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지상주의자에게 










                                                                                               날마다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기는 파워 블로거'가 있었다.  하루에 책 한 권을 읽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덧대어 날마다 원고지 10장 분량의 서평도 올린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그는 철저하게 책 내용에 집중했다. 그의 리뷰는 요약정리가 잘 된 써머리 노트 같았다. 사람들은 그의 리뷰를 좋아했지만 내가 봤을 때 그 리뷰는 촌스러웠다. 단순하게 책 내용을 정리한 글은 기계적인 필경사의 단순한 결실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글쓴이가 쓴 글 속에서는 " 존재 " 로서의 고민이 보이지 않았다.  뇌는 있으나 심장이 없는 깡통 로봇 같다고나 할까 ?  


결정적 계기는 노무현이었다. 노무현이 서거한 날에도, 그는 여전히 책을 읽고 리뷰를 올렸다. 심장이 없는 로봇답게 그의 글에는 죽은 자에 대한 애도도 없고 폭력적인 현실에 대한 비판도 없었다. 책 속에서 묘사하는 불평등과 폭력에 대해서는 성심 성의껏 잘잘못을 따지더니 < 책 - 바깥 > 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그는 오로지 책을 읽고 성실한 리뷰를 작성하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 좆같은 성실함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성실한 필경사 생활은 결실을 맺었다.  그는 몇 년 후에 소설가로 데뷔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시바 ! 유감스럽게도...... 


이동진 평론가를 볼 때마다 차가운 심장으로 글만 쓰던 그 필경사가 자주 떠오른다.  정치적인  것을 강박적으로 제거한 채 영화적인 것에만 집중한다는 점에서 영혼 없는 필경사를 닮았다. 아마도 그것은 그가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라는 흑역사를 감추기 위한 강박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 << 변호인 >> 과 << 캐롤 >> 에 대한 입장은 철저하게 계산된 글이었다.  예를 들어 그는 영화 << 캐롤 >> 에 대하여 " 이 영화는 두 여자의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인데 두 사람이 생물학적으로 여자다, 이 두 가지는 차이가 있겠죠 ? " 라고 말한다. 


이처럼 그는 정치적인 것보다는 정치색을 탈색시키고 난 후에 그 텍스트를 해석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동성애를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능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  그는 영화-안'에서만 말할 뿐 영화-바깥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예를 들어 영화 속 노동 운동가의 영화적 삶에 대해서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감동하지만 정작 영화 바깥에서 365일 동안 cctv 철탑 위에서 투쟁하는,  현재진행형인 삼성 노동자의 투쟁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침묵이라기보다는 무관심에 가깝다. 그는 전형적인 영화지상주의자'다. " 영화가 세상을 구원하리라 ! "  


좆같은 소리'다.  영화는 세상을 구원할 리가 없다.  영화라는 세계 - 안과 영화라는 세계 - 바깥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종종 이동진이나 정성일1) 같은 영화지상주의자가 영화 만만세를 외칠 때마다 헛구역질이 나오곤 한다.  정성일은 21세기 영화 평론가의 비평 수준이 초라하다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지만 내가 보기에는 정성일이야말로 그 책임이 매우 크다. 너나 잘해라. 





​                             


1)  정성일이 시간 날 때마다 입만 열었다 하면 하는 거짓말이 있다. 일명 < 시네필 3법칙 > 인데, 정성일은 트뤼포의 말이라며 시네필 3법칙을 자주 인용하고는 했다. “ 트뤼포는 언제나 말버릇처럼 영화광에는 세단계가 있다고 얘기했다. 초보는 한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것이며, 그 다음은 비평가가 되는 것이고, 진짜 영화광은 영화감독이라는 것이다.”그런데 트뤼포는 정작 이 말은 한 적이 없다. <  내 인생의 영화들 > 이라는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I am often asked at what point in my love affair with films I began to want to be a director or a critic. Truthfully, I don’t know. All I know is that I wanted to get closer and closer to films. The first step involved seeing lots of movies; secondly, I began to note the name of the director as I left the theater. In the third stage I saw the same films over and over and began making choices as to what I would have done, if I had been the director.


영화에 대한 나의 열정 가운데 어떤 부분이 나를 영화 감독이나 비평가의 길로 이끌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솔직히 말해서,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영화와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는 것뿐이다. 첫 번째 단계는 많은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나는 극장을 나설 때 감독의 이름을 적어두기 시작했다. 세 번째 단계에서 나는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보면서 내가 감독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트뤼포는 잘 모르겠는데요 _ 라고 고백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한국의 영화감독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시네필 3법칙이라는 국문으로 둔갑했다. 이게 다 시네필 정성일의 너무나 과도한 영화 사랑이 빚은 촌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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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rdo 2020-06-02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캐롤 원작자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봤다면 이동진 뒤통수를 한대 갈겼을 것 같은데요. ㅎㅎ 원작소설과 작가에 대해 조사도 안 하고 대충 갈겨썼나 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6-03 17:36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러니까요. 참, 지나치게 안정적인 틀 안에서만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습니다..ㅎㅎ
 













                              











무릎과 고추









                                                                                         네쁠릭스 영화 << 거꾸로 가는 남자 >> 는 일종의 미러링이다. 서로 성 역할을 바꿨을 때 일어나는 상황을 상상한 드라마'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는 남성이 만들었던 < 좆같은 사회 > 를 반대로 < 젖같은 사회 > 로 설정한 후 상황극을 연출한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여성은 웃통 까고 다녀도 되고 남성은 엉덩이에 핑크라고 쓰여진, 빤스 같기도 하고 팬츠 같기도 한,  짧은 팬츠를 입고 다닌다.  회사는 대부분 여성이 장악했고 남자들은 커피 심부름에 바쁘다. 성희롱은 일상이다. 누구에게 ?!  당연히 여성이 남성을 성희롱하는 사회'다. 이 영화에서 여성은 남성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루시아다. 반면에 남성은 모든 것에서 제약을 받는다. 겨털도 뽑아야 하고 사타구니까지 퍼져나간 꼬털도 왁싱을 해야 한다. 

심지어 발가락 위에 난 족털도 왁싱을 한다. 겨털, 꼬털, 족털(足ㅡ), 털이란 털은 모두 뽑혀야 하니 평소 고통에 털털한 나조차도  아, 이제 그만 !   " 모든 이에게 털을 허하라 ! "  미러링된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을 불완전한 존재로 인식한다. 남성이 무거운 것을 들고 있으면 여성이 터프하게 다가와서 남성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짐1)을 빼앗는다. " 너처럼 연약한 이쁜이가 이런 걸 들 수나 있겠어 ?  귀여운 것, 후후. 이런 일에 힘쓰지 마.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  흐흐흐 " 뭐, 이런 늬앙스'다. 남자인 내가 보았을 때 참말로 끔찍한 세상이다. 

하지만 얼마든지 웃고 넘길 수 있다. 왜 ? 허구의 드라마이니까 ! 그렇다면 남는 것은 진짜 현실 세계이다. 털이란 털은 죄다 뽑아야 하고, 능력과 상관없이 커피 심부름을 해야 하고, 성희롱이 일상인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여성은 이 현실 사회가 얼마나 끔찍할까 ?  더군다나 학생들에게 성평등을 위한 단편 영화(단편 억압당하는다수, 2010)를 보여줬다는 이유로 교사를 직위 해제하는 한국 사회라면 ?? 한국 사회를 경험하면서 겪는 가장 기이한 풍경 중 하나는 연애할 때 여성의 핸드백을 들어주는 남성들이었다. 한국 남자들은 왜 여자의 손바닥 가방'을 들어주는 것일까 ?  무거워서 ???????!!!   이게 에티켓이라고 ??????  

영화 << 경축, 우리 사랑 >> 도 일종의 미러링이다.  굳이 이 영화의 성격을 규정하자면 역지사지 부도덕 짠내 로맨스'라고나 할까 ?  50살 여자가 30살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근본 없는 러브 스토리여서 대책도 없지만 감독은 능청스럽게 끝까지 밀어붙인다. 영화는 가족의 반대를 무릎쓰고 자신의 결의를 끝까지 고추세운 봉순의 승리로 끝난다. 원래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무릎 꿇지 않고 고추를 앞세우면 못 이길 싸움이 없는 법이다. 이 영화가 상투적인 멜로가 될 수 없었던 이유는 전복에서 오는 쾌감 때문이다. 부도덕한 로맨스라 욕하지 마라. 원래 모든 로맨스는 선을 넘는 행위이니 말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김해숙과 기주봉은 말할 것도 없고 김혜나와 김영민도 훌륭하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과 기타 등등도 믿고 볼 수 있는 연기력이다. 


 

​                                     

1) 이 장면에서 나는 연애할 때 여성의 핸드백을 대신 들어주는 한국 남자 특유의 에티켓 문화를 떠올렸다. 연애할 때에는 사랑하는 애인의 핸드백을 들어주는 것이 에티켓이라고 믿는 한국 남자의 망상이 괴상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그것을 지극히 당연하다고 믿는 여성도 괴이하기는 마찬가지'다. 연애할 때에는 핸드백도 들어주는 남자는 결혼하면 아내의 장바구니는 들어주지 않는다에 500원 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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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내주러 왔습니다 !







                                                                                              한때 프로야구 엘지 트윈스의 찐팬으로서 " 욕하면서 보는 타성 " 에 젖었던 때가 있었다.  볼 때마다 지는지라 어머니는 내가 야구를 볼 때마다 타박을 하셨다.  지는 거 뻔한데 왜 보면서 화를 내니 ?  처음에는 나도 내가 왜 욕하면서 야구를 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에는 엘지 트윈스에 대한 희망을 접고 욕하면서 보는 국내 프로야구와 결별하게 되었다.  안녕, 프로야구 ! 특히, 엘지 트윈스.  이 개새끼들 !!! 


이것이 끝인 줄 알았다. 나는 어느새 장르를 바꿔 고약한 심보를 프로야구에서 국내 영화로 옮겼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훌륭한 영화를 욕하면서 본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해서 관람객들이 저주를 퍼붓는 영화를 주로 보게 되었다. 히, 영화 << 엄복동 >> 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극장 안내 직원이 " 즐거운 관람 되십시오 ! " 라고 말했을 때 나는 영화관 안으로 입장하면서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 아니오,  혼내주러 왔습니다. "  이 영화는 내가 0.3초에 한 번씩 욕을 했던 망작이었다.  자전거를 탄 엄복동이 힘찬 질주를 하기 위해 엉덩이를 들어 올릴 때마다 그의 클로즈업된 힙업을 보며 분노했다. " 이게 영화냐 ! " 


내가 극장에서 내지른 일갈은 한때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 이게 나라냐 ! " 라고 외쳤던 말과 늬앙스가 비슷했다. 잠 못 드는 어제도 그런 영화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날이었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2009년작 << 페어 러브 >> 였다.  이보다 좋은 먹잇감은 없었다.  친구가 죽자마자 그의 딸과 연애를 시작하는 50살 남자와 아버지가 죽자마자 아버지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 25살 여자.  캬, 막장도 이런 막장이 또 있을까 ?  이게 막창이야 곱창이야 !  늙은 남자가 어린 여자를 만나 운우지정을 나눈다는 불알후드의 성적 판타지가 레이망에 포착되자 


나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 밑에서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되어 영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물어뜯을 준비에 깊은 에로스를 느꼈다. 오냐, 금니빨 빼고 모두 다 씹어먹어주마 !   더군다나 내가 싫어하는 배우인 안성기가 주연이지 않은가.  ▶ 버튼을 눌렀다.  오프닝부터 몸속에 내재되었던 욕 에너지가 괄약근을 지나 중추 신경 4번 통로를 통해 뇌하수체에 전해졌다.  으하하하.  엄복동 이후로 오랜만에 다시 볼 거대한 망작이로구나.  하지만 예측은 완전히 벗어났다.  욕 에너지를 오른쪽 간뇌의 뇌하수체에 전달하기 위해 잔뜩 오므렸던 괄약근이 풀리고 말았다. 


나는 점점 이 영화에 빠져들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영화는 매우 잘 만든 멜로드라마'였다. 안성기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장면 곳곳에서 빵빵 터진다. 주책맞을 수도 있고  징그러울 수도 있는 그들의 로맨스는 어차피 사랑은 미친 짓이 아니냐,  라는 반문과 함께 묘하게 삶에 대한 통찰을 선물하고 있었다.   또한 감독이 로맨틱 멜로라는 장르를 비트는 솜씨가 제법 훌륭했다.  그리고 등장 인물 모두 개성이 뛰어나서 허투루 버릴 만한 캐릭터도 없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왜 영화 제목을 << 러브 어페어 >> 가 아닌 << 페어 러브 >> 로 정했는지 이해가 간다. 


소심한 남자는 " fair " 를 " affair " 로 끌어올린 만큼 용기 있는 사내가 아니다.  페어와 어페어 사이에서 망설이던 연인들은 결국 안전한 페어를 선택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어느새 나는 반평생 한 번도 안 해본 남자의 변두리 페어 러브'에 삼삼칠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당혹스러웠다.  혼을 내주러 왔으나 오히려 혼이 나고 만 꼴이었다.  그래.  이런 반격, 나쁘지 않다.   그게 바로 욕하면서 보는 재미 중 하나이니깐 말이다.  나는 당분간 이 고약한 소비의 취향을,  엉뚱한 파토스를, 어페어보다는 페어의 찌질함을 지지할 생각이다. 


앞으로도 망작만 찾아 욕하면서 보련다.  재미있는 영화 따위는 당신이나 보세요. 기꺼이 양보하리다.  내 레이다에 걸려들면  나는 괄약근에 힘을 주며 이렇게 말하리라.  혼내주러 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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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와 루시
켈리 라이하르트 감독, 미셸 윌리엄스 출연 / 키노필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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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미안했어요 ! 










                                                                                               30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  검은 천 가방 몇 개를 양쪽 어깨에 짊어진 그녀는 행색이 초라했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매니큐어가 떨어져나간 손톱 밑에는 검은 때가 끼어 있었다. 여행 중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짐이 많았고 동네 주민이라 하기에도 짐이 너무 많았으며 그것이 자신이 가진 소유물의 전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가벼운 짐이었다.


당시에 나는 서울역 학원 옆 건물에서 퍼펙트월드라는 이름의 영화감상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영화 한 편을 고르더니 망설이다가 내게 십만 원짜리 수표를 건넸다. 신분증을 확인하고 수표를 받는 것이 원칙이었으나(대부분은 신분증 확인조차 하지 않았었다) 나는 단칼에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부탁도 없이 퉁명스럽게 수표는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의 행색이 초라했기에 수표의 출처가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초라한 행색만 보고 그녀를 향해 싫은 내색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타인의 차별이 일상이라는 듯이 그녀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녀는 비디오테이프를 다시 제자리에 꽂은 후 가방을 주섬주섬 들고 황급히 나갔다. 그녀가 다시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10분 뒤였다. 한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먹을거리가 들어있었는데 아마도 다른 곳에서 수표를 교환할 목적으로 산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진열대 앞에서 오랫동안 서 있었다. 그리고는 몇 편의 영화를 선택해서 카운터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고른 영화 목록들은 내 영화적 취향과 많이 닮아서 깜짝 놀랐다. 그녀가 지폐 몇 장과 먹을거리가 담긴 비닐봉지를 내 앞에 내밀었다. " 아까 잔돈을 미리 마련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 " 


그녀의 말에 나는 귀밑까지 빨개져서 어쩔 줄 몰랐다. 내가 그녀에게 행한 차별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서울 극장 영화관에서였다. 10년 만의 재회였는데 나는 보자마자 그녀를 알 수 있었다. 당시, 상영작은 영화 << 원스 >> 였다.  불이 켜지고 관객들이 출구로 나갈 때, 나는 그때 그녀를 보았다. 커다란 가방들은 보이지 않았다.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한 곳에 정착한 것일까 ?  나는 그녀와 거리를 유지한 채 망설이고 있었다. 다가가 인사를 하는 것이 좋은 결정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시야에서 멀어졌고 그렇게 사라졌다. 


영화 << 웬디와 루시 >> 를 보았을 때 문득 손톱 밑에 때가 낀 손으로 돈과 간식을 건네며 미안하다고 말했던 그녀가 떠올랐다. 그 잔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영화적 취향이 비슷하니 어쩌면 그녀도 이 영화를 보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또 어쩌면 훗날 이 글을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뒤늦은 사과를 그녀에게 전하고 싶다.  그때 정말 미안했어요. 이 영화 참...... 좋죠 ?








웬디는 자신이 잃어버린 개 루시가 어느 중산층 가정으로 입양을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개를 되찾을 목적으로 찾아간 그녀는 정리가 잘 된 정원에서 놀고 있는 루시를 발견하고는 계획을 변경한다. 그녀는 되돌아오기 위해 떠나야 된다는 결심을 하지만 이 결심에는 굳은 결의가 없다. 어쩌면 떠나야 한다는 변명을 하기 위해 되돌아온다고 고백했는지도 모른다. 행선지를 알 수 없는 기차 화물칸에 무임 승차한 웬디는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밖의 풍경을 본다. 볕이 들지 않는 울울한 삼림의 풍경이 표정 없이 지나간다.  이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 공장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자본주의 미국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룰은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철학이 때로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폭력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고발하고 있다.  영화는 반전도 없고 행운도 없다.  묵묵히 불행을 견디는 여자 웬디는 사랑하는 개 루시를 두고 길을 떠난다. 기똥차게 잘 만든 영화'다. 당신이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시 말해서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행운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다. 놓치면 후회할 영화'다. 보시라.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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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스토리 - [할인행사]
데이빗 린치 감독, 리차드 판스워드 외 출연 / 이지컴퍼니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리차드 판스워스 스토리






 



기승전결에서 결(結)은 누에 실(絲)과 길하다(吉)가 결합한 것으로 좋은 방향으로 매듭을 짓는다는 뜻이다. 해피엔딩을 위한 강요인 셈이다. 하지만 나는 해피엔딩보다는 새드엔딩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매듭을 짓는 종결보다는 매듭을 묶지 못한 채 미완성으로 끝나는 종결을 좋아해서 끝이 선명하고 안전하며 예쁜 것에 대해서 항상 회의적- 이다. 영화 << 연어알 >> 에서는 한 여자가 한 여자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여자는 잠시 발걸음을 멈춘 채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 현관문을 노크한다. 영화는 그 장면에서 느닷없이 끝난다. 일반적인 연출이었다면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서로 화해하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을 텐데 이 영화는 서로를 묶지 않은 채로 끝난다. 사람들인 불성실한 종결에 툴툴댔지만 나는 결이 없는 이 영화의 결'을 좋아했다.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엔딩이었다. 데이비드 린치의 << 스트레이트 스토리 >> 도 훌륭한 엔딩의 모범이다. 동생은 중풍으로 쓰러진 형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는 사람의 보폭보다 조금 빠른 트랙터를 몰고 6주 간의 기나긴 여정을 떠난다. 그가 먼길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는 형과 화해를 하기 위해서다. 미안하다는 그 한 마디를 하기 위해 길을 떠난 앨빈 스트레이트는 형의 집 앞에서 그 이름을 부른다. 두 형제가 십 년 만에 만나는 자리이지만 뜨거운 눈물도 없고 포옹도 없다. 그저 낡은 의자에 앉으라고 권하는 것이 전부'다. 그리고 영화는 거기에서 끝난다. 그것은 우리가 익숙하게 보았던 용서와 화해의 방식이 아니었지만 그 어떤 장면보다도 뜨거웠다. 내가 감독이었다고 해도 그 장면에서 대화를 넣는다는 것은 부질없는 개입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리차드 판스워스와 해리 딘 스탠튼의 얼굴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리차드 판스워스의 마지막 얼굴은 도무지 잊히지 않는다. 그것은 영화 속 캐릭터의 얼굴이 아니라 리차드 판스워스의 얼굴이었다1). 그의 얼굴에서 문득 헤밍웨이의 노인(노인과 바다)이 떠올랐다. 그는 어부였고 트랙터와 짐칸은 거대한 청새치처럼 보였다. 꿈을 이룬 자의 허무였을까 ? 영화 촬영을 끝낸 후, 그는 권총 자살로 생을 끝낸다. 그의 나이 79살이었다. 또한 이 영화는 그의 첫 번째 주연 작품이었다.  







​                       

1)    영화를 보다 보면 종종 캐릭터의 얼굴(감정)이 아니라 배우의 얼굴(감정)이 보일 때가 있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연출한 영화 << 거미의 성, 1957 >> 에서 미후네 도시로는 반란군이 쏜 화살-들 때문에 사색이 되는 연기를 펼친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장면은 죽음의 공포에 사색이 된 캐릭터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공포에 떠는 미후네 도시로의 실제 상황처럼 보였다. 후일담으로 전해진 사실에 의하면 미후네 도시로를 향해 날아든 화살들은 특수 효과가 아니라 실제로 양궁 선수들이 배우를 앞에 두고 화살을 쏜 것이라 한다. 한끗만 빗나가도 죽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으니 배우 입장에서 보면 그 표정 연기는 연기가 아니라 실제의 공포 체험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리차드 판스워스의 회한도 그런 경우일 것이다. 먼길을 여행하고 돌아온,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문장 대신 표정으로 마지막 유언장을 작성한 그 장면 앞에서 나는 뭉클했다. 잊지 못할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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