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플을 하다보면 가끔 '마니아가 되었다'는 메시지가 뜬다.

이게, 그러니까, 몇번 포스팅이나 뭐, 읽고 싶은 책에 표기한다거나, 몇권 구입하거나, 뭐, 여튼 몇번 다루다보면 마니아 '딱지'가 붙는듯하다.

이게 나는 영~ 어색하다. 이질적이다. 나와 마니아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천생이 매니악스러울 수 없는 인간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기본적으로 마니아가 되기 위해선 집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착없이 마니아가 될 수도 있는가?

나는 그런 집착을 가져본적이 없...........아니, 책은 어쨌든 나의 집착대상이긴 한건가, 평생을 책과 관한한 떨어져본 적은 없으니까... 그래도 책마저도 매니악스러울만큼, 극성스러울만큼 욕심부려본 적이 없다.

도서관에서도 빌려보고, 없으면 나중에 기회가 있겠지, 넘어가기도 잘하고 설렁설렁, 만사 극악스러워본적이 없이 살아온 인간이다. 마니아와 관련해서 내가 쓰는 단어들을 보면 마니아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수준을 알 것이다.

알라딘 북플에서 알려주는 마니아 수준이란것이, 당신은 이러이러한 것에 쬐끔 관심이 있구만, 이런 메시지라는 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마니아 메시지가 뜨면 웃음이 나온다. 뭣이라고, 내가 마니아라고, 라고, 라고라? 아녀,나는 ~의 마니아가 아니여, 그러니 나를 그렇게 부르지말아줘, 라고 사정이라도 하고 싶다.

 

오늘 아침 알려온 메시지는 내가 우치다 타츠루의 마니아가 되었다는 거였다.

우치다 타츠루의 책 중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책은 [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 다.

읽은 책이라곤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가 전부이며 그 외 몇편의 글이 전부다.

심지어는 [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도 다 읽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하루키(게다가 하루키 관련 페이퍼가 제일 많은데 나는 아직도 하루키 마니아는 아니다)  관련해서 참고서적을 몇권 읽다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한문장 때문에 우츠다 타츠루를 다시 보게 생겼다.

[하루키 씨-]에도 실렸는데, <힘들 때 스승에게 기대기>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하루키의 문학적 성숙은 '남성적, 영웅적 주체의 유연화, 여성화'라는 궁극의 주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요?"(93)

 

라는 문장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

제목 '스승에게 기대기'의 스승은 엠마누엘 레비나스인 모양이다.

이글에서 우치다는 레비나스의 사상에 기대 하루키가 그동안 한번도 다뤄보지 않은 '엄마되기'([1Q84] 3권에서 아오마메는 임신하게 되고,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덴고와 함께 1984의 세계로 돌아간다- 물론 분명하게 돌아간 그곳이 1984인지 모호하게 묘사하지만 어쨌든 달은 정상적으로(?) 하나인 세계)가 나온점에 주목한다.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으로 하루키의 소설도 독파해보고자 하는 모양인데 아직 더 진전된 글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우치다는도 아직 쓴 것 같지는 않다., 아니, 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하루키부터 그 이후 진전시키지 않았으니까('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도, 여자가 없는 남자들도, 최근작 기사단장 죽이기도 아마 마찬가지, 과거의 주제들이 반복될 뿐, 물론 조금씩 다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의 저자 가토 노리히로가 편집하고 일본의 대표적인 논객이라는 35명의 짧은 글들을 모은 [무라카미 하루키 1Q84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는 하루키 소설에 우호적인 자들과 무자비하게 욕하는 자들의 글이 한데 모여있는데 저 우치다의 '하루키의 문학적 성숙'에 관해 여지없이 뭉개는 글을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하루키가 나이드니 무라카미 류가 되는' 현상을 지켜보게 됐다는 말(<무라카미 하루키를 둘러싼 피곤한 모험>,  다케우치 신)은 무라카미 류를 몰라도 어떤 의도로 쓰였는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읽어본 게 전혀 없어서 다른 일본작가들과 함께 읽어볼까 한다.

일본문학쪽쪽은 주로 장르소설을 많이 접했고 다른 작가로는 소세키 외에 오에겐자부로, 그리고 몇 권 읽어본 게 전부라서 이번 기회에 일본작가 몇명도 읽어볼까 생각중인데 당분간은 딱히 마음이 가지는 않는다.

나카가미 겐지의 [고목탄]을 조금 읽어봤는데 흔히 말하는 포크너스러운 작풍에 그다지 끌리지는 않아서 지금 당장 읽을만한 것 같지는 않았다.

 

길어지는데, 우치다의 저 문장 때문에 우치다가 쓴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도 읽어보고 싶어졌다는 게 오늘 하고 싶었던 얘기다.

 

 

 

 

 

 

 

 

 

 

 

 

 

 

 

 

 

도서관에서 빌려다가 떡 펼쳐서 서문을 보는데, 마음에 든다. 읽어보고 싶다.

 

이책에는 레비나스의 '사제론', '타자론', '에로스론'에 대한 나읙 개인적 고찰을 담았다. 물론 레비나스의 '대양과 같은 예지' 중, 여기서 손댈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나는 레비나스라는 '레몬'의 껍질에 한 줄의 칼집을 내고, 거기서 스며나오는 향기를 맡고, '이런 향기가 '나요'라고 감상을 말하는 데 불과하다. 다른 사람들은 똑같은 향기에 대해 나와는 다른 인상을 말할 것이다. (중략)

 

 ... 이책은 오로지 스승의 예지를 칭송하기 위해서 쓰여졌다. 따라서 논술은 철저하게 레비나스를 '편들고 ' 있으며, 레비나스와 의견이 다른 사람, 레비나스를 비판하는 사람은 위험인물로 취급한다. 그런 점에서는 균형이 좋지 않은 책이다. 그렇지만 숭경의 마음이라는 것을 한번 품어버리면, 인간이란 좀처럼 냉정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서문)

 

 

우치다 다츠루는 팬심, 덕질로 글을 쓰는 사람인듯하다.

하루키에 대해서도 '편애하는 마음과 팬으로서' 글을 썼다고 밝히고 있으니.

레비나스에게 직접 배운 스승과 제자 사이도 아닌데 그냥 자신이 '숭경의 마음'을 지니고 있기에 스승으로 삼은 것이다.

무릇 마니아, 팬심은 이 정도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레비나스와 의견이 다르거나, 비판하는 사람은 위험인물이라잖는가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내겐 이런 팬심과 덕질이 없다.

온전히 풍덩 빠지지 못하고 언제나 거리를 두고 냉정하다. 마치 그러해야 한다는듯이.

최근에 포스팅을 내 나름대로는 '부지런히' 하려고 노력하면서 내가 쓴 글을 보자니 이렇게도 무미건조할 수가 없더라.

빠심을 가져본적 없는 나의 성향이 글에도 고스란히 배어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좋아지면 관심가지고 보긴 하지만 그것의 모든 걸 알고 싶거나 갖고 싶거나 하진 않는다 .

궁금증 이상을 넘어서진 못한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

 

 

레비나스 저작을 읽어본 적이 없고, 따라서 그가 어떤 철학을 베풀었는지 알길이 없지만 그리고 사랑의 현상학 같은 거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지만, 한번 읽어는 봐드릴라고.

현상학만 하더라도, 역자의 말에 따르면, 후설 - 메를로 퐁티의 '인식론적 현상'과 하이데거 - 사르트르의 '존재론적 현상학', 레비나스의 '윤리학적 현상학'으로 나눠보는데 뭔 말인지 알 수가 없고, '난해함이라는 말로 그것을 너무 쉽게 용서해서는 안된다'고까지 말하는 역자의 말을 굳이 곱씹어 보지 않더라도 쓰바, 제대로 읽을 수나 있을런지 모르겠다.

아, 쓰바, 왜 그렇게 어렵게 난리지롤이야

 

우치다의 서문 뿐만 아니라 역자 이수정의 옮긴이의 말도 제법 웃긴데,

번역하면서 한가지 특이한 사실이 느껴졌단다. 한 일본인이 리투아니아 출신의(처음 알았다) 한 유대계 프랑스인(역자가 화 낼만하잖아, 프랑스 철학자들의 '멋부리는 표현법'에 골탕 좀 먹어봤다면)에 대해 쓴 이 책을 독일철학을 전공한 한 한국인이 미국에 앉아 번역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모로 읽어보고 싶게끔 펼쳐보이고 있지만 정작 한페이지 한페이지 잘 넘어갈 수 있을지, 대충 짐작이 간다.

안 읽히면 포기하는거지.

궁금할 뿐이지, 기어이 알아야만 하겠다는 마니아적 부지런함도, 악착스러움도 없다.후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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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4-12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덜 황당하시군요. 전 처음 보는 작가 이름인데 마니아 도장이 찍혀서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포스트잇 2017-04-12 14:51   좋아요 0 | URL
아, 그럴수도 있는건가요?
앞으로 당신은 마니아가 될거야, 꼭 되고 말거야, 뭐, 이런 에고일까요? ㅋㅋㅋ

munsun09 2017-04-12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니아 메시지가 처음엔 왠지 뿌듯함(!)이 있었는데 자꾸 마니아 주니까 왜? 라는 의문이 생기고 뜬금없기도 하던데 다들 한번쯤 가지시는 의문이시군요. 공감합니다

포스트잇 2017-04-12 19:10   좋아요 0 | URL
네, 뜬금없는거 맞아요 ㅎㅎ

cyrus 2017-04-1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지 않고, 리뷰를 쓰지 않은 채 관심있는 책만 올려도 마니아를 받을 수 있어요. 글에 ‘좋아요‘ 수가 많으면 마니아 등급(?)이 향상됩니다.

포스트잇 2017-04-12 21:4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가끔 깜짝깜짝 놀랍니다, 내가 뭘했다고 마니아가 된거지... 오늘 풀렸습니다, 마니아 미스터리가 ..ㅎㅎ

cyrus 2017-04-12 21:55   좋아요 1 | URL
마니아를 부여하는 알라딘 시스템 규정이 비밀이라서 확실히 알려진 것은 없지만, 대부분 마니아 지수 등급이 높은 알라디너의 이름을 보면 글의 ‘좋아요‘를 받은 수가 많고, 평소에 글을 많이 쓰시는 분들입니다. ^^

singri 2017-04-12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얼마전에 쓴글 ㅋㅋ다들 겪고 계시는거군요 ㅋㅋㅋ

포스트잇 2017-04-12 22:04   좋아요 1 | URL
알라딘이 여럿 신경쓰게 만들었군요ㅋ 왜 이 마니아제도가 맘에 걸렸는지 생각해봤는데, 마치 그냥 지나가다 인상적이어서 한번 쳐다보고 한두마디 건넸는데, 넌 나를 좋아하는게 틀림없어, 넌 날 찍었어,라며 사귀자고 하는것같아서 기분이 영~... 그랬다구요 ㅋㅋ

singri 2017-04-13 10:13   좋아요 1 | URL
앗 정확하네요 ㅋㅋㅋㅋ맞아요 그랬어요ㅋㅋㅋ난 너 모르는데 ㅋㅋㅋ왜 난리야
 

김상중 교수의 신간 제목은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이다.

초반 조금 읽었던 대목에는 이런 말이 있다.

김상중 자신은 악을 동경해왔다고. "악은 어딘가 매력적이고 음영이 풍부하여 일상의 지루함을 떨쳐버릴 힘을 가진듯 느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속의 악역을 해보고 싶었다고.

자신에게 없는 무언가 - 아마 그건 악이 보여주는 광포한 힘 같은 것이리라 - 를 갖고 싶다는 바람을 악의 캐릭터에 투영한 것이었으리라.

누구나 악역에 매력을 느껴봤을 것이고 밍숭맹숭한 착한 주인공보다 오히려 악의 몰락이 안타까웠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의 규칙 같은 것은 발톱의 때만으로도 여기지 않고 계율과 도덕 따위는 개에게나 던져주는" 세상 악인의 행태에 사이다 한잔 들이키는 시원함을 가져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전은 현실에서 맞는다.

현실에서 실체로 맞닥뜨리는 악은 ... 치떨리는 것이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악이 지닌 힘은 세다.

악의가 내뿜는 독에 손상당하는 것들은 어쩌면 회복해서 원래로 돌이킬 수 없게 될 확률이 높다. 영원히. 언젠가 악이 몰락할지라도.

 

김상중 교수에게 힌트를 제공한 건 테리 이글턴의 [악 : 우리 시대의 악과 악한 존재들]이다. 

악은 불가해하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성격결정론이나 환경결정론으로 이해되는 건 진정한 악이라 할 수 없다.

악은 개인의 자유의지이기도 하거니와 조직안에서 배태되는 악도 있다.

문학과 예술에서 악을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악에 대해 이해해보려 애쓰는 게 바보스러운 짓일지 몰라도 헛된 시도라해도 한번은 훑어보고 싶다.

 

악의 꽃이 만발하도록 놔둬야 하는가.

악에 손상되지 않고 악의 시대를 건널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아마도 앞으로 리스트는 쌓일 것 같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테리 이글턴의 [악 : 우리 시대의 악과 악한 존재들]

김상중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모리모토 안리 [반지성주의]

우치다 타츠루 [반지성주의를 말하다]

나카지마 요시미치 [악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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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새로나온책 둘러보니 이런 책이 출간됐다.

[혐오표현,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

뉴욕대 로스쿨에서 법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다는 제러미 월드론이라는 교수의 저서인데, 책소개를 읽다가 

'독이든 꽃이라도 만발하게 내버려둘 것인가?'라는 질문에 천착했다는 문구에 혹했다. 


제러미 월드론의 이 책은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한다는 쪽에서는 그 근거를 제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인용하는 책이며, 혐오표현이라 하더라도 규제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쪽에서는 반드시 논박해 넘어서야 하는 중요한 논의를 담은 책이다. 혐오표현 규제가 개인의 윤리적 자율성을 위협하다고 주장한 에드윈 베이커의 사상(5장)과 사람을 공격하는 것과 사람의 존엄성을 공격하는 것의 차이를 설명(7장)하는 저자의 태도는 공정하고 사려 깊다. 혐오표현을 금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하나하나 논증하는 태도(4장)나 혐오표현금지법에 대한 논쟁을 이해시키기 위해 17세기와 18세기의 종교적 관용에 대한 토론을 끌어오는 대목(8장)에서는 품격이 느껴질 정도다. 역자인 홍성수 교수의 평대로 “혐오표현 규제를 찬성하건 반대하건, 이 책이 혐오표현의 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반면 주디스 버틀러는 어떠한 규제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는데, 우리가 독이든 꽃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독이 퍼지는 걸 막기 위해 해야할 일이 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피가 거꾸로 솟게하는 말들이 난무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피할 수 없다. 하루에도 몇번씩 들리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들에 무방비로 당하고 사는데 언제까지 큰 스피커를 자유롭게 이용하며 쏟아내는 저 말들을 고스란히 들으며 살아야하나.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어가길 기도하는수밖에 없나....

관련도서 보자면 한도끝도 없을테고 딱 이 세권만이라도 읽어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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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하루종일 틀어박혀 김대식의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를 읽었다.

화보집처럼 만들어진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책을 처음 받고 기분이 언짢았던 책이다.

누군가는 책에 담긴 사진들을 보면서 영감을 얻고 또다른 정보를 찾아 활발한 뇌활동을 하겠지만 나같은 이는 활자로 채워지지 않은 책매무새에 마음에 주름이 가는 유형이다.

여튼 고급진 종이를 한장씩 넘기면서 읽는 김대식의 '가장 아끼는 책들'의 향연에 가슴 설렜다.

32명의 작가 혹은 저자의 책들은 김대식이 읽고, 잊어버렸다가 다시 기억한 책들로 독자를 충분히 유혹할 수 있는 책들이다.

책을 읽고나서 충만한 어떤 감정으로 한동안 여운이 맴돈다면 아마 그책은 내인생의 책이 될것이다.  

그리고 질문하는 것이다. 적절하고 좋은 질문을 내올 수 있다면 그책 역시 좋은책이고 즐거운 독서를 했을 확률이 높다.

질문을 잘 갈무리하여 주제로 삼고 질문에 대한 해석 혹은 답을 찾아가는 삶이라면 불행한 삶이진 않을 거라고 나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32권의 대표작중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언젠가 꼭 읽어보고 싶은 책들을 정리해둔다. 

책들이 너무 많다. 아니, 읽지도 못하는, 읽지도 않는 책들이 너무 많다.

언젠가 읽겠지, 언젠가 필요하겠지.. 뭐 이런 구실을 대며 부지런히 구매해두기도 한다.

읽지 못하는 책들이 늘어나면서, 그러나 줄어들지 않는 새책에 대한 호기심을 어찌해보지 못한 채 책들은 여기서도 늘어가는 중인데, 이건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반복해서 몇번씩 읽을만한 책과 아직 읽지못한 책 중에서 곡 읽고 싶은 책들부터 하나씩 읽어나가는 것으로 책욕심을 줄여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다가 새로나온 책들중 고르고 골라 구입해 반드시 읽는 식으로 독서에 대한 규칙을 좀 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 일단 갖고보자 보다는 일단 읽자로 바꿔야 하는거 아닌가.

.............. 수백번 마음먹어봤지만 여태 이모양인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마치 하루키의 단편 <독립기관>([여자없는 남자들]) 에 나오는 독립기관처럼, 내속에 나도 어쩌지 못하는 독립기관, 책을 읽기보다 책을 사는 지름기관이 따로 있어 그렇게 된거같다.

............. 그렇다고 내가 책을 어마무시하게 구입하는 건 아니다.

내 주머니사정이나 책을 읽는 거에 비하면 많이 구입한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을 말함이다.

어쨌든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

"과거의 죄는 잊혀야 할까"라는 질문을 하는 책이다.

김대식이 밝힌바에 의하면 이일본 출신의 작가는 '과거에 대한 너그러움'을 보여줌으로써 일본과의 과거가 해소되지 않는 우리로서는 마음이 불편하다고 언급했다.

브리튼족과 섹슨족과의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절의 아서왕전설속에는 '망각이라는 안개를 뿜어내는 용'의 이야기가 나온다.

용을 깨워 안개를 피워올리자 사람들은 과거를 잊어간다.

학살과 증오, 복수로 점철된 과거의 기억을 잊기 위해, 원한과 증오, 복수라는 연쇄를 끊기 위해 불러들인 망각의 안개를 뿜어대는 용의 존재. 원한의 과거는 잊혀져야 할까.

용을 죽이려는 섹슨족 전사 위스턴과 용을 지키려는 브리튼족의 가웨인 경, 이들을 만난 어느 노부부의 '안개'에 대한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과 이 노부부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기둥인 모양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인생이란 계속 홑겹으로 살아가는 생일 것 같다. 나이테가 생기거나 두터워지지 못하는.

 

아서왕의 전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싶었다. 고작해야 성배와 성배찾기, 기네비에 공주와 란슬롯경과 아서왕의 삼각관계... 같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겨우 알고 있는 수준 아닌가.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제목도 아서왕의 성배전설과 관계된 것이라는 것도 최근에야 알게 됐다.

[황무지]는 또 [황금가지]와 [제식으로부터 로망스로](제시 웨스턴)까지 읽어봐야 할 긴 여정을 동반하는 책이라는 것도.

마음의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기억과 망각의 역사와 인간의 존재조건에 대해 어떻게 다루는지 이시구로의 솜씨도 보고 싶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출간예정인 [호모데우스]

인류가 이정도로까지 문명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창의성의 역사를 되집는 책이 [사피엔스]이고 미래를 다룬 책이 [호모데우스 : 미래에 관한 찗은 역사](2015)라고 한다.

미래의 인간은 신의 지경에 이른 전지전능함을 구사할 것이라는 예언.

신의 경지에 오를 준비들은 되셨는지..

나는 아마 그전에 인간으로 죽을 것 같다.

인류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는 너무나 유명한 필독서였기에 읽은 줄만 알았다, 아니 적어도 가지고는 있는 줄 알았다.

개정판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는데 내가 건너뛴 모양이다.

1946년 저작인데 현실과 진실에 대한 많은 걸 질문할 수 있게 하는 책이라고 김대식은 권한다.

미메시스의 두 계보. 현실과 진실.

 

 

 

 

 

 

 

 

 

 

 

 

 

 

그밖에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에 관한 책들.

중세 1천년의 이야기.

죽음과 기호의 시대. 문명이 다시 야만으로 쇠퇴하고,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추상적인 이데올로기에 억눌리는 세상.

지금 세계는 또다른 중세로 접어들고 있는 건 아닌지 김대식은 질문한다. 중세를 그런 관점에서 다시 읽는다면 많은 걸 볼 수 있지 않을까. 중세 얘기는 이상하게 손이 잘 안가는데 중세 암흑이라는 선입견과 종교에 짓눌린 세계... 자체가 숨막히게 하는 게 있어서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는데 꼭 그럴 일만도 아니다.

 

 

 

 

 

 

 

 

 

 

 

 

 

 

 

 

 

 

 

 

 

 

 

 

 

 

 

 

 

 

이스라엘 출신의 석학 아자르(아자) 가트 교수의 [문명과 전쟁 War in Human Civilization] (2008,.국내미출간)

역사학, 정치학, 군사학, 심리학, 뇌과학, 사회학, 철학, 인류학, 고고학, 인류가 알고 있는 모든 도구를 총동원해 '전쟁'이라는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고 한다. 이스라엘 정부의 국가안보 자문위원이기도 하다는데 어느 정도인지는 봐야 하겠다. 궁금은 하다. 번역본이 나올 거라 굳게 믿는다. 

 

 

 

 

 

 

 

 

 

 

 

 

 

 

그리고 내가 언젠가 초반 읽다가 작가가 고수가 아닌 것 같다고 밀쳐놓았던 류츠신의 [삼체]

총 3부작이라는데 국내는 아직 2부작까지만 나와있다.

김대식은 아자르 가트의 책만큼이나 온갖 방면에 두루 통섭하며 다루고 있는 작가의 내공에 혀를 내두르며 코앞의 것에만 매달려 있는 자신과 대한민국을 한탄했다.

우린 정신없잖아.

박근혜 구속도 시키고 재판과정도 지켜봐야지, 대선도 치뤄야지, 대선 이후 정치도 지켜봐야지...

할게 너무 많아.

난 시민의회에 관심이 많다.

시민의회를 구성하는 거다. 의회의원들은 추첨으로 뽑는 거다. 시민의원들이 현안을 어떻게 누구의 도움을 받으며 할 것인가가 관건인데 하나씩 만들어나가면 되지 않을까.

정치권에만 맡기는 게 아니라, 추첨에 의해 뽑힌 시민의원들이 직접 법안을 만들기도 하고 정부 감시도 하는거다.

임기며 권한이며 규정들은 같이 머리맞대고 만들면 좋지 않을까.

매주 열리는 집회에서 매주 한가지씩 생각할 질문들을 제기하고 한주일 또는 몇주일 고민해서 서로 발언하는 것은 어떨까.

자꾸 광장을 감정을 배설하는 공간으로, 국회야말로 무슨 정의롭고 제대로된 이성적 공간으로 대립시키는데 웃기는 소리다.

더이상 지금의 대의제로는 개혁이 씨도 안먹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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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런, 이런.... 내가 완전히 오해했다. 

금정연, 정지돈의 [문학의 기쁨]이 한국소설, 한국문학에 대한 대담으로 엮인 문학평론서인줄 알았다. 

대담이긴 한데 서로 만나 이야기를 한 후 각자 글을 쓴 것을 엮은 것이다. 

형식도 대단히 '전위'적이어서 기본 대담도 있고, 서간형식으로 서로 교환한 글도 있으며, 시나리오 형식도 있다고 한다.

 

대담의 주제는 한국작가의 신작을 대상으로 한 글들과 새로운 문학은 가능한가, 그리고 새로운 문학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가능한가. 

한국문학의 현재를 다루고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가능한 가볍게, 해찰하듯이, 투덜이처럼 이야기하려 애쓴 것 같다. 그래도 만만치는 않을 듯싶다.

몇페이지 읽다가 웃고 말았다. 



금정연이(아니라 정지돈) 무라카미 하루키를 싫어하는데, 하필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오후]를 들먹이며 [문학의 기쁨]으로 포스팅을 했으니.... 이렇게 민망할 수가 없다. 하하하하하

금정연이 프로불만러인듯한데(투덜이 ㅋㅋ) 간단히 몇페이지 훑어보니 누구도 싫고 싫어하고.. 가 몇번 나온다. ㅎㅎㅎ

그래도 처음 생각했듯이 책 컨셉은 흥미롭다. 재밌게 읽을 것 같다.

 

"들어가며" 한페이지에 슬라보예 지젝, 정신분석, 토머스 드 퀸시가 언급되는 책이다.

수많은 인물과 작품들이 소환되는 책이니 미리 각오를 좀 해둘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싫어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그의 작품을 주제로 다룬 [오후]를 [문학의 기쁨]과 나란히 붙여놓지는 않겠으나, 새로 나온 책이 있길래 그책을 여기에 붙이는 정도는 괜찮겠지?

민음사의 세계시인선 리뉴얼에 [황무지]도 새롭게 단장하고 나왔다.

4월에 나온다더니 생각보다 일찍 나왔다.

[오후]에서 고야마 데쓰로가 쓴 하루키와 T.S.엘리엇과의 연관성을 소개하는 글은 새로운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 글이다.

아마 이번에도 [황무지]를 이해하며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 도무지 몰랐던 그 시들이 이번에는 어떻게 다가올지 그것도 매우 궁금하다.

 

 

 


 

 

 

 

 

 

 

 

 

 

 

아, 그리고 저 페이지에서 언급한 세 권이 책은 이렇다.

 

 

 

 

 

 

 

 

 

 

 

 

 

 

 

전위적이고 난해한책(으로 알려진) 김태용의 [벌거숭이들]

탄탄한 서사와 문장으로 인정받는(다는) 최진영의 [구의 증명]

문단과 상관이 없이 독립출판으로 시작해 기성출판사에서 책을 낸 한승재의 [엄청멈충한]

 

물론 세 권다 읽어보지 못한 소설들.

제목으로는... 끌리는 소설이 없다. ... 제목이 전부가 아니니까.

한국문학을 너무 쉽게 포기해버렸는데 어디 다시한번 읽을만한지 한번 골라볼 생각이다. 

체호프-레이먼드 카버류가 우세종을 획득한 한국소설이라...

정지돈은 2014년 한해동안 사백편의 한국단편소설을 읽고 [문학동네]의 리뷰좌담을 진행한적이 있는데 이를 그는 '사백번의 구타'라고 칭했다 하하하하 '정말이지 끔찍한 경험'이었다고.

오래전에 어떤 모임을 기획하고 그때 거기서 몇년에 걸친 문학잡지 당선작들을 읽었던 적이 있다. 

사백편까지는 아니고 고작 몇십편을 읽었기에 구타당하지도 않고 그다지 끔찍하지는 않았지만 재미있는 경험은 아니었다.

하나같이 비슷한 형식을 갖추고 있어서 특히 엔딩에서의 하나같이 비상하는 추상적 결말들은 나로서는 다소 요령부득이었다.

질리는 경험이긴 했다.

아마 많이 달라졌을거야.

평론마저도 재미없다면그건 진짜 문제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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