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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한정판 겨울 에디션, 양장) - 아직 행복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ㅣ 곰돌이 푸 시리즈
곰돌이 푸 원작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채찍은 가고 당근은 오라 !
한때 < 채찍 > 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원조는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였다. 진양조장단으로 걸쭉한 욕자배기를 뽑으면 듣는 이는 배가 부르는지라. 국밥 한 그릇 먹었을 뿐인데 왠지 두 그릇을 먹은 것처럼 포만감이 들었다. 이명박도 이 국밥집에서 욕을 먹으며 따순 국밥을 먹었다. 이 쥐새끼 가튼 놈아, 배 터지게 먹구 부지런히 일혀. 나랏일 하려믄 많이 먹어야 혀 ~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그였지만 자신보다 한 살 많은 국밥집 할머니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꾸역꾸역 국밥을 말아먹을 만큼 강한 승부욕의 소유자여서 훗날 대한민국 대통령에 오른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지금은 국가를 말아먹어서 국밥 대신 콩밥을 먹고 있다지, 아마 ? 지금 여러분들은 믿지 못하겠지만 : 이처럼 멘토의 독설이 정직하고 솔직한 충고라는 상품으로 유통이 된 적이 있었다. 김미경은 언니의 독설이라는 프레임으로 파이트머니를 벌었던 이였다. 꽤 장사가 잘 되었는지 " 언니의 독설 스페셜 에디션 양장본 " 까지 출간한 것을 보면 욕먹으면서도 즐거워하는 인간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맙소사, 스페셜 에디션 양장본으로라도 간직하고 싶은 럭셔리한 욕의 품격은 무엇일까 ? 김난도도 김미경'과 같은 부류였다. 그도 아프니깐 청춘이라는 책으로 파이트머니(떼돈)를 벌었다. 박근혜도 김난도의 채찍이 탐이 났는지 청년 실업 타계를 위한 정부의 해법으로 아프리카 같은 오지에 가서 삶을 개척하라는 " 아프리카 청춘론 " 을 펼치기도 했다. 그녀도 이명박처럼 마음은 콩밭에 있었던 모양이다. 훗날, 콩밭 매는 아낙네가 되어 국밥 대신 국가를 말아먹었다. 어쩌면 이명박과 박근혜는 지금이야말로 화양연화인지도 모른다. 아파야 찬란한 청춘이니깐 말이다. 회춘하셨네, 회춘하셨어 ! 그런데 그 많던 채찍들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 자리를 < 당근 > 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 위로받고 싶은 날의 보노보노 >> , << 울고 싶은 날의 보노보노 >> , << 상처 하나 위로 둘 >> , << 너라는 위로 >> , << 작지만 따뜻한 위로 >> , << 아래보다는 위로 >> , << 캡슐 유산균 위로 진격 ! >> 기타 등등. 2018년에 " 위로 " 라는 키워드로 걸려든 신간이 무수히 쏟아졌다. 위로'라는 단어가 출판계의 떠오르는 신성이 되다 보니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 를 출간한 출판사도 내심 기대를 거는 모양이다. 이 위로라는 당근의 최상위를 점령한 책이 바로 <<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 이다. 출판사가 메인 카피로 자신있게 선보인 "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 라는 문장은 마치 " 술을 마시며 운전했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 는 변명과도 맥락이 통한다. 몇몇 문장을 나열하면,
1 이제 한계라고 느끼는 순간이 한 번 더 도전할 때에요
2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3 멋지지 않으면 어떤가요 ? 눈앞의 행복을 잡아요
4 이미 선택한 것에 미련을 두지 마세요
5 다른 사람의 기분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마세요
6 가끔은 좋아하는 것에 흠뻑 빠져보세요
이런 달달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는 반응하게 된다. 곰돌이 푸는 왜 이러는 걸까요 ? 하나 마나 한 소리를 위로라고 하고 있으니 아래로 숨고 싶은 마음이 든다. 채찍을 팔던 장사치가 이제는 당근을 팔고 있다. 채찍을 팔 때에는 당근은 아편이라고 공격하던 이가 이제는 당근을 팔면서 채찍이 아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당근이 다 팔리고 나면 다시 채찍을 팔 것이다. 유행이란 돌고 도는 것이니까. 출판사는 죄 없다, 책을 파는 게 일인 출판사가 책 팔아먹은 게 죄는 아니다. 문제는 독자다. 매일 행복하지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_ 라는 달달한 위로에 위로받는 이는 조삼모사의 원숭이'이다. 매일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한 일은 매일 없어. 이런 쪼다쉬, 그 말은 당신을 위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조롱하는 거라고. 당근과 같은 말은 채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