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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 덕수는 고민 있을 때마다

아버지  -  유령을 호명하는가    :



 

끝까지 깐다 시리즈


 



영화 << 국제시장 >>



                                                                                                        영화를 " 더럽게 못 만드는 감독 " 이 있는가 하면 영화를 " 더럽게 만드는 감독 " 이 있다.  전자는 < 불후의 걸작(傑作) > 를 만들고 싶었으나 결심과는 달리 < 불우한 걸작(乞作) > 을 연출한 감독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 유형에 속하고, 후자는 이도 저도 둘 다 용서가 안 되는 유형에 속한다.

한마디로 윤제균 감독은 영화를 매우 더럽게 만드는 감독'이다. 이 방면에서는 강우석과 함께 독보적 발자취를 남긴 감독으로 남을 것이다. 질이 낮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질이 나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용서할 수 없다. 언어유희를 섞어서 말하자면 질이 낮은 영화는 上品의 문제이고, 질이 나쁜 영화는 性品의 문제이다. 전자가 영화라는 상품으로써의 물성'에 대한 지적이라면 후자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애티튜드'에 방점을 찍는다. 영화 << 국제 시장, 2014 >> 은 욕하면서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보다 보면 흥겨워서 라라 _ 하게 된다. 

이런 영화가 천만 관객'을 찍었다는 사실은 이명박과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이유를 설명하기에 좋은 자료를 제공한다. 쉬운 말을 뱅뱅 돌려서 말했지만  :  뚜껑 열고 bang-bang 쏘면서 말하자면 윤제균 사단 영화는 대부분 " 좆같은 영화 " 다. 윤제균 영화는 코미디와 신파를 섞어서 < 한국형 ㅡ 패밀리 플롯 > 을 구성하는데, 그 맛이 똥맛이라. 윤제균의 초기 코미디 영화1)에서 코믹한 설정은 주로 폭력으로 점철된 슬랩스틱에서 얻는데 그 대상은 남성'이다.  << 두사부일체 >> 에서 대가리(정운택 분)는 계두식(정준호 분)에게 쉴 새 없이 맞는데 이 폭력은 주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렇기에 남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 아픈 척하는 웃기는 폭력 " 이다.  여기에는 리얼리티가 없다. 아크로바트만 남을 뿐이다. 신파 요소도 코믹과 마찬가지로 폭력을 이용해서 슬픔을 끌어낸다. 코미디 요소로서의 폭력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대상이 주로 여성'이라는 데 있다. 남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리얼리티 없는 몸 개그'라면 2)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 리얼리티한 폭력 > 이다.  영화 속 이은주(오승은 분)는 남성들에게 과도하게 구타를 당한다.  영화 << 1번가의 기적 >> 에서 하지원이 여자 복서 명란을 연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복서 명란은 남성들에게 마른 북어처럼 구타를 당한다.

이 아저씨가 만든 초기 영화 - 들에서 여자들은 오로지 맞기 위해서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영화 << 국제 시장, 2014 >> 은 명랑 코미디'라는 장르 때문에 매 맞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에서 여성이 어떤 방식으로 소모되는가를 살펴보면 보다 악질적이다. 흥남 철수 때 잃어버린 << 막순 >> 은 덕수네 가족이 불행해지는 단초를 제공하는 인물로 사용된다. 막순 때문에 아버지는 가족 서사에서 제거되어 그 후로는 유령으로서만 존재한다. 영어를 모르는 덕수가 투비 낫투비 _ 하며 방황할 때

덕수 아버지는 스크린 앞에 햄릿의 유령처럼 홀로그램으로 등장해서 이북 사투리로 이 종간나 새끼 ! 투비는 하되, 낫 투비는 허지 말아야지비. 아니그럼 ?  너는 이 가문의 장남이고 가장이야 !  _  라고 지껄인다.  김슬기 배우가 연기한 끝순이라는 캐릭터도 덕수 인생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 영화에서 끝순은 철딱서니가 없다기보다는 자신의 결혼 혼수를 위해 오빠를 사지로 보내는 악녀에 가깝다. 덕수는 끝순의 혼수를 장만하기 위해 월남으로 향한다. 덕수모'도 있으나 마나 한 여성 캐릭터'다. 덕수가 투비_ 할 것인가 낫투비 _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할 때마다 그가 호명하는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죽은 아버지 - 유령이다(어쩌면 진짜 유령은 죽은 아버지가 아니라 산 어머니인지도 모른다).

윤제균이 여성 캐릭터를 부정적으로 다루는 방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월남에서 다리를 잃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베트남 여자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장면으로,  결국 다리에 총을 맞는 일이 발생하고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잃는다. 국뽕 휘날리는 장엄한 서사의 유치찬란을 논하기에 앞서 이 장면은 매우 악질적이다. 덕수가  물에 빠진 여자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장면에서 생각을 멈추고, 그가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 벌어졌던 자살 폭탄 테러 사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 거리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했을 때 그를 죽음에서 구해준 이는 베트남 남자아이'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여자아이는 덕수를 죽음으로 이끌고 남자아이는 덕수를 죽음에서 구해주는, 이 선명한 대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이 장면이야말로 윤제균의 잰더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단서'다. 그가 배역을 선정하고 배분할 때 잰더 역할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했다면 이런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덕수는 항상 징징거린다. 그는 고민이 있으면 죽은 아버지 유령과 대화를 나누거나 친구 달구(오달수 분)와 상의할지언정 어머니와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  결정에 따른 통보만 할 뿐이다.  덕수가 "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 ​ 라는 대사를 내뱉을 때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 어쩌라고, 어 ?! " 

윤제균, 이 인간 영화 참 더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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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독이라 부르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냥 아저씨라 부르겠다.

2)   윤제균 영화에서 남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크게 웃음을 유발하게 위한 폭력과 남성을 거룩한 희생양으로 묘사하기 위한 판타지로 작용한다. 그렇기에 남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여성에게 가해질 때 발생하게 되는 리얼리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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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 - [초특가판]
씨네코리아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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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 지 도    못 하 면 서   : 






/관계는 없다



 




                                                                                                        알프레드 히치콕이라는 이름'에서 " - cock " 은 누구네 아들'이라는 의미로 종합하면 히치콕은 " 히치네 아들 " 혹은 " 히치 2세 " 라는 뜻이다.  훗날,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알프레드 히치콕은 청과상으로 부를 쌓은 상인 히치 씨의 아들'이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히치라고 합니다  _  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는 익살스럽게 뒷말을 덧붙이곤 했다. " 하지만....... 좆은 없습니다. ㅋㅋㅋ " 정확히 기술하자면 " 히치라고 합니다.

콕(cock)은 없습니다만 ! " 인데, cock이 속어로 페니스를 뜻하는 단어이니 말장난인 셈이다. 히치콕은 자신을 거세된 남자'로 소개하는 것이다. 이 농담은 가볍게 웃고 넘어갈 일이기는 하나 공교롭게도 히치콕이 영화에서 주로 다루던 주제가 < 거세될 위기에 놓인 남성 > 이다. 나는 항상 히치콕은 양성애자라기보다는 동성애자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비록 영화적 동지인 알마와 결혼해서 외동딸을 낳았으나 트뤼포와의 대화에서 결혼해서 아내와 섹스를 한 경우는 단 한 번뿐이었고 그것도 어디까지나 애를 가지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이 고백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영화 <<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내 The Man Who Knew Too Much, 1956 >> 에서 제임스 스튜어트가 연기하는 미국인 의사는 제목과는 달리 똑똑이가 아니라 헛똑똑이'이다. 미국인 의사 부부 가족을 지배하는 것은 아내'이다. 일종의 모계 중심 가족인 셈이다. 이 가족은 해외 여행 도중 아들이 유괴를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 균열을 어떻게 봉합할 것인가. 가장은 미국인 의사는 동분서주하며 악당과 싸우지만 먼저 선빵을 날린 적은 없고 악당이 훅을 칠 때 잽만 날리니 타격감마저 낮다.  조금 더 흉을 보자면  : 목 마르다고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 성격이어서 겁은 많아 새 가슴을 간직했으나

고집만큼은 황소'여서 자존심은 높다. 그리고 속은 뒤틀려서 아내에 대한 자격지심이 크고 질투심이 강하다.  잘난 척은 다 하지만 하는 일마다 실투투성이'이니 요즘 유행하는 말로 " 맨스플레인 " 의 전형이다. 요약하자면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는 남자 구실을 못하는, 거세 위기에 놓인 남자는 과연 남근을 되찾을 수 있을까 ? 에 있다.  남자는 우여곡절 끝에 아들을 되찾아 집으로 귀환한다. 영화는 스릴러에 촛점을 맞췄다기보다는 분열된 가족이 어떻게 다시 복원되었는가를 중심에 둔 가족극이다.  해체된 가족이 재난으로 인해 다시 뭉친다는 의미에서  이 영화는 < 스릴러 > 가 아니라 차라리 < 재난영화 > 에 가깝다.

내가 이 영화에서 주목하는 대목은 음악 연주회 홀에서 외국 대사를 암살하려는 암살자를 연기한 무명 배우 레지 날더의 얼굴이었다. 그는 내가 무수히 목격한 영화 속 얼굴 중에서 손에 뽑힐 만한 압도적 아우라를 가진 절대적 얼굴이었다. 아, 이 남자 정말 맬랑꼴리하며 야리꾸리한 눈빛의 소유자로구나 ~  그가 등장하는 엘버트 홀 시퀸스는 매우 흥미롭다.


이 장면에서 암살자는 붉은 커튼 뒤에 숨어서 권총을 꺼낸다. 이때 화면은 권총 총부리 때문에 불쑥 튀어나온 커튼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모든 현상을 성(性)과 연결을 시키는 내가 보기에 이 장면은 양복 바지 입은 남자가 발기했을 때 바지 천 위로 불쑥 솟는, 민망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다음 장면은 총부리가 천을 뚫고 그 모습을 드러낸다. 거짓말을 한 피노키오의 코처럼 총부리는 점점 길어지는데 이 장면은 누가 봐도 남근이 발기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모습을 목격한 미국인 의사의 부인이 놀라는 장면은 마치 바바리맨이 박쥐처럼 날개를 펼쳤을 때와 유사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암살자와 표적(정치인)이 둘 다 남자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장면은 동성애적 성적 함의로 읽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감독은 이 장면을 찍기에 앞서 암살자 역을 연기할 배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자네가 죽일 표적을 말이야. 아름다운 여인을 황홀하게 바라볼 때의 표정으로 바라보라고, 사랑스럽게 ! " 그의 주문대로라면 히치콕이 연출한 엘버트홀 시퀸스는 명백하게 성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동성애가 이성과의 섹스에 실패하는 서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 내내 흐르는 야리꾸리한 갬성은 " 섹스리스 " 이다.

 

암살자가 쏜 사랑의 큐피트 총, 얼마나 남근적인 오브제인가 !     는 빗나가고, 의사 부부 또한 내내 섹스리스 상태였다. 아내는 여행 도중에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남편에게 우리 애는 언제 가질 것이냐고 묻는다. 첫째 아이 출산 이후로 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뉘앙스로 읽히는 대목이다. 영화의 결말은 히치콕 영화가 언제나 그렇듯이 급조된 해피엔딩이다. 그것은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고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미국인 의사가 되찾은 것은 잃어버린 아이가 아니라 자신의 남근이었지만, 부부의 섹스리스가 과연 해소될지는 모르겠다. 라캉의 경구를 빌리면 성관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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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 초특가판
빅터 플레밍 감독 / 기타 (DVD)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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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 형 의    집 으 로    오 세 요  :




 

 


 a friend of Dorothy


 

                                                                                                                   빅터 플레밍 감독이 1939년에 연출한 << 오즈의 마법사 >> 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다가 그만 " 풀잠1) " 을 잔 모양이었다. 눈을 뜨니 방안은 온통 짙은 어둠이 깔린 터라 마치 무성영화 흑백 화면을 보고 있는 듯했다.  런닝타임이 길지 않은 꿈이었으나 꿈자리는 사나웠다.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꿈에서 나는 쫓기고 있었나 보다. 꿈을 깨고 나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눈을 뜨고 나서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침대 옆에 놓인 노트북을 끌고와 모니터에 입력된 글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 저자는 죽고 독자는 탄생 " 한다는 롤랑 바르트의 입장을 받아들인다면 이 원작은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다시 해석될 수도 있다.  원작자의 작품 의도가 무엇이든, 그가 손을 뗀 이상 그 텍스트에 대한 해석은 독자에게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작자인 라이먼 프랭크 바움은 자신이 쓰던 서류용 선반 첫 칸이 A부터 N까지고 두 번째 칸이 O부터 Z인 것을 보고 마법사 이름을 오즈 OZ 로 지었다(라는 " -카더라 일화 " 가 있다)고 해도 독자들은 얼마든지 시대 상황에 맞는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마법사 오즈 OZ  > 에서 " OZ " 가 금과 은의 단위인 온스(Ounce)의 약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나 같은 범성론자는 오즈를 팔루스( = 돈 권력 욕망 )로 환유할 수 있다. 오즈 나라 사람들은 유한계급이다. 그들은 " 12시에 일어나 1시부터 일을 하고, 1시간 동안 점심을 먹으면 2시에 일이 끝난다 "  12시에 일어나 1시부터 일을 하는데 그때부터 한 시간 동안 점심을 먹으면, 이거..... 결국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  발기한 남근 >  을 뜻하는  팔루스 Phallus 가 지배하는 에메랄드 캐슬 시티는 성공한 남성 자본가 중심인 유한계급 사회인 것이다.  반면에 금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은구두를 신은 도로시와 도로시의 친구들 a friend of Dorothy 은 모두 남근이 거세된 이들이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 a friend of Dorothy >> 라는 표현의 사전적 의미'가 " 남자 동성애자 " 를 뜻하기 때문이다1-1). 허수아비는 뇌가 없고, 양철나무꾼은 심장이 없고, 사자는 용기가 없다. 이 결핍 - 들은 곧 거세를 의미한다.  하지만 원작에서도 밝혀졌듯이 오즈는 " 아무것도 아닌 것 " 에 불과하다. 좆도 아닌 것이 좆도 있는 척을 했으니 헛것이다. 이 결말은 남근의 무능을 폭로하는 것이다. 결국, 도로시와 친구들은 팔루스의 도움 없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역경을 극복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을 돕는 이가 수호천사가 아니라 착한 마녀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오전 03 : 36

2019-01-23

  

 

 

 

모니터 속 커서가 깜박깜박 점멸하며 문자 입력을 강요했다. 일어나서 불을 켰다.  방안 인테리어는 온통 흑백 모노톤이었다. 마치 흑백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황급히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오소리보다 약간, 조금 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2).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짙은 회색이었다 ! 문득, 몇 달 전에 김시선 안과에서 시력 검사를 받았던 때가 떠올랐다. 의사가 말했다. " 선생님은 현재 망막 색소 결핍증이라는 희귀 병'을 앓고 계십니다.  망막 색소를 잃음으로써 서서히 일상 속에서 색깔을 하나하나 잃어가는 무서운 병이죠. 

처음에는 붉은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무지개색 전체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결국에는 전체 화면에 흑백으로 보이게 되죠. 세상이 흑백영화처럼 보이는 겁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 거울 속 내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 페루애, 이 박복한 인간 ! 살아생전에 그토록 색을 밝히더니. 아이구야. 이 못난 화상아 ~ " 거실을 향하기 위해 방문을 열었을 때였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거실이 아니라 총천연색 먼치킨 마을3)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  도로시는 뇌가 없는 허수아비, 심장이 없는 양철나뭇꾼, 용기가 없는 사자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도로시가 나를 발견하더니 말했다. " 페루애, 우리와 같이 안 갈래 ?   마법사 오즈 님이 계신 에메랄드 캐슬에 가자.  전지전능한 오즈 님은 우리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실 수 있어. 우리 함께 가자 ~ "  허수아비는 뇌가 없고, 양철나무꾼은 심장이 없고, 사자는 용기가 없는데......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이 없다는 것일까 ?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 도로시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 페루애, 넌 불알이 없잖아 !!! "   불알이 없다고, 내가 ?  미쳤어, 정말.  하, 어이가 없네. 불알이 없다고, 내가 ????!!!!!!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했던가. 나는 어느새 그들과 함께 마법사 오즈가 사는 에메랄드 시티로 향하고 있었다.

마법사 오즈는 허수아비에게는 학위 수여증을, 양철나무꾼에게는 하트 모양 시계를, 사자에게는 훈장을 달아주었다. 그리고 오즈는 내게 당구공 두 개를 선물로 주었다. 오즈가 말했다 : 이보게 ! 이 당구공은 다이아몬드로 만들었다네. 가치로 따지자면 100억이 넘지.  최고 상품이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남근 = 권력이지. 곧 불알 = 돈'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네. 지상에 내려가거든 당구공을 팔아서 인공 불알을 만들게나.  나는 손안에 잡힌 당구공을 만지작거렸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여기까지가 간밤에 꾸었던 꿈이다. 사나운 꿈자리 때문에 늦잠을 자서 헐레벌떡 씻고 집을 나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어깨가 무거웠다.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주머니 속에는 당구공 두 개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다이아몬드로 세공한 당구공이 아니라 싸구려 페놀수지 재질로 만든 평범한 당구공이었다. 나는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괄약근에 힘을 주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 아 !  오즈4), 이 시발새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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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풀잠은 꽃잠의 반대말이다.

1-1) dorothy의 애칭이 doll(인형)이다. 그러니까 a friend of Dorothy 는 인형 친구들이라는 뜻으로 인형 가지고 노는 아이들을 의미한다.

2) 오소리보다 조금 더 소스라치게 놀라다 _ 라는 표현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상투어'다.

3) 영화 < 오즈의 마법사 > 에 나오는 마을 이름

4) 원작 < 오즈의 마법사 > 를 경제적 관점에서 이해하면 다음과 같다.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는 디플레를 무찌르러 갔다


    사스 외딴 시골집에서 어느 날 잠을 자고 있을 때 무서운 회오리바람 타고서 끝없는 모험이 시작됐지요.  프랭크 바움이 1900년 발표한 아동문학 '오즈의 마법사'는 발표 직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시골 소녀가 허수아비와 사자를 만나 기상천외한 모험을 한다는 이야기는 어린이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제1편이 성공을 거두면서 이후 열세 편의 후속작들이 나왔다. 1903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1939년 MGM 영화로도 상영됐다.  하지만 이 작품이 19세기 말 디플레이션 시대를 살아가는 미국 농민과 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표현됐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경제학자인 휴 록오프가 1990년 발표한 논문 '금융의 은유로 보는 오즈의 마법사', 헨리 리틀필드가 1964년 쓴 '오즈의 마법사:인민주의에 빗대어' 서적은 오즈의 마법사에 담긴 정치 경제적 은유를 상세히 담고 있다. 시대적 배경부터 살펴보자. 미국은 1873년 금ㆍ은본위제에서 은을 뺀 금본위제로 돌아선다. 금본위제도는 통화에 대한 신뢰가 확보되지 않아 중앙은행이 함부로 돈을 찍어내 화폐경제에 교란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로, 금본위제도에서 중앙은행은 돈을 찍어내는 양만큼 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했다. 중앙은행이 만 원을 찍어내려면 만 원어치의 금도 갖고 있어야 했다. 돈을 금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언제라도 금을 내줄 수 있는 '금태환'이 가능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 말 금 생산량이 부족해 화폐를 원하는 만큼 찍어낼 수 없었다. 이로 인해 1880년부터 1896년 사이 미국은 물가가 20%대로 떨어지는 극심한 디플레이션을 겪게 된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이득을 봤지만 농민이나 근로자는 부채의 실질 부담이 커져 큰 고통을 받았다. 당시 금본위제와 금ㆍ은본위제를 주장하는 미국 정당들은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 미국 북동부의 윌리엄 매킨리 공화당 후보와 자본가 계층은 금본위제를 지지했고, 남서부의 농민 노동자 계층은 금ㆍ은 본위제를 지지했다. 결국 1896년 대통령선거에서 금본위제를 지지하는 공화당이 이겼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미국 경제는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게 되는데, 알래스카ㆍ호주ㆍ남아프리카 등에서 금광이 발견됐고 원석에서 금을 효율적으로 추출할 수 있는 '청화법'이 발명돼 미국으로 유입되는 금의 양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통화공급이 증가하면 자연히 물가는 오르게 된다.  다시 '오즈의 마법사'로 돌아가 보자. 도로시는 여행길에서 친구들을 만난다. 생각할 수 있는 뇌를 갖고 싶어하는 허수아비,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싶어 하는 양철 나무꾼. 용기를 얻고 싶어 하는 겁쟁이 사자다. 이들은 천신만고 끝에 에메랄드 시에 도착하지만 오즈의 마법사는 서쪽나라의 악한 마녀를 죽이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도로시는 악한 마녀를 처치했지만 마법사 오즈는 가짜이며 소원을 들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러나 도로시가 신고 있는 은구두를 툭툭 치면서 소원을 빌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다.   경제학자 록오프는 우선 주인공 도로시는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나타내고 있다고 해석했다. 허수아비는 가난한 농민, 양철 나무꾼은 산업 노동자, 사자는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윌리암 제닝스 브라이언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 동부의 은행들은 변장한 마법사, 서쪽에서 불어닥친 회오리바람은 금본위제를 둘러싼 정치적 대립을 뜻한다고 봤다. 특히 도로시가 은 구두를 신고 노란 벽돌 길을 걷는 장면에서 은구두는 모든 소원을 이뤄주는 은본위제, 노란 벽돌 길은 금본위제를 가리킨다. 도로시와 친구들은 화폐를 의미하는 초록색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보는 에메랄드 시에 도착하는데 마법사 오즈를 만나기 위한 험난한 여행길은 금본위제로 겪는 디플레이션의 폐해를 상징한다. 금이 귀해 디플레이션이 유발됐기 때문에 당시 보유량이 많았던 은본위제를 병행하면 통화량이 늘어나 인플레이션이 촉진되면서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해석도 덧붙는다.  (구채은 기자 )

 

ㅡ 아시아 경제 [금융뒷談 ]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는 디플레를 무찌르러 갔다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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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9-01-23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왜 페미니스트들이 < 오즈의 마법사 > 를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해석하지 않는지가 궁금하다. 이 작품은 명백하게 페미니즘적이다.

임모르텔 2019-01-23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진짜!
꿈이야기 ㅎㅎㅎㅎㅎ 제가 단기기억상실이 좀 있으나 기억나날때마다 키득댈것 같습니다.
별 웃을 일 없는 나이에, 감사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1-24 15:28   좋아요 0 | URL
웃을 일 없을 때 더 웃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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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다 :


 

 

 

                                     도어락, 2018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숨이 막히는 듯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언가 끔찍한 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하지만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집안 어디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혼자 살고 있었으며 그것은 그 순간 그 끔찍한 일을 함께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침대 밑을 보여 줄 사람이, 몸을 숨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 침대 밑 악어 중

 



                                                                                                      

 

오피스텔 원룸에서 독신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경민(공효진 분)은 여성 1인 가구라는 사실이 알려져 범죄의 타깃이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독신이다. 그는 일부러 빨래 건조대에 남자 속옷과 남자 양말을 진열하고, 현관에 남자 구두를 배치한다1).  만약에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 설정이 과도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남성 관객일 확률이 100%다.  현실 반응은 영화보다 더 히스테릭하다.  여성이 혼자 있을 때를 대비해 배달이 오면 앱(Application)에서 남자 목소리로 변조되어 대답하는 기능도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보다 현실 속 설정이 더 기괴한 경우이다.  이처럼 영화 속 설정은 여성이라면,  더구나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불안이다.  영화는 그 불안의 지점을 파고든다.  강력범죄 피해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86.2%이고,  성폭력은 하루 평균 88회 이상 발생하며,  

 

성폭력 가해자의 94.4%가 불구속 처리되고,  강도, 강간,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96.3%다.  그리고 주거침입 성범죄 사건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99.8%다.  그렇다면 여성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에 대하여 남성은 무시로 일관하거나 반대로 격하게 분노를 표출한다.  영화 << 도어락, 2018 >> 에서 남성 - 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원룸에 누군가 있다는 경민의 진술을 초지일관 히스테리한 반응으로 치부한다. 여성의 언어는 권위와 존경을 얻지 못한다. 가족극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사건에 개입하고 해결하는 것은 남편이다. " 당신은 조용히 있어 ! "           

 

이 흔해빠진 패밀리 플롯은  여성의 언어가 사건을 해결하는데 아무 도움도 될 수 없다는 편견을 심어준다.  반면, 가부장 남성은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단숨에 다툼을 정리한다. 가족 서사극'은 남성의 언어에 권위를 부여하고 우리는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영화 << 도어락, 2018 >> 은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는 환자의 재담을 닮았다. 즉, << 도어락 >> 은 익히 알려진 재담의 장르적 변주'이다.

 

 

    대 밑에 악어가 산다고 불평하는 여성 환자가 있다.  여자는 악어가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말한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에게 그것은 단지 환상에 불과하며 침대 밑에는 악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와, 악어 있다니까요 ~    왜, 내 말을 안 믿냐고요 ~    나, 이대 나온 여자라고요 ~   하지만 의사는 도시에서 악어 출현은 " 실현 불가능한 환각 " 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무시한다.  두 번째 상담에서도 그 환자는 여전히 똑같은 불평을 하지만 남자는 지난번 진단과 같은 처방을 내린다. 와, 악어 없다니까요 ~    왜, 내 말을 안 믿냐고요 ~     나, 정신과 의사라고요 ~             세 번째 상담이 있던 날,  약속했던 환자가 나타나지 않자 의사는 환자의 망상이 사라졌다며 기뻐한다.  만약에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난다면 이 이야기는 매우 지루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며칠 뒤, 의사는 환자 친구인 k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환자의 안부를 묻는다. k가 말한다.  그 악어한테 잡아먹힌 친구 말하는 겁니까 ?  이웃집에 사는 사람 말로는 그 집 침대 밑에서 악어가 살았다고 하더군요.                   

 

 

자신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 원룸 안에 누군가 있다고 말하는 경민(공효진 분)은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고 말하는 정신과 상담 환자와 동일인이다. 그리고 경민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이 형사(김성오 분)는 정신과 의사'이다. 또한 혼자 사는 여성만을 노리는 범인은 사람 탈을 쓴 초록색 악어'이다(실제로 영화 속에서 범인은 경민의 침대 밑에 숨어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성 - 들'은 예외 없이 모두 경민의 침대 밑에 사는 악어에 대하여 " 실현되지 않는 환영 NON·REAL(IZE)  " 이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남성들에 의해 실현되지 않은 환영'으로 치부되었던 악어는 관객 앞에 " 실현된 환각 NON·ILLUSION(ED) " 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초록색 악어는 남성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여성에게는 존재하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왜 초록색 악어는 남성들에 의해 리얼/real 이 아니다/non 라는 존재 부정을 당하는 것일까 ?   그것은 바로 초록색 악어가 일반 남성의 비밀스러운 환유이기 때문이다.  남성이 악어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그 행위는 곧 자기 자신을 향한 비판'이 된다.  라캉의 사유를 빌리자면 침대 밑에 사는 악어는 실재 the Real 에 가깝다. the Real 실재(계)는  the reality  현실과는 다른 개념으로 실제(實際)도 아니고 실재(實在)도 아니요, 그렇다고 실체(實體)도 아니다. " 리얼리티 없는 리얼 " 이 바로 침대 밑에 사는 악어이다. 남성에 의하면 악어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이 존재 부정이야말로 악어를 어디에나 있도록 만든다. 악어는 침대 밑에서 출몰하기도 하고, 거리에서 바바리를 입고 여고 앞 골목길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생님이나 목사님의 탈을 쓰고 나타나기도 한다. 악어는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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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원룸 ONE-ROOM  > 은 1인 주거 공간의 마지노선'이다. 은행 직원 경민은 1인 가구를 2인 가구로 포장하기 위해 위장을 선택하지만 원룸 자체가 독거 주거 형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효과는 미지수'다. 이보다 후퇴한 주거 형태가 < 쪽방 > 이다.  쪽방은 ROOM 를 1/2, 1/3, 1/4, 1/5, 1/6......1/13으로 쪼갠 형태로 고시원, 쪽방촌, 달방, 고시텔이 이에 속한다.  영화 << 도어락 >> 은 원룸에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만한, 일상의 공포를 설득력 있게 제공한다. 독거의 최소 주거 공간 형태가 ONE - ROOM 이라는 점은 주인공 조경민(공효진 분)이 계약직 직원이라는 설정과 맞물리면서 주거 빈곤에 따른 현대 여성의 사회적 불안을 다루는데 성공한다. 한 칸짜리 방에 사는 여자는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이곳에서 물러나면 갈 곳은 방을 쪼갠 쪽방이다. 이 영화가 리얼리티를 가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살인마가 사는 공간으로 설정된 공가(空家)가 영화 중후반부터 주요 무대로 등장하면서 이 영화는 톤 앤 매너가 갑자기 와르르 무너진다. 무대가 원룸 ONE-ROOM 에서 공가(空家) EMPTY HOUSE 로 후퇴하면서 일상생활의 공포는 난도질 스플래터 장르의 판타지로 추락한다. 특히, 공가 장면들은 영화 << 목격자 >> 와 << 샤이닝 >> 냄새가 너무 나서 신선함마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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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조   선    원    년   :



국가부도의 날, 2018



                                                                                                                  국가부도의 날에 술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술집은 한산했고 취객은 조용했다. 이 침묵은 앞으로 다가올 고통을 지레짐작할 수 없을 때 발생하게 되는 어떤 " 무지 " 이거나 " 증후 " 였다.

김영삼이 티븨에 나와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을 분담하자고 했을 때 여기저기서 욕지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난감했다, 그날은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으니까 !  20년 전 일이라 세세하게 기억할 수는 없으나 아마도 어디선가 눈이 내리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날은 절기로 小雪 이었다. 소설(小雪)에 소설(小說)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픽션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국가는 국민 탓'을 하기에 바빴다. 국민들의 과소비가 IMF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국민 80%가 자신은 중산층이라 믿었던 시절에, 90년대 인기몰이 중이던 패밀리레스토랑에서 큰마음 먹고 생일 파티를 해본 경험이 있는 소시민이라는 누구나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MBC 9시 저녁 뉴스에서는 외국계 패밀리레스토랑을 취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곳의 음식은 대부분 수입 원료를 사용하고 있으며 여기에 로열티까지 꼬박꼬박 달러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음식점을 통해서 우리의 달러가 물이 새듯 해외로 새나가고 있습니다. 엠비씨 뉘우스 ~ 송재익이었습니다. " 죄인이 된 국민은 외화를 모으기 시작했고 장롱 속 금을 내놓기도 했다. 20세기 초에 벌어졌던 국채보상운동이 21세기를 앞둔 끝무렵에 재현된 것이다. IMF 다음해, 9622명의 국민이 자살을 선택했지만 IMF 사태에 대해 1차적 책임을 져야 할 정치인과 경제 관료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영화 << 국가부도의 날, 2018 >> 은 내가 허름한 술집에서 생파를 하던 날로부터 일주일 전을 다룬다. 딱 잘라 말해서, 영화는 < 설명 > 은 많은데 < 갈등 > 은 없다.

이 영화에서 핵심 축이라 할 수 있는  한시연(김혜수 분)과 윤정학(유아인 분)은 관객들을 향해 경제 강의를 늘어놓는다. 문제는 두 등장인물 모두 내적 갈등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우선, 한시연과 팀원은 서민 편에 서서 IMF 구조 금융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유가 입체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감독은 이 문제를 의식했는지 영화 끝에 가서 김혜수와 허준호가 " 남매간 " 이라는 반전을 준비했는데 이 촌수寸數 반전'은 너무나 뜬금없어서 촌스러운 반전처럼 보인다. 그리고 유아인이 연기한 윤정학은 있으나 마나 한 캐릭터'다. 영화 << 빅쇼트 >> 에서의 마이클 버리(크리스찬 베일) 캐릭터를 그대로 카피한 윤정학은 염치없게도 그 유명한 대사도 그대로 훔친다.

마이클 버리와 윤정학의 차이점은 마이클 버리는 " 갈등하는 캐릭터 " 이고 윤정학은 " 갈등하는 척하는 캐릭터 " 라는 점이다. 이 차이가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납작하게 만들기도 한다. 갈등은 보이지 않고 설명만 늘어놓다 보니 김혜수와 유아인이 연기한 캐릭터는 모두 입체적이지 못하고 납작한 캐릭터가 되었다. 이 영화에서 캐릭터를 가장 쓸모 있게 사용한 예는 조우중이 연기한 재정국 차관이다. 그 또한 갈등 없는 인물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이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악마는 원래 갈등이 필요 없는 존재라는 데 있다. 인간은 갈등하지만 악마는 갈등하지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국민의 과소비가 국가를 망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나라 망하게 생겼다는 지금의 주장과 닮았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30년 넘게 일한 제화공의 월급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100만 원 남짓이라면 그런 나라는 망해야 한다. 1997년은 헬조선 원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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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5 14: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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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5 14: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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