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이에서 본 지네 


 


1 파나 마나 한 파나마 모자 장수

파나마 모자를 원가로 파는 파나마 모자 장수가 있다. 예를 들면 파나마 모자를 십 원에 사서 십 원에 되파는 것이다. 고로 파나마 모자 장수는 파나 마나 한 파나마 모자를 파는 것이다. 묻지 않을 수 없다. 파나 마나 한 파나마 모자를파냐고 !  같은 이유로 하나 마나 한 소리를 거창하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하나 마나 한 소리를 왜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대부분의 한국 에세이는 하나 마나 한 소리를 싸구려 감성으로 둔갑시켜 유통한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 류'의 에세이 말이다. 김난도, 혜민, 이기주 에세이가 대표적이다. 독자들은 이런 책에서 " 위로 " 를 받지만 나는 기분이 " 아래 " 로 곤두박질친다.  깊이가 있는 글감은 깊이 팔수록 맑고 영롱한 샘물이 샘솟지만 감성 이기주의 에세이(미안해요, 이기주 씨이이 ~)는 파나 마나 우물이 아니라 똥물이다. 몇 번 선택 실수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책 표지만 봐도 대충 돌아가는 꼴을 알 수 있다. 주먹 불끈 쥐고 외치게 된다. 내가 다시는 이따구 책에서 우물 파나 마라...                                결론은 이렇다 : 파나 마나 한 모자는 안 파는 게 상책이고 파나 마나 한 우물은 애초부터 삽질 안 하는 게 상책이다.






2 차마 웃을 뻔하였다

김영민의 << 차마, 깨칠 뻔하였다 >> 는 선문답 같은 글이 많아서 문장 읽기가 녹록치 않다.  그래서 바짝 긴장하며 읽다가 싱겁게 끝나는 글이 있어서 종종 차마 웃을 뻔하였다.  뭐야, 싱겁기는. 독특한 유머 감각의 소유자 김영민 선생 !  그런가 하면 산문이라 하기에는 리듬을 타는 운문에 가까운 글도 있다. 예를 들면,



누가 더 많이 아픈지 경쟁한다. 인간이다. 누가 더 억울한지 다툰다. 인간이다. 상대를 이해할 수 있어야 경쟁이 되지만 내 '생각' 속에서 이미 상대는 보이지 않는다. 인간이다. 너와 내가 맞물린 자리를 알아챌 때에야 비로소 화해이지만 그 자리는 늘 한 발 늦다. 인간이다. 상대의 마음이 깨어졌기에 나도 내 깨어진 마음을 붙안고 찾아올 수 있었을 뿐이다. 인간이다. '그리고(and)', 는, 이미 늦은 것이다. 인간이다


- 이미 늦은 것, 인간이다 205쪽


야금야금 읽기에 좋은 에세이'다.








3 가장 가까이에서 본 지네

옛날에 군대에서 참호를 파느라 삽질을 하다가 점심 먹고 풀밭에 누워 까무룩 잠을 잔 적이 있다. 이리저리 뒹굴다 보니 풀밭에 얼굴을 파묻고 잔 모양이었다.  코끝에서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서 눈을 떴다.  한 마리의 지네가 더듬이로 내 코끝을 더듬거리며 지나는 것이 아닌가 !  가장 가까이에서 본 지네였다.  아, 놀라워라. 무서워서 오줌을 쌀 뻔했다.  몸은 경직되고 호흡이 빨라졌다. 내가 움직이면 지네가 덜컥 물 것 같아서 옴짝달싹도 못한 채 지네가 지나가기를 숨죽여 지켜보아야 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오금이 저리긴 하나 돌이켜보면 그 감정은 혐오가 아니라 경외'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때 내 감정은 팜 파탈의 첫 등장을 지켜보는 느와르 영화 속 탐정과 같은 심정이었다. 그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는 탐정처럼 말이다. 대체로 독이 있는 것은 아름답다. 지네가 더듬이로 나를 건들고 지나갔을 때, 그러니까 내 얼굴을 건방지게 더듬이로 희롱하고 농락했을 때, 내 몸은 지네의 에로티시즘으로 인하여 발기되어 온몸이 마비가 되었던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점은 본질적으로 마비이자 맹목이다. 콩깍지가 씌이고, 호흡이 가빠지며, 넋 놓고 가만히 바라보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독(毒)을 읽는다. 상대에게 끌린다는 것은 그 대상이 독을 품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  숲길을 걷다가 독을 품은 뱀을 만나게 될 때의 신체 반응은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의 신체 반응과 동일하다. 어찌 할 줄 몰라 넋 놓고 바라보며, 때론 멀리 도망치고 싶지만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아름다운 대상에게 매혹된다. 그것이 사랑이다. 내게도 그런 여자가 있었다. 내가 사랑한 것은 그녀의 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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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깨칠 뻔하였다
김영민 지음 / 늘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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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는 주어의 복심(腹心)이다 :





박근혜와 건달-들


 

 

 

 

김영민이라는 철학자를 알게 된 계기는 << 집중과 영혼 >> 이라는 철학 에세이 책'에서 비롯되었다. 쉽지 않은 문체였으나 만연체와 문어체 사이에서 종종 눈에 띄는 시적 언어'가 예사롭지 않았다. 한국의 철학자들이 대부분 서양 철학을 번역하고 소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김영민은 소중한 철학자이다.

나는 오랫동안 오고가는입말에서 중심부에 해당되는, 부사(구)로 강조한 " 술어의 세계 " 를 믿지 않았다. 얼핏 보기에 동사와 형용사는 주어의 욕망처럼 보이지만, 진실은 항상 번역이 필요한 영역이다. 진실은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한다(진실을 폭로하는 이는 천사가 아니라 주로 악마다). 오히려 진실은 중심부가 아닌 눈에 잘 띄지 않는 주변부에 놓여 있다. 김영민은 이렇게 말한다. " 부사는 주어의 복심이라는 게 내 오랜 지론이다. 포이어바흐나 니시다 키타로라면 술어는 주어의 진실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의 진실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엉뚱한 자리에 숨어 있기도 한다(92쪽, 부사는 주어의 복심이다 中) ". 그 사람의 욕망을 읽으려면 부사의 쓰임을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부사는 주어의 니드 the need(s)이자 이드 the id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근혜'이다. 인간이랍시고 내뱉은 말투를 듣다 보면 이 짐승은 부사를 지나치게 남발하며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박근혜 왈, " 그러니까 그게 너무 많은 음모가 좌파 진영에서 저를 이렇게 매우 막 공격하는 게 과연 이게 옳은가, 그리고 ...." ).  분열된 부사구, 바로 그것이 박근혜의 정신세계인 것이다. 부사를 자주 사용한다는 것은 술어가 빈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무들이 자신의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내듯이, 박근혜는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술부가 사실은 황폐한 내부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넓은 부사(구)를 남발한 것이다.

서평의 고수이신 파란여우 님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김영민은 " 자본주의와 창의적으로 불화하기 위해서 채택한 생활양식으로 1일1식을 실천하고 있다 " 고 한다. 파란여우 님의 글을 인용하면   :  1일 1식은 생산과 소비까지 자본주의 체계가 점령한 현실에서 개인이 실천 가능한 저항 양식이다. “하루 세끼 식사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강요한 생활”이라는 언급으로 보아 폭주하는 산업 성장을 비롯해 노동착취를 가리킨 느낌이 든다. 1일 1식을 “정치적 행위”라고 규정한 이 인터뷰에는 《보행》에 나온 “ 여자의 말을 배우기 ”와 《차마, 깨칠 뻔하였다》에 나온 “여자라는 장소”, “남자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와 겹친다(파란여우, 욕심 없는 의욕- 글쓰기와 칼쓰기에서 발췌).

" 하루 세끼 식사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강요한 생활 " 이란 언급은 내가 " 삼시 세 끼라는 신화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허구 " 라는 대목과 일맥상통한다. 현대인에게 세 끼는 치명적인 < 독 > 이다.  하물며 좋은 아내의 기준을 아침밥을 차려주는 여자'로 규정하는 한국 남자 거개가 건달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남자는 거개가 건달이다. 표정도 건달이고 눈매도 건달이고 매무새도 건달이다. 앉아 있어도 건달이고, 서서 걸어도 건달이다. 밥을 먹을 때도 건달이고, 악수를 할 때도 건달이고, 모르는 여자를 대할 때도 건달이고, 심지어 발제를 하거나 강의를 할 때도 건달이다. 핸드폰을 놀리거나 담배를 피울 때는 더더욱 건달이니, 술을 먹을 때에는 살펴 말할 건덕지조차 없다(한국남자들, 혹은 건달들 112쪽)



김영민은 한국 남자에 대해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추기 위해 " 건달 " 이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내 식대로 말하자면 " 밤꽃 향기 작렬하는 불알후드 새끼 " 인 셈이다. 깡패를 순화한 건달이 내뱉는 입말의 특징 중 하나는 과장된 부사(구)의 남발이다. 이들에게 과거는 왕년(往年)이 아니라 왕년(王年)이다. 그들은 " 허벌나게 " 허세가 심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염불을 외운다. 주여, 밤꽃 향기 작렬하는 저 불알후드 새끼들의 허벌나게 찬란했던 허세를 제발 잠재우게 하소서 !





+

한국 남자 거개가 건달이 된 이유는 대한민국이 근대성을 거치지 않고 전근대에서 곧바로 현대로 직행했다는 데 있다. 근대성의 핵심은 에티켓 교육에 있다. 이 과정이 생략되다 보니 한국 남성은 manner를 모른다. 건달의 탄생이다. 이처럼 건달이 창궐하다 보니 지랄이 흉년이었던 적은 이승만 정권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다. 지랄은 항상 풍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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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30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30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8-11-30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글 보고 마음이 들썩들썩 했는데, 곰발님이 쐐기를 박으셨네요. 장바구니.....

곰곰생각하는발 2018-12-03 14:50   좋아요 0 | URL
댓글이 늦었씁니다. 쉬운 책은 아니에요. 선문답집 같기도 하고 종종 유머도 있고... 종합적입니다. 함 읽어보세요..ㅎㅎ

수다맨 2018-12-02 14: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김훈은 인터뷰에서 문학으로 분류되는 글(소설, 시 등)보다는 기록문(조선왕조실록, 난중일기 등)을 더 좋아한다고 밝힌 적이 있었지요. 제가 보기에는 그의 문체는 명확한 사실만을 전달해야 하는 기자 경력과, 부사/형용사를 가능한 배제하고 단순한 주술 구조로 문장을 쓰려는 과거 무신/사관들의 작법에 빚진 바가 큽니다.
저는 이문구 같은 (판소리체와 타령조를 염두에 두고 문장을 쓰는) 예외적인 작가를 제외하면, 부사를 많이 쓰는 작가일수록 인식의 빈곤을 장식적인 언어로 감추려 든다는 혐의를 가질 때가 많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2-03 14:5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읽은 기억이 나는군요.
기록문이죠. 특유의 만연체가 맛이 나기란 쉽지 않죠. 그런 점에서 이문구의 문체는 훌륭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마, 깨칠 뻔하였다
김영민 지음 / 늘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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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의 리뷰를 미리 쓰다  :

 


부사는 주어의 복심이다









1 사람만이 절망이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_ 라는 흔해빠진 감성을 접할 때마다( : 대표적인 작품이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 』이다. 읽을 때마다 이기주의 등짝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현실은 시궁창인데 작가에게는 동화 속 세상인가 보다. 나는 입만 열었다 하면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외치는 놈에게서 단 한 번도 희망의 불씨를 읽은 적이 없다 ) 감성팔이 소녀의 재림을 보게 된다. 이런, 망할 !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인간 중심 사고에 세뇌된 말종이다. 인간은 결코 희망이 될 수 없으며 대안이 될 수도 없다. 김영민의 신간 << 차마, 깨칠 뻔하였다 >> 를 구입한 이유는 목차의 제목이 흥미진진했다는 데 있다. 목차 - 제목'이 이토록 내 흥미를 끈 경우는 흔치 않다. 읽지 않은 책을 읽은 척하며 허세를 부리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목차 제목만 훑는 것이다.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내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책의 리뷰를 쓸 수 있는 히마리도 바로 여기에 있다. 몇몇 제목이 흥미를 끈다. 6장의 제목이 < 사람만이 절망이다 > 이다. 날카로운 통찰이다.



2

내 취향은 이렇다  :  정상적인 체위보다는 변태적 체위가 좋고 A급 영화보다는 B급 영화가 좋다. 그리고 이음매 없는 매끈한 표면보다는 꿰매거나 묶인 흔적이 있는 울퉁불퉁한 표면이 좋다. 토드 브라우닝 감독이 연출한 << 프릭스 >> 를 보았다. 1931년도 작품인데 볼 때마다 놀라게 된다. 마지막 20분은 현대 영화가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아우라가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기형인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기형인 분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형인을 배우로 캐스팅했다. 샴쌍둥이, 소두증 세 자매, 양팔이 없는 장애인은 물론이고 양팔만 있는 이도 등장하며 양팔과 함께 두 다리조차 없는 이도 등장한다. 영화가 진행되다 보면 볼거리로 여겨졌던 인물들이 주체적 지위를 획득하게 되고, 반대로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이들이 마음속 괴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영화는 비주류가 주류를 응징하는, 비정상성이 정상성을 살해하는 전복적 서사로 진행된다. 감독은 당신에게 묻는다.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은 정상적인 부류와 신체는 건강하지만 마음은 사악한 부류 중에서 누가 더 기형적인가 ?  이 영화는 불온한 상상력으로 인해 30년 동안 상영 금지 목록에 오른 기록을 남겼다.  사악한 마음을 응징하는 것으로 끝이 나니 권선징악인 셈이지만 주류 사회는 비주류의 욕망이 불쾌했던 모양이다. 권선징악을 불온하다고 여기는 검열 사회야말로 불온한 상상력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보통 대화를 나눌 때 술어(동사,형용사)의 쓰임이 그 사람의 마음이라고 믿는다. 싫다, 밉다, 좋다 따위가 솔직한 마음의 표현이라고 믿지만 사실 그 사람의 진짜 복심은 부사'에 숨겨져 있다.  술어는 대부분 위장에 가깝다.  부사는 주어의 복심이다. 이 문장 또한 김영민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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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9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29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8-11-29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하루에 한끼 먹고 부터는 통풍이 사라졌어요. 역시 그동안 참 많이도 처먹었더란 말이죠..여전히 요즘도 1일1식이라서 좋더군요..사람들이 하루 한끼만 먹으니 다들 빠짐없이 한마디씩 하더군요..어떻게 그렇게 먹고 사냐고..먹는 낙없이 재미없잖아라고 하더군요..사실 먹는게 얼마나 고역인지 ㅎㅎㅎㅎㅎ(그러게요..곰발님 가까이 계셨더라면 참 죽이 잘 맞게 씹어 돌렸을텐데...아쉽습니다.ㅎ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8-11-29 17:44   좋아요 1 | URL
오 !!!!!!!!!!!!!!!


저도 요즘은 굶는 게 얼마나 힘든가 보다는 이제는 먹는 게 얼마나 힘든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쩔 수 없이 제 의도와는 상관없이 식사를 해야 할 때가 있는데
아, 불편해요. 1식이 일상이 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는 식사는 정말 고역입니다....


통풍 사라지셨더니 축하드립니다. 치어스 ~~~~~~

곰곰생각하는발 2018-11-29 17:53   좋아요 1 | URL
일반화할 수는 없으나
통풍도 가만 보면 과식이 주범이란 생각이 듭니다. 통풍 치료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소식으로의 전환이죠.
소식은 느리게 흐르는 혈액 순환을 빠르게 만드는 효과가 있거든요...

2018-11-30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30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선생님, 달이 참 아름답습니다 :











달이 참 밝네요














                                                                                                        작가 나쓰메 소세끼는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 작가'다. 1900년 메이지 유신  시대, 그는 국가 장학생 자격으로 영국에 유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한 엘리트 지식인으로 작가, 평론가, 영문학 교수였으며 당대 최고의 영문학 번역가였다.

그는 번역 작업 중 < i love you > 라는, 전 세계 누구나 해석 가능한 문장 앞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 달이 참 밝네요 > . 달이 참 밝네요 _ 라는 뜬금없는 고백은 묘하게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_ 라는 직설적 고백보다 애틋하고 아따, 분홍분홍하다. 이처럼 멜로드라마에서는 서둘러 말하는 것보다는 에둘러 말할 때 정서적 울림이 크다. 에둘러 말하는 마음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소세키가 20세기 말 인간이었다면 달이 참 밝네요 _ 라는 문장 대신 어쩌면 라멘 먹고 갈래요  _ 라고 번역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내일 바다 보러 갈래요 ? 

그래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른 오브제로 환유하는 방식 중에서 으뜸 of 으뜸 오브제는 < 달 > 일 것이다. 그의 대표작 << 마음 >> 은 선생님(男)과 학생(子)의 멜랑꼴리한 마음을 다룬다. 학생이 선생에게 느끼는 매력이 지적 탐구에 대한 호기심인지, 아니면 스승에 대한 단순한 선망인지, 혹은 동성애인지가 불분명하다. 독자 대부분은 일본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두어 이 멜랑꼴리를 앎에 대한 동경 내지 스승에 대한 좋은 감정 따위로 치부했지만, 나는 단언하건대 소설 속 화자 < 나 > 가 느끼는 스승에 대한 감정은 동성애'다. 학생은 망설이다가 스승에게 이렇게 말한다. " 선생님, 달이 참 아름답습니다. "

영화 << 첨밀밀 >> 에서 가수 등려군이 부른 영화 주제곡 << 월량대표아적심 >> 에서도 사랑하는 마음을 달에 비유한다. " 웨량따이뱌오워디씬 月亮代表我的心 : 달빛이 내 마음을 비추었어요 ! " 등려군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_ 라는 말 대신 월량대표아적심이라고 말한다. < 달 > 이라는 오브제가 사랑을 환유하는 대상으로 사랑을 받는 것은 < 거리 > 때문이다,  인간이 갈 수 없는 가장 먼 나라는 달나라'이니까.  나는 멜로드라마의 핵심은 거리'라고 생각한다. 가장 가까이 있던 당신이 가장 먼 곳으로 떠날 때 슬픔은 완성되고, 가장 먼 곳으로 떠났던 당신이 가장 가까이에 서 있을 때 사랑은 다시 완성된다.  

종로 3가에 사는 여자와 남자가 사랑을 나누다가 남자가 을지로 3가로 떠나면서 헤어지자고 이별을 고할 때, 그 누가 절절한 마음으로 슬퍼하랴. 그렇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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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7-31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가 작년 이맘때쯤 이 책 읽으면서, 선생님과 나 사이의 감정을 동성애라고 우길 수 있는 단서들을 세어 보자는 마음으로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였는데 거의 60 문장 정도에 붙였드랬습니다.

써야지 써야지 하고 있었는데, 곰발님한테 당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8-01 16:01   좋아요 0 | URL
제가 개인적으로 소세키 문학을 좋아합니다.
뭐가 이 양반 소설에는 엘리트적 찌질함을 포획하는 힘이 있어요.
읽다 보면... 인간들 쪼존하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전 이 소설을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반대 버전이라느 생각이 듭니다..

라로 2018-08-01 0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달달달한 글이라니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8-01 16:00   좋아요 0 | URL
그래서 멜로는 달달한가 봅니다.

레삭매냐 2018-08-01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세키가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이긴 한데
정작 일본에서는 잘 읽히지 않는 작가라고
하더라구요.

한국 여행을 하면서 쓴 여행기인지 산문
이 있다고 하는데 궁금해지네요.

아무래도 식민지 체험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8-02 15:15   좋아요 1 | URL
고전에 대한 그 유명한 정의가 있잖습니까.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읽지 않은 책...

하긴 우리도 홍길동전이나 춘향전 제대로 읽은 이가 있었겠습니까..ㅎㅎㅎ
 
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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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스 크 바 의   신 사   : 



 

킹스맨의 이토록 미니멀한 라이프 스타일



 

정오까지 잠을 잔 다음에 누군가를 시켜 쟁반에 받친 아침 식사를 가져오는 것. 약속 시간 직전에 약속을 취소해버리는 것. 한 파티장의 문 앞에 마차를 대기시킴으로써 얘기만 하면 즉시 다른 파티장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 젊었을 때 결혼을 피하고 아이 갖기를 미루는 것. 이런 것들이야말로 최고의 편리함이에요. 안나. 한때 난 그 모든 걸 누렸었죠. 그런데 결국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불편함이었어요(555쪽)

 

- 모스크바의 신사 中, 에이모 토올스​ 

 






 

 





에이모 토올스 장편소설, 모스크바의 신사. 2016, 2017, 2018년 가장 많은 미국 독자를 사로잡은 책. << 뉴욕타임즈 >> 58주 베스트셀러, 버럭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추천 도서, 아마존 굿리즈 선정 올해의 책 !  책을 두른 띠지 광고 문고'다. 띠지 특성을 고려하면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하라. 하지만 이 소설을 끝까지 다 읽고 나면 띠지의 과장 광고를 어느 정도 신뢰하게 된다( 경고 : 새끈빠끈하며 하드바디적인 프리즌 브레이크를 상상한다면 번지수가 틀렸다).

소설은 우아하고 정중하며 깊이 있다. 읽던 책을 잠시 덮고 나서 강원도 소녀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녀 이름은 오제미 씨'다. 재미네죠. 재미있나요 ?  재미있다고요 ?!  오, 재미있네.                    그렇다. 이 소설은 재미도 있다. 독자 여러분을 위해 잠시 소설 속 주인공 이름 정도는 소개하고 가자. 이분이 누구시냐면 " 성 안드레이 훈장 수훈자이며 경마 클럽 회원이고 사냥의 명인이시며 <<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 ? >> 라는 프롤레타리아를 고무 찬양한 위대한 시집을 낸 시인인 일렉산드로 일리치 로스토프 러시아 백작 " 이다. 굳이 백작이라는 작위와 칭호를 뺀다 해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통성명만으로도 그의 신분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수식이 길다는 것은 향기 나는 족속이란 뜻이다. " 통성명 합시다. 나, 황만근이오 ! " 밑도 끝도 없이 잘라낸, 시적 간결함을 유지한 이 통성명에 비하면 로스토프 백작의 통성명은 얼마나 화려하고 고상한가. 하지만 볼셰비키는 혁명에 성공했고 왕의 목은 땅에 떨어졌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인민이 주인인 세상이 열린 것이다. 로스토프 백작은 그가 머물고 있던 메트로폴 호텔에 갇히게 되는 < 호텔 연금 종신형 선고 > 를 받는다. " ...... 살려는 줄게. " 이런 뉘앙스'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 절대 착각하지 마시오. 만약 당신이 한 걸음이라도 메트로폴 호텔 바깥으로 나간다면 당신은 총살될 테니까. "  

소설은 그 후( 1922 ~ 1954 ) 를 다룬다. 화려한 호텔에 갇힌 종신 연금 생활자의 수감 기록인 셈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성 안드레이 훈장 수훈자이시며 경마 클럽 회원이시고 사냥의 명인인 일렉산드로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이 감쪽같이 호텔을 탈출하는 탈옥극 서사를 예상하지만 " 성안드레이훈장수훈자이시며경마클럽회원이시고사냥의명인이며프롤레타리아를고무찬양한위대한시집을낸시인이신 일렉산드로일리치로스토프백작 " 은 예상을 뒤집고 이 몰락에 대해 순응한다. 만연체를 사용하던 작가가 말년에 간결체를 받아들이듯이,  스위트룸에서 쫒겨나 좁디좁은 다락방으로 옮긴 백작은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물건 몇 개만 챙긴다.

그는 이 호텔에서 대부분을 " 웨이터 로스토프 씨 " 로 생활한다.  화려한 수식을 버리고 시적 간결함을 획득한 것이다. 이 과정이 이 소설을 흥미롭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 소설에는 매우 상징적인 행위가 등장한다. 로스토프 백작은 몽테뉴의 수상록을 탁자 수평을 맞추기 위한 받침대 따위로 사용한다. 이 행위가 상징하는 것은 명백하다. 로스토프 백작은 " 몽테뉴적 인간 " 이 아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는 몽테뉴 대신 톨스토이 책을 받침대로 사용한다. 그리고는 << 수상록 >> 을 다시 읽는다. 그것은 로스토프 씨가 이제는 몽테뉴적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테뉴는 우리 시대 최초의 동시대인'이다. 인간은 몽테뉴 이전과 몽테뉴 이후로 나뉜다. 전자가 중세적 인간이라면 후자는 현대의 정신적 인간이다. << 수상록 >> 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몽테뉴가 "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 " 을 창조(혹은 발명)한 최초의 유럽인'이라는 사실이다. 주인공은 귀족에서 인민으로, 그리고 백작에서 웨이터로 항로를 변경했으나 그는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버리지는 않는다. 에티켓(매너)은 한때 귀족이었던 그의 훌륭한 무기'가 되었다.   Manners maketh man.  매너가 신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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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7-01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읽어 보려고 금요일 오밤중에 서둘러서
주문장을 날렸지만, 당일배송 90% 확률이라던
책배송은 터미널 어딘가에서 오후 1시 36분에 멈춰
버렸습니다. 책을 주말에 못 받아 보게 된다는 사실
에 빡쳐 램프의 요정에 항의를 해볼까도 싶었지만,
애먼 택배 기사님을 잡을까봐 그만 두었습니다.

그렇게 가는 거죠 뭐. 당일배송 따위는 기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순 거짓말이니깐요. 그런 거짓말
에 속은 사람은 빙신이지요.

그리하여 대신 하는 수 없이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를 읽었는데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나저나 로스토프 백작의 연금과 호의호식은 히
틀러의 졸개들이 볼셰비키들의 적도를 위협하던
1941년 겨울에도 여전히 유효했는지 궁금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7-01 23:56   좋아요 1 | URL
네에. 역사소설에 방점을 둔 영화는 아니기에 간단하게 묘사하고 지나갑니다.
소설 속에서 친구가 말하죠. 자네는 호텔에 갇힌 것을 두고 비극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밖은 지옥이고 여기가 천국이라네.. 뭐, 이런 뉘앙스로 말을 합니다.
이 호텔은 지금도 모스크바에 있다고 합니다..
호텔에 생각보다 굉장히 커요...

배송이 늦어지는 까닭은 아마도 날씨 때문이겠죠. 책은 역시 주말에 도착해야 제맛인데 말입니다..ㅎㅎㅎ

라로 2018-07-02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럭 오바마~~ㅎㅎㅎㅎㅎㅎㅎㅎㅎ 하튼 곰발님은 기발하셔!!ㅎㅎㅎㅎ
저도 이책 읽었는데 번역이 되었나봐요???
전 좋았어요. 이정도면 곰발님도 좋았다는 거죠???(꼭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단순녀;;;;)

곰곰생각하는발 2018-07-02 13:45   좋아요 0 | URL
네에. 저는 좋았습니다. 그나저나 라로 님 저의 깨알 같은 위트를 정확히 아시는군요.. ㅎㅎㅎ

2018-07-02 1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8-07-02 14:14   좋아요 0 | URL
당근이죠~~~제가 자칭 곰발님 왕팬인데 그정도는 되어야죵~~~.^^;;;

2018-07-02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