일단은 보류해야할 것 같군요.^^

포스트잇 2018-02-26 19:35   좋아요 0 | URL
나의투쟁은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그 반대라서 나중에 한꺼번에 읽길 기대하고 접어뒀었거든요. 중고샵, 노노! 나폴리 4부작은 생각할거리를 던져준다는점에서 관심갖고 읽어볼만 합니다. 두 여성 인물이 마음에 들진 않습니다만.

stella.K 2018-02-26 19:52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 거였군요.
사실 저는 나의 투쟁이 의미있는 작품이란 건 인정하겠더군요.
솔직히 유명한 사람의 자서전이나 평전은 많이 읽어주지만
이런 잘 알려지지 않는 사람의 이런 두께의 작품을 읽어줄까?
솔직히 작가라면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역시 독자로서 읽어주기엔 버겁겠다 싶더군요.
근데 포스트잇님 같은 독자가 있다면 도전해 볼 가치는 있겠군요.^^

포스트잇 2018-02-26 23:16   좋아요 0 | URL
ㅎㅎ 써서 출판되고 유통까지 된다면 세상 누군가는 읽지 않을까요?
엘레나 글중에 ‘감정에 형태를 부여하고자하는 노력‘을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작가의 노력 중 일부를 말한건데, 나의투쟁의 글쓰기에도 아마 그런게 있을것같습니다. 책읽는 이유중 하나 아닐까요..
 

어쩌다보니 나폴리4부작 한권 뗄때마다 포스팅을 하게 되네.

3권 <떠나간자와 머무른자>는... 실망스럽다.

이런 내용을 보고자 한 게 아닌데..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또 일상생활에서도 별로 듣고 싶어하지 않는 얘기들이 나온다.

뒷쪽으로 갈수록 대충대충 읽었다.

4권도 얼른 읽어야겠다. 이책 읽느라 많은 책들을 미뤄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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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4부작 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자]를 읽고 있는데 지금 당장 읽어야 할 책은 이 책인 듯 싶다.

[이탈리아 현대사 : 반파시즘 저항운동에서 이탈리아공산당의 몰락까지]

폴 긴스버그는 이탈리아 현대사의 권위있는 저자라니 책 또한 믿을만하겠지.

다루고 있는 시기도 1943~1988년이다. 소설속의 시기와 겹친다.

3권 [떠나간자와 머무른자] 초반부는 릴라의 얘기인데, 이때는 시점이 릴라로 바뀐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레누의 1인칭 시점에서(물론 시시때때로 흔들리지만) 전개되다가 본격적인 릴라의 얘기를 하기 위해선 릴라의 시점으로 얘기를 전개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첫소설로 메가 홈런을 터뜨린 레누는 피에트로와 결혼을 앞두고 나폴리를 떠나기 전 릴라로부터 와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릴라는 햄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1960년대 후반 이탈리아 노동사를 배경으로 릴라의 전락이 전개된다.

파시스트와 공장을 반파시스트 운동과 노동운동의 거점으로 삼은 공산주의자와 좌파세력의 대결 한가운데 릴라를 위치시키고 있다. 평범한 노동자 릴라. 부르주아에서 노동자로 변모한 릴라의 의식은 인권과 노동권리를 착취하는 공장주나 이들 계급을 사수하는 파시스트들을 혐오하지만 이와 비슷한 강도로, 노동자를 교육시키고 각성시키려 하며 공장을 혁명의 거점으로 삼는 좌파인사들도 경멸한다.

릴라같은 유형에서 볼 수 있는 '경멸'. 결핍이 주는 질시에서 비롯한 경멸. 자신의 고통이 전부인. 타인의 고통에 대해선 무심하다.

 

이책의 시기구분에 따르면 50년대 후반부터 경제'기적'에 이은 이농과 사회변형이 일어나고 소설의 시기인 1968년과 이후 73년까지의 집단행동의 시대는 "1969년의 '뜨거운 가을', 공장 평의회 운동과 자율주의 정치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이탈리아'를 건설하고자 분투한 이탈리아 민중의 역사"이다. 이 시기 햄공장의 노동자 릴라를 작가가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탈리아 현대사]도.

 

 

 

 

 

 

 

 

 

 

 

 

 

 

 

 

 

 

 

 

 

 

 

 

 

 

 

변화와 변질에 대해 생각한다. 변신이 아니라 변질 모티프.

릴라의 두려움은 '형체의 경계가 사라지는것' 이라고 번역해놓았는데, 알아왔던 모습이 어느 시기부터 괴물같은 악으로 허물어져 변질되는 인간들을 겪어온 릴라의 두려움을 표현한 것이다.

레누에게는 기원의 두려움이 있다. 기원 혹은 뿌리. 다리를 저는 어머니가 상기시키는 기원.

자신도 언젠가는 어머니처럼 다리를 절게 될 거라는 어린시절 레누의 두려움.

레누는 그 기원 혹은 뿌리로부터 도망치려고 노력해왔다. 그것은 나폴리를 떠나고 싶어하는 꿈이고 결국 그 꿈을 이뤄냈는데 작가로서 레누는 또 그 두려움을 얼마나 떨쳐내며 달아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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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4부작 중 2부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1부를 읽고 2부 초반을 읽으면서도 줄곧 이걸 계속 읽어야하나 접어야하나 고민했던 것 같다.

그래도 끝까지 읽게 되는 건 어쨌든 이야기 힘이 있어서이고, 무엇보다 두 여자, 레누와 그녀의 감정조종자 릴라 간의 치열한 갈등, 싸움이 어쩐지 낯설지 않아서였다.

감정조종자는 흔히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에게 붙이곤 하는데 릴라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만큼 영악하게 상대의 마음이나 심리를 간파하여 가장 악랄하게 혹은 가장 상처입힐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을 통해 상대를 무력화시키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만들며 상처받게 할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는 말이다.

두 여자의 이런 갈등의 궤적을 따라가며 읽게 되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지만 어쩌면 많은 이들이 이런 관계를 경험해보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릴라가 화자가 되지 못하고 레누같은 유형이 화자가 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릴라같은 유형과 얽히면서 겪게 되는 감정소모는 실로 심각할 수 있어서 레누보다도 더 예민한 감성을 가졌다면 관계를 끊어야 한다. 비극은 레누같은 유형이 모질지 못하고 릴라에게 더욱 의존하게 된다는 데 있다. 

의존하지 않는다해도 강렬한 마성을 내뿜는 상대가 벌이는 "새로운 일을 함께 하지 못할까봐 두려워"(383)하는 호기심과 외로움에 관계를 쉽게 끊지 못한다. 작가가 잘 분석해 표현했듯이 "나만의 열망을 느끼고 붙잡지 못"하기에 자신의 삶보다 상대의 삶이 진짜같다는 열등감에서 허우적댄다.

릴라처럼 이런 상대는 대체로 삶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이 움직인다. 고통의 현시. 비극의 과시. 그들의 이야기는 늘 험난하고 불운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겪어낸 얘기들이다. 피할 수 있는 일들을 그들은 애써 피하지 않으며 극단적 갈등과 싸움을 겪어낸다.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레누같은 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데 그걸 무시하지 못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감정소모.

이제 나폴리 4부작 나머지는 갈등하지 않고 내리 읽을 수 있겠다.

두 여자의 끝은 어떠할지 너무 궁금하다.

 

 

 

 

 

 

 

 

 

 

 

 

 

 

 

 

 

 

 

 

 

 

 

 

 

 

 

 

지금까지 읽다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두권의 책을 만났다.

한권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와 다른 한권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는 레누가 어린시절부터 좋아했던 책이며 대학졸업논문 주제도 아이네이스이다.

디도와 아이네아스의 사랑얘기는 어린 레누의 상상력을 통해 한껏 부풀기도 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얘기라서 빠른 시일내에 읽어보고 싶다.

 

 

 

 

 

 

 

 

 

 

 

 

 

 

 

 

[율리시스]는 어린 아들 리누초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나가 읽던 릴라의 책이다.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유모차를 옆에 두고 벤치에 앉아 녹색 표지의 두꺼운 책을 보고 있는 릴라의 모습이 그려지고, 초등학교 선생님이 깡마른 늙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오디세이에 대한 책이냐"고 묻자 릴라는 "현세가 얼마나 비참한지에 대해 쓴 책"이라고 대답한다.

책이 어떠냐고 묻자 릴라는 어려워서 다 이해하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읽는 거니?"라고 선생이 묻고 릴라는 "제가 알던 사람도 읽었거든요.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라고 대답한다.

너는 어떠냐고 묻는 선생에게 릴라는 자신은 마음에 든다고 대답한다. 어려워도 말이다.

선생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책은 읽지 말라고, 상처만 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릴라의 대답은 이렇다.

"상처받을 만한 일이 어디 이것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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