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야 할 문서들을 읽느라 점심 때를 훌쩍 넘겨 대충 요기를 한 뒤, 궁금한 책들을 알아볼겸 알라딘에 들어왔다가 불매운동과 관련한 글이며 댓글들을 살펴보는 중이다.   

불매운동은 알고 있었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글들이 넘 길어서... 모니터로 들여다보고 있기가 힘들다. 핑계라면 핑계고, 그래도 실상이 그렇다. ...  불매운동에 적극적인 알라디너들은 그 동안 알라딘에 애정을 갖고 열심히 책도 구입하고, 리뷰와 페이퍼들을 열정적으로 써왔던 분들인 듯하다.   

사건의 발단은 알겠는데, 이후 저마다 주장하는 분들의 견해를 다 읽기엔 넘 벅차다.

나야 뭐, 그저 가끔 책 주문하고 내키면 기억을 위해서라도 간략한 느낌 정도만 써놓는 정도인데 그래서 종종 서재에 먼지가 쌓이곤 한다. 서너 분의 서재를 즐겨찾기 하고 먼댓글은 거의 쓰지 않는다. 그럴 형편도 되지 않아서.  

불매운동 관련하여, 가장 많이 읽히는 대목이 알라딘에 대해 갖고 있었던 '진보적 기업'이라는 인식에 대한 것이다. 내가 알라딘에 서재를 만든 게 알라딘이 진보적 회사라는 인식을 가졌기 때문이었나? 돌이켜보면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인 듯하다. 다만, 알라딘에 대한 직접적인 인식을 가졌다기 보다는 알라디너들의 글의 수준, 성향을 접하면서 자연스레 타인의 인정을 통한 나의 인정을 거쳤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러나 우선적으로 인터넷 서점에 대한 관심이 싹트면서 몇 회사를 검토했던 것이고, 인터넷 서점에서 책이 유통되고, 책과 관련한 여러 담론들이 활용되는 방식에 관심을 가진 것이지, 나의 서재가 개설된 곳이 진보적인지는 그다지 큰 선택지는 아니었다. 먼저 알라딘에 둥지를 튼 이들의 활발한 활동이 나같은 사람을 끌어들인 것이라고 본다면, 알라딘 측에서는 이들의 초기 활동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고 싶지는 않고.    

기다림에 약한 나는 인터넷 서점에서 책 주문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성마른 편이라 하나에 신경이 쓰이면 다른 일에도 영향을 미치곤 한다. 급하다.  

지난 23일, 당일배송 가능한 책들을 주문했다. 해가 넘어가고 어둑해져 이제 돌아가야 하는데도 책은 오지 않았다.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 요즘은 물량이 많아서 힘든 모양이다고 체념했다. 어제도 끝내 책은 오지 않았다. 역시 아무 연락도 못받았다. 오늘, 주문조회 확인해보니 미배송신고를 하라고 나왔길래 신고했다. 기다려야 한다. 내일은 토요일인데, 내일 오는 걸까? 올 수는 있는 걸까?   

이 사태를 맞으면서 생각한 건, 책 한 권에 엮여있는 수많은 노동의 연쇄사슬들이다. 배송은 배송회사와 계약을 맺고 그곳에서 책임을 지는 체계로 돼 있을 거다. 알라딘 자체에 배송관련 문의를 할 수 있는 핫라인(?)도 안내되어 있지만 접수받아 문의하는 정도일 것이다. 배송회사가 손배상을 해야 할 정도의 큰 사건이 아니라면 배송지연 정도는 관여하기 어려울 것이다. 고객 불만이 높아지면 배송회사를 바꾸는 문제를 고려하겠지만, 그 역시 고객 불만보다는 단가나 뭐, 그런 측면에서 고려될 사항일 것이다.  

배송회사는 배송회사대로, 고객이 정확한 사유를 조사하지 못하는 한, 지연되는 이유같은 걸 친절하게 설명해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듯 하다. 배송을 맡고 있는 회사는 알라딘과만 계약한 것이 아니라 몇 개의 회사 물량을 소화하는 업무를 맡고 있을 것이라, 요즘 같은 성수기에 배송하는 분들은 업무 과다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차라리 6시가 넘어가면 배송을 안하는 것이 나같은 사람에게는 맘이 편하다. 9시 10시에 물품을 받는다면 나는 아마 못받는 것보다 더 불편할 것이다. 밤늦게까지 업무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는 건 불편하다. 뭐, 시간대별 교대체제를 갖고 있다고 해도 편치않을 것 같다.  

'불편'. 이 표현 또한 불편하다. 알량한 자기 위안의 표현 아닌가?   

어쨌든 이 맞물려 있는 연쇄고리를 생각하면 아득해지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매운동이 제기한 어느 한 편의 약한 고리에 문제제기하는 건 정당하고 용기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불편'함을 넘어 싸워야 한다고 마음 먹고 행동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끼는 건 옳지 않다. 기본적으로 그렇다. 근데, 입장정리!, 이 입장정리만 하다가 버스 놓치는 사람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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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술자리에 가면서 그저 한두잔만 적당히 마시리라, 2차는 가지 않고 돌아서리라... 수없이 다짐하고 갔건만... 평소 주량보다 많이 마시고야 말았다. 집에 잘 돌아왔지만, 잠든 몇 시간을 제외하곤 오후 3시가 넘은 지금에야 겨우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끔찍한 숙취에 시달린 것도 그러고보면 꽤나 오랫만이기도 하다.  

몸이 한 번씩 요동을 칠 때마다 내 몸을 돌아보게 된다. 몸이 비로소 정상으로 돌아올 때 느끼는 이상야릇한 가벼움? 지독한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오며 기지맥진해진 몸과 마음의 허함?  뭐, 회복되고나서 느끼는 공허로움? 뭐... 그런 감정들... .  

필립로스의 [에브리맨]을 읽는데.. 좀체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 작고 얇은 책을 며칠 째 읽고 있다. 평범한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는 얘기라는데.. 아닌 게 아니라 무덤에서 장례식이 진행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내가 읽고 있는 중간부분까지 (장례식에서 무덤에 묻힌)주인공이 계속 아픔을 겪는 사건들이 이어진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하러 나간다.'  에브리맨...  

매일 그냥 일어나서 일하러 나간다... 이거 평생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날 일어나지 못하고 일하러 나갈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언제나 물어본다. 왜 이렇게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는거지? 꾸역꾸역. 꾸역꾸역 살고 있다고 느껴진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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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180도 회전하여 딱 반대로 돌아앉은 듯하다.  

조희문이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이 됐다 한다. 그랬구나. ......  

진중권, 이 사람, 강의하고 있던 몇 군데 대학에서 잘렸다. 그를 잘랐던 학교의 강의를 맡은 다른 사람이 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찾는 자신의 블로그에 최근의 상황과 관련한 단 한마디의 글도 쓰지 않았다. 단지 강의를 맡았고, 강의를 시작한 며칠 간 있었던 세세한 얘기를 포스팅 해놓았다. 언제부턴가 그의 블로그를 종종 방문했었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구나. 그것이 좋아 보였다. 이제 그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것이 그다지 기분 좋지 않다. 그는 최근의 일에 대해 모르는 것인지 그런 쪽으로는 의견을 표하지 않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건지... 잘 모르지만, 불편해졌다. 물론 그는 대학이 요청했기에 강의를 맡았을 뿐, 사태와 일말의 관계된 자는 아닐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종종 포스팅을 일 삼아 해왔던 그로서는 최근의 일에 대해서도 뭐라 자신의 마음을 표할 수도 있었을텐데, .... 그 침묵과 전혀 안중에 없다는 식의 그의 최근의 포스팅들을 보면서 편치 않기에 그저 한숨 한번 쉬어 봤다...  

사는 데 별거 있어?..... ............. 

[1Q84] 2권은 오늘 오지 않을 모양이다. 늦어진다. ... 내가 신경이 날카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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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고비를 넘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 .  

외국의 누군가, 계속해서 그가 세계에 "영감"을 주는 이로 살아남기를 바란다는 전언을 했다고 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 그의 연설, 그의 말, 그의 생각, 그의 글들은 늘 그런 평을 받을 만했다.  

그를 '전라도의 신'(어떤 신문의 헤드라인으로 떠 있는 걸 지하철 가판대에서 본 적이 있다.) 따위로 지역적 프레임에 가두려 하는 어리석음을 보지 않기를 바란다. 

p.s.  자연사,... 다소 생뚱맞고, 엄살부리는 듯 하여 꺼내고 싶지 않지만, 사람이 늙는다는 것, 그리고 죽는다는 그 엄연한 사실 앞에 마음에 서늘한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가는 것 같더라.  

DJ, 죽을 고비를 여러 번(5번 정도라는데) 넘기고, 누군가에 의해 죽었을 수도 있을 타살의 고비를 다 넘기고, 마지막은 병상에서 가족과 평생 동지들과 눈빛 교감을 마치고 운명했다. 다발성 장기부전... 심 정지. 엄연한 육신의 쇠함을 누군들 피할 수 있을까? 

김훈의 [칼의 노래]에,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는 문장이 있다. 소설에서의 의미를 떠나 그냥 그 말 자체로 '내 자연사에 안도'하는 그런 날...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고, 앞으로 나는 통렬한 이별 자리에 서게 될 것이고, 결국 나도. 개별은 가슴이 빠개지듯한데 전체적으로는 상투적이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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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하루 종일 외부로 돌아다니는 통에 평택 쌍용차 공장 소식을 볼 기회가 없었는데, 집에 돌아와 9시 뉴스를 보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아, 분노로 치가 떨리는 ... 이럴 수는 없다. 이래서는 안된다. 아무리 대치하는 노조원들이라고 해도 경찰이 그렇게 잔인하게 폭압적인 진압을 하는 걸 이대로 또다시 외면하며 넘어가서는 안된다. 용산의 참사를 외면하면서 다시 7개월 후 이런 사태를 맞는다. 이건 중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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