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도망치다시피 집을 떠나 강원도 속초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영화 속 파이란처럼 그곳에서 1년을 혼자 버텼다. 춥고 배 고팠다. 첫사랑은 아니지만 첫눈에 반한 여자와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0년 연애 끝에 헤어졌다. 첫눈에 반했던 그 여자 생각을 하며 동명항 방파제 앞 가게에서 밖을 바라보면 대설 특보'가 내려진 방파제가 보였다. 첫눈에 반한 여자와 폭설이라...... 어쩌면 나는 그 유배지'에서 파이란처럼 헤어진 정인'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강재처럼 저렇게 방파제에서 통곡 한 적이 있다. 노무현의 노제'를 다녀와서 동명항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방파제에 앉아서 통곡을 했다. 비단 노무현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노무현의 죽음 때문에 서글펐다. 이 양가적 감정을 당신은 모르리라. 그래서 그랬을까 ? 영화 속 파이란의 손끝, 파란 정맥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오늘, 약속이 있었으나 계속 잠만 잤다. 잠을 자면서 꿈속에서 결정을 했다. 오랜 고민이었다. 결정을 하고 나니 환해졌다. 최승자 시인의 시'처럼, 터널은 끝에 가서야 환해진다.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했다. 끝에 가서야 환해진다는 시인의 말, 요즘 계속 생선 가시'처럼 걸려 있다.

 

- 파이란, 3이라는 숫자 中

 

 


 

 

 

 

 

 

변호인 : 밥의 힘으로 일어서야 하는, 어떤 숭고한 직립

 

 

 

                                

  

 

 

 

 

 

그 시각 두 개의 얼굴 : 어제 나는 민주노총이 짓밟힌 줄은 전혀 몰랐다. 버스 기사'가 광화문에서 정차하지 않고 우회해서 돌아간다는 사전 고지를 하길래 고개를 갸우뚱했다. 버스 안에서 자꾸 송강호의 저 얼굴이 떠올랐다. 눈물 쏟아내도 통속이 되지 않는 저 배우는 배우가 아니라 귀신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집에 왔을 때, 뉴스를 통해 전두환의 사위인 윤상현의 활짝 웃는 얼굴을 보았다. 팥죽 먹었냐는 인사말이 내 목에 걸렸다. 영화 속 송강호는 노동자의 밥줄을 염려하는데, 윤상현은 노동자의 밥줄 따위는 신경 안 쓴다는 웃음이다. 묘한 대조'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아무런 연민 없이 웃는, 저 환한 웃음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쾌해서 내내 헛헛했다. 저 웃음은 헛것'이다. 귀신과 헛것'은 다른 것이다. 귀신은 무겁고 헛것은 가볍다. 무게의 있고 없음'이 귀신과 헛것을 나눈다.

 

 

아침 인사'이자 첫인사는 대부분 " 안녕하세요 ? " 로 시작한다. 그리고 점심이 되면 또 한번 안녕하냐고 묻기가 그래서 그냥 " 식사하셨어요 ? " 라고 묻는다. 전설적인 펑크 롹 뺀드 < 삐삐밴드 > 는 「안녕하세요」 라는 노래에서 " 식사하셨어요. 별일 없으시죠 ? " 라고 묻는다. 카메라를 향해 침을 뱉은 불온한 밴드'치고는 지나치게 예의바르다. 하지만 " 동방예의지국 " 어쩌구저쩌구할 때 이 예의가 그 예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에 진심을 담은 인사'가 어디에 있는가. 대부분 형식적인 인사이니 그/그녀가 밥을 먹었든, 안 먹었든 관심은 없지만 형식상 던지는 꾀죄죄한 관심'일 뿐이다. 자신의 좆끝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첩이 낳은 자식이라며 호부호형을 허하지 않은 홍길동 아버지인 양반-먹물-꼰대-어르신 연대'가 장악한 세상이니 이런 꾀죄죄한 안부조자 묻지 않는다면 양반-먹물-꼰대-어르신 연대로부터 싸가지에 밥 말아먹을 놈'이라는 소리 듣기 딱이다.  ( 됐고 ! )

 

안부를 묻는다는 측면에서 < 안녕하다 > 과 < 밥을 먹다 > 는 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안녕과 밥은 뿌리글'이거나 한 뿌리에서 나온 갈래 글'일 것이다. 고대 대자보 " 모두 안녕하십니까 ? " 라는 말은 곧 " 모두 식사하셨습니까 ? " 라고 고쳐 써도 된다. 나 혼자 배부르고 등 따스우면 다냐 ? 라는 속뜻이다. 안녕하지 못하다는 말은 결국 밥 앞에 평등하지 못하다는 뜻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안녕하냐고 물은 다음 밀양 송전탑, 비정규직, 철도 노조에 대한 근심을 이야기한다.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이 말을 믿을 사람은 오천 만 대한민국 국민 중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인간이 법 앞에서 평등하지 않다는 말은 곧 밥 앞에서도 평등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동일 근로 환경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안녕하지 못하다. 대한민국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지 않다. 대한민국 국민은 밥 앞에 평등하지 않다.

 

< 살인의 추억 > 에서 송강호는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면서도 괴물의 멱살을 잡으며 " 밥은... 먹고 다니냐 ? " 말한다. 이 영화의 주제는 바로 " 괴물도 밥은 먹는다. " 다. 그렇다, 짐승 같은 인간'도 밥은 먹어야 산다. 죄를 묻되, 적어도 밥그릇은 차지 말아야 한다는 인본주의적 생각이 송강호로부터 밥은 먹고 다니냐는 엉뚱한 대사를 치게 만든 것이다. 밥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비록 빌어먹는 거지라고 해도 그들은 밥을 먹을 권리가 있고, 괴물이라고 해도 밥을 먹을 권리가 있다. 사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된다는 말은 계룡산 꼭대기 구름 바위 위에서 뜬구름잡는 머털도사의 헛소리'다. 그래서 벼슬아치들은 그 알량한 박애'로 전두환과 노태우를 용서한 것일까 ? 한국인이 원수를 배부르고 등 따습게 만든 꼬락서니를 보면 대한민국 벼슬아치들은 노벨평화상을 1000000000번은 받고도 남을 것이다. 저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 죄를 미워하면 그 사람도 미워해야 한다. "

 

다만 죄를 미워하되 밥그릇은 차지 말아야 한다.  밥은 먹고 다니냐, 라고 말하던 그가 다시 밥'에 대해 묻는다. 영화 < 변호인 > 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글자'인 단어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로 이루어진다. 눈, 코, 귀, 입, 손, 발, 좆, 숨, 물 그리고 밥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다. 절대적 요소라는 측면에서 보면 숭고하기까지 한 단어이다. 만약에 송강호가 박해일에게 밥 대신 " 사탕은 먹고 다니냐 ? " 라고 말했다면 다 된 밥에 코 빠질 뻔했다. 반면 한 글자 단어에 비하면 두 글자 단어'는 부차적인 요소에 해당된다. 사랑과 미움 따위의 감정 단어가 두 글자인 이유는 살기 위해 목구멍을 넘겨야 하는 한 글자 단어들에 비해 사치스러운 감정이기 때문에 그렇다. 불교에서 말하는 삶은 < 겨우의 삶 > 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요구하는 삶도 겨우 살아가라는 가르침'이다.

 

부처와 예수는 서로 다른 말을 하는 성인이 아니라 같은 말을 하는 성인'이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한 글자'면 충분하다는 것'이 바로 < 겨우 - 살이 > 이다. 겨우-살이'가 처량스럽고 궁색하며 꾀죄죄하게 느껴진다면 먹물 꼰대처럼 멋지게 꾸밀 수도 있다. 최소주의적 삶'은 어떤가 ? 요즘 유행하는 A,B,C를 섞어서 미니멀리즘적 삶'은 어떤가 ? 다 같은 말이다. 입을 수 있는 < 옷 > 이면 충분하다. < 옷 > 대신 < 루. 이. 비. 통 > 이라는 네 글자를 탐하는 순간, 당신은 속물이 되는 것이다. < 변호인 >에서 송강호는 돈만 밝히는 속물'이다. 돈 많이 버니 좋은 것이다. " 뭐니 뭐니 해도 머니 많이 버니 좋은 것 아니겠니 ? " 그는 < 집 > 이라는 한 글자 단어를 버리고 < 아파트 > 라는 세 글자'로 만들어진 곳으로 이사를 간다. 가장 꼭대기 윗층으로 말이다. 그는 돈을 통해서 고졸'이라는 꾀죄죄한 콤플렉스'를 해소하고 신분 상승을 한 의지의 한국인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 사' 字 로 끝나는 유망 직종에 근무하는 변 ! 호 ! 사 ! 다. 그런 그가 ~士'를 버리고 ~人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국밥집 아들'을 변호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士(벼슬아치 사)를 버리고 같은 눈높이로 사람(人)을 바라본다. 군화발에 퍼렇게 멍든 육체 앞에서, 그 무수한 어린것들 앞에서, 같은 눈높이로 묻는 것이다. " 밥은 먹고 다니냐.... " < 국밥 > 은 비빔밥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하나로 담는 그릇이다. 음식에도 < 겨우 > 라는 철학적 접근이 가능하다면 국밥이야말로 한 글자 미니멀리즘이다. 함민복의 시 < 눈물은 왜 짠가 > 에서 시인의 노모'는 설렁탕 주인을 불러 국물이 짜다며 뽀얗고 말간 육수를 더 달라고 부탁한다. 노모의 속내는 가난한 아들에게 더 많은 국물을 주기 위해서이다. 투가리'라는 그릇 속에 담긴 국과 밥을 삼키면서 시인은 말한다. 눈물은 왜 짠가....

 

누군가 말했다. 송강호의 연기는 마치 사자후를 토해내는 것 같다고 말이다. 이 말에 동의한다. 송강호는 배우라기보다는 차라리 귀신에 가깝다. < 밀양 > 에서의 송강호 연기가 절제의 미학이었다면, < 변호인 > 은 눈물을 쏟아내는 신파의 미학에 가깝다. 송강호의 연기가 놀라운 지점은 이 " 쏟아내는 " 과잉 연기'가 통속적 파토스로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가지고 있는 미덕이며 아우라'다. 영화는 웃음과 눈물 사이를 잘 타고 넘는다. 다만 눈물이 흔하다 보니 절제미'는 떨어진다. 하지만 송강호의 연기'는 이 모든 것을 무마시키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 힘의 뿌리는 노무현일 것이다. 밥을 먹는 목적은 계급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침대에 편안하게 눕기 위해서 밥을 먹는 놈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나서 일터로 나가기 위해 밥을 먹는 놈이다.  송강호는 일어나기 위해 밥을 먹는 놈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민주화를 위해 싸운 송강호'가 재판을 받는 씬'이다. 법정은 그를 보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를 변호하기 위해서 부산 지역 변호사는 士를 버리고 人을 얻어 변호인 자격으로 법정에 앉아 그를 지지한다. 판사가 공동 변호인 명단'을 부른다. 그 호명에 따라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일어난다. 이 장면은 영화 < 죽은 시인을 위한 사회 > 에 나오는 그 감동적인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송강호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변호인의 직립을 바라보다가 울듯 말듯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게 된다. 적어도 침대에 편히 눕기 위해서 밥을 먹지 말자는 다짐.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일어날 힘을 얻기 위해 밥을 먹은 자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 그 숭고한, 어떤 직립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노무현을 생각할수록 자꾸 이명박을 생각하게 만든다. 살리에르, 모짜르트의 천재성과 대중적 사랑을 질투했던 인물. 나는 이명박과 살리에르가 자꾸 겹친다.

 

 

어제 나는 민주노총이 짓밟힌 줄은 전혀 몰랐다. 영화를 보고 나서 버스에 오르는데 버스 기사'가 광화문에서 정차하지 않고 우회해서 돌아간다는 사전 고지를 하길래 고개를 갸우뚱했다. 버스 안에서 자꾸 송강호의 저 얼굴이 떠올랐다. 눈물 쏟아내도 통속이 되지 않는 저 배우는 배우가 아니라 귀신이란 생각이 들었다. 살풀이였다. 그리고 집에 왔을 때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게 되었다. 뉴스를 통해 한때 전두환의 사위였던 윤상현의 활짝 웃는 얼굴을 보았다. 그가 방긋 웃으면서 내뱉은 팥죽 먹었냐는 인사말이 내 목에 걸렸다. 영화 속 송강호는 노동자의 밥줄을 염려하는데, 윤상현은 노동자의 밥줄 따위는 신경 안 쓴다는 웃음이다. 국밥과 팥죽,  묘한 대조'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아무런 연민 없이 웃는, 저 환한 웃음이 헛헛해서 쓸쓸했다. 저 웃음은 헛것'이다. 귀신과 헛것'은 다른 것이다. 귀신은 무겁고 헛것은 가볍다.

 

무게의 있고 없음'이 귀신과 헛것을 나눈다. 귀신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는 단지 외로운 자일 뿐이다. 하지만 헛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있다. 정작 두려운 존재는 귀신이 아니라 껍데기가 전부인 헛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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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미에르 2013-12-23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모 대표님 우문현답.

이른 새벽 출판사대표 선배모친의 장례식장에 다녀오며 택시를 탔습니다. 그런데, 택시기사님이 어제 경찰의 민주노총 사무실 진격에 대해 "세상에 이따위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 하며 저에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답을 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3 10:15   좋아요 0 | URL
전 어제 버스 기사가 광화문을 거치지 않겠다고 차에 오르는 승객들에게 통보를 하더라고요.
왜 그런가 했더니 그새 그짓을 했더군요. 정부가 말이지요. 시바, 영화 보는 내내 불편하고, 자꾸 그 생각나고....
참, 영화 보고 나오니 술 생각 나고, 혼자 순대국에 소주 먹자니 눈물 나고...

만화애니비평 2013-12-23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보고 왔습니다. 집에 가거나 혹은 시간되면 리뷰를 적어야 하는데, 마음이 아팠습니다. 울고 싶어도 울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울게 되는 순간 글을 적을 수 있는 에너지가 사라지기 때문이죠. 가슴 한 구석에 깊이 새겨진 분노와 울분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생각들이 이리저리 뒤죽박죽되는군요. 가기 전에 운명이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부림사건이 노무현의 인생을 바꾼 것이죠. 사람들이 미우나 좋으나 저에게 유일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가끔 진보라고 생각하는 분 중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욕하거나 비난하는데 거기에 대한 개인 사견은 존중해도 조금 답답한게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라면 아무 것도 제시해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대안이라곤 그저 희망조차 없습니다. 진보정의당에 활동하는 노회찬 심상정의원님을 좋아하는데, 그분들도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다가 지금 거기 당에 친노와 뭉쳤죠. 변호인을 보면서 진짜 한국 진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생각을 고쳐야 할 겁니다. 과정 없는 결과 없듯이 말이죠. 물론 결과론적인 부분이 강한 것이 세상이나, 씁쓸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3 12:47   좋아요 0 | URL
저는 만애비 님과는 달리 대통령 노무현'에 대해서는 비판적입니다. 그에게 튜표한 적도 없고, 노 정권 동안 그의 정책을 지지한 적 단 한번도 없습니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파이를 키우 것은 노무현과 김대중의 실정에 기반한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의 노무현은 지지합니다. 하지만 노무현 서거 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운 놈은 저입니다. 일종의 양가적 감정이죠. 그러고보니 저에게는 단 한 명의 마음 속 대통령이 없네요.

비의딸 2013-12-23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식사 하셨습니까.. 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3 13:20   좋아요 0 | URL
네에, 별일없으시죠 ?

만화애니비평 2013-12-23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기사 대통령 퇴임이후 그분의 회고록을 보면 발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더군요. 본인이 해결하지 못한 복지와 노동문제에 후회하고, 그런 실정이 되는 것은 실정될 수밖에 없는 내외부, 특히 구조적인 부분이 큰 것 같네요. 노무현 당시 경제가 망하는 이야기가 도는 것은 노무현보다는 노무현을 싫어하는 대다수 특권세력이라고 하니, 그저 먹먹.....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3 13:20   좋아요 0 | URL
노무현이 다른 인물과 다른 점은 염치'를 아는 정치인이었다는 점이죠. 이 점은 정말 훌륭한 미덕이죠. 김대중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실정을 부끄러워한 인간은 없었습니다. 이명박을 보세요. 한다는 짓이 해이에 나가 국가 전도사가 되겠다고 하네요. 뻔뻔함의 극치'죠...

ㅇㅓㅁㄷㅗㅇ 2013-12-23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어제 봤습니다 변호인
영화 좋았습니다
송강호 대단합니다 진정.

노무현 전대통령을 모티브로 삼았다는건
알고 보았고요

중반이 넘어가면서는
영화보는 내내 입도 속도 깔깔해지더군요
욱 하지 말기로 해놓고 욱 해지기도 했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3 17:41   좋아요 0 | URL
송강호 참...좋은 배우죠. 정말 송강호는 좋은 배우임.
제가 인정하는 배우는
송강호, 최민식, 임창정...

임창정'은 저평가가 되어서 그렇지
언젠가 작품 하나 만나면 대박날 위인입니다.
그는 자신의 연기로 작품 전체를 살릴 수 있느 몇 안 되는 배우입니다.
아직 빛을 못 봐서 그럼...
이제 코미디 작품은 빼고 진지한 작품 한두 개 더 하면 진가가 나타날 거예요...

엄동 2013-12-24 14:3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임창정!
진정 공감입니다



(여백의 美)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4 19:53   좋아요 0 | URL
오홋... 엄동 닏도 임창정 좋아하는군요.
우리 같이 임청장 팬 카페라도 가입해야겠습니다.

수다맨 2013-12-23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지웅 평론가도 (신파로 빠지기 쉬운) 이 영화를 살린 일등 공신이 송강호라고 하더군요

저 역시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양가적입니다. 굳이 크게 구분하자면 대통령 이전의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이후의 노무현 이렇게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의외로 '대통령 이후의 노무현'을 잘 생각하지 않던데-그냥 마음씨 좋았던 봉화마을 할아버지 정도로만 여기지요- 사실 노무현이 봉화라는 공간을 어떤 (살기 좋은) 농촌공동체로 만들려는 욕심이 있었던 듯합니다. 어쩌면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아나키스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풀뿌리 공동체의 단초를 마련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대통령 노무현은 무능했고(다수 여당과 공고한 지지율을 확보한 상태에서도 악법에 가까운 사학법과 국보법도 제대로 손대지 못했죠) , 본인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던 간에 친(親)신자유주의적이었죠. 비정규직 악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외국 자본의 무차별적 유입을 돕는 한미 FTA가 체결되었으며, 김영삼 시기 때보다도 많은 노동자들이 감옥에 구속되었지요. 곰곰발님 말씀처럼 오늘날 사회적 모순이 심해진 원인은 이미 노무현 정부가 마련해준 것입니다. 이것은 솔직히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가 성찰적 인간이고, 인간적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변호인" 같은 영화의 위상이 드높아지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3 17:38   좋아요 0 | URL
그게 바로 이 작품의 단점입니다. 만약에 설경구가 이 역을 했다면 ( 개인적으로 연기를 참 못하는 배우라고 생각 ) 이 영화는 그냥 질질 짜는 통속극'이 될 뻔했습니다. 이 영화는 송강호가 거의 다 끌고 갔습니다. 이동진 같은 사람은 김영애 연기를 칭찬하던데 전 오버라고생각했어요. 김영애 연기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송강호의 쏟아내는 연기를 빛내기 위해서는 오히려 김영애의 쏟아내는 연기를 자제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들거든요. 둘 다 쏟으면 아무래도....
이 영화는 대중영화이지 정치영화는 아니죠. 남영동' 뭐 이런 영화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찌 보면 노무현 코드가 흥행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장사꾼의 계산이 깔린 영화입니다. 그런데 다 집어치우고.... 그 모든 단점을 송강호가 다 흡수합니다. 굉장한 연기였습니다.

노무현에 대한 냉정한 시각이 필요하다고 보여줘요. 비정규직은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두고두고 문제가 될 소지가 있고, 에프티에이도 마찬가지죠. 그리고 모든 정권 통틀어서 농민이 자살을 한 수가 가장 많은 정권이 노무현 정권이었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은 확실히 무능했어요. 그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리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을 말이죠. 철도민영화, 강정 구럼비 마을 해군기지.. 이미 다 노 정권 때 이루어진 것 아닌가요 ? 하지만 그가 인간적이었다는 것을 쉽게 부정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는 확실히 다른 대통령과는 달리 인간적인 매력이 있었죠... 그래서 저는 늘 양가적입니다. 냉탕 온탕 마구 번걸아가며.. 마이죠..

꼬마요정 2013-12-23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곰곰생각하는발님~
쓰신 글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어제 저 웃는 얼굴 보면서 살이 떨려서 혼났습니다. 진정한 소시오패스가 아닐런지요.

지금처럼 이렇게 노무현 전대통령이 영웅시 되는 건 사실, 이명박이랑 박근혜가 만들어준 것 아니겠어요?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대통령이었던 시절에는 이렇게까지 지지받지 못했죠. 억울한 죽음이 많은 것들을 미화시킨다고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4 06:1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반사이익이죠. 상상을 초월할 만큼 퇴행되다 보니 노무현이 다시 그리워지기 시작한 거라 봅니다. 여기에는 일종의 " 지못미 " 도 작용했겠죠.... 팅커벨이신가 보군요. 꼬마요정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2013-12-23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윤상현은 전두환 딸과 이혼한지 오랩니다.
현재는 롯데가의 사위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4 06:16   좋아요 0 | URL
오홋, 그렇습니까.. 그럼 한때 전두환의 사우였던으로 바꿔야 할 거 같군요

rendevous 2013-12-28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잡설로 시작하면 살리에리에 대한 평가가 열등감으로 가득 차 천재를 질투하는 2인자의 아이콘에서 고전주의를 이끌었던 3인방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새로운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88만원 세대 읽으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고, 대통령으로 무능했다는 사실을 조금 알게 됐는데 그냥 이 영화만 봤을 때 송강호 씨의 연기 덕분에 정말 많이 흔들렸습니다. 뇌와 심장 사이 어떤 게 떨렸던 것 같아요. 억울하고 화나고 슬프고... 그럼에도 더 힘을 내서 무언가를 위해 '노동'해야 겠다는 의지가 솟아나서. 귀신 얘기하니까 괜시리 '김지하'가 생각나네요.... 씁쓸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02 21:12   좋아요 0 | URL
천재를 질투하는 평범한 재능... 드라마적이잖아요.
전 영화는 그럭저럭 보았습니다. 송강호가 아니었다면 아마
덤덤한 작품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영화 킹콩‘을 < 서로 사이즈’가 달라서 할 수 없는, 섹스리스‘에 따른 수컷의 욕구 불만 > 에 대한 영화’라고 말했을 때, 주위의 알싸한 냉기를 기억한다. 영화 킹콩‘은 성적인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한 < 사이즈 > 는 동종이 아닌 이종’에 대한 유머였다. 이 영화는 종간 교잡, 그러니깐 이종교배‘에 대한 서구 백인 사회’의 혐오가 반영된 영화‘다. 서구 백인 중심 사회’에서 보았을 때 킹콩‘은 유색인종’이다. 짙은 갈색에 콧대 낮은 얼굴‘은 명백한 흑인에 대한 은유이다. 그리고 킹콩의 “ 그것은 ” 얼마나 우람한가 ! 다른 말로 하면 거대한 흑인이 아름다운 백인 여성’에게 성적 욕망‘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런데 백인 중심 사회에서 백인 여성을 향한 흑인의 성적 욕망‘은 불경한 것’이다. 다른 인종 간의 교접‘은 금기’이므로 사회적 징벌은 불가피하다. 거세 아니면 죽음이다. 한류 스타 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 닌자 어세션 > 또한 할리우드 백인 중심 사회의 이종교잡에 대한 거부 반응’을 드러낸다. 할리우드 마초 영화 속 주인공의 섹스 파트너‘는 모두 백인여성들로 이루어지는데 반해서 비의 러브라인은 흑인여성’과 맺어진다. 사실 이 속내를 뒤집어보면 유색인종과 백인여성과의 섹스 씬‘에 대한 미국 백인 주류의 노골적인 거부’를 엿볼 수 있다.  백인 마초 영웅이 흑인이나 아시아 여성과 정사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는 수도 없이 보았지만 반대로 흑인이나 아시아 남성이 백인 여성과 섹스 하는 장면’은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은 할리우드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의미한다. 킹콩이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인종차별'에 대한 집단적 은폐'이다.

 

- 애타게 페니스를 찾아서 中

 

 


 

 

 

 

 

 

히든 싱어 : " 아버지는 필요 없어 ! "

 

 

 

 

           

                               

< 히든 싱어 >를 챙겨 본다. " 본방사수 " 를 할 정도'는 아니고 일요일 아침에 늦은 아침밥을 먹으면서 재방송을 본다. 아침 7시 이전에 아침을 먹는 습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내려온 집안 내력'이지만 일요일만큼은 9시가 한참 지나서야 아침을 먹는다. 게으른 고령화 가족이라고 손가락질하지 마라. 일반적인 가정의 풍경이리라. 이명박은 새벽 5시부터 일어나 벌레를 잡는 얼리버드형 인간에 가깝지만 부지런하다고 꼭 본받아야 할 인간은 아니다. 베토벤의 < 엘리제를 위하여 > 라는 멜로디가 서울시 분뇨차 때문에 똥냄새를 떠올리게 만들었듯이, < 테니스 > 는 각하 때문에 이미지가 안 좋아진 대표적 스포츠'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cm만 낮았어도, 나폴레 옹(翁)이 악성 치질만 아니었어도, 그리고 이명박이 새벽부터 일어나 테니스만 안 쳤어도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이 모양 이 꼴'은 면했을 것이란 소리다.

 

박근혜 정권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영국에는 "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죠, 호호호 " 라고 해서 유명세를 탔던 < 마리 앙투아넷 > 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이정현 씨'와 측근과는 말이 잘 통하면서 유독 국민과는 < 말이 안통하넷 ! > 이라는 군소리만 하는 통치자'가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공통점은 가는귀먹었다는 점이다. 이명박은 " 당신이 밉습니다 ! " 라는 국민의 소리를 " 당신을 믿습니다 ! " 라고 잘못 알아듣고는 신나게 주를 섬기고,  박근혜는 사람들이 " 철의 여인 " 대처'를 닮았다는 소리를 " 철없는 여인 " 으로 잘못 알아듣고는 화를 내서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든다. 이래저래 눈물이 앞을 가린다. 쌀이 없어서 지에밥과 누룩으로 버무린 막거리'를 마시며 이 글을 쓴다. 가족들이 모두 술을 좋아하다 보니 저녁에는 꼴뚜기처럼 팔팔한 정신으로 나갔다가 새벽이 되면 오징어처럼 흐느적흐느적거리며 집에 기어들어와 아침 10시 즈음에 일어나 밥을 먹는다. 그리고는 늦은 아침에 퉁퉁 부은 눈으로 < 히든 싱어 > 를 보며 희죽희죽 웃는다. 머리엔 까치집을 하고 말이다. 처음 이 방송을 보았을 때는 과연 일반인의 모창 대결'이라는 아이템이 지속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이디어는 훌륭하나 재능있는 일반인을 구하기는 힘들 거라는 계산이 깔린 의문이었다. 노래 잘하는 이도 드물 것인데, 하물며 원본을 완벽하게 재현할 아마추어가 어디 있느냔 말이다. 연말 특집'이라면 모르겠지만 매주마다 일반인들이 특정 가수를 똑같이 흉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 판단은 군걱정에 지나지 않았다. < 히든 싱어 시즌 2 > 는 모두 " 삐까삐까한 " 일반인이 나와서 오리지날'보다 더 능청스럽게 노래를 불렀다. 심지어는 신승훈과 조성모'는 일반인이 부른 모창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신승훈은 최종 결승전에서 탈락했고, 조성모는 2회전에서 일찌감치 떨어졌다. 보드리야르가 누누이 주장하던 원본'보다 더 진짜 같은 사본'이 등장한 것이다. 모든 돌발 상황에서도 깐족거리며 진행을 잘 할 것 같던 전현무 옹'도 " 조성모 편 " 에서는 사기꾼 < 시뮬라시 옹 >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사회자의 목덜미'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전현무 옹(翁)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시뮬라시 옹(翁) ! 도저히 당신의 그럴 듯한 흉내를 따라올 자는 이제 더는 없는 것 같소이다. 졌습니다.......  동촉하여 주시옵셔셔셔 ! " 전략적인 선택인지는  모르겠으나 모창 대회 참가자들은 모두 원본 가수'를 너무 흠모한 나머지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좋아서 그의 음악을 듣고, 듣다 보니 따라 부르고, 따라 부르고, 따라 부르고, 따라 부르다 보니 어느새 목소리가 비슷해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 프로듀서가 극의 감동을 주기 위해서 작성한 큐시트'에 따라 참가자들이 앵무새처럼 읊조렸을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진심'이 담긴 말이기도 할 것이다 ) 시청자는 진짜와 가짜'가 벌이는 한판 승부'를 지켜본다. < 히든 싱어 > 는  보르헤스 단편 < 삐에르 메나르, [ 돈키호테 ]의 저자 > 에 나오는 삐에르 메나르 씨'를 연상케 한다.

 

이 모창 대회에 출전하는 참가자들은 원본인 < 돈키호테 > 를 그대로 필사해서 < 원본 돈키호테 > 를 뛰어넘는 필사본을 만든 제 2의 삐에르 메나르 씨'다. 신승훈 모창자가 우상이었던 신승훈을 뛰어넘었을 때, 나는 불현듯 삐에르 메나르와 홍길동'을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해서 울화통이 터져 마당에 털썩 주저앉아서 고래도 아니면서 고래고래 외쳤던 서자. 두 주먹 불끈 쥐며 아버지가 만든 세계'를 경멸했던 자. 내 눈에는 팔팔만원세대인 스무살 청춘과 홍길동이 겹쳐져서 모창 대회 참가자'를 응원하게 되었다.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는 했다. " 시바, 길동이가 유산 물려달라고 떼를 쓴 게 아니다. 꼴에 갓 쓰고 수염 달았다고 양반 행세하며 유세를 떨지만 첩이 낳은 자식이라고 홀대하는 너희 양반 새끼들이 내 눈에는 한심해 보인다, 이 시발것들아 !

 

길동이는 그냥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싶고 형을 형이라고 부를 자유를 달라는 거시다. 속시원하게 말할 수 있는 자유 말이다. 길동이가 개동 아범 좆끝에서 나왔냐 ? 말해 보거라. 다 네 좆에서 나온 자식새끼 아니더냐 ? 말할 수 있는 자유, 안녕하지 못하면 안녕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는 거 아니냐 ? 호부호형을 허해라 !!!! " 그렇다, 나는 어느새 길동이와 팔팔만원세대'의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에게 삐에르 메나르처럼 오리지날(아버지)를 뛰어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위로하고 싶었다. 홍길동이 마당에 엎드려  읍소한 이유는 < 불초 > 때문이다.  흔히 " 불초 소생 어쩌구저쩌구...... " 할 때의 그 불초'다. ( 아버지를 ) 닮지 않았다는 뜻인데 이 말은 아들이 아무리 뛰어나도 아버지를 초월할 수는 없다는 꼰대적 발생에서 비롯되었다.  아버지가 < 갑 > 이고 아들은 < 을 > 이라는 것을 확실히 하고 가자는 뜻이다.

 

내가 영화 < 킹콩 > 에 대한 리뷰에서 " 성기 사이즈가 서로 달라서 섹스리스'에 이르게 된 수컷의 신경쇠약 " 이라고 정의해서 욕을 바가지로 먹은 적이 있는데, 사실 그 말은 농담이었다. 킹콩은 갑의 세계이자 아버지의 왕국'에 딴지를 건 반항아'다. 주류 백인 사회에 대한 흑형의 반란'이다. 검은 피부와 들창코'는 전형적인 비주류 유색인종을 연상케 한다. 킹콩은 아버지가 이룩한 화이트한 왕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온 다크한 존재'다.  주류 백인이 보기에는 킹콩은 불초자(불초 소생)이 아니다. 킹콩'은 아버지인 < 갑 > 의 세계를 초월한 < 을 > 이다.  킹콩은 불초 소생'이 아니라 인간인 아버지'를 능가하는 초월자'다. 그래서 주류 백인은 탱크와 비행기 끌고 와서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으시단다. 아버지란,  그런 존재다. 당신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해서 원통이 터지지만, 아버지는 당신을 삑사리'로 취급한다. 보다

 

더  자세하게 알고 싶은 사람은 이 글을 참조하길 바란다. http://blog.aladin.co.kr/749915104/6475765 ( 쉰들러 리스트를 보며 조형의 원리를 생각하다 )

 

이러한 아버지와 아들의 서사'는 영화 곳곳에서 나타난다. < 프랑켄슈타인 > 도 마찬가지다. 똑똑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인간을 복제하는 데 성공하는데 이 녀석의 힘은 아버지인 자신을 능가한다. 아버지의 힘으로는 도무지 통제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초월자 아들 서사에 대한 공포는 < 오이디푸스 > 신화가 시발점이 된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가 오이디푸스를 살해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들이 자신을 죽이고 왕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아버지인 자신보다 힘이 쎈 존재인 것이다.   이처럼 아버지'는 초월적 아들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검열하는 장치를 끊임없이 제도화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박정희 신화에 대한 숭배'도 < 불초와 초월의 관계 > 로 해석할 수 있다. 역사의 치명적 얼룩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지지자들이 박정희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이유에는  초월적 아들에 대한 공포와 절대적 아버지에 대한 향수, 나아가 애착에 따른 분리 불안 증후군이 원인이다.

 

이 증후군은 부모(주인)과 분리될 때 병적으로 불안한 공포를 느끼는 아이(애완동물)에게서 자주 발생하게 되는데 과도한 애착이 그 원인이다. 유치원에 갈 때 떼를 쓰거나 주인이 집을 나가면 불안해 하는 개들은 모두 이 분리 불안 장애를 겪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아버지(주인)에게 복종함으로써 사랑을 확인하려는 불초자다. 불초 소생이다. 그런 측면에서 박정희의 아들인 지지자들은 초월적 아들에 해당되는 킹콩, 헐크, 프랑켄슈타인의 창조물, 로보트과는 상반되는 인물형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어버이 연합을 중심으로 한 극우 보수파의 박정희 숭배'는 전형적인 분리 불안 장애'에 따른 과도한 애착이다. 이 애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들은 박정희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아들을 더욱더 경멸하게 된다. 그들은  새파랗게 어린 놈들을 빨갱이'라거나, 혹은 사탄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박정희는 당신의 아버지가 아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당신을 낳아주시고 기르신 분이지 박정희'가 아니지 않은가 ? 남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야말로 불효자'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너 때문에 병석에 누워계신다. " 보고 싶다 아들아. 모든 것 다 용서하마. 돌아오라, 아들아. " 아버지가 용서한다고 하지 않은가 ! 얼른 집에 가라. < 히든 싱어 > 는 필사본이 원본을 압도하는 재미가 있다. 다크한 킹콩이 히마리 없는 백인과 < 1 대 100 > 으로 맞짱을 뜰 때, 우리가 킹콩을 응원하는 이유는 주류가 만들어놓은 불초라는 벽을 무너뜨릴 초월'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 사령부의 대선 개입이 명백한 데도 불구하고 < 혐의 없음 > 이라고 말하는 아버지는 필요 없다. 오히려 히마리 없고 꾀죄죄한 아버지와 맞짱을 뜨려는 불온한 < 초월> 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아니다. 당당할 필요가 있다. 뻔한 거짓말을 뻔뻔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아버지는 지나가는 씀바귀에게 줍시다. ( 끗 )

 

 

 

 

 

 

덧 )

본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여담이지만 슈퍼스타 케이 출신의 허각.. 아, 히든 싱어 할 때네... 얼릉 보고 나서 다시 ㅆㄱ쓰게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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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 2013-12-22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뭐야, 완전 재밌어 ㅋ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3 05:21   좋아요 0 | URL
무플방지위원회에서 나오셨군요.. 후후.....
재미있으면 댓글이 많이 달릴 터인데 없는걸 보니 재밌는 글은 아닌 거 같습니다.
피비님 거짓말했으니 국정원에 신고하겠습니다. 거짓말하는 사람도 종복임..

pB 2013-12-23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페루애님 저말고 피비 닉네임 가진 이웃이 또 있으신가요? 저는 위 덧글 쓴 적이 없는데.. 같은 닉네임이네요.
왠지 기분이 별루네요...ㅋ_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3 17:42   좋아요 0 | URL
오홋 ! 그러네요.... 우연의 일치일까요 ?
내가 피비 님을 특별히 편애하니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 같지만...
어쩌면 저 윗분도 오래전부터 피비 라는 닉네임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해요...
ㅎㅎㅎㅎ. 하여튼 피비 님 좀 당황했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dkdn 2014-03-02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dkdn tlqkf qortnxlsms...

aaaaaa 2014-03-02 0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whdqnrdms whEh slrk whdqnrdlwl qudtls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와 대자보 !

 

 

           

                             

 

 

 

대자보'는 大, 字, 報 다. " 대학가에서 내붙이거나 걸어 두는 큰 글씨로 쓴 글( 네이버 국어사전 ) " 이다. 유래는 중국 인민이 자기의 견해를 주장하기 위해 큼지막하게 써붙이던 벽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깐 일종의 벽보'요, 저잣거리에 내걸린 방(榜) 이다. 대자보에 실린 내용은 대부분 귓속말로 소근소근대는 감성'보다는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 진영 논리를 대변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진영 논리'는 피를 뜨겁게 달굴지언정 그 확장성에는 한계'가 있다. 운동권이라는 자장 안에서만 울림을 준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 " 안녕 대자보 현상 " 은 그 양상에 매우 다르다. 감성'에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 " 라는 안부가 대중의 눈물샘을 건드린 것이다. 신파'라고 해도 좋고 통속이라고 해도 좋다. 누군가는 불순한 정치 세력의 개입'이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 말을 믿을 사람은 별로 없을 듯싶다.

 

< 벽보 > 라는 낱말이 주는 느낌에서 알 수 있듯이, 대자보'는 소통을 전제 조건'으로 한 메시지'가 아니다. 일방적인 게시, 통보, 알림'이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응답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다양한 울림으로 도착했다. 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메아리'를 향해 누군가는 다시 응답했다. 그리워서 허공을 향해 " "오갱끼데스까(おげんきですか)? " 라고 물은 안부가  "와따시와 갱끼데스(はたしわ げんきです)." 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안녕하지 못한 세상에서 안녕하냐고 묻자 안녕하지 못한 세상이어서 안녕하지 못하다고 대답했으나 속내는 서로에 대한 안부'이다. 운동권이 머리띠와 걸개 그림 그리고 불끈 쥔 주먹으로 연대했다면 < 안녕 > 이라는 감성 코드'는 일기처럼 쓰여진 손편지로 연대를 하기 시작했다. 선동의 언어'가 아닌 사랑의 언어'로 말이다.

 

세상이 하, 수상해서 답답한 마음에 말을 할 리 없는 벽을 보고 외쳤으나 벽이 대답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프랑스어 /mur과 사랑/amour은 닮았으니깐 말이다. < 안녕 대자보 현상 > 을 두고 여의도 정책 연구원'은 이 기괴한 현상'을 어떻게 분석해야 될지에 대해 난감할 것이다. 불순 세력의 개입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감성적이며 종복 좌파의 선동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여성적이다. 더군다나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이 안녕이라는 현상에 더 많이 반응하는 것을 두고 혼란스러울 것이다. 혹시 여의도 정책 연구원'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들에게 이와이 슌지의 < 러브 레터 > 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권하고 싶다. 그리고 나서 < 안녕 대자보 현상 > 을 분석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영화 속 주인공 후지이'가 아버지를 잃고 나서 앓는 독감은 대한민국 20대 젊은이가 노무현을 잃고 나서 앓는 독감과 비슷하다.

 

사랑과 감기의 공통점은 숨길 수 없다는 점에 있고,  influenza/감기와 influence/감응력의 공통점은 강력한 전염에 있다. 손편지처럼 쓰여진 대자보는 20대 젊은이가 앓고 있는 감기'다. 전에 써두었던 < 러브 레터 > 라는 글에서 부분 발췌해서 올린다.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45773

 

영화 속 주인공 후지이는 시종일관 독감을 앓고 있다. 카메라가 그녀의 사연을 훑으면 몇 년 전에 독감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알려준다. 지금 딸은 죽은 아버지가 앓던 독감을 앓고 있다. 정신과 의사라면 후지이의 독감 < 강박 신경증 > 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그러니깐 후지이가 앓고 있는 감기의 원인은 독감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 아니라 죽은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에 따른 집착이 원인이다. 후지이는 아버지의 죽음을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꾸 기침을 흉내낸다. ” 그녀는 기침을 흉내 냄으로써 죽은 아버지를 계속 상기시킨다. 아버지의 몸 속에 있던 바이러스는 고스란히 딸의 몸 속으로 침투한다. 그런데 여자 후지이의 상황은 묘하게 여자 히로코와 겹친다. 히로코의남자친구는 죽은 후에도 히로코에게 영향을 미친다. 살아 있을 때보다 더 강력한 감응력이다.

히로코의 몸 속에는,이승에서 저승으로 보내지 못한, 2년 전에 죽은 후지이가 있다. 내 안에 너 있다. 애도 행위는 슬픔의 절차를 통해서 타자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보내는 태도인데, 여자 후지이와히로코는 애도라는 절차 과정 없이 바로 우울증에 빠져서 죽은 타자()은 그녀() 곁에서 떠나지 못하고 맴돈다. 그래서 죽은 자는 산 자의 몸 속에서 산다. influenza/감기와 influence/감응력의 공통점은 강력한 전염에 있다.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어서 쓰지 않으려고 했으나 이 문장에서는 가장 적절한 표현인 것 같아서 인용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과 감기에 걸린 사람의 얼굴은 숨길 수가 없다. 그들은 심한 몸살을 앓는다!히로코와후지이는 같은 병을 앓고 있다. 그들은 매우 강력한 하나이다. 히로코는 우울증을 앓고 있고, 후지이는 독감을 앓고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날마다 훌쩍인다는 점이다.

영화는 히로코가 죽은 남자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애도로 돌아서서 그를 용서하는 것으로 끝난다. 동시에 오타루첩첩산중 얼음 골짜기 마을에 사는 여자 후지이도 독감을 떨쳐버리고 건강을 찾는다. 감독은 이 장면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면서 주술의 동일화를 강조한다. 드디어 그들은 사랑하는 남자를, 사랑하는 아버지를보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뽑으라고 하면 백이면 백, 메아리 장면과 독서 카드 장면을 뽑을 것이다. 히로코는 사랑하는 사람을 삼킨 설산 앞에서 이렇게 외친다. “ 잘 있나요 ?“ 이번에는 메아리가 된 죽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 잘 있나요 ?“ 여자는 답한다. “ 전 잘 있어요 !“ 남자도 답한다. “ 저도 잘...있습니다 !“ 워낙 유명한 장면이어서 잊혀지기 힘든 장면이다. 이 영화에서 메아리는 매우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한다. 과학 시간에 졸지 않고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라면 메아리의 원리를 알고 있을 것이다.

소리가 산이나 벽에 부딪혀서 되돌아오는 것이 바로 메아리. 히로코가 설산을 향해 잘 있나요 ? 라고 부를 때, 그녀의 소리는 설산의 벽에 부딪혀서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것이다. 설산의 벽이 사랑하는 사람을 삼킨 주체라는 점( 남자는 등반 중 사고로 죽는다. ) 을 감안한다면 이 메아리는 사랑하는 남자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히로코는 남자가 자신의 곁을 떠난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그의 안부를 묻는다. 그것은 < 당신이 나만 남겨두고 내 곁을 떠날 수 있어 ? 어떻게 그럴 수 있어 ?> 라고 화를 내는 것과는 다르다. 그녀는 지금 애도를 한다. 이처럼 사랑과 용서의 시작은 바로 발화이다. 사랑이란 주고 받는 것이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편지의 소통 기능처럼 말이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사랑한다고 외쳐야 한다. 그래야지 설산도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현대 정치사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억될 < 노무현의 죽음 > 도 이제 4년이 지났다. 하지만 쉽게 잊기에는 지나치게 폭력적이었다. 애도의 기간은 없었다. 7월의 우기처럼 우울'이 집요하게 길게 이어졌다. 후지이'가 죽은 아버지를 잊지 못해서 감기를 흉내 내고 히로코가 죽은 애인을 잊지 못해서 우울증에 빠지듯이, 대한민국 20대 청춘 또한 감기를 흉내 내거나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집단적 감염이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슬픔을 나누지 못하고 혼자서 간직하면 우울이 된다. < 안녕 대자보 > 에서 그들이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며 안녕하냐고 묻는 것은 일종의 애도'다.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놓아주고 내 이웃에게 눈길을 돌리자고 제안한다. 혼자서 간직하던 슬픔을 이제는 나누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나도 당신에게 묻겠다. 오갱끼데스까(おげんきですか)? " 이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당신이 할 차례다.  "와따시와 갱끼데스(はたしわ げんき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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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1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21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누피 2013-12-21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재의 달인에 선정되셨 군요. 당연한 일이라 사료됩니다.
축하드립니다. ^_^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1 16:24   좋아요 0 | URL
긁적긁적... 남는 게 시간이다보니... ㅋㅋㅋㅋㅋㅋ.

행인 2013-12-21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박수치고 싶은 글이에요. 러브레터 다시 보고 싶네요.
짝.짝.짝.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1 17:21   좋아요 0 | URL
행인, 이게 얼마 만이오 ! 연락 주시구랴.. 술이나 한 잔 합시다..

행인 2013-12-21 17:2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ㅋㅋㅋ
오쉬프님이 따라 나온다고 할까바 안됩니다.
근데 행인은 저 말고는 없나 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1 17:28   좋아요 0 | URL
제목 아래 보면 네 닉네임 옆에 우편엽서 이모티콘 있으니 그거 누르면 메일이 됩니다.
연락 주시오. 행인이 뭐 더 있겠소..

행인 2013-12-21 23:4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오늘 글 좋았어요.

제가 기분이 그랬던 듯.

곰발님은 심리 분석 쪽으로 참 감동적인 글을 쓸 때가 있어요.

전 요즘 사람들 잘 안 만나요.

자폐끼가 돌고 있네요.

가끔 보다가 많이 웃고 그러는 글도 있습니다.

ㅋㅋㅋ

뭔 글 이었더라?

되게 많이 웃은 거 있는데 ㅎㅎ

안녕히 주무십시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2 04:10   좋아요 0 | URL
자폐 모드라.... 고독이 몸부림을 칩니다그려...
얼릉 깨우치고 명랑 모드로 오시기 바랍니다.
알라딘 시스템이 하도 후져서 자기가 작성한 덧글 확인도 못함..
더군다나 검생창은 완전 개판이어서
차라리 네이버에서 찍고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알라딘 페이퍼 보고 들어옵니다.
제가 이런 낙도에 삽니다..

수다맨 2013-12-21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도 경탄이 나오는 페이퍼입니다.
알라딘이 곰곰발님께 매달 책값으로 (적어도) 이십만 원씩 줬으면 좋겠군요. 제가 알라딘(사실 이곳도 문제가 상당히 많다고 생각하지만)을 매번 찾는 이유를 마련해주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2 04:11   좋아요 0 | URL
아마 저 때문에 여길 찾아오는 사람이 국정원 직원 수보다 많을 겁니다. 국정원 새끼들으 돈 받고 댓글 달지만 적어도 익명으로 저를 찾아온 사람들은 돈 안 받았다고 댓글도 안 달더군요.. 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수다맨 님에게 살짝 빈정 상할려고 합니다. 이십 만원이 뭡니까.
적어도 알라딘에서 저에게 매달 이천 만원씩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다맨 2013-12-22 06:12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알라딘에서 책값으로 이십만 원, 술값으로 이천만 원씩 곰곰발님께 주면 될 듯합니다.
알라딘 이놈들 파워 블로거에게 그 정도 지출은 해줘야죠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2 06:26   좋아요 0 | URL
봤냐 ? 알라딘 !!! 책값으로 이십만 원 주고, 술값으로 이천만 원 내놔라 !!!!
TTB 수익이 한달에 700원이 뭐냥.. 내가 그지냥 !!

다소 2013-12-2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ttb 수익 30원 받아본적도 있어요. 캬하하하항


요는 그게 아니고, 이 글 좋습니다.
내인생의 영화에 '러브레터'도 들어가는데, 그게 이렇게도 연결되네요. 안부를 묻고, 용서를 하고, 다시 털고 일어나야 하는 때... 어제 본 '변호인'이 다시금 떠오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2 11:35   좋아요 0 | URL
전율이네요. 알라딘이 알라디너를 모욕하는 겁니다.
30원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당신들 다소 님을 십원짜리로 생각하는 거 아니냐 !!!!
클릭 당 만 원으로 올려달라 ! !!!!!!!!!!!!!!!!!!!!!!!!!!!!!
 

 

 

 

 

 

 

마더 ㅣ 식물은 무섭다 ?

 

 

 

 

예리한 눈썰미‘를 가진 관객이라면 봉준호가 감독한 영화 마더‘라는 제목이 머더’의 숨은 뜻이라는 사실을 쉽게 간파했을 것이다. 이 은유는 은유라고 하기에는 너무 노골적으로 속보이는 직유이다. 그러니깐 영화 속 어머니는 살인하는/머더 어머니/마더‘이다. 동시에 양육과 사냥을 겸하는 암수한몸’이다. 아니다, 정정하겠다. 사냥 영역으로 확장하는 모호한 암컷‘이라고 쓰겠다. 각자의 성-역활'은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를 겪으면서 서로 섞인다. 사실 김혜자'라는 배우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선 배우이다. 신경쇠약직전의 배우' 이다. 다만 우리가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영화 마요네즈'에서 보여준 김혜자의 연기'는 불안한 눈빛, 신경질적인 얼굴 근육의 떨림, 그리고 병적으로 연약한 목소리'는 뭔가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를 관객에게 전이시켰다. 전무후무한 배우였다. 어쩌면 전설적인 베티 데이비스'의 악녀 역'을 능가할지도 모른다, 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던 그녀가 영화 마더'에서 기괴한 - 엄마 역을 연기했다. 봉준호, 그는 늘 탁월하다.

 

그녀가 일하는 곳'은 약재상'이다. 각 식물의 뿌리, 열매, 잎을 분류하고 보관하는 곳으로 그녀는 온전히 식물의 영역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러니깐 이곳은 식물의 서지학'이라 불릴 만한 곳이다. 하지만 동시에 식물의 시체안치소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식물의 사생활'은 뒤집어 보면 놀라울 정도'로 폭력적이다. 자신의 몸에 치명적인 독'을 품은 것은 동물이 아니라 식물의 독성이다. 흔히 우리가 잿물이라고 하는 독 ( 마시면 죽는다. ) 은 식물의 죽은 몸인 재에서 추출된 성분이 아니었던가 ?

 

입 구에서, 뿌리 근' 까지 : 김혜자는 아들 원빈의 섭취에서 배설까지의 전 과정을 관찰, 기록, 처방한다. 이 장면에서 아들은 보약'을 마시면서 담벼락에 소변'을 본다. 그러자 여자는 아들의 배설되는 구멍'을 유심히 바라본다. 口에서 根 ( 아무래도 이 글을 읽는 당신, 이 한자 모를 것 같다. 뿌리 근‘이다. ) 까지 ! 어머니는 순환의 이상 유무’를 체크한다. 이 지점에서 관객은 수상한 모자‘의 관계를 의심하게 된다. 은밀한 부분을 볼 수 있는 시선의 자유는 곧 우월적 신체 소유권자-들이다. 우리가 아우슈비츠 와 미 포로수용서에서의 이라크 포로 학대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권력자는 노예의 벌거벗은 신체'를 마음대로 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녀는 그동안 헌신적으로 남편 없이 외아들'을 돌본다. 어화둥둥, 내 새끼. 어화둥둥, 내 새끼 ! 엄마에게 있어서 아들 도준은 온실 속 화초다. 아들에게 물을 주자 물은 곧바로 뿌리'를 통과한다. 아들의 뿌리 ( 아들의 뿌리'를 곧이곧대로 한자로 표기하자면 남근/男根이다. ) 가, 촉촉하게 물에 젖는다 !! ! 입에서 똥구멍까지, 섭취에서 배설까지 신속하게 진행되는 이 순환은 동물의 소화 기관'이 없을 때에만 가능한 설정이다. 말 그대로 아들은 온실 속 화초이다. 어쩌면 그녀는 아들의 소화 기관을 제거했는지도 모른다. ( 아들의 고백으로 밝혀지지만 어머니'는 아들에게 독초제'를 먹여서 장기를 불태운다. 28살의 아들이 5세의 지적 수준에서 성장이 멈추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 수상하다. 이들의 관계. 바로, 이 지점. 라캉을 인용하자면 얼룩'이다. 틈이며 균열이다. 뭔가 꼬였다는 뜻'이다 !

 

빗금 친 아버지 A ,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는 아들 : 남편 역'을 담당하는 28세의 아들'은 사실 5세 전후로 성장'을 멈춘 상태'이다. 구순기와 항문기 사이에 놓여있는 존재'이며 발기하지 않는 페니스를 가진 존재이다. 딱딱한 존재가 아니라 물컹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 마더에서의 모자 관계는 성관계는 없다, 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보면 어느 순간 서편제의 플롯과 얽힌다. 서편제에서는 아버지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딸을 눈을 멀게 하지만 영화 마더'에서의 어머니'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아들의 성장을 멈추게 한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어머니는 강제로 아들의 성장'을 멈추게 했을까 ?

 

 

프로이트는 욕망의 삼각형'에서 그 관계망'을 아버지 - 어머니 - 아들'로 설정했다. 처음부터 딸'은 배제되었고 프로이트 스스로 말했듯이 그는 여성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 여성은 알 수 없는 nothing'이었다. 그러니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처음부터 여성이 배제된 텍스트'였다. 어머니'라는 지위, 즉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 안에서만 여성은 분석되어졌다. 완전하지 않은 텍스트였던 셈이다. 하지만 영화 마더'는 오히려 위의 욕망의 삼각형'에서 아버지'를 빗금 친다. 아버지의 자리를 부재 중'으로 남겨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자 모자 관계'는 기괴하게 엮인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원빈은 엄마와 떡친 아들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수상한 관계'다. 김혜자는 남편의 자리'에 원빈을 놓고, 원빈은 애인의 자리에 김혜자를 놓는다. 성-관계'가 있었는가, 없었는가'는 의미가 없다. 서로 빈 자리를 채웠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그들은 서로의 욕망을 채운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성 관계의 유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렇듯 관계의 지정학이 오류를 범하자 문제는 심각해진다.

 

▷ 죽음의 저장소 , 건초 약재상 : 이곳은 죽은 식물/여성-들의 집합소다. 다만 피비린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다른 살육장과는 다를 뿐이다. 빅-마더 김혜자는 작두로 식물의 목을 자른다. 울대 없는 성대'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이 쏟아진다. 그러니깐 김혜자는 식물들의 목을 자르는 도살업자 - 괴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종 살인’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녀는 사냥 영역으로까지 확장하는 모호한 여성‘이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동물 가면'을 숨긴 채 식물-되기'를 재현하고 있거나 식물성을 버리고 동물-되기'를 준비하는 길짐승'이다. 하, 수상하다. 처음부터 그녀는 알 수 없는 존재’였다.

 

▷ 영화 에이리언과 괴물' : 이 영화에서 가장 공포스러웠던 것은 디자이너 기거가 창조한 남근을 닮은 에이리언'이 아니라, 그 알'들을 품은 저 거대한 동굴'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두려움의 본질은 날뛰는 괴물의 실체'가 아니라 장소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괴물'이 아니라 괴물을 품은 한강 철교의 내부'다. 그렇다면 이 동굴/내부'의 은유는 무엇일까 ? 정답은 여성의 거대한 자궁'이다. 불임에 대한 남성 컴플렉스'는 생산의 공간인 자궁'에 대한 두려움을 낳았다. 사실 세상의 모든 괴물은 여성형'이다. 거대한 자궁에 대한 경외'다. ( 위의 이미지와 이 스틸사진은 기분 나쁘도록 닮았다. )

 

 

 

리플리 ! 당신, 배 배배배배배 배신이야. " : 지금까지의 영화이론은 공포영화에서의 괴물의 실체'를 남성'이라고 규정지었다. 하지만 나는 이 생각'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공포영화는 괴물-남성'이 여성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괴물-여성'이 사회 전체'를 상대로 히스테릭을 부리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괴물 영화 혹은 난도질 영화에 나오는 공격자의 공통점은 가면이다. 이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데 이 가면'은 모두 자신의 얼굴과는 다른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니깐 가장 무시무시한 가면을 쓴 괴물일수록 가면 속의 얼굴은 선량한 얼굴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을 공격하는 괴물 / 공포영화 속 남성'은 사실 남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는 가면을 쓴 여성이다. 그러므로 영화 속 모든 괴물은 여성이다. 에이리언3'에서 시고니 위버'를 공격하는 퀸 에이리언의 행위는 여성 주인공을 공격한다기보다는 여성성을 스스로 거세한 주인공을 응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머리를 삭발하는 행위'는 곧 남자와 섹스하지 않겠다는 맹세이며, 생산 주체의 포기 선언'이다. 퀸 에이리언'이 리플리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 당신 배. 배,배,배,배, 배신이야 ! "

 

 

 

 

이 영화에서 주인공 마더'는 얼핏보기엔 자신의 모성 역활'을 모범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세상에나 ! 이 영화를 지극한 모성애'로 이해하다니, 내가 보기엔 그 정반대'다. 이 영화는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이며 영역 가로지르기'에 대한 재미있는 보고서다. 그녀는 아들과의 오이디푸스적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식물에서 동물-되기'를 이행 중에 있는 괴물'이다. 퀸-에일리언'이라 할 만하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김혜자의 성 역활 바꾸기'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녀는 식물성을 버리고 동물성'을 연기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알레고리'가 바로 초원이다. 여기서 초원은 일종의 경계'이다. 자아와 이드'의 경계이며, 문명과 금기의 경계이고, 식물과 동물의 경계, 생과 사의 경계 그리고 이곳과 저곳의 경계이다. 그녀가 이 초원을 가로지른다는 행위는 넘어서면 안 되는 영역으로의 월담 행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넘어서면 절대 안 되는 영역이다. 김혜자는 이 영역을 가로지름' 으로써 동물이 된다.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영화 " 캐리 " 는 여성 생산성/ 거대- 자궁 '에 대한 남성의 두려움'을 잘 묘사한 영화다. 이 영화의 오프닝'은 사춘기 소녀의 생리'로 시작해서 돼지 피를 뒤집어쓴 소녀의 모습으로 끝난다. 캐리의 몸이 생산의 주체'( 생리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뭐, 다 아는 이야기지만 ! ) 가 되자 남성 사회는 생리를 시작한 사춘기 소녀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그때가 가장 건강한 자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돼지 피'를 뒤집어쓴 캐리의 얼굴은 생리하는 오프닝 이미지와 겹치면서 생리하는 여성 성기'를 떠오르게 한다. 캐리는 이빨 달린 여성 성기, 바기나 덴타타'이며 메두사의 얼굴이다. 생리혈이 흘러 넘친다는 측면에서 캐리는 대-생산자'이며 초월자'이다. 메두사 신화의 핵심은 메두사의 얼굴을 보면 딱딱하게 굳는다는 점이다. 프로이트'는 메두사의 얼굴'을 여성 성기'로 보았다. 왜냐하면 남성들은 메두사의 얼굴을 보자마자 딱딱하게 굳어 돌덩이'가 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딱딱하게 굳는 현상'을 페니스의 발기'로 보았고, 메두사의 얼굴을 여성 성기'로 이해했다. 캐리의 얼굴을 본 순간 수컷인 당신은 죽는다.

 

 

피 흘리는 여성 얼굴 이미지'는 마더'에서도 차용된다. 피 묻은 얼굴'은 폐경이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는 증거와 함께 섹스 할 수 있는 여자, 나아가 생산의 주체자'임을 나타낸다. 그렇다, 그녀는 아직 생리하는 여자'이다. 설명했다시피, 피흘리는 얼굴 혹은 생리하는 메두사'는 불완전한 여성의 몸이 생산-주체'가 되어 완전한 몸으로 재탄생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김혜자는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하여 문아정'의 흔적을 찾아나선다. 이 행위'는 일종의 과거로의 여행처럼 보인다. 생각해보라. 21 세기 대한민국에서 쌀을 얻기 위해 몸을 판다는 것, 상당히 오래된 매춘 아닌가 ? 화폐 거래가 아닌 곡물 물물교환이라는 점이 오래전 과거형임을 암시한다.

 

감독은 동시대성으로 두 이야기'를 끌고 가지만 사실은 옛날옛적 이야기'를 재현하는 것이다. 자, 여기서 이야기는 재미있어진다. 김혜자가 마주친 것은 바로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이다. 그러니깐 문아정'은 김혜자의 과거형'이다. 이쯤에서 영리한 독자'는 김혜자의 정체'를 간파했을 수도 있다. 김혜자 그 여자는 문아정 이 여자의 유령이다. 그러니깐 김혜자는 누명 쓴 아들의 진짜 범인을 찾아나서는 게 아니라, 자신을 죽인 진짜 범인'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는가 ? 그녀는 nothing 이다. 영화 마더'는 남성사회가 창조해낸 모성 신화'의 허구를 폭로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김혜자는 자상한 어머니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과 성관계를 맺는 어머니, 나아가 가짜 아들-들과 관계'를 맺는 어머니'를 연기한다.

 

그녀는 자신의 성적 욕망을 위해서 폐경'을 미룬 여자이며, 동시에 유사 아들-들의 욕망을 위해서 자리에 눕는 퍼블릭 우먼'이다. 어머니'라는 존재를 아들과 섹스하는-여자, 나아가 창녀'로 명명하는 순간 가부장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그러자 빗금 친 존재인 대상 A는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복귀한다. 감독은 교묘하게 현재와 과거의 영역'을 하나의 공간 속에 가두어두고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 7박8일 : 눈물겨운 어머니의 모험담 " 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 한 여자의 일생 " 을 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마더'를 연기하는 김혜자'는 문아정의 다른 이름'이다. 그녀는 지금 문아정을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범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찾는 중이다. 김혜자의 어릴 적 이야기가 바로 문아정'이기 때문이다.


남편의 귀환, " 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어 ! " : 고물상은 고장난 기계들의 무덤이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는 돌아와서 오이디푸스 욕망-기계'를 다시 가동하려고 한다. 이 기계'가 작동되면 아버지의 자리'를 넘보던 어머니와 아들'은 응징되리라. (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고장난 보일러 기계'는 오이디푸스 욕망 기계이다. 이제 그가 이 기계를 작동시키면 혼돈은 질서를 찾을 것이다. ) 그가 전화를 거는 순간 여자'는 남자의 머리'를 둔기로 내리친다. 순간 그녀의 표정이 견고해진다. " 씹새끼, 너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어 ! "


 

약재상과 고물상'은 죽은 것들을 저장하는 곳'이란 측면에서 서로 닮았다. 어머니의 영역으로 대표되는 약재상이 죽은 식물들의 저장고라면, 아버지의 영역으로 상징되는 낡은 기계-들'은 고장 난 기표들의 저장고'다. ( 시작 글, 서두를 보라 ! ) 그리고 버려진 잡동사니를 쌓아둔다는 의미에서 이 두 영역은 모두 의식 너머의 영토에 속한다. 문아정의 핸드폰 또한 같은 의미에서 동일하다. 핸드폰은 부모와 성관계를 맺는 ' 아이의 은밀한 영역 ' 이다.

 

 

약재상의 약초, 고물상의 고장 난 기계, 주인을 잃은 핸드폰 속에 저장된 죽은 메모리'는 모두 자아와 충동하는 이드'이다. 이들은 ( 죽은 식물/ 죽은 기계/ 정지된 핸드폰 ) 모두 the old 이지만 다시 재생될 수 있는 질긴 생명력을 가진 존재이다. 죽었지만 다시 재활용되는 존재'이다. 프로이트가 말하지 않았던가 ? 억압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고 말이다. 아버지 라이오스의 생환'은 아들을 범한 이오카테스'의 목을 조여온다. 그녀가 고물상 주인으로 변신한 라이오스 왕'을 죽인 이유는 아들이자 애인인 오이디푸스'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지속하기 위해서였다. 어찌 되었든, 김혜자'는 아들과 관계 맺는 어머니이면서, 남편을 죽인 아내이고, 마을 남정네들과 관계 맺는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다. 그녀는 팜므파탈이며, 바기나 덴타타이고, 메두사의 얼굴'이다. 이 영화'는 어머니의 성에 대한 도발적 질문이다.여자는 어머니'가 되는 순간 여성에서 무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자발적 선택이기보다는 아버지의 법이 정한 강제성'에 가깝다.

 

 

 

 

 

 


 

 

 

 

번외 ㅣ

 

 

1. 식물은 무섭다.

 

잿물'을 먹은 짐승은 죽는다. 사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마시면 식도'가 타서 죽는다. 매우 신속하게 진행되는 독약이다. 옛날에는 자살을 할 때 크기가 넓은 잎에 양잿물 가루'를 넣어서 쌈'처럼 먹었다고 한다. 목구멍이 타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어머니와는 먼 친척이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라움보다는 묘하게 슬펐다. 무서운 독이다. 그런 잿물'은 식물을 태워서 만든 재'로 우려낸 물'이란다. 어쩌면 식물은 동물보다 무섭다. 사실 알고보면 성대 없는 꽃대'는 무시무시하다. 영화 마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 약재상'은 그녀 고유의 영역'이다. 김혜자는 죽은 식물'을 우려서 만든 즙/보약'으로 아들을 키운다. 이 행위는 아들을 짐승에서 식물-되기'로의 변신을 바라는 마더의 욕망이다. 공교롭게도 그녀는 식물의 뿌리'를 태우는 제초제'로 아들의 소화 기관을 모두 태운다. 그러자 아들'은 물을 마시자마자 바로 뿌리( 말 그대로 남근'이다. )로 흡수되어 배출된다. 그러자 아들은 온전히 어머니의 영역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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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 점프'를 하다 : 첫눈에 반하는 사랑은 허구'다.

 

 

언캐니는 프로이트'의 주요 개념이다. un-canny의 독일어'인 un-heimlich'에서 un-은 접두사로 형용사, 부사, 명사에 붙어서 " 반대, 부정 " 을 뜻한다. 우선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heimlich의 뜻을 알아야 한다. < heim > 은 < house > 다. 집'이란 뜻이다. 이 세상에 집'보다 편한 곳이 어디에 있는가 ! 낡은 쇼파'에 누워서 리모콘으로 티븨를 보며 사타구니'를 긁을 수 있지 않은가 ! 똥구멍을 긁는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다 ! 그래서 heimlich 은 " 편안함, 익숙한, 친숙한 " 이라는 뜻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접두사 un-이 붙어서 < 기괴한 > , < 두려우면서 동시에 낯선 ( 것, 곳 ) > , < 악마적이면서 소름끼치는 것(곳) > 으로 확장된다. 그러니깐 heimlich와 unheimlich는 서로 상극이다. 반대말이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heimlich 는 편안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 알 수 없는 > , < 위험한 > 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 두 단어'는 반대말이면서 비슷한 말'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프로이트는 반의어/는 곧 동의어/同義語'라는 사실을 유추해 낸다. < 反 = 同 > 라는 황당한 공식'을 주장한다. uncanny와 canny는 같은 뿌리다 ! 프로이트는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김삿갓'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한 놈'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프로이트'의 이 주장'은 맞는 말이다. 로보트'를 바라보는 현대인의 심리'는 정확히 " 언캐니 " 개념과 부합한다.  

 

인간을 닮은 초기 로보트 아시모'를 볼 때 사람들은 이 로보트에 깊은 호감'을 드러낸다. 하는 짓이 얼마나 귀엽나 ! 하하하, 호호호. 여기서 사람들이 이 로보트'에게 호감을 보이는 이유는 인간 흉내를 내는 로보트'가 장난감처럼 어설프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로보트의 외양이 점점 인간을 닮아가면 호감은 급격하게 불쾌함'으로 변한다. 인간과 로보트의 구별이 모호해지면 그때부터 사람들은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실사 인형'이다. 인간과 똑같이 생긴 인형은 어딘지 모르게 불길하다 ! 바로 이 감정이 언캐니'다.  

 

우리가 인간을 닮은 로봇이나 인형에게서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매우 익숙한 얼굴이기 때문에 그렇다. 기괴함'이라는 심리 상태의 중심에는 " 익숙한 " 이 자리잡듯이 말이다. 우리가 귀신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귀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더 나아가 그 귀신은 내가 알던 사람일 때 더 두렵다. 아빠와 단 둘이 사는 사춘기 여고생이 집에 왔더니 처음 보는 여자'가 자신이 엄마라며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상황은 담임 여선생이 자신을 엄마'라고 주장할 때이다. 그렇지 않은가 ?  

 

영화 < 번지 점프를 하다 > 는 " 언캐니 " 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이병헌'은 어느 날 자신이 쓰고 있는 우산 속으로 들어온 이은주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멜로라는 장르는 어긋남'이 기본'이다. 이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은주는 이병헌을 만나러 가는 길에 교통 사고'로 죽는다. 그 아픈 트라우마'가 서서히 잊혀질 때인 십 몇 년 후, 교사'가 된 이병헌은 제자에게서 익숙한 클리쉐와 오브제'를 목격하게 된다. 그것도 남자 제자에게서 말이다. 십 몇 년 전에 그녀가 좋아했던  쇼스타코비치  왈츠는 제자의 핸드폰 벨 소리로 환기 되고, 숟가락과 젓가락에 대한 농담은 제자의 질문과 겹쳐진다. 그리고 그녀가 아끼던 라이터는 제자가 가지고 있다. 최민식이 교사 역을 연기했다면 " 너, 누구야 ? " 대신 " 누구냐, 넌 ?! " 이라고,  보다 마초적으로 말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병헌은 혼란에 빠진다. 이 지점에서 잘난 척 한 번 하고 넘어가자 ! 제자'의 에티튜드'는 죽은 애인의 에티튜드와 겹친다. 그러니깐 제자의 에티튜드는 자꾸 익숙한 것에 대한 데자뷰'를 만들어낸다. 낯익은 것이다. 어쩌자고 저 새끼는 내 죽은 애인을 모방하는 것일까 ? 더군다나 불알 달린 수컷이 아니었던가 ! 결국 제자가 재현해내는 낯익은 행위는 이병헌에게는 매우 낯선 행위'가 된다. canny에서 uncanny를 목격하는 것 !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서사 구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러한 내용은 SF 소설인 < 솔라리스/ 램 > 에서도 다룬다. 끝내주는 소설이다 ! ) 이 영화는 죽은 여자가 남자 제자로 환생한다는, " 아, 어쩌란 말이냐 ! " 류의 엇나간 퀴어 멜로의 형태를 취했지만, 사실은 언캐니'에 대한 이야기'다.  

 

첫눈에 빠진 사랑은 본질적으로 위험한 허구'다. 당신이 첫눈에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착각일 뿐이다. 처음 본 남자에게 끌리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얼굴이지만 그 사실을 모를 뿐이다. 인간은 자신의 얼굴을 닮은 사람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것은 이미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다. 실험 내용은 이렇다  1 ) : 실험 참가자에게 다양한 이성 사진'을 보여준 후 가장 매력적인 사진 한 장'을 뽑으라고 한다. 여기엔 함정이 하나 있다. 10장의 사진 중 한 장은 실험 대상자인 얼굴을 포토샵으로 약간 수정해서 성별'만 바꾸어 놓는다. 물론 실험 대상자'는 이 얼굴이 자신의 얼굴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 실험 결과에서 그들은 가장 매력적인 이성 사진으로 누구를 선택했을까 ? 놀라지 마시라. 거의 대부분은 자기 얼굴을 수정한 얼굴을 뽑았다. " 음... 그러니깐, 음... 그게.. 딱히 예쁘지는 않은데... 음, 그게.. 에헴.. 흠흠. 그냥... 편안한 얼굴이어서 좋아요 ! "  그렇다, 그들은 도발적이며, 섹시하고,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얼굴을 뽑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많이 보았는데 잘 생각은 안나는, 그냥 평범한 이성의 얼굴을 선택한다. 자기 얼굴이라는 것을 모르고 말이다. 이처럼 첫눈에 호감을 가지는 이성'은 뭔가 언캐니'적인 존재다. 어디서 본 익숙한 얼굴이지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심장이 뛴다. 그런데 우리는 어쩌면 이 심장이 뛴다는 사실을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괴하고, 두렵기 때문에 심장이 뛰는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사랑 때문에 뛰는 심장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  

 

실제로도 이런 실험이 진행된 적이 있다.  실험 내용은 이렇다 2 ) : 두 개의 실험군을 준비한다. A 상황은 는 남녀가 처음 만나는 미팅 장소'로 카페를 선정하고, B는 구름다리 같은 위험한 장소를 미팅 장소'로 선정해서 두 집단 간에 퍼지는 이성 호감도'를 조사하는 것이다. 결과는 위험한 미팅 미션을 수행한 B에서 서로 호감도가 높았다. 그 이유는 심장과 뇌'가 서로 따로 놀기 때문에 그렇다. 구름다리 위에서 만난 남과 여'는 두려움 때문에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인데, 뇌는 이 사실을 사랑 때문이라고 착각한다.  결국 B 집단에서의 이성에 대한 호기심'은 두려움 때문에 발생한 착각이다.   

 

이처럼 사랑은 본질적으로 언캐니'이면서 동시에 자기애적 성향이 강하다. 영화 < 올드보이 > 에서 이우진/유지태와 누이인 이수아/윤진서'가 나른한 오후에 과학실에서 벌이는 근친상간' 장면은 기이할 정도'로 자기애'적이다. 영화 속 캐릭터 이수아'는 병적일 정도로 나르시즘에 빠져 있다. 그녀는 남동생과 근친상간'을 하면서도  거울로 자신의 황홀한 얼굴'을 바라본다. 결국 이 쾌락은 1인칭적 욕망이 만들어놓은 자위행위'이다. 스스 로에게 쾌락을 선사하는 수음'이다. 그녀 이름인 수아는 혹시 秀我'가 아닐까 ? 아름다울 수에, 자기 아 ! 이 이름을 곧이 곧대로 해석하면 자기애/ 나르시소스'가 된다. 나르시소스'가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에 반해서 우물에 빠져 죽는 것처럼, 이수아는 다리 아래 물 속에 빠져 죽는다. 심지어 죽는 그 순간에도 수아는 동생 목에 걸려 있는 카메라로 아름다운 자기 얼굴을 찍고는 강에 빠져 죽는다.   

 

영화 제목 < 번지 점프를 하다 > 는 꽤 의미심장'하다. < 번지점프 > 는 두려움을 의미하고,  < ~ 하다 > 는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랑을 의미한다. 서로 상이하게 다른 영역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려움과 사랑은 동의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바닥으로 뛰어내릴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 108번 올빼미 뛰어내릴 수 있습니까 ? " 라고 군대 훈련소 조교가 외칠 때  당신은 당당하게 외쳐야 한다. " 108번 올빼미 하 ! 강 ! 준 ! 비 ! 끗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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