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새빨간 활 (곰곰생각하는발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myperu</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글쓰기 플렛폼 얼룩소에서 악담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7 Oct 2026 06:46:54 +0900</lastBuildDate><image><title>곰곰생각하는발</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49915104335303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myperu</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곰곰생각하는발</description></image><item><author>곰곰생각하는발</author><category>우물 밖에서 </category><title>존 오브 인터레스트 - [히틀러의 복지국가 - 약탈, 인종 학살, 공범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myperu/17555104</link><pubDate>Mon, 05 Oct 2026 10: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yperu/175551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131363&TPaperId=175551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37/59/coveroff/k11213136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131363&TPaperId=175551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히틀러의 복지국가 - 약탈, 인종 학살, 공범들</a><br/>괴츠 알리 지음, 최준영 옮김 / 생각의힘 / 2026년 09월<br/></td></tr></table><br/>​​​그의 입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철도와 도로를 깔아준 덕분에 대한민국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내 목구멍에서 좆같음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지만 어쩌랴. 누런 강냉이를 털고 싶었으나 그의 우람한 이두박근을 보며 간신히 참았다. 몸에 남아 있는 근육이라고는 남근밖에 없는 나는 몸을 사려야 했으니까. 크아아아.  " 현실 속에서 뉴라이트 열혈 당원을 만나다니, 헐 ! "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은 칼 든 강도가 남의 집에 침입해서 집수리하고 나왔다는 주장과 다를 것이 없다. 선량한 강도는 없다. 제국의 점령지 정책에 있어서 핵심은 " 수탈 " 이다.​&lt;&lt; 히틀러의 복지국가 &gt;&gt; 에서 저자는 히틀러 정권 시절 독일 국민의 정치적 충성심은 사상보다는 사심(이념보다는 이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동안 수많은 학자들은 홀로코스트 문제를 인종 이데올로기 문제로만 접근했었지만 저자는 홀로코스트를 국가 재정 문제로 방향을 틀어버린다.  유대인 정책의 핵심은 국가가 유대인 재산을 빼앗아 국가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유대인이 소유했던 기업, 주택, 토지, 귀금속은 물론이거니와 가구, 식기, 침대, 옷 같은 생활용품도 경매를 통해 국가 금고로 환원되었다.  그 규모는 150억~ 200억 마르크.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260조다. ​이 돈은 고스란히 병사 급여와 독일 국민의 사회 복지 재원으로 사용되었다. 역설적이지만 독일 사회 복지의 황금기는 히틀러 정권 때였다(동물 복지도 히틀러가 만든 걸작품이다). 홀로코스트 문제를 다룬 21세기 걸작 영화 &lt;&lt; 존 오브 인터레스트 &gt;&gt; 도 이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독일 나치 간부였던 회스 가족은 유대인에게서 빼앗은 고급 가구와 보석으로 집과 가족을 꾸민다. 그리고 영화 제목 &lt;&lt; 존 오브 인터레스트 &gt;&gt; 는 " 금전적 이익 "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금전적 이득에 눈이 먼 독일 국민의 도덕성이다. ​히틀러는 독일 국민의 넉넉한 사회 복지를 위해 유럽 전체를 거대한 은행 ATM 기기로 만들었다. 아이러니한 풍경이지만 독일 국민이 누린, 사치에 가까운 풍요는 히틀러 시대 때 완성되었던 것이다( 낮은 세금, 안정적 물가, 풍족한 급여 ). 당시 독일 병사였던, 나중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하인리히 뵐은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 25마르크라는 엄청난 병사 급여 " 를 대체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썼다. 독일 국민에게는 히틀러 시대야말로 황금시대였던 것이다. 어쩌면 독일 국민은 히틀러의 말빨에 세뇌당한 것이 아니라 복지 정책에 만족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독일 유대인 재산을 약탈해서 사회 복지 재원으로 사용하던 히틀러는 범위를 확대하여 유럽으로 확장한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점령지에 대한 수탈의 양도 많아지고 그만큼 독일 국민은 풍요로웠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홀로코스트와 독일 전쟁을 단순히 인종 혐오만으로 한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히틀러의 죽음으로 모든 죄는 히틀러와 나치에게 돌아갔지만 따지고 보면 독일 국민은 공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히틀러와 나치는 전쟁범죄자였고, 독일 국민은 장물아비였다. 그들은 자신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가 어디에서 왔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1945년 4월,  패망한 독일에 입성한 한 영국군 장교는 이렇게 회고했다. “...... 사람들은 그 폐허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은 혈색이 좋았고, 행복해 보였으며, 깔끔하고 옷도 잘 갖춰 입었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37/59/cover150/k11213136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375955</link></image></item><item><author>곰곰생각하는발</author><category>사설이 길다</category><title>꿈에 한 번 오세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myperu/17549124</link><pubDate>Thu, 01 Oct 2026 17: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yperu/17549124</guid><description><![CDATA[<br>​비록, 어쩌다가 노래방에 가면( : 이번 명절에도 가족들이 모여 노래방에 갔다. 그곳에서 나는 박상철의 무조건과 태진아의 옥경이를 불렀다. 수치스러워서 몸이 떨렸다. 다음 생에서는 악기로 태어나리라 ) 트로트를 부르지만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음악 장르는 트로트다. 더군다나 아이가 화장을 하고 트로트 흉내를 내면 광기에 사로잡힌다. 아, 제발 ! 또한 신파를 싫어해서 질질 짜는 트로트 노래는 더더욱 질색이다. 친구가 이 동영상을 추천했을 때 나는 광안리 쭈꾸미처럼 째려보았다. 왜냐하면 내가 싫어하는 모든 요소를 갖췄기 때문이었다. 몇 번을 사양했지만 친구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식당에서 국밥을 씹으며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신안 기거도 우럭처럼 울컥했다. 노래 가사 중에서 " 꿈에 한 번 오세요. " 라고 부를 때 그만 눈물이 주르르르륵. 아, 이 어린 소녀는 누구란 말인가. 아이야, 울지 마라.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온 우주가 돕는단다.  늘 하는 말이지만 러브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 거리 " 1)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나 멀리 있으면 보다 애틋해지는 법이다. 꿈이란 공간이야말로 인간이 도저히 갈 수 없는 거리다. 소녀가 죽은 아빠에게 꿈에 한 번 오세요 _ 라고 간청할 때 이보다 더 애틋한 초청은 없다. 우느라 밥알 몇 개 쏟았다.&nbsp;https://youtu.be/IamJ5OoIEho?si=26YL2983-zRYSEJN​​​​​                                                             ​1) https://blog.naver.com/unheimlich1/224148665662&nbsp;인터스텔라, 2014Out of sight, out of mind?? &lt;&lt; 인터스텔라 &gt;&gt; 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SF 영화다....blog.naver.com​<br>]]></description></item><item><author>곰곰생각하는발</author><category>사설이 길다</category><title>작별하되 작별하지 않는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myperu/17545543</link><pubDate>Wed, 30 Sep 2026 12: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yperu/17545543</guid><description><![CDATA[<br>작별하되 작별하지 않는다<br><br><br>https://youtu.be/OczdD6-qqAs?si=qfWVRN1bUgeRIsOm​​한국어 작별 인사에서 가장 인상 깊은 표현은 " 다녀오다(갔다가 오다) ! " 다. GO AND COME BACK ! 발화자가 학생인 경우는 학교 갔다가 집에 오겠다는 약속이고, 직장인 경우는 직장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라면 여행을 갔다가 집으로 오겠다고 다짐을 말하는 표현이다. ​가만 듣다 보면 " 다녀오다 " 는 단어는 매우 숭고한 낱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발화자는 수신자에게 " 나는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 곁으로 돌아올거야 " 라는 약속을 당신에게 하고 떠나는 것이다. 작별이기는 하나 동시에 작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다. 작별인데 작별하지 않겠다니. 이 얼마나 멜랑꼴리하며 달콤한 속삭임인가. 이 낭만적 다짐을 날마다 약속한다. 한국인은 사랑에 대한 표현이 서툴다고 말하자면 사랑한다는 표현보다 다녀오다는 표현이 더 비장하고 웅장하다. 애정의 깊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임의 깊이다. 서사의 깊이로 따지자면 사랑한다는 형이하학이고 다녀오다는 형이상학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어는 매우 정교하며 깊이 있는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언어다. 내 비록 화장실에서 국어사전을 펼쳐 읽으며 한글 공부를 하지만 읽을수록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lt;&lt; 안녕하세요 &gt;&gt; 로 기억한다. 학교 수업을 끝내고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오후 늦게 집에 온 아이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다녀왔습니다 _ 라고 큰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다( :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마도 아이가 집에 왔을 때 부모는 잠시 외출을 했던 모양이다). 인사란 인사를 하는 사람과 인사를 받는 사람이 있을 때 발생하기에 아이의 다녀왔습니다_ 라는 인삿말은 하나 마나 한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대사의 효율성만 놓고 따지자면 이 장면은 쓸모없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오즈 야스지로는 왜 이 장면을 삽입했을까 ? 숭고하기 때문이다. 朝花夕拾(조화석습)이란 루쉰의 산문 제목이 있다. 아침에 떨어진 꽃을 저녁에 줍는다는 뜻이다. 오즈의 아이는 아침에 떨어진 꽃을 저녁에 줍는 마음으로 아침에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늦은 오후 집으로 돌아와 인사를 한다. 다녀왔습니다아 ~​​<br>]]></description></item><item><author>곰곰생각하는발</author><category>영화관  </category><title>걸음걸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myperu/17543352</link><pubDate>Tue, 29 Sep 2026 14: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yperu/17543352</guid><description><![CDATA[<br><br><br>내가 배우의 연기를 평가할 때 유심히 보는 것 중 하나가 " 걸음걸이 " 다. 대사 연기와 표정 연기는 어느 정도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 사람들은 배우들이 오열하는 장면을 명연기라고 칭찬하지만, 사실은 이 세상에서 제일 하기 쉬운 연기가 바로 눈물 흘리는 것이다.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정치인들도 타이밍에 맞춰 눈물을 흘린다(정청래 이 새끼의 눈물 연기는 압권이다). 훌륭한 배우는 대사와 표정 연기는 물론이고 걸음걸이도 캐릭터에 맞춰 연기한다. 사람들이 걷는 장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단순히 다리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다. 몸통 움직임도 동반이 되고 팔도 움직인다. 종합하면 걸음은 전신 운동이다. 그렇기에 걸음을 연기한다는 것은 온몸 연기인 셈이다. 걸음걸이야말로 고난이도 연기다.  걸음걸이는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인장이 있다. 타고난 성격, 사회적 지위, 계급적 특징 그리고 그날의 마음이 뒤섞여서 다양한 걸음걸이가 만들어진다. ​페데리코 펠레니 감독의 영화 &lt;&lt; 길 &gt;&gt; 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짐파노(안소니 퀸 분)가 어두운 밤 바닷가를 걷는 장면이었다. 성큼성큼 걷던 걸음이 휘청거리며 무너질 때 관객은 그의 비통한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본 것이나 다름없다. 휘청거리는 걸음이 무너진 마음의 환유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lt;&lt; 자전거 도둑 &gt;&gt; 을 만든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에게 어느 영화 담당 기자가 물었다. " 왜 전문 배우 대신 비전문 배우'를 영화 주인공으로 발탁하셨습니까 ? " 그 질문에 대하여 감독은 그 사람의 걸음걸이가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연기를 전문으로 배운 배우가 특정 계급의 삶을 연기한다고 해도 ​걸음걸이만큼은 연기력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는 걸음이 마음의 환유라는 사실을 아는 감독이었다(마르크스였다면 계급의 환유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또한 브르디외였다면 몸짓의 아비투스 ?!).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대답에 나는 감동했다. 내가 &lt; 자전거 도둑 &gt; 을 보면서 정말 좋아했던 것은 그 가난한 아버지를 연기했던 배우의 걸음걸이였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울림은 그가 걸을 때 보여지는 몸의 움직임에서 파생된다. 배우 김윤석이 연출한 영화 &lt;&lt; 미성년 &gt;&gt; 에서 이정은이 등장하는 짧은 장면은 이 배우가 얼마나 뛰어난 연기자인지를 보여준다. 대사 한 마디 없이 오직 걸음걸이 하나로 모든 것을 증명한 연기였다. ​내가 이 장면을 보다가 너무 흥분해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기립 박수를 쳤던 이유는 이 짧은 등장 장면만으로 그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역사를 10초짜리 약사로 요약했기 때문이다. 감독은 로우 앵글로 방파제를 걸어오는 여성의 걸음을 비춘다. 이 여성의 걸음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고된 노동으로 인해 무너진 무릎 관절과 허리 디스크 그리고 술독에 빠진 걸음. 균형을 잃고 절뚝거리는 삶을 살아온 여성 캐릭터를 이정은 배우는 정교하게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효율적인 연출이 또 있을까 ? 어쩌면 연기력만으로 전도연과 대결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배우는 이정은이라는 생각이 든다. 탁월한 배우다. ​https://youtube.com/shorts/UuRGzsm3FJU?si=WdsUmpoNizqn0GSb​<br>]]></description></item><item><author>곰곰생각하는발</author><category>사설이 길다</category><title>섞으면 꼬인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myperu/17541270</link><pubDate>Mon, 28 Sep 2026 14: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yperu/17541270</guid><description><![CDATA[<br><br><br><br>내가 처음 배운 주종(酒種)은 맥주였다. 도수가 높지 않은 데다가 목넘김이 부드러워 마시기에 좋았다. 크아, 그래 이 맛이야. 그 당시에 옛 애인은 맥주만 마셨던지라 그 시절 내 몸에 흐르는 피의 팔 할은 맥아당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고 나서부터는 소주를 마시게 되었다. 싸구려 공업용 알콜 냄새와 기분 나쁜 쓴 맛이 개 같은 내 인생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쓴 맛을 모르면 그게 인간이냐 인삼이지, 끄어억. 무엇보다도 소줏집의 풍경을 사랑했다(맥주를 마실 때는 맥줏집 풍경을 사랑했다).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소맥을 마시기 시작하면서였다. 소맥 맛에 눈이 돌아가 소맥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쇼잉, 그래 쇼잉. 소맥 잔에 젓가락 넣고 흔들면 맥주 거품이 마술처럼 생성되는 그 쇼잉. 처음에는 재미로 소맥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소맥 이외의 술은 마시지 못하고 있다. 어즈버.... 소맥 10년 외길 인생이시다. 시바. ​친구들과 맥줏집에 가면 혼자 소주 한 병 시켜 혼자서 소맥을 말고, 소줏집에 가면 혼자서 맥주 한 병 시켜 혼자서 소맥을 만다. 친구들이 늘 하는 말. 너 참 유별나다. 이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이제는 소주를 마시면 소주가 너무 쓰고, 맥주만 마시면 맥주가 너무 싱겁다. 소맥이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맛이다. 섞어 마시면 인생 꼬인다. 한식의 세계화 전략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랍시고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현지인 입맛에 맞는 레시피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멍청한 소리다. 한식은 한식일 때 성공할 수 있다. 카레는 인도의 음식이지만 그 어느 누구도 카레를 먹으면서 인도 문화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영국 카레는 영국인의 입맛에 맞게 개조된 영국 커리일 뿐이고,  일본 카레는 일본인 입맛에 맞게 개조된 카레라이스일 뿐이다(또한 아프리카 카레는 아프리카 사람 입맛에 맞는 카레일 뿐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카레는 이것과 저것이 섞인 소맥인 셈이다. 엉터리 같지만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A급 실력을 갖췄지만 B급 감성으로 노래하는 노라조의 &lt;&lt; 카레 &gt;&gt; 에서 지적했듯이 "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이 맛은.... 순한 맛 매콤한 맛 인도에도 없는 맛 " 이다. 인도 요리가 인도에는 없는 맛이니 무국적 요리인 셈이다. 인도인 입장에서 보면 음식의 현지화 전략은 실패다. ​가끔, 한국인 미슐렝 셰프들이 한식이랍시고 현지인 입맛에 맞는 한식을 선보이고는 하는데 그들이 내놓은 것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맛에 불과하다. 내 경험을 통해 그들에게 충고 한 마디 하자면 : 섞어 만들면 인생 꼬입니다요. 셰프 ~​​]]></description></item><item><author>곰곰생각하는발</author><category>사설이 길다</category><title>귀한 손님</title><link>https://blog.aladin.co.kr/myperu/17536118</link><pubDate>Fri, 25 Sep 2026 11: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yperu/17536118</guid><description><![CDATA[​<br><br><br>귀한 손님<br><br><br>내 친구 별명은 " 귀한 손님 " 이다. 고1 때 캐나다 이민을 떠난 친구인데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만나게 된다. 이 친구에게는 독특한 말버릇이 있는데 툭 하면 너희들 ooo 귀한 줄 알아 ! _ 라며 충고를 한다. 예를 들면 너희들, 금수강산 귀한 줄 알아라. 세계 어디를 가도 금수강산 만한 데 없다. 뭐, 이런 식이다. 내가 누구인가. 작명의 달인 아닌가. 친구의 말버릇을 감지한 나는 그에게 귀한 손님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친구도 꽤 만족해 하는 모양이다. 향수병을 모르고 살던 친구가 나이가 들어 신토불이자가 된 것을 보면 해외에 살다 보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가 보다.  친구의 귀한 시리즈 중에서 내가 잊지 못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어쩌면 황당한 내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친구의 에피소드를 듣다가 눈물이 났다. 이제부터 친구의 어쩌구니없고, 다소 황당하며 당혹스럽지만 묘하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한가위 추석 선물이라 생각하시라. 몇 년 전, 친구가 무더운 여름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국 방문은 주로 여행 목적이라 날씨 좋은 봄 가을에 집중되었는데 그때는 경조사 문제로 한국을 방문한 계절이 8월 땡볕이었다고 한다. 귀한 손님 녀석은 한여름에 거리를 걷고 있었다. 너무 더워서 더위를 식힐 목적으로 놀이터 공원을 향해 가다가 귀청이 떨어질 듯한 소리를 듣게 된다. 매미 우는 소리다. 맴맴맴맴맴 ~  친구는 이 소리를 듣자 갑자기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증폭되면서 그 자리에 멈춰 섰다고 한다.  기억상실증 환자가 느닷없이 기억이 되돌아오는 경험을 한 것이다. 친구는 캐나다 이민 후 단 한번도 여름 매미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캐나다에도 여름은 있고 매미도 있는데 매미 우는 소리는 없었다고. 그래서 매미 우는 소리를 잊고 있다가 한국의 여름 땡볕 거리를 걷고 있다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매미 소리를 듣고 잃어버린 기억들이 되살아났다고. 그러자 갑자기 눈물이 났다고 했다. 이 황당한 친구의 경험담에 몇몇 친구들은 당황했지만 나는 그 친구가 경험했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친구는 그때 일을 회상하며 물 먹은 습자지처럼 앵앵거리며 말했다. " 너희들, 매미 귀한 줄 알아라, 쨔샤 ~ " ]]></description></item><item><author>곰곰생각하는발</author><category>우물 밖에서 </category><title>가능한 사랑 - [폭풍의 언덕]</title><link>https://blog.aladin.co.kr/myperu/17534584</link><pubDate>Thu, 24 Sep 2026 10: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yperu/1753458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188&TPaperId=1753458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4/93/coveroff/8937461188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188&TPaperId=1753458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폭풍의 언덕</a><br/>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03월<br/></td></tr></table><br/>​​​관객 혹은 독자 입장에서 보면 " 완전한 사랑 " 만큼 따분한 사랑도 없다. 최부잣집 셋째 딸과 부잣집 둘째 훈남의 러브 스토리. 양가의 축복 속에서 이루어지는 웨딩 스토리. 워뗘 ? 궁금하신가. 관객은 결핍이 없는 사람끼리 만나서 만드는 완전한 사랑 혹은 안전한 사랑에 대해 관심이 1도 없다. 가수 김현식의 노래 가사처럼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을 해본 우리들은 사랑의 승질머리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사랑은 치열하지만 치졸하고, 더럽고, 짜증 나고, 죽이고 싶고, 가끔 미친다는 사실. " 이 세상 모든 사랑, 다 족구하라 그래,  C ~  "  관객은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열광하는 것은 드러운 사랑이다. ​&lt;&lt; 폭풍의 언덕 &gt;&gt; 의 히스클리프는 결핍의 아이콘'이다. 흑인 고아 소년(인도계로 추정 ㅡ )이 백인 남성의 딸을 좋아한다. 눈부시게 흰 캐서린은 검은 히스클리프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대상이다. 요구와 욕구와 욕망이 서로 어긋날수록.... 보다 강렬하다. 캐서린 또한 완전한(성숙한) 인격체는 아니다. 그녀는 진정한 사랑과 물질적 욕망 사이에서 주체 없이 흔들리는 갈대다. 그녀의 허영과 사회의 허용 사이에서 그녀는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이 남자냐, 저 남자냐의 문제는 캐서린이 결혼을 한 후에도 계속된다. 이 남자냐, 저 남자냐.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소설은 파국을 맞는다.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의 진짜 악당은 캐서린이다. ​이처럼 결핍과 결핍이 만나면 떨어질 줄 모른다. 부침개의 설익은 면과 설익은 면이 붙으면 떨어질 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뜨거운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녹여서 붙어버린, 뒤집기에 실패한 반달 모양의 부침개'다. 이 얼마나 징그럽고 징글징글하며 치열한 사랑인가. 자신의 온몸을 녹여서 붙어버린 육체성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나의 결핍을 상대에게 투사하여 그것을 욕망하는 것은 건강한 사랑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 생각한다. 뜨거운 사랑보다는 미적지근한 사랑이 오래간다는 사실. 시들시들한 사랑이 건강한 사랑이다. 가끔 백년해로하는 부부를 보면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켜켜이 쌓인 부침개 같다. 양쪽 모두 노릇노릇 익어서 서로 붙지 않는.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4/93/cover150/8937461188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49352</link></image></item><item><author>곰곰생각하는발</author><category>웃기지 마라</category><title>사랑은 익지 않았기에 붙는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myperu/17532629</link><pubDate>Wed, 23 Sep 2026 12: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yperu/17532629</guid><description><![CDATA[<br><br>" 부침개를 뒤집다가 공중에서 제대로 회전하지도 못한 채 떨어져 안 익은 면과 안 익은 면이 겹쳐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동그란 부침개가 반달 모양이 된 것이다. 이 정도 두께면 부침개가 아니라 팬케이크'였다. 실수를 어떻게 해서든 만회하려고 두 면을 떼려고 수작을 부렸지만 익지 않은 면끼리 붙은 부침개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중략) 가끔, 뒤집기에 실패해서 반달 모양이 된 부침개를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익지 않은 한쪽 면이 익지 않은 한쪽 면과 붙어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 뜨거운 몸으로 서로를 녹여서 붙어버린 부침개를 보면서 사랑을 읽어내는 내 감성은 아마도 실패한 사랑을 경험한 남자의 뼈아픈 후회일 것이다. 결국 뜨겁고 지독한 사랑이란 설익은 것과 설익은 것이 만날 때에나 가능한 것이다. 다 익은 부침개는 겹쳐 놓아도 붙지 않으니까( 500일의 썸머, 설익은 것과 설익은 것이 만날 때 中 ㅡ  https://blog.naver.com/unheimlich1/223028282159 ) "​안 익은 면과 안 익은 면이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실패한 부침개를 보다가 문득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지독하다. 더럽고 징그럽다. 이해 당사자들은 사랑에 눈이 멀어서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 나는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라 믿는 편이다. 롤랑 바르트도 말하지 않았던가. 사랑은 질병이라고 말이다. 더럽고 징그럽고 지독한 사랑은 죽기 살기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악을 한다. 설익은 면과 설익은 면이 만나면 떨어지지 않는 부침개처럼 사랑 또한 결핍과 결핍이 만나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격정적 사랑의 대표적 소설 &lt;&lt; 폭풍의 언덕 &gt;&gt; 을 보라. 히스클리프의 익지 않은 한쪽 면과 캐서린의 익지 않은 한쪽 면이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뜨겁게 녹여서 붙어버린 부침개다. 익지 않았기 때문에 붙는다. 사랑이 그렇다. ​​<br>]]></description></item><item><author>곰곰생각하는발</author><category>사설이 길다</category><title>눈치의 정치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myperu/17503367</link><pubDate>Tue, 08 Sep 2026 19: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yperu/17503367</guid><description><![CDATA[​<br><br>눈치의 정치학<br><br><br><br>한국인은 " 한국인의 정 " 을 한국인 고유의 정서라고 자랑하지만 &lt; 정 &gt; 이라는 단어는 한자어다. 한자어 情을 대체할 수 있는 순우리말은 없다. &lt; 한 &gt; 도 마찬가지다. 한국인만이 가지고 있는 정서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恨 또한 한자어'다. 한국 고유의 정서라면서도 정작 우리는 한국 고유의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순우리말이 없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단어는 무엇을까 ? 내가 보기에는 &lt; 눈치 &gt; 같다. 눈치는 한국인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가 좀 힘들다. 눈치라는 감각의 5할을 차지하는 것은 낌새다. 이 단어를 대체할 수 있는 세계 언어가 있을까. 눈치는 sence와도 결이 다르고 tact와는 미묘하게 결이 다르다. 이 단어들에는 낌새라는 야리꾸리하고 시금털털한 냄새가 없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왜 눈치가 발달했을까.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은 한국인 친구가 부모와 통화할 때 신기한 경험을 한다고 한다. 어_로 시작해서 어_로 끝난다는 것. " 어... 어 ? 어 ~ 어. 어어어. 어 ?? 어.. 어, 어 !!!!!!!!!!!!  어, 어어, 어, 어어 ! "  ​통역하자면 " 안녕, 왜 전화했어 ? 뭐라고 ? 그래, 그래, 무슨 뜻인지 알아. 그래서 ? 뭐 !!!!!!!!!! 맙소사. 시발. 아 미치겠네. 그래, 알았어. 알았다니까. 미치겠다, 증말. 응응. 그래 전화 끊어. " 외국인은 모르지만 한국인은 친구가 사용한 어' 가 무엇인지 정확히 꿰뚫고 있다. 첫 번째 어는 기뻐서, 두 번째 어는 슬퍼서, 세 번째 어는 칭찬의 의미로, 네 번째 어는 놀라서, 다섯 번째 어는 당황해서, 여섯 번째 어는 초조해서, 일곱 번째 어는 다급해서 나오는 말이다. 이처럼 맥락과 상황에 따라 단어의 의미가 시시때때 달라지는 것을 언어학에서 고맥락 언어( (High-Context )라고 한다. 이러한 언어적 특성을 화용론이라고 부른다. ​한국인은 어_로 시작해서 어_로 끝나는 친구의 통화를 보면서 1) 말 자체보다는 그 말이 오가는 상황, 분위기, 인간관계, 표정, 눈빛, 태도, 시간, 장소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어_의 뜻을 이해한다. 눈치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한국인이 다른 사람보다 눈치가 발달했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어의 특성에 적응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반대로 영어권 언어는 저맥락 언어다. 영어권 언어는 주어도, 목적어도, 행위자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명시하기에 굳이 맥락을 살필 필요가 없다. 명확함은 영어권 언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한국인보다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 ​영어권 언어가 " 자기중심적 사고 언어 " 라면 한국어는 " 타자중심적 사고 언어 " 다. 여기서 타자의 계급이 중요하다. 눈치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약자의 생존전략이기 때문이다.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쪽은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인간 유형이고, 다른 한쪽은 권력형 인간 유형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은 신분이 낮은 사람 앞에서 굳이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최근의 한국 정치를 보면 눈치를 보는 이와 눈치를 보지 않는 이가 명확히 구분이 된다. 이재명은 눈치를 많이 보는 반면에 유시민은 거리낌이 없다. 유시민은 이재명을 향해 권력자 행세를 한다며 입에 거품 물며 쌍욕을 하지만​내가 보기에는 유시민이야말로 눈치를 보지 않고 할 말 안 할 말을 구별하지 않고 배설하는 권력자'다. 유시민을 보면서 깨닫게 된다. 인간은 눈치를 챙겨야 한다 ! ​​​​                                                     1)  한국인은 " 대화를 듣기 " 보다는 " 대화를 본다 ".  서양인들이 대화를 귀로 들으면서 의미를 파악하는 반면에 한국인은 대화를 눈으로 봐야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드라마 천국이자 강국인 이유는 드라마라는 장르가 대화를 눈으로 보는 데 최적화된 장르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대사를 듣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한국 시청자들은 대사가 오가는 상황, 분위기, 표정, 눈빛, 태도, 장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의미를 파악하는 데 익숙하다. ​​​]]></description></item><item><author>곰곰생각하는발</author><category>영화관  </category><title>Sell me this pen !  -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myperu/17489646</link><pubDate>Wed, 02 Sep 2026 18: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yperu/174896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D692736989&TPaperId=1748964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19dvd_75cover.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D692736989&TPaperId=174896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a><br/>마틴 스콜세지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외 출연 / 킹미디어 / 2017년 11월<br/></td></tr></table><br/>​<br>" Sell me this pen ! "​​​"자살해서 보험금으로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자살하면 나오는 보상금이 8억인데 그걸로는 빚을 못 갚더라고요. 죽지도 못하고 일만 하고 있습니다."    10년 전, 방송에서 청담동 주식부자로 소개되었던 이희진 주식 사기 사건의 피해자가 한 말이다. ​몇 년 전 아내와 이혼한 그는 지금도 빚을 갚느라 다리도 제대로 못 뻗고 고시원 쪽방에서 쪽잠을 자고 있다고 한다.  이희진의 말빨에 속아서 노후 자금을 모두 탕진한 피해자들은 지금도 쪽방촌에서  입에 풀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희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 그는 출소 후 걸그룹 출신 연습생 여자와 결혼하여 250억짜리 청담동 펜트하우스에서 신혼을 즐기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쁘게 사는 직업군이 바로 사기꾼이다.  그는 출소 후 프로 골퍼 자격증도 획득하여 골프 지도자 자격도 갖췄다. 그의 일상을 포착한 인스타 이미지는 온통 골프와 시계와 스포츠카가 전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머릿속에는 물음표 백만 개가 생성되어 집 나간 개처럼 여기저기 떠돌고 있을 것이다. 이희진 재산은 피해자의 피해 보상을 위해 국가가 몰수한 것이 아니냐고요.  천만에, 그럴 리가 !   네버, 앱쏘루뜰리, 언빌리버블, 나무아미타블. 나랏말쌈이듕국과달라서로사맛디아니..........      사기꾼들에게는 법망을 피할 수 있는 차명이라는 이름의 저수지가 있지 않은가. 이희진은 잘 살고 있다.  맞은 놈이 다리 뻗고 자는 시대는 끝났다. ​<br><br>​마틴 스콜세이즈 감독이 연출한 블랙코미디 &lt;&lt;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2014 &gt;&gt; 의 주인공 주식 브로커 조던 벨포트(실존 인물이다)는 영락없이 이희진을 닮았다. 감독은 사기꾼인 조던 벨포드라는 인물에 집중하기보다는 미국 월가의 생태계에 집중한다. 이곳은 징글징글한 욕망의 정글이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조롱하고 싶었던 대상은 인물이 아니라 미국 월가의 생태계와 인간의 집단적 욕망이다. 황금만능과 신앙에 가까운 속물근성을 신랄하게 조롱하는 영화답게 영화는 온통 황금색(옐로)이다. 인물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황금에 눈이 멀어 얼굴이 누렇게 떠 있다. ​배우들의 약 빤 연기와 도파민 터지는 연출은 몰입도를 높인다. 나도 모르게 마틴과 레오의 브로맨스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스콜세이즈 영화 중 가장 웃긴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FBI 요원으로 나오는 배우 카일 챈들러의 착한 얼굴은 감동적이다. 욕망의 피라미드 꼭대기까지 올랐다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실존 인물 조던 벨포드는 어떻게 되었을까 ? 가짜 주식을 팔던 벨포드는 출소 후 동기부여 강사가 되어 대중의 진짜 욕망을 팔며 다시 활활 비상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몰락을 상품(월가의 늑대들에게 속지 않는 법)으로 판매하며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나처럼 이렇게 하면 망합니다잉 ~   내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냐면 ㅡ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자기 계발 강사가 되어 청중 앞에서 동기부여라는 상품을 판다. 그 장면은 마치 복음주의 교회 부흥회 같다. 그는 양복 속주머니에서 볼펜 한 자루를 꺼내 강의 수강생에게 건네며 이렇게 묻는다. " 나에게 이 볼펜을 팔아 보세요. "  이를 바라보는 수강생들의 눈빛은 신앙인에 가깝다. 그가 양복 속(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볼펜 한 자루가 아니다.  욕망이다. 성공하고 싶은, 반짝반짝 빛나는, 동기부여와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눈이 멀어 누렇게 뜬 그 욕망말이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img/19dvd_150cover.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3489857</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