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의 존 윌리엄스의 1972년 소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최초 황제로 등극한 아우구스투스의 전기다. 

연대기적 서술이 아니라 각종 기록물, 서한, 저술 등의 기록을 편집하여 아우구스투스의 삶을 통찰할 수 있도록 한 독특한 전기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책 말미에 붙어 있는 대니얼 멘더슨의 해설에 따르면 1부는 아우구스투스의 대중적, 정치적 무대에서의 성공을, 2부는 사적이고 정서적 무대에서의 실패를 다룬다고 한다. 

나는 아직 1부도 채 읽지 못했다. 

아우구스투스가 제2차 삼두정을 이루던 정적들을 차례차례 물리치고 황제에 오르기전 마지막 결전 BC31년 악티움해전을 앞두고 있는 지점에서, 나는 이 소설을 계속 읽어야할지, 중단하고 차라리 아우구스투스 관련 서적을 읽는 게 나을지 고민하고 있다. 

[스토너] 보다 작품성을 더 인정받고 전미도서협회의 상을 받기도 했다는데 독특하게 전기를 엮어가는 사고의 발상과 집필의 수고로움을 느낄 수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차라리 아우구스투스 평전이나 로마 공화정과 제국에 대한 서적을 읽는 게 나은 게 아닐까 흥정하게 된다. 

2부 사적이고 정서적 무대에서의 실패는 [스토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아우구스투스의 '실패'는 결국 딸 율리아와 관련된 슬픔 때문이기도 하다. 

[스토너]의 딸 그레이스와 [아우구스투스]의 딸 율리아.

결국 이 소설을 계속 읽게 된다면 2부의 궁금증 때문일 것 같지만 아직은 모르겠다. 


아우구스투스에 대해서 짐작할 수 있는 건 편지나 기록물 등 타인의 회상이나, 말, 기록에 의해 부조될 분 정작 아우구스투스 본인의 목소리는 소설 마지막에서야 나온다고 한다.  

아우구스투스에 대해 '제안'할 뿐 ''재현'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창작 원칙이 흥미롭긴 하지만. 

결국 내가 쫓는 건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인물, 아우구스투스는 도대체 어떤 종류의 인물인가.. 일텐데 소설적 부조에 의해서보다는 전기물, 역사서를 읽는 게 빠르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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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맞는 하루가 될 듯하야 마음이 분주하다 .

내년에 정권교체하고 나의 운도 좀 펴졌으면 좋겠다. 

MB이후 10년간 힘들었다. 개인적으로도 운이 기울었던 날들이었다. 

젊음은 영 가버렸지만 상식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4년만큼 힘들지는 않은 한해였다. 그래도 올해는 희망을 조금이라도 그릴 수 있는 마무리를 하는 듯해서 좋다. 

내년엔 올해 계획만 했지 완성하지 못한 일을 해야겠다. 

감당할 수 있는 일들만 있길 바란다. 

2017년이여 어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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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12-31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스트잇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포스트잇 2016-12-31 12:47   좋아요 0 | URL
곰곰발님께서도 새해 좋은 일 많으시길 바랍니다^^
 

그런 단어, 혹은 문장이 있다.
딱 한단어, 혹은 짧은 문장.

˝삶 자체를 졸인 듯한 향기˝

2005년 맨부커상 수상작 존 벤빌의 [바다] 49페이지


마치 김훈이 마음에 든 문장 하나 쓰고는 놀았듯이, 때론 그날 책을 더이상 읽지 않아도 될것만 같은 그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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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이 먼 미래 SF에나 나올법한 연도라고 생각했다. 

6년밖에 남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날짜감각이 둔해지며 진짜인가 싶었다. 

2022년은 '위대한' 모더니스트 문학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온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존 서덜랜드가 [문학의 역사](결코 작지 않은 역사 시리즈)에서 꼽은 1922년은 "모든 것을 바꾼 해"였다. 

그 선봉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조지 엘리엇의 <황무지>가 있고, 비록 출간은 1925년이었지만 버지니아 울프가 [댈러웨이 부인]을 구상하고 착수한 것도 바로 이 해였다. 

모더니즘 문학은 "당대의 압도적인 대중문화 속에서 소수 취향을 강력하게 표현했다." 엘리엇, 에즈라 파운드, 버지니아 울프, 예이츠.. 이들에게 대중은 무관심했다. 

존 서덜랜드는 위대한 문학작품은 시간을 견디고 계속 누군가의 서가에 꽂혀있는 것임을 드러내보이고자 하는 듯하다. 

1922년 계관시인 로버트 브리지스는 잊혀졌지만 <황무지>는 살아남았다. 

조이스는, 울프는 또 어떤가. 

내 서가에도 있지만 읽지는 못했다. 

어쨌든 2022년 100주년에 나도 동참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당장 병신년에 끝내야 할 일은 끝냈으면 좋겠다.........만은 해를 넘기고도 긴 싸움을 통과해야 할 것 같다. 

문제는 언제나 직접과 대의인것 같다. 

대의는 직접의 정확한 비례여야 한다. 

지금은 너무 왜곡되어 있어 대의하지 못하고 오히려 장벽이다. 
















 

관심저자들의 새책이 나왔다. 

저마다 열심히 책을 읽고 책을 쓰고 펴내고 ... 다들 열심히 살고 있구나. 

나는 열심히... 놀고 있다 라라랜드~








 








김용규의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1 - 혁명 이데올로기 편],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2 - 시간 언어 편]


테리 이글턴의 [인생의 의미]


그리고 책 무지하게 닥치는대로 읽고 그중에서 골라 글을 쓰는 저자들의 책

이런 책들은 원작을 읽어보고 싶게 하는 후크북이다. 그런데 정작 원작을 읽는 일은 얼마나 고된 일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민음사판으로는 2권에서 멈춰있다. 흑. 





 채사장의 [열한계단]

 팟캐스트 지대넓얇으로 알려진 채사장의 책. 

 자주 듣는 편은 아니고, 저서도 읽어본적이 없는데 이번책은 아마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책을 

 선정해서 다루고 있는 듯하다. 이번엔 읽어볼 생각이다. 











 정시몬의 [세계문학브런치]

 저자는 이미 원전을 곁들인 인문학 시리즈로 세계사와 철학을 다룬바 있다. 

 와 대단하다. 대단해.  












  이진숙의

  [롤리타는 없다 - 그림과 문학으로 깨우는 공감의 인문학]

  처음 보는 저자. 

 고전작품과 그림을 통해 '공감'을 다룬다는데 고전작품을 보는 

 몇가지 방법 중 하나를 제시해줄 것 같아 흥미를 끌었다. 













  그리고 커트보네킷(보네커트)의 [제5도살장]이 문학동네에서 정영목의 번역으로 

  재출간되었다. 

  절판된 책을 도서간에서 빌려 읽었는데 재출간되면 꼭 소장했다가 두고두고 읽어야겠다고 생각  했던 책이다. 긴 기다림끝에 결국 나오긴 했다. 

 







그리고 새로나온 제인오스틴의 아직 갖고 있지 않은 작품들.

오스틴의 소설들은 [오만과 편견] 외에 읽은 게 없고 영화도 ... 기억이 없다. 

[오만과 편견]도 그닥 흥미롭게 읽은 건 아니라서 이번 기회에 읽지도 않고 가지고만 있던 오스틴의 작품과 함께 전작읽기에 도전해...볼까............ 

요새 표지들은 벽지가 유행인가.

웬 꽃무늬벽지 잔치들? 민음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꽃벽지들이던데. 

곷무늬벽지는 영국 모던 빈티지 브랜드 캐스 키드슨의 작품이라고 한다. 

벽지가 아니고 패턴이고... 

어쨌든 난 이 세권만 구입하련다. 

















정은궐의 [홍천기]

[해를 품은 달]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등으로 유명한 작가의 새 작품.

모두 드라마화되어 흥미롭게 봤던터라 이번에는 원작을 좀 읽어볼까 한다. 

정은궐이란 작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게 없는 걸로 들었다. 이름도 가명이고.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하던데 그것도 꽤 오래전 들었던터라 지금은 밝혀졌나 모르겠다. 

회사를 다니면서 초대박 흥행작을 쓴 것이다. 

작가 자체가 신비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소설을 읽어본적이 없어 어느 수준인지 알 수는 없지만 조선의 역사나 풍속에 대한 공부가 탄탄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취재에 당연히 공을 들였겠지만 지식과 상상력이 제법 명랑해서 궁금했다. 

글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읽다 던져버리지 않을 정도면 된다. 


















플로베르의 [세가지 이야기]가 문학동네에서 나왔다. 

줄리안 반즈의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읽다가 알게 된 플로베르의 마지막 작품. 세편의 단편이 들어있는 단편집.

역시 기억이 잘 안난다. 아마도 [순박한 마음]한편 읽었던 것 같은데 앵무새에 대한 얘기였던 걸로만 기억한다. 

플로베르는 내겐 어려운 작가다. 

내용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것 같은데 이 별로 특별하지 않은 것이 특별하다. 

















11월은 서성거리다가 한달이 지나가버렸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달이다. 

12월에는 그러지 않으리라고 말할 수 없다. 

지금 이 시기에 읽을 수 있는 책이 뭘까 ... 

꺼내든 책은 디킨스의 [두도시 이야기]이다. 

1775년, 그리고 1794년. 

파리와 런던. 

혁명

......

밥말리의 자메이카도 있지만 난 다시 과거로 돌아갔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우리에겐 지금이 최고도 아니고 ... 안타깝게도 최악도 아닐 것이다. 

군부쿠데타가 불가능한 것처럼 민중의 폭력적 혁명도 불가능한 시대라고 본다. 

물론 어긋날 수 있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분노하는 한편 주권적 우울도 있다. 

"주권자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훼손되고 부정되는 과정에서 생긴 마음의 부서짐." (김홍중)

부서지지 않으려면 뭐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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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힌 타이밍아닌가 싶다.

서울을 떠나 이곳에 온지 11개월이 지났다. 내달이면 1년. 딱 이때 이 난리가 났다. 
언제나 중심은 서울이었지만 결국 희생되는 건 지방이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로서는(적어도 나는) 가끔 악몽처럼(이제 다시는 결코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저렇게 서울은 축제처럼 모였다가 흩어진 그 시점 서울이 아닌 다른 어딘에선가 비극이 시작되는 건 아닌가 라는 환상을 보곤 한다. 고립된 채 말이다. 지금 다시 어딘가 누군가가 고립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그렇게는 안될 것이다. 

사태 벌어진지 3주가 흐르고 있는데 그동안 읽고 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도저히 잘 읽히지 않았다. 읽다가 둔 [스토너]를 잡고서 완독했다. 많은 이들이 좋다고 할 때는 마땅히 그럴만하다. 좋다. 가슴아픈 소설이었다고 할까. 이 소설에 대한 탁월한 리뷰는 이미 나와 있기에 더 첨언하지 않아도 괜찮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순수한 감동을 오래 느낄만한 작품이다.스토너 그는 그냥 돌처럼 거기 있는 사람이다. 움직이지 않는다. 불행한 결혼에도, 스스로 벌하는 딸의 망가져 가는 모습에도, 그의 생에서 가장 따스했던 연인과의 한때도 그는 움직이지 않다가 맞이하고 보낸다. 
결국 죽음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고작 1권 <스완네 집 쪽으로> 2부 스완의 사랑에서 이 소설을 내가 계속 읽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됐다. 
[잃어버린 시간]은 총 7권으로 그중 이 1권이 가장 재미없다고 [고전의 유혹] 잭 매니건이 언급했기에 그러려니 하고 읽고 있는데 2부 스완의 사랑은 정말이지 꽤나 인내심을 요한다. 
부르주아지 스완은 전통적 귀족가문인 베르뒤랭가의 살롱에서 오데트를 만난다. 스완 자신의 여인상도 아닌 오데트를 스완은 보티첼리의 그림속 여인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질 들뢰즈가 간파했듯이 [잃어버린 시간]은 추억의 전시장이 아니라 '기호들'을 배워나가는 과정이다. 1부의 화자 나(마르셸)가 아니라 3인칭으로 옮겨서 보게되는 스완의 사랑은 연인 오데트에게 '감춰져 있는(감춰져 있다고 보이는)' 세계가 던지는 기호들을 해독하면서 환희와 질투 사이를 진동하는 지랄맞은 시간이다. 
오, 나는 이런 진동의 시간을 견딜 수 없다. 나는 왜 이런 게 재미없을까.
[잃어버린 시간]을 완독하기 위해 몇번의 독서 위기를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첫번째 고비다. 지금 3주째 붙잡고 있지만 건너 뛰고 읽으면 안될까를 몇번씩 생각한다. 












[스완의 사랑]이 지겹고 지쳐서 [스토너]로 책을 바꿔서 머리를 식혔고(?) 다시 도전했다가 또다시 지쳤기에 다시한번 딴 책으로 우회했다가 돌아와야 할 것 같다. 
신간도서로 구입한 책들은 맨부커상 수상작들이다.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에서 한강의 수상으로 맨부커상이 특히나 관심받고 있는 모양인데 정작 한강의 작품은 읽은 게 없다. 내가 우리나라 작가들의 글을 안읽어도 너무 안읽는다. 번역문장에 너무 길들여지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되기까지 한다. 

2015년 맨부커상 수상작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말런 제임스)과 2005년 수상작 [바다](존 배빌).
저마다 화제성으로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인 모양이다. 
[일곱건의]는 '심사위원 토론 두시간만에 만장일치 결정', 자메이카의 전설적 레게 황제 밥 말리의 암살미수산건에 대한 이야기...    
'살인', '역사', '밥 말리'... 키워드들이 충분히 끌어당길만하다. 
2권 뒷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채택되어 박혀있다.


위험한 거지, 평화라는 건.
평화는 사람을 멍청하게 만드니까. 
좋은 시절은 누군가에게는 나쁜 시절이야.


자메이카라는 익숙치 않은 공간과 역사, 1976년 실제 사건. 평화콘서트를 준비하던 밥 말리의 암살미수사건. 
인용한 말은 분명 악의 편에 선 사람의 말일 것이다.
혼돈과 폭력, 파괴의 시기에 이익을 얻는 사람의 말일 것이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로쟈님 말대로 '어떤 주제를 어느 수준으로 다루는지' 궁금해지는 책이다. 

















오늘도 광장에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나도 오후엔 이곳에서 벌어지는 집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박근혜의 정체는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로 처참한 수준임이 드러나고 있다. 
괴물도 아니고, 아니 괴물은 괴물인데 쓰레기같은, 바닥의 인간이다. 
이제 저 괴물은 가면도 벗고 날것의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가히 말로 할 수 없는 천박함이고 벌거벗은 민망함을 보게 하기에 이런 보도듣도 못한 대상과의 싸움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끝이 어떻게 될지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견딜만하다. 우리의 싸움은 이렇게도 명랑하기도 하니까. 저 평화콘서트는 어떻게 되는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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