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는 참 외롭다


 

                             ■  프롤로그    :    冊 을 읽다가 따분해지면 책을 덮고 국어 사전이나 한자 사전 따위를 펼친다. 손 닿는 대로 펼쳐서 나온 페이지'를 몇 장 읽는다. 사전 읽는 맛이 의외로 쏠쏠하다. 내가 펼친 부분은 << 찰카당 >> 이라는 단어로 시작되는 페이지'였다. 찰카당, 찰칵, 찰통, 찰흙.......... 내 관심을 끈 단어는 < 참 - > 이라는 접두사'였다. 명사 앞에 붙어서 " ① 진짜, 진실하고 올바른 ② 품질이 우수한 ③ 먹을 수 있는 " 이라는 뜻을 더한다. 그러니까 < 똘배 > 보다는 < 참배 > 가 맛이 좋고, 빛 좋은 < 개살구 > 보다는 < 참살구 > 가 맛이 좋다는 소리'다. 이처럼 동식물과 관련이 있는 명사 앞에 < 참- > 이 붙으면 식용이 가능할 뿐더라 맛도 더 좋다는 뜻이니

동식물 이름만 제대로 알면 산 속에서 길을 잃어도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킬리만자로의 아범은 알아두라고. 그리고  갈참나무, 굴참나무, 물참나무, 졸참나무 따위를 통틀어서 참나무'라고 하는데 나무 앞에 < 참- > 이 붙은 데에는 이 나무들이 도토리 열매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 참외 >> 에서 < 외 > 가 오이의 준말이니 맛이 좋은 으뜸 오이'라는 뜻일까 ?  오이를 뜻하는 한자 瓜  : 오이 과   가 참외'를 뜻하기도 하니 오이와 참외'는 한배'에서 태어났으나 아비가 다른 형제들이다( 수박, 오이, 참외는 모두 박목-박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달달한 오이가 참외요, 밍밍한 참외가 오이'인 셈이다. 사전을 찾아 보니 참외와 첨과    甛瓜 : 달 첨, 오이 과 '   는 같은 말이다.

< 첨과 > 가 세월이 흘러 < 참외 > 가 된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오이, 참외, 수박 따위는 모두 박색한 박 씨의 뱃속에서 나온 한통속'이다. 모양새도 그렇고, 색깔도 그렇고, 맛도 서로 사뭇 달라서 오이와 참외가 한통속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나는 허탈한 감상에 빠져들었다. 피붙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세상에 홀로 버려진 참외 씨'가 우연히 부잣집 오이 여자를 만나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지지만 알고 보니 오누이 사이. 하지만 연을 끊기에는 사랑은 깊어가고 !  참외 남자는 이 사실을 숨긴 채 오이 여자'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그녀 곁을 떠난다. 하지만 교통 사고로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진 남자. 그가 병실에서 눈을 뜨자 그의 곁에는 오이 아가씨가 병간호를 하고 있다. 

오이 아가씨가 병상에 누운 참외 씨'에게 다정하게 묻는다. " 참외 씨....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요 ? " 참외 씨는 오이 아가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한다. " 누구떼여 ? " 절규하는 여자. 누,누누누누누누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 남자는 교통 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이다.  여자 떠나면 그렁그렁 맺힌 남자의 눈물 C.U 참외 의 참회의 눈물. THE END라는 타이틀이 떠오르면 F.O          참외와 오이의 러브스토리에 관심이 생겨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연히 김서령 산문 << 참외는 참 외롭다 >> 라는 책을 발견했다. " 참외는 참... 외롭다라.... " 읽지 않은 책이라 내용을 알 수는 없으나 다행히 그녀가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내용이 있어서 옮겨본다. 분량이 길지만 꽤 흥미롭다.


 


참외는 참 외롭다


 참외의 ‘외’는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외아들·외딴집 할 때의 그 ‘외’다. 영어로도 참외는 ‘me-lone’이다. “Are you lonesome tonight?” 할 때의 그 ‘lone’이니 역시 ‘혼자’라는 뜻이다. 한자의 외로울 고(孤)자에도 참외 하나(瓜)가 들어앉아 이쪽을 말갛게 건너다본다. 우리말과 영어, 한자를 만든 이들이 함께 모여 회의를 한 것도 아니련만 ‘혼자’라는 의미에 똑같이 ‘외’라는 과일을 사용한 건 희한한 일이다. ‘슬기’가 ‘슬기-롭다’가 되고 ‘지혜’가 ‘지혜-롭다’가 되는 우리말 구조를 따져보면 ‘외-롭다’는 ‘외’로부터 나온 게 확실하다. 그들은 왜 ‘외로움’이란 의미를 밭에 돋아 홀로 열매가 굵어가는 저 보잘것없는 초본식물로부터 만들어 냈을까.

경상도 안동 말을 쓰던 엄마는 오이를 ‘물외’라고 부르고 참외는 그냥 ‘외’라고 불렀다. 오이는 영어로 ‘cucumber’이고 한자로 황과(黃瓜)며, 수박은 ‘water-melon’이고 수과(水瓜)다. 오이와 수박도 외롭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박목-박과에 속한 식물들이지만 다른 성질들이 우세해서 세 언어 공히 같은 이름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참외만은 ‘참’이라고 진짜임을 강조하는 모자까지 척 쓰고 ‘외로움’의 절대강자가 되어 수천 년을(아마도!) 버텨오고 있다. 참외가 단순히 단물 가득한 과일이 아니고 ‘외로움’을 표상하게 된 비밀을 나는 다석 유영모 선생의 제자인 박영호 선생에게 처음 들었다.

외는 마디 하나에 꽃이 하나씩만 핀다. 다른 식물은 대개 쌍으로 꽃이 피어 열매도 쌍으로 달리는데 박과 식물만은 홀로 꽃피니 열매도 하나뿐이다. 사과도 배도 대추도 감도 곁의 놈에게 의지하건만 외만은 아니다. 홀로 피어야 열매가 둥글게 자랄 수 있다.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몸이 굵어질 수 있다. 몸 안에 단맛을 충분히 저장할 수 있다. 외가 홀로 비와 어둠과 바람과 땡볕을 견디고 또 누리는 것은 그 길만이 안에서 익어가는 성숙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외’의 진정한 의미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턴가 일상 언어생활에서 이 오래되고 의연한 말을 사용하지 않게 됐다. 뱉어놓고 보면 외롭다는 말에는 뭔지 얄팍하고 덜덜하고 끈적대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 결핍감과 의존성이 번번이 민망했다.

 

 말이란 동시대인의 철학과 정서가 고스란히 담기는 그릇이다. 원래 홀로 꽃피어 열매 맺는 ‘외’를 보고 ‘외-롭다’란 말을 만들었을 시대의 ‘외로움’이란 당당하게 홀로섬을 선택한다는 의미가 강했을 것이다. ‘~롭다’란 말 앞에 대개 긍정적인 추상명사가 붙는 걸로 유추해도 그렇고 참외가 익어가는 양을 오랜 세월 관찰해서 언어를 만들어 냈을 고대인의 심리를 짐작해 봐도 그렇다. 현대의 외로움엔 원래의 의미 대신 상당량의 ‘당분’과 ‘센티멘털’이 가미돼 버렸다. 시장과 매스미디어는 외로움을 와인이나 초콜릿, 커피 같은 기호식품에 끼워 팔고 드라마와 가요는 외로움을 달달하게 과잉포장해서 흔하고 값싸게 유통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우린 진정한 외로움을 잃어버렸다.

외꽃이 하나인 건 원래 둘이었던 것의 결핍이 아니라 홀로됨을 기꺼이 선택해 성숙에 이르기 위함이다. 주변 젊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다석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 자신이 죽는 날을 미리 잡아놓고 하루를 일생처럼 사는 일일일생주의(一日一生主義)를 견결하게 실천했던 다석 같은 선각을 잃어버렸으니 참 외로움도 사라질 수밖에! 다석은 사모하던 남강 이승훈 선생만큼만 살기로 작정해 자신의 수명을 66세로 정했었다. 존경과 사모와 사숙이 희귀해진 세상에도 여전히 참외는 익는다. 자라는 아이의 함량을 키우려면, 남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고요하게 종심소욕(從心所欲)하려면 홀로 견디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철역 입구에 세운 트럭 안에 아무렇게나 뒹구는 참외의 참 외로움을 본받아야 한다. 온 세상에 땡볕이 가득하다. 그렇지만 이건 내게 단물을 들이기 위한 시간일 뿐!



김서령 오래된 이야기 연구소 대표.    중앙일보 2012-08-02 전문

 

 



 

김서령은 참외'에서 < 외 > 를 lonely 로 접근한다. 그러니까 " 외롭다 " 는 " 외(참외)답다 " 와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참외는 참 외로운 존재로구나. 누군가는 안도현의 << 스며 드는 것 >> 이란 시'를 읽고 나서 더 이상 간장 게장 요리'를 먹을 수 없다 했는데, 또 누군가는 달달한 참외 한 조각을 입에 물며 쓸쓸해 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기한 일이다. 사람은 외롭다며 더 많은 관계망 속으로 빠져들지만 그럴 수록 사람은 더욱 소외된다. 어쩌면 인간이란 외꽃으로 태어나 비와 어둠과 바람과 땡볕을 견뎌야 하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외롭다는 것,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  에필로그  :   병상에서 눈물을 흘렸던 참외 씨'는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어디론가 떠났다고 한다. 그는 평생 오이 아가씨'를 그리워했으나 단 한번도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사는 동안, 참외는 참 외로웠다고 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다맨 2015-05-25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서령의 글이 참 좋습니다. ˝외롭다는 것,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는 결구는 더욱 좋습니다!

제가 아직도 유일하게 찾아뵙는 고령의 고등학교 은사님은 (시를 좋아하는 문학도이자 국어선생님이신데) 이제는 꽃 박사와 곤충 박사가 다 되었더군요. 집에 있는 철학책이랑 문학책 다 헌책방에 팔아 넘기고, 이제는 노자나 자본론과 같은 늙어도 다시 읽을 법한 고전 몇 권이랑 식물과 관련된 도감만 집에 구비했다고 합니다. 언젠가 둘이서 산길을 같이 걷는데, 꽃이랑 풀 하나하나까지 다 이름을 알려주니 뭔가 느낌이 색달랐습니다. 그 분이 하는 말씀이 이제는 부인도, 자식도 다 치웠으니(!) 홀로 살고 견디는 마음으로 남은 생을 기쁘게 보내야한다고 하더군요. 윗 글에 나오는 종심소욕(從心所欲)이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다 하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25 18:15   좋아요 0 | URL
싸구려 힐링`을 보면 대부분 외롭다는 감정을 치유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라, 가족 사랑, 진정한 친구 몇몇.... 그런데 정말 외로움`이란 게 나쁜 것인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나저나 그 은사님 김훈을 닮았군요. 김훈도 다 버리고 사전과 도감`은 늘 자주 들여다본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사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소설 이런 거 다시 읽거나 하는 상황이 별로 없거든요. 오히려 사전, 도감,이런 게 오히려 자주 보게 되고 또 보면 잼있씁니다.

samadhi(眞我) 2015-05-26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킬리만자로의 아범들 ㅋㅋㅋㅋ. 여기에 외의 뜻을 기려(?) ˝홀˝을 붙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킬리만자로의 홀아범들은 외(로움)를 먹는다. ㅎㅎ. 음미할 만큼 좋은 ˝오래된 이야기˝ 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26 05:17   좋아요 0 | URL
홀... 아주 좋군요. 홀아범 ㅋㅋㅋㅋㅋ. 전 언어의 원형에 무척 재미있습니다. 원형 공부만 해도 그 속에 담겨진 엄청난 진리를 깨알처럼 얻을 수 있어서 아주 좋습니다.
 

 

 

 

 

 

 

 

 

 

 

 

 

 

 

 

 

 


 


 

 

 

위대한 의자는 얼굴과 같다. 당신은 수많은 의자를 만나겠지만 기억할 만한 의자는 흔치 않을 것이다.

- 로스 러브그로브


의자 : 시인대장장이

 

                                    기억을 더듬어 복기하자면 : 학교 가는, 외딴 길목에 대장간'이 하나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대장간 풍경은 투명한 유리병 속에 담겨진 오렌지 마멀레이드 빛'이었다. 내부는 15촉 알전구와 용광로에서 새어나오는 오렌지 빛으로 물들었다. 그곳은 제법 규모가 큰 대장간'이어서 대장장이 서너 명이 아침 일찍부터 망치질을 하고는 했다. ( 돌이켜 추측컨대, 여름에는 날이 더우니 새벽에 일을 시작해서 정오 무렵에 매조지했던 것 같다. )  새빨간 숯불에 쇠를 달구고, 둔탁한 쇠뭉치'를 망치로 두들기고, 이내 담금질을 한 후 다시 망치로 두들기면......    아,  반짝거리는 은빛 벼린 칼날이 되어 나오고는 했다. 풀무로 바람을 넣으면 뜨거운 불꽃'이 되고 뭉툭한 쇠뭉치는 벼린 칼끝이 되니니 !

 

나는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잠시 넋을 놓고 그 풍경을 바라보고는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봄. 대장장이는 계절과는 관계 없이 늘 땀에 젖은 얼굴이었다. 종종 학교 선생이 대장쟁이'를 빗대서 학생들에게 말하고는 했다. " 등굣길에 대장간 하나 있지 ? 한겨울에도 땀 뻘뻘 흘리는 거, 공부 안 하면 너희들도 저렇게 된다. "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생이란 작자는 교육자로서 인성이 부족한 인간이었다. 나는 선생이 생각없이 내뱉은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대장간 일은 꽤 근사한 일이었다. 대장장이는 연금술사'였고, 대장간은 뭉툭한 것을 뾰족한 것으로 만들고 거무퉤퉤한 잿빛을 은빛으로 만드는 세계'였다.

 

 

 

 

종종, 시골 오일장에서 대장장이가 바람과 불의 힘'으로 만든 재래식 칼( 공장에서 생산하는 스테인레스 칼이 아닌 ) 을 볼 때마다 어릴 때 보았던 대장간 풍경이 아령칙하게 생각난다. 칼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재래식 칼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재래식 칼은 내구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가볍다. 특히, 거무퉤퉤한 칼등과 반짝거리는 칼날이 만나는 지점은 미학적으로 볼 때 훌륭하다. 아름다운 꽃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고 화려한 색을 가진 뱀은 맹독을 품고 있듯이, 대장간에서 만든 재래식 칼 또한 반짝거리는 부분일수록 날카롭다. 실패한 모든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 스치면 베인다. 반짝거리는 것은 위험하다.

 

시인은 대장장이와 비슷하다. 일상 속에서 거들떠도 안 보는 단어 쪼가리'를 모아 용광로에 바람을 불어넣어 거무퉤퉤한 쇠붙이'를 만들고 천 번의 망치질과 천 번의 담금질 끝에 벼린 칼'을 만드는 과정이 시작 詩作 이 아닐까 싶다. < 詩作 > 란 둔탁한 쇳덩이를 두들기고 두들겨서 높이를 없애는 행위. 칼날은 오로지 길이만 존재할 뿐 높이는 없다. 시도 이와 같아서 좋은 시는 깊이가 있을 뿐 높이는 없다. 높이는 군더더기'다. 소설이 낱개비 성냥 '을 쌓아올리는 < 플러스 - 미학 > 이라면 시는 쌓아올린 젠가(genga) 조각을 하나둘 빼내는 < 마이너스 ㅡ 미학 > 이다. << 의자 >> 도 마찬가지'다. 의자'는 소설보다는 시에 가깝다. 데얀 수딕이 한 말이다. 의자'를 깊이 있게 관찰하다 보면 데얀 수딕이 한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의자는 뼈대만 남은 건축물이요, 발랄한 8분 음표 같다. 전자는 서사이고 후자는 서정'이다. 이 두 요소가 만나서 시적 운율을 만든다.

 

 

 

 

                                                                                                    에어로 샤리넨, 튤립 의자

 

내가 의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경제적 효율성도 큰 몫을 차지한다. 살림이 넉넉하다면 유유자적하며 루브르 미술관도 구경하고 피렌체 대성당에도 가고 싶지만 그럴 만한 처지가 아닌지라 일상 속에 스며든 의자로 대리만족을 하는지도 모른다. 영화 << 스타 트랙 >> 에서 우주선 조정실에 배치된 의자'가 그 유명한 에로 사리넨의 튤립 의자'가 변형된 결과'라는 사실은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한다.

 
 

 

 

 

 

 

 

                                                                                                         알바 알토, 스툴 60 의자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영화 << 카모메 식당 >> 은 핀란드의 위대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바 알토'에 대한 헌정 영화'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진 속 식탁은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 스툴 60   stool  :  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서양식, 작은 의자 > 을 테이블로 확장한 디자인'이다. 의자가 식탁이 되었으니 개천에서 용 난 경우'다. 비록 " 짝퉁 " 이기는 하나 스툴 60 디자인은 한국의 포장마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자'다. 이처럼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보면 일상은 거대한 미술관'이다. 굳이 세계 미술관 순례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문화 혜택이다. << 스툴 60 의자 >> 를 볼 때마다 높이는 없으나 깊이가 있는 간결한 시'를 읽는 맛이 나서 기분이 좋아진다.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의자는 대부분 다리가 네 개일까 ?

 

곰곰 생각하다 보면 결국에는 인간의 다리가 두 개이기에 그렇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의자는 자신보다 몇 곱절은 무거운 인간의 두 다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네 다리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래야 버틸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의자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서 있는 시지포스'가 아니었을까. 여자의 일생은 눈물이 반이라면, 의자의 일생은 버티는 삶'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설경보  :  첫눈이

오면 불금이 됩니다.


                                첫눈이 내리면 정부의 긴급 포고령'이 떨어진다. " 국민 여러분, 뉴스 속보를 알려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긴급 속보를 알려드립니다 !  지금 이 시간 이후 모든 관공서는 하던 일을 멈추고 실시간 뉴스 속보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초설경보'를 알려드립니다. 초설경보를 알려드립니다. 정부는 첫눈 오는 날을 기념하야, 이 시간 이후 모든 관공서 및 학교'를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는 바입니다. 하던 일을 당장 멈추고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 약속이나 잡으셔 ~ "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과 인도 사이에 위치한 작은 나라 << 부탄 >> 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폭설이 오는 날이면 출근길 지옥이 되는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만두 부인 속 터지는 일'이다.


​- 다큐 정보를 찾을 수 없어서 부탄에 대한 방송 화면으로 갈무리한다

 

월요병에 걸린 직장인에게 부탄의 하늘에서 월요일에 첫눈이 내린다면 불타는 금요일이 되리라. 마음껏 흔들리리라. 몇 년 전, 다큐 영화제'에서 작은 왕국 부탄'에 대한 다큐를 본 적이 있다. 보고 싶어서 본 영화'는 아니었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 아다리 " 가 딱딱 맞지 않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고른 영화였다. 풍요에 찌들 대로 찌든 서구 여행객이 바라본 < 가난해서 행복해요 > 따위의 자위용 힐링'이겠지 ? 평소 빈자'를 풍요의 부작용에 대한 반작용으로 울궈먹으려는 캘커타풍 서사'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던 터라 삐딱하게 보리라, 마음 먹으며 < ㅡ 자 > 자세를 취했던 나는 곧 < ㄴ 자 > 정자세로 보기 시작했다. 다큐가 끝났을 때는 < ㅣ 자 > 자세로 박수라도 치고 싶었다.

첫눈이 오면 공휴일로 지정하는 나라'라니, 꽤...... 근사한걸 ! 세계 행복 만족도 1위 국가'라는 게 단순한 공염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처의 나라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 궁예는 " 옴 마니 반메 훔 " 을 외치며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철퇴로 때려 죽였는데, 부탄 사람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 옴 마니 반메 훔 " 을 속삭이고 있었다. 부탄은 히말라야 산기슭에 위치한 나라로 왕이 군림하는 군주제 국가'다. 현대 사회에서 군주제'라는 말에 반감을 가질 사람도 있겠으나 현명한 왕이 멍청한 자유 민주주의 대통령보다 백 배는 낫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나라가 바로 부탄이다. 부탄의 왕은 1976년'에 서구 잣대로 만든 GNP와 GDP 대신 GNH 를 도입하며 전담 부서'를 두고 국민 행복을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한다. GNH란 Gross National Happiness 의 약자로 " 국민행복지수 " 를 뜻한다.

< 컬러 오브 머니 > 대신 < 행복의 조건 > 으로 삶의 질'을 향상하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무엇보다도 부탄은 국민 행복을 위해 환경 보호에 앞장선다. 외화벌이를 위해 산악 사업이나 난개발 따위로 자연을 훼손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히말라야 산기슭에 위치한 부탄은 산봉우리 7개를 서구 산악인에게 입장을 불허했다. 그뿐 아니라 해외 여행자'도 엄격하게 적용하여 국내로 유입되는 해외 여행자'는 2만 명 이하로 제한한다. 피 끓는 청춘을 베트남과 독일 탄광으로 보내 " 외화벌이 " 에 몰두했던 박정희와 대조되는 구석'이다. 환경을 훼손하지 않다 보니 부탄은 생물 종 다양성'이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여기에는 불교의 생명 존중 사상도 한몫 했는데,  부탄 국민은 야생 동물'을 해치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과 동물의 오랜 평화'로 인해 야생 짐승은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심지어는 사람이 다가와도 날아가지 않는 새도 있다. 인간이 자신을 해지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등장에 도망치지 않는 야생 노루와 검은목 두루미'를 보았을 때, 부탄 사람들이 왜 행복한 사람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끝으로 부탄 사람들은 100명 가운데 97명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단다. 또한 무상 의무 교육과 평생 무상 의료'를 실시하는 나라다. 무엇보다도 무상 의료는 헌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끝으로 부탄 1인당 GDP는 2000달러'이고,  대한민국은 약 30,000달러, 행복 만족도 118위'이며 오이시디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은 1위'이다. 또한 어린이 행복 만족도는 꼴찌다. 이 정도 수치이면 100명 가운데 3명 정도만 행복하다고 말하는 나라가 아닐까 싶다. 부탄 사람이 한국인에게 묻습니다. " 오늘 하루, 존중 받았습니까 ?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15-05-15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GNH란 게 있었군요!
그러니깐요. 그 기준이란 게 서양의 경제 정책에서 나온 것들인데
어쩔 수 없이 그걸 따라야 한다는 게 못 마땅하다니까요.
뭐 OECD 가입국이라고 자랑 말고 내 집안 사람이나 챙겼으면 좋겠어요.
부탄은 진짜 왕국이네요. 동화에서 보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15 17:05   좋아요 0 | URL
외부의 시선은 아무래도 낭만이라는 색안경을 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는 하나
이곳 사람들은 행복하기는 한가 봅니다. 슬로시티의 국가적 확장판이라고나 할까요 ?
뭐. 그런....
 

 

 

 

 

 

 

 

 

 

 

 

 

 


 

 

 

 


 

 

 

 


 

핸드폰과 문맹률  :  이봐,

이게 다 핸드폰 때문이야 


                                       정의롭지 못한 무리와 불화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  악당과 싸워서 위험에 빠진 미녀를 구하고 시민을 구해서 영웅이 되는,  딱딱하게 발기한 서사 말이다. 하지만 나는 무근적 체질    류근 시인의 상처적 체질'을 패로디했다    이어서 꼴뚜기처럼 팔팔하기는커녕 문어처럼 칠칠맞지 못하게 흐느적거리기 일쑤였다. 내 몸은 팔 할이, 그래요... 돼지껍딱'이랍니다. 흑사리 껍딱 같은 내 인생을 탓해서 무엇하리오만, 그래도 성깔은 있어서 가부장 문화에 속하는 불알후드(brotherhood)의 영웅 서사'에는 차마 동조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21세기 대중 문화와 불화하기 시작했으니......   지난 글에서 핸드폰과 카메라 때문에 한국인은 까막눈'이 되었다고 주장해서 욕을 바가지로 먹은 적 있다.  


​ㅡ 이 뮤직 비디오는 본문과 전혀 관계가 없다


19세기 인간이었던 플로베르는 보봐리 부인이 입고 있는 옷의 형태와 질감을 글로 묘사하기 위해 꽤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야 했지만 21세기 현대인은 디지털 카메라로 보봐리 부인이 입고 있는 옷을 찍어서 전송하면 끗. 굳이 글로 재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현대 소설가는 < 리바이스 501 > 의 형태와 질감에 대해 플로베르처럼 집요하게 물고늘어지지는 않는다. 이 청바지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하는 독자는 없으니까, 모두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만약에 현대 소설가가 나이키 덩크 로우 신발을 플로베르처럼 집요하게 묘사했다가는 똘아이 아니냐는 핀잔을 받을 것이다  < 사진 > 은 문자보다 신속하고 즉각적인 비문자'에 속한다. 그러다 보니 보고 느낀 것을 < 문자 > 로 재현하려는 욕심이 < 사진 > 으로 대체되었다.

" 알싸하게 시큼한 겨울 동치미 국물 맛은 어쩌구 저쩌구.... " 라는 문장은 동치미 국물 사진 한 장으로 뙇 !  비문자에 속하는 사진, 그림, 입말, 영상 따위에 익숙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문자 해독력은 떨어지게 되어 독서량이 줄어들게 된다는 스토리.  여기까지는 좋았다. 나는 한발 나아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음식 먹기 전에 사진부터 찍는 행위는 촌스럽다고 비판했다. 진정한 교양인'은 사진 대신 문자로 맛을 재현해야 한다고 어거지를 부렸다. 우, 우우. 전방에서 들려오는 늑대의 함성 ! 요리가 나오기 전에 사진부터 찍었던 사람들은 내 글이 불편했으리라.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린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박근혜도 문자 문화'보다는 비문자 문화를 선호하는 부류'다. 수첩 공주'라는 별명은 난독증을 숨기기 위한 페이크'가 아닐까.

박근혜 정치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 비문자 정치술 " 이라 할 만하다.  워낙에 눌변이다 보니 그녀는 < 연설 > 로 대중을 감동시키기보다는 툭, 지나가는 짧은 < 입말 > 이나 < 사진 > 따위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그녀에게 사진은 정치 도구'다. 청와대가 세월호 사건에 접근하는 방식은 철저하게 사진 정치술'에 의지한 전략이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이 아니라 합동 분양소를 조문하는 모양새이며, 위로가 아니라 울고 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이었다. 박근혜가 사진을 간절히 원하는 이유는 박근혜 지지층이 문자 문화'보다는 영상 문화'에 익숙하다는 데 있다.   월터 옹은 이를 문자 문화와 구술 문화로 구별한다. 그의 기준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구술 문화(비문자 문화)에 속한다    

 

대한민국은 해방 직후 문맹률이 90%에 육박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사회가 문자 문화로 진입한 지는 60년이 채 되지 않으니 박정희 향수'에 젖은 계층은 대부분 비문자 문화에 익숙한 세대'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비문자 문화야말로 박근혜 지지자를 지탱하는 " Old is But Good is " 인 셈이다. 한국인이 드라마나 먹방'에 열광하는 이유도 구술과 영상에 익숙하다는 데 있다. 누군가는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을 근거로 대한민국이 비문자 문화'에 속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할 테지만 다음 기사를 읽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국민들의 실질 문맹률을 비교하는 22개 경제개발기구(OECD) 가입국 국민의 문서해독능력 비교에서 꼴찌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전 국민의 75% 이상이 새로운 직업에 필요한 정보나 기술을 배울 수 없을 정도로 일상문서 해독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OECD 국가 문서해독 능력 비교는 구직원서 봉급명세서 등 일상적인 문서내용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능력을 비교한 것으로,각종 첨단정보가 일상화된 선진국 사회에서는 단순히 글씨해독 능력을 보여주는 문맹률보다 훨씬 더 실질적인 문맹률로 간주된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은 6일 발간한 ‘2004 한국 교육인적자원 지표’에서 우리나라 국민중 ‘생활정보가 담긴 각종 문서에 매우 취약한’(1단계 문서해독수준) 사람 비율이 전체의 38%나 돼 OECD 회원국 평균(22%) 수준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일상적인 문서를 겨우 해석해낼 수는 있지만 새로운 직업이나 기술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는 힘든(2단계)’ 사람도 전체 국민중 37.8%나 됐으며 선진사회의 복잡한 일상에 대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문서독해 수준(3단계) 이상을 갖춘 사람이 21.9%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전문적인 정보기술(IT) 등 첨단정보와 새로운 기술,직업에 자유자재로 적응할 수 있는 고도의 문서독해 능력을 지난(4단계) 사람은 2.4%에 불과해 노르웨이(29.4%) 덴마크(25.4%) 핀란드 캐나다 (이상 25.1%) 미국(19%)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KEDI는 특히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들의 문서독해 능력을 비교하는 OECD의 국제성인문해조사 점수 역시 258.9점으로,조사대상인 22개국중 꼴찌였다고 설명했다.


ㅡ 국민일보

 

 

 

배울 만큼 배운 놈이 까막눈이라는 점은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강사'라면 크게 공감할 내용이다. 대학진학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실질 문맹률에서 꼴찌를 했다는 사실은 꽤나 웃긴 일이지만 나름 이해는 간다. 서구 사회가 문자 문화로 진입한 시기는 19세기였다. 그에 반해 대한민국은 20세기 중엽까지도 문맹률이 90% 였다. 핸드폰 보급율이 세계 1위인 이유도 구술 문화의 잔재는 아닐까 ?  도덕적 결함이 명백한 이명박과 박근혜가 연속으로 정권을 집권하자 사람들은 패배 원인을 찾는 데 골몰했다. 하지만 모두 원론에 그칠 뿐 제대로 된 지적질은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이게 다 핸드폰 때문이다. 한국인은 입말의 쾌락은 좀 버리고 문자의 사색에 빠질 필요가 있다. 보수의 지적은 틀렸다.

말이 많으면 빨갱이가 되는 게 아니라 보수주의자'가 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05-13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13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13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13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5-05-13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 문맹률이 낮다고 배우며 괜히 으쓱했는데요. 요즘 아해들 보면 우리말 해석 능력이 얼마나 떨어지는가 놀랍니다. 제가 학원에서 애들 가르칠 때도 많이 놀랐는데요. 문제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심각한 수준인 것 같다는 점이죠. 우리 조상들은 그리도 책을 좋아했다는데, 그 후손은 1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는 사람이 많으니...

곰곰생각하는발 2015-05-14 12:10   좋아요 0 | URL
해방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문맹`이었으니 모든 문화가 구술 문화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었고.
당연히 박지지자들은 구술 문화에 젖은 경우죠. 박근혜는 이미지 정치를 하잖아요.
일종의 그림자 정치죠. 새 그림자 보고 새다고 군중은 생각하지만 사실은 손으로 만든....
 

 

 

 

 

 

 

 

 

 

 

 

 

 

 

 

 

 


 

 

 


 

잘못된  교육'은  인간'의

결함을 숨기려는 데 있다


                                       개인은 사회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치안이 불안한 사회'는 곧 개인에게 불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는 개인의 희생을 강요할 수 있다. 세월호 집회 때 시민이 도로를 점거하면 불법 집회가 되지만 경찰이 "치안을 이유로  차벽 " 을 설치하면 불법이 아니다. 명백한 시민 보행권'을 침해하는 행위'인 데도 말이다. 네가 하면 로맨스이고 내가 하면 불륜이냐 ?  이처럼 사회와 개인은 불평등 관계'에 놓여 있다. 개인 입장에서 보면 사회는 패대기치고 싶은 대상'이다. 더군다나 공정 사회'가 아니라면 " 패대기 욕망 " 은 극에 달할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그래요....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 썩어빠진 사회'랍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이 말은 썩어빠진 사회'를 도우라는 뜻이 아닌가 ? 부모가 돼서 이 사회의 공모자'가 되라는 소리나 작작하고 있으니 통탄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당당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 저는 사회에 필요 없는 인간이 되겠습니다 ! "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 필요 > 는 관념과 물건 따위를 지시하는 단어'와 어울려야지 엉뚱하게 사람 옆에 붙으면 안된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 우리 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 " 이라고 귓속말로 은밀하게 말한다면 그 사람은 열에 아홉, 당신을 소모품 따위로 취급하는 인간이다. 백만돌이 에너자이저인 당신이 팔팔할 때에야 우야우야 떠받들겠지만 백만 스물 하나에서 백만 스물 두우우우우울'이 되는 순간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다. 조직에 의해 제거된 희생자는 한때 조직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인물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필요한 인간과 불필요한 인간 따위로 모집단을 나눌 수 없다. 인간을 < 필요 - 인간 > 과 < 불필요 - 인간 > 으로 나누는 사회는 파시즘 국가'가 될 위험이 있다. 히틀러는 장애인, 집시, 유대인을 악(불필요한 인간)으로 취급했던 위험한 인간이 아니었던가. 그는 인간을 " 빠떼리 " 를 삽입한 automan쯤으로 취급한 인물이었다. " 빠떼리가 다 된 놈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 " 이런 놈에게는 빠떼루를 줘야 한다. 권정생은 이오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상대가 선할 땐 나도 선한 것이고 상대가 악할 땐 나도 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 자체가 악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선한 것도 아니라 다만 어리석다는 것뿐입니다.

지나친 지혜로움은 사악을 유발시키고, 지나치게 착한 것은 어리석음의 원인이 됩니다. 아담과 이브가 몰락하게 된 원인도 그들은 지나치게 착했기 때문입니다. 선한 사람은 절대 앞뒤 결과에 대한 계산을 하지 못합니다. " 이 깊은 통찰 앞에서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사회는 끊임없이 " 권선징악 " 을 유포하지만 악랄한 놈일 수록 성공하는 사회'다. 그 옛날, 이솝의 주인이 노예였던 이솝을 어여삐 여겨 이런 젠차로 서로 사맛디 아니했던 노비'를 자유인 신분으로 풀어준 이유는 이솝 우화가 주인의 법'에 충실했다는 데 있다. 노예였던 이솝이 동료들에게 꾀부리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 현실에 만족해라, 욕심을 부리지 마라 -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예뻐하지 않을 주인이 있을까 ? 이솝(우화)는 삶의 지혜'가 담긴 책이 아니라 후흑학에 가깝다.

후흑학이란 후 : 厚 두터울 후'에 흑 : 黑 검을 흑'이 결합한 말로 뻔뻔하고 음흉한 놈이 권력을 얻는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학문이다. 멀리 볼 것 없다. 이승만으로 시작하는 한국 정치사'를 보면 답이 나온다. << 이솝 우화 >> 는 고대 그리스의 << 용비어천가 >> 에 지나지 않는다. 후흑의 달인'은 누구보다도 지나치게 착한 놈은 어리석은 놈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한국 사회'가 끊임없이 < 착한 사람 > 을 호명하는 이유'이다. << 이솝 우화 >> 를 읽고 자란 아이는 결국 주인의 법에 길들여진 노예의 태도를 배우게 된다. 이 책은 도덕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복종에 대해 가르친다. 기득권 세력이 보기에 이보다 " 아름다운 세뇌 " 는 없다. << 잔혹 동시 >> 가 어른 사회에서 격렬한 반감을 일으킨 원인'은

이 시집이 " 어린이-다움 " 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 詩(학원 가기 싫은 날)에서 시인'은 어른이 요구하는 길들여진 동심'을 거부한다. 한국 사회'는 사회가 요구하는 " - 다움 " 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 위플래시 " 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다워야 하는데 남자답지 않은 남자는 즉각 << 사내새끼가... >> 로 시작되는, 앙칼진 말풍선 공격을 받고, 여자다워야 하는데 여자답지 않은 여자 또한 << 감히 여자가... >> 따위로 시작하는, 앙칼진 말풍선 공격을 받는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이다워야 하는데 아이답지 않은 아이'는 되바라진 아이'가 된다. 정상적인 어른이라면 이 詩에서 아이의 상처를 보고 아파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 시 때문에 자신이 상처를 입었다고 징징거린다. " 아이가 고사리손으로 한 대 때려서 아팠쪄요 ?  " 이처럼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을 위배하면 응징이 따른다.

예쁜 동심은 사회가 만든 허구'다. 천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사탄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사탄 없는 천사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마찬가지다. 예쁜 동심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나쁜 동심도 있다는 사실을 긍정해야 한다. 잘못된 교육은 인간의 결합을 숨기려는 데 있다. 권정생의 말이다.

 

 

 

 

덧대기

 

아무리 생각해도 출판사의 삽화는 오버 앤 오버'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다맨 2015-05-11 19: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쁜 동심은 사회가 만든 허구˝라는 말에 크게 공감합니다.
예전에 한국 아동문학사를 어설프게나마 공부한 적이 있었지요. 그런 공부를 하는 동안 알게 된 사실이, 아직까지도 한국 아동문학에는 `동심천사주의`라는 사상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심천사주의`를 제창한 사람은 이른바 한국 어린이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방정환인데, 그는 `어린이 찬미`라는 수필에서 어린이를 일러 `죄 많은 세상에서 죄를 모르고 더러운 세상에서 더러움을 모르고 부처보다도 예수보다도 하늘 뜻 그대로의 하느님`이라고 정의 내리지요.
이런 동심천사주의 사상은 후대 동화/동시 작가들에게 깊고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문제는 방정환의 사상이 당시 천대받고 멸시받았던 어린이들의 인권과 입지를 높이는 데는 효과를 거두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린이들을 현실의 인간과는 사실상 유리된 감상적/이상적/관념적/권선징악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죠. 어쩌면 위 편지글에 나오는대로 권정생과 이오덕이 극복하려고 했던 것은 한마디로 말해 현실과 동떨어진 동심천사주의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비록 오늘날 쓰여지는 동화엔 그러한 동심천사주의의 영향이 걷혀 있지만, 그래도 사회 다수의 시각은 여전히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순수하고 무구해야 한다`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 더 얘기를 하자면 방정환은 평론가이자 활동가로서의 자질은 높이 평가받았지만 창작자(그는 수백 편이 넘는 동화를 썼다고 합니다)로서의 역량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게 문학사적 중평입니다. 어쩌면 그는 현실의 아이가 아니라 자신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아이를 상정하고, 거기서 현실과 유리된 사상을 만들려고 했다는 생각조차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11 19:54   좋아요 1 | URL
이거 뭐.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요약 정리해 주셨네요.
저도 평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작은 어른`일 뿐, 그 아이들에게 자꾸 날개 잃은 천사 역할을 하라고 하면
열받죠. 그것은 아이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아이의 개성을 획일화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가 어쩌면 저럴 수 있지 ? 라는 말 속에는
아이를 독립체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어른의 어리석음이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솔까말 초등학교 5,6학년만 되도 벌써 성적인 것에 눈을 뜰 나이입니다.

cyrus 2015-05-11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삽화는 좀 과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은 텍스트보다 이미지에 더 강한 인상을 받잖아요. 동시집 폐기 처분 논란에 삽화를 만든 사람은 어떠한 의사를 표명하지 않을 걸로 알고 있어요. 삽화가 잔인하고, 괴기스러워서 일부 사람들이 동시집에 반감을 가졌을 겁니다. 글을 읽어보지 않고, 논란이 된 시와 삽화만 보고서요. ‘어린이-다움’과 ‘도덕’을 강조하는 사람들 중에 그림 형제 동화가 원래 잔인한 이야기라는 진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11 19:52   좋아요 1 | URL
위 수다맨 님이 지적했듯이 ( 이것은 권정생과 이오덕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만 ) 한국 아동 문학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이에게 날개 없는 천사 이미지`를 입혔습니다 그래서 많은 아동 문학가들이 권정생 동화는 아이들이 보기에 지나치게 우울하다고 평가하고는 했습니다. 사실 필립 아리에스의 << 아동의 탄생 >> 을 보면 어린이`라는 말은 근대를 거치면서 만들어졌다고 하죠 ?이러한 지적은 푸코도 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그 이전까지는 아이는 그냥 작은 어른 취급을 했다고 합니다.함께 일을 하기도하고요..
수많은 그림( 아, 화가 이름이 갑자기 생각 안 나네요.. 유명한 그림인데 네델란드... 거, 뭐냐... 왜 풍속화 그리는 화가.. 하튼 ) 속에도 보면 아이들이 술 마시고 막 그럽니다. 아이에게 천사를 강요하는 것을 옳지 않습니다. 아이는 그저 작은 어른일 뿐. 착한 어린이가 있으면 나쁜 어린이도 있는 법.

권정생 편지에 보면 그가 장 콕토의 무서운 아이들을 읽고 난 짧은 평이 있습니다. 재미있게 보았다고 말이죠....

뽈쥐의 독서일기 2015-05-12 0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실 약간 충격받기야 했지만.. 참 많이 솔직하고 살아있는 작품이라 생각했어요. 얼마나 학원이 싫으면..하고요. 아닌 사람도 많지만요.
책 회수까지는 너무한 조치인 것 같습니다. 다른 시가 표현이 괜찮은 것도 많았다고 하는데 나머지 시는 감상할 권리도 안 주고 말이죠... 싸이코패쓰니 일베니 사람들이 너무 겁이 많은거라 좋게 해석하렵니다. 아님 화딱지나서.

곰곰생각하는발 2015-05-12 11:25   좋아요 0 | URL
위 수다맨 님이 지적했듯이 아이를 무조건 천사 같은 아이`라는 신화를 만드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저는 잔혹성보다는 솔직성에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에게 칭찬받을 만한 시를 쓰죠. 그때는 어른에게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아이는 그런 자세에서 벗어나 있잖아요. 표현의 과격은있을 지 몰라도 그 자세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