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적 치질

 

 

12. 상처적 체질 + 캐스트어웨이

 

 

 

 

충무로에서 일할 때 영화 포스터를 붙인 적 있다. 쪽팔려서 죽는 줄 알았다. 시나리오 보조 작가로 들어갔으나 원고지 대신 영화 포스터가 내 손에 쥐어졌다. 화딱지가 났으나 까라면 까는 세계가 바로 충무로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사장이 포스터 붙이는 일을 정상 근무 외 잔업으로 인정해서 가욋돈을 주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깐 근무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다. 가욋돈 외에 점심값에 차비까지 주니 수입이 꽤 쏠쏠해서 일이 끝났을 때에는 아쉬워하기도 했다. 쪽을 파는 것도 며칠 지나다 보니 그럭저럭 견딜 만했기 때문이었다. 이 일을 하면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오로지 <담벼락 > 이었다. 포스터를 붙이기에 좋은 담벼락이 있고, 포스터를 붙이기에 고약한 담벼락도 있었다. " 맙소사, 좋은 담벼락과 성질 고약한 담벼락이 존재하다니 ! "

 

박연폭포처럼 넓고 빙판처럼 매끈해서 영화 포스터 열 장'을 한꺼번에 붙일 수 있는 담벼락은 넉넉한 녀석이었다. 이런 담벼락은 발품을 덜어주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넉넉한 담벼락은 매우 귀했다. 특히 종로나 강남 같은 경우는 더했다. 그래서 우연히 이런 담벼락을 발견하게 되면 불알친구를 만난 것만큼이나 반가워서 널찍한 등짝을 " 쓰담쓰담 " 하거나 벽에다 대고 말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후유증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 가욋일이 끝났지만 한동안 담벼락만 보였다. 포스터 열 장을 붙일 만한 담벼락을 만나면 잠시 서서 아쉬워하기도 했다. 지금도 이런 담벼락을 만나면 그때 일이 생각난다. " 담 씨 ! 아니... 벼락아, 잘 컸구나, 잘 컸어 ! " 인간'이란 어떤 특정 분야에 관심을 가지면 그것만 보인다. 구두를 만드는 사람은 구두를 유심히 보게 되고, 가방을 만드는 사람은 가방을 유심히 보게 된다.

 

" 사랑하면 보이나니... " 라는 말은 옳은 소리'다. 내가 영화 포스터를 붙이지 않았다면 담벼락'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미친 놈이 좋은 담벼락 나쁜 담벼락을 구별할 것이며, 넓은 등짝을 " 쓰담쓰담 " 하겠는가 ? 실실 웃으면서 말이다. 과식을 해서 배가 아픈 사람이 길을 걸을 때에는 음식점 간판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반면 약국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쉽게 눈에 들어온다. 반대로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약국 따위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음식점만 눈에 보인다. 이처럼 결핍은 필요를 낳고 필요는 관심을 낳는다. 나는 그동안 치질로 고생을  꽤 한 터라 류근 시집 제목 < 상처적 체질 > 은 이상하게 < 상처적 치질 > 로 읽혀서 눈물이 앞을 가리고는 했다. 버스 안에서 서서 갈 때마다 쑥덕거리던 그 말, 말, 말, 말. " 저 사람 치질인가 봐 ! " 아, 아아아.....

 

내가 치질에 대해 집요하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알고 보면 건강한 괄약근을 잃었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결핍은 그 대상을 눈에 띄는 존재로 만든다. 팔이 없는 사람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팔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 상처적 체질 " 을 " 상처적 치질 " 로 읽었다면, 영화 < 캐스트어웨이 > 에서 톰 행크스는 배구공을 사람 얼굴로 읽는다. 로버트 저맥키스가 감독한 < 캐스트어웨이 > 는 " 결핍 " 에 대한 이야기'다. 도시가 物物이 넘치는 과잉의 공간이라면 무인도는 철저하게 物物이 부족한 공간'이다. 로빈슨 크루소를 연기하는 톰 행크스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은 무엇이었을까 ? 역설적이지만 배구공'이었다. 그는 배구공으로 윌슨'으로 불리는 사람을 만들어서 그와 대화를 나눈다. 그가 망망대해에서 배구공 윌슨을 잃고 대성통곡했을 때, 나는 묘하게 그가 느꼈을 처참한 심정에 마음이 통했다.

 

나도 한때 등짝이 넓은 담벼락을 만나면 말을 주고받았으니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담벼락이었다. 건물은 우후죽순 새롭게 태어나지만 좋은 담벼락은 점점 사라진다. 골목길이 사라지니 좋은 담벼락 또한 사라지는 것이다. 터'가 좋은 가게는 담벼락을 털고 통유리를 깔거나 집 안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주차장 셔터'를 낸다. 안타깝다. 영담모( 영화 포스터를 붙이기에 좋은 담벼락을 사랑하는 모임)라도 만들어야 겠다. 당신들은 모른다. 담벼락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말이다. 그리고 괄약근을 업신여기지 말기를. 나이 들면 남근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괄약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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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 2014-04-13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목에서 이미 게임 끝났네요. 버빠 박진영 말대로, 첫 소절 듣는 순간 게임 끝났다,한 것처럼요. 우하하하하하, 정말 죽이는 제목입니다. 영담모 발기, 파이팅!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3 19:05   좋아요 0 | URL
영담모 발기인 대회 때 스누피 님을 총무 대행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samadhi(眞我) 2014-04-13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담벼락에 붙은 영화포스터를 보며 어떤 영화를 볼 지 잔뜩 기대감에 부풀곤 했는데 그 풍경이 그리워지더라구요. 대형영화사(?) 엔터테인먼트인가 대형극장주인가 뭐가 정확한 용어인지 모르겠으나 걔네들에게 극장이 잡아먹힌 뒤로 도저히 그 배우라고 생각할 수 없던 허술하기 짝이 없는 간판도(그렇지만 정이 가는^^) 담벼락에 겹겹이 붙어있는, 가끔은 뜯어낸 자국이 남아있는 영화포스터도 이제는 볼 수가 없네요. 그 시절 참 느긋하고 촌스럽고 낙낙했는데 말예요. 요즘 아해들은 그것을 못보고 자랐네요. 안타까워라.^^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4 02:15   좋아요 0 | URL
이젠 거리에 영화포스터 붙지 않죠. ㅋㅋㅋㅋㅋ 다 옛일이 되었습니다. 저도 옛날에 담벼락에 포스터 붙으면 그거 보면서 흥분하고는 했는데 말이죠. 영화 간판도 사라지고, 제가 영화에 대해 흥미를 잃기 시작한 시기와 멀티플렉스의 번성과 맥을 같이 하는 거 같습니다. 차라리 집에서 보는 게 낫죠. 낙원동 아트 시네마'가 제 유일한 단골 극장입니다. 이것이 번성해야 하는데 보아 하니 곧 무너질 것 같기도 하고....
 

 

 

 

 

 

 

 

 

 

 

 

 

 

 

 

 

 

 

 

 


 

 

 

감독님, 컷 ! 이라고 외치지 마세요 !

 

 

11. 봄밤과 악수 + 로프

 

 

 

 

 

누군가가 특정 작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작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근사한 말이다. 때마침 카잔차키스 전집이 50% 세일을 하길래, < 그리스인 조르바 > 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냅다 구입했다. 그게 이 년 전 일이다. 그 후로 내가 읽은 카잔차키스 책은 아직까지 < 그리스인 조르바 > 가 전부'다. 달거리하듯, 그때 그때 흥미를 돋우는 책을 다달이 사다 보니 정작 카잔차키스 전집은 읽을 엄두가 , 아.......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 문득,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 200권 묶음'을 구입한 이웃이 생각났다. 다, 읽었을까 ? 한때 알프레드 히치콕 전작주의자'가 되려는 야망을 가진 적이 있었다. 주먹 불끈 쥐고 도전했으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히치콕이 20년대 영국에서 찍은 무성 영화'를 볼 기회가 별로 없었을 뿐더라, 그가 헐리우드에 입성해서 찍은 영화와는 다르게 영국 시절에 찍은 영화들은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이내 포기했다. 그래도 그가 만든 60편 중에서 30편은 보았으니 " 전작주의자 " 는 아니어도 " 반작주의자 " 혹은 구수한 표현으로 " 반타작주의자 " 는 되지 않을까 ? 스스로 자위해 본다. 전작주의자 혹은 반작주의자'가 되다 보면 일반 평가와는 다르게 특정 작품에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 나에게는 < 프렌지/72 >와 < 로프/48 > 라는 영화가 그렇다. 이 작품들은 히치콕의 하일라이트와 비교하면 초라한 구색이지만 초라하다는 측면에서 애착이 간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대표작에 비해서 초라하다는 말이지 그저 그렇고 그런 요즘 영화와 비교하면 걸작인 영화'다. < 프렌지 > 는 노장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천명한 영화여서 감동적이었고, < 로프 > 는 매우 뚱딴지 같은 영화여서 감동적이었다. < 로프 / 48 > 는 지금 생각해 보아도 매우 위험한 영화'다. long, long ago....

 

미국에서도 한때 빨갱이 사냥 시대'가 있었다. 매카시 열풍'이었다. 상원의원이었던 매카시는  1950년 2월  “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 ” 는 폭탄적인 연설'을 하게 된다. 그에게 토 다는 놈들은 모두 빠,빠빠빨갱이'로 의심을 받았기에 토, 토토토를 달 수 없었다. 토를 다는 놈은 일(자리)을 잃어서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 내내 일을 할 수 없었다. 매카시와 개새끼 같은 일당들이 보기에 체제 순응주의자'가 아닌 진보적 성향을 가진 할리우드 종사자들 또한 모두 빨갱이였다. 그들에게는 낯선 풍경이지만 한국인에게는 매우 익숙한 풍경이었다. 이 부류에는 동성애자'도 포함되었다. 매카시는 " 빨갱이 사냥꾼 " 이기도 했지만 " 동성애자 사냥꾼 " 이기도 했다. 매카시가 보기에 동성애자는 국가 안위를 위협하는 파괴분자'였다. 만약에 당신이 " 좌파 " 인데 설상가상 " 동성애자 " 이기도 했다면 그 시절을 어떻게 버텼을까 ?

 

극작가 아서 로렌츠는 좌파이면서 동성애자'였다. 그가 페트릭 해밀턴의 희곡을 시나리오로 쓴 작품이 바로 < 로프 > 였다. 원작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 니체의 초인론에 집착한 동성애 커플이 평소 알고 지내던 청년을 아무 이유없이 살해하고, 이 사실을 같은 동성애자인 시인'이 알아챈다는 내용이다. 일종의 게이 삼각관계'이다. 히치콕은 이 내용을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책임 시나리오는 아서 로렌츠가 맡았고, 게이 커플은 각각 팔리 그레인저와 존 달이 맡았다. 그리고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는 역할을 하는 시인(영화에서는 철학 서적 출판업자로 변경)으로는 캐리 그란트'가 맡기로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서 로렌츠, 팔리 그레인저, 존 달, 캐리 그란트 모두 동성애자'란 사실'이다. 이성애자가 동성애자 흉내를 내는 영화가 아니라 말 그대로 동성애자가 동성애자 연기를 하는 것이다.

 

매카시 전운을 서서히 불기 시작하는 그 시대에 말이다. 결국 부담감을 느낀 캐리 그랜트는 영화에서 빠지고 대신 제임스 스튜어트'가 합류하면서 영화는 " 게이 삼각 관계 " 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사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서사 때문이 아니라 기술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운 기술적 실험을 했다. 히치콕은 " 10개의 롱테이크로 찍은 10개의 컷으로 이루어진 영화 " 를 만들었다. 롱테이크'만으로 이루어진 벨라 타르의 기적과 같은 영화 < 토리노의 말 > 이전에 이 영화가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동이 간편해진 현대 광학 기계에 비해 당시에는 카메라가 폭스바겐 자동차만한 크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라 할 수 있다. 전자가 자전거로 외줄을 타는 모험이라면 후자는 트럭으로 외줄을 건너야 하는 꼴이다.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히치콕은, 성공했다 !

 

영화는 수많은 쇼트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 < 사이코 > 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샤워실 살해 장면은 카메라 위치를 무려 77번이나 변경해서 만들어낸 장면이다. 샤워 장면은 1개의 시퀸스이지만 그 안에는 최소 77쇼트로 분절되어 있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완성된 문장은 시퀸스이고, 그 문장을 이루는 명사, 조사, 보조사, 마침표, 쉼표 따위는 쇼트'다. 쇼트가 모여서 시퀸스'가 되고, 이 시퀸스가 모여서 영화 한 편이 완성되는 것이다. 오규원 시 < 봄밤과 악수 > 는 영화 < 로프 > 에 사용된 롱테이크 기법을 살린 시'다.

 

 

 

 

봄밤과 악수

 

오규원

 

문 앞에서 다른 문이 되어 웃고 서 있는 박만식과 악수를 하고 문 뒤에서 몸 반을 지워버린 이훈직과 악수를 하고 오른손을 번쩍 들어보이는 김종서와 악수를 하고 김종서에게 몸을 반쯤 먹혀버린 박지수와 악수를 하고 모자를 벗었다 다시 쓰며 손을 내미는 천동복과 악수를 하고 안경 밑의 눈을 불빛이 가져가버린 장병호와 악수를 하고 등을 벽에게 맡겨버린 유자강과 악수를 하고 한꺼번에 덤비는 김중식과 이차중에게 왼손과 오른손을 내밀어 동시에 악수를 하고 왼손으로 사타구니를 추스르는 박수길의 오른손과 악수를 하고 자기 그림자를 밟고 서 있는 최명숙과 남의 그림자를 어깨에 멘 정영자와 악수를 하고 남인숙에게 안겨 있는 방말자와 방말자를 안고 있는 남인숙과 차례로 악수를 하고 눈을 바닥에 내려놓은 조인종과 악수를 하고 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 이창순과 박찬휘와 주인환과 김신중과 이민국과 악수를 하고 다른 무리를 이루고 있는 송상복과 차대식과 양진미와 함학도와 백기준과 악수를 하고 사람들을 등 뒤에 두고 밖에 차오르고 있는 봄밤을 뒤지고 있는 사공직과 나란히 서서 손이 어두운 악수를 하고

 

- 시집,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맹이

 

 

악수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이 시는 행과 연을 나누지 않는다. 화자는 박만식과 악수를 한 후, 이훈직과 악수를 한 후, 김종서와 악수를 하고, 박지수와 악수를 하고, 다시........... 이 시가 수록된 시집 <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맹이 > 에는 이런 식으로 物物을 반복적으로 나열한 시가 많다. 처음에 이 시를 읽고 나서 뭐, 이런 개똥 같은 시가 다 있나 했다. 시인은 이 시 작업을 " 날이미지 " 라고 하던데, 나는 도통 모르겠는 거라. 그래서 도움이 될까 하고 정과리가 쓴 해설을 읽었는데 도움은커녕 더 헷갈린 소리만 해대고 있었다. 이럴 땐 덮는 게 상책이다. 그리고 이 시집에 대해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요즘은 히치콕 영화에 대한 열정이 유령처럼 살아나서 어제는 < 로프 > 를 보다가 불현듯 < 봄밤과 악수 > 라는 시가 떠올랐다. 왜 이 시가 떠올랐을까 ? 곰곰 생각하다 보니 연출 기법이 동일했다. < 봄밤과 악수 > 는 행을 나누지도 않고, 연을 나누지도 않는다. 심지어 마침표도 없고, 쉼표도 없다. 시인이 행, 연, 쉼표, 마침표 따위로 분절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은 감독이 " 컷 ! " 이라고 외치지 않는 것과 같다. 시인은 나누지 않고 계속 연결해서 적는다, 혹은 찍는다. 이 시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마치 " 롱테이크 " 같다.  행과 연을 나누지 않으니 장소가 변경되지도 않는다. 이 시에는 그 흔한 편집이 없다. 당연히 점프컷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동시성'만 있는 것이다. 시인의 카메라는 그저 박만식으로 시작해서 양진미, 함학도, 백기준을 수평적으로 따가갈 뿐이다.

 

여기에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거나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대상을 깔보거나 우러러보는, 시선이 존재하기 않기 때문에 나열된 物物인 A와 B는 " 사이 " 로 이루어진 관계다. " 위 " 도 아니고 " 아래 " 도 아니며 " 옆 " 도 아니다. 그래서 A는 B를 내려다보지 않고, B는 C를 곁눈질하며 흘기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평등하다. 시적 카메라는 오로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따라갈 뿐이다. 그렇다면 악수를 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  시 제목이 < 봄밤과 악수 > 다. 봄밤은 김종서와 악수를 하고, 박지수와 악수를 하고, 함학도와 악수를 하고, 백기준과 악수를 한다. 그들을 이어주는 것은 밤이다, 봄밤'이다.

 

 

 

 

 

 

덧.

 

히치콕은 타이틀 시퀸스 장면에서 거리를 걷는 1인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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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4-04-11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치콕 영화를 한 편도 안봤어요. 오래된 영화를 거의, 전혀 안봐서. 제게는 기껏해야 80년대 영화 정도가 오래된 영화예요. 곰발님 덕분에 찰리 채플린 영화랑 히치콕 영화를 찾아보겠네요. 그 당시에 그런 영화를 만들다니 정말 파격이네요. 지금 만들어도 파격적일 것 같은데.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1 16:40   좋아요 0 | URL
오홋, 한편도 안 보셨나요 ? ㅎㅎㅎㅎㅎ. 사이코는 꼭 보십시요. 지금 보아도 여전히 흥미진진합니다.

samadhi(眞我) 2014-04-11 17:08   좋아요 0 | URL
네 거의 히치콕의 작품을 오마주한 것들만 잔뜩 봤지요. 저번에 곰발님 댓글에 누군가 히치콕의 싸이코 영화 주인공의 어린시절을 담았다는 "베이츠 모텔" 이라는 미드 얘기를 하던데, 그건 봤지요^^그나저나 곰발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어디까지 닿을지. 벌써 오늘 방문자수가 2073 정말 놀랍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1 17:57   좋아요 0 | URL
어라 ?! 그러네요. 아마... 이거 알리딘 오작동인가 봅니다. 평균 400정도 드는데 2000은 버퍼링일 겁니다. ㅎㅎㅎㅎ

새벽 2014-04-11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 이 영화에서 카메라가 의자 뒤에 숨은 게 여덟 번 밖에 안 됐던가요?
사실 그게 반칙이라면 반칙인데 어찌 보면 콜럼버스의 달걀이고 우얏든 히치콕은 기가 막히게 해냈으니..
히치콕의 많고 많은 영화 중에도 무척 재밌게 본 작품 중 한 편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1 17:57   좋아요 0 | URL
총 10개의 롱테이크와 10개의 컷으로 나누어졌다고 합니다. 아닌가? ㅎㅎㅎㅎㅎㅎ.
카메라 통에 필름을 장전할 때 필름 한 릴이 보통 9분 정도 됩니다. 9분 지나면 필름을 다 쓰기 때문에 어절 수 없이 컷을 외쳐야 해요. 이 영화 컷은 9분마다 나눠서 유심히 보면 보입니다.


상당히 아기자기하잖아요. 밖 풍경울 보면 밤이 되는 과정을 보는 것도 매우 유쵀하죠. 구름도 시간에 따라 바귑니다. 감독이 구름을 따로 움직이게 할 수 있게 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움직였다고 하네요. 아주 정교한 영화예요.

한시반이지나서 2014-04-12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참 좋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2 13:54   좋아요 0 | URL
저도 한 시 반이 지나서 덧글 답니다.

수다맨 2014-04-12 0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규원 시는 어렵기는 한데 이상한 묘미가 있어요. 어쩌면 그 때문에 읽다가 병맛 느낄 때가 많아도, 또 찾아 읽게 될 때가 더러 있더라구요.
영화와는 상관없는 얘기입니다만, 한 작가의 전집만 죽자사자로 파고드는 공부 방법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러니까 한 작가당 독서 시간을 한 2년쯤 잡아서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포크너, 카잔차키스 이렇게 읽어나가는 거죠. 실제 이 방법을 진짜로 실행에 옮긴 사람이 옆나라 오에겐자부로라고 하더라구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2 13:56   좋아요 0 | URL
저도 오규원 시와 황병승 시는 잘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땡기는 힘이 있습니다.
사실 제가 시를 거의 몰라서 미래파 어쩌구 저쩌구 하면 성질부터 나는 편인데
황병승의 시는 이상하게 와닿는 구석이 있습니다. 김경주는 잘 모르겠고, 이장욱도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습니다. 전작위주로 읽으면 굉장히 재미있긴 할 겁니다. 제가 히치콕 영화를 보며 사소한 것에 감동하듯이 말이죠.....
 

 

 

 

 

 

 

 

 

 

 

 

 

 

 

 

 

 


 

 

 

 

 

guy냐 gay냐 .....

 

 

 

 

 

히치콕이 영국에서 만든 무성 영화까지 포함한다면 그가 감독한 극장용 영화는 대략 60편 정도'다. 여기에 티븨용 영화가 20편이니 대략 80편 정도를 만든 꼴이다. 참말로 부지런한 감독이다. 티븨용 영화를 제외한다면, 내가 본 히치콕 영화는 30편이다. 영국에서 만든 초기 무성 영화들은 따분하고 재미없어서 하품이 나왔지만 오로지 히치콕 영화 목록에 V 표시를 하겠다는 의지로 억지로 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 허세 " 는 개가 영역 표시를 하기 위해서 뒷다리를 들어 오줌을 싸는 꼴이어서 쓴웃음이 나온다. 한때, 나는 시네필들이 히치콕이 헐리우드 황금기 시절에 만든 60년대 영화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 때마다 일침을 놓고는 했다. " 너희들, 1926년에 만든 무성영화 < 쾌락의 정원 > 보았니 ? 안 봤다고?! 맙소사, 감독 데뷔작도 안 본 주제에 무슨 히치콕 팬이냐 ? "

 

< 열차 안의 낯선 자들 / Stranger on a Train, 1951 > 은 내가 중2병에 걸려서 장근석 허세 스타일을 완벽하게 완성하던 시절에 본 영화'다. 영화를 보기 전에 나는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이스미스 장편소설 < 낯선 승객 > 을 히치콕이 영화로 만들었는데 이 소설은 지금까지 내가 읽은 범죄 소설 가운데 열손가락 안에 뽑을 정도로 좋아했던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히자만 영화는 원작과는 내용이 전혀 달랐다. 처음에는 와와, 하다가 중간에는 어어, 하게 되었고,  결국 마지막에는 우우, 했다. 실망이 컸다. 심지어는 히치콕에게 배신감마저 들었다. 주먹 불끈 쥐었다. 일단, 출연 배우들이 그닥 매력있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히치콕 감독도 이 영화를 주력 상품'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 실패한 작품이군 ! " 나는 웃으면서 코 팠다. 

 

어제 이 영화를 다시 보았다.  유투브에 한글 자막이 깔린 이 영화가 돌아다니길래 " 밑져야 본전 " 이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보았다. 처음에는 " ㅡ (으) " 자 자세로 침대에 누워서 보았다. 5분 정도 보다가 마음이 通하지 않으면 < 하이눈 > 으로 갈아타리라.  영화가 시작되면서 카메라는 택시에서 내리는 두 사람의 발걸음을 로우 앵글로 잡는다. 생각보다 좋았다. 5분이 지나자 나는 " ㄴ ( 니은 ) " 자세로 황급히 고쳐 앉았고 결국에는 " ㅣ (이) " 자세로 뻣뻣하게 일어나 새벽에 기립박수를 쳤다.  10년 만에 다시 본 < 열차 안의 낯선 자들 > 은 10년 전에 내가 본 그 영화가 아니었다. 꾀죄죄하고 쩨쩨하던 코찔찔이가 어느새 삐까삐까한 놈이 되어 동창회에 나온 꼴이다. " 놀라서 다시 본다 " 는 극찬은 < 두근두근 내 인생 > 이 아니라 이 영화에 헌정해야 할 듯 싶다.  도대체 십 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원래 레이몬드 챈들러(였)다. 챈들러는 원작 줄거리가 히치콕이 제시한 줄거리( 트리트먼트 : 시나리오가 아닌, 대강의 줄거리 요약 ) 보다 우수하다고 목소리 높여 주장하며 개똥같은 소리를 하자 히치콕은 박차고 일어나 그 자리를 나왔다. 늘상 술에 취해 비틀거렸던 챈들러가 히치콕 뒤통수를 향해 " 뚱땡이, 망나니, 서해 짠 바다 뻘에서 놀던 개불같은 자식 ! 넌 커봐야 십 센티야, 이 자식아 !!!! " 라고 소릴 질렀다. 결국 레이몬드 챈들러가 쓴 시나리오는 폐기처분되었고 무명에 가까웠던 첸지 오먼드가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다시 썼다. 히치콕은 첫 기획 회의 시간에 챈들러가 쓴 원고를 집어들고는 코를 막고 인상을 찡그리는 시늉을 하면서 쓰레기통에다 원고를 버리는 " 죽은 쥐새끼를 쓰레기통에 버리기 - 쑈 " 를 해서 챈들러에게 소심한 복수를 했다. ( 아, 위대한 챈들러를 이런 식으로 모독하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

 

결과만 두고 말하자면 : 나는 하이스미스의 열렬한 팬이며 동시에 레이몬드 챈들러 소설도 좋아하지만 히치콕이 무명 작가인 첸지 오먼드가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든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들은 모두 오먼드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사실 오먼드가 시나리오를 쓰기는 했으나 사실 히치콕의 머릿속에 떠도는 이미지를 오먼드가 베꼈다고 하는 편이 맞는 말이다. 히치콕에게 중요한 것은 서사'가 아니라 기술'이었다.

 

이상한 짝패 관계인 가이와 브루노는 " 지킬과 하이드 " 를 빼다 박았다. 그들은 " 영혼을 서로 교류하는 - 더블, 러버, 도플갱이, 일란성 쌍둥이 " 다. 브루노는 가이의 " 어두운 마음 " 을 반영하는데, 그는 도덕적 검열 때문에 금지된 가이의 욕망을 거침없이 실천하는 쾌활한 하이드'이다. 아마도 히치콕 영화 속 악당 가운데 브루노만큼 매력적인 악당은 없을 것이다. 브루노는 < 케이프 피어 > 에 나오는 맥스 캐이디(로버트 드니로 역) 와 < 사냥꾼의 밤 > 에 나오는 미치광이 전도사(로버트 미첨 역)를 반반 섞어놓은 캐릭터'이다. 무엇보다도 이 이상한 짝패 영화는 동성애적 코드로 묶여 있다. 그 유명한 테니스 경기 장면에서 관중들은 공을 따라 고개를 기계적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리는데 브루노는 경기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정면만 응시한다. 다음 경기에 나서는 가이'만 보고 있는 것이다. 일편단심 민들레다.

 

그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는 영화 곳곳에 숨겨져 있다. 그는 엄마로부터 손톱 손질(매니큐어를 칠한 것처럼 보이는... )을 받는 마마보이'이며 새처럼 재잘거린다. 반면 테니스 선수인 가이는 매력적인 이성애자 역할이지만 이 역을 소화한 팔리 그레인저'라는 배우는 실제로 게이'였다. 그는 히치콕이 48년도에 만든 < 로프 > 에서도 상대 배우인 존 달'과 함께 게이 커플로 등장했다. 그러니깐 이성애자인 로버트 워커(브루노 역)는 동성애자를 연기하고, 동성애자인 팔리 그레인저(가이 역)는 매력적인 이성애자를 연기한다. 말을 가지고 장난을 치자면 브루노는 guy이지만 gay'이다. 가이도 마찬가지다. 그는 실제로 gay이지만 극중 이름은 guy이다. 히치콕은 영화 속 동성애적 코드'를 몰랐다고 잡아뗐지만 그 말은 거짓말이 확실하다. 이 영화는 노골적으로 가이와 브루노를 게이 커플로 묘사한다.

 

이 기묘한 < 엇박자 앙상블 > 이 영화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둘은 모두 성적으로 모호하다. 이 성적 불균형이 묘한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이 영화는 열린 텍스트일 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영화'다. 놀이공원에서의 살해 장면은 기괴함을 넘어 정교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리고 흥미진진한 회전목마 격투 장면은 지금 보아도 경이롭다. 스크린 프로세스로 촬영되었는데, 막말로 " 티 " 가 안난다.  감쪽같다 ! " 회전목마 폭발장면은 미니어처와 배경영사, 클로즈업과 다른 인서트들로 구성된 특히 경이적인 장면이었다. ( 히치콕 서스펜스의 거장, 패트릭 맥길리건 781쪽 ) " 이 영화를 다시 평가하자면 " 압도적 걸작 " 이다. 주연배우가 매력적인 영화는 사실 매력없는 영화일 가능성이 높다.

 

범죄 영화에서 영화를 풍요롭게 만드는 주체는 악당을 물리치는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악당이다. 주연배우란 기본적으로 매력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가 매력적으로 등장한다고 해서 영화가 돋보이지는 않는다. 그냥 주연배우가 돋보일 뿐이다. 하지만 악당이 돋보이면 영화 전체가 풍부해진다. 내가 아무리 입이 닳도록 이 영화를 칭찬한다 한들,  당신에게 와닿지 않을 테니 직접 이 영화를 보라. 후회하지는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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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다다 2014-04-10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간만에 이곳에 오는데 요즘에는 히치콕을 다루시네요. 이 영화도 봐야겠어요. 볼 때마다 놀라운 사람입니다..
페루애 님도 서재의 달인' 칭호를 받으셨네요.. 축하드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0 17:35   좋아요 0 | URL
별다 님이시구랴. 반갑습니다. 별다 님 볼 때마다 늘 뿌듯합니다. 됐고 !
히치콕 영화, 뭐.... 두 말 하면 잔소리죠. 이 영화 꼭 보십시요. 링크 걸어두었으니 보세요. 기똥차게 만들었습니다. 히치콕은 당분간 계속 다룰 것 같습니다.
 

 

 

 

 

 

 

 

 

 

 

 

 

 

 

 


 

 

 

 

 

쩨쩨하게 살자 !

 

 

 

10. 사노라면 + 사이코
 

 

 

 

들국화는 이렇게 노래한다 :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밑천인데 /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 비가 새는 작은 방에 새우잠을 잔데도 / 고운 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 / 오손도손 속삭이는 밤이 있는 한 /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좍 펴라 /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이 노래를 듣다가 문득 옛 청춘들에게는 그래도 희망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 나기도 했으나 어디 요즘 개천에서 용 나는 경우 있었던가 ? 강남 아이들이야 천만 원짜리 " 강남 족집게 과외 " 한 번 받으면 성적이 대나무 죽순처럼 죽죽 오르니 강북 이무기가 용써봐야 용이 되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용쓰는 이무기 정도가 될 뿐이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강남 드래곤들이 어학 연수를 다녀오는 동안 강북 이무기들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정을 넘기는 순간 유통 기한을 넘겨서 폐기처분해야 될 삼각 김밥과 우유로 허기를 달래야 한다. 이러한 < 차이 > 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계급을 만든다. 그리고 이 계급은 < 차별 > 을 낳는다. 전인권은 담배와 소주로 숙성한 목소리로 " ......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 라며 맨발의 청춘을 위로하지만 요즘 청춘들에게 이 가사는 " 날이 새면 애가 타지 않더냐 " 처럼 들린다. 이제 "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 " 시대는 지났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빚을 지고 시작하는 마당에, 씨부럴 ! 무슨 얼어죽을 놈의 한밑천인가. 빚이 한밑천이냐 ?

 

당신이 나에게 반지하 삼십 촉 알전구 불만 세력(루저)이 쏟아내는 한심한 낙담이라고 조롱해도, 나는 그 말에 딱히 반론을 제기할 생각이 없다. 나 또한 타워펠리스에서 이백이십 뽈트, 으리으리한 집에 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깐 말이다. 헤헤. (됐고!) 옛'부터 남자는 쩨쩨하게 살지 말고 당당하게 살 것을 주문했다. 남자는 먼곳을 바라봐야지 코앞에 있는 일에 신경을 쓰면 쪼잔하다는 소릴 들었다. 김수영 말마따나 사내새끼'가 전쟁터에 나가 총 들고 싸우지 않고 "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개키고 있 " 으면 "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 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 쩨쩨하게 사는 모습은 사내새끼가 쪽팔리게 사는 모습 " 이다.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니 가슴을 쫘악 ~ 펼치라고 주문한다. 전형적인 한국 식 성 역할 주문이다. 그래서 수컷들은 통 크게 논다. 월세 살아도 차는 중형 세단으로 뽑고, 술은 룸살롱 가서 아가씨 젖가슴을 주물러야 뽀대가 난다. 물론 모든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도 이에 동조한다. 몸치장하는데 많은 비용이 드니 남성이 데이트 비용을 전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분빠이요, 셈셈이다. 여자 또한 한국 식 성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여성이 생각하는 < 분빠이와 셈셈 > 의 데이트 비용 논리는 오히려 성평등을 거스른다. 스스로 시소를 기울이고서는 기울어졌다고 징징거린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사내새끼가 데이트 비용 따위 가지고 쩨쩨하게, 쪼잔하게, 옹졸하게 군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 나 쩨쩨한 인간이다. 손가방이나 들어 주고, 모든 데이트 비용을 감당하고, 중형 세단을 모는 게 대장부다은 사내라면 기꺼이 쩨쩨한 인간으로 남겠다. 한국 남성들에게< 쪽 > 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 쪽 " 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기에 " 쪽 " 은 팔아도 된다. 그런데 한국인은 쪽을 팔지 않기 위해 양심을 판다. 정작 중요한 것은 양심인데 말이다. 웩 더 독, 몸통이 꼬리를 흔드는 꼴이다. 한국 식 깡패 느와르 영화는 쪽을 팔지 않기 위해 양심을 파는 양아치의 몰락을 다룬다. 깡패는 자릿세 명목으로 말을 듣지 않는 포장마차 주인을 몽둥이로 두들겨 팰 정도로 양심이 없는 놈들이지만 쪽팔린 짓은 안 하려고 한다. ( 이 나이 먹고 나가 하리 ? ) 쪽에 살고 쪽에 죽는다는 면에서 그들은 쪽생쪽사다. 그렇다, < 쪽 > 은 양아치들이 애지중지하는 가치다. 양심만 팔지 않는다면 쪽 팔고 쩨쩨하게 살아도 된다. 가슴 쫘아악 펼치고 살 필요도 없다. 당신은 공작새가 아니지 않은가 ?

 

" 쩨쩨하다 " 는 형용사는 새가 짹짹거리는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 쩨쩨하다 > 와 < 짹짹하다 > 는 서로 닮은꼴이다.  " 쩨쩨한 남자 " 라는 표현 속에는 이상하게 새처럼 조잘대는 남성 이미지가 엿보인다. 사실 남자에게 새'처럼 생겼다고 말하면 그것은 남성 모독에 해당된다. 새 같은 남자는 계집애 같은 남자애를 연상시킨다. 결국 쩨쩨한 남자'라는 표현에는 계집애 같은 남자'라는 이미지를 풍긴다. 영화 사이코'에서 베이츠 모텔 사무실은 온통 내장 없는 새의 거죽 껍데기들로 진열되어 있다. 이 지점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바로 쟈넷 리'가 연기한 메리언 크레인이라는 이름이다. 그녀는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불사조 이름과 똑같은 피닉스에서 왔다. 더군다나 크레인'은 학'이다. 그녀는 이미 내장 없는 신체가 되어 박제가 될 운명인 것이다.

 

히치콕은 영화 < 사이코 > 를 블랙 코미디'라고 말하고는 했는데 마리온 크레인'이라는 이름은 " marry on crane " 처럼 읽힌다. 아마도 히치콕은 그녀의 이름을 생각하고는 낄낄거렸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마리온'은 결혼하지 않은 여자'로 설정되지만 그것은 단지 60년대 검열을 피하기 위한 자체 검열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영화 오프닝에서의 정사 장면은 뭔가 불법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타락한 아이의 어머니'이면서 새이다. 노먼은 메리언 크레인과 늦은 저녁 식사를 하면서 끊임없이 조잘거린다.

 

 

" 당신, 당신은 새처럼 먹는군요... 어쨌거나 나는 새처럼 먹는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그건 실제로는, 말, 말,말,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왜냐하면 새들은 정말 엄청나게 먹어대거든요. "

 

 

새는 주로 멍청한 여성들을 조롱할 때 쓰였다. 심술궂은 어린 여자를 거위라고 하거나 새대가리라는 식이다. 짹짹거리다는 곧 잔소리'다. 그러니깐 엄청나게 먹어댄다는 말의 속뜻은 쉴 새 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는 속뜻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쉴 새 없이 자신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어머니'에 대한 불만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노먼 베이츠야말로 쉴 새 없이 짹짹거린다. 그는 남성적이기보다는 새처럼 가늘고 불안하며, 쉴 새 없이 짹짹거리며 조잘거리는 쩨쩨한 남성 이미지가 강하다. 그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노먼 베이츠(남성 육체)를 지배하는 사람은 죽은 어머니'였다.

 

 

자세한 내용은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86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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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4-04-09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기하의 싸구려커피가 수도권의 반지하 자취방 생활을 하는 짠한 청춘을 적나라하게 그려냈죠. 무척 공감이 가는 노랫말에 웃지만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정도의 웃음이죠. 정작 장기하는 그런 방에서 살아 본 적이 없다고 하네요.

그래서 폼생폼사인 수컷들을 저는 이성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냥 사회의 한 덜떨어진(?) 무리로 봅니다. 진화가 덜 된 것으로 이해하는 정도지요. 뭐 그 사람들 속에서 진짜 철학을 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는 것 같지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9 13:48   좋아요 0 | URL
전 폼생'은 하는데 폼사는 안 합니다. 폼 때문에 죽고 싶지는 않아요. 정말 멋진 인간은 폼사는 하는데 폼생은 안 하는 인간입니다.


장기하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일종의 스펙이죠. 라면 장사를 하더라도 서울대 나온 놈이 장사를 해야 신문 한 켠에 실립니다. 서울대 출신 라면 가게 사장.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다. 이런 거죠. 전 장기하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가 만약에 지방대 나왔다면 그의 노래는 전혀 인정받지 못했을 겁니다. 하여튼 폼생폼사하는 놈들 보면 양아치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9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세지감을 느낀다. 사이코를 보기 위해 별짓을 다했던 옛일을 생각하면 말이다. 이거 유투브 가면 히치콕 영화는 무한정 공짜다. 아마 지금까지 모든 메인 타이틀 시퀸스를 통톨이서 가장 위대한 타이틀 시퀸스는 < 사이코 > 다. 환상적이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9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알겠지만 히치콕은 반드시 자신이 만든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6분 40초에 등장한다. 창밖에 히치콕은 행인 1로 능청스럽게 뒷모습을 보여준다.

쩨쩨하게 짹짹거리는 노먼 베이츠는 27 : 00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사무실에 있던 경리 (쟈넷 리 말고.. ) 가 바로 히치콕 딸이다. 은근 닮았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9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사이코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13분부터 시작된다. 이 영화가 걸작은 이유는 13분부터'에서 시작해서 모텔를 찾기 전까지다. 정말 기가 막히게 좋다. 히치콕은 차 드라이브를 가장 예술적으로 찍는 감독이다. 이 사람보다 차 드라이브를 멋지게 찍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특히 < 현기증 > 은 최고, 최고다 !!!!!!!!!!!!!

취련 2014-04-09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ㅋㅋㅋㅋ 뭐라 열라 주절주절했는데.... ㅡ.ㅡ;;
강남 어쩌구리 하는 말에서 급 열받아서 [중딩학부모다보니 시골촌구석에 산다고 꿈조차 시골스럽게 낮추는게 낫지 않냐고 말하는 학모들이 있어서요 ㅋㅋㅋㅋㅋ] 막막막 글쓰는데 투자해야 하는 타이핑 솜씨를 여기서 발휘했는데
날아가버렸시유 아 댕장..... ㅋㅋㅋㅋ



그래서... 그냥 사족~~~~쓰지도 않고 사족~~~~~


요즘 미드 베이츠모텔 시즌 2를 하는데요
아주~~~ 재미있습니다.
물론 히치콕 원작에 비할 바 있겠습니까마는
아주그냥 볼만합니다

설정이 사이코가 왜 됐을까~~라는 어릴적 배경을 삼은거라서
원작과 이게 이리 연결되는걸까?? 하면서 몇십년의 공간을 건너뛰는 재미??
뭐라니....으흐흐흐~~~~~



미워요 췌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9 16:33   좋아요 0 | URL
그 마음 이해합니다. 열라 썼는데 싹 지워지면 전 못 쓰겠더라고요. 성질나서...
그런데 취련 님은 삭히고 쓰시는군요. 전정한 성인이십시다.
그나저나 오랜만이시군요..

베이츠 모텔 시작했군요. 재미있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티븨를 안 보다 보니
못 보게 되네요. 한번에 몰아서 보도록 합죠.

그나저나 천재소녀가 벌써 중학생이 되었군요. 녀석 알아서 잘 크는구만... 후후...

만화애니비평 2014-04-10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들이 무조건적인 남성쓰기 문제죠. 근데 그녀가 아름답게 치장하고 노력하는 것은 인정하는 바입니다. 대신 짜증나는 것은 그런 남자와 같이 즐거움을 위해 노력하는 반면 그러지 않은 자리에서도 남자가 돈쓰라고 하면서 적당히 입고 오는 생각이 짜증나죠. 그러면 동일조건입니다. 여자도 계속 만나면 남자만 쓰는게 아니라 자신도 조금씩 부담하죠.

그런데 문제는 그런 치장이라도 트렌드가 있으니 가방에 옷에 구두에 빠지면 결국 빚으로 사는 것은 둘 다 마찬가지이겠지요. 아무튼 TV가 모든 것을 망칩니다. 김치녀나 된장녀로 여자를 비난해도 그 비난을 만든 주체자는 미디어고, 그것은 남자들은 돈 많으면 오케이고, 다른 것은 필요없어라는 남성중심문화죠. 핀트나간 비난의 꼬리는 계속 범남범녀만 힘들게 합니다.

아무튼 곰곰발님 보고잡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0 12:3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판사판'이라는 말이 있죠. 여기서 이판'은 스님이 기도에 정진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사판'은 절 살림을 맡아서 하는 일을 뜻합니다. 스님이 이판에만 몰두하면 절 살림은 엉망이 되고,그렇다고 사판에만 몰두하면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되죠. 그렇다고 이판을 하면서 사판을 잘하면 되는데 인간이란 이게 안 됩니다. 그래서 이판사판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죠. 직장 맘도 마찬가지잫아요. 가정에 충실한 것인가 아니면 직장 생활에 충실할 것인가. 가정에 충실하면 직장 생활을 소홀히 하게 되어서 승진에 문제가 있고, 직장에 중점을 두면 가정에 소홀해서 가족 문제가 발생하죠. 둘 중 하나는 희생해야 합니다. 이것을 손실'로 치는 게 바로 기회비용인데 모든 선택에는 손실이 따르죠. 그런데 여성들이 미용비용을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당연한 손실로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보상받는 차원에서 데이트 비용을 모두 남성에게 전가시키는 것을 얌체'죠. 예뻐 보이려고 하는 것은 욕망일 뿐이지 그것이 상대방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무튼 함 봅시다. 막걸리나 마십시다요.
 

 

 

 

 

 

 

 

 

 

 

 

 

 

 

 

 


 

 

 

 

 

 

지구'는 내가 지킨다잉!

 

 

 

9.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어벤져스

 

 

아버지는 성탄절이 되면 " 오리온 과자 종합 선물 세트 " 를 사 들고 오셨다. 상자를 열면 그 안에는 온갖 주전부리가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어서 기뻤지만 이내 동생과 나눠야 한다는 사실에 우울했다. 사탕 네 개를 고를 것인가, 아니면 껌 한 통을 고를 것인가 ?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선택은 그리 합리적인 소비 형태'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상자 속 과자들 대부분은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없어서 잘 팔리지 않는 제품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재고 정리'였다. 차라리 그 돈으로 내 입맛에 맞는 과자를 맘껏 고르는 게 낫다. 영화 < 어벤져스 > 를 보면 오리온 과자 종합 선물 세트 같다. 뚜껑을 열면 그 안에는 아이언맨, 토르, 헐크,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 호그 아이 따위가 진열되어 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했던가 ?

 

영화는 끊임없이 볼거리를 제공하며 관객에게 " 딴생각 " 하지 말 것을 강요한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야말로 블록버스터'가 지향하는 미덕이니깐 말이다. 어어, 하다가 와와, 하며 박수를 치다 보면 어느새 영화는 끝난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  없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2시간 동안 반응했다는 사실에 바보가 된 느낌이 든다.  관객을 바보로 만드는 이들이 서울에 입성했다. 보아 하니 지구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당들이 서울이라는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 모양이다. 이에 슈퍼히어로들이 힘을 합쳐 악당을 물리치고 결국에는 찬란한 태양이 지구를 비추리라( - 뭐, 이런 내용이겠지 ? ) 서울 시민이여, 폐허가 된 도시는 걱정할 필요 없다. 악당들이 신나게 때려부순 마포대교와 63빌딩은 이명박에게 맡기면 된다. 요즘 그 양반, 한가하니깐 말이다.

 

대만 감독 차이 밍량이 이런 소리를 했다. " 나쁜 영화는 지구의 종말을 걱정하는 영화이고, 좋은 영화는 자신의 내일을 걱정하는 영화다. " 이 말에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맞는 말이다. 슈퍼히어로는 스케일이 " 큰 재앙 " 에만 관심을 보인다. 뱁새들 노는 마당에 백로가 놀 수는 없다는 태도'다. 그들은 세계 평화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 두 주먹 불끈 쥐며 세계 치안'을 책임지겠다고 큰소리 뿡뿡 치지만 자국 내 치안 문제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진다. 그들 안마당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면서 거창하게 세계 치안 따위나 걱정하니 하는 꼴이 가관이다. 마블 슈퍼 히어로들은 " 작은 재앙 " 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 큰 재앙 " 에만 관심을 쏟는다. 총기 난사 사건 따위는 지구 종말 사건에 비하면

 

얼마나 째째하고, 꾀죄죄하며, 옹졸한 사건인가.  김수영은 <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라는 시에서 옹졸한 짓만 골라서 하는 자신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폼 나는 짓만 골라서 하려는 지식인의 지적 허세를 은근히 지적한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이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누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마 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들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이 시에는 푸른 해원을 향해 흔드는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따위는 없고,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는 겨겨겨겨격정 신파도 없으며, 왜 사냐는 질문에 그냥 웃는, 동문서답도 없다. 시인은 날것 그대로인 일상을 마음 속 검열 없이 폭로함으로써 " 시인 " 이라는 낭만적 가객 이미지를 낱낱이 부순다. 그는 김지하처럼 투사도 아니며 서정주처럼 절대 미학을 탐하는 자도 아니다. 그저 갈비에 기름덩어리만 잔뜩 붙어 나오길래 화딱지가 나서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며 먹거리 엑스 파일에 제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시인이 있을 뿐이다. 이게 무슨 시인인가 ! 그런데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는 위대한 시인'이다. 시인이 쪽팔리게 닭벼슬도 벼슬이라고 구청 직원이나 동회 직원에게는 말 한마디 못하면서 애먼 야경꾼에게 잔소리를 퍼부었지만, 적어도 그는 양심을 팔지는 않았다. 김수영은 쪽은 팔더라도 양심은 팔지 않은 시인'이었다.

 

다시 한번, 차이 밍량'을 인용하자면 나쁜 영화는 지구의 종말을 걱정하는 " 척하는 " 영화이고, 좋은 영화는 자신의 내일을 걱정하는 영화다. 쪽은 팔아도 된다. 째째하게 굴어도 된다. 어깨를 쩍 벌릴 필요도 없다. 양심만 팔지 않으면 된다. 오늘도 서울 한복판에서 지구의 종말을 막기 위해 열심히 싸우는 어벤져스 팀에게 딱 한마디만 하고 싶다. " 너나 잘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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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 2014-04-08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의 영웅주의죠
커다란 재앙"의 해결사는 또
늘 미국에서 나와야 하구요.

며칠 못 들렀는데
역시.
새로운 글들로 끝없이 눈과 코를 간질거리게 하시는군요
봄날의 꽃가루 같은 양반.

그나저나
저 시 재미있네요
참 옹졸해서요 저도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8 18:33   좋아요 0 | URL
미국 영웅주의 이젠 좀 신물이 나죠.
전 어벤져스 이런 영화가 그냥 애니메이션 같아서
흥분이 안 되더라고요.

rendevous 2014-04-09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쓴 리뷰로 김수영 시, 산문 전집 받았는데 페루애 님 글 읽으니까 빨리 정독하고픈 마음이 불끈불끈 듭니다 ^^ 제 친구가 좀 있으면 군대 가는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를 하루 차이로 못 본다는데 아쉬움을 표하는데 그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복잡미묘, 멜랑꼴랑 ... 물론 저도 누구보다도 옹졸한 마음의 소유자지만!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9 10:48   좋아요 0 | URL
저도 스파이더맨 좋아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건 그냥 만화려니 보는데 인디펜더스데이 같은 영화 혹은 쉰들러리스트 같은 영화 보면 속이 터집니다.
제가 안철수를 싫어하는 이유는 거대 서사만 취하기 때문이죠. 새정치 ? 이젠 안천수도 하늘에서 내려와서
치열하게 밑바닥과 공유를 해야 합니다. 문학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그나저나 언제 날 잡아서 한 잔 합시다.

수다맨 2014-04-09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밍량이 말한 좋고 나쁜 영화의 정의, 훌륭하네요. 김수영 시도 좋구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시인이건 영화건 예언자 흉내내는 겁니다. 자기 내일도 모르는 주제에 인류의 앞날을 걱정하는 척, 하는 사람들 보면 다 쌈마이 같습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9 10:50   좋아요 0 | URL
밍량이 한 말 좋죠 ? 영화가 끝내주죠. 영화 보고 나면 한 1시간 동안은 계속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양반 애정만세 보고 나서 몇 시간 머리에서 계속 빙빙 돌더군요....
문학인이야말로 허세가 쩌는 부류라 생각합니다. 글 좀 썼다 하면 거대 담론 말하기 좋아하죠.

마립간 2014-04-09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 글에서 '척'은 빼고 읽겠습니다.

저에게 대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아시겠지만, 저는 1) 본질 2) 장기적 맥락 3) 단기적 맥락에서 3)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순위에서 제일 뒤처집니다. 저는 플라톤-노자주의자로 대중(다중)지성을 무시하지 않지만, 엘리트주의입니다. 2)번에 의해 아웃사이더이기도 합니다.

(저의 해석은) 김수영은 '양심'을 근간으로 단기적 맥락을 무시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히려 하나만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원리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양심의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경영했던 어떤 분의 경우는 양심을 거스른 것이 아니고, 양심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9 10:53   좋아요 0 | URL
이제 슬슬 마립간 님이 말씀하시는 맥락'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처음엔 무슨 말이지 했는데 이제는 뜻을 알 것 같습니다. 저는 장기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편입니다. 단기적 맥락을 지키면, 이것이... 그러니깐....
단기적 실천은 없이 장기적 안목만 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 생각합니다.
단기적 실천이 되어야 장기적 실천 또한 이루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마립간 2014-04-09 12:47   좋아요 0 | URL
최근 수학(본질)과 현실 상황 및 맹자를 읽고 단기적 맥락에서 어떤 가치를 두어야 할지 고민하는 중입니다. 분명히 단기적 목표를 성실하게 수행했더니 장기적으로 큰 성과가 나는 것이 있습니다. 또한 장기적 목표에 집중했는데, 상황이 바뀌어 장기적 목표가 의미가 없어지기도 합니다. 실증적으로는 생명의 진화가 장기적 목표를 갖고 진행된 것은 아니지요.

그럼에도 저와 같은 사람들은 장기적 목표를 놓지 않습니다. 코끼리 새끼는 어른이 되기 위해 태어날 때부터 굵은 다리를 갖고 태어나죠.

좀더 곰곰발님의 의견을 듣고 싶었던 것은 '양심'입니다. 양심이 없는 사람에게 양심을 운운하는 것은 의미없지 않을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9 14:31   좋아요 0 | URL
양심이 없는 놈에게 양심이 없으니 양심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게 아니라 의미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 가두는 게 상책이 아니라 죄'를 알려주는 게 중요하니깐 말입니다. 죄인에게는 끊임없이 죄가 파생시킨 결과를 깨닫게 하도록 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없는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가 싶습니다. 양심 있는 자에게 양심에 대해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립간 2014-04-09 15:59   좋아요 0 | URL
어떤 사람에게는 양심을 가지라고 해도 소용이 없을지 모르나 어떤 사람에게 의미가 있을 수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곰곰발님의 이야기가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양심이 없다고 한 것은 ; 양심이 임의적이지 않냐 하는 것이죠. (제가 양심이 없다고 한 그 분, 스스로는 양심이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9 16:37   좋아요 0 | URL
하긴 양심이 좋을 량'을 써서 좋은 마음이잖아요. 양심이 없다는 말은 좋은 마음이 없다는 뜻.
전 양심 없는 놈이 양심 없다는 사실을 알 것 같아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이명박도 자신이 양심 없는 자란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푸르푸르 2014-04-0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자칭 예술가들을 별로 안좋아하는 이유가
시인들을 안좋아하는 이유가 문학인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안좋아하는 이유가

세상 모든 고민 다 싸안고 혼자 쳐외로워하는 혼자만 아픈 것처럼 쫑알대는 그러 부분이예요

반대로 제가 카프카 채플린 다자이 오사무 김수영을 좋아하는 이유가
별 것 아닌 자신과 우스꽝스런 자신을 거리를 두고 잘 들여다볼 줄도 알고 드러낼 줄도 알아서고요.

어쨌든 이제 저의 소멸에 대해서도 리뷰를 부탁드립니다 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9 14:32   좋아요 0 | URL
빙고 ! 소멸이라면 ?! 아, 오쉬프 님이 쓰신 그 시 말씀하시는 거군요 ? ㅎㅎㅎㅎ. 그 시집에 대해 쓴 글이 있습니다. 허허허....

하여튼 저도 오쉬프 님의 견해에 동감합니다. 정말 쫑알대는 거 지겹습니다.

samadhi(眞我) 2014-04-09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수영 전집을 보관함에만 몇 년 째 넣어두고 책값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던 쪼잔한 제게 책을 사게 만드는 시네요^^.
참 자잘하게 쓸데없는 것에 과하게 신경쓰며 사는 인생도 괜찮다. 해주는 것 같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09 14:33   좋아요 0 | URL
시와 거리를 두시는 분도 계시니 산문을 먼저 권합니다. 둘 다 뛰어나지만 산문도 정말 기가 막혀요. 굉장한 책입니다. 한국 작품 중 다섯 순가락 안에 뽑습니다.

봄밤 2014-04-10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쁜 영화는 지구의 종말을 걱정하는 영화이고, 좋은 영화는 자신의 내일을 걱정하는 영화다' 다시 한번 적어요.
어벤져스와 김수영을 엮다니. 시를 읽는 방법이 무궁합니다. 영화와 시를 엮는 기획, 쭈욱 응원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1 12:18   좋아요 0 | URL
문장 사용료는 차이 밍량'에게 보내주십시요. 밍량 영화 좋습니다. 한번 보십시요 ~
영화와 시를 엮으려고 하는데 이게 제가 시를 읽지 않아서 한계가 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