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 - 개정판
크누트 함순 지음, 우종길 옮김 / 창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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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강견이었다




 



​잔인하도록 배가 고팠다. 내 염치없는 식욕이 어떻게 끝날지 나는 알고 있었다

크누트 함순, 굶주림 중




 


                                                                                                     나는 강견이었다. 근육이라고는 괄약근이 전부였던 하체는 부실했으나 어깨만큼은 힘이 셌다. 중고교 체력장 종목인 " 공멀리던지기 " 나 " 턱걸이 " 는 항상 만점이었다. 군대에서도 튼튼한 상체 덕을 많이 봤다.

지옥 맛을 경험하게 해준다는 " 땅에대가리박기 " 는 나에게는 휴식에 가까웠다. 전우들이 사선에서 히마리 없이 푹푹 쓰러질 때 나는 대가리를 땅에 박은 채 잠을 잔 적도 있다. 아, 날마다 대가리를 땅이 박았으면 참 좋겠네. 물론, 다 옛날 일이다. 상체는 갑바를 잃은 지 오래. 또한 하체는 여전히 부실해서 이제는 괄약근뿐만 아니라 남근도 부실하게 되었다. 어느 날 개를 끌고 산책을 하다가 철봉을 발견했다. 철봉을 보는 순간, " 왕년에 ~ " 가 생각난 것이다. 나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는 생각에 젖었다. 왕년에 턱걸이 18개씩 하곤 했지......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철봉에 매달렸다.

세상을 향해 외쳤다. " 지구의 중력과 무게를 거스르고 솟구쳐라. 나의 초울트라 강견이여 !!!  " 결과는 0개였다. 참담한 결과에 절망했다. 집에 돌아와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섰다. 축 쳐진 가슴은 가슴이라기 보다는 젖가슴에 가까웠다.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B컵이 되겠군 !  딱정벌레처럼 단단한 결심을 하고 나서 헬스 3개월 티켓을 끊었으나.... 3개월 동안 3일 정도 출근한 게 전부였다. 젖가슴은 점점 B컵을 향하고 있어서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서 뒤를 돌아보았다. 옛일이 주마등처럼, 아니 형광등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오래 사귀였던 애인과 헤어진 후, 나는 콜라 중독자(동시에 주정뱅이였다)가 되었다. 결국에는 소주와 맥주 안주로 콜라를 마시는 지경에 이르렀다.

콜라는 하루에 평균 7병 !   눈 뜨면 콜라부터 찾았다. 탄산 알갱이가 피라냐처럼 내 혓바닥을 물어뜯을 때 오르가슴을 느꼈다. 너희가 콜라 맛을 알어 ? 콜라 맛을 알수록 몸은 망가졌다. 혈압은 160를 넘었고 체중은 과체중 근처까지 갔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얼굴은 부었고 화장실에서는 물똥을 싸느라 바나나를 본 지 옛날이 되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1일1식'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혈압은 120으로 떨어졌고 턱걸이는 10개 정도 한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바나나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어찌나 먹음직스러운지 변기에서 꺼내 먹고 싶을 정도다. 피부도 좋아졌다. 무좀은 사라졌고 옛날에는 머리를 감아도 비듬이 생기곤 했는데 이제는 머리를 감지 않아도 비듬이 없는 지경이 되었다.

1일 단식을 실천하면서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단맛에 대한 새로운 정의'다. 굶으면 모든 감각이 기분 좋게 예민해지는데 가장 두드러진 감각은 미각이다. 미각이 예민해지면 배추나 양파를 날것으로 먹어도 단맛을 느낄 수 있다. 하여, 나는 이제 코카콜라와 영원히 작별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동안 내 혓바닥을 물어뜯었던 탄산 알갱이여 ! 너를 탓하지 않으련다. 한때 너는 나의 가장 훌륭한 오르가슴이었다. 굿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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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6-19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깨의 근육을 발달시키는 기본 운동이 턱걸이라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어요. 이런 정보를 듣기만하고 실천을 안 해서 문제입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8-06-19 19:17   좋아요 0 | URL
턱걸이 막상 하면 진짜.... 힘듭니다... ㅎㅎㅎㅎㅎㅎㅎ

cyrus 2018-06-19 19:47   좋아요 0 | URL
1개 하는 것조차 힘들어서 안 해요.. ㅋㅋㅋ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김살로메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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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룩의 정석


 

 


                                                                                                       책을 읽을 때 본문 뒤에 부록처럼 붙은 작품 해제는 잘 읽지 않는 편이지만 < 작가의 말 > 은 꼭 읽는 편이다. 글쓴이의 궐기를 가름하기 위해서다. 신형철 문학 평론집 << 몰락의 에티카 >> 에 붙은 작가의 말을 읽고 나서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궐기는 없고 온통 문학과 문단 기득권을 향한 아부가 팔 할이었다.  스타 평론가라는 양반이 문단 기득권을 향해 양 손바닥을 어찌나 싹싹 비비던지 똥파리 못지않은 코스프레였다. 꼭, 그렇게 해야겠니 ?    애피타이저 맛이 떨떠름하다 보니 메인 요리에 대한 기대를 접은 상태에서 맛을 보니......     

김살로메의 일천 글자 미니 에세이  <<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 에 붙은 작가의 말은 꽤 근사하다. 애피타이저가 입맛을 돋우니 메인 요리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 수밖에 없다.  메인 요리 음식'은 뙇 ~  열무김치말이국수'다. 더운 날에 이보다 좋은 요리도 없다. 소박해서 부담 없는 맛이다. 김살로메 문체는 단정하다. 옷맵시로 치자면 이 옷 저 옷을 겹쳐 입는 레이어드룩( : 옷을 여러 겹으로 껴입는 스타일)보다는 미니멀룩( : 장식적인 패션에 반反하여 극도로 심플함을 추구하는 패션)에 가깝다. 이런 취향은 아무래도 로맨스보다는 하드보일드 장르가 제격이다.

아니나 달라. < 문체 미학의 경제성 > 이라는 에세이는 그의 문장론을 잘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취향이 " 담백하고 건조한 문장을 선호하는 취향 " 이라고 고백한다. 나 또한 그의 문학적 취향을 지지하는 쪽이다. 문장을 가지고 지나치게 쪼물딱거리다 보면 문장이 촌스러워지고 결국에는 남사스러운 꼴이 된다. 대표적인 작가가 신경숙과 김애란의 최근 행보'다. 시대의 빈곤을 이야기하기에는 지나치게 팬시하지 않은가 ?   김애란 씨 ! 아우, 실망입니다아아. 이 책에 실린 80편의 에세이는 대체적으로 만족스럽다. 다만 불편한, 매우 사적인 사족 하나를 굳이, 굳이, 굳이 붙이자면 < 그 울타리에 꽃불을 > 이라는 에세이는 살짝 목에 걸린다. 

이 에세이는 이준규 시인의 << 문장 >> 이란 시로 시작하는데 이준규 시인이 문단_내_성폭력이라는 미투 사건의 가해 당사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읽기에 불편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책 작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편집자를 탓할 대목이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육백 편에서 추린 글 모음이라 했는데 굳이 논란이 되었던 이준규 시인의 시가 인용된 글을 선택할 필요가 있나 _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맺음말은 그녀의 문학적 취향답게 간결하게 끝내겠다. 건투를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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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6-01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보자마자 ‘미니멀리즘’이 생각났습니다. 판형, 가격 모두 적당한 만족스러운 책입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8-06-01 12:38   좋아요 0 | URL
중얼중얼하다 보면 중언부언하게 되는 것은 진리인 것 같습니다. 이 책 좋더군요. 저도 확실히 하드보일드한 건조체에 끌리는 취향이라... ㅎㅎ

2018-06-01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1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탈색과 탐색





 

                                                                                                     최초의 사진은 형태를 재현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색깔을 재현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흑백사진이었기 때문이다. 재현이라는 문제만 놓고 보자면   :   흑백사진은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한 발명품이었다. 하지만 색상이나 채도는 없고 오로지 명도의 차이만 있는 무채색 풍경은 묘한 아우라를 획득했다.  컬러를 탈색시킨 흑백사진은 컬러 화장을 지운 맨 얼굴과 같아서

대상을 실존적 차원에서 탐색(접근)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인류 역사 발전 단계에서 색채어가 발생한 순서를 보자면 1순위는 검은색과 흰색이었고 2순위는 빨간색, 3순위는 초록색(혹은 노란색)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흑백사진은 가장 원초적이면서 근원적인 형태를 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장례식장을 찾을 때마다 맞닥뜨리게 되는 당혹감은 고인의 컬러 영정사진이었다. 이 세상에 화려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기에 그것은 죽음이라는 불행과는 격이 맞지 않는 색처럼 보였다. 나는 내 장례식장에 쓰일 좋은 영정 사진을 갖기를 원했고 그때부터 흑백 필름을 기계식 필름 카메라에 장착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오래전 일이다........

기계식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에는 대상을 흑백으로 찍을 것인가 아니면 컬러로 찍을 것인가, 라는 문제부터 결정해야 한다. 흑백 필름을 카메라에 정착한 경우, 사진가는 알록달록한 세상을 흑백의 시선으로 번역해야 한다. 미리 예측하고 찍어야 한다. 이 번역 능력이 없는 사진 작가는 좋은 흑백 사진을 얻을 수 없다. 흑백사진을 찍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빛1)이다. 빛의 세기와 강도 그리고 방향이 전체 이미지를 좌우한다. 하지만 누구나 찍을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더군다나 핸드폰에 렌즈가 달리면서 흑백 이미지는 말 그대로 빛이 바랬다. 

이제 빛은 컬러에 스며들면서 원하는 색감을 얻기 위한 보조 물감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  솔방울정원, < 감정의 재료, 재료의 감정 시리즈 > 중에서

 

위의 펜화는 솔방울정원 님이 현재 작업하고 있는 <  감정의 재료, 재료의 감정 - 시리즈  > 중 하나다. 작가는 색을 탈색시킨 모습으로 대상을 밖으로 드러낸다.  이 흑백 펜화는 컬러였다면 놓쳤을 것이 분명한 빛과 그림자에 주목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세기 그리고 빛이 대상과 충돌하면서 만들어 놓은 그림자의 농도와 형태도 주목하게 만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빛이 대상을 들이받을 때의 속도와 강도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이것을 뭉뚱그려서 빛의 펀치라고 하자).  빛이 밝을수록 그리고 그 대상 뒤편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짙을수록 < 빛 > 은 핵주먹을 가진 싸움꾼일 가능성이 높다. 후술하겠지만 빛의 속도가 가장 빠른 부분(펜화에서 명도가 가장 높은 2층 블록과 3층 블록)은 결과적으로 이 그림의 주제를 반영한다.

점, 선, 면으로만 이루어진 단순한 형태의 이 펜화는 풍부한 깊이와 재질을 느끼게 해준다. 오브제의 형태와 빛이 대상과 충돌하거나 스며드는 흔적, 그리고 그것에서 빗겨나가는 과정을 포획한 광학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흑백사진이 화장을 지운 맨 얼굴을 직시할 수 있는 아우라를 제공하듯이, 작가는 색을 탈색시켜서 버려지는 대상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더군다나 그림 상단 우듬지 오른쪽에 위치한, 사선 45도로 기울어진 블록은 이 덩어리들이 가벼운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만든다. 주목해야 될 점은 쌓아올린 덩어리-들의 형태다.

하부는 (아래에서) 사선으로 빗겨난 2층 블록이 증명하듯이 견고한 형태가 아니다. 블록 쌓기 놀이를 해본 사람이라면 붕괴를 야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지점이다. 이 불완전한 축성을 보완하고자 3층에 위치한 블록이 중심을 잡아보려 애를 쓰지만 이 또한 사선이어서 불완전한 느낌을 준다. 빛의 속도 저항을 가장 많이 받은 2층과 3층 블록은 빛의 강력한 주먹질에 의해 중심을 벗어나 오른쪽으로 밀려나고 있는 형태를 보인다. 시리즈 제목이 < 감정의 재료, 재료의 감정 > 이라는 점은 감안하면, 감정을 사물에 투영한다는 점에서, 작가는 유심론(감정)을 유물론(재료)적 시각으로 번역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작가의 위태위태한 불안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비단 작가만이 가지고 있는 위기 의식만은 아니다. 현대인이라면 모두 다 느낄 수 있는 불안이다. 위태롭게 축성된 탑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그 관점에서 이 그림을 보면 매우 흥미롭다. 단순한 도상이지만 매우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


 




​                                     


1)   바람개비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볼 수 있게 만든 발명품이라면 흑백사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의 운동성을 볼 수 있게 만든 발명품이다. 내가 흑백사진을 관찰할 때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빛의 성질이다. 어느 녀석은 순진하고 어떤 놈은 까탈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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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마당 Vol.10 어른 찾아 삼만리 - 2018
언니네 마당 편집부 엮음 / 언니네마당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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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     고            있     네        :




 


애나 어른이나



잡지 << 언니네 마당 봄호 >> 에 게재된 글을 옮긴다. 글자 수를 늘릴 요량으로 중언부언하다 보니 글이 산으로 갔으나 담당자가 요술을 부려서 정상적인 꼴을 갖춰주셨다. 편집의 묘미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훌륭한 작가에게는 반드시 훌륭한 편집자가 있다. 만고불편의 진리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동의하겠지만 글을 늘리는 것보다 글을 줄이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은 진실이다. 담당자가 제대로 된 글꼴을 갖춰 보내주신 한글 파일을 찾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부득이 중구난방 상태인 그지같은 원본을 올린다. 이번 호는 읽을거리가 많다. 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았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구매할 수 있다. 강추 !

 - 피터 브뢰헬, 아이들의 놀이 1599년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뉜다. 어쩌다 어른이 된 사람과 어쩌다 어른이 될 사람. tvN 프리미엄 특강 쇼 << 어쩌다 어른 >> 은 어른이 될 준비를 하지도 않았는데 어쩌다 떠밀려서 어른이 된 사람과 어쩌다 어른이 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 쇼다.

“ 어쩌다 - ” 라는 부사에는 준비 없이 어른이 되었다는 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억울함도 살짝 묻어 있다. 어찌 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제가 감히 어른이 되었습니다아. 이 방송 프로그램이 주요 타깃으로 삼은 대상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라고 말하는 캔디형 어른이다. 사실은 외롭고 슬프지만 어른인 척하느라 내색도 못하고 참고, 참고, 참고, 참고, 참다가 마침내 참치가 된 캔디를 겨냥한 것이다. 인류와 어류 사이. 당신은 사람입니까, 참치입니까. 이는 지금의 세태와 맞물리면서, << 어쩌다 어른 >> 은 홀로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1인 독립 가구의 증가, 시대 변화에 따른 디지털 호모루덴스의 탄생,

어른이지만 어린아이처럼 놀이에 탐닉하는 키덜트,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취직할 나이가 되었지만 취직도 못하고 경제적 사정 때문에 부모로부터 독립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88세대와 캥거루 계층에게 호소한다. 이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어른의 자격에서 살짝 벗어났다는 데 불안을 느낀다. 그런데 나는 어른이라는 단어 앞에 어쩔 수 없다는 어투로 붙은“ 어쩌다 ㅡ ” 라는 표현이 자꾸 거슬린다. 사람들은 유년 시절이 지나면 필연적으로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인간은 아이와 어른으로 나뉜다는 단순한 분류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계기는 네덜란드 화가 피터 브뢰헬의 풍속화 << 아이들의 놀이, 1559 >>를 감상하면서 시작되었다.

<< 아이들의 놀이, 1559 >> 라는 그림에는 아이들이 무려 200여 명이나 출연한다. 그들은 각자 혹은 끼리끼리 모여서 다양한 놀이(75가지)를 재현한다. 물구나무서기, 팽이 돌리기, 굴렁쇠 굴리기, 말뚝박기, 뜀틀 넘기, 통 굴리기, 카드놀이, 소꿉놀이, 공기놀이, 기마놀이, 돌치기 놀이 등 말 그대로 놀이 백화점인 셈이다. 그런데 놀고 있는 아이들은 생김새로 보아 아이와 어른의 구분이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다. 설상가상, 이들이 입고 있는 복장도 어른이 입는 옷이 똑같아서 복장만 가지고는 어른과 아이를 구별할 수도 없다. 그림을 확대해서 세세하게 살펴보면 아이가 어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어른이 아이를 흉내 내며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이 그림을 감상하고 나서 내린 최종 결론은 이렇다. 놀고 있네, 애나 어른이나 하는 짓은 똑같구나. “ 어쩌다 어른 ”이라는 제목은 나이가 들면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회적 요구에 떠밀려서 어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필연이자 숙명이다. 이 가정법은 반드시 상대적 개념인 아이라는 계층이 존재할 때에만 성립될 수 있다. 만약에 어린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어른이라는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 올챙이 시절 없는 개구리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 어린이라는 개념이 근대가 낳은 발명품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어린이가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 워워. 말도 안 되는 신소리라며 나에게 화를 낼 필요는 없다.

그 주장은 프랑스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가 한 말이다.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는 << 아동의 탄생 >> 에서 아동은 필요에 의해 근대에서 만들어진 발명품이라고 말한다. 아이는 7세 이후가 되면 어른들 세계로 편입되어 그들과 섞였고,  어른들의 공동체에 소속된 아이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친구가 되었으며 일과 놀이를 공유했다. 궁금하여 그 시대 풍속사를 살펴보니 옛날에는 아이와 어른의 구별이 따로 없어서 아이들은 어른들과 어울리며 그들과 똑같은 놀이를 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어른과 섞여서 카드놀이나 주사위 놀이를 하고 돈을 걸고 도박을 했고 술도 마시며 기방도 출입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의 달콤한, 아 !  아밀라아제를 교환하며 사랑을 나눈 나이가 14살이 아니었던가. 반대로 어른들도 아이들이나 하는 놀이를 즐겼다고 하니 키덜트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족속이었다. 이를 두고 서구가 동양보다 도덕적으로 더 개방적이고 성적으로 더 타락했다는 증거라고 말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할 것이다. 왜냐하면 동양 사회도 아이를 작은 어른 취급을 했기 때문이다. 이몽룡이 기방을 제 집 드나들 듯 출입하며 기생들에게“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 라고 했을 때가 16살이었고,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은 15세에 결혼을 했으며, 벽초 홍명희는 13살에 결혼을 해서 나이 서른이 되어 손자를 보았다.

그리고 조혼 풍습으로 인해 10살에 장가를 간 꼬마 신랑도 있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라고 ? 아니다, << 임꺽정 >> 의 저자 홍명희는 20세기 인간이었다. 어린이라는 말은 17세기부터 써온 말인데 중세 국어에서 어리다는 의미는 " 나이가 적다 " 는 것이 아니라 " 어리석다 " 는 의미였다. 이 말은 20세기에 와서야 아동 문학가였던 소파 방정환(1899~1931)이 나이가 어리다는 의미로 사용했으니 그 이전에는 나이가 적다는 의미에서의 어린이란 없었다. 다시 말해서 옛날에는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 어른과 어린이를 구별하지 않았다.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하면 어른이라는 개념

또한 근대가 만든 발명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어른이라는 개념은 판타지다. 그렇기에 어린이와 어른이라는 구별 짓기는 칼로 물을 베는 것과 같다. 대부업 광고 문구 중에 " 여자니까 쉽게 ( 대출 가능 ) " 라는 표현이 있다. 여성 계층에게는 다른 계층보다 특별 우대하겠다는 표현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 여자는 멍청해서 복잡한 것은 못해 " 라는 뉘앙스로도 읽을 수 있다. 여성 우대보다는 여성 홀대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세를 살아가는 어른들은 어린이 인권에 대해서 과도할 정도로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른과 아이를 나누는 것이 억압의 결과였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어른과 아이를 구분 짓기 하는 순간 차별은 시작된다. 나는 짊어져야 할 어른의 무게 때문에 힘들다며 징징거리는 어른을 볼 때마다, 그리고 그들끼리 모여서 서로를 위로하며 자위할 때마다 씁쓸한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어른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성장통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성장통이다. 그렇기에 어른이기 때문에 겪는 특별한 성장통은 허구라는 점에서 환상통이다. 애나 어른이나 하는 짓은 똑같다는 사실을 부정한 채 인간의 성장 과정을 어린것와 어르신으로 나누는 것은 인간을 올챙이와 개구리로 나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인간의 성장 과정에는 변태라는 극단적 형태의 변신은 없지 않은가.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이렇게 묻고 싶다. 인류와 양서류 사이. 당신은 인간입니까, 개구리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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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8-05-01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나 어른이나 하는 짓은 똑같다,는 사실적 통찰에
뜨끔해집니다
인간인지 개구리인지 저 스스로 헛갈리는 나날입니다
잘 계시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5-01 14:30   좋아요 1 | URL
저는 사람 가지고 구별 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여자 남자, 어른 아이, 이성애자 동성애자.. 굳이 이런 구분을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차별의 시작은 구분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저야 늘.... 다크 님이야말로 잘 지내시지요 ? 다크 님이 다크한 소설을 빨리 보고 싶은 1인입니다아..

cyrus 2018-05-01 1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에서 여성과 아이의 차별과 억압이 없는 유토피아를 제시합니다. 그녀는 유토피아를 실현하기 위해서 ‘어른’과 ‘아이’로 구분하는 문화와 학교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5-02 10:17   좋아요 0 | URL
제 글의 요약본이네요. 사이러스 님 댓글이 말입니다... 파이어스톤의 주장에 적극 동의합니다..
 
김수영 전집 2 - 산문 김수영 전집 2
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 민음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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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산문 정신




 



                                                                                                        누가 뭐라 해도 한국 현대 문학에서 산문의 정수는 김수영이다. 김훈은 김수영에 비하면 정수는커녕 미지수, 분수, 소수, 내가 당신보다 아래였수 축에나 들까 ?  만약에 한국 현대 산문의 정수는 김수영이다 _ 라는 주장에 딴지를 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오달수'다. 그르지 마라.

이것은 취기를 빌려 허투루 내뱉는 소리가 아니다. 스스로 반성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반성을 빙자한,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여타 산문(작가)과는 달리 김수영은 세계의 허위를 향해 뽑아들었던 칼날을 그대로 자기 자신에게도 향한다. 그에게는 " 사소한 위선 정도는 위악으로 포장하려는 자기 방어 " 조차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김수영 산문을 읽고 나면 니체의 망치로, 카프카의 도끼로, 루쉰의 몽둥이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곤 한다. 그런가 하면, 외국 산문 작가의 정수는 수전 손택과 조지 오웰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완벽하게 조율된 문장은 조형적으로도 아름답게 보인다.

수전 손택 같은 경우는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유도미사일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수전 손택이 오랜 시간 공들여서 탁마한 문장은 목표를 정하면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 유도미사일과 같아서 그 집요함이 지나쳐서 때론 그의 문장이 징그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반면, 조지 오웰의 산문은 수전 손택에게는 없는 유머가 있어서 좋다.  그는 수전 손택보다는 김수영을 닮았다. 세 작가의 산문에서 누가 더 뛰어난 문학인가, 라며 자웅을 겨루는 것은 의미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하여, 나는 당신에게 김수영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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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8-03-12 1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수영은 생전에 번역과 시 창작, 시평론을 쓰는 것 말고는 돈벌이가 될만한 일들을 거의 하지 못했죠. 그래서 살림에 얼마라도 보탬이 되고자 부인인 김현경 여사와 함께 양계장을 운영했다는 내용도 산문으로 썼었죠. 그토록 도도하고 거침없던 김수영이 막상 병아리들이 병충해(콕시듐)에 걸려서 앓기 시작하자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참으로 우습고도, 서글펐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3-12 17:26   좋아요 0 | URL
유명한 글이죠. 파주였던가요 ? 일산이었나 ?? 하여튼... 먹고살려고 양계장 하다가 망한 이야기하는데.. ㅎㅎㅎ
김수영이 글이 유머가 있어요. 날카롭고, 엄정하며, 여유있고.. 하여튼.. 산문의 정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건 그렇고... 한 잔 약속 아시죠 ?

수다맨 2018-03-13 11:05   좋아요 0 | URL
네 알고 있습니다. 다음주에 뵙도록 하지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