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젯
김광빈 감독, 하정우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20년 8월
평점 :
일시품절



아이 시발 됐고 !




 


                                                                                                        집에서 영화 보다가 재미가 없으면 모니터를 켜 놓은 채 돌아서(서) 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 비몽사몽, 잠들다 보면 망한 영화가 내 꿈에 스며들어서 근사한 영화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다 죽어가는 영화를 이런 방식으로 살리곤 했다.  


그런데 종종 " 재미가 없는 차원 " 을 훌쩍 뛰어넘는 영화가 있다. 영화 << 살아있다 >> 가 대표적이다. 깊은 빡침이...... 두 주먹 불끈 쥐다 보니 괄약근에 힘이 들어가게 되는 이런 영화는 " 돌아서 ㅡ " 잠을 자는 차원을 떠나서 아예 " 돌아버리게 ㅡ " 만드는 구석이 있다. 영화 << 클로젯 >> 은 관객을 돌아버리게 만든다. 오. 주여 ! 혹여,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내 글이 재미있다고 해서 호기심에 이 영화를 볼 생각일랑 하덜덜 마쇼. 뇌출혈로 사망할지도 모르니까. 뭐, 엄복동 같은 희대의 망작은 그냥 웃으면서 볼 수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똘레랑스를 기대하면 안된다. 


당장이라도 모니터 안으로 난입해서  하정우고 김남길이고 나발이고 간에 멱살 잡고 하드캐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하, 시바. 영화 상영 내내 나는 뜬금뉴스의 개그맨 안상태 특파원에 빙의될 수밖에 없었다.  난... 오컬트인 줄 알고 갔는데 하정우는 저승에서 청승떨며 놀고 있고. 감독은 무섭다고 난리인데 난... 우스워서 물방귀만 나올 뿐이고. < 살아있다 > 에서 진라면 처먹는 장면에서 학을 뗐는데 이 영화에서는 남길이가 진라면에서 진정성을 느낀다고 진지하게 고백해서 난... 화딱지가 났을 뿐이고, 남길이는 닝기미 내 속도 모르고 처묵고. 계속 처묵고. 내 속은 허파 뒤집어지고. 아이, 시발 됐고 !   


이 영화는 감독이 장르에 대한 이해도 없고 장르에 대한 애정도 없을 때 발생하게 되는 총체적 난국'이다. 하정우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식었다기보다는 아예 영혼이 빠져나간듯한 연기를 하고 김남길은 띨띠리 연기를 펼치는데 눈 뜨고 볼 수 없어서 눈 감고 봐야 했다. 도대체 어르신들이 아역 배우보다 연기력이 떨어지면 어떻게 할 것이란 말이여. 참, 한심하다. 내가 그동안 귀신이 나오는 수많은 영화를 봤지만 귀신에게 칼 던지는 인간은 처음 봤다. 감독에게 정말로 진지하게 묻고 싶다. 귀신에게 칼 던지면 귀신이 칼에 맞아 뒈지니 ? 이건 아니자나, 이건 아니자나, 이건 정말 아니자나. 흙흙. 


아, 그리고 ㅋㅋㅋㅋㅋ 감독아, 고라니와 까마귀는 대체 무슨 죄니 ?  꼭 이런 영화에서는 까마귀가 유리창에 충돌해서 피를 묻히고 죽더라 ?  아니, 까마귀가 무슨 죄야. 어찌 된 게 한국 공포 영화에서 고라니는 죄다 달리는 차에 돌진해서 죽고, 까마귀는 죄다 유리창에 돌진해서 죽어요. 이거 상상력 빈곤 아니냐 ?  이 타이밍에서 안상태 특파원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안상태 특파원 !!!   까마귀는 감독이 시켜서 돌진했을 뿐이고.  난... 그런 까마귀가 불쌍할 뿐이고.  고라니는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 사고로 고자 됐고. 고라니는 터진 불알 잡고 내가 고자라니 _ 소리치며 울고 있고. 난... 그런 고라니에게 미안할 뿐이고. 허파 뒤집어지고.


감독아, 고라니와 까마귀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  까마귀, 너희도 그래. 이 정도면 너희들도 동물 보조 출연 권익위를 결성해서 이런 게을러빠진 인간 감독들을 싹 다 고발해야 하는 것 아녀 ?  콩밥을 좀 먹여야 다시는 이런 연출 안 한다. 이런 인간들이 있으니 사람들이 너희를 흉조라고 흉보는 거야. 수수방관할 거야 ?  에휴. 너희들도 게을러빠진 거다. 이놈의 새(끼)들아. 반성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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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5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5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계절
마이크 리 감독, 레슬리 맨빌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나는 행복합니다







행복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산다

- 브레히트








   스 티븐 킹의 중편소설 <<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에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문장이 나온다. 어쩌면 이 문장 때문에 이 소설 전체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 앤디는 지질학을 좋아했다. 그의 세심한 성격과 잘 맞았나 보다. 빙하기와 수백만 년에 걸친 산맥의 생성. 지질학은 시간과 압력에 대한 연구이다. 사실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인간 관계를 다루는 심리학도 마찬가지다.  심리학은 개인이 살아온 시간과 그 사람이 그 시대를 관통하면서 느꼈던 사회적 압력에 대한 보고서'이다.  그렇기에 심리학자가 환자의 짓눌린 마음결을 들여다보는 일은 지질학자가 지층의 단면을 관찰하는 일과 같다.  공교롭게도 영화 << 세상의 모든 계절 >> 에 등장하는 중산층 부부 톰과 제리는 직업이 지질학자(: 톰)와 심리상담사(: 제리)다.  노년의 부부는 우리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산다.  주중에는 직장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간과 압력의 영향을 연구하고 주말에는 가족 농장에서 텃밭을 가꾼다. 


부부는 직장 생활도 훌륭할 뿐만 아니라 가정생활도 환상적일 정도로 모범적이다. 또한 교우 관계도 원만하여 계절이 바뀔 때마다 친구와 이웃을 초대하여 키친 싱크 토크1)를 즐긴다. 선량한 부부는 그들에게 진심이 담긴 우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톰과 제리 부부가 행복을 대표한다면(프로타고니스트) 불행을 담당하는 쪽은 매리'다(안타고니스트). 주정뱅이와 말실수는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여서 매리는 늘 주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캐릭터'다.  철딱서니 없다고나 할까 ?  그녀는 술에 취한 목소리로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강조하지만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표와 기의가 어긋난 언어를 구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감기에 걸리는 일과 사랑에 빠지는 일보다 더욱 숨기기 어려운 것은 행복을 숨기는 일이다. 행복은 눈에 잘 띠는 형광색이다. 키친 싱크 리얼리즘 영화의 거장 마이크 리 감독은 영화 << 세상의 모든 계절 >> 을 통해 행복과 불행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 영화는 행복의 시점으로 불행을 관찰한다. 톰과 제리 부부는 불행한 사람들을 연민하며 그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연민에는 한계가 있다. 


매리가 톰과 제리 부부의 가족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자 부부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부부는 매리를 냉정하게 거절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웃과 동료를 초대했던 부부는 그해 겨울에 매리를 초대하지 않는다.  이 선량한 부부가 이웃에게 보내는 조건 없는 선의는 위악도 아니고 위선도 아니다.  그것은 타자라는 한계가 가지고 있는 운명적 배타성이다.  행복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을 위로한답시고 내뱉는 말은 불행한 사람에게 위로보다는 상처를 주기 쉽다.  행복한 사람은 그 사실을 잘 모른다.  왜냐하면 불행한 적이 없으니까.  


톰과 제리 부부의 완벽한 행복 때문에 자신의 불행이 더 커 보이는 매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불행이 클수록 톰과 제리 부부에게 매달리지만 그럴수록 불행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반면에 톰과 제리 부부는 이웃의 불행을 통해서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이 지점에서 누군가는 이 영화에서 민폐를 끼치는 사람은 매리가 아니라 어쩌면 톰과 제리 부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훌륭한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이 이 영화의 엔딩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모임에 초대받지 않은 매리는 초대받은 가족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한다. 


카메라는 가족 모임에서 소외된 매리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식탁 주변의 즐거운 소음이 묵음으로 전환될 때 어떤 관객은 비로소 매리에게 동일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가 끝나면 마치 압핀에 고정된 메모지처럼 꼼짝달싹 못한 채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자신을 본다. 신랄하지만 씁쓸하고 쓸쓸한 장면이다. 국내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10개 구단 응원가 중 가장 유명한 응원가가 한화 이글스의 "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 라는 사실에 모두 다 동의할 것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한화는 경기에 지기 위해 탄생한 구단. 


그런 구단의 팬들이 날마다 지는 경기를 보며 행복할 리는 없다. 하지만 자신은 항상 행복하다고 말한다, 불행했던 매리가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불행은 행복에 대하여 관심이 많지만 행복은 불행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 불행한 사람은 행복을 좇고 행복한 사람은 불행을 멀리하기보다는 오히려 곁에 두고 지켜본다. 너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니까 !  






​                              


1) Kitchen-sink Realism  :  이는 말 그대로 부엌의 싱크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리얼리즘 드라마를 말한다. 하층계급 가정 내의 문제점을 보여줌으로써, 영국사회 전체의 모순이 저절로 드러나도록 만든 사회성 짙은 드라마다. 가족 간의 이야기가 드라마의 중심에 있다 보니, 중요한 장면들이 주로 부엌에서 진행됐고, 그래서 키친-싱크 리얼리즘이라는 말이 생겼다. 영화의 대부분이 집 몇 채, 심하게는 집 한 채에 있는 몇 개 방과 부엌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작품들도 있다. 부엌. 우리에겐 여전히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영국의 리얼리스트들은 생존의 절대조건으로 부엌을 상정했고, 부엌에 정치성을 부여했다. 토니 리처드슨, 카렐 라이츠, 린제이 앤더슨 같은 쟁쟁한 감독들은 1960년대 영국 영화계에서 키친-싱크 리얼리즘을 이끈 선구자들이다. 잘생기고 멋진 사람들이 아니라 노동자, 빈민 같은 이 사회의 문제적 계급이 주인공으로 나와, 그들 특유의 투박한 악센트로, 마치 현실 그대로의 기록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덕분에 영국의 리얼리즘 미학은 확실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다만 트뤼포의 공세에 맞설 영화 담론의 대중적 영국 스타가 없었던 게 그런 편견을 심화시킨 측면이 있다. ( 한창호, 영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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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09-11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되십시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9-12 15:45   좋아요 0 | URL
막시무스 님, 감사합니다.
 


                              


침      입      자,  2 0 2 0 :









우리가 남이니 ?









                                                                                  독일어 unheimlich는 영어로 uncanny라는 뜻이다. 번역하면 " 낯익은 두려움, 친숙한 두려움, 편안한 두려움 " 되시것다. 낯익지만 두렵고, 친숙하지만 두렵고, 편안하지만 두렵다는 것은 일종의 형용 모순'인 셈이다. 


프로이트는 친밀한 대상에게서 느끼는 친숙함이야말로 심리적인 공포를 유발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하며 언캐니 개념을 정신분석학에 도입한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독일어 heimㅡ이 영어로 home이라는 데 있다. unheimlich(운하임리히)를 프로이트의 의도를 고려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번역하자면 unhomely( not homely ) 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를 공포에 떨게 만들고 억압하는 존재는 대부분 < 가정적 > 인 것이다. 무서운 이야기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 ? " 라는 대사 주체의 포지션이 엄마'인 이유이다. 


영화 << 침입자 >> 는 어렸을 때 실종된 여동생이 성인이 되어 집으로(heimㅡ)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남자 주인공은 여동생을 끊임없이 의심한다. 그녀는 과연 가족의 구성원일까, 아니면 침입자'일까 ? 이 영화에서 발생하게 되는 공포는 전적으로 " 운하임리히 " 에 기반을 둔 두려움이다. 관객은 어렸을 때 실종되었다가 성인이 되어 돌아온 여동생이 가족을 향해 내뱉을 대사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다." 내가 네 여동생으로 보이니 ? "  그것은 진부하다기보다는 장르에 충실한 클리셰'다.  과연, 이 여동생은 진부하지만 운명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그 대사를 내뱉을 수 있을까 ?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살해되면 경찰이 제일 먼저 의심하는 쪽은 가족이라고 한다. 평소 잉꼬부부로 소문이 자자해도 아내가 살해되면 남편을 의심하고, 남편이 살해되면 아내를 첫 번째 용의자로 의심을 한다는 것이다. 의심을 받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하지만 범죄학 통계는 경찰의 의심이 정당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렇기에 가족은 우리가 남이니 ? _ 라고 핫하게 말하기 전에 우리는 남이다 ! _ 라고 쿨하게 인정하는 것이 좋다. 가족 범죄는 대부분 < 우리는 남이다 > 라는 애티튜드에서 시작된 것 같지만 사실은 < 우리가 남이니 ? > 라는 원망에서 시작된 원한이다. 


가족 동반 자살도 사실은 가족 구성원을 각각의 개인으로 인정하기보다는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한 결과이다. 하물며 유사 가족 형태인 대안 가족은 말해서 무엇하랴. 현대 사이비 종교의 특징 중 하나는 신앙 공통체를 단일 가족의 형태로 형질 전환한다는 데 있다. 아버지 전광훈은 자신의 신도들에게 " 우리가 남이가 ? " 라고 핏대 세우며 외치지만 전광훈과 그 신도들에게 나는 진부하지만 운명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그 대사를 되돌려줄 수밖에 없다. "  우리가 남이지, 그러면 님이니 ? 닝기미, 조또...... 시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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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8-24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uncanny는 단순히 송곳니가 없는 뜻으로 알았습니다. ‘친숙한~’ 의미가 왜 들어갔ㄴ는지 골똘히 생각해 볼 기회를 주셨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8-27 15:09   좋아요 0 | URL
언캐니 개념이 꽤 흥미롭죠..ㅎㅎ
 



​                               


#     살   아   있   다    : 










좀비와 냉장고










                                                                                               좀비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 사람의 스탯(능력치)이 아니라 좀비의 스탯'이다. 좀비의 다섯 가지 능력은 다음과 같다. 시력, 청력, 주력, 완력, 지력, 정력(헤헤헤. 좀비에게 정력은 좀 그렇죠 ?)...... 


좀비도 다종다양해서 좀비물에 따라 시력은 상실했으나 청력이 발달한 놈이 있는가 하면 청력은 상실했으나 주력이 발달한 놈도 있다. 심지어 조지 로메로의 고전 좀비물처럼 다섯 가지 능력이 모두 퇴화된 좀비'도 있다. 좀비'라면 어디 가서 주눅 들지 않고 방귀 꽤나 낀다고 자부하는 나는 조지 로메로의 느려터진 좀비를 좋아하지만 세월이, 하....... 수상하여 뛰는 좀비만 사랑받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물론 야구에서의 5툴 플레이어(5 tool player)처럼 모든 공격 지표에서 최상위 능력을 발휘하는 좀비가 등장하는 좀비물이 가장 재미있을 것 같지만 


실상 허점이 없는 좀비'는 매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기자기한 서사를 제공하지도 못해서 장르에 탁월한 감독은 5툴 플레이어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사실, 좀비가 다섯 가지 능력을 모두 갖춘다면 그것은 좀비가 아니라 사람에 가깝다. 전광훈 사이비 종교인이 대표적인 좀비계의 5툴 플레이어'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K좀비'일 것이다. < 좀비물 > 이 좀비의 공격에 집중한 장르라면 < 생존물 > 은 생존자의 수비 능력에 집중한 장르다. 방어선을 구축해야 하고 구조대가 오기 전까지 생존 식량에 의지해 존나 버티는 것이다. 


영화 << # 살아있다 >> 는 좀비물이라기보다는 생존물 재난 영화에 가깝다. 이 영화는 좀비가 등장한다 뿐이지 재난으로 인해 아파트에 고립된 생존물의 특성이 강해서 짝퉁 << 김씨 표류기 >> 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 영화가 생존물의 꽃이라 할 수 있는 " 식량 구하기의 재미 " 와 " 턱없이 부족한 생존 식량으로 존나 버티기 신공 " 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좀비가 아파트 단지에 창궐해서 그곳을 탈출하기까지, 주인공이 한 달 동안 집에서 존버하는 이야기인데 상식이 있는 관객이라면, 조금 더 심하게 표현하자면 닭대가리가 아닌 이상,  이 설정은 생존물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왜냐구 ?!  냉장고가 있지 않은가 !   한국인은 평균 900리터 냉장고 한 대에 4인 가구의 1달 식량을 비축한다고 한다. 이것을 1인 가구로 전환하면 6개월분 식량을 냉장고에 보관한다. 여기에 한국인은 김치냉장고도 있으니 식량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   한국인에게는 몇 달은 먹을 수 있는 쌀도 있다.  만약에 당신이 영화 속 재난과 똑같은 일이 발생해서 문을 걸어 잠그고 생활해야 한다면 최소한 6개월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 속 주인공이 사는 집구석(명색이 한강 뷰가 보이는, 4인 가족이 사는 중산층 아파트)이 보관한 식량은 1인이 삼시 세 끼로 먹을 수 있는 3일 치뿐이다. 


이것을 열흘로 쪼개서 존나 버틴다네 ?  살펴보니 쌀도 없다.  아이고, 이런 집구석을 누가 이해하겠는가. 더욱 웃긴 것은 마실 물이 떨어지자 집에 있는 양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설정이다. 하. 뭐, 이런 수박 씨 발라먹을면서 시바스 리갈. 알코올이 체내 수분을 과도하게 배출해서 갈증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은 모르나 보다.  차라리 바다에 표류한 생존자가 갈증이 나서 바닷물을 배 터지게 마셨다고 해라.  바닷물 마시고 갈증이 해결됐어욧 ! 사정이 이러다 보니 이 영화는 생존물로서의 재미가 1도 없다. 오뚜기 라면 먹방에 양주를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으니 이게 무슨 서바이벌 영화'란 말이냐.  


무엇보다도 생존물 특유의 메이크업이라 할 수 있는 땟국물 줄줄 흐르는 화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유아인의 머리는 한 달을 존버했는데도 미용실에서 갓 나온 손님의 헤어스타일 같다. 그리고 웃을 때 치아는 얼마나 눈부시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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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100년 역사상 가장 쓰레기 같은 영화 두 편










형편없는 영화라고 해서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  형편이 딱한 사람을 두고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잘것없는 영화는 그저 연출 능력 부족으로 인해 만들어진 영화'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얼마든지 형편없는 영화에 대하여 비용을 지불하고 볼 용의가 있다. 명작은 명작대로, 망작은 망작대로 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 << 엄복동 >> 은 욕하면서 보는 재미가 매우 뛰어나다. 이 영화는 0.3초마다 욕이 튀어나오는 신비한 경험을 체험할 수 있는데, 고급 용어를 빌려오자면 불타는 욕동의 찬란한 경험'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하고 싶다. 그런데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영화를 경험할 때가 있다. 그것은 형편의 문제도 아니고("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 ") 취향의 문제도 아니다. 질이 낮은 영화는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지만 질이 나쁜 영화는 용서할 수 없다. 전자는 상품의 문제이지만 후자는 성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 100년 역사상 가장 쓰레기 같은 영화 두 편을 선정하라는 요청이 들어온다면, 나는 0.3초의 망설임도 없이 << 악마를 보았다 >> 와 << 국제 시장 >> 을 뽑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워낙 싫어하는 영화이다 보니 옛날에 기록으로 남겨둔 글이 있다. 그 글이 이 글을 갈무리하기로 한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질이 낮은 상품에 대하여 크게 분노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질이 나쁜 성품(을 간직한 사람)에 대하서는 크게 분노할 필요가 있다. 










1. 악마를 보았다






장경철과 한송이




                                                                                                          네이버 검색창에 " 악마를 보았다 " 를 입력하면 연관검색어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 간호사 > 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본 관객의 뇌리에 사면발니처럼 강렬하게 달라붙는 장면은 이병헌도 아니고 최민식도 아닌,

백의의 천사(간호사)가 장경철(최민식)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이다.  살려주세요 _ 라는 대사 외에는 이렇다 할 대사도 없던 그녀가 씬스틸러로 등극하는 순간이다.  당신에게 의뭉스러운 질문 한 개를 던져보자면  :  이 장면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한 것도 아니요, 명장면도 아닌데 관객은 왜 이 장면을 기억하고서는 애써 소환하려는 것일까 ?  감독은 인간 내면에 숨겨진 지옥도를 보여주고 싶다는 작품 의도를 내세웠지만,  정작 이 영화는 불알후드(brotherhood)의 강간 판타지를 충족시킬 뿐이다.  다시 말해서 관객은 " 지옥도 " 를 보는 것이 아니라 황홀한 " 판타지 " 를 경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장경철에게 강간당하는 간호사의 나이를 스무 두 살'로 설정한 것을 보면 감독이 숨겨둔 꿍꿍이를 읽을 수 있다. 화장실 벽낙서 서사'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성대상화가 스무살 무렵의 여자요, 직업군이 여교사와 간호사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감독이 이 장면에서 연출하려고 했던 것은 " (악마)본성 " 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 (남성) 본색 " 을 자극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저잣거리 입말로 무식하게 말해서 감독이 노린 것은 " 남성 관객을 꼴리게 만드는 것 " 이다. 에로 영화계의 거장,  틴토 불알스 감독'도 울고 갈 만한 에로틱한 장면 연출인 셈이다. 장경철이 간호사에게 질문을 던진다.

- 몇 살이야 ?
- 스물 둘이요.
- 어우 !  좋을 때네, 남자친구는 ?
- 네에 ? 없어요.
- 귀엽게 생긴 게(?) 많겠다.
- 네에 ?
- 사실은 어제 좀 재미를 볼 일이 있었는데 어떤 개또라이 새끼 때문에 망쳐 버렸어.




스물 둘이라......  더군다나 간호사 이름이,             한송이다.  문자 그대로 꽃이니 꽃 같은 여자'다. 뭐야, 이런 좆 같은 작명. 수현의 약혼녀 세현을 제외하고는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은 그 어느 누구도 이름을 부여받지 못했는데,  유일하게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간호사'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감독이 이 캐릭터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여자를 관상용 꽃에 비유하는 놈치고 제대로 된 놈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는 잰더 감수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각본가와 감독이 만들어낸 최악의 참사이다.

감독은 포르노 영화에서 흔하게 소비되는 장면(포르노 영화에서 간호사 복장은 망사 스타킹과 함께 가장 중요한 오브제다)을 연출해서 관객의 헤모글로빈이 남근으로 쏠리도록 유도한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았던 열혈남아는 어느새 열혈남근으로 변한다. 아아. 내가 이 영화를 두고 스너프 필름이라고 비난하는 이유는 장경철의 대사에 함축되어 있다. 장경철은 " 어떤 개또라이 새끼(이병헌) " 때문에 망쳐 버렸다고 궁시렁거리지만,  사실은 그 개또라이 새끼 때문에 몇 번이나 희생자를 강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국정원 비밀요원 수현은 " 쾌락의 포주 " 인 셈이다.

감독은 수현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여성 폭력과 강간 서사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그는 악마와 싸우다가 스스로 악마가 된 존재가 아니라 악마에게 희생당할 여자를 지속적으로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악질 포주'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윤리적 타락'이다 ■

 


 


2. 영화 국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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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이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


                                                                                                        영화를 " 더럽게 못 만드는 감독 " 이 있는가 하면 영화를 " 더럽게 만드는 감독 " 이 있다.  전자는 < 불후의 걸작(傑作) > 를 만들고 싶었으나 결심과는 달리 < 불우한 걸작(乞作) > 을 연출한 감독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 유형에 속하고, 후자는 이도 저도 둘 다 용서가 안 되는 유형에 속한다.

한마디로 윤제균 감독은 영화를 매우 더럽게 만드는 감독'이다. 이 방면에서는 강우석과 함께 독보적 발자취를 남긴 감독으로 남을 것이다. 질이 낮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질이 나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용서할 수 없다. 언어유희를 섞어서 말하자면 질이 낮은 영화는 上品의 문제이고, 질이 나쁜 영화는 性品의 문제이다. 전자가 영화라는 상품으로써의 물성'에 대한 지적이라면 후자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애티튜드'에 방점을 찍는다. 


영화 << 국제 시장, 2014 >> 이 천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이명박과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이유를 설명하기에 좋은 자료를 제공한다. 쉬운 말을 뱅뱅 돌려서 말했지만  :  뚜껑 열고 bang-bang 쏘면서 말하자면 윤제균 사단 영화는 대부분 " 좆같은 영화 " 다. 윤제균 영화는 코미디와 신파를 섞어서 < 한국형 ㅡ 패밀리 플롯 > 을 구성하는데, 그 맛이 똥맛이라. 윤제균의 초기 코미디 영화1)에서 코믹한 설정은 주로 폭력으로 점철된 슬랩스틱에서 얻는데 그 대상은 남성'이다.  << 두사부일체 >> 에서 대가리(정운택 분)는 계두식(정준호 분)에게 쉴 새 없이 맞는데 이 폭력은 주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렇기에 남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 아픈 척하는 웃기는 폭력 " 이다.  여기에는 리얼리티가 없다(슬래스틱 코미디 장르에서 리얼리티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아크로바트만 남을 뿐이다. 윤제균 감독이 신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요소도 폭력이다. 코미디 요소로서의 폭력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대상이 주로 여성'이라는 데 있다. 남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리얼리티 없는 몸 개그'라면 2)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 리얼리티한 폭력 > 이다.  영화 속 이은주(오승은 분)는 남성들에게 과도하게 구타를 당한다.  영화 << 1번가의 기적 >> 에서 하지원이 여자 복서 명란을 연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복서 명란은 남성들에게 마른 북어처럼 구타를 당한다.

이 아저씨가 만든 초기 영화 - 들에서 여자들은 오로지 맞기 위해서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영화 << 국제 시장, 2014 >> 은 명랑 코미디'라는 장르 때문에 매 맞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에서 여성이 어떤 방식으로 소모되는가를 살펴보면 보다 악질적이다. 흥남 철수 때 잃어버린 << 막순 >> 은 덕수네 가족이 불행해지는 단초를 제공하는 인물로 사용된다. 막순 때문에 아버지는 가족 서사에서 제거되어 그 후로는 유령으로서만 존재한다. 영어를 모르는 덕수가 투비 낫투비 _ 하며 방황할 때

덕수 아버지는 스크린 앞에 햄릿의 유령처럼 홀로그램으로 등장해서 이북 사투리로 이 종간나 새끼 ! 투비는 하되, 낫 투비는 허지 말아야지비. 아니그럼 ?  너는 이 가문의 장남이고 가장이야 !  _  라고 지껄인다.  김슬기 배우가 연기한 끝순이라는 캐릭터도 덕수 인생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 영화에서 끝순은 철딱서니가 없다기보다는 자신의 결혼 혼수를 위해 오빠를 사지로 보내는 악녀에 가깝다. 덕수는 끝순의 혼수를 장만하기 위해 월남으로 향한다. 덕수모'도 있으나 마나 한 여성 캐릭터'다. 덕수가 투비_ 할 것인가 낫투비 _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할 때마다 그가 호명하는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죽은 아버지 - 유령이다(어쩌면 진짜 유령은 죽은 아버지가 아니라 산 어머니인지도 모른다).

윤제균이 여성 캐릭터를 부정적으로 다루는 방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월남에서 다리를 잃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베트남 여자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장면으로,  결국 다리에 총을 맞는 일이 발생하고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잃는다. 국뽕 휘날리는 장엄한 서사의 유치찬란을 논하기에 앞서 이 장면은 매우 악질적이다. 덕수가  물에 빠진 여자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장면에서 생각을 멈추고, 그가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 벌어졌던 자살 폭탄 테러 사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 거리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했을 때 그를 죽음에서 구해준 이는 베트남 남자아이'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여자아이는 덕수를 죽음으로 이끌고 남자아이는 덕수를 죽음에서 구해주는, 이 선명한 대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이 장면이야말로 윤제균의 잰더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단서'다. 그가 배역을 선정하고 배분할 때 잰더 역할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했다면 이런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덕수는 항상 징징거린다. 그는 고민이 있으면 죽은 아버지 유령과 대화를 나누거나 친구 달구(오달수 분)와 상의할지언정 어머니와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  결정에 따른 통보만 할 뿐이다.  덕수가 "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 라는 대사를 내뱉을 때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 어쩌라고, 어 ?! " 

윤제균, 이 인간 영화 참 더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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