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읽은 마지막 책은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일 것이다.

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그래도 꼬박꼬박 읽어왔다. 우리 작가이고 스릴러 장르에서 대중적 지지를 받는 작가이니 읽어볼 필요가 있는 작가라고 생각해왔다.

이 책은 지승호와 정유정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작가 정유정이 작업하는 방식에 대해 궁금했다면 썩 좋은책일 것이다.

한번이라도 작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새로운 방법을 얻을 건 없을 듯하다.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혹은 가장 많이 읽는(무의식적으로 찾는다는 의미니 자기에 대해 많은 걸 알려줄 거다) 작가의 글을 '해부하듯이' 분석하고 읽어가며 배우는 방법이 우선이고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정유정도 말한다, 너덜너덜하게 읽고 또 읽으며 공부했다고. 정유정의 경우는 스티븐 킹이었다.

 

정유정 작가가 끌리는 것이 나와 비슷해서 놀랐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하두 가지의 테마 - 자신만의 세계 - 를 평생토록 변주한다고 한다. 헤밍웨이는죽음에 직면한 인간에 대해, 디킨스는 가족 혹은 아버지를 찾아 헤매는 소년의 이야기를, 스티븐 킹은 인간 심연에 잠재하는 공포에 대해 일관되게 그려냈다. 나는 인간 본성의 어둠과 그에 저항하는 '자유의지'에 관심이 많다. (61)

 

나는 기본적으로 대중적 정서의 방향이 제시된 이야기에는 욕망을 느끼지 못한다. 행복이라든가, 평범한 일상이라든가, 아름다운 연인의 완벽한 사랑이라든가, 도덕적이고 고결한 삶이라든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운명의 변덕에 휘둘린 불운한 인간, 최선을 두고도 파멸로 치달아버리는 어리석은 인간, 욕망에 눈멀어 자신을 내던지는 무모한 인간,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지키고자 하는 것을 기어코 지켜내는 인간, 추하고 졸렬한 민낯을 드러낸 야만적인 인간, 죽음 앞에서 분노하고 두려워하는 남루한 인간.... (63)

 

나 역시 추락하는 인간, 파멸로 치닫는 인간에 끌린다.

왜 그러는가? 운명인가? 그에 저항하는 '자유의지'는 .. 잘 모르겠다. 오히려 저항하려는 의지조차 없는, 아니 차라리, 의지조차 세울 수 없는 인간을 궁금해한다. 그냥 파멸하고 마는 인간, 추락하고 마는 인간. 이 차이가 중요하다. 여기서 갈라진다.

왜 그러는가?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가? 그것이 이야기가 되겠는가? 이 주제에 천착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 읽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예전엔 분명 그랬다. 몇년전만해도. 얼마전까지만 해도. 지금도 그런가? 문득 지금 나의 관심사를 돌아봤다.

 

정유정 작가가 아름다우면서도 정확한 문장을 쓰는 작가로 추천한 조용호 작가의 책 몇권을 주문했다.

처음 만나는 작가다.

 

 

 기본서. 오래전에 쓰여진 책이어서 예로 든 영화들도 아마 지금 세대들에겐 그저 옛날 영화들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본을 생각하게 하는 책.

 

 

 

 

 

 

 

 

 

 

 

 

 

 

 

 

 

 

 

 

 

 

 

정유정 작가의 소설은 지금까지 마음산책 출판사에서만 나왔다. 전속작가같은 셈.

제목을 잘 짓는 작가는 아니어서 [7년의 밤] 같은 경우 작가가 생각한 제목은 '해피 버쓰데이' 였다고.

7년의 밤은 편집자가 제안한 제목이었다. 이런 편집자를 만나고 출판사를 만난다는 건 작가의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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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7-22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들의 주제 천착...정말 그런 것이 나보코프, 곰브로비치, 필립 로스, 바타유, (밀란 쿤데라도 혐의 짙음) 어느 책을 봐도 성욕을 둘러싼 욕망에서 떠나지 않아 어째서 이렇게까지...싶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그들의 전작 읽기는 ‘그들은 어떤 끝장까지 도달하는가‘를 보는 맛이 있죠.

포스트잇 2018-07-22 16:0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마다 천착하고 싶은 주제가 있는듯요. 그걸 어떻게 다루고 어디까지 가는지 궁금해서 읽구요.
성욕의 끝장... ;;; 별 생각 없었는데, 급궁금해지기도 하네요.
나중에 전작읽기 끝내시고 알려주시길..~~~
 

어제 중고책으로 주문한 [모방범]과 [낙원]이 아직 배송되지 않은 관계로 도끼선생의 [악령]을 집어들어 초반을 읽고 있는데

열린책들에서 2000년도에 번역출간된 책이다.

최근 문학동네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새로 번역되어 나왔듯 이 책도 새로운 번역본이 나왔으면 좋겠다.

얼마전까지도  열린책들 판형을 꽤나 좋아했는데 언제부터인지 답답해졌다. 독자의 변심은 무죄.....겠지.

게다가 합본으로 나와주면 좋겠다. 1천여 페이지 정도 될텐데 그정도 합본 도서도 많지 않나.

몰랐는데 어제 움베르토 에코 선생의 [장미의 이름]도 찾아보니 열린책들 30주년 기념 에디션으로 나왔던 합본판을 낱개로 판매하고 있었다. 합본판을 워낙 좋아하기에 이런 판형을 소장하고 싶었는데 세트로만 판다기에 포기했었다. 이제보니 슬그머니 낱개 판매도 하고 있었다.

이미소장하고 있지만 [장미의 이름]과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구입했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에코 선생의 [전날의 섬]도 합본이니 [악령]이나 [미성년] [백치] 등도 합본으로 다시 새롭게 나와주면 좋겠다.

그냥 그런 생각을 하면서 출구조사 및 개표 방송 보고 있다.

서울, 김문수 21.1%,, 안철수 18.8%

40%를 가져갈 수 있다고? 아직도?

 

 

 

 

 

 

 

 

 

 

 

 

 

 

 

 

 

 

 

 

 

 

 

 

 

 

 

 

 

 

초반 스쩨빤 뜨로피모비치 베르호벤스끼의 전기 관련 전개해나가는 대목을 읽다보면 도끼선생이 무서워지리만큼 그냥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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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의 놀라운 특색은 이 작품이 주인공 없는 소설, 특히 추리하는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이다.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든 추리소설에는 '추리로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이 주인공을 맡는다.

초기에는 홈스처럼 우리보다 백배는 똑똑한 사람이 주인공을 맡았다.

나중에는 말로처럼 우리보다 백배는 운이 없고 백배는 고통스러운 사람이 주인공을 맡았다.

...

 

[리는법설소추읽] (양자오, 274)

 

 

대만의 문학비평가이자 인문학자 양자오의 책을 이번에 처음 읽었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고전읽기 강좌를 이끌어온 학자라는데 어디한번 어떤 수준인지 좀 볼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었다가 대충 보아가며 읽었다. 홈스는 슬슬 건너띄어가며 읽었다(이미 많이 들어본적있을 듯하여, 에이, 또 홈스.. 뭐 이런 기분), 그러다 좋아하는 챈들러 대목에서는 흠. 제법이군, 그랬다. 그래도 뭐 나도 이 정도는 이미 알고 있고 그래서 좋아하니까 그런 마음이었다.

결국, 이책에 별 다섯개를 줬다. [장미의 이름]의 움베르토 에코와 [모방범] [낙원]의 미야베 미유키를 다시 읽고 싶게 만든 것만으로 별 다섯개를 받을만하다. [모방범]과 [낙원] 중고를 구입했다.

[모방범]은 2004년에 읽었는데 아직도 그 두꺼운 세권을 읽던 내 모습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읽었는지 그때 그 시절이 내게 어떤 나날들이었는지...

2004년부터 나의 몰락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는 아니고 막 시작할 때였다. 그땐 몰랐다.)

그때 [모방범]은 놀라운 소설이었다. 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하던 때도 그 언저리였다.

과연 방대한 이야기 규모에 압도된 독서경험을 했던 것 같다. 

이번에 양자오의 분석을 읽으면서 읽었던 책을 다시 한번 읽으면서 이야기 구조도 들여다보고 미스터리서사를 이끌어가는 방법도 한수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자오의 이책은 그야말로 방대하고 심오한 추리소설의 계보나 역사를 쫙 꿰어보여주지는 않지만, 단 네명의 작가와 작품을 통해 입문서로서 나름의 신선한 역할을 한다. 추리소설을 읽을때 추리나 이야기에 풍덩 빠져 허우적대는 맛과는 다른 맛, 내게는 이런 맛이 더 혹하는 건데, 시대에 따라 추리소설 또는 미스터리 소설이 어떤 변화를 겪었으며 그 고비고비마다 새로운 경지를 열어젖힌 성실한 천재들의 한수를 모방이라도 하고 싶게 자극하는 그 통찰의 맛이 난다.

읽을 책들이 많았는데 급작스럽게 선회해서 [모방범] [낙원]부터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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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석 2018-06-13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ㅓ
 

어제는 슬픈일이 있었고, ... 그럼에도 오후에 <버닝>을 보러갔다.

시나리오는 오정미 작가(러시아문학전공자로 미하일 레트로모프의 [우리시대의 영웅]과 나보코프의 [말하라 기억이여]의 역자이기도 한)와 이창동 감독 공동작업으로 되어 있지만 주도적으로 쓴 건 오정미 작가일 것 같다. 이 감독이 최종 손본것일테고.  

오정미 작가가 하루키의 팬이었든가 시나리오 때문에 많이 읽은 건지 모르겠지만 [기사단장 죽이기]까지 읽고 썼던 것 같다.

종수(유아인)가 작가가 되고 싶은 인물이기에 문학과 현실에 대한 얘기로 이데아와 메타포까지 집어넎었지만 결국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다. 

현실을 이상으로 만들고자 했던 전통적인 문학이 죽고 메타포가 되어버린 문학을 비꼬며 종수를 대하던 장면.

영화의 결말이 나는 낡아보였고, 많이 졸았다.

이 시대의 청춘들 얘기를 해보고자 했다는 감독의 의도대로 청년들이 많이 볼까. 그들이 느끼는 바가 많을까.

유아인의 연기는 좋았고, 여배우는 매력이 별로 없었고 스티브연은 완전해 보이지 않는데 아마도 언어의 문제도 있었을 듯.

여튼 오전엔 슬픔에 겨웠고, 오후엔 영화보며 졸았다.

...

 

슬픔은 쉽게 가시지 않고, 결국 말이 아니라 행동에, 어떤 선택 어떤 결정을 내리냐가 바로 그 사람을 말해준다는 건 진리다.

나의 행동은 .. 변명같은 거였다. ... 한없이 미안함.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

 

유투브. 네이버 등 포털에 머무는 시간보다 유투브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아진 현실.

이 크리에이터의 세계. 이 책 소개를 통해 알게 된 유투버. 그리고 또 어제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양예원이란 유투버.

'대도서관'이라는 이름을 쓴다는데 게임에서 나오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지칭하는 대도서관이라고 한다.

게임속 대도서관. 도서관에 종이책만 있는 건 아니니까.

유투브, 새로운 전쟁터? 크리에이터들의 크리에이티브 워... 유희의 장? 뭐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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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5-18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닝이 칸 황금종려상 후보에 올랐다고
거의 따 놓은 당상인 양 하던데...
이창동이 칸하고 좀 친하잖아요.ㅋ
이번에도 과연...?

슬픈 일은 뭐 때문에...?ㅠ
지금은 좀 나아지셨는지...

포스트잇 2018-05-18 13:59   좋아요 0 | URL
네 평점도 높고 그렇다네요.
유아인 연기가 저는 좋던데 주연상을 줄까.. 회의적이긴 하죠.
슬픈 일이 있었습니다. .. 한동안 슬플것 같습니다...후회할 일을 남겼기 때문인 것도 같고요..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은 너무 얇은 자그마한 책이다. 장황하지 않다. 그러나 거기에 들어있는 욕망은 어마무시하게 크다. 

아이와 사전들을 챙겨 국경을 넘어 목숨 건 탈출을 하는 여자.

 

자전적 에세이가 이렇게 간략하면서도 모든 걸 말해주는 것 처럼 쓸 수 있다는 걸 배울 수 있었다. 

조국의 언어를 쓸 수 없고 대신 삶의 터전이 된 언어를 배우고 익혀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짧은 '문맹'의 시기를 벗어나 그 외국어를 사용하여 창작을 한다는 것에 대하여.

작가의 길은 운명에 아마 나 있었을 것 같다. 글을 쓰고자 하는 이 지독한 갈구는 난민캠프에 떨어졌을지라도 어김없이 그 길을 찾아가는 것 같다.

장황하거나 주저리주저리를 싫어하는 나 같은 이에게 맞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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