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 있는 책도 읽지 못하면서 새로운, 누군가 내게 '이책 안봤어? 아직도?' 이런 식으로 도발해오는 책들을 찾는것인가?

남들의 '책꽂이 투쟁기' 관심을 끊지 못하고 기웃거리는데 요사이 좀 빤한 책들이 반복되어 나온다 싶다.

아, 물론 읽고 또 읽고, 그때마다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게 '고전'이라지만 새로운 고전을 발견해주길 바라고 기대한다.

돌아보니 이 정도 리스트도 귀한 것이었다.

 

 

 

 

 

 

 

 

 

 

 

 

 

 

금정연, 난폭한 독서(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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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를 그저 '악의 평범성'을 말한 이로만 알고 있었고, 덧붙여, 하이데거의 연인이었다는 것 정도.

작년에 저부제의 [고로 철학한다 : 찌질한 철학자들의 위대한 생각 이야기]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좀더 알게 됐고 한나를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지지해주기는 어려웠다.

 

이번에 그래픽노블로 나온 [한나 아렌트 : 세 번의 탈출](켄 크림슈타인)을 읽고 그녀에게 호기심이 생긴 것도 있고.

좀더 그녀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무엇보다 '운수 사나웠던 사나이' 발터 벤야민과의 우정에 대해서 깊은 울림이 있었다.

발터 벤야민도 읽고 싶고, 그의 책은 얼추 사모았으나 읽은 게  ... 없다.

그녀가 끝까지 하이데거의 뒤를 봐준 것도 그녀의 아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만큼 품이 컸던 여자였던 거 같다.  

 

그리고 풀리지 않는 질문.

1992년에 나온 반성완 편역의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은 왜 리뉴얼이든 개정판이든 나오지 않는걸까?

한나 아렌트의 [Illuminations](1969)를 참작했다면서 Introduction을 싣지 않는 것도 아쉽다.

 

녹색, 그린은 그녀의 색.

하이데거의 [존재의 시간]의 뮤즈, 한나 아렌트.

정작 그녀의 글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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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을 읽고 있.. 아니, 이른바 '머리말'만 읽었고 바야흐로 존 셰이드의 시를 읽다가 결국 뒤에 붙은 해설을 보고 말았다.

쉽지 않은 소설이라는 건 알겠는데, '주석서'에 대한 주석서를 읽고 싶어졌다.

게으른 독자란 그런 것이다. 애써 읽을 생각은 안하고 누가 다 풀어놓은 이야기를 읽고 싶은 것.

그중에서도 르네 알라다예Rene Alladaye의 ["창백한 불꽃"의 더 어두운 그림자들 The Darker Shades of Pale Fire] (2013)이 읽고 싶다.

'탐정비평' 분야를 개척한 피에르 바야르의 방법론과 서사학에 기본을 두고 "앞선 비평들의 성과를 종합하고 그 한계와 오류를 정리해 보다 텍스트 중심적인 해법을 제시한다"는데, 마치 "탐정이 사건을 전면 재수사하듯이" "텍스트상의 증거들을 중심으로 완전히 새롭게 재검토할 것을 제안한"단다. 이러니 읽고 싶겠어, 안읽고 싶겠어.

원서로는 198페이지인가 하는 것 같던데 페이퍼백인데도 책값 x 비싸.

번역서 나오면 좋겠다.

이번에 나온 책 번역자가 번역하는데 15년이 훌쩍 넘었다는데 도대체 몇번을 읽어야 이 정도 해설 쓸 수 있나.

번역서가 나왔으니 이젠 기존에 나온 비평서든 주석서든 뭐든 번역서 나오면 좋겠다.

 

"탐정이 사건을 전면 재수사하듯이" 이런 말이 의욕을 활활 불태우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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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이 번역되어 나왔다.

예전에 읽고 싶다는 페이퍼를 쓴 적이 있다.(http://blog.aladin.co.kr/mysty/7042661)

데이비드 로지의 [소설의 기교]를 읽다가 언급되었던 책으로 내용이,

 

"가공의 미국 시인 존 셰이드의 시(詩)가 있고, 그 시에 상세한 주석을 다는 유럽의 망명학자인 찰스 킨보트의 이야기라는데, 셰이드는 원고를 킨보트의 손에 넘긴 직후에 살해된 것으로 추측된다. " '신뢰할만한 서술자'의 관점에서 읽어봐야 할 이야기라니까 " 결말까지는 안썼던 것 같다.

"[창백한 불꽃]은 나보코프의 망명 이후 향수병을 치유하기 위한 소설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로쟈님의 나보코프와 '예술이라는 피난처'를 연상할 수도 있겠다. "

 

내가 썼던 걸 내가 인용했다.

 

책은 많이 쌓아두고, 읽지는 못하고.. 그런 날들의 연속이다.

지쳐가고, 늙어가고, 어느날 문득 눈앞으로 뭔가가 날아다니는 증상도 겪고.

노안에 비문증도 생긴건가. 오늘은 그나마 눈이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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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의 [멕베스]를 자기 전에 떠들어 보다 고작 몇 줄 못읽고 잠이드는데 오늘도 하루종일 종종거리다 저녁 준비 전에 잠깐 책을 폈다.

셰익스피어의 [멕베스]부터 다시 읽으려고 꺼내놨고, 더불어 '주제들' 시리즈로 나온 [멕베스 / 양심을 지닌 아킬레스](폴 A. 캔터)를 펼쳐보다가 매우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길래 오랫만에 흥분되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살펴본 바 느낀 바가 있어 잠깐 메모해둔다.

나는 최종철 교수가 번역한 민음사 번역판 한 종만을 가지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터라 늘 [맥베스]와 [오델로]를 햇갈려 하는데;;;;; 어쨌든 캔턴의 책을 번역한 권오숙은 열린책들에서 [맥베스]를 낸터라 최종철과 권오숙의 번역을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캔턴은 [맥베스]에서 3막 1장에 나오는 장면을 주목한다. 새로 왕이 된 맥베스가 '절망적인 처지의 남자들을 부추겨 뱅쿠오(뱅코)를 암살하게 하려고 설득하는 장면'이다.

여기에 나오는 'gospell'd'란 단어의 중요성을 다룬다.

어떤 자료를 혹은 책을 읽었던건지 다시 펴본 내 [맥베스] 등장인물 페이지에는 연필로 '기독교적 덩컨 vs 스코틀랜드적 맥베스'라는 메모가 있다. ......???? 내가 분명 썼건만 오잉?, 한다.

 

그리고 캔턴은 "셰익스피어는 영웅적 전사의 가치관과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 사이의 갈등으로 비극 [맥베스]를 전개해 나간다"'(16)고 분석한다. 앞으로 이 주제를 다룰 예정인 것이다.

요 네스뵈의 [맥베스]는 1970년대로 시간을 옮겨, 과거 왕성한 산업도시였다가 몰락한 도시, 그냥 몰락하기만 한 게 아니라 더럽게 타락한 도시를 배경으로 "25년간 철권통치를 해왔던 경찰청장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신임 경찰청장 덩컨이 부패 척결과 범죄 조직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특공대장이었던 맥베스를 조직범죄수사반장으로 승진시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옮긴이의 말)

맥베스는 건장하고 탄탄한 몸을 지닌 특공대 대장이다.  

원작에서 맥베스가 어땠나? 마녀로부터 장차 왕이 될거라는 예언을 들어 근질근질하던 맥베스가 살인과 암살을 밥먹듯 하여 목적을 달성해나가는 악당, 반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죄책감과 불안감'으로 '소진되어'가는 것으로 해석하던 기존의 분석들과 해석들을 요 네스뵈는 어떻게 재해석하며 기꺼이 이 책을 구입한 나의 흥미를 채워줄 것인가.

그리고 캔턴의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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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01-26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나서 살인죄를 저지른 라스꼴리니꼬프가 일견 맥베스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둘 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아무런 죄없는 사람을 죽인 것도 닮았고, 둘 다 살인을 저지르고 난 뒤의 죄책감 때문에 끝없이 번민하는 과정도 많이 닮았더라고요. 다만, 맥베스는 자신의 최초의 죄악을 덮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나서 끝내 ‘예고된 파멸‘에 이르는 완전히 파멸적인 비극을 맞는데, 라스꼴리니꼬프는 일말의 갱생을 엿본다는 점이 다르더군요. <맥베스>를 읽은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는데, 그 이야기를 빠르게 한번 훑어보니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는 게 많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되더군요. <햄릿>이나 <오셀로>나 <리어왕>은 그래도 꽤나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말이지요. 에커만이 쓴 <괴테와의 대화>에도 (다 읽은 게 아니라, 얼핏 훑어만 봤습니다만) 유독 <맥베스>에 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괴테가 <4대 비극> 가운데 맥베스를 최고로 평가했다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구나 싶기도 하더군요.

포스트잇 2019-01-26 15:46   좋아요 1 | URL
오랜만입니다, 오렌님.
라스꼴리니꼬프와 맥베스가 그런 사이(?)였네요 ㅎㅎ
라스꼴리니꼬프 옆에는 자신이 저지른 죄의 합리화를 의심케 하는 소냐가 있었다면, 맥베스 옆에는 끊임없이 과감한 결단을 촉구하는 부인 맥베스가 있었다는 점도 다르겠네요.
..... ..... 저 페이퍼 쓸땐 당장에라도 모조리 다 읽어버릴테다 ...했는데
그때 그대로 입니다;;;;;; 요샌 책 한두페이지 읽기도 벅차서.. 옆에 책이 쌓여있는데도 책과 가장 멀어져 있는 요즘입니다. 버릇될까 두렵기도 합니다;;;;;
좋은 글 올려주세요, 그거라도 챙겨볼랍니다. ㅠ

oren 2019-01-26 16:00   좋아요 0 | URL
말씀을 듣고 보니 포스트잇 님께서 이 글을 쓰신지가 석 달쯤 전인데, 꽤 오래 잠잠하신 듯하기도 합니다. ㅎㅎ
저도 요즘 들어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합니다만, 최근에 ‘처음으로 읽은‘ 『죄와 벌』은 정말 강렬하더군요.
오랜만에 그 작품을 읽는 동안 다른 작품들을 함께 떠올려 보기도 했고요. <맥베스>뿐 아니고요.
http://blog.aladin.co.kr/oren/10619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