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K 블루레이] 쇼생크 탈출 : 리패키지 슬립케이스 한정판 (2disc: 4K UHD + 2D)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 팀 로빈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안은 자유를 향한 갈망이다. 예를 들어보자. 여기 감옥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있다고 치자.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어서 깜빵 생활도 나름 재미를 붙일 수 있다. 범죄자 새끼들이 슬기로우면 얼마나 슬기로울까 마는 이승에서의 온갖 쾌락을 다 포기하고 살다 보면 소소한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데 안절부절 못하는 캐릭터들이 있다. 교도관들이 불시 검문하면 식은 땀을 흘리기도 한다. 나, 떨고 있냐 ? 그 캐릭터는 왜 안절부절 못하는 것일까. 감옥 영화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캐릭터들은 대부분 탈옥을 계획 중이거나 실행 중이다. 탈옥이란 자유에 대한 실행 의지이니 그의 불안은 자유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키르케고르가 "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 이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 쇼생크 탈출 >> 에서 죄수들은 쇼생크 교도소의 규율에 적응하여 큰 불만 없이 수감 생활을 한다. 교도소의 규율 체제에 적응한다는 것은 희망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희망을 버리다 보니 절망도 없다. 삼시 세끼 밥 주고, 철통 보안에 누울 자리도 주니 태평이라. 그래서 영화 속 죄수들은 태평하다. 레드(모건 프리먼 분)은 가석방으로 풀려난 동료에 대한 잡담을 나누다가 이렇게 말한다. " 참 이상하지, 이 감옥 벽들 말이야. 처음에는 싫어하다가 곧 적응하게 되어버리고 어느 순간에는 의지하게 되거든. " 레드는 자유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는 순간 교도소의 규율 사회에 완벽하게 적응한 것이다.

희망을 포기한 레드에게 앤디는 말한다. " Hope is a good thing. Maybe the best of things. and no good thing ever dies. (희망은 좋은 겁니다. 아마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 "반면에 자유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앤디( 팀 로빈슨 분)는 밤마다 굴을 판다. 두드리면 언젠가는 열릴 것이다. 이 영화에서 앤디는 자신의 10년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까 봐 항상 불안에 떤다. 이 불알은, 아.... 오타다. 이 불안은 앤디의 자유 의지 때문에 발생한 마음이다. 자유 의지가 없었다면 애당초 불안도 없을 테니까.

이 영화의 원작이 수록된 단편집 << 사계 / 스티븐 킹 >> 는 장편이라고 하기에는 분량이 짧고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분량이 많아서 폐기 처분하려던 것을 출판사 편집장이 원고를 읽고 홀딱 반해서 작가를 설득하여 단편집으로 묶은 것이다. 장정일은 스티븐 킹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원고를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했다는 에피소드를 접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 스티븐 킹이 이 단편을 쉬어가는 의미에서 쓴 작품이라면 한국의 작가는 다 죽어야 한다." 며 한국 작가들은 넥타이 공장이나 차려야 한다고 독설을 내뱉기도 했다. 소설 <<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에는 내가 잊지 못하는 문장이 등장한다. 두고 두고 읽어도 명문이다.

" 1966년, 앤디 듀프레인'은 쇼생크 교도소를 탈옥했다. 찾아낸 것은 진흙투성이 죄수복과 비누 한 조각 그리고 암석 망치였다. 굴을 파는 데 600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앤디는 20년 안에 해냈다. 앤디는 지질학을 좋아했다. 그의 세심한 성격과 잘 맞았나 보다. 빙하기와 수백만 년에 걸친 산맥의 생성. 지질학은 시간과 압력에 대한 연구이다. 사실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압력과 시간 그리고 입구를 감출 큰 포스터...... "

종종, 불안을 지병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추천하는 영화는 << 쇼생크 탈출 >> 이다. 오늘도 불안한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리라. " 불안은 좋은 겁니다. 아마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몰라요.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

대한민국 1호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악담 전문가입니다. 정담을 나누기에는 성격이 지랄 맞고, 좌담을 나누기에는 교양이 짧습니다. 그래서 악담을 주로 합니다.
글 708
팔로워 273

팔로잉 1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영화 잡지 << 키노 >> 는 전설이었다. 다른 잡지들이 알맹이 없는 문장으로 설렁설렁 페이지를 채웠다면 < 키노 > 는 깨알 같은 글씨로 철학적 사유를 넘나들었다. 한국판 < 까이예 뒤 시네마 > 나 < 사이트 앤 사운드 > 를 표방한 잡지 한 권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족히 열흘은 걸렸다. 글 속에 사유가 난무한 만큼 철학도 난무했다. 글의 행간을 읽기 위해서는 할 수 없이 철학의 계보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이해하는데 왜 철학을 읽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 질문은 그 당시 편집장이었던 정성일에게 묻기 바란다. 영화 잡지 키노는 내가 유일하게 정기 구독한 잡지였으며 1호부터 폐간 99호까지 모두 소장하고 있는 잡지이기도 하다. 
매월 15일 즈음에 우체국 배송으로 배달되는 종이 잡지는 마치 사랑하는 애인에게서 온 러브레터만큼 두근거리게 만들었고, 글자 하나하나 밑줄 그어가며 정독했던 잡지였다. 99호를 끝으로 폐간되었을 때 슬프다기보다는 서글프다는 이유로 옛 애인과 낮술을 마시며 죽은 잡지를 애도했다. 21세기는 키노를 간절히 원하지 않는구나. 슬프도다, 슬프도다, 졸라 슬프도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허진호는 << 봄날은 간다 >> 에서 유지태의 말을 빌려 "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 " 라고 청승맞게 말했지만 나는 유지태의 천진난만한 순정이 촌스럽다고 느껴졌다. 사랑은 불변이라기보다는 가변의 속성을 가진 것이란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내가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키노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정성일 문체를 교주의 정언 명령처럼 받들었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의 화려한 만연체에서 느껴지는 느끼함과 허세는 못 봐줄 만큼 형편이 없다. 정성일은 그 당시 유행하는 사상의 언어를 직수입하여 예쁘게 포장한 지식 소매업자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허세는 작렬했고 유치는 뽕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잡지 << 키노 >> 에 대한 애정은 버릴 수가 없다. 나의 로테였으며, 나의 캐서린이었고, 나의 데이지였다. 이번에 키노 시네필이라는 이름으로 특별판이 제작되었다. 복간은 아니고 말 그대로 특별판인 모양이다. 잡지 표지에는 그 유명한,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한 편이라 할 수 있는 << 화양연화 >> 의 장면이 박혀 있다.
인사말은 정성일의 느끼한 허세로 채워져 있다. 오랜 만에 맛보는 마블링 맛이다. 가끔, 이런 맛도 추억이 되곤 한다. 시대가 변했다. 종이 잡지는 사망 선고를 한 지 오래이고 정성일은 펜으로 작성한 기술 대신 마이크를 잡고 극장에서 구술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탓할 생각은 없다. 시대가 변하면 환경이 변하기 마련이고 환경이 바뀌면 그 환경에 맞는 생활을 해야 하니 말이다. 한때 영화 평론을 종횡무진했던 정성일은 가고 이동진은 종편에서 생중계하는 아카데미 시상식 사회자로 등장하여 열을 올리고 있다. 타짜가 진짜처럼 보이는 세상을 살고 있다. 이래저래 씁쓸한 뒷맛을 남기지만 어째튼 키노 만세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24-04-14 07: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곰발님 넘나 반갑습니다. 예전에 어떤 징징거리는 댓글을 달고는 후다닥 지워버렸던 생각이 나네요.ㅎㅎㅎ 암튼, 아는 분의 글이 화제의 글에 올라오는 거 보니까 좋아서 댓글 남겨요. 키노라는 잡지는 첨 들어봐요. 저는 정성일 전집같은 것을 산 적이 있는데 아직도 딱딱한 박스에 비닐 포장도 안 벗긴 상태로 책장 맨 밑에 버티고 있네요. 암튼 정성일도 그렇지만 저는 이** 그사람에 대한 말씀에 더 공감이 갑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24-04-15 10:29   좋아요 0 | URL
아이구, 라로 님.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아, 이거 코미디언 유행어 흉내를)
제가 요즘 알라딘을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가끔 들어오는데.... 라로 님 댓글을 보니 반갑네요. 뭐, 라로 님은 워낙 잘 지내시는지라 잘 지내시죠, 라는 인사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ㅋㅋㅋ

이동진, 보면 볼수록 가관이에요. 남의 나라 영화제를 왜 생중계하는지 이해가 안 가요. 봉준호 말마따나 로컬 영화제인데 말이죠.
 
[eBook] 갈등이 아니라 혐오입니다 -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신승아 / 얼룩소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실하며 날카로운 시선, 실력있는 리뷰어의 탄생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탕, 탕, 탕 ! 석양의 건맨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연기를 못한다. 피우지도 못하는 독한 시가를 입에 물다 보니 미간에 주름살만 깊게 파인다. 그는 더스틴 호프만이나 로버트 드니로와 같은 불꽃 튀는 연기력을 선보인 적이 없는 배우이다. 

동작도 어그적어그적, 꿔다 논 보릿자루 같다(빌려 온 빗자루 같다). 대사도 거의 없다. 배우의 치열을 유심히 보는 악취미가 있지만 나는 단 한번도 그의 치열을 본 적이 없다. 만약에 그의 치열을 본 적이 있다고 자신있게 주장하는 이가 등장한다면 내 전 재산 500원을 아낌없이 드리리라. 그만큼 그는 말을 아낀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연기력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는 관객은 없다. 나 또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옹의 열혈 찐 팬이지만 그의 연기력이 거슬렸던 적은 없다. 왜냐하면 그는 배우가 아니다. 따라서 그를 두고 연기 못하는 형편없는 배우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연기를 잘 못한다기보다는 연기를 하지 않는다. 왜 ? 그는 배우가 아니니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신소리냐고 지청구를 날릴 분도 계시겠지만, 어쩌냐 ? 이 말은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미국 평단을 지배했던, 아니 씹어먹었던 폴린 카엘이라는 평론가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인물평이다. 윗 글을 읽고 나에게 지랄을 하려고 했던 분들은 모두 합죽이가 됩시다잉, 합 !!! 폴린 카엘의 하마평에 대하여 100% 동의한다. 폴린 카엘이라는 거대한 영화 권력에 순종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말이 맞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는 배우가 아니라 하나의 풍경이다, 황량한 풍경 ! 그의 얼굴은 신기하게도 서부의 사막을 닮았다. 푸석푸석한 건성 피부의 깊은 주름은 강줄기 갈래 같다. 
말라비틀어져서 바닥을 드러낸 계곡. 다듬어지지 않은 굵은 수염은 어떤가 ? 마치 모래바람에 굴러다니는 덩굴이나 선인장을 닮았다. 늙어갈수록 그의 얼굴은 점점 더 황량한 사막을 닮는다. 이 세상에 그보다 훌륭한 사막의 풍경을 재현하는 배우가 존재할까 ? 그동안 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수없이 많은 배우의 부고를 듣지만 캔 로치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부고 앞에서는 이른 봄날에 느닷없이 내리는 폭설처럼, 자주 사용하는 개인적 관용구를 사용하자면 늦겨울 이른 봄날에 얼었던 마당의 수돗물이 봇물 터지듯 느닷없이, 눈물을 흘릴 것 같다(해리 딘 스탠튼의 부고에 눈물을 훔쳤던 나다, 아흑 흙흙흙). 
윌리엄 머니는 용서받지 못한 자이면서 동시에 앞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자이기도 하다. 총잡이 윌리엄 머니는 잔인한 살인자(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그를 용서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던가. 자신의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손을 씻은 늙은 윌리엄 머니는 돼지농장에서 돼지 똥을 치우며 생활한다. 범죄와 갱생을 다룬 모든 범죄 영화들이 그렇듯이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그를 가만 둘 리 없다. 돼지 똥을 푸던 삽을 버리고 다시 한번 총을 든 윌리엄 머니. 명분이 거창한 것도 아니다. 그의 이름(munny)에서 알 수 있듯이 money를 위해 총을 든다. 두 놈을 해치우는 데 천 달러. 늙고 병든 윌리엄 머니는 미션 / 파서블할 수 있을까 ? 
한때 아내의 충고를 듣고 위스키를 끊었던 술주정뱅이 윌리엄 머니가 살인 청부를 위해 도착한 마을 이름이 빅위스키라는 아이러니가 복선으로 깔린다. 그리고 탕, 탕, 탕 !!! 이 영화에서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말이 없다. 입술이 얇은 사람은 말이 많다지만 그의 얇은 입술은 도통 열릴 일이 없다. 젊었을 때 늙어보였던 그는 늙을수록 더 늙어보인다. 그럴수록 그의 얼굴은 리얼 사막의 풍경이다. 지금 우리는 사막의 총잡이를 연기하다가 그만 사막이 된 남자를 보고 있다. 고전주의 서부 영화의 최고 걸작이 << 수색자 >> 라면 수정주의 서부 영화의 최고 걸작은 << 용서받지 못한 자 >> 이다. 압도적 걸작이다. 



                             
대한민국 1호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악담 전문가입니다. 정담을 나누기에는 성격이 지랄 맞고, 좌담을 나누기에는 교양이 짧습니다. 그래서 악담을 주로 합니다.
글 637
팔로워 245

팔로잉 1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듄 신장판 1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데이비드 린치와 프랭크 허버트



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무비 혹은 필름. 전자는 산업적인 측면에 초점을, 후자는 문화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감독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영화감독 혹은 영화작가. 데이비드 린치는 영화감독보다는 영화작가'란 이름이 익숙합니다. 그는 영화사에 굵직굵직한 업적을 남긴 거장입니다. 그가 영화를 내놓을 때마다 평론가들은 침을 질질 흘리며 이 위대한 감독을 숭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평론가들로부터 전폭적인 사랑을 한몸에 받은 감독이지요. 하지만 그에게도 흑역사는 있는 법입니다. 

<< 이레이저 헤드 >> 와 << 엘리펀드 맨 >> 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감독을 눈여겨본 제작자가 있습니다. 그가 바로 디노 드 로렌티스입니다. 영화 홍보사들은 디노 드 로렌티스'라는 이름 앞에 " 세계적(인 제작자) ㅡ " 이라는 딸랑구(아부하는 句 글귀)를 붙이기 좋아합니다. 뭔가 있어 보이니까, 크아.             전도유망한 젊은 감독과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성서를 반반 섞은 원작 그리고 세계적인 제작자의 만남은 그 자체로 화제였습니다. 1700명의 영화 스텝들, 80개가 넘는 대형 세트장 그리고 오랜 촬영 끝에 완성된 작품이 바로 데이비드 린치의 << 듄, 1984 >> 입니다. 

잘 만들었냐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개떡 같은 영화입니다. SF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미술 디자인인데 이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마치 싸구려 인형극에 나오는 무대 같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90년대에 비디오 테이프로 보았는데 " 주옥 " 같은 영화를 기대했다가 " 줬 " 같은 영화여서 허탈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저의 첫 인상 비평은 "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날이 있구나. "

개떡 같은 영화였습죠. 영화가 끝났을 때 줄거리가 이해가 안 가서 교보문고로 달려가 원작 소설 << 듄 1 >> 를 사서 집으로 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감독 스스로도 자신이 만든 작품이 쪽팔렸던 모양입니다. 최근에 런닝타임 3시간짜리 영화 버전(TV버전판)으로 다시 보았는데 영화 타이틀에는 감독 이름이 데이비드 린치가 아니라 알란 스미스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  헐리우드 영화판에서 자신이 만든 영화가 창피할 때 가상의 감독을 내세우게 되는데 그 이름이 바로 바로 알란 스미스죠( 또 한 명은 존 도우입니다). 웬만하면 못난 자식이라도 자기 자식은 품에 안기 마련인데 린치는 자식을 호적에서 파 버린 모양입니다. 

앞으로 너는 내 자식 아니다잉 ~  크아, 이 얼마나 조선 가부장적 서사란 말입니다. 일종의 영화판 파묘죠. 자식을 호적에서 파 버린 무정한 아버지, 데이비드 린치(농담이고요).  이 영화의 주요 무대가 사막이어서 그랬을까요 ? 영화 보는 내내 << 아라비아의 로렌스 >> 가 생각나더군요. 에너지 광물 스파이스는 명백히 석유에 대한 은유이고, 각 행성들은 서구 열강 제국을, 그리고 광물이 있는 행성의 원주민 부족 프레맨은 아랍 연합인 셈입니다. 주인공 폴의 가문인 " 아트레이데스 " 는 트로이 전쟁 영웅 아가멤논의 성인 " 아트레우스 " 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주 행성의 지도자 폴 아트레이데스는 로렌스, 예수, 모세, 그리고 아가멤논을 알맞게 뒤섞은 캐릭터로 이해하면 됩니다. 요약하자면 << 듄 >> 은 우주 행성에서 벌어지는 아라비아 로렌스의 트로이 전쟁 버전 혹은 성인용 스타워즈1) ??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데이비드 린치는 드니 빌뇌브의 << 듄 >> 시리즈를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 열등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질투심은 있지 않았을까 ?  개인적으로 데이비드 린치의 열혈 팬이지만 작가주의라는 이름으로 이 영화를 무작정 옹호할 수는 없습니다(까이예 뒤 시네마의 작가주의 정책에 신물이 나는 1인입니다). 

정말 더럽게 못 만든 영화거든요. 보는 내내 구닥다리 디자인에 혀를 끌끌 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타인의 불행을 보는 것은 참말로 행복하니까요. 영화 보는 내내 조롱의 삼삼칠 박수를 치며 외쳤습니다. 재밌다재밌다재밌당 ~ ㅎㅎㅎㅎ




1) << 스타워즈 >> 가 개봉되었을 때 프랭크 허버트는 몇몇 SF 소설가들과 함께 << 조지 루카스를 고소하기에는 너무 거물인 작가 모임 >> 을 결성한다. 이 영화가 소설 << 듄 >> 을 명백히 표절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듄 시리즈를 집필 중이었던 작가는 5권에서 스타워즈의 표절을 비판하는 문장을 삽입한다.  "사람들은 '그 사람은 3P-O(스타워즈의 깡통 로봇)야'라고 말하곤 했다. 질이 떨어지는 재료로 만든 싸구려 모조품으로 주위를 장식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대한민국 1호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악담 전문가입니다. 정담을 나누기에는 성격이 지랄 맞고, 좌담을 나누기에는 교양이 짧습니다. 그래서 악담을 주로 합니다.
글 635
팔로워 244

팔로잉 1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