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생각를 지지하며 

    

                                                < > 이라고 해서 모두 진상을 부리는 사람은 아닐 터 !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쁜 사람도 있는 것이 세상살이. 마찬가지로 도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면서 행세를 하는 진상도 빨랫줄 위에 널린 빨래처럼 널렸다. 다시 말해서, 에둘러 가지 말고 서둘러 말하자면,  < > 이라고 해서 법 없이도 살 만한, 힘없는 사람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중은 위대한가 ? 유권자는 항상 현명했던가 ? 진보는 어리석은 대중을 곤혹스러워 하고, 보수는 어리석은 대중을 간절히 원하는 경향이 있다( 새누리가 원하는 대중은 어리석은 대중이다 ).

 

흔히 < 사회적 약자 > 하면 착하면서 힘없는 사람 을 떠올리기 쉽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사회적 약자라고 해서 모두 착한 사람은 아닌 데 말이다. 내 세계관을 투영하자면 세상의 팔 할'은 나쁜 사람'이고 이 할은 좋은 사람이다. " 어 퓨 굿맨 " 은 항상 소수'다.  우리가 사회적 약자 라고 부를 때는 못 된 약자를 배제한 착한 약자로 범위를 좁혀서 생각하려는 버릇이 있다. 그렇다면 < 착한 약자 > < 못된 약자 >를 구분하는 잣대는 무엇일까, 과연 누가 과육 품종 분류 기계 : 어느 사과가 上品 이고 어느 사과가 下品 으로 전락할 것인가 를 조정하는 조정자일까 ? < 과육 품종 분류 기계 - 스틱 > 기득권 이 차지한다. 상품과 하품은 이들 손에 달려 있다.

 

쉽게 말해서 체제에 순응하는 은 상품으로, 반항하는 은 하품으로 직행해서 떨이로 팔린다. << 선별적 복지 >> 란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되는 부류에게 선심을 쓰겠다는 말. 자기 주머니를 털어서 선심을 쓰겠다면 할 말은 없으나 국민 세금으로 생색을 내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정치가가 복지에 대해 말할 때마다 공짜 를 들먹이는 데, 사실 공짜 혜택을 천조국 급으로 누리는 집단은 가난뱅이가 아니라 국회의원이다. 이들은 판공비라는 명복으로 1억 법인 카드를 제공받고, 자동차 연료비에서부터 시시콜콜한, 온갖 잡비를 지원받는다.

 

이들이 뽐내며 뿌리는 카드 결제는 모두 당신이 낸 세금으로 낸 돈이다. 누가 더 공짜를 좋아할까 ? 이처럼 공짜에 환장하는 정치가가 공짜 좋아하는 을 지적하니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다. 이럴 때마다 등장하는, 그 유명한 말. " 시바, 너나 잘하세요 ! " 주인(기득권)의 입장에서 보면 영화 <<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에서 퓨리오사와 맥스는 배은망덕한 자이며 나쁜 생각을 하는 못된 약자 . 내가 이 지점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나쁜 생각 에 대한 나쁜 태도. 욕망(desire) 은 대부분 < 나쁜 생각 > 에 속한다.

 

금기가 있기에 욕망은 발생하는 법이니, 욕망은 < do not > < do it > 하고 싶어 하는 심리'다. 만약에 < do it > 을 < do not >  하게 되면 게으른 태도'가 된다.  이 세상에 과연 금기가 없는 욕망 " 이 가능할까. 그렇기에 욕망은 월경(越境) 이다. 만약에 어떤 욕망 < 좋은 생각 > 에 해당된다고 하면 그것은 욕망이 아니라 정의, 박애, 인류애 따위. 욕망은 결코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지 않는다. 그것은 은밀한 것, 졸라 사적인 욕심이 욕망이니까. 나쁜 생각은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남녀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남자의 나쁜 생각과 여자의 나쁜 생각에 대한 비난 수위'가 다르다는 말이다.

 

한국 사회는 여성들의 나쁜 생각에 대해서는 가차 없지만, 남성들의 나쁜 생각에 대해서는 꽤 관대한 편이다. 같은 생각이라고 해도 회초리의 종류가 다르다. 남성에게는 싸리나무 회초리를, 여성에게는 박달나무를, ...... 딱딱한 박달나무. , 몰라 ! 특히, 성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차이가 분명하다. 한국 사회는 성에 개방적인 남성은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이지만, 반대로 여성은 퍼블릭 우먼 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들이 보기에 성 담론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여자하고 싶어 안달이 난 女子 로 찍힌다. 착각도 유분수지만 생각 또한 가분수.

 

남성은 자신들의 나쁜 생각은 별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정작 여성의 나쁜 생각에 대해서는 야단법석을 떤다. 젖가슴은 커야 좋다는 고백과 180이하는 루저라는 고백은 모두 나쁜 생각 에 해당되지만, 나쁜 생각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정반대. 좋은(착한, 순종적인, 체제 순응적인) 생각에 대한 옹호와 나쁜(반항적인, 불복종) 태도에 대한 배제는 사회적 약자를 돕는 kbs 리퀘스트 방송에서도 드러난다. 방송사가 시청자의 온정에 호소하면서 내세우는 논리가 바로 < 착한 가족(사람) > 이다.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이웃과 장애인은 반드시 착해야 한다.

 

그렇다면 동일 환경 속에서 평판이 좋지 못한 가족은 도움을 받으면 안 되는 것일까 ? 착한 가족이든, 나쁜 가족이든 환경에 따른 굶주림과 절망은 동일한 것이 아닐까 ? < 선별적 복지 > 는 착한 가족에게는 10를 주고 나쁜 가족에게는 0를 주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서 사회에 불만을 가지지 말고 체제에 순응하는 가족에게만 돕겠다는 발상이다. 도움을 받으려면 일단 순둥이 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 내가 김애란의 << 두근두근내인생 >>을 형편없는 소설로 규정하는 이유는 김애란이 주인의 기만적 전술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데 있다.

 

이 소설은 불온하기는커녕 체제 앞에서 굽실거린다. 그녀 또한 착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소설을 두고 극찬이 쏟아지는 한국 문단을 볼 때마다 웃으면서 코 팔 수밖에 없다. 권력을 누리는 기득권이 보기에 대중은 착해야 자신에게 유리하다. 착하게 굴면 떡을 주는 방식. 이 얼마나 동화적 구조인가 ! 사회적 약자라고 해서 착한 어린이가 될 필요 없다.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외쳐야 착한 어린이가 되는 나라라면 차라리 나쁜 어린이로 사는 게 낫다. 역사적 진보는 복종 사회가 아니라 불복종 사회에서 비롯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쁜 생각 을 지지하련다. 여성이 자유롭게 자신의 욕망을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지지하며, 장애인이 보행권을 문제 삼아 시민 사회를 향해 지랄을 떠는 태도를 지지하며, 도움이 필요한 주폭도 지지한다. 가진 것이 없으면 착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은 개나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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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5-06-12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은 어쩌면 저의 ‘약자란’이란 글에서 곰곰발님 에게 했던 질문의 답처럼 보입니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7577012

그러나 제가 불민不敏한 탓인지, 첫 번째, 두 번째 문단과 세 번째 이하의 연결은 이해가 안 되는 군요. 위 글을 읽고 ‘자살하는 할아버지’가 약자인지, 아닌지 판단이 안 서네요. (더불어 어느 알라디너의 글에 등장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할머니가 약자인지도 판단이 안 되고요.)

시각을 달리해서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내가 현 정부나 여당을 비판했습니다.
K가 이런 말을 제게 합니다. “<착한 정부, 정책>과 <못된 정부, 정책>를 구분하는 잣대는 무엇일까, 과연 누가 (정부에 대해) ‘과육 품종 분류 기계 : 어느 사과가 上品 이고 어느 사과가 下品 으로 전락할 것인가”를 조정하는 조정자’일까? ; 라고 반박한다면
제가 할 수 있는 반론은 가능한가요? 가능하다면 어떤 것이 가능할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2 10:00   좋아요 0 | URL
오, 아닙니다. 마립간 님에게 딴지를 걸려는 수작은 0%입니다. 제가 누굴 표적 글 쓴다면 직설적으로 쓰지 에둘러 쓰는 스타일은 아니잖습니까. 여기서 말한 착한 ~ 은 글에서도 지적해씃이 기득권이 보기에 말 잘듣는, 순종적인 의미로 포괄적으로 썼습니다. 나쁜 ~ 이라는 것도 나쁘다는 것을 지시한다기보다는 체제에 반항적인 의미로 고른 단어입니다.

글구, 약자`는 반드시 좋은 표현으로 쓴 것은 아닙니다. 저는 대중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대중이 언제나 옳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전부 도토리 키재기 같다고나 할까요. 그러하니 진보의 선택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도 없죠. 노 정부의 진보 정책은 처참할 정도로 삼성에 기댄 신자유주의 정책이었으니 말이죠...

분류 기계 비유는 기득권이 자의대로 선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에게 유리하면 상품으로 불리하면 하품으로 말이죠....

마립간 2015-06-12 11:52   좋아요 0 | URL
저는 저에게 딴지 거는 것을 좋아합니다. (딴지가 저를 발전시킨다고 생각하거든요.)

순종 http://blog.aladin.co.kr/maripkahn/7044939

저는 순종을 리더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팔로워 관점에서 쓸 때는, 순종 대신 복종이나 맹종을 사용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2 11:3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순종을 악덕의 한 종류라고 봅니다. 체제 순응을 그닥 좋게 생각하는 편은 아니라서요.

samadhi(眞我) 2015-06-13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행동하지 않는^^; 반골이라서요. 기득권 자체를 거부합니다. 그래서 늘 조직에서 겉도나봐요. 그리고 무지한 군중폭력에 끔찍해하죠. 집단광증(?)으로 무고한 사람이 생매장당하는 상황 같은 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3 05:53   좋아요 0 | URL
저도 늘 조직에서 겉돕니다. 단 한번도 조직에 충성한 적이 없네요... ㅎㅎㅎㅎ. 그래서 출세를 못하나 봅니다. 하지만 조직 내에 있으면 온갖 부조리를 경험하게 되잖아요. 보면 그냥 좆같죠. 그런데 그걸 충성하는 인간도 있습니다. 사내 익명 게시판이 있어서 맘대로 욕해도 된다 했는데, 욕하는 놈은 나 하나고 모든 사람들은 익명인데도 불구하고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는 글만 쓰더군요. 의아했어요. 익명인데 왜 그럴까 ?

비로그인 2015-06-16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응하지 않는 삶˝의 ˝고고한 성공˝을 보고싶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곰발님 글처럼 늘 반골이 저주받고 학대당하고 폐기되는꼴만 보여줍니다.그래서 유능한 젊은이는더욱 체제에 편입하려하고 무능한 젊은이도 일베를 하며 체제를 옹호합니다.
성공하는 반골들이 너무나 보고싶습니다. 저또한 그렇게 되고싶습니다. 글쓰다보니 울컥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6 16:08   좋아요 1 | URL
한국에서는 순응하지 않는 삶에서 고고한 성공을 할 가능성은 1%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유능한 젊은이는 체제에 순응하고 무능한 젊은이는 일베에 편입되어 체제를 옹호한다는 말, 깊이 있게 다가옵니다.
 

 

 

 

 

 

 

매드맥스는 페미니즘 영화인가 ?

 

 

                                                                              그 옛날, 자동차 추격 장면'을 가장 탁월하게 구사하는 감독은 월리엄 프리드킨과 조지 밀러'였다. 얀 드봉 감독'도 ?! 조까라 그래라 !  << 프렌치 커넥션 >> 과 << 매드 맥스 >> 시리즈'는 잘 빠진 강철 하드 바디의 무한 질주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하지만 당시 촬영 기술은 머릿속 상상을 100% 재현하기에는 아날로그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조지 밀러의 만든 <<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 이하 분노의 도로 ) >> 는 당시에는 기술적 제약에 의해 표현하지 못한 부분을 완벽하게 재현한 영화'다. 잠시 샛길로 빠지자면 : 개인적으로 가장 황홀한 자동차 추격 장면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 현기증 >> 이었다. 자동차 질주 장면은  속도가 " 갑 " 이지만, 

느려터진 속도로 도로를 훑는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장면'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동자 미행'이었다( 질주와 미행을 한통속으로 묶는 것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 비유를 들자면 << 프렌치 커넥션 >> 과 << 매드 맥스 >> 가 우드스탁 야외 락 페스티발'이라면, << 현기증 >> 은 세종문화 회관에서 연주되는 실내악 4중주 같다고나 할까 ?  영화 << 현기증 >> 에서 자동차 미행 장면은 로케이션 촬영이 아닌 스튜디오 안에서 스크린 프로세스 장면으로 촬영되었지만, 이 " 어설픈 스크린 프로세스 장면 " 은 묘하게 작품에 품격을 높인다.    개인적으로 스크린 프로세스 장면을 탁월하게 구사하는 감독은 알프레드 히치콕이다. 특히, << 열차 속의 이방인 >> 은 압권'이다. 이 영화는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르면 걸작으로 칭송받을 작품이다   

속도가 자동자 질주 장면의 모든 것은 아니다. 속도만 가지고 보면 얀 드봉의 << 스피드 >> 를 능가할 영화가 있겠느냐마는, << 스피드 >> 에서 보여주는 " 스피드 " 는 멋도 없고 맛도 없다. 오해는 마시시시시시시시시시시시시시시라. << 프렌치 커넥션 >> 과 << 매드 맥스 >> 를 폄하하려는 밑밥은 아니니까 말이다.  나 또한 남자 사람이어서 누구보다도 이 두 영화에 열광한 사람'이었다. 조지 밀러 감독이 일취월장한  특수효과를 가지고 돌아온 << 분노의 도로 >> 는 오락 영화에 충실한 영화였고, 오락 영화다운 영화'여서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그리고 꽤 훌륭한 영화'다. 하지만 불똥이 이상한 곳에서 발생하는 모양이다. 이 영화'가 과연 페미니즘 영화인가 아닌가,  라는 논란'이다. 

3초 생각하고 30초 웃었다. 이게 무슨 페미니즘 영화인가 ?! 그런데 예상 외로 페미니즘 영화'로 규정하는 사람이 꽤 많은 모양이다. 이 영화는 여성 영화도 아니고 남성 영화도 아니고, 그냥 영화'다. 김기덕과 아이들 흉내를 내자면 " 영화는 영화'다. "  일단, 퓨리오사'는 여성'이라기보다는 남성화된 여성'이다. 그것은, 음, 그러니까, 뭐냐면, 음, 쫌... 그게 조심스러운데 박근혜는 < sex > 는 여성이지만 < gender > 로는 남성이듯이,  마찬가지로 퓨리오사는 < sex > 는 여성이지만, < gender > 는 남성'인 캐릭터'다. 그녀는 " 모세 " 가 되어서 여성을 이끌고 꿀과 젖이 있는 가나안으로 가려 한다.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맥스를 만나고 둘은 힘을 합쳐 목적을 이룬다는 내용. 

퓨리오사와 맥스는 가만히 뜯어보면 동성 짝패'다. 퓨리오사'에게 있어서 여성으로서의 체력적 한계'는 거의 없어 보인다. 맥스와 맞짱 대결'에서 둘은 서로 대등한 실력을 선보인다. 오히려 퓨리오사'가 한쪽 팔이 없다는 측면에서 무쇠팔을 장착했다면 퓨리오사'가 우세했을 사생결단'이었다. 그녀는, 무늬'만 여성인 존재'다. 하지만 그 사실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페미니즘 영화를 표방한 영화는 아니니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여성적인 모티브를 자주 차용한다. < 8기통 전투 차량 > 이 싣고 있는 물과 우유는 불과 피에 대응하는 " 여성 액체 " 다. 남성이 피를 나누는 존재라면(혈맹), 여성은 우유를 나눈다.

이 영화에서 8기통 전투 차량이 우유를 싣고 달린다는 점에서 강철 하드바디의 외양을 한, 속은 한없이 부드러운 거대 유방 기계'인 셈이다. 간단하게 파트라슈가 몰고 다니는 우유 수레'라고나 할까 ? 아, 갑자기 파트라슈 보고 싶네....   특히 임모탄이 머무는 장소'가 " 동굴 " 이라는 점에서, 이 동굴은 전형적인 " 촉촉하고 검은 동굴 " 이다. 그곳에서는 우유와 물이 쏟아지고, 씨앗을 심을 수 있는 기름진 땅이 자라나는 곳이다. 바로 그 점이 << 코라 >> 를 연상시킨다. 코라'란 원초적 자궁을 의미한다. 임모탄이 기르는(?) 신인류 " 눅스 " 는 가만히 뜯어보면 태아'를 닮았다. 그러니깐 이곳은 거대한 자궁이요, 눅수는 탯줄에서 영양분을 얻는 미숙아'다.

조지 밀러 감독이 그 사실'을 인지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찌되었든 결과를 놓고 보았을 때 : 여성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페미니즘 영화'라고 주장하면 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페미니즘 영화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고, 반대로 영화의 행간을 읽어서 임모탄과 신인류 눅스가 머무는 장소를 << 코라 >> 로 해석해서 페미니즘 영화'라고 주장한다면 그 타당성에 대해서는 동의할 생각은 있다.  하지만 원초적 모성 공간을 다룬다고 해서 페미니즘 영화'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 엑소시스트 >> 나 << 에이리언 >> 도 페미니즘 영화'라고 주장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가 아니라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영화를 해석하기에 좋은 영화'다.

하여튼,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인물은 " 기타맨 " 이었다. 그의 지랄발광이 무척 아름다웠다. 이런 비주얼, 씨발......  이런 지랄발광, 이런 싸운드, 이런 질주.... 좋다. 실내악 4중주'만 들을 수는 없는 노릇. 가끔은 < 롹 > 빨 터지는 영화도 봐야 한다. 조지 밀러 감독도 도전했으니 월리엄 프리드킨 감독도 새로운 자동차 질주 영화 하나 만들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네. 월리엄 프리드킨 감독님, 아직도 지상에 강림하시고 계시다면 하나 만들어주쇼.  마뇰 드 올리베이라(Manoel de Oliveira) 감독님도 10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만드셨습니다. 저는 당신 영화를 사, 사사사, 좋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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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7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08 0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5-06-07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를 보며 내내 하.드.코.어.라고 생각했어요. 메탈 음악 중에서도 데쓰메탈 같은 느낌. 시나리오가 심하게 엉성해서 실망했지만 그 외 효과들은 훌륭했어요. 시도가 좋았다는 생각이요. 모든 연령층에게 호응을 일으키긴 힘들 것 같구요. 그네의 젠더를 아주 명확히 정의하셨네요 저는 주로 꼭두각시로 정의합니다. 요즘 로봇들도 꽤 진화해서 똑똑하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08 05:53   좋아요 0 | URL
저도 탄탄한 스토리는 아니어서 놀랐습니다. 하긴, 질주 본능을 위한 이야기 설정이니 어설프긴 하더군요.
근데 기타맨 매력 쩔지 않습니까 ? 기타맨 보는 재미로 보았습니다..ㅋㅋㅋㅋㅋ


samadhi(眞我) 2015-06-08 05:56   좋아요 0 | URL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 영화가 무슨 맛이 있었겠어요 ㅎㅎ 그 미친 메탈보컬(?)을 연기한 배우가 누구인지 찾아보게 만들었죠. 실제로 음악가라고 하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08 14:01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ㅎㅎㅎㅎㅎㅎㅎ. 음악가인 줄은 몰랐습니다.
어쩐지 뭔가 와꾸가 제대로 나오더군요...ㅎㅎㅎㅎㅎㅎㅎㅎ
 

 

 

 

편애는 정당하다

                           이런 글을 쓴 적 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고달픈 일이다. 하물며 여성이면서 동시에 乙이며 못생긴 여자'는 더 고달프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예쁜 여자'가 살기에 편한 사회는 아니다. 예쁜 여자는 뭇 사내들에게 표적이 되기 일쑤다. 좆대가리'는 염치를 모르고 눈치도 없다. 이래저래 여성에게 있어서 대한민국은 " 개미지옥 " 같은 곳'이다. 세탁기와 전기 밥솥이 여성을 가사 노동에서 해방시켰다며 여자가 살기 좋은 시대로 정의'를 내린다면, 도시 가스 난방이 남성을 바깥일에서 해방시켰다며 남자가 살기 좋은 시대로 정의를 내려도 할 말은 없지 않을까 ?  그 옛날, 장작을 구하는 일은 고된 일과'였으니 말이다. 장작을 구하려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지게꾼에게 심심한 애도를.

< 계집 > 이란 말이 여자를 낮추어 부르는 소리'란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만,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한자 女의 으뜸 의미가 여전히 " 계집 " 이라는 사실은 씁쓸하다. 교육 현장에서조차 양성평등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지 오래이다. 교육은 기회 평등의 장'이 아니라 차별을 낳는 도구'다. 서울대는 이제 계급 사회를 양성하는 기관이 되었다. 당신 딸을 두고 " 둘째가 올해 스무 살이었던가 ? 그 계집 보니 잘 컸어, 잘 컸어 ! " 라고 말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언어 구조는 사회 구조의 축소판'이다. 나아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자크 라캉이 한 말'이다. 요즘 곽정은 씨가 남긴 트윗이 논란이 되는 모양이다. 사소한 트윗-질'을 주요 기사로 작성하는 것을 보면 의아한 대목이다. 으, 아 ~

그녀가 대중으로부터 대표 밉상이 된 원인은 " 섹스 칼럼리스트 " 란 직업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솔직하게 성적 욕망을 표현하는 것은 금기'다. 주류 남성 입장에서 보면 여자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지, 사랑 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주류 남성 사회는 한국 여자가 성적 욕망을 표현하는 순간, 그녀를 값싼 년으로 취급한다. 곽정은 씨에 대한 공격은 양가적'이다. 그녀는 성적으로는 < 값싼 년 > 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지위로는 < 잘난 년 > 이다. 그 이유 때문에 그녀는 표적'이 된다. 곽정은 씨'가 지적하는 것은 택시 기사라는 직업에 대한 경멸이 아니라 여성을 외모로 평가하려는 잘못된 언어 습속'에 대한 불쾌'다. 듣는 이에 따라서는 " 예쁜 공주 " 라는 표현이 귀에 거슬릴 수 있다.

신분 사회'가 아닌 데도 불구하고 굳이 공주를 들먹이는 태도에서 춘부장의 쓸데없는 오지랖이 엿보인다. 물론 그가 그런 생각으로 말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말이란 것은 아, 다르고 어, 다른 법. 듣는 이에 따라서는 달리 해석될 수 있는 지점이다. " 예쁜 공주 " 라는 표현이 주로 나이 어린 여자아이'를 지시한다는 점에서, 마흔을 눈앞에 둔 여성이 듣기에는 매우 거북스러운 표현일 수 있다. 더군다나 < 공주 > 가 주로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여자'를 지시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제는 한국 사회가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여성의 욕망을 긍정해야 되지 않을까 ?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악다구니를 볼 때마다 느끼게 되는 생각'이다. 괴테가 이런 말을 했다. 여성성이 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 ”

대한민국은 편견을 옹호하고 편애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 방향 설정은 잘못되었다. 반대로 편견은 금지하고 편애는 옹호되어야 한다. 하워드 진은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고 말했고, 프란체스코 교황은 고통받는 자 앞에서 중립은 없다고 말했다. 이들이 말하는 편애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건 없는 지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 둘 중 하나 " 를 선택해야 하는 사회적 압력의 연속체'이다. 자유 의지'로 무엇인가를 선택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사회주의 사회'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구조인 이유는 무한한 선택의 자유'에 있다. 편애는 만족스러운 선택을 하기 위한 방법으로 잘못된 선택을 최소화한다.

그렇기에 취향이 탄생하는 것이다. 내가 여성을 지지하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 일단 싸움을 말리는 게 최선이다. 그녀에게 돌 던지지 마라. 이 오오츠크해 시밤바 새끼들아. 시작은 부뚜막에 오른 교양인처럼 얌전했으나 끝은 하이에나처럼 천박하구나. 어쩔 수 없다. 이게 내 취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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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5-05-27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 취향 한 번 마음에 드는구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5-27 10:13   좋아요 0 | URL
고맙구려. ㅎㅎㅎ.

마립간 2015-05-27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는 `페미니스트`들은 `새정치민주연합`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이 둘에 대해 편애해야 할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27 13:04   좋아요 0 | URL
저는 새민련이 약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거대 이익 집단`이죠.....

마립간 2015-05-27 14:31   좋아요 0 | URL
여자는 남자에 비해 약자이지만, 제 3의 성에 비하면 (거대?) 강자죠.

stella.K 2015-05-27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곰발님 욕은 단연 최고입니다!!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5-29 04:46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 좀.. 구수하죠 ?

수다맨 2015-05-28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시 강원도에 다녀왔습니다. 가기 싫었는데 예비군 훈련 받으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며칠 다녀왔네요. 날씨도 더운데, 민간인들 앞에서 갑질하려는 몇몇 간부들을 보고 있으려니 그 졸렬함에 짜증이 나기도,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곰곰발님 글을 오랜만에 읽으니 철학자 김진석이 말했던 `기우뚱한 균형`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어쩌면 균형 잡힌 시각이란, 편하디 편한 중립의 자리에 서는 게 아니라 약자를 위하는 편향적(?) 입장에 서 있을 때 비로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29 04:48   좋아요 0 | URL
요즘 예비군 사고 다발이던데 이렇게 안부글 남기시는 것 보니 무탈하셨나 봅니다.
어디 한국군에 제대로 된 군인 있던가요.

그럼요. 인간은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들이 모여서 정치성을 드러냅니다. 선택 없는 중립은 좀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가 계속 중립을 요구하는 것은 괴이한 논변이죠. 민주주의는 선택의 연속체입니다.

마립간 2015-06-02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서재에 글을 남겼습니다. 제 글을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보빠 2015-06-07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해서 마음에 듭니다...offline에서도 그렇게 화끈하게 말하시는 분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6-08 05:57   좋아요 0 | URL
화, 끈하게 말하지는 못하나... ㅋㅋㅋ 할 말은 하고 산다 - 주의`입니다....
 

 

 

 

 

 

 






물고기는 머리로 방향을 설정

하고  꼬리로  추동(推動)한다

                                      물고기는 머리로 방향을 설정하고 꼬리로 추동한다. 머리가 방향을 설정했으니 끄으으으읏~ 난 일일까. 뱃머리에서 이순신 장군이 " 팔로우 미 !!! " 라고 외쳤다고 해서, 후세 사람들이 배 밑바닥에서 열심히 노를 젓던 팔로워(들)의 노고를 무시하면 호로자식'이제. 꼬리의 추동력이 없으면 절대 목표 지점에 다다를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목표 설정은 우두머리가 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힘은 끄트머리'에서 나온다. 누군가가 머리와 꼬리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 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쉽지 않은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둘 다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끄트머리'라는 낱말이 < 끝 부분 > 이라는 의미와 함께 < 실마리 > 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 끄트머리 >> 는 머리와 꼬리가 함께 하는 어지자지    :  남녀의 생식기를 겸하여 가진 사람    형태'다. , 매모호하다는 말. 실마리'라는 단어가 " 감겨 있거나 헝클어진 실의 첫머리 " 라는 뜻이니 << 끄트머리 >> 는 " 끝의 머리 " 인 셈'이다. 그렇기에 끄트머리는 " END " 가 아니라 " AND " 이며, 마침표 대신 쉼표'를 찍고 다시 이어진 문장이다. 내가 이건희의 << 천재경영론 : 한 명의 천재가 수만 명을 먹여살린다 >> 을 좆같이 생각하는 이유는 천재 한 명이 먹여살린다는 " 수만 명 " 의 정체'가 우습다는 데 있다. 설령, 천재 한 명이 수만 명을 먹여살릴 수 있다고 쳐도, 그 수만 명은 어디까지나 핏줄과 혈맹으로 맺어진 유사 - 가족 관계'에 의해서만 성립된다. 이건희가 먹여살릴 가족은 이재용이지

만재도 아이큐 95를 자랑하는 황만근은 아니다. 이 가계도를 국민, 백성,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로 확대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건희는 단순하게 자기 자식새끼를 먹여살릴 만한 재주가 있는 아범일 뿐이다. 머리(head)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꼬리가 추동을 멈추면 몸통이 물 위에 떠올라 갈매기의 먹이가 될 운명에 처하게 된다. 머리를 지나치게 숭배할 필요 없고, 같은 이유로 꼬리를 지나치게 폄하할 필요도 없다. 머리와 꼬리는 상생 관계'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대가리를 숭배하고 꼬리를 경멸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박정희가 이 나라를 먹여살렸다고 말하거나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랄도 유분수라고 그런 놈들에게는 약도 없다. 기업 하나가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한다면

그런 나라는 차라리 망해야 한다. 삼성이 망해도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다. 자, 이제부터 조금 불편한 이야기를 할까 ? < 박정희 정치 > 를 말하며 인기를 얻으려는 정치인도 혐오스럽지만 < 김대중 정치 > 와 < 노무현 정치 > 를 말하며 영역을 확장하려는 정치인 또한 혐오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김대중 정신을 받들어, 라거나 노무현 정신을 구현하기 위하여, 라고 말할 때마다 허망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왜냐하면 산 자는 죽은 자 때문에 고통 받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 김대중 대통령이나 고 노무현 대통령이나 둘 다 바라지 않은 바람일 것이다. 지금 새천련 민주당에서 벌어지는 꼴을 보면 전형적인 가훈 정치요, 유훈 정치'다. 죽은 자를 무대 중앙에 앉혀 놓고 우상을 섬기는 꼴과 다를 게 무엇일까 ?

그들은 죽은 자의 이름을 빌려 발 : 가늘고 긴 대를 줄로 엮거나, 줄 따위를 여러 개 나란히 늘어뜨려 만든 물건. 수렴청정 垂簾聽政에서 렴(염)이 바로 발'을 뜻한다. 수 垂 는 늘어뜨리다는 뜻 을 늘어뜨린 후 무대 뒤에서 그림자 정치를 하려는 속셈. 정치가 미래(THE NEW)를 향하지 않고 과거(THE OLD)를 향할 때, 그 힘은 항상 역사를 퇴행시킨다. 뛰어난 우두머리에게 기생하는 정치야말로 볼썽사납다. 우두머리가 빛나기 위해서는 끄트머리의 교양이 뛰어나야 한다. 우두머리에 기생하는 정치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게 끄트머리(민중) 예찬'이다.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 최근 10년 동안 대한민국 사정과 너무 비슷해서 이제는 유행어처럼 번지는 말.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말이다.

박빠와 노빠는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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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5-25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박빠와 노빠는 크게 다르지 않다 - 라고 해서 박정희(박근혜)와 노무현을 같은 레벨로 엮으려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에게는 연민이 들지만 박정희와 박근혜에게는 그저 살의를 느낄 뿐이다.

samadhi(眞我) 2015-05-25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또한 그다지 똑똑하지 않지만 평생을 고민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과 자기 자신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대화하다 속이 터집디다. 끄트머리의 교양이 필요하다는 말에 적극 공감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26 05:18   좋아요 0 | URL
여당은 뭘 해도 지지않는 정당이 되었습니다. 골리앗이 된 셈. 사실 최근 10년 동안 벌어진 정치사는 이디오피아보다 낙후한 정치사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끄떡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는 것을 보면....

수이 2015-05-26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 최근 글 중에서 제일 파장 크네요. 개인적으로.
아 뭘 좀 느끼고 깨닫고 그러면 좋겠는데 어째 맨날 그 자리에서 그 자리인지 바라보는 것만도 힘 빠져요, 요즘은. 이 사람들은 정말 여기에서 이렇게 주저하다가 또 실컷 얻어터지고 울면서 나 아야야 해쪄_ 약 발라줘_ 할까 싶어서 이젠 약도 발라주기 싫을 정도라......

곰곰생각하는발 2015-05-26 10:55   좋아요 0 | URL
제가 야나 님에게 파장을 주다니... ㅠㅠ 반성하겠습니다.
이권 싸움에서 무너지는 야당 보며 한숨만 나옵니다.
친노, 친노 그러는데 과연 당내 친노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고...

stella.K 2015-05-26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 전 노무현 서거하고나서 <운명이다>란 책을 읽었는데
그때 내가 노형을 너무 몰랐구나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 책은 독자의 감성만을 건드려줬을 뿐
노형의 서거를 친노쪽에서 이용해 먹은 것에 지나지 않겠구나란 생각이 들더군요.
감성으로든 이성으로든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그 이후 민주당이
좀 나아지는 모습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야당도 못 믿겠다는 거 아닙니까?
민주당은 빨갱이란 말도 있고.
몇년 전 개그맨 박영진이 소는 누가 돌보냐고 했는데
소 조차 돌 볼 줄 모르는 게 정치한다고 하니... ㅉ

곰곰생각하는발 2015-05-26 14:09   좋아요 0 | URL
< 민주화 > 와 < 민주주의 > 는 다르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민주화는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지 완성은 아닌데
민주화를 너무 민주주의`라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뭐... 1980년대로 다시 회귀했으니까요.
유권자는 현명하다 하는데 솔까말 유권자는 멍청하죠.
그게 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05-28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노빠 성향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노빠모임에 가지 않는 것은
패거리 문화가 싫어서죠. 지금은 안 하지만,
차라리 봉하마을에 가서 풀베고, 묘역가꾸고, 나무 가꾸고, 환경정화하는 게 좋지
모여서 술마시고 으샤으샤만 하는건 별로더군요.
전에 모임에 가보니 학문을 아는 분이 몇 없더군요.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아는 분이신데, 노무현을 지지하는 분이라면
한 번이라도 노무현이란 인물이 무슨 생각으로 정치하는지 알려면
한 번 그가 추구하는 사상적 토대를 보는 게 좋을 듯하더군요.

그런데 세상을 보면서 참 아쉬운건 뭐든지 정치인이나 정권이 교체되어서 바뀌는 게
아니라 바꿀 수 있는 원점을 가지는 것인데, 진짜 토크빌 말입니다.
하루 아침에 망조의 길을 가는 것은 쉬워도 하루 아침부터 발전의 계단에 오르길 어려운 법인데

곰곰생각하는발 2015-05-29 10:59   좋아요 0 | URL
만애비 님은 노빠가 아닙니다. 노빠는 뭔가 패거리적인 면이 있어요. 하여튼...
< 파 > 가 아니라 < 빠 > 가 되면 골치 아픕니다. 이거이거...

수다맨 2015-05-29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라는 책에서 `죽은 세대의 전통이 악몽과도 같이 산 자의 사고를 누른다˝고 한 적이 있었지요. 차라리 그 전통(?)을 악몽이라고 생각하면 다행일 터인데, 박빠건 노빠건 달콤한 환몽이라고 생각하니 이게 진짜 문제인 듯합니다. 군부 독재를 하면서 사람 알기를 짐승처럼 보았던 인간 백정 파쇼나, 신자유주의 정책의 선봉장이 되어 친재벌/노동 탄압 정책을 폈던 과거의 두 민주주의자(!)나 제가 보기에는 모두 준절하게, 비판적 평가를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29 22:21   좋아요 0 | URL
같은 맥락이군요. 죽은 자 때문에 산 자는 고통받는다와 같은 맥락...두 민주주의 과정 속에서 태어난 두 대통령이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을 지지했다는 것은 크나큰 실`입니다. 작은 과오가 아니러 거대한 과오죠. 이미 삼성이 모든 권력을 쥐었으니 말입니다.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것 자체가 없어요. 무조건적 지지`가 좋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참외는 참 외롭다


 

                             ■  프롤로그    :    冊 을 읽다가 따분해지면 책을 덮고 국어 사전이나 한자 사전 따위를 펼친다. 손 닿는 대로 펼쳐서 나온 페이지'를 몇 장 읽는다. 사전 읽는 맛이 의외로 쏠쏠하다. 내가 펼친 부분은 << 찰카당 >> 이라는 단어로 시작되는 페이지'였다. 찰카당, 찰칵, 찰통, 찰흙.......... 내 관심을 끈 단어는 < 참 - > 이라는 접두사'였다. 명사 앞에 붙어서 " ① 진짜, 진실하고 올바른 ② 품질이 우수한 ③ 먹을 수 있는 " 이라는 뜻을 더한다. 그러니까 < 똘배 > 보다는 < 참배 > 가 맛이 좋고, 빛 좋은 < 개살구 > 보다는 < 참살구 > 가 맛이 좋다는 소리'다. 이처럼 동식물과 관련이 있는 명사 앞에 < 참- > 이 붙으면 식용이 가능할 뿐더라 맛도 더 좋다는 뜻이니

동식물 이름만 제대로 알면 산 속에서 길을 잃어도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킬리만자로의 아범은 알아두라고. 그리고  갈참나무, 굴참나무, 물참나무, 졸참나무 따위를 통틀어서 참나무'라고 하는데 나무 앞에 < 참- > 이 붙은 데에는 이 나무들이 도토리 열매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 참외 >> 에서 < 외 > 가 오이의 준말이니 맛이 좋은 으뜸 오이'라는 뜻일까 ?  오이를 뜻하는 한자 瓜  : 오이 과   가 참외'를 뜻하기도 하니 오이와 참외'는 한배'에서 태어났으나 아비가 다른 형제들이다( 수박, 오이, 참외는 모두 박목-박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달달한 오이가 참외요, 밍밍한 참외가 오이'인 셈이다. 사전을 찾아 보니 참외와 첨과    甛瓜 : 달 첨, 오이 과 '   는 같은 말이다.

< 첨과 > 가 세월이 흘러 < 참외 > 가 된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오이, 참외, 수박 따위는 모두 박색한 박 씨의 뱃속에서 나온 한통속'이다. 모양새도 그렇고, 색깔도 그렇고, 맛도 서로 사뭇 달라서 오이와 참외가 한통속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나는 허탈한 감상에 빠져들었다. 피붙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세상에 홀로 버려진 참외 씨'가 우연히 부잣집 오이 여자를 만나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지지만 알고 보니 오누이 사이. 하지만 연을 끊기에는 사랑은 깊어가고 !  참외 남자는 이 사실을 숨긴 채 오이 여자'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그녀 곁을 떠난다. 하지만 교통 사고로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진 남자. 그가 병실에서 눈을 뜨자 그의 곁에는 오이 아가씨가 병간호를 하고 있다. 

오이 아가씨가 병상에 누운 참외 씨'에게 다정하게 묻는다. " 참외 씨....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요 ? " 참외 씨는 오이 아가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한다. " 누구떼여 ? " 절규하는 여자. 누,누누누누누누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 남자는 교통 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이다.  여자 떠나면 그렁그렁 맺힌 남자의 눈물 C.U 참외 의 참회의 눈물. THE END라는 타이틀이 떠오르면 F.O          참외와 오이의 러브스토리에 관심이 생겨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연히 김서령 산문 << 참외는 참 외롭다 >> 라는 책을 발견했다. " 참외는 참... 외롭다라.... " 읽지 않은 책이라 내용을 알 수는 없으나 다행히 그녀가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내용이 있어서 옮겨본다. 분량이 길지만 꽤 흥미롭다.


 


참외는 참 외롭다


 참외의 ‘외’는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외아들·외딴집 할 때의 그 ‘외’다. 영어로도 참외는 ‘me-lone’이다. “Are you lonesome tonight?” 할 때의 그 ‘lone’이니 역시 ‘혼자’라는 뜻이다. 한자의 외로울 고(孤)자에도 참외 하나(瓜)가 들어앉아 이쪽을 말갛게 건너다본다. 우리말과 영어, 한자를 만든 이들이 함께 모여 회의를 한 것도 아니련만 ‘혼자’라는 의미에 똑같이 ‘외’라는 과일을 사용한 건 희한한 일이다. ‘슬기’가 ‘슬기-롭다’가 되고 ‘지혜’가 ‘지혜-롭다’가 되는 우리말 구조를 따져보면 ‘외-롭다’는 ‘외’로부터 나온 게 확실하다. 그들은 왜 ‘외로움’이란 의미를 밭에 돋아 홀로 열매가 굵어가는 저 보잘것없는 초본식물로부터 만들어 냈을까.

경상도 안동 말을 쓰던 엄마는 오이를 ‘물외’라고 부르고 참외는 그냥 ‘외’라고 불렀다. 오이는 영어로 ‘cucumber’이고 한자로 황과(黃瓜)며, 수박은 ‘water-melon’이고 수과(水瓜)다. 오이와 수박도 외롭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박목-박과에 속한 식물들이지만 다른 성질들이 우세해서 세 언어 공히 같은 이름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참외만은 ‘참’이라고 진짜임을 강조하는 모자까지 척 쓰고 ‘외로움’의 절대강자가 되어 수천 년을(아마도!) 버텨오고 있다. 참외가 단순히 단물 가득한 과일이 아니고 ‘외로움’을 표상하게 된 비밀을 나는 다석 유영모 선생의 제자인 박영호 선생에게 처음 들었다.

외는 마디 하나에 꽃이 하나씩만 핀다. 다른 식물은 대개 쌍으로 꽃이 피어 열매도 쌍으로 달리는데 박과 식물만은 홀로 꽃피니 열매도 하나뿐이다. 사과도 배도 대추도 감도 곁의 놈에게 의지하건만 외만은 아니다. 홀로 피어야 열매가 둥글게 자랄 수 있다.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몸이 굵어질 수 있다. 몸 안에 단맛을 충분히 저장할 수 있다. 외가 홀로 비와 어둠과 바람과 땡볕을 견디고 또 누리는 것은 그 길만이 안에서 익어가는 성숙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외’의 진정한 의미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턴가 일상 언어생활에서 이 오래되고 의연한 말을 사용하지 않게 됐다. 뱉어놓고 보면 외롭다는 말에는 뭔지 얄팍하고 덜덜하고 끈적대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 결핍감과 의존성이 번번이 민망했다.

 

 말이란 동시대인의 철학과 정서가 고스란히 담기는 그릇이다. 원래 홀로 꽃피어 열매 맺는 ‘외’를 보고 ‘외-롭다’란 말을 만들었을 시대의 ‘외로움’이란 당당하게 홀로섬을 선택한다는 의미가 강했을 것이다. ‘~롭다’란 말 앞에 대개 긍정적인 추상명사가 붙는 걸로 유추해도 그렇고 참외가 익어가는 양을 오랜 세월 관찰해서 언어를 만들어 냈을 고대인의 심리를 짐작해 봐도 그렇다. 현대의 외로움엔 원래의 의미 대신 상당량의 ‘당분’과 ‘센티멘털’이 가미돼 버렸다. 시장과 매스미디어는 외로움을 와인이나 초콜릿, 커피 같은 기호식품에 끼워 팔고 드라마와 가요는 외로움을 달달하게 과잉포장해서 흔하고 값싸게 유통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우린 진정한 외로움을 잃어버렸다.

외꽃이 하나인 건 원래 둘이었던 것의 결핍이 아니라 홀로됨을 기꺼이 선택해 성숙에 이르기 위함이다. 주변 젊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다석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 자신이 죽는 날을 미리 잡아놓고 하루를 일생처럼 사는 일일일생주의(一日一生主義)를 견결하게 실천했던 다석 같은 선각을 잃어버렸으니 참 외로움도 사라질 수밖에! 다석은 사모하던 남강 이승훈 선생만큼만 살기로 작정해 자신의 수명을 66세로 정했었다. 존경과 사모와 사숙이 희귀해진 세상에도 여전히 참외는 익는다. 자라는 아이의 함량을 키우려면, 남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고요하게 종심소욕(從心所欲)하려면 홀로 견디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철역 입구에 세운 트럭 안에 아무렇게나 뒹구는 참외의 참 외로움을 본받아야 한다. 온 세상에 땡볕이 가득하다. 그렇지만 이건 내게 단물을 들이기 위한 시간일 뿐!



김서령 오래된 이야기 연구소 대표.    중앙일보 2012-08-02 전문

 

 



 

김서령은 참외'에서 < 외 > 를 lonely 로 접근한다. 그러니까 " 외롭다 " 는 " 외(참외)답다 " 와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참외는 참 외로운 존재로구나. 누군가는 안도현의 << 스며 드는 것 >> 이란 시'를 읽고 나서 더 이상 간장 게장 요리'를 먹을 수 없다 했는데, 또 누군가는 달달한 참외 한 조각을 입에 물며 쓸쓸해 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기한 일이다. 사람은 외롭다며 더 많은 관계망 속으로 빠져들지만 그럴 수록 사람은 더욱 소외된다. 어쩌면 인간이란 외꽃으로 태어나 비와 어둠과 바람과 땡볕을 견뎌야 하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외롭다는 것,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  에필로그  :   병상에서 눈물을 흘렸던 참외 씨'는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어디론가 떠났다고 한다. 그는 평생 오이 아가씨'를 그리워했으나 단 한번도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사는 동안, 참외는 참 외로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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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05-25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서령의 글이 참 좋습니다. ˝외롭다는 것,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는 결구는 더욱 좋습니다!

제가 아직도 유일하게 찾아뵙는 고령의 고등학교 은사님은 (시를 좋아하는 문학도이자 국어선생님이신데) 이제는 꽃 박사와 곤충 박사가 다 되었더군요. 집에 있는 철학책이랑 문학책 다 헌책방에 팔아 넘기고, 이제는 노자나 자본론과 같은 늙어도 다시 읽을 법한 고전 몇 권이랑 식물과 관련된 도감만 집에 구비했다고 합니다. 언젠가 둘이서 산길을 같이 걷는데, 꽃이랑 풀 하나하나까지 다 이름을 알려주니 뭔가 느낌이 색달랐습니다. 그 분이 하는 말씀이 이제는 부인도, 자식도 다 치웠으니(!) 홀로 살고 견디는 마음으로 남은 생을 기쁘게 보내야한다고 하더군요. 윗 글에 나오는 종심소욕(從心所欲)이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다 하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25 18:15   좋아요 0 | URL
싸구려 힐링`을 보면 대부분 외롭다는 감정을 치유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라, 가족 사랑, 진정한 친구 몇몇.... 그런데 정말 외로움`이란 게 나쁜 것인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나저나 그 은사님 김훈을 닮았군요. 김훈도 다 버리고 사전과 도감`은 늘 자주 들여다본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사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소설 이런 거 다시 읽거나 하는 상황이 별로 없거든요. 오히려 사전, 도감,이런 게 오히려 자주 보게 되고 또 보면 잼있씁니다.

samadhi(眞我) 2015-05-26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킬리만자로의 아범들 ㅋㅋㅋㅋ. 여기에 외의 뜻을 기려(?) ˝홀˝을 붙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킬리만자로의 홀아범들은 외(로움)를 먹는다. ㅎㅎ. 음미할 만큼 좋은 ˝오래된 이야기˝ 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26 05:17   좋아요 0 | URL
홀... 아주 좋군요. 홀아범 ㅋㅋㅋㅋㅋ. 전 언어의 원형에 무척 재미있습니다. 원형 공부만 해도 그 속에 담겨진 엄청난 진리를 깨알처럼 얻을 수 있어서 아주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