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프로젝트 -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5
토마 마티외 지음, 맹슬기 옮김, 권김현영 외 / 푸른지식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현 가능한 환각의 출현 :

 

 

 

 

 

 

 

 

 

​악어 이야기

 

                                             

                                                                                                                   훌륭한 이야기에는 항상 " 악어 " 가 등장한다. 만약에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책에서 악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버려도 좋다. 그런 책은 재미없어 !

악어가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유명한 재담'이다)  :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고 불평하는 여성 환자가 있다.  여자는 악어가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말한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에게 그것은 단지 환상에 불과하며 침대 밑에는 악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와, 악어 있다니까요 ~    왜, 내 말을 안 믿냐고요 ~    나, 이대 나온 여자라고요 ~   하지만 의사는 도시에서 악어 출현은 " 실현 불가능한 환각 " 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무시한다.  두 번째 상담에서도 그 환자는 여전히 똑같은 불평을 하지만 남자는 지난번 진단과 같은 처방을 내린다. 와, 악어 없다니까요 ~    왜, 내 말을 안 믿냐고요 ~     나, 정신과 의사라고요 ~               

세 번째 상담이 있던 날,  약속했던 환자가 나타나지 않자 의사는 환자의 망상이 사라졌다며 기뻐한다.  만약에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난다면 이 이야기는 매우 지루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며칠 뒤, 의사는 환자 친구인 k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환자의 안부를 묻는다. k가 말한다.  그 악어한테 잡아먹힌 그 사람 말하는 겁니까 ?  침대 밑에서 악어가 살았다고 하더군요.                         이 이야기에서 < 악어 > 는 현실 공동체 질서 안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환각'에 불과했지만,  현실 속에서 " 실현된 환각 " 으로 나타나면서 서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처럼 악어는 스토리텔링1)에서 매우 중요한 오브제이다.

이명박 스토리와 박근혜 스토리가 매우 흥미진진했던 까닭도 인간의 눈에서 악어의 눈물이 흐른다는 데 있다. 아, 아아아아아악어의 눈물이라니. 그것은 싱크대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맥주가 쏟아지는 것과 같은 꼴이다. 쇼킹하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며 흘린 박근혜의 눈물을 보았을 때 우리 모두는 당황했었다. 어, 어어어어어어...... 닭이 아니라 악어였어 ???!!!!  이처럼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항상 악어 한 마리 정도는 비장의 카드로 숨겨놓아야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어느 하드보일드 작가는 글을 쓰다가 막히면 권총을 등장시키면 된다고 충고했다.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글을 쓰다가 막힌다 싶으면 악어 한 마리를 등장시키라구.

그런데 악어가 한 마리가 아니라 악어가 떼로 등장하는 만화가 있다.   바로 << 악어 프로젝트 >> 라는 프랑스 만화'이다.  이 책에서 남자는 모두 초록색 악어로 등장한다.   악어 떼가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사는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성차별과 성폭력을 그리고 있는데 양성 평등 국가로 알려진 프랑스에서도 이 문제만큼은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초록색 악어들은 호시탐탐 여자들을 잡아먹을 궁리만 한다.  " 남자는 모두 다 늑대(악어) " 라는 말은 세계 어디를 가나 만국공통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특히, 남성 입장에서 보면 모든 남성을 포식자인 초록색 악어로 묘사해서 읽는 내내 불편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잠재적 가해자가 된다는 것은 언제나 불편한 느낌이 드니까.


작가 토마 마티외는 " 악어라는 이미지를 통해 남성 우월주의,  성차별주의,  성적 고정관념,  남성의 성적 욕망,  그리고 실제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거리에서 마주친 남성에게 느끼는 두려움 같은 것을 드러내고 싶었다 " 고 한다.  남성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초록색 악어는 " 실현되지 않은 NON·REAL(IZE) " 환영에 불과하지만,  여성에게 있어서 초록색 악어는 " 실현된 환각 NON·ILLUSION(ED)" 으로써 라캉의 실재 the Real  2)에 가깝다. < 초록색 악어 > 는 남자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여자에게는 존재하는 공포의 대상이다. 리얼리티 없는 리얼이다.  이처럼 the Real(실재계)은  the reality와는 다른 개념으로 실제(實際)도 아니고 실재(實在)도 아니요, 실체(實體)도 아니다. 

그것은 the Nothing에 접근한 공허(空虛, the void)에 가깝고, 슬라보예 지젝이 언급한 히치코크의 얼룩이자 오점에 해당된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가졌다면, 남성인 당신은 지난날에 대하여 반성할 기회가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이고,  읽는 내내 불쾌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면 당신은 a son of a bitch crocodile'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말머리에서 소개한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는 여자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이 익살스러운 재담에서 환자를 여성으로, 그리고 의사를 남성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  그리고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신과 의사는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는 여자의 말을 왜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무의미한 진술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   세상의 절반이 악어인데 말이다.  혹시...... 그도 또 다른 악어 한 마리는 아니었을까 ■


​                             


1)      최근에 개봉한 영화 << 도어락 >> 은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고 말하는 히스테릭한 여자 이야기의 변주'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 원룸 안에 누군가 있다고 말하는 경민(공효진 분)은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고 말하는 여자와 동일인이다. 그리고 경민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이 형사(김성오 분)는 정신과 의사'이다. 또한,  혼자 사는 여성만을 노리는 범인은 악어'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성 - 들'은 예외 없이 모두 경민의 히스테릭한 반응에 대하여 " 실현 불가능한 환각 " 이라고 말하지만 < 실현 불가능한 환각 > 은 < 실현 가능한 환각 > 이 되어 관객 앞에 출현한다.


2)   " 라캉의 실재(the Real)는 현실(the reality)이 아니다. 라캉의 실재는 상징계의 밖에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현실 밖에 있는, 현실이 아닌, 현실 너머의 어떤 것이다. 라캉의 실재는 경험적 실재와 구별되고, 초감각적 세계의 추상적 실재와도 구별되는 개념이다. 경험적 실재란 우리 주변의 모든 구체적 물건들을 뜻하고, 추상적 실재란 ‘자유’, ‘정의’ 같은 추상 명사들을 뜻한다. 그러나 라캉의 실재는 이것들 중 그 어떤 것과도 상관이 없다.상징계가 언어적 세계라면 실재계는 언어를 초월하는 언어 밖의 세계이다. 우리의 현실은 언어로 된 세계인데, 실재는 언어로 매개되지 않는 세계이다. 그것은 언어에 포함되지 않고, 언어 외부에, 또는 주체 외부에 있는 성(性)과 죽음의 차원이다. 결국 실재계는 불안의 대상이다. 그 세계 앞에 서면 모든 단어들이 얼어붙고 모든 범주들이 추락하는, 그런 불안의 대상이다.  상징화를 거부하므로 즉 도저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으므로 실재계는 표상이 불가능하다. 상상할 수 없고, 상징계 안에 통합시킬 수도 없어서, 우리는 도저히 그 곳에 도달할 수가 없다. 현실 속에서는 결코 제시될 수 없지만 우리가 현실과 밀착해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다. 현실 끝에 한계가 있고, 그 한계 너머로 속이 텅 비어 있는 심연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실재다. 실재는 우리가 결코 접근할 수 없는 끔찍한 한계, 즉 그것을 건드리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한계이며, 동시에 그 너머의 공간이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를 생각해 보자. 연인 유리디체를 지하세계에서 구출해 나오는 오르페우스에게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가 내려졌다. 돌아서서 뒤에 따라오는 연인을 바라보는 순간 연인이 죽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 중간에 오르페우스는 참지 못하고 뒤돌아보았고, 연인 유리디체는 죽었다. 실재의 은유로 이것만큼 적당한 것이 없다. 실재에 가까이 가는 것은 치명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현실과 실재를 가르는 한계는 근본적 불가능성의 표지이다. 우리는 그것을 결코 넘을 수 없고, 거기에 가까이 가기만 해도 죽는다. 그리고 그 너머는 금지되어 있다. 실재는 그러니까 실체도 없고, 물질성도 없다. 일체의 상징화를 거부하므로 그 어떤 말로도 표상할 수 없다. 그러나 굳이 표현하자면 그것은 공허(空虛, the void)이다. 실재는 텅 비어 있는 빈 공간이다 "

ㅡ 박정자 칼럼에서 부분 인용 발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더 더 씨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 3
강동수 지음 / 호밀밭 / 2018년 9월
평점 :
품절


 

 


 

                                    

 

엉 덩 이 와   히 아 신 스   :




 

 



문학적 영감에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꽃, 김춘추



 


 


          학을 가르치던 교수가 A 제자를 꽃에 비유하며 A에게 카카오 메시지 500건과 문자 45건을 보냈다가 학교로부터 교원 품위 훼손에 따른 징계로 정직 3개월 결정을 내린 사건이 있었다. 교수가 지속적으로 보낸 문자가 성희롱에 해당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해당 교수는 극렬히 반발하며 문학적 영감(시 창작 수업)일 뿐이라고 행정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근엄한 목소리로 영감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_ 라는 지청구를 날렸다.

이 늙은 영감은 A에게 가장 좋아하는 꽃( : 그녀는 히아신스라고 답했다)이 무엇이냐고 물은 후에 < 히아신스 > 라는 제목의 시를 보낸다. " 엉덩이 속에 다 녹아들어가 있다 / 그녀는 엉덩이가 전부다 / 엉덩이로 생각하고 엉덩이로 꿈을 꾼다 / 엉덩이로 말을 하고 / 엉덩이로 사랑할 줄 아는 히아신스 "  히아신스를 보며 여자의 엉덩이가 떠올라 몸이 달아오른, 이 문학적 영감 머릿속에는 온통 엉덩이, 엉덩이, 엉덩이, 엉덩이. 오오오오오 !  엉덩이가 자리잡고 있다. 그에게 엉덩이는 뮤즈인 셈이다. 이 얼마나 아스트랄한 문학의 변증법적 상상력인가 ! 웃지 않을 수 없어서 웃는다. 그런가 하면 평창올림픽 때 전문 인력-들이 여성 자원봉사자에게 " 꽃은 물을 줘야 한다 " 며 성희롱을 일삼아서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이처럼 꽃은 꼰대들의 문학적 영감'이다. 하지만 꼰대들에게 있어서 꽃보다 더 자극적인 성적 오브제는 과일이다. 속된 말로 남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 여자를 따먹다 " 에서 여자는 과일로 환유된다. 강동수 작가의 단편소설집 << 언더 더 씨 >>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단편 < 언더 더 씨 > 는 세월호 희생자(女)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소설이다. 문제가 되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 내 젖가슴처럼 단단하고 탱탱한 과육에 앞니를 박아 넣으면 입속으로 흘러들던 새큼하고 달콤한 즙앱 " 누가 봐도 이 문장에 사용된 단어들은 성적 암시에 중요하게 쓰이는 단골 낱말들이다.

< 단단하다 > 는 형용사는 발기를, < 탱탱하다 > 는 젊은 피부를, < 과육 > 은 성욕의 식욕화를 환유하는 방식으로, < 앞니를 박아 넣었다 > 는 굳이 내가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은유이다. 그리고 " 박아 넣은 ㅡ " 결과 " 새큼하고 달콤한 즙액 ㅡ" 이 흘러나왔다는 것은 화장실 벽낙서에 자주 등장하는 남성 판타지의 전형이다. 이 문장을 읽은 많은 이들이 세월호 희생자를 성적 대상화했다며 반발하자 작가는 일부분만 발췌해서 전체 맥락을 훼손한다며 화를 냈지만 전체 문맥을 살펴도 달라질 것은 없다.


“ 지금쯤 땅위에선 자두가 한창일 텐데. 엄마와 함께 갔던 대형마트 과일 코너의 커다란 소쿠리에 수북이 담겨있던 검붉은 자두를 떠올리자 갑자기 입속에서 침이 괸다. 신과일을 유난히 좋아하는 내 성화에 엄마는 눈을 흘기면서도 박스째로 자동차 트렁크에 실어오곤 했는데...... 내 젖가슴처럼 단단하고 탱탱한 과육에 앞니를 박아 넣으면 입속으로 흘러들던 새큼하고 달큼한 즙액.”

 

나는 작가가 음흉한 생각으로 이 문장을 썼을 리는 만무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부장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학습된, 고착된 여성성(성적 대상화)이 은연 중에 드러난 결과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그는 이 논란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내며 변명하기에 앞서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남성 욕망에 대한 반성부터 해야 했다. 남성 작가라면 남성 화자'가 1인칭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 심리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 더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여성 화자가 1인칭 화자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  그것은 17살 여성 < 나 > 와 남성 작가인 늙은 나를 접선(빙의)시켜야 하는 난이도 높은 기술인데 말이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작가는 1인칭 < 나 > 로 빙의하는데 실패한다.  여자라면 어느 누구도 자두를 먹으면서 내 젖가슴이 탱탱한 자두와 같다는 생각을 하며 앞니를 박아 넣지는 않는다.  같은 이유로 남자라면 어느 누구도 바나나 껍질을 벗기면서 포경인 자신의 성기를 상상하며 맛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만약에 미성년인 여자가 크기가 작은 자두를 자신의 젖과 동일시하면서 성욕을 식욕으로 변주하거나 미성년인 남자가 바나나를 자신의 좆과 동일시하면서 성욕을 식욕으로 변주했다면 그 심리적 기저에는 동성애적 성적 취향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에서 자두에 대한 묘사는 어디까지나 남성 중심 시각에서 바라본 여성 신체에 대한 상상력일 뿐이다.  

여성을 꽃이나 과일에 비유하는 사람은 대부분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여성은 여성 스스로 자신을 꽃이나 과일에 비유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소설에서의 1인칭 < 나 > 는 외피는 소녀이지만 내피는 문학적 영감의 늙은 목소리일 뿐이다. 이 소설은 소녀 목소리를 흉내 내는 늙은 남자 목소리'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진혼 굿을 차용한 애도라기보다는 오히려 핍진성이 제거된 불가능한 성대 모사에 가깝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완벽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실패한 소설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다맨 2019-01-16 1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것처럼 오십대 후반의 작가가 (고도의 관찰력과 감응력 없이) 십대 소녀의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는 데서 이 소설의 문학적/윤리적인 실패는 예정되어 있었다고 봅니다. 작가 본인과 바라보는 대상에 대해서 솔직함과 진실성을 갖출 줄 알았다면, 이런 소설이 나오지는 않았겠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1-16 16:21   좋아요 0 | URL
남성이 여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저 오만함이 이런 비극을 낳았죠..ㅎㅎ
 

 


 

 

 

 

 

 

 

 

 

 

 

 

 

​                                           

  

썩어도 준치와 집나간 며느리   :




 



밥그릇 크기, 실화냐 ?







이 스틸은 이봉래 감독이 1962년에 연출한 << 월급쟁이 >>  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오른쪽에는  젊은 엄앵란이 밥그릇 위에 손을 얹고 행복하게 웃고 있다.  밥그릇 크기가 국을 담는 그릇보다 2배 이상 크다.  그 옆에 앉은 꼬마의 밥그릇도 성인 밥그릇과 같다. 현재 식당에서 파는 공깃밥 그릇보다 최소 3배 이상은 크다(양으로 따지자면 어림잡아 4배 이상 많은 것 같다). 그러니까 1960년대 사람들의 한 끼는 현대인이 하루에 세 끼 먹는 밥의 총량보다 많았다.  밥그릇 크기, 실화냐 ?   라고 묻는 이가 있다면 5,60년대 한국 영화를 감상하는 일을 유일한 낙으로 사는 내가 그 질문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응, 실화야 !

이 그릇은 영화용 소품이 아니라 실제로 5,60년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밥그릇이라고 한다. 소국에서 벌어지는 대식의 풍모는 전설이 되어서 서양 사람들이 조선인을 두고 놀라울 정도로 밥을 엄청나게 많이 먹는 민족이라고 서술한 기록도 있다.  이 스틸 장면은 중요한 정보 두 가지를 현대인에게 알려준다. 첫째, 탄수화물 중심 식사는 비만의 주범이 아니다. 둘째, 탄수화물 중심 식사는 성인병의 주범이 아니다. 5,60년대는 한국인이 가장 날씬했던 시대로 고혈압과 당뇨와 같은 성인병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식품 기업의 스폰서를 받아 가며 대중에게 가짜 정보나 흘리는 사이비 식품 영양학자들이 " 비만의 주범은 탄수화물 " 이라는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저탄고지가 다이어트 식단으로 유통되면서 고탄이 비만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탄수화물은 죄가 없다(물론 지방도 죄가 없으며 저탄고지 식단도 죄가 없다). 탄수화물이 죄인이라면 한 끼 식사로 현대 한국인의 세 끼보다 많은 밥을 먹어치웠던 5,60년대 한국인은 비만과 각종 성인병으로 고생했어야 한다. 저탄고지 식단이 다이어트에 효과적인 이유는 맛이 없다는 데 있다. 설탕과 양념을 최대한 제한한 음식이 바로 저탄고지 음식이다. 우리는 < 저탄고지 > 가 제한 없이 마음껏 먹어도 좋은 마법의 다이어트 식단이라고 믿고 있지만 저탄고지 식단이 체중을 감량시키는 원인은 저탄고지 음식 맛이 일반 음식보다 맛이 없어서 식사량이 줄어든 탓이다.

그리고 가공식품과 외식 음식은 저탄고지 식단이 아니기에 자연스럽게 외식과 간식을 거의 하지 않게 된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하루 전체 식사량이 대폭 줄어든다. 매우 클래식한 결론이어서 실망할 수도 있는데 비만의 주범은 탄수화물도 아니고 지방도 아니다. 단순하게 말해서 현대인은 5,60년대 한국인보다 더 많이 먹기 때문에 살이 찌는 것이다.  밥그릇의 크기가 작아졌을 뿐 하루 식사량의 총량이 5,60년대보다 크가 증가하였다. 그렇다면 과식을 부르는 요소는 무엇일까 ?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매우 클래식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음식이 맛있으니까 !  물을 과음하는 이는 없다. 물이 맛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향미와 조미와 감미료를 탄 청량음료는 얼마든지 과음할 수 있다.

이처럼 향미와 조미와 그리고 감미료의 발달이 음식 맛을 폭발적으로 증진시켰다. 여기에 더해 고춧가루와 고추장이 착색료 역할을 담당하니 시각적으로도 풍부해진다. 떡볶이가 맛없다는 황교익의 주장은 거짓말이다. 떡볶이는 맛있는 음식이다. 하지만 정크푸드'이다. 음식으로써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황교익은 단짠 음식(설탕과 소금)이 비만과 성인병의 주범이라고 주장하지만 진짜 범인은 < 맛 > 이다.  맛있는 음식이 비만을 부른다.  그런 점에서 맛집을 찾아 소개하고 맛을 예찬하는 황교익의 태도는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황교익이 " 말이 맛을 만든다 " 고 주장하는 것은 경청할 만하다.  전어와 준치는 종종 같은 말로도 사용된다. 하지만 전어는 청어목 청어과이고 준치는 청어목 준치과이다.

맛도 비슷하고 생김새도 비슷해서 전어를 준치라고도 하고 준치를 전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내가 전어와 준치를 예로 든 이유는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프레임 때문이다. 준치는 " 썩어도 준치 " 라는 이름으로 유통되었고 전어는 " 집 나간 며느리 " 로 유통되었다.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프레임은 2000년대 만들어진 전략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어는 실제로 맛있는 생선이 아니다. 옛날에는 맛없는 생선이어서 동물 사료로 사용되었던 매우 값싼 생선이었다. 그랬던 전어가 집 나간 며느리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지자 환장할 맛으로 둔갑하였다. 반면, 준치의 프레임 전략은 실패하게 된다.  준치 하면 " 썩어도 ~ " 라는 나쁜 어감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준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만하다. 준치나 전어나 맛은 서로 대동소이한데 말이다.

이처럼 맛을 좌우하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말이다. 포방터 돈가스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는 돈가스가 된 것도 맛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백종원의 말이 큰 작용을 한 것이다. 맛집은 대부분 외진 곳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그토록 맛있다는 포방터 돈가스가 외진 곳이기에 장사가 안된다는 서사는 쉽게 납득할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  권위를 부여받은 누군가가 맛을 보장하는 순간 맛없던 음식도 맛있는 음식으로 등극하게 된다.  맛을 믿는 것은 어리석다. 환상적인 맛은 대부분 환상이다. 맛은 환상이다.


■  덧대기

저탄고지식을 하기도 했고 자연식물식을 하기도 했으나 어느 것 하나 완벽하게 완수하지 못한 채 지금은 일일일식'을 실천하고 있다. 그래도 저탄고지식과 자연식물식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자연식물식이 저탄고지식보다는 자연스러운 식단이란 생각이 든다(저탄고지식에서 " 고지식 " 이란 표현에 마음에 걸린다, 농담이다). 하지만 자연식물식과 일일일식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일일일식을 선택할 것이다.  일일일식은 혁명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9-01-08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탄고지 음식은 설탕과 양념을 최대한 배제한 요리법이다.
만약에 이 조리 방식으로 ( 설탕과 양념을 최대한 배체한 채로 )
일반 음식을 만들어서 제한 없이 먹을 수 있다고 했을 때,
저탄고지와 같은 체중 감량 효과가 발생할까 ?

100% 동일한 체중감량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ㅡ 왜, 맛이 없으니까 ?
물을 과식하는 인간은 없다.
ㅡ 왜 맛이 없으니까.

맹물에 감미료, 향미료, 조미료가 투하되는 순간 상황은 역전된다.
청량음료는 맛있는 맹물이다.
맛이 보강되면
한때 나처럼 코카콜라 중독이 되어서
코카콜라을 너무 많이 마셔서 코카콜라 쇼크를 경험하게 되는( 토하게 되는.. )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수다맨 2019-01-09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포방터 돈가스에 가서 ‘어렵사리‘ 식사를 하고 온 지인이 한 명 있습니다. 그 친구 말로는 분명히 맛이 좋지만, ‘이거 안 먹는 사람은 인생 후회한다‘라고 할 정도의 맛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주방장의 능력보다는 백종원의 권위에 더 신뢰를 부여하는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1-09 11:0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과연 줄 서서 먹을 만큼 맛있는 것인지 그냥 그럭저럭 맛있는 것인지...
줄 서서 먹을 만큼 맛있는 돈가스라면 이미 맛집으로 등극했겠지요.
맛집은 대부분 대 외진 곳에 있잖아요... 백종원의 바이럴 마케팅이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한정판 겨울 에디션, 양장) - 아직 행복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곰돌이 푸 시리즈
곰돌이 푸 원작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채찍은 가고 당근은 오라 !











                                                                                                                 한때 < 채찍 > 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원조는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였다. 진양조장단으로 걸쭉한 욕자배기를 뽑으면 듣는 이는 배가 부르는지라. 국밥 한 그릇 먹었을 뿐인데 왠지 두 그릇을 먹은 것처럼 포만감이 들었다. 이명박도 이 국밥집에서 욕을 먹으며 따순 국밥을 먹었다. 이 쥐새끼 가튼 놈아, 배 터지게 먹구 부지런히 일혀. 나랏일 하려믄 많이 먹어야 혀 ~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그였지만 자신보다 한 살 많은 국밥집 할머니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꾸역꾸역 국밥을 말아먹을 만큼 강한 승부욕의 소유자여서 훗날 대한민국 대통령에 오른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지금은 국가를 말아먹어서 국밥 대신 콩밥을 먹고 있다지, 아마 ?  지금 여러분들은 믿지 못하겠지만 : 이처럼 멘토의 독설이 정직하고 솔직한 충고라는 상품으로 유통이 된 적이 있었다. 김미경은 언니의 독설이라는 프레임으로 파이트머니를 벌었던 이였다. 꽤 장사가 잘 되었는지 " 언니의 독설 스페셜 에디션 양장본 " 까지 출간한 것을 보면 욕먹으면서도 즐거워하는 인간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맙소사, 스페셜 에디션 양장본으로라도 간직하고 싶은 럭셔리한 욕의 품격은 무엇일까 ?  김난도도 김미경'과 같은 부류였다. 그도 아프니깐 청춘이라는 책으로 파이트머니(떼돈)를 벌었다. 박근혜도 김난도의 채찍이 탐이 났는지 청년 실업 타계를 위한 정부의 해법으로 아프리카 같은 오지에 가서 삶을 개척하라는 " 아프리카 청춘론 " 을 펼치기도 했다.  그녀도 이명박처럼 마음은 콩밭에 있었던 모양이다. 훗날, 콩밭 매는 아낙네가 되어 국밥 대신 국가를 말아먹었다. 어쩌면 이명박과 박근혜는 지금이야말로 화양연화인지도 모른다. 아파야 찬란한 청춘이니깐 말이다. 회춘하셨네, 회춘하셨어 ! 그런데 그 많던 채찍들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 자리를 < 당근 > 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 위로받고 싶은 날의 보노보노 >> , << 울고 싶은 날의 보노보노 >> , << 상처 하나 위로 둘 >> , << 너라는 위로 >> , << 작지만 따뜻한 위로 >> , << 아래보다는 위로 >> , << 캡슐 유산균 위로 진격 ! >> 기타 등등. 2018년에 " 위로 " 라는 키워드로 걸려든 신간이 무수히 쏟아졌다. 위로'라는 단어가 출판계의 떠오르는 신성이 되다 보니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 를 출간한 출판사도 내심 기대를 거는 모양이다. 이 위로라는 당근의 최상위를 점령한 책이 바로 <<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 이다. 출판사가 메인 카피로 자신있게 선보인 "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 라는 문장은 마치 " 술을 마시며 운전했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 는 변명과도 맥락이 통한다. 몇몇 문장을 나열하면,



1 이제 한계라고 느끼는 순간이 한 번 더 도전할 때에요

2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3 멋지지 않으면 어떤가요 ? 눈앞의 행복을 잡아요

4 이미 선택한 것에 미련을 두지 마세요

5 다른 사람의 기분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마세요

6 가끔은 좋아하는 것에 흠뻑 빠져보세요



 


이런 달달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는 반응하게 된다. 곰돌이 푸는 왜 이러는 걸까요 ?  하나 마나 한 소리를 위로라고 하고 있으니 아래로 숨고 싶은 마음이 든다.  채찍을 팔던 장사치가 이제는 당근을 팔고 있다. 채찍을 팔 때에는 당근은 아편이라고 공격하던 이가 이제는 당근을 팔면서 채찍이 아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당근이 다 팔리고 나면 다시 채찍을 팔 것이다. 유행이란 돌고 도는 것이니까. 출판사는 죄 없다, 책을 파는 게 일인 출판사가 책 팔아먹은 게 죄는 아니다. 문제는 독자다. 매일 행복하지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_ 라는 달달한 위로에 위로받는 이는 조삼모사의 원숭이'이다. 매일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한 일은 매일 없어. 이런 쪼다쉬, 그 말은 당신을 위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조롱하는 거라고. 당근과 같은 말은 채찍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9-01-08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캡슐 유산균 위로 진격!>이라는 책까지 나왔군요, 라고 댓글창에 써놨다가 혹시 하는 마음에 검색해봤더니
심지어 <아래보다는 위로>도 없는 책이었네요 ㅋㅋㅋㅋㅋㅋㅋ

낚였어, 곰발님 스타일 알면서 또 낚였어......

곰곰생각하는발 2019-01-08 15:5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이해해주세요..

2019-01-08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1-08 15:54   좋아요 1 | URL
제가 독해력이 딸려서 그런가 ? 다음 문장을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역대급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해 괴로운가요? 가끔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마음껏 즐겨보세요. 그것이 바로 건강한 삶의 비결이에요.˝


하고 싶은 걸 못해서 괴롭다는데... 이 책에서는 그 해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마음껏 즐기라네요.
아니 ˝ 좋아하는 일 ˝ 이 곧 ˝ 하고 싶은 것 ˝ 이잖아요.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해서 괴롭다 하니 하고 싶은 걸 하라네요 ? 이게 도대체 말이야 소야 ? 논리야 유리야 ?
 


 

 

 

 

 

 

 

 

 

 

 

 

영화 네 편








1 성난 황소. 2018  ★★


                                예술 영화는 인물을 집중 탐구하는 영역이어서 풀타임 내내 등장인물을 분석하는 데 할애한다. 그리고 예술 영화를 즐겨 보는 시네필도 기꺼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만 오락 영화인 경우는 다르다. 오락영화에서 지루함은 재앙이다. 오락영화를 소비하는 관객이 지루함을 견딜 수 있는 한계는 영화 시작한 지 러닝타임 20분 내외'로 그 이후부터는 집중력이 저하되어 몰입에 방해가 된다고 한다. 이 시간대는 감독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관객에게 소개하는 시간이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  관객 여러분에게 소만근을 소개합니다. 소고기 한 근도 아니고 반 근도 아닌, 자그마치 소고기 만 근이요. 나이는 28세, 철근도 씹어삼킬 남근의 소유자입죠.                       이 기초 설정이 탄탄해야 후반부에 휘몰아칠 질풍노도에 관객은 격렬하게 호응하게 된다. 문제는 관객의 몰입도'이다.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는 상영 시간 20분 즈음에 관객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괴수 영화 장르 같은 경우 이 시간대에 괴물 꼬리를 살짝 보여주는 식이다. 지루해서 입이 댓 발 나온 관객은 꼬리를 보는 순간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 이 시스템을 알고 나면 마동석이라는 배우는 매우 효과적인 배우이다. 마동석은 그 자체로 하나의 텍스트'여서 감독이 굳이 마동석이라는 인물을 지루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마동석은 하나의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다양한 영화에 출연해도 마동석은 마동석이다. 우리는 그가 화가 나면 헐크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성난 황소, 2018 >> 의 마동석은 << 범죄도시 >> 의 그 마동석이고, << 부라더 >> , << 챔피언 >> , << 원더풀 고스트 >> , << 동네 사람들 >> 의 그 마동석이다. 문제는 엇비슷한 이미지 소모에 따른 식상함이다. 바로 그 지점이 마동석의 딜레마'이다. 굵은 팔뚝만 가지고 장사하기에는 이제 밑천이 다 드러난 상태가 아닌가 싶다.


 

​- 


2 도어락, 2018 


                            < 방 > 이 개인이 거처할 수 있는 실내라는 점을 감안하면 < 원룸 ONE-ROOM  > 은 1인 주거 공간의 마지노선'이다. 원룸은 자신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이보다 후퇴한 주거 형태가 < 쪽방 > 이다.  쪽방은 ROOM 를 1/2, 1/3, 1/4, 1/5, 1/6......1/13으로 쪼갠 형태로 고시원, 쪽방촌, 달방, 고시텔이 이에 속한다.  영화 << 도어락 >> 은 원룸에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만한, 일상의 공포를 설득력 있게 제공한다. 독거의 최소 주거 공간 형태가 ONE - ROOM 이라는 점은 주인공 조경민(공효진 분)이 계약직 직원이라는 설정과 맞물리면서 주거 빈곤에 따른 현대 여성의 사회적 불안을 다루는데 성공한다. 한 칸짜리 방에 사는 여자는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이곳에서 물러나면 갈 곳은 방을 쪼갠 쪽방이다. 이 영화가 리얼리티를 가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살인마가 사는 공간으로 설정된 공가(空家)가 영화 중후반부터 주요 무대로 등장하면서 이 영화는 톤 앤 매너가 갑자기 와르르 무너진다. 무대가 원룸 ONE-ROOM 에서 공가(空家) EMPTY HOUSE 로 후퇴하면서 일상생활의 공포는 난도질 스플래터 장르의 판타지로 추락한다. 특히, 공가 장면들은 영화 << 목격자 >> 와 << 샤이닝 >> 냄새가 너무 나서 신선함마저 없다.




​-

3 완벽한 타인, 2018 ★★★


                                       영화 << 완벽한 타인 >> 은 핸드폰이 요물이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곤경에 처하게 된다. 영화는 이 곤경과 불안을 코미디로 처리했지만 장르를 스릴러로 바꿔도 꽤 흥미진진한 영화가 탄생했을 것이다.


-


4 크라잉게임, 1993 ★★★★★

                                        인간 관계가 어려운 지점은 내 본성과 네 본성이 대립할 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천성과 네 천성이 대립할 때 발생하게 된다.  본성이 < 거시적 서사 > 라면 천성은 < 미시적 서사 > 에 가까워서, 천성은 본성에 비하면 쩨쩨하고 사소한 성질머리'에 속한다. 그렇기에 뭔가 거창하고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문학은 주로 인간의 천성을 다루지 않고 인간의 본성을 다룬다. 예를 들면 " 게으른 성격 " 은 본성이 아니라 그 사람의 " 사소한 천성 " 이다. 일상에서 관계의 어려움은 주로 이 쩨쩨하고 사소한 성질머리-들이 서로 대립할 때 발생한다. 남녀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남성의 천성과 여성의 천성이 다르기에 대립하게 된다. 여기어 덧대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개성과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면 더더욱 그렇다. 천성이란 교정으로 고쳐지는 것이 아니어서 성격과는 다른 성격이 천성이다. 천성은 유별난 것이다. 그 사람의 천성이 유별나지 않다면 그것은 천성이 아니라 본성에 가깝다. 영화 << 크라잉게임 >> 에 등장하는 전갈과 개구리 이야기는 서로 다른 천성을 가진 전갈과 개구리가 등장한다. 헤엄일 칠 줄 모르는 전갈이 개구리 등에 엎혀 강을 건너는 도중에 개구리에게 독을 쏜다. 강 한가운데서 벌어진 일이어서 개구리는 독 때문에 죽고 전갈은 물에 빠져 죽는다. 개구리가 전갈에게 묻는다. WHY ? 그러자 전갈이 죽어가면서 대답한다. IT'S MY NATUER !  천성은 그 사람의 개성이면서 동시에 타인을 향한 독이기도 하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전갈일까, 개구리일까 ?  내 천성이 누구에게는 독이 되지 않았을까 ?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밤이다. 그렇고 그런 한국 영화 100편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이 좋다. 이 영화는 걸작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레삭매냐 2019-01-01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치광이 최강희 평론가라는 분은 완.타.를
작년 최고의 영화로 꼽더군요.

다만 그 영화 역시 우리의 오리지널이 아니
라, 외국영화의 리메이크인지라...

그나저나 외국 걸작 영화들의 번역 제목을
차용한 영화들의 범람이 그다지 마음에 들
지 않습니다.

마틴 스코시즈와 드니로의 <성난 황소>가
전혀 상관 없는 마동석 배우의 영화로 거듭
나는 건 쫌...

곰곰생각하는발 2019-01-01 16:14   좋아요 0 | URL
일종의 소품인 영화인데
한국 영화가 워낙 질이 떨어지다 보니
최강희는 원탑이라 자신있게 말하는군요..

마틴의 < 성난 황소 > 는 정말 걸작이죠.
저의 톱10안에 도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나와같다면 2019-01-01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Why? It‘s in my nature
죽음. 소멸의 공포마저도 이겨버리는 본성.
너무나 슬픈 대사

전갈의 천성을 알면서도 등에 태울 수 밖에 없었던 개구리

곰곰생각하는발 2019-01-01 19:29   좋아요 1 | URL
보고 나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죠.
저 위의 < 완타 > 도 재미있긴 한데.. 보고 나면 남는 건 없어요..

syo 2019-01-01 1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19년 첫 영화를 <크라잉게임>으로 해야겠구나 싶은데요!! 영화에는 진짜 소양이 없어놔서, 올해는 곰발님 픽 덕 좀 보겠슴니다...

곰발님 새해 복 많이 받으소서!!

곰곰생각하는발 2019-01-01 20:53   좋아요 1 | URL
이 영화 좀 오래된 영화인데 생각할거리가 매우 많은 영화입니다.
충격적 반전도 있고 꽤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