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개정판
혜민 지음, 이영철 그림 / 수오서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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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 와   利 를   혼 동 할   때  :

 

 

 






혜민과 홍준표 



                                                                                                        머리가 똑똑해 옳은 소리 하면서 비판을 자주하는 사람보다 가슴이 따뜻해 무언가를 나누어주려고 궁리하는 사람, 친구의 허물도 품어줄 줄 아는 사람, 타인의 고통을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이 되세요 ㅡ 혜민이 그의 위대한 명저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에서 쓴 문장이다.

짝 ! 짝 ! 짝 !  나는 기립해서 박수를 쳤다. 브라보, 아따. 씨부랄. 와우~  혜민, 가는 길에 똥 밟고 뒤로 자빠지시라.                   하나 마나 한 소리를 문학적 수사도 없이, 본질을 꿰뚫는 통찰도 없이, 끓어오르는 열정도 신념도 없는 글을 좋아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가 비판하는 유형인 " 머리가 똑똑해 옳은 소리나 하면서 비판을 자주 하는 사람 " 이라는 문장에서 내가 제일 먼저 생각난 인물은 놀랍게도 부처였다. 부처야말로 머리가 똑똑한 인물이어서 옳은 소리를 자주 하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비판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며 利보다는 理에 밝은 성인이 아니었던가.

죽비 소리가 상징하듯이 불교적 언어는 치유와 위로의 언어보다는 정곡을 찌르거나 폐부를 낱낱이 드러내는 언어에 가깝다(기독교 서사가 정서에 호소하는 측면이 있다면 불교 서사는 냉혹할 정도로 논리에 호소한다).  위 문장은 대중 불교가 속세의 사리에 밝으면 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혜민은 < 머리가 똑똑해 옳은 소리나 하면서 비판을 자주하는 사람(의 말,태도,자세) > 을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취하는데, 그는 그것을 義로 보지 않고 利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한다. 옳지 않은 소리를 하면서 비판을 자주하는 것은 利에 해당되지만 옳은 소리로 비판을 하는 것은 義에 가깝다.

그는 理와 利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 논어 >> 에서 " 군자는 義에 깨닫고, 소인은 利에 깨닫는다 " 고 지적했다. 혜민은 의를 이로 인식했으니..... 그는 소인이 분명하다. 이런 사람이 큰스님 코스프레를 하고 있으니 한심할 뿐이다. 혜민의 문장을 읽을 때마다 구구절절 깨닫게 되는 것은 " 전지적 작가 시점 " 이다. 그는 항상 통달한 마음과 꿰뚫고 주시하는 마음으로 중생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그는 마치 청기백기 오락기 나레이터 같다. 그는 중생인 우리에게 명령한다. 청기 내려 백기 올려 아니아니 청기 내리지 말고 백기 올렸다가 내렸다가 다시 올리지는 말고 내려 차렷 열중 쉬엇 어섯 !

내가 아는 부처는 정서에 호소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치에 호소하는 성인이다. 이치란 논리적 세계의 한 축이다. 그렇기에 나는 논리보다는 정서에 호소하는 혜민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 머리가 똑똑해 옳은 소리나 하면서 비판만 자주하는 사람의 말 " 을 저잣거리 입말로 쉽게 말하자면 " 배부른 소리 " 이거나 " 싸가지 없게 말하기 " 이다. 그러니까 허어, 맞는 소리이기는 한데 세상 물정 모르고 하는 소리처럼 들리는 것이다. 그가 젊은이를 위로할 때마다 논란이 발생하는 것은 늙은 욕망으로 젊은이의 요구를 해석하거나 훈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늙고 낡은 욕망으로 젊은 니즈를 충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 언론사에서 빅데이터를 분석한 기사를 작성했다. 홍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특정 인물의 글에 " 좋아요 " 를 누른 데이터 목록을 확인하니 혜민이 상위권에 링크가 걸렸다는 기사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서 홍준표 지지자들은 혜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그들은 머리가 똑똑해 옳은 소리나 하면서 비판을 일삼는 사람들의 말을 배부른 소리로 취급하거나 맞는 말이긴 한데 싸가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이니 말이다. 후속 보도 부탁한다. 혜민과 홍준표의 차 간담회, 멋진 기획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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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윗듀 2018-01-30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웃고갑니다 ㅋ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8-01-31 10:27   좋아요 0 | URL
별 셋 하나... 윤동주의 패경옥 생각이 나네요.. ㅎㅎ

가넷 2018-01-29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있다보면 수행자가 맞나 싶더군요. 얼마전에 냉부에도 나오던데 도대체 뭐지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1-31 10:27   좋아요 0 | URL
수행자라기보다는 약 파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스님이 왜 냉부에 나오죠 ? 이상한 사람입니다..

라로 2018-01-31 0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그런가? 처음엔 좋아서 카스 팔로 했는데 자꾸 읽다보니 짜증이 나더군요. ㅎㅎㅎㅎ 그래서 삭제했어요~~~~예전에. ㅎ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8-01-31 10:28   좋아요 0 | URL
쉽게 질리는 친절이라고나 할까요.. 마음에도 없는 위로와 친절은 처음에는 듣기 좋지만 이게 자주 듣게 되면 짜증나기 마련입니다.. 전형적인 인물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 러 나  누 가  '알고'  있 었 다 는  게  왜  중 요 했 을 까 ? 

 



            

                                      달걀은 幻이다1)



 



달걀이 손가락과 바꿀 만큼 가치가 있나 ?
없소 !  하지만 기분은 좋소. 이게 내 본래의 모습이오(但我覺得痛快 這個才是我自己).  안 다쳐야 했겠지만, 검(劍)이 옛날처럼 빠르지 못했소. 옛날에 검이 빨랐던 것은 옳다고 믿고 했기 때문이오. 대가를 바란 적이 없었소. 난 평생 안 변할 줄 알았는데……


〈동사서독〉(왕자웨이, 1994)




                                                                                      << 아비정전, 1991 >> 을 40번 넘게 보았다. 만우절이 되면 변두리 극장 어디선가 왕자웨이 영화제가 상영되고 있었고 << 아비정전 >> 은 단골 상영작이었다. 길거리 극장이 아니더라도 이날이 되면 티븨 변두리 채널 어디선가 아비정전은 상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상영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왕자웨이의 최고 걸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왕자웨이 영화 중 최걸 : 최고 걸작)은 << 화양연화, 2000 >> 이다.  완벽한 영화이다.  한뼘의 간격이 주는 미학을 이토록 집요하게 다룬 영화가 있었던가. 하지만 이 영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아니다,  최걸 영화를 선정하는 것과 최애 영화를 선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니까.   내가 " 최애 " 하는 왕자웨이 영화는 << 동사서독,1994 >> 이다. 그렇다면 왕자웨이 영화 중 실패한 영화는 무엇일까 ?   그것 또한 << 동사서독 >> 이다.  서사의 불균질성, 점프 컷의 지랄같은 오용, 필터의 남용, 통일성의 결여, 기타 등등......

하지만 이 얼룩들, 이 오류들, 이 헛점투성이로 오염된 << 동사서독 >> 은 오히려 영화의 주제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유물론자이다. 그렇기에 유심론자와 대립하게 된다.  유심론자(관념론자)는 움직이는 것은 깃발도 아니요, 그대의 마음이라고 말하지만 유물론자는 그대의 마음은 움직이는 깃발이요, 바람이라고 말한다. 이 차이에 대해 나는 대립하지만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사소한 문제여서 우리는 서로 다른 오솔길을 걷고 있는 산책자일뿐이다. 하지만 나를 " 빡 " 치게 만드는 것은 혜민 같은 사이비 유심론자'이다. 삼라만상, 모든 번뇌가 다 마음먹기에 달렸지요. 허허허허허허허허 _ 라고 산신령 놀음을 할 때마다 엿죽방망이로 빰따구 한 대 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

혜민의 유심론은 독일 관념론(유심론)에 대한 모독이며 쌍팔년도 흥남부두 격정 신파의 신흥 종교 사업 버전에 불과하다. 당신을 불행하게 만든 것(중 하나가 마음일 수는 있으나 전부일 수는 없듯이)팔 할이 마음이 아니라 구조'이다.영화 << 동사서독 >> 에서 홍칠공은 유물론자 캐릭터'다. 그는 물질을 사람의 마음 표현으로 이해한다. 다음은 네이버 영화에 소개된 줄거리다.



① 장국영(구양봉) : 백타산의 원주민인 구양봉(장국영 분)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형이 그를 키웠다. 구양봉의 꿈은 유명한 검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술 연마를 위해 고향을 떠날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여인(장만옥 분)과 고향에 남을 것인가의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사랑하는 여인 대신 무사로서의 길을 택한다. 결국 그녀는 그의 형과 결혼한다. 10년 후, 냉소적이고 돈만 알게 된 구양봉은 사막으로 가서 그곳에 여관을 개업한다.


② 양가휘(황약사) : 구양봉은 황약사(양가휘 분)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역시 사랑에 관한 슬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는 한때 가장 친했던 친구의 부인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도화림을 떠나게 된다. 매년 복사꽃이 피는 시절이면 구양봉에게 찾아와 같이 술을 마시고는 백타산으로 구양봉이 사랑했던 여인을 방문하러 떠난다. 10살난 아들을 가진 그녀는 아직도 구양봉을 사랑하고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일 전 황약사는 고소성 밖에서 자칭 모룡연(임청하 분)이라는 남자와 친구가 된다. 그의 여동생과 결혼할 것을 언약한다. 그녀와 만날 약속을 했지만 황은 떠나가 버린다. 모룡연은 황약사가 약속을 어긴 것에 분노하며 구양봉을 찾아와 동생을 대신해 복수를 하고 싶다며 황약사를 죽여달라고 한다. 그가 떠난 뒤 그의 여동생인 모룡연이 나타나 그녀의 오빠를 죽여주면 오빠가 제시한 돈의 2배를 주겠다고 한다. 구양봉은 모룡연이 여동생을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지만 대화를 지속하는 동안 모룡연과 모룡언이 내면에 두개의 인격체를 지닌 동일인임을 확인하게 된다.


 장학우(홍칠공) : 어떤 젊은 처녀(양채니 분)가 구양봉을 찾아와 그의 동생의 복수를 간청한다. 그러나 그녀가 가진 것은 달걀 한 바구니와 당나귀 한 마리뿐이었다. 구양봉은 그녀의 청을 거절하지만 그녀는 도와줄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고집한다.   가진 것 없는 검객 홍찰(장학우 분)은 구양봉의 눈에 띄어 그의 휘하에 들어가 이제는 유능한 청부 검객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구양봉의 뜻을 어기고 돈도 없는 어린 소녀의 복수를 대신해준다. 그가 받은 대가는 오직 달걀 한 개뿐이었다. 마적단과의 싸움에서 손가락 하나를 잃은 그는 그를 찾아온 아내와 함께 떠난다.



양조위(맹무살수) : 도화림에서 온 시력을 점점 잃어가는 영락한 검객(맹무살수, 양조위)이 어느 날 구양봉을 찾아와 살인청부 일을 하겠다고 자청한다. 그는 눈이 완전히 멀기 전에 복사꽃이 피는 것을 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갈 돈이 필요했다. 그는 아내(유가령 분)가 절친한 친구와 부정을 저지르자 집을 떠나는데 그 친구는 다름 아닌 황약사였다. 이렇게 가슴에 나름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세월은 흘러가고 마침내 구양봉은 형수(옛 애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자신의 여관에 불을 지르고 떠나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눈에 보이는 현상(現像) 으로 드러내는 것은 물성(物性)이다. 목이 마른 사람에게 물잔을 건네는 것, 그러니까 목이 마른 사람이 받은 잔(盞)은 물을 건네준 사람의 마음이다. 선의가 물잔이라는 물성으로 교환되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은 물성을 띤 현상으로 나타난다. 주고받는 것이 인지상정이어서 인간 관계란 결국 물성을 띤 물적 관계의 교환인 셈이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장학우(홍칠)가 자기 손가락 한 개를 기꺼이 양채니의 달걀 한 개와 교환한 심리 기제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잘린 손가락과 달걀 한 개)은 타자와 타자에 대한 서로의 선의가 물성을 띤 물질성으로 변한 상태인 것2)이다.


반면에 홍칠공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유심론자들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마음으로 얽혀 있으며 정념의 교환, 혹은 마음 교환의 실패로 맺어진 관계들이고 그것 때문에 고통 받는다. 장국영(구양봉)을 사랑한 장만옥(자애인)과 그녀를 사랑한 양조휘(황약사)가 나누는 대사는 이 사실을 분명히 한다.


- 날 사랑한다는 말을 안 했어요(자애인)

-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도 있소(황약사)

- 난 그 말을 듣고 싶었는데 그는 말해주지 않았아요(자애인)


철학자 김영민은 << 집중과 영혼 >> 에서 이 에피소드를 거론하며 " 그러나 누가 '알고' 있었다는 게 왜 중요했을까 ? " 라고 묻는다. 중요하다, 중요할 수밖에 없는 관계이다. 그들은 마음을 물성을 띤 물질성의 교환 형태로 뜻을 전하는 관계가 아니라 오로지 원시적인 정념의 교환 형태로서만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정인들이기 때문이다. 메시지가 없으니 메신져도 사라진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말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마음과 마음의 교환 거래로 맺어진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황약사는, 구양봉은, 맹무살수, 자애인은 마음을 얻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유심론자들이다.


달걀은 환(幻 : 헛보이다, 미혹하다, 변(화)하다, 바뀌다)이다. 선의를 드러내기 위한 성의는 중요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성의 표시의 가치가 아니라 선의의 가치'다. 홍칠은 기꺼기 그 작은 선의를 받아들인 사람이다.



                                

 

1)      집중과 영혼, 32 달걀은 환이다

2)      영화 << 올드보이 >> 에서 최민식은 군만두를 통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이우진)의 마음을 읽는다  군만두는 이우진(유지태)의 악의를 띤 마음으로 물성으로 환幻 한 것이다  김영민 스타일로 표현하자면 " 군만두는 幻이다 " 군만두는 메신저의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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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8-01-19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양연화와 동사서독은 여러번 봤습니다. 화양연화는 화양연화대로(이 영화 보고나서 앙코르왓으로 날라갔다 왔습니다), 동사서독은 또 그 자체로 느낌이 많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선가 또 방영한다면 아마도 또 보고 있을 그런 영화입니다. 저에겐...^^

곰곰생각하는발 2018-01-19 15:27   좋아요 1 | URL
후후....

저에게 아비정전은 가장 많이 본 영화이고
저에게 화양연화는 가장 좋은 영화이고
저에게 동사서독은 가장 애정하는 영화입니다..ㅎㅎ


저도 아마 어디선가 방영하면 채널 돌리지 않고 볼 영화들입니다..

2018-01-21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1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熱         과          集        :

 

 

 

 

 

 


 


집중과 영혼  :  80 페이지 OF 1011페이지






- 이 글은 1011페이지 중에서 80페이지까지 읽고 쓰는 리뷰이다



​                                                                                                        김영민철학 에세이 << 집중과 영혼 >> 이 도착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주마간산으로 책을 훑다 보니 80페이지 정도 읽었다. 읽기가 만만치 않다는 소리를 들었던 터라 잔뜩 졸았는데, 옴마 !  의외로 재미있다.

김영민은 열중과 집중을 분리한다. 그는 동물이 한 가지 일에 정신을 쏟는 것은 가능하지만 차분하게 집중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열중은 짐승의 몰입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몰입일 수는 있으나 집중은 동물에게는 없는 " 극히 인간적인 태도의 형성 " 이라고 말한다. 열중과 집중이 모두 사전적 의미로 몰두, 골몰, 몰입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두 단어 사이에 큰 차이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 김영민은 열중과 집중을 굳이 분리한 것일까. 라임을 살리기 위해서 ??! 오케이, 여기까지.

곰곰 생각했다    :   열중은 한자로 熱中이다.  여기서 한자 熱은 더울 열'이다.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한 가지 일에 정신을 쏟다 보면 몸에 열이 오르는 경험은 모두 다 경험했으리라.  열중한다는 것은 몸에서 열을 발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열중은 순간적으로 에너지를 과도하게 태우는 몰입이다.   표범이 얼룩말을 잡기 위해서 엄청난 힘을 발산하듯이 말이다.  순간의 힘은 인간보다는 동물이 우수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영민은 열중과는 상반된 개념으로 집중을 선택한다.  집중은 한자로 集中이다.  여기서 한자 集은 나무 위에 새들이 모여있는 형상을 본 뜬 글인데,

집중할 때 발생하는 몰입은 열중할 때 발생하는 몰입과는 성격이 다르다.    후자(熱中)가 위로 치솟는 " 뜨거운 몰입 " 이라면 전자(集中)는 내려서서 달라붙는 おちつく  " 차가운 몰입 " 이다.   COOL하다.   가성비와 열효율'을 놓고 보자면 쿨한 몰입이 오래간다.   한자 < 熱 > 을 集과 비교하면서 세세하게 분석하면 뜻은 더욱 분명해진다.  음을 나타내는 글자 : 예,열'은 나무가 무럭무럭 자란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 글자 아래  : 타는 불 이 붙으니 불에 활활 타는 나무의 형상이 된다.  열은 위로 상승하지만 쇠락하고 몰락하는 이미지다.

반면에 < 集 > 은 무성한 나뭇가지 위에 새들이 모여있는 형국을 나타낸다.  새들이 많이 모이는 나무일수록 건강한 나무이다. 왜냐하면 새똥은 거름이 될 뿐만 아니라 새들이 나무에게 해로운 해충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김영민은 지속 가능한 몰입을 위해서는 열중보다는 집중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김영민은 인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하나 마나 한 소리이지만 동물들은 차분하게 집중하지 못한다. 굳이 집중과 비견할 만한 것을 끄집어내자면 열중이 있을 따름이다(67쪽) " 고 말한 후 " 인간들은 장구한 진화의 세월 동안 어느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분해졌다. 차분함의 강도, 지속성, 그리고 그 차분함과 결부되는 지향의 일관성 등에서 유례가 없는 동물이다(72쪽) " 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책에서 소심하고 과묵했던 비행기 조종사 설리의 차분하고 균형 잡힌 태도를 소개하며 그를 모범적인 " 캡틴 COOL " 이라고 평가한다. 쉽게 말해서 김영민의 공부법은 가늘고 길게 살자는 주의'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1000페이지가 넘는 책에서 달랑 80페이지만 읽고 나서 이해한 대목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 집중과 영혼 >> 은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생경한 단어가 많고, 내용을 보완하기 위해서 저자가 새롭게 한자를 조합했기에 일일이 사전을 찾아가며 읽어야 한다. 하지만 읽고 나면 배움은 큰 편이어서 불만은 없다. 재미있다. 이번 달은 이 책과 함께 보내야 할 것 같다.

덧 ㅣ 김영민은 서언에서 " 인간만이 절망 " 이라고 고백한다. 이 말은 박노해가 " 사람만이 희망 " 이라고 말했던, 쌍팔년도 흥남부두 격정 신파에 대한 김영민식 쿨한 대응이다. 이것이 힙합 정신이다. 나는 박노해가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말했을 때, 그가 총기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매우 슬퍼했다. 이제 더 이상 새벽은 오지 않겠구나.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가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진짜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인생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인간에 대한 절망을 이야기할 때 비로소 인간에 대한 희망의 빛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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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1~3권 세트 - 전3권 - 개정신판 열하일기 (개정신판)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 / 돌베개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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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 륭 한   울 음 터 로 다   :

 


 



 

 

 

 


하하하, 성탄 전야



 




                                                                                            성탄 전야, 근심이 가득한 하루였다. 거제도에서 보낸 택배가 도착했다. 사과상자 두 개를 병렬로 놓은 듯한 택배 상자를 보자 그 크기만큼 근심이 쌓였다. 설마...... 상어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겠지 ?  대방어였다. 대두 자랑이라면 어디 가서도 꿇리지 않는 나이지만 대방어의 대가리 역시 무시무시한 크기여서 눈앞이 캄캄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호호호.  할렐루야, 아멘, 주님의 은총이 !  거제도 권사님은 은혜로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크기가 작은 생선이라면 걱정은 나중에 하고 일단 냉장고 안에 넣어두면 되지만 대방어는 크기 때문에 냉장고에 넣을 수가 없어서 먼저 손질부터 해야 했다.

인터넷을 뒤지고 칼을 쓰는 몇몇에게 알음알음 물어보며 대방어 해체 작업을 했다. 사시미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무딘 식칼로 생선을 손질한다는 게 이만저만 이제 그만. 아, 그만하고 싶다고 ! 무엇보다도 칼을 다루는 칼잡이가 내게 방어사상충을 골라내야 한다고 말했을 때에는 충격이었다. 기생충인데 고래회충과는 달리 살속을 파고들어서 눈에 띄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 눈 부릅뜨고 골라내쇼. 기생충이 단백질 덩어리여서 먹어도 상관은 없소만........     나는 촛불 대신 칼을 들고 생선을 해체하며 기생충을 골라내는 일로 성탄 전야를 보냈다. 블러드 크리스마스 !

성탄 전야, 영화를 무려 5편이나 봤다. 첫 번째로 본 영화는 영화에서 여자가 가장 호탕하게 웃을 수 있는 장르는 바로 소복 입은 귀신이 나오는 영화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했다. << 월하의 공동묘지, 1967 >> . 소복 입은 귀신이 어찌나 호탕하게 웃으시던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두 번째로 본 영화는 << 여곡성, 1986 >> 이었다. 이 영화에서도 소복 입은 여자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병에 걸린 사람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원한이 사무쳐서 저승에 가지도 못하고 이승에서 피맺힌 복수를 하는 사람이 왜 이토록 크게 웃는 것일까 ?

세 번째 영화는 << 돼지꿈, 1961 >> 이었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본 장면은 소주잔이었는데 그때에는 소주잔이 지금 유통되고 있는 소주잔보다 크기가 2배나 컸다. 소주잔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서 크기가 작은 맥주잔 같았다. 네 번째 영화는 << 엽문 4 >> 와 마지막 영화는 << 범죄도시 >> 였다. 뭐, 그럭저럭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흥미로운 영화는 아니었다.  나는 옛날 한국 영화가 재미있다. 그 시대 풍속과 세태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사회학 책을 읽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옛날 영화가 미시사회학를 다룬 서적 같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귀신은 숨 넘어 갈 사람처럼 웃어 젖히는 것일까 ?

바로 이 지점에서 역설이 발생한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를 여행할 때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는 요동 벌판을 보고 호곡장(好哭場)이라고 말한다. 울기 좋은 장소, 울음터'라는 뜻이다. 연암은 << 열하일기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발췌문이 조금 길지만 연암 박지원의 사상을 꿰뚫는 명문이니 꼭 읽어보시길. 열하일기의 화룡점정이다).



 

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서 말하였다. “좋은 울음터로다. 울만 하구나.”  정진사가 말했다. “이런 하늘과 땅 사이의 큰 안계()를 만나서 갑자기 다시금 울기를 생각함은 어찌 된 것이오?" 내가 말했다.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오. 천고에 영웅은 울기를 잘하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 하나, 몇 줄 소리 없는 눈물이 옷소매로 굴러떨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네. 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 마치 금석()에서 나오는 것 같은 울음은 아직 들어보지 못하였네. 사람들은 단지 칠정 가운데서 오직 슬퍼야 울음이 나오는 줄 알뿐 칠정이 모두 울게 할 수 있는 줄은 모르거든. 기쁨이 지극하면 울 수가 있고, 분노가 사무쳐도 울 수가 있네. 즐거움이 넘쳐도 울 수가 있고, 사랑함이 지극해도 울 수가 있지. 미워함이 극에 달해도 울 수가 있고, 욕심이 가득해도 울 수가 있다네. 가슴속에 답답한 것을 풀어버림은 소리보다 더 빠른 것이 없거니와, 울음은 천지에 있어서 우레와 천둥에 견줄만하다 하겠소. 지극한 정이 펴는 바인지라 펴면 능히 이치에 맞게 되니, 웃음과 더불어 무엇이 다르리오?  사람의 정이란 것이 일찍이 이러한 지극한 경지는 겪어보지 못하고서, 교묘히 칠정을 늘어놓고는 슬픔에다 울음을 안배하였다네. 그래서 죽어 초상을 치를 때나 비로소 억지로 목청을 쥐어짜 ‘아이고’ 등의 말을 부르짖곤 하지. 그러나 진정으로 칠정이 느끼는 바 지극하고 참된 소리는 참고 눌러 하늘과 땅 사이에 쌓이고 막혀서 감히 펼치지 못하게 되네. 저 가생()이란 자는 그 울 곳을 얻지 못해 참고 참다 견디지 못해 갑자기 선실()을 향하여 큰 소리로 길게 외치니, 어찌 사람들이 놀라 괴이히 여기지 않을 수 있었겠소.” 정진사가 말했다. “이제 이 울음터가 넓기가 저와 같으니, 나 또한 마땅히 그대를 좇아 한 번 크게 울려 하나, 우는 까닭을 칠정이 느끼는 바에서 구한다면 어디에 속할지 모르겠구려.” 내가 말했다. 갓난아기에게 물어보시게. 갓난아기가 갓 태어나 느끼는 바가 무슨 정인가를 말이오. 처음에는 해와 달을 보고, 그 다음엔 부모를 보며, 친척들이 앞에 가득하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오. 이같이 기쁘고 즐거운 일은 늙도록 다시는 없을 터이니 슬퍼하거나 성낼 까닭은 없고 그 정은 마땅히 즐거워 웃어야 할 터인데도 분노와 한스러움이 가슴속에 미어터지는 듯 한다오. 이를 두고 장차 사람이란 거룩하거나 어리석거나 간에 한결같이 죽게 마련이고, 그 중간에는 남을 허물하며 온갖 근심 속에 살아가는지라 갓난아기가 그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먼저 스스로를 조상하여 곡하는 것이라고들 말한단 말이지. 그러나 이는 갓난아기의 본 마음이 절대로 아닐 것일세. 아이가 태속에 있을 때는 캄캄하고 막힌 데다 에워싸여 답답하다가, 하루아침에  넓은 곳으로 빠져나와 손과 발을 주욱 펼 수 있고 마음이 시원스레 환하게 되니 어찌 참된 소리로 정을 다해서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있겠소? 그런 까닭에 마땅히 어린아이를 본받아야만 소리에 거짓으로 짓는 것이 없게 될 것일세. 금강산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는 것이 한바탕 울 만한 곳이 될만하고, 황해도 장연()의 금사산()이 한바탕 울 만한 곳이 될만 하오. 이제 요동벌에 임하매, 여기서부터 산해관()까지 일천 이백 리 길에 사방에는 모두 한 점의 산도 없어 하늘 가와 땅 끝은 마치 아교풀로 붙이고 실로 꿰매 놓은 것만 같아 해묵은 비와 지금 구름이 다만 창창할 뿐이니 한 바탕 울 만한 곳이 될만 하오.”


 

-『열하일기()』 중 「도강록()」의 7월 8일자 일기.

 



열하일기의 호곡장 부분을 읽은 사람이라면, 우리는 저승에서 돌아온 소복 입은 귀신이 이승에서 왜 그토록 호탕하게 웃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울음이 웃음과 무엇이 다르오 _ 라고 묻는, 웃음과 울음이 본질이 같다는 열암의 통찰을 생각하면 귀신이 한 평 남짓한 관속처럼 " 캄캄하고 막힌 데다 에워싸여 답답하다가 하루아침에 넓은 곳으로 빠져나와 손과 발을 주욱 펼 수 있었으니 "  그가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다시 웃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리 생각하면 귀신의 한바탕 웃음이 애처롭다.

눈물은 때로는 마른 웃음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마른 웃음은 또 때로는 젖은 눈물로 환유 되기도 한다. 즐거운 크리스마스에 소복 입은 귀신이 나오는 옛날 영화를 보는 것은 꽤 근사한 일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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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 2017-12-25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편으로는 웃음이 공포를 극대화하는데 쓰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여인네가(귀신이더라도) 흐느끼면 무슨 곡절이 있어 저리 슬피 우는지 자못 궁금할 수 있지만 막무가내 웃음이란 공감보다 오싹한 맛이 먼저 오지 않을까요?
특히 남성에게 여성의 이유를 알 수 없는 호탕한 웃음이란 ... 에코까지 넣어서 웃음이 퍼지는데다 점프컷으로 여기서 웃고 저기서 웃고 웃음으로 남자 주인공을 포위하는 공포요. 하하하핳하하하

곰곰생각하는발 2017-12-25 10:59   좋아요 0 | URL
웃음이라는 게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 어떤 도구 없이도 들을 수 있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포 영화에서 이 효과음이 공포의 도구로 널리 쓰이는 이유는
우리가 일상에서 이렇게 호탕한 여성의 웃음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다는 데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굉장히 생경스러운, 힘있는 웃음이잖아요.. 그래서 기괴하게 들리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표맥(漂麥) 2017-12-26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도 생선 손질은 잘 안한답니다. 그 곤난함... 느낌이 팍팍~ 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2-27 09:08   좋아요 0 | URL
엄청 곤란하죠.. 정말 생선은 돈을 더 주더라도 손질된 생선을 사야 합니다..

에로틱번뇌보이 2017-12-27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하일기의 호곡장 부분은 언제봐도 명문인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2-27 12:36   좋아요 0 | URL
열하일기의 화룡점정이자 박지원이 왜 천재적 문장가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명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부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최고예욧..
 
정성일 영화평론집 세트 - 전2권 -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 필사의 탐독
정성일 외 지음 / 바다출판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                                         


사  랑  하  는     딸  에  게   :



 




정성일과 임권택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임권택 영화 가운데 새롭게 눈을 뜬 계기를 마련한 영화로 << 족보, 1979 >> 를 뽑는다. 틈만 나면 하는 소리여서 평론가 정성일과 영화감독 임권택 사이에서 오고 가는 말풍선을 빼놓지 않고 귀담아들었던 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다.

두 사람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젖은 땔감 같은 사이여서 마른 땔감보다 뜨겁게 숫불(" 떼래야 " 나 " 숯불 " 이라고 표기해야 맞는 표현이겠지만 나는 비문도 훌륭한 문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내 문장은 비문의 깊은 뜻을 이해해야 오모한 맛을 느낄 수 있다)처럼 빨갛게 타오르곤 했다. 이때 정성일은 임권택 영화라는 이름의 우물만 집중해서 파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그때부터 정성일은 임권택 영화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날씨가 화창하구나. 정성일이 한국 영화 비평계의 텐트폴로 일필휘지를 날리며 롤모델로

㉠ 장 르느와르 영화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앙드레 바쟁을, ㉡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 탐구에 일생을 바친 도널드 리치를, ㉢ 찰리 채플린을 연구한 데이빗 로빈슨을, ㉣ 모두 다 초기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를 비판할 때 나홀로 그를 지지했던 하스미 시게히코를, ㉤ 알프레드 히치콕에 대한 기념비적 집착을 보였던 프랑소와 트뤼포 평론가 흉내를 내며 비평계를 평정할 때,  강북 변방의 어두컴컴한 ●●동에서 비디오가게를 전전끙끙하며 웨스 크레이븐 감독이 연출한 << 왼쪽 마지막 집 >> 을, 샘 레이미의 << 이블데드 >> 를, 조 단테의 << 그렘린 >> 을, 피터 잭슨의 << 배드 테이스트 >> 를 

탐욕스럽게 먹어치웠던 나는 임권택 영화에 대한 까닭 모를 내 악의를 떨쳐낼 요량으로 << 족보 >> 라는 영화를 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때마침 시네마떼끄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길래 짬을 내서 << 족보 >> 를 감상했(었)다. 그런데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꼴이라고나 할까 ?   이 영화는 정성일이 말하는 것처럼 대단한 영화도 아니고 그저 그렇고 그런 시시껄렁한 문예영화에 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임권택 영화가 불편한 지점은 잰더 인식의 철저한 결여'에 있었다. << 서편제 >> 에서 남성 욕망을 완성하기 위해 딸에게 독약을 먹여 눈을 멀게 하는 장면을, << 하류 인생 >> 에서 남편이 성관계를

거부하는 아내를 때린 후 강간하는 씬 다음에 나오는 장면(부부강간을 당한 아내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남편에게 안겨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과일쥬스를 만들고 있다)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서편제 >> 에서 아버지로 등장하는 소리꾼 유봉(김명곤)이나 << 하류인생 >> 에서 깡패인 최태웅(조승우)은 여성을 그저 남성 욕망을 해소하는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캐릭터에 불과했다. 뒷목이 뻣뻣하시다구요 ? 아내와의 잠자리가 두렵다구요 ? 자두 자두 자두 자두 잠이 오신다구요 ?  그런 남성에게는 자두 맛 남성 자양 강장 드링크. 원 ! 기 ! 옥 !   이름 또한 어찌나 남근적인지. 

< 봉 > 이 사전적 의미로 기다란 몽둥이나 봉알의 수컷을, 오타다. 봉황의 수컷을 뜻하니 유봉을 다른 식으로 창씨개명하면 태웅이 될 터이다. 太雄, 이 얼마나 테스토스테론적 이름인가 !  임권택 감독에게 여성이라는 계급은 " 호모사케르 " 에 불과하다. 옛날 영화이니 당대의 감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변명은 최근 영화라 할 수 있는 << 화장, 2015 >> 에서도 여실히 그 버릇이 드러나서  설득력을 잃는다. << 화장 >> 에서는 리얼리티'라는 이름으로 분변으로 더러워진 아내의 병들고 헐거워진 여성 성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나는 이 장면이 왜 이런 식으로 느닷없이 폭로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헐겁고 더러워진 여성 성기가 육체적 쇠락을 상징하는 오브제라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했다.  왜냐하면 굳이 여성 성기를 보여주지 않아도 병실에 누운 아내의 몸 자체는 이미 쇠락한 육체를 설명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전립선 비대증으로 인해 소변을 제대로 볼 수 없어서 인공 관을 성기에 꽂아야 하는 남편(안성기)은 리얼리티라는 이름으로 헐거워진 남성 성기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고개 숙인 남근이 폭로되기는커녕 기분 좋을 만큼 빳빳하고 새하얀 시트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시든 자지에 대한 배려인가 아니면 동변상련인가 ?  그런데 이 차별적인 시선 차이를 지적하는 남성 평론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김훈의 원작 소설 << 화장 >> 에서 병들어서 헐거워진 아내 성기와 전립선 비대증으로 고생하는 남편 성기는 매우 중요한 서사적 대비 장치였는데도 남성 평론가는 애써 이 사실을 외면했다.  내가 뒤늦게 << 족보 >> 라는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은 내 편견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이었다.  영화 << 족보 >> 는 창씨개명을 반대하는 명문가 양반 설씨 노인이 주인공이다.  그는 성씨를 바꾸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겠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노인이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자 일본 관청은 온갖 수작을 꾸민다.  노인에게는 혼인을 앞둔 딸이 하나 있었는데 딸이 결혼식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예비 사위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모든 것은 조선총독부가 꾸민 계략. 그들은 장차 사위가 될 남자를 석방하는 조건으로 노인에게 인도인 자격으로 서명란에 서명을 해야 된다고 말한다.  단, 조건이 있다. 가석방 인도 서약서는 조선통독부 관공 문서이기에 반드시 창씨개명한 이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을 경우 딸과 약혼한 남자는 옥살이를 치러야 하기에 딸은 파혼에 처할 위기에 빠진다.  딜레마, 딜레마, 딜레마, 오 !  딜레마.  이 영화의 절정 부분이다. 과연 노인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때 노인은 내 눈을 동그랗게

뜨게 할 만한 기묘한 결정을 내린다. 설씨 노인은 옥순(딸)에게 히마리 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 옥순아 ! 네가 결정할 수밖에 없구나. 아비하고 네 낭군 될 사람하고, 둘 중 한 사람을 선택하거라. 난 네가 하자는 대로 다 하마. " 노인은 딸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지만 딸 입장에서 보면 선택권은 없다. 자신의 결혼식을 위해서 아버지에게 성을 바꾸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노인은 딸에게 어느 것이 더 합당한 윤리적 선택이냐고 묻지만 이 질문은 굉장히 폭력적이다. 왜냐하면 딸에게 선택권은 없다는 사실을 노인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답정너,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 질문은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 달콤한 인생 >> 에서 부하였던 이병헌이 총을 들고서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두목에게 묻는 질문을 닮았다. " 왜 그랬어요. 네에 ?!  말해봐요. 왜 그랬어요 ? " 부하는 두목에게 대답을 강요하지만 두목은 그 어떤 대답을 해도 죽는다. YES라고 말해도 죽고, NO라고 말해도 죽고,  NO COMMENT라고 말해도 죽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죽는다.

부하의 질문은 질문이 아니라 그저 예의 차원에서 묻는 질문일 뿐이다. 아니나 달라. 딸은 자신의 욕망 대신 아버지의 욕망을 선택한다. 설씨 노인은 자신의 욕망을 완성하기 위해 딸을 이용했던 소리꾼 유봉과 동일한 인물이다. 소리꾼 유봉과 설씨 노인 모두 딸을 거세시킴으로써 남성 욕망을 완성하는 / 유지하는 아비다. 이토록 완고했던 노인은 아들 손자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차별을 받는다고 하소연하자 결국에는 창씨개명에 동의하게 된다. 그러니까 딸의 욕망은 교모한 수법으로 거세할 수는 있었으나 차마 아들(의 손자)의 욕망을 거세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임권택 영화는 늘 이런 식이지만 놀랍게도 그의 영화를 수식하는 것은 휴머니즘이다.  이런 게 휴머니즘이라면 차라리 똥 묻은 개가 낫다. 아버지를 계승하려는 욕망은 재벌 2,3,4,5세가 갖춰야 할 품격이지 예술가가 갖춰야 할 덕목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예술은 아버지 세대를 죽여야 빛날 수 있는 후레자식이다. 착한 아들은 필요 없어 ! 한국 영화가 살기 위해서는 임권택이라는 견고한 성역을 부숴야 한다.  정성일 평론가가 습관적으로 내뱉은 상투어 중 하나가 " 윤리학 "  이다. 그런 그에게 나는 그 윤리학의 이름으로 임권택 영화를 진지하게 다시 분석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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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2-21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중권 팟캐스트에서 정성일이 임비어천가 부르는 거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영화를 즐기는 편도 아니고 임권택 감독 작품은 제대로 본 게 하나도 없는데, 저같은 무지렁이로 하여금, 와 임권택이란 사람 잘 모르지만 어쨌든 열라 위대한 사람인가봉가, 하게 만드는 데가 있었지요.

과연 왜 훈민정음 만들고 처음 찍을 글로 용비어천가를 골랐는지 깨닫게 하는 대목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2-21 13:34   좋아요 0 | URL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성일 키드인데
정성일이 워낙 막강한 힘을 발휘하다 보니 그 키드들은 무조건 임권택 영화를 극찬하더군요.
미학 어쩌구저쩌구 할 때에는... 정말 저는

천년학과 달빛 길어오르기가 좋은 영화인지 진짜 묻고 싶습니다..

수다맨 2017-12-22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솔직히 윤리라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애용하는 평론가들(문학계에서는 신형철)을 딱히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큰 개념에 기대어 자기 글의 지적 우위와 도덕적 성격ㅡ나 똑똑한 인간이다, 나 윤리 의식 대단한 인간이다 등등ㅡ을 높이려는 평론가의 작의가 너무 빤하게 보여서입니다...
한 감독의 작품 세계를 지지하고 옹호하기 위해서 난해한 개념과 진부한 숙어를 호출하는 평론가들의 글쓰기는 이제 거부감이 드네요. 게다가 그 감독이 추구해온 성과란 사실 공장장의 오래된 짬밥과 대량 생산물에 불과해 보이는데, 여기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오버라고 봅니다.

2017-12-22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2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