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에 또 한번 속았다.
광징히 기분이 나쁘다.
저자 김대식의 글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이렇게 책을 만든 출판사를 욕하고 싶다. 너무 알량하잖아.

양장본 포토북에 가깝다.
이런 형식의 책을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 맛봤던 기분나쁨을 오랫만에 다시 느낀다.
김대식의 글은 읽을만할거라고 믿는다. 좀더 글을 모아서 책을 냈으면 좋았을뻔했다.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를 앞두고 액땜했다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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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어떻게 될지, 사실 한치앞을 확신할 수 없다. 

탄핵이 3월 둘째주안에는 이뤄질 거라고 어느 정도 일정이 나와있지만 ...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오늘 아침에는 기어이 대선 주자들에도 헌재 재판관들에게도 경호를 강화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백색테러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한다. 저들의 말과 행동이 심상치 않다. 조심해서 나쁠 게 없다. 


너무나 분명해 보이는 사안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라고 그 사람의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기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인지 요새 부쩍 현실을 분석하고 해석하거나, 현실인식에 도움이 될만한 책들을 찾는 것 같다. 

내마음이 그렇다.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구입했다. 

국가를 주제삼은 국가론 교양서로 읽을만 할 것 같아서다. 

더불어 최근에 나온 책들 중 관심가는 정치, 사회과학쪽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도서관에 들어오면 읽어야겠다고 미뤄둔다.

유시민의 책 말미에 붙은 주를 보다가 참고문헌을 골라봤는데 인물의 전기를 참고한 것은 주로 브리태니커 사전이었다. 

지식검색을 할때 주로 구글링하거나 포털검색, 위키피디아 등을 이용해왔는제 의외로 브리태니커를 이용해본적이 없다. 

모르고 있었다. 이번에야 아, 검색기능 하나를 놓치고 있었구나 깨달았다. 맹하다.  


SF 바람이 며칠 계속 불더니 결국 아서 클라크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와 몇권의 SF도 구입했다. 

[파운데이션] 시리즈도 그동안 구입하지 못했던 이빠진 것 같던 누락책들을 구입했다. 


그러나 정작 손에 들고 읽고 있는 건 슈테판 츠바이크의 평전들이다. 

왜 갑자기 오래전에 읽었던 몽테뉴에 관한 짧은 평전 [위로하는 정신]을 읽을 생각을 했던가. 

나보코프의 소설 [절망]을 읽고 이 소설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에 도전한 소설 어쩌구 하는 평을 보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박형규가 번역한 [이중인격]을 읽기 시작했고, 갑자기 도스토예프스키 관련 책을 찾다가 츠바이크의 평전시리즈를 보게 됐고, 츠바이크 책 리스트를 보다가 문득 가지고 있던 [위로하는 정신]이 눈에 들어왔고 읽기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아주 흥미로웠다. 예전에 읽을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20세기 전쟁을 겪으며 런던으로 피신했다가 남미 브라질로 유랑한 츠바이크 말년이 여러 작업을 하면서도 특히 이 16세기 종교전쟁 시기에 머물렀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편으로 칼뱅, 루터, 토르케마다가 있고 다른 편에 에라스무스, 몽테뉴, 카스텔리오가 있었다. 

확신에 찬 신념을 타인에 대한 압박과 학살로 관철시킨 이들에 맞서 관용과 포용으로 싸웠던 이들. 일단 구도는 그렇다. 

16세기에 벌어진 종교개혁이니 종교전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고작해야 학교 다닐때 외웠던 수준인데 그나마도 이젠 잊어버렸다. 막연히 종교개혁이라고 불리면서 개혁적 측면만을 받아들였고 그뒤로 관심갖지 않았다. 

(그리스로마신들이 아니라) 종교에 대한 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개혁인가 신앙을 빙자한 광신과 불관용이었던가. 새삼 진지한 주제였다는 생각이든다. 이참에 개략적으로 들여다봐야겠다.


몽테뉴에 대한 회고로 시작하는 츠바이크의 서문에는 몽테뉴의 [수상록]이 그의 말년에, 유럽에서가 아니라 브라질에서야 비로소 자신에게 그 의미를 드러냈다고 고백한다. 

서문은 읽어볼만하다. 


츠바이크는 몽테뉴를 "아직은 젊어서 경험이 부족하거나 좌절을 겪은 적이 없는 사람은 그를 제대로 평가하거나 존중하기가 어렵다" 말한다. 


이런 집단 광증의 시대에 가장 내밀한 자아에 충실하기 위해선 얼마만한 용기와 정직성과 단호함이 필요한지를, 그리고 이 거대한 파멸의 한가운데서 정신적. 도덕적 독립을 흠없이 지키는 일보다 세상에 더 어렵고도 심각한 일이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인류의 품위나 이성에 대해 스스로 의심을 품고 그것에 대해 절망해봐야 비로소, 그런 전체적인 무질서 한가운데서도 모범적으로 똑바로 서 있는 어떤 개인을 진짜로 찬양할 수 있게 된다. (서문 중에서)



아직 [수상록]을 읽어본 적이 없고 가지고 있지도 않다. 

나는 아직 젊고 경험이 부족한 모양이다.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선택해야 할 비극적 상황에서 나는 '옳은 쪽'에 서서 장렬하게 싸우는 이를 지지할 것 같다. 자신을 피로 더럽히더라도 대다수 인민을 위해 싸우는 자를 지지할 것 같다. 

자신의 고고함을 지키기 위해 대다수 인민을 적에게 던져주는 자를 옹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수상록]을 언제 읽을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다. 


인류에게 절망해 고개를 돌려 남미 대륙 브라질에서, 가지고 있는 자료도 변변치 않은 채 자신의 작업을 했던 츠바이크가 왜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를 탐구대상으로 삼았는지, '도덕적 독립을 흠없이 지키는 일'에 그토록 끌렸는지 그 마음이 다가온다. 그는 브라질에서 자살했다. 


나는 아직 그의 에라스무스([에라스무스 평전])도 카스텔리오([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도 읽지 못했다. 

그들의 생애는 또 어떠했는지, 칼뱅과 루터는 또 어떠했는지 궁금해진다. 

나의 독서 계획은 늘 엉뚱한 데로 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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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거들떠도 보지 않던 SF다. 
늘 SF를 향한 닿지 못하는 로망이 있다. 그렇다고 SF 관련 보도를 꾸준히 추적하는 것도 아닌데 어느날 문득, 아, SF... 잊고 지내던 친구라도 생각하듯이 드문드문 소환한다. 

오늘은 아서 C 클라크 선생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완전판이 곧 출간된다는 보도를 접하고 이거 사야하나 고민한다.
신간소식을 통해 알고는 있었으나 오늘 책 소개 보도로 다시 만나니 고민이 더 깊어진다. 
바야흐로 AI가 창궐하는 세상 아닌가. 

스탠리 큐브릭이 클라크 선생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를 함께 만들때의 이야기. 클라크와 만날때쯤에는 이미 큐브릭의 집은 온갖 과학서적과 논문, 자료들로 SF 도서관이었다고 한다. 여튼 이렇게 탄생한 영화는 넘나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우주 SF 영화의 영원한 레퍼런스로 자리매김한다.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2001년, 2010년, 2061년, 3001 최후의 오디세이로 이뤄져 있다. 
현대과학에도 끼친 무수한 영향을 유추해 생각해볼 거리도 제공할 것 같다. 

















프레시안 북스에서 소개한 몇권의 SF 관련도서도 읽어볼만하겠다. 

















특히 [할리우드 사이언스]는 김명진이라는 국내학자의 저서인데 할리우드발 SF 영화들을 통해 폭주하고 있는 과학기술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며 독점하고 있는 담론을 시민과학운동의 최전선에서 논한다고 하는 1타 쌍피적 정신으로 기술한 저서인듯하다. 급하게 읽어볼만한 책인 것 같다.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내가 있는 곳의 좌표를 찍어야 방향을 어느 정도 가늠하며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책이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기대는 할만하다. (쩝..,,;;[할리우드 사이언스]는 2013년도에 출간된 책이니까 벌써 3년도 전이네.. 과학기술 발전 속도를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지만, 3년이면... 강산은 변했을 정도일까.. 그 정도는 아닌가?... 여튼 아주 최신은 아니다. 그래도...)

그리고 어슐러 K. 르귄은 엊그제 새로 발표된 방탄소년단의 <봄날Spring Day> 뮤직비디오에 나온 '오멜라스Omelas' 때문에 우리나라 10대 청소년, 방탄소년단 팬들에게 폭발적인 구매붐을 일으킨 [바람의 열두방향]으로 때아닌 주목을 받는 작가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10대 청소년에게. 



[바람의 열두방향]은 르귄의 단편집인데 이번에 보니 새롭게 개정되어 나왔다. 

















나는 2004년판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실린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조금도 생각나지 않는다. 
르귄 특유의 서정적이고 멜랑콜리한 분위기가 물씬 났던 것으로 기억하는 단편집인데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르귄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데 한동안 적조했다. 
방탄소년단은 최근 내가 관심있게 보는 아이돌인데 그들의 춤과 노래가 개취라서 새로나온 콘텐츠가 있으면 꼭 챙겨보는 편이다. 구성원 7명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서 사실 얼굴도 제대로 구분 못하지만 구성원중 지민이 춤을 출때 선이 좀 다르다, 무용을 한 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현대무용 전공자였다. 특별히 이런 식의 관심 외엔 구성원 개인에 대한 관심은 아직까지 생기진 않았다. 또 덧붙이자면 '소년단'이라서 어린가 했더니 가장 어린 구성원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살이고 대부분은 20대 중반의 청년들이다. 제작자가 방시혁이라는 것에는 관심이 기울어지긴 한다. 
방탄은 이번만이 아니고 지난번 앨범에서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해석한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선보여 10대 청소년에게 [데미안]이 '진정한' 필독서로 대두되게 한 출판시장에서도 팬덤에 의한 매출향상이라는 신종(꽤나 오래된 것인긴 한데 아이돌을 통해서라는 건 신선할만하지 않은지) 마케팅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도, 필립 K. 딕의 전집도 읽지 못하고 있다. 
이것들만이라도 꼭 읽고 죽자. 
[파운데이션] 시리즈가 7권, 필립 딕 전집이 12권.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4권.....아, 이쯤이야.. 뭐... 













하여튼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 출간예정일이 21일이라 뭐 급한것도 아니고 늘 그렇듯 구입한다고 당장 읽는다는 보장도 못한다. 
난 지금 블라디미르(아, 누구의 말이름인데...) 나보코프 전작(은 아니고 번역 출간된 책만이라도)을 읽기 위해 도전 중인데 [절망]에서 버벅거리고 있다. 쉽게 읽히질 않는다. 
그 외에도 계획 중인 독서 일정이 있는데 이렇게 중간중간 끼어드는 새로운 호기심들은 참 곤혹스럽다.


아, 또 있다. 

최근 개봉한 <컨텍트 Arrival>은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영화로 알려졌는데 영화도 보고 싶고, 책도 읽고 싶다. 

[당신 인생의 이갸기] 에 대한 찬사는 오래전부터 들어왔던터라 구매도 오래전에 했는데 .... 여전히 읽지 못했다. 

이책도 필독서다. 읽고야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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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드미르 나보코프 또한 내게는 베케트만큼이나 이름만 새기고 있지 정작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한 작가군에 속한다.

[롤리타]도 낄낄거릴만큼 흥미롭지만 그렇다고 그닥 재미있지는 않아서 읽기를 중단한 터다. 벌써 오래전일이다. 

 

최근 번역되어 나온 [서배스천 나이트의 진짜 인생](1938)은 그러니까 나보코프 소설로는 처음 완독한 작품이다. 

[서배스천 나이트의 진짜 인생](1941)은 분명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만으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군에 속한다. 

한 인물이 죽었다, 누군가 그 사람의 인생을 알고 싶어 한다. 그의 생은 무엇이었나... (만일 추리나 범죄스릴러 소설이었다면 탐정이나 수사관이 바로 이런 역할을 하겠지. 죽은 이는 왜 죽었으며, 사는 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있었나.) 

삶에 숨겨진 비의나 차마 말하지 못한, 드러내지 못한 비밀이나 회한을 발견하게 되는지... 등.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진짜 인생'이란 말속에 평생 쓴 가면 뒤에 가려진 진짜 얼굴이 드러날 것만 같지 않은가.


이복형이자 유명한 소설가였던 서배스천 나이트가 죽은 후 나는 그의 전기를 쓰기 위해 그의 삶의 자취를 따라간다. 

그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과정은 고스란히 탐정소설을 모방하며 전개된다. 

그러나 전형적인 탐정소설류의 전기소설은 아니다.

마치 카프카의 세계처럼 나보코프의 괴상한 세계도 있다. 

리얼리티의 모호함, 서배스천 나이트는 어떤 사람이었나, 마지막에 찾아낸 건 거울을 통해 보듯 기묘하게 달라져 있는 서배스천 나이트이자 화자 자신이라는 선언. 

나보코프를 읽을 때 키워드처럼 작동하는 거울, 도플갱어, 예술가적 정체성의 탐색, 기억과 상상, 나비, 체스, 리얼리티의 확장, ... 


추리, 탐정소설로 시작해 범죄스릴러물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뚜렷한 이야기와 사건, 플롯, 흥미로운 캐릭터 등이 활약하는 이야기 선호로부터 이제는 그 분명한 이야기들을 미묘하게 비틀거나 패러디하거나 우스꽝스럽게 흐뜨려뜨리는 괴상한 이야기 나라를 탐험하는 것이 왠지 장족의 발전을 한것만 같은 대견스러움을 느낀다. 의미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정도까지는 된 것같다.예전에는 그런 모호함이나 다가오지 않는, 좀체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을 견딜 수 없어 했다. 

 

체스게임처럼 독자와 게임을 즐긴다는 나보코프에게서도 일단 모호한 그림속에 들어가 헤매는 듯한 느낌을 받지만 헤매고 있다 해서 불안하거나 불쾌하지는 않고 오히려 낄낄거릴만큼은 된 것 같다. 체스게임을 둬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고 스릴 있는 줄은 모른다. 

나보코프에게서 뭘 더 느끼고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의 전작을 다 읽을 수 있을런지도 모르고. 


다음으로 집어든 게 [어둠속의 웃음소리](1932)인데 아직 초반이지만 책을 바싹 끌어당기는 흥미로움은 여전하다. 


'옛날에''독일에서' 살았던 알비누스란 이가 '어느날 어린 애인 때문에 아내를 버렸다가 '사랑은 했지만 사랑을 받지는 못해' '참담하게' 삶을 끝낸 이야기라고 첫부분에 못박고 시작한다. 알비누스는 아내 엘리자베트와 딸에게서 공통적으로 '독특한 명랑함'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저 자신의 삶에 대한 고요한 기쁨의 표현으로,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익살맞게 놀라워하는 표정이 희미하게 묻어났다. 그래, 

그것이 그 명랑함의 핵심이었다 - 죽음을 아는 명랑함. 


 - [어둠속의 웃음소리] (18)



묘하게 이 대목을 보면서 이 작품이 흥미진진할 것 같으며, 익살맞을 것 같고, 독특하게 명랑할 것 같은 예감을 받았다. 

이런 작품을 읽을 때 아, 이건 걸작일거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멋진 표현을 쓸 수 있다면 걸작이 될 수밖에 없어. 

. .. 이 작품은1938년 미국에서 발표된 나보코프의 첫 소설이 되었고, 이 소설의 모티프를 훗날 [롤리타](1955)로 발전시켰다. 

저 대목은 알비누스가 결혼생활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나는 느꼈다. 

이런 대목에서 나는 낄낄거리게 된다. 그런데 그 낄낄거림이 마냥 가볍지는 않다.  

아내와 갓 태어난 딸에게서 '익살맞게 놀아워하는 표정'이라니, 독특한 명랑함을 느낀다니... 

뒤에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쓰고 껄떡거길 알비누스의 행태(?)가 나오는 것 같은데 내가 이 소설을 좋아하게 될지 끝까지 즐겁게 읽을 수 있을지, 그래서 나보코프의 전작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은 흥미롭다. 

'롤리타' 외에 다른 걸 찾을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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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2-11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 나보포보 좋아하는데 나이트.. 요거 신간 나왔ㄴ;요... 헐... 얼릉 사서 봐야겠습니다...

포스트잇 2017-02-11 15:10   좋아요 0 | URL
좋아하셨군요. 저는 이번에 처음 읽어본터라.. 흥미롭긴 하지만 좋아할 수 있을런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ㅎㅎ
서배스천 나이트의 나이트가 Knight 입니다. 체스를 대놓고 알립니다. ㅋㅋ
 

김훈과 하루키 두 작의 신작은 늘 기대되고 거의 구입해서 보는 편인데 김훈이 2월 2일, 하루키가 (일본)2월 24일 각 신작을 들고 찾아온다. 

2월이 아마도 우리에겐 바짝바짝 속타는 달이 될 것 같은데 그나마 김훈의 소설을 보며 속을 달래보며 견뎌야 할 것 같다. 

하루키의 소설을 만나보려면 적어도 4~6개월은 더 걸릴 것 같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쯤이면 어떤 세상이 되어 있을까. 

상식없는 구태 우익정권에서 그나마 상식은 있는 보수 정도로 교체되는 것일텐데 .. 상식적인 정부와 국회만 가져도 우리는 한참 나아질 것이다. 그것도 우리에겐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제인듯하다. 



김훈 [공터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살인]




(출처 : http://finding-haruki.com/782)


 1부가 '드러나는 이데아' 2부가 '이동하는 메타포'. 


김훈의 소설은 '세상이 무섭다'는 기본바탕에 한국현대사를 아마도 던적스럽도록 팍팍하게 건너온 아버지와 아들의 삶을 얘기할 것이라고 소개에 의하면 그렇고, 

하루키의 소설은 아직 전모가 드러나 있지 않다. 다만 2013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인의 의식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했으니 어떤 식으로든 배어들어 있을 것 같긴 한데 중세식 기사단장(설마 중세 기사얘기는 아닐 것이고)을 내세워 어떤 얘기를 할지 정말 궁금하다. 

기대도로 따지면 김훈보다는 하루키의 얘기가 더 궁금하다. 


안경을 바꿔야 하나, 독서안경을 따로 맞춰야 할까.. 역시 눈이 먼저 늙고 있다. 

눈이 개운치 않다. 노안이다. 

하루키 소설을 읽을때쯤 이 나라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특검은 연장되기 힘들 것 같은데 ... 검찰이 이어받아 수사를 할 수 있을까...

탄핵은 결정났고 박근혜는 구속되어 있을 것인가, 대통령은 누가 되어 있을 것인가

그 와중에 기사단장의 살인을 읽는 것인가. 


시야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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