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에게 무언가를 파는 건 독일의 전통이다."

 

금정연이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에서 쓴 문장이다.

이미 간파했군. .... 아마도 많은 이들이 간파한 모양이군.

독일의 파우스트 전설.

아마도 조금씩 다른 변주들이 전세계 전민족의 전설이나 우화속에 있지 않을까?

 

금정연은 네 가지 이야기를 소개한다.

파우스트 전설이야 읽히 알고있는 거고,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그리고 영화 <프라하의 대학생> 만화 [팀 랄러, 팔아버린 웃음](제임스 크뤼스).

각각 무엇을 팔며 거래했는지는 직접 봐야할 것.

저자는 [팀 탈러, 팔아버린 웃음]의 추천사로 이 글을 썼다.

아동만화라는데 처음 만나는 작가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나 역시 이런 류의 거래에 대해 어린시절부터 꾸준히 생각해왔다.

한번도 정리해두고자 마음 먹어본 적 없는데 앞으로는 좀 적어놔야겠다.

이런 거래는 갑작스럽게 오는 거거든.

예고하고 미리 준비하라는 언질 없이 오기 십상이라 늘 생각해둬야 한다.

나는 무얼 얻고 무얼 잃어도 괜찮은가.

 

어릴 때 들었던 우화에 대해 자기 전에 누워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세가지 소원> 이야기. 이건 거래는 아니고 우연히 생긴 기회에 대한 이야기.

자세한 걸 기억나지 않지만 노부부가 사는 오두막에 천사인지 선인지 여튼 선한 능력자가 나타나 신세를 지고 그 신세에 보답하고자 세가지 소원을 말해보라고 한다.

가난한 할아버지는 늘 배고팠기에 소세지를 먹고 싶다고 엉겹결에 말했고, 소세지가 생기자 할머니가 고작해서 그깟 소세지를 달랬냐고 ;화를 내며 그 소세지가 할아버지 코에나 붙었으면 좋겠다고 또 홧김에 말하고, 그러자 소세지는 할아버지 코에 붙어버린다. 두 가지 소원을 써버린 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낙담하며 마지막 소원으로 소세지가 코에서 떨어져 원래대로 돌아가길 빈다. 이리하여 가난하고 소박했던 두 노인은 더 허탈한 마음이 되었다나 어쨌다나.. 뭐 그런.

할머니가 나쁜 심성을 가졌다면 할아버지 코에 소세지가 붙었든 어쨌든 할머니 소원을 말했을지도 모른다.

이게 교훈 아니냐?

착하게 살자가 아니고. 

 

악마와의 거래든, 세가지 소원이든 어쨌든 웃으면서 혹은 컨디션이 상당히 좋을 때 기회가 오면 아마도 낙천적인 기회를 잡지 않을까. 세상 비관스럽고 절망적일때 이런 기회가 오면 십중팔구 불행을 가져오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니 평소에 몸과 정신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맞춰두자. 

........ 기회가 오기전에 조울증이 올 것 같다고? ........  그럴수도. 

 

 

<프라하의 대학생>은 정체가 불분명하긴 한데 파우스트 전설 + 호프만 + 에드가 알랭 포의 단편 [윌리엄 윌슨]의 요소를 차용하여 만든 영화라는데 (참고 http://ephilosophy.kr/han/50573/) 지그프리드 크라카우어의 [From Caligari to Hitler : A Psychological History of the German Film)에서도 언급되는 모양인데 이책 아직 번역되지 않은 건가? 그 유명한 책이 아직 번역이 안됐다고? 놀라워라.

 

크라카우어의 책은 [역사 : 끝에서 두번째 세계}가 번역되어 있다.

사색짙은 인문학서인듯한데 뜻밖의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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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6-11 0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슐리밀의 기이한 이약 저거... 그림자 판 사나이 아닌가요 ? 맞군요.. 찾아보니..

포스트잇 2017-06-11 06:18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마치 동화속의 이야기같지만 ..읽어보고 싶네요.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은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불친절하다.

의식의 흐름이 아니라 반스에 의해 선택된 온갖 자료들, 글들, 단상들의 흐름이다.

많은 음악가들, 쇼스타코비치가 원망하거나 조롱하거나 숭배했거나 염려했던 당대 음악가들이 소환되어 나오지만 독자로서 그들을 잘 알지 못한다면 판단이 쉽지 않다.

[플로베르의 앵무새]에서는 플로베르를 탐구하는 가상의 화자라도 세웠지만 [시대의 소음]은 그마저도 없다.

'그'. 뭔 대명사 사용이 이리많나.

내가 이상한건가. 유난히 그, 그, 걸린다.

 

조금씩 읽고 있다. 

줄러언 반스라면, 읽을만하다. 

 

 

 

 

 

 

 

 

 

 

 

 

 

 

 

 

솔로몬 볼코프가 엮은 쇼스타코비치의 [증언]이라는 책도 있군.

쇼스타코비치에 대해 알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책 같다.

솔로몬 볼코프의 문화사도 들여댜볼만 한듯.

미처 몰랐던 책들.

 

쉽게 읽히지 않는 책들은 단숨에 읽는 게 아니라 매일 조금씩 읽어도 괜찮다는 걸 배워야겠다..

그렇다면.

 

20170610

반스가 쓴 쇼스타코비치의 전기를 읽었다고 해야겠다. 

예술이 시대의 폭력과 만날 때 예술가는 어떠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도 너무나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사례들.

반스의 형식.

쇼스타코비치의 내적 투쟁이라 할 수 있는 시대와 자신의 갈등의 내면을 정교하게 구성하고, 한편으로는 당대 음악가들의 또다른 모습들도(쇼스타코비치의 내면을 거쳐) 적절하게 등장한다.

쇼스타코비치 인생의 주요한 국면들을 윤년이라는 모티프를 잡아 구성한 것도 대단히 인상적이었고 뛰어나다고 할만하다. 

문장들은 원숙하고 통찰력에 감탄할만하고 공감가는 것들로 꽉 차 있다. 

특히 죽음과 관련한 반스의 통찰에 책을 놓고 잠시 묵상하곤 했다. 

언젠가부터 내가 줄곧 생각해왔던 것들. 나 또한 희망했던 것들.

때가 되면, 제게 용기를 주옵소서, 기도하고 싶은 그 때.

 

뛰어난 작품이다. 그렇지만 반스가 취한 쇼스타코비치의 스탠스가 거리를 두게 만든다.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사례들, 어쩌면 더 기가막히고 풍부한 사례들이 떠올라서일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를 작가가 어떻게 전달하는가.

 

최근에도 볼 수 있던 장면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와 그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던 80년 광주의 버스운전기사.

수많은 이낙연과 김훈들.

"늑대는 양의 공포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박근혜 재판에서 유영하라는 작자가 블랙리스트 작성과 시행 지시를 놓고 내적 투쟁을 했을지도 모를 공무원들에게 '구질구질'하다고 내뱉은 언사.

우리가 결정했던 운명에 우리는 매일매일을 쇼스타코비치처럼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건 단적으로 개인의 용기와 단호함만으로 모든 걸 정리할 수 없는 변명같은 현실들.

간혹 내가 저질렀던 겁쟁이의 모습에 지금도 가끔 이불킥을 한다.

몸서리처지는 부끄러움이 나를 휩쓸때면 나는 큰소리를 내며 기억을 떨쳐낸다.

왜 그때 나는 굴종했을까. .............

 

말년의 쇼스타코비치에게 있었다던 틱장애.

많은 우리가 가지게 된 이러저러한 틱장애.

 

이제 일흔하나가 된, 우리 나이로 일흔둘이 된 줄리언 반스가 더 많은 작품을 써줬으면 좋겠다.

 

더 나이 들어 젊은시절 가장 경멸했던 모습이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반스의 말이 틀리길 바란다. 

 

그러고보니 반스의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을 아직 읽지 못했다.

또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반스는 죽음에 대해 하루이틀 생각한 게 아닌 것이다.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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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7-06-08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기목록에 올려두었는데, 쉽지 않다는 것을 감안해 두겠습니다.

포스트잇 2017-06-08 13:10   좋아요 1 | URL
네, 전 내리 읽히지는 않더라구요. 저의 경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
 

세상엔 읽어줘야 할 작가들과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도 오늘은 관심 저자 책 좀 번역해 주라고 번역가들과 출판사에 간청 좀 해보자.

안다. 르 카레 수요독자가 얼마나 있겠나.

르 카레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의 책 카를라 3부작 중 2부에 해당하는 책도 쏙 빠져있을만큼 우리와의 만남은 불완전했다. 아, 물론 그 황금기를 우리나라도 놓치지 않고 번역한 건 맞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절판되거나 구하기 매우 매우 어려울 지경이다. 철지난 냉전 시대 스파이들의 이야기가 현재 독자들에게 먹히지 않을 거라고 견적이 이미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애정 좀 해주라.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다시 읽고 있는데 여전히 흥미롭더라.

또 [나이트 매니저]도 다시 나왔는데 지난 해 나온 묵직한 두 권의 책 정도는 우리도 가지면 안되겠는가.

 

자서전과 전기. .

 

 

 

 

 

 

 

 

 

 

 

 

 

 

 

르 카레의 자서전 [The Pigeon Tunnel : Stories from My Life]과 아담 시스맨Adam Sisman의 르 카레 전기 [John le Carre : the Biography]

시스맨의 전기는 존 르 카레의 긴 인터뷰를 바탕으로 집필된 것이다. 그런데도 르 카레는 자신의 자서전을 냈다.

가디언 기사에 따르면 두 책은 많은 면에서 겹친다. 그러나 르 카레는 이렇게 말한다.

 

"Real truth lies, if anywhere, not in facts, but in nuance."

 

최근 르 카레의 작들이 주로 중동문제와 소련 헤체 후의 갈등을 다루는 걸로 기울어져 있는듯했다.

관련해서 욕도 얻어먹었던 것 같다. 살만 루시디와의 언쟁과 화해도 그런 맥락 아니었던가 싶은데 주의깊게 읽을 필요가 있다.

1931년생이니까 올해 86세. 우리 나이로 87세인 르카레 옹은 다시 조지 스마일리를 부활시켜 새로운 작품을 쓰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솔직히 르 카레의 소설들은 한번 읽어서는 잘 모르겠다. 예전에도 한번 관심갖고 리뷰도 읽고 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영화 <팅테솔스>도 재밌게 봤는데 내 좌석 주위 사람들 진짜 열심히들 자더만. ㅎㅎ

이러니 저두권이 번역되어 나올 수 있을까. ㅠ ㅠ

게다가 책들도 어마무시하게 분량이 많아서 번역서는 진자 견적이 잘 안나올듯도 싶다. 크흐흑흑,,,;;;;;;;;;

 

 

영화 <팅테솔스>의 마지막 3분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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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6-05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레 형, 전집 나오면 사볼 의향 있는 1인입니다. 추운 나라.. 을 읽었을 때의 충격이 떠오르는군요..

포스트잇 2017-06-05 14:38   좋아요 0 | URL
좋아요, 아주 좋아요 ㅎㅎ 독자들이 있다는걸 알아야 번역될 가능성도 높아지겠지요? 추운나라..도 다시 읽고싶네요
 

신작들이 쏟아지고 있다.

관심 저자들의 신작 알림메일이 속속 도착했다.

문젠 돈과 시간.... 그리고 나이가 드니 체력도 문제가 된다.

다음달 초엔 하루키의 신작도 번역되어 나온다.

작고한 움베르토 에코가 남긴 마지막 소설도 내달이면 출간된다고 예고돼 있다.

 

아침에 알라딘이 예정했던 시간을 훌쩍 넘겨도 먹통이자 금단현상마냥 몇번씩 새로고침을 눌러제끼는 나를 보는 씁쓸함...

절판된 책 중고책을 주문했고, 몇권의 책들을 구입할까 망설이며 오전내내 서성였다. 미쳤음...

 

신작들(한겨레의 책과 삶에 소개된 좀 된 책들도 있고), 이 정도만 하겠다.

 

이언 매큐언의 [넛셀]은 '가장 파격적인 햄릿의 재해석'이라는 문구를 앞세우고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태아-햄릿, 가장 무력한 상태에서 지켜봐야 할 어떤 절대절명의 상황.

그동안 전문직의 윤리적 고뇌를 그려왔던 작가가 이번에는 상상력을 몰아부치며 쓴 소설이라고 하니 완전 기대.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은 쇼스타코비치 이야기이다. 

스탈린 시대 예술가의 존재론적 고뇌. 

죽느냐 사느냐, 두 종류의 작곡가만 있는 세계. "겁에 질린 채 살아 있는 작곡가들과, 죽은 작곡가들." (75)

 

"왜 제1주제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친 철강 노동자가 휘파람을 불지 않는거요?" (83)

 

아, ㅅㅂ, 소비에트 ㅈ까라 그래

.................... 대학시절 책으로 읽었던 그 혁명의 시대는 이제 아픔으로 닫혔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인류가 진보를 향한 의지를 가지고 행동해온 역사를 폄훼할 수 없다.

혁명 이후 혁명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는 추악해져만 갔다.

레닌까지는 괜찮아, ...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글에서 봤던가, 레닌이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산 자들의 목숨에 대해 말했던 것을.

굳이 옮기지 않겠다.

그 거대한 수용소로서 소비에트는 어쩔 건가.

인류는 또한번 실패했다.

레닌이 말했다, ""예술은 인민의 것이다." ...................................................

예술은 누구의 것인가? 쇼스타코비치를 통해 반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존 윌리엄스의 [아우구스투스]를 읽을 때도 들었던 생각이지만, 실존 인물, 그것도 꽤나 유명한 인물을 내세웠을 때는 전기나 평전을 읽지 않고 소설로 읽을 때는 작가의 해석한 그 인물의 뭔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줄리안 반스의 소설을 에세이소설이라고 칭한다.

절반쯤 읽고 있는데 반스의 최고작.... 운운은 지나친거 같다.

왜 이렇게 '그'라는 3인칭 대명사를 많이 쓰는지..

스탈린 체제하에서 천재적 작곡가가 겪어야 할 '공포와 수치'.

얼굴에 살이 살짝 붙은 존 레논같은 얼굴의 소심한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자신과 가족도 지키고 싶었고, 그러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음악가로서의 창조적 열망은 늘 그 공포를 뚫고 어김없이 튀어나오고 만다. 아, 문제적 인간들이란... 

호방한 영웅이 아니라 공포와 수치속에서 모멸감을 견디며 자신과 주위를 지키는 소심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했다.

'공포와 수치'는 문학수의 표현이다.

쇼스타코비치에 대해 정보를 찾다가 문학수의 [더클래식] 3권을 찾아봤는데, 문학수의 정보에 [시대의 소음]에서 다뤄지는 에피소드들이 겹친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실제로 쇼스타코비치가 셰익스피어를 좋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문제작에는 <므첸스크의 멕베스 부인>이 있다.

오래도록 무대에 올려져왔고 수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던 작품이 단 한 공연, 스탈린이 관람하다 중도에 나가버린 그 사건 후, ....... 당 공식 기관지가 비판적 사설을 실었다면 그건 단순히 한 작품에 대한 비평이 아니라 음악가의 존재 자체에 대한 안위의 여부가 되는 상황.

우리도 알잖아.

 

어쨌든 쇼스타코비치의 셰익스피어 사랑.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66번

 

이 모든 것에 지쳐 휴식 같은 죽음을 원하노라......

 

새로 번역된 A.C. 브래들리의 [셰익스피어 비극론].

19세기 저자의 고전적인 성격비평론.

 4대비극을 주인공의 성격 분석을 통해 비극을 해부한다는 오래된 저서인데 이미 이대석 교수가 80년대에 번역된 바 있다.

성격비평의 고전중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모양인데 이번에 나온 책은.... 역자들이... 믿을 수 있을지...

이대석 교수의 셰익스피어 연구서들도 함께 봐야 할 듯하다.

 

쇼스타코비치도 읽는 김에 소련에 대한 '목소리 소설' [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소비에트쿠스의 최후]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신작들 중 우리 저자들의 책은... 흥미가 당기는 게 없어서, .. 그 중 김원우의 [운미회상록]은 구한말 실존 인물 운미 민영익을 통해 극과 극으로 치달은 그의 운명과 근세조선의 운명을 겹쳐 놓았다. 우리 운명이 몰락으로 치달았던 때의 모든 것을 작가가 담지 않았을까 기대해본다.

정조와 정조이후도 그런 관점에서 흥미롭다. 르네상스 군주로 여기는 정조. 정조의 죽음 후 조선은 왜 그렇게 빠르게 몰락으로 미끄러져 갈 수 있었던가, 정조가 뿌린 씨에서 세도정치가 꽃피게 될 줄이야.. 역사는 늘 현재에 비쳐진 거울이다.  

 

 

 

 

 

 

 

 

 

 

 

 

 

 

 

 

줄리안 반스의 소설도, 이언 매큐언의 소설도 분량이 많지 않은 편. 3백 페이지를 넘지 않는다.

한 작가가 몇년, 심하게는 수십년 결려 한 작품을 발표하는 건데 분량도 중요한 거 아닌가.

요즘 우리 기준으로 4백 페이지 넘는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장르소설 작가들 뿐인 듯 싶다.

어리석고 허세스럽게도 나는 여전히 겨울 아랫목에서 뒹굴며 두꺼운 소설책에 빠져 읽던 그 시절의 나를 언제나 그리워한다.

어렸다고 세상 평안하고 안락하지는 않았었지만 그때처럼 이야기 좋아하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페이지 넘기는 게 아까울 정도로 흥미로우며 두~~꺼운 소설 내놓으란 말이다, 작가들이여.

 

왕은철의 책도 흥미로운 게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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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연의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은 몇년 전부터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던 글들을 모은 책이다.

열심히 써온 글들을 때가 되면 책으로 묶고 책으로 엮는 와중에도 글을 쓰고, 다시 어느 정도 모아지면 다시 책으로 묶고... 생활이다.

 

어제 받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나도 연출하고 있을 장면들(아마도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경험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지라 낄낄거리며 웃기도 하면서 아이고, 왜 이러고 살까(이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함) 한숨 쉬기도 하고, 여튼 출발은 좋다. 

이번 책은 책 표지도 마음에 들고, 제목은.... 금정연은 한번도 자신이 책 제목을 지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제목짓기에 잼병인 거다,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이라는 제목에는 질투심도 느껴진다.

'멋진' 보다는 '실패를 모르는'에 방점이 찍혀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마도 책을 읽는 누군가를 쓰러넘어뜨릴만큼 꽉차 있는 문장들의 향연.

짧은 글안에 글을 쓰도록 만든 한 문장을 고르고, 그 한문장의 의미에서 확장되거나 수렴되는 다른 몇권의 책들이나 문장들이 인용돼있다. 과연 하루에도 몇번씩 책상자들을 받아들고 책을 살피고 읽어왔을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부 삶과 문장 사이에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나는 실패한다

 

                                          

1부 '눈을 감고도 쓸 수 있는 소설의 첫문장'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룬다.

 

오래전부터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왔다. 

 

어마무시하게 방대한 그 소설의 첫문장은 바로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게다가 여기에는 싫어한다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3권도 잠깐 나온다. 

나올만한 에피소드가 실려 있으니까. 싫어해도 등장시킨 듯하다. 낄낄

나의 [잃어버린 시간]은 1권 스완네 집쪽으로.. 가다가 도착하지 못하고 저 민음사판으로 분권된 2권 2/3 지점 어디쯤에서 멈춰서버렸는데,

여기서 다시 이 문장들을 만나니 다시 스완네 집쪽으로 가야 할 듯 싶다.

 

마들렌과 차를 먹는 그 문제적 장면에 이어지는 문장들.

 

이제야 우리들의 꽃이란 꽃은 모조리, 스완 씨의 정원의 꽃이란 꽃은 모조리, 비본 내의 수련화 마을의 선량한 사람들과 그들의 조촐한 집들과 성당과 온 콩브레와 그 근방, 그러한 모든 것이 형태를 갖추고 뿌리를 내려, 마을과 정원과 더불어 나의 찻잔에서 나왔다.

 

프루스트의 [독서에 관하여]에서도,

 

 

만약 지금도 다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뒤척이기라도 하면 그 책들은 묻혀버린 날들을 간직한 유일한 달력들로 다가오고, 그 페이지들에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저택과 연못 들이 반사되어 보이는 것을 기대하게 되는것이다."

 

문장을, 책을 다시 읽게 하는 힘.

다시 프루스트를 꺼내와야 할 것 같다. ....

 

 

   

 

 

 

 

 

 

 

 

 

 

 

 

 

 

 

 

 

 

 

 

 

 

 

 

 

 

 

소심하리만큼 얌전한 제목과 표지를 가진 김정선의 [소설의 첫문장 : 다시 사는 삶을 위하여]와 함께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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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5-3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의 책들은 사두기만 하고
절대 읽지 않게 되네요 ㅠㅠ

포스트잇 2017-05-31 18:12   좋아요 0 | URL
그렇죠..저렇게 졸음을 번쩍 깨울 문장은 긴 독서끝에 나오는거라서 ㅎㅎ 다리를 다쳐 꼼짝 못할때나 ...어디 갇혀 별달리 할일이 없고 옆에 있는거라곤 ‘잃어버린 시간‘밖에 없다면 가능할수도 있지 않을까요 ㅎ

oren 2017-05-3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부턴가 저도 프루스트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오래도록 두고 두고 단단히 벼르고 난 뒤에 만나야만 끝장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지요. 저는 요즘 ‘오래도록 요리조리 피해 왔던 셰익스피어‘를 붙잡고 늘어지고 있답니다. 최종철 번역의 <민음사판 전집 시리즈>에 실린 16작품은 어느새 다 읽었네요. 언제 완간이 되어 나올지도 모르는 나머지 ‘출간 예정 전집 시리즈‘를 마냥 기다리는 것도 지칠 듯하여, 오늘은 퇴근길에 중고서점에 들러 아직 못 읽은 다른 작품을 몇 권 싼 값에 건져왔네요. 헤럴드 블룸에 따르면 셰익스피어와 프루스트가 ‘닮은 점‘도 있다고 하더군요.

* * *

성적 질투심을 극화시키는 데 뛰어난 작가가 셰익스피어와 프루스트

니체는 가장 햄릿적인 진술의 하나로 우리가 무언가를 위해 말을 찾아 내면 그것은 이미 우리 마음 속에서 죽어 있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래서 말하는 행위에는 일종의 경멸감이 들어 있다. 프루스트는 셰익스피어와 달리 이 경멸감에서 자유로웠다. 주요 인물들은 프루스트의 관대함을 나타낸다. 이기적 에고이즘은 셰익스피어만큼이나 프루스트의 성적인 질투심으로 표출하는 강한 관심이다.

감히 말하건대, 소설을 읽으면 질투가 완화된다. 그 가운데 성적 질투심이 가장 독성이 강하다. 이런 성적 질투심을 극화시키는 데 뛰어난 작가가 셰익스피어와 프루스트였다. 따라서 소설이란 ‘성적 질투심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고 축소해 볼 수 있다.

포스트잇 2017-05-31 21:43   좋아요 1 | URL
늘 부지런히,그리고 참 치열하고 치밀한 독서를 하시네요. 벌써 셰익스피어도 다 읽으셨네요.ㅎㅎ 셰익스피어와 프루스트라.. 흥미로운 관계네요. 전 가끔 셰익스피어가 구사하는 저주의 말들에 깜짝깜짝 놀랍니다.저주용례사전을 만들고 싶을만큼요.ㅎㅎ
프루스트는 산맥이라 무턱대고 올라가다간 도중에 내려오기 쉽상일듯요. 저도 가다 멈춘지 꽤 됩니다ㅠ 블룸의관점도 재밌네요. 제가 읽다만 지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어런 화자 마르셀의 눈에 비친 어른 스완의 사랑은 사랑의 환희와 질투와 의심의 극단을 진동하는데요...그 부분 읽다가 제가 지쳐버렸답니다. 다시 읽을땐 기호 해독하듯, 수수께끼 찾듯 블룸의 주제를 참고 삼아 ‘시간‘을 읽어야겠습니다.

포스트잇 2017-05-31 22:07   좋아요 1 | URL
그러고보면 ‘시간‘은 어린 마르셀이 잠자기전 엄마의 잠자리 키스를 기다리며 엄마를 늦게까지 붙잡고 있는 손님들을 질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니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