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여름, 불 앞에서 요리를 하는 것에 대하여  :













에이스 침대와 기생충











                                                                                                    10년 전, 가구는 과학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이는 에이스 침대'였다. 에이스 침대 광고 모델이었던 박상원은 이렇게 말한다. "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입니다아. " 


이때부터 소비자는 가구 하면 제일 먼저 인체 공학적 설계를 따지기 시작했다. 이 광고로 재미를 쏠쏠하게 본 에이스 가구 회사는 수면공학과학연구소를 설립한다. 공학에, 과학에, 연구에..... 아따, 조또, 대따 머시따. 그런데 가구는 과학이 될 때 미학을 잃는다.  잠자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침대가 아니라 근심 걱정이다. 가구가 과학이 될 때 미학을 잃는 대표적인 예가 컴퓨터 의자'이다. 인체 공학적 설계로 만들어졌다는 PC방 컴퓨터 의자의 디자인은 누가 봐도 이상한 가분수'다. 텔레토비 같다고나 할까 ? 의자다운 권위도 없고 세련된 몸매도 없다. 


컴퓨터 의자는 마치 스테로이드를 남용한, 상체 운동에만 올인한 늙은 보디 빌더의 최후 같다. 이두박근, 삼두박근, 사두박근, 오두박근은 우람한데...... 남근은요 ? 



 




내 관심사가 의자'이다 보니 영화 << 기생충 >> 을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영화 속 소품도 박 사장 집 의자'였다. 공사판에서 나뒹구는 각목으로 만든 것 같은 의자는 누가 보아도 불편한 것처럼 보인다. 팔걸이도 없고, 등받이 면도 없고, 바닥 쿠션도 없다. 인체 공학적 설계와는 거리가 멀다. 가구는 과학이라고 외쳤던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찰 만하다. " 허허. 허리가 불편해서 어디 오래 앉아 있을 수 있겠소 ? 허리 다운 되기 십상이오, 허리 업 ! 박 사장, 당장 저 싸구려 의자부터 바꾸시구려. 침대와 의자는 인간의 가장 오랜 벗이라오 ! " 


그런데 어쩌나. 봉준호 감독은 맥스무비와 인터뷰에서 소품으로 등장한 쓰레기통이 250만 원, 식탁 테이블이 500만 원 그리고 의자 하나에 2,500만 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의자 세트 가격이 아니라 의자 한 개 가격이 말이다( 물론, 봉준호 감독이 말한 의자는 이 의자가 아닐 확률이 높다).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이지만, 나는 그닥 놀랍지는 않다. 왜냐하면 비싼 의자일수록 불편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입만 열었다 하면 인체공학적 편안함을 강조하는 이에게는 이 의자는 불편한 의자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 창조적 생략 " 이다. 


내가 이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은 편리함(편안함)에 대한 현대인의 강박과 믿음'이다. 현대인은 불편하다는 것을 나쁜 요소라고 인식한다. 집을 지을 때도 제일 먼저 고려하는 것은 편리이다.  침대, 가구, 신발, 의상도 모두 편리를 우선한다. 하지만 인간은 인체 구조상 편리에 최적화된 존재가 아니라 편리에서 쾌락을 느끼는 존재도 아니다. 때론 불편이 주는 미덕을 그리워한다. 믹스 커피보다 손수 기계로 내린 커피가 맛있는 까닭은 불편한 과정에 쏟는 애정 때문이다. 케이블카를 통해 본 풍경과 정상에 올라 내려다 본 풍경은 다르다.  불편이 죄악이 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하여, 나는 모든 노동자 파업을 지지하며 기꺼이 그 불편을 감내할 용의가 있다. 학교 급식 노동자 파업을 지지한다. 좋은 의자는 앉기 불편하다. 









​                                  


1) 봉준호  :  박 사장네 집과 기택네 집, 기택이 사는 동네 모두 세트거든요. 특히 부잣집은 가구 하나하나 신경 썼어요. 의자 하나에 2,500만 원에 식탁이 500만 원이더라고요. 임대료도 되게 비싸요. 촬영장에 모포로 덮어두고 애지중지했죠. 정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경수 가격이 그렇게 비싼지 처음 알았습니다.




 


▶ 봉준호 감독이 2500만 원짜리'라고 말한 의자는 아마도 이 의자'일 것이다. 이 의자는 바실리 의자로 바우하우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마르셀 브로이어가 1925년에 제작한 의자'이다. 영화 속 의자는 바실리 의자 디자인을 바탕으로 변주된 예'이다. 의자 이름이 " 바실리 " 인 까닭은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의 집에 입주할 목적으로 설계되었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별칭으로 " 바실리 체어 " 라고 불리다가 나중에는 공식적 이름이 되었다. 가만 보면 의자의 형태(점,선,면)가 칸딘스키의 회화를 닮았다.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철학답게 처음에는 대중을 위한 의자였는데 그 의미가 퇴색되어 지금은 사업적 성공과 감각적 우위를 자랑하기 위한 고소득자의 전유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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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 살인의 추억 그리고 트럼프









                                                                                                        홍길동은 총명하고 무예에 뛰어났다고 한다. 문무를 겸비했으니 장차 위인이 될 인물이었으나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니, 홍길동은 아버지 홍상직의 아들이나 아들이 아니었다. 아들아들 하는 세상에서 아들로 태어났으나,


미역 줄기 같은 이 야들야들한 깊이의 얇음은 몸종이었던 춘섬이 낳은 아들(서자)'이라는 출신 성분 때문이었다. 혈기왕성한 길동은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절망하여 눈 감을 위인이 아니었다.어느날, 그는 심야에 아버지를 만나 단판을 벌이기 위해 담판을 벌인다. 형을 형이라 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  홍길동이 원하는 것은 아버지의 승락이다. 평소 총명한 길동을 애틋하게 여겼던 아버지는 호부호형을 허한다. 소설 << 홍길동전 >> 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아버지의 승낙'이다. 여기서 아버지는 대타자(Other : 라캉의 용어로 대타자는 동일시로 통합될 수 없고 상상적인 타자의 타자성을 초월하는 완전하고 근본적인 타자성 ) 이다. 


대타자 아버지는 재현불가능하다. 부자 관계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을 뿐더라 동일시도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아들은 불초 소생(不肖 아니 불, 닮을 초  :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는 뜻 ) 이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홍길동은 아버지를 초월한다. 불초에 머물지 않고 월초(越肖 넘을 월, 닮을 초)한다는 점에서 소설 << 홍길동 >> 은 전복적인 서사'이다. 홍길동은 아버지를 초월했기에 아버지가 없는 단독자 고아'이다. 그는 율도국을 세워 태초의 아버지 시조'가 된다. 영화 << 살인자의 추억 >> 에서 박두만과 서태윤 형사는 첩의 자식'이다. 


형사는 용의자 박현규(박해일 분)가 살인범이라 확신하지만 단독자의 이름으로 법을 집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박두만과 서태윤 형사가 법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대타자(미국)의 승락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유명한 기찻길 터널 장면에서 집행은 선고 유예된다. 대타자의 회답은 불일치'였다. 그것은 곧 " 아버지의 불허 " 를 의미한다. 아버지의 불허에 화가 난 형사는 권총을 꺼내 직접 법을 집행하려 하지만 이때 거대한 기차가 둘 사이를 가로지르며 떼어 놓는다.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기차라는 오브제가 발기한 남근(팔루스 Phallus)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차의 < 가로지르기 > 는 아버지의 개입이다. 


이 장면을 도상학으로 풀어서 표현하자면 < 아들 / 아버지 > 이다. 여기서 대한민국이 미국의 허락 없이는 자주적 결정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 식민 / 제국 > 의 관계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늑대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희생되는 양들의 침묵을 통해서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컷의 무능을 고발한다. 그것은 군 작정권이 없는(군 작전권은 미국에게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DMZ 방문을 통해서 우리가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미국의 허락 없이는 평화도, 그리고 종전도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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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07-03 16:2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보수 언론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두 정상(김정은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음에도 평화의 집에 마련된 회담장에는 참여하지 못한 것을 두고 까내리더군요.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문통이 북미 관계를 개선하는 데 있어서 중재자 역할 그 이상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수언론이 그토록 흠모하는 국부인) 이승만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이승만은 (전쟁을 지속할 머리도 전력도 없으면서) 한결같이 북진 통일을 주장해서 정전 협정에 참여하지 않았고, 심지어 본인이 집권하던 시기 내내 정전의 의의와 효력을 부정하는 언사를 여러 번 남겼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북에서는 정전 협정에 참여했던 나라들(중국, 미국)하고만 대화를 하겠다는 명분까지 얻게 되었구요.
남한이 정전 협정에 참여했다고 해도 아버지(미국)와 아들(남한)의 관계는 이어졌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아버지의 힘과 허락을 빌리지 않고도 확보할 수 있었던 최소한의 권리(미/북의 정상과 남한의 정상이 한자리에 앉아서 종전과 평화를 논의하는 것)마저 걷어차 버렸던 지도자와 과거사를 생각하니, 그저 한숨이 나올 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7-03 17:41   좋아요 0 | URL
제가 할 말을 고스란히 말씀하셔서 할 말이 업슴. 조만간 한 잔 !
 











잡담







1

호주에 사는 한국인 유튜버가 영화 << 기생충 >> 에 대한 현지 반응을 전했는데, 그 유튜버의 태도에 깜짝 놀랐다. 그 유튜버는 영화는 눈에 안 들어오고 주변을 살피며 호주 현지인들이 이 영화를 보고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노심초사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대부분 열광적 반응을 보여서 그때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고 한다. 해외로 나가면 애국심이 샘솟는다지만 현지인의 반응부터 살피는 심리는 무엇일까 ?  19세기 국산장려운동의 정신이 표표히 이어져 21세기에도 유유히 도착한 것이다. 그 유튜버가 작품성보다는 해외 현지인의 반응부터 살피는 것은 대타자(서양)에 대한 인정 욕구(열등감)와 민족주의가 결합된 들뜬 열정'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자기만족보다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태도'다.






2

한국의 < 버스킹 > 은 공연이 아니라 공해'다. 앰프 출력 최대한 높이고 MR를 틀고 (자신이 부를 가사조차 외우지 못해서) 휴대폰 창에 입력된 가사 보면서 노래를 하는 것은 노래방/버스킹이지 길거리/버스킹이 아니다.  노래방에서나 할 짓을 공공의 영역인 거리에서 하니 공연소음죄'이다.  태극기부대가 앰프 출력 최대한 높이고 음악 송출하는 것도 짜증나는데 노래방/버스킹을 듣는 것도 그에 못지 않다.  그것은 공연도 아니고 노래도 아니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 노는 " 것이지 " 공연 " 이 아니지 않은가.  적어도 악기 하나 정도는 연주하면서 앰프 없이 부르는 것이 버스킹이다. 






3

버스킹 문화는 무명의 가수가 무대에 오를 기회가 없어서 거리 한켠에서 악기 하나 연주하면서 부르는 풍경이다. JTBC 예능 << 비긴 어게인 >> 을 시청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대에 오를 기회가 너무 많아서 권태에 빠진 국내 최정상 뮤지션이라 할 수 있는 가수들이 버스킹을 한다는 점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해괴한 풍경인가 ? 이 궁금증은 이내 풀린다.  그들이 버스킹하는 곳은 국내가 아니라 해외'이다.  다시 말해서 대타자(서양)에 대한 인정 욕구의 발로인 셈이다. 시청자들은 유럽에서 버스킹하는 한국 가수의 실력에 귀르가즘을 경험했으나 내가 보기엔 열등감처럼 느껴졌다(이 프로그램의 무대가 가난한 아시아나 아프리카가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쪽팔려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휴. 시발. 진짜......



4

첫 꼭지를 << 기생충 >> 으로 시작했으니 마무리를 << 살인의 추억 >> 으로 매조지하자. << 살인의 추억 >> 은 식스팩 없는 무능한 한국 남성에 대한 이야기이자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아들'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우리는 범인을 잡아놓고도 범인을 증명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과학적장치가 없음을 목격한다희생자의 옷에 묻은 정액 유전자 감식을 위해서는 미국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우리는 미국에서 우편이 발송되기만을 기다리는 무능한 경찰서 내부 풍경을 본다사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유전자 감식 결과가 아니다그것은 부차적인 조건이다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죄수를 처형하기 위한 미국의 승낙이다. 박두만과 서태윤 형사는 대타자인 아버지의 승낙을 간절히 원하는 결핍의 아들-들'이다(DMZ에서의 남북미 정상 만남 장면은 대한민국이 여전히 아버지 트럼프의 승낙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우리는 아버지의 승락 없이는 종전을 말할 수도 없고, 평화를 이야기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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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에 대한 이런저런 그런 생각-들








1 척하기


척하기를 고상한 말투로 옮기면 < 상호작용 의례, face to face interaction > 라고 한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 동생 이름은 배가 고프구먼 씨'다, 농담이다. << 대면 행동에 관한 에세이 >> 라는 책에서 인간의 연극적 속성을 다룬다. 예를 들면 자신을 제외하고는 화장실에 아무도 없을 때 화장실 이용자가 일을 마친 후 손을 씻는 비율은 20%가 안되지만 화장실 로비에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70%가 넘는 사람이 손을 씻는다고 한다. 손을 씻는 사람이 50%가 증가하는 까닭은 타인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 ㅡ 척하기 > 이다. 손을 씻는 행위는 의사 표현 행위에 해당되지 않지만 메시지는 분명하다. 나, 이래 봬도 깔끔한 사람이에요 ! 영화 << 기생충 >> 의 키워드도 바로 " ㅡ 척하기 " 이다. 기택(송강호 분) 가족은 ㅡ 척하기'로 생계를 꾸린다. 국내파 고졸 백수는 해외파 대졸 고수가 되어 전문가인 척한다. 반면에 박사장(이선균 분) 부부가 선보인 내공은 " 착하기 " 이다. 부부는 깨나 다정하고 예의 바른 상류층'을 연기하는데, 이들 부부가 선보이는 착하기는 척하기의 모방, 흉내, 혼용에 불과하다. 박사장 부부는 착하기를 척하기 한다. 반면에 지하 벙커에 사는 사람은 " 유령 " 을 연기한다. 그는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척하는 존재'다. 





2 바퀴벌레


이중에서도 가장 자본주의적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지상에 사는 박사장 가족이 아니라 지하 벙커에 사는 근세(박명훈 분)라는 캐릭터'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파산(破産) 선고는 곧 파생(破生) 선고를 의미하기에 빚쟁이에게 쫒겨 지하 벙커로 숨은 대만대왕카스테라 가게 사장은 산 자이나 죽은 자나 다름 없다. 그는 살아 있지만 그 누구에게도 보여줘서는 안되는 존재이다. 자본주의적 응징인 셈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비가시적 영역에서만 존재해야 하는 투명 인간'이다. 바퀴벌레라는 존재도 비가사적 영역에서만 존재해야 한다. 비가시적 존재가 가시적 영역에서 발각되는 경우는...... 뭐, 다들 아시다시피 죽음이다.



3 냄새

가난한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훌륭한 세간살이는 태양이다. 우선 햇볕 은 종합비타민제볕만 잘 쬐도 비타민D는 생성되니 태양이야말로 영양가 높은 < ① 비타민제 인 것이다또한 햇볕은 세로토닌을 생성하기에 < ② 항우울제 이기도 하다. 정신과 의사가 우울증 환자에게 늘상 하는 소리가 볕 좋은 날에 산책을 자주 하라는 당부다. 그뿐인가살균 소독 건조 기능이 있으니 < ③ 식기 건조기 > , < ④ 살균기 > , < ⑤ 빨래 건조기 이다또한 볕만 잘 들어도 난방비를 절약할 수 있으니 < ⑥ 절약형 보일러 > 요, < ⑦ 형광등 > 기능도 가지고 있다. 자연 속에서 전기 없이 사는 자연인이 최소한의 살림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햇볕이라는 만능 세간살이 덕분이다. 이 모든 기능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기능은 ⑧ 탈취 기능이다.  볕에 잘 말린 옷은 눅눅한 옷에 비싼 방향제를 뿌린 옷보다 기분 좋은 냄새를 제공한다. 그렇기에 햇볕은 부자보다 빈자에게 더 중요한 세간살이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가난한 사람일수록 좋을 볕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박사장이 맡는 냄새는 바로 햇볕이 부족한 데에서 오는 것이다. 




4 공의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태복음 : 5장 45절). 해와 비는 공공재'다.  그 혜택을 받는 자가 불의한 자'라 해도 불의한 자'조차 공평하게 해와 비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달리,  기택과 근세는 가난하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볕을 차단당한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자에게 내리는 비'는 단비가 아니라 범람이다.  하지만 가난한 자에게 내리는 비의 범람은 박사장에게는 단비이다. 비 그치면 미세먼지 없는,  볕 좋은 맑은 하늘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공의를 불의로 만든 주체는 하나님인가, 자본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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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느와르 가족 음모 코믹 서스펜스 스릴러  : 









기생충




                                                                                                     내가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 기생충1) >> 에서 기택 식구(송강호 분)가 사는 반지하 집이 세트장'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간파한 이유는 반지하에서 살아본 내 경험이 반영된 탓이 크다. 영화 속 반지하 집 거실 창문짝은 네 개2)인데, 특별한 용도로 지어진 공간이 아닌 이상, 실제로 저런 식으로 지어진 가정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창문 면적이 넓으면 똥바람이 거리 바닥의 쓰레기를 쓸어 담아 집안으로 무단 투기할 뿐만 아니라 설상가상 밖에서 안이 훤히 다 보여서 그만큼 사생활이 노출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지상보다 지하가 서늘하기에 굳이 무더운 여름을 대비하기 위해서 창문을 크게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반지하 집 창문은 반투명 유리로 창문 크기를 최소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평소에 가슴을 활짝 펴고 푸른 창공을 보며 씩씩하게 걷지 않고 항상 구부정한 자세로 바닥을 관찰하며 걷는 습관과 반지하 집에서 살았던 내 경험의 총합인 셈이다( 바닥에 대한 토킹어바웃'이라면 그 누구보다 자신있다. 이 바닥에서 그 바닥에 대한 인문학적 교양을 뽐낼 이는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 한 바닥 하는 사람입니다. 허허 ). 


지상의 세입자에게 밖이 훤히 보이는 탁 트인 병풍식 4단 창문은 근사한 풍경이 되지만 반지하 세입자에게는 사생활이 전방위적으로 노출이 되는 불안의 통로에 불과할 뿐이다. 디테일의 제왕인 봉준호가 설계한 정교한 세트장이 내 눈에는 허술하게 보였던 까닭은 안양 충훈부 반지하 셋방에서 십오촉 알전구 밑에서 불온서적을 등사하며 바퀴벌레처럼 살았던 남루한 내 삶의 흔적 때문이었다.  오케이, 거기까지 !  영화는 자의 반 타의 반 내가 하류층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며 출발했다. 내가 이 영화에 몰입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 영화를 보다가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간 것은 박찬욱의 말이었다. 


그는 오래전에 기자와 인터뷰(2004년 인터뷰)하면서 " 이제는 부자가 착하기까지 하다 " 고 말한 적이 있다.



: 이 영화(쓰리 몬스터, 2004)는 프로렐타리아의  피 빠는 부르조아의 이야기인가? 선과 악의 문제를 다룬 것인가?

: 이 스토리를 만들때 제일 처음 떠올랐던 경험이 있는데 << JSA >> 가 흥행한 직후 여기 저기서 초청이 많았다. 그중에 거절할 수 없었던 조찬모임이 있었는데 ' 21세기를 준비하는 어쩌구 모임 ' 이었다. 재벌 2세나 교수, 의사 등 나이가 나보다는 조금 어린 친구들이 모여 있는 모임이라 가긴 가면서도 밥맛이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다들 매너좋고 겸손하고 지적이고 ...... 선입견이 완전히 무너졌다. 사람이 삐딱하다 보니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텐데 좋은 사람이라는 호감보다는 다 가진 놈들이 착하기까지 하구나 싶어 화가 나고 슬펐다. 이 사람들은 맨손으로 뭘 한게 아니라 이미 다 부자들이고 부를 세습한 이들이라 뭐 하나 부족함이 없어서 성격이 나빠질 일이 뭐있냐, 이전엔 천민자본주의가 있었지만 그들의 2,3세는 상류사회 환경 속에서 성장해서 나쁜 것을 할 필요가 없다. 그와 반대로 가난뱅이들은 욕망이 많은데 채워지지 않으니 삐뚤어질 수 밖에 없다. 미덕이 세습된다는 것. 그런 식으로 계급이 정착되고 벗어나기 어려워 지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나듯이 그래봐야 상류사회의 매너나 교양을 얻을 수는 없다.  그건 나중에 다뤄봐야 겠다, ' 너무 착해 미움받는 사람 ' 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박찬욱 감독).


​- 2004년 인터뷰, 박찬욱 감독

 


2004년도 인터뷰이다 보니 박찬욱 감독이 여전히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지는 의문이지만 한때 박찬욱도 순진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박 감독, 땅콩이나 드슈 !  봉준호 감독도 영화 속 기택의 말을 빌려 이와 비슷한 말을 한다. 나는 봉준호 감독이 박찬욱의 오래전 인터뷰를 눈여겨보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박찬욱의 질문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였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부자가 착하기만 할까 ?  박찬욱의 순진한 절망과는 달리,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에서 다 가진 놈이 착하기도 하다는 인상비평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독이 보기에 다 가진 놈들이 보여주는 < - 착하기 > 는 < - 척하기 > 의 변종, 흉내, 패러디, 혼성모방(패스티쉬)에 불과하다.  이 혼성모방은 공허한 패러디이며, 유머 감각을 상실한 패러디'이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사회 』에서 한 말이다.  영화에서는 " PRETEND : 척하기 " 라는 단어가 등장인물들이 내뱉는 대사 속에서 여러 번 언급된다.  이 영화의 주요 메시지인 셈이다. 반지하보다 더 낮은 곳에서 사는 " 근세 " 라는 인물은 사채업자를 피해 비밀 벙커로 숨어든 자로 죽은 척하면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런 부류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는 죽은 척하는 생태'이자 얼어죽을 동태'이다. 생태야, 영업 시간 끝났어. 이제 숨 쉬어 ! 흙흙흙.     그는 산 자이지만 죽은 자 " 유령 " 이며 투명 망토 쓴 " 인간 " 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다는 것은 곧 파산 선고(産ㅡ)이자 동시에 파생 선고(破生ㅡ)와 같다. 기택 식구들도 마찬가지'이다. 가족은 파산으로 인한 파생이 두려워 가족 음모를 꾸민다. 그뿐 아니라 상류층(ㅡ層)도 종종 쇼파에서 상류충(ㅡ蟲)을 드러낸다.  박찬욱 감독은 다 가진 놈이 착하기도 하다는 인식론적 한계에 멈췄다면 봉준호 감독은 다 가진 놈이 " 착하기를 척하기 " 를 하고 있는 사려 깊고 우아하며 은밀한 부르조아의 욕망을 폭로한다.  


태극기부대의 말투를 빌리자면 봉준호는 박찬욱보다 더,  더 더 뼛속까지 빨갱이인 셈이다. 박사장 부부가 보여주는 착하기는 하류층이 선을 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 매너'이다.  이러한 태도는 하류층을 냄새로 구별하려는 박사장의 태도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영화의 색깔은 블랙(코미디)로 시작해서 느와르(코미디)로 급변한다. 급변하는 솜씨가 매우 탁월하다.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재미있다는 점이다. 칸느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 중에서 이보다 재미있는 영화는 없었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




​                              


1) 


2)  영화 << 기생충 >> 오프닝 장면




▶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따위의 SNS에서 학력과 재력을 뽐내는 인간이 있었다. 그가 제공한 정보에 의하면 그는 엘리트'였다. 자격지심이었을까 ?  나는 호시탐탐 그가 약점을 노출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걸리기만 해봐라 ! 수박 씨 발라 먹을 놈아 ~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사진 한 장'을 올렸는데 사진 속 백그라운드가 내 눈에 들어왔다. 창문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쪽창의 높이가 비상식적으로 천장 높이 위치한 사진이었다. 이 말은 곧 그가 사는 곳이 반지하'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반지하는 면적의 2/3가 지하에 박혀 있어서 창문은 항상 천장에 가깝게 설계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높은 성에 산다고 그토록 자랑을 하던 이가 사는 곳이 반지하였다니. 입만 열면 구라가 파랄(팔할)이었던 어느 부랄후드의 지랄 같은 관종 인생 !  이 사실을 폭로해서 망신을 톡톡(talktalk)히 줄까 말까 잠시 고민했으나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도 나와 같은 반지하 생활자'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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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7 2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8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9-06-28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생충이 천 만 간다면 제 몫도 있을 듯.
4번 봤습니다. 그 슬픔에 깊이 잠기고 싶어서.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는 하나님.

제가 갖고있던 ‘공의‘ 에 대해서 많이 생각 해봤습니다. 최소한 공의롭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곰곰생각하는발 2019-06-28 20:52   좋아요 1 | URL
맙소사. 4번이나 보셨다고요.. 볼 만하죠. 저도 심야 때마다 극장 문 내리기 전에 자주 들러야 겠습니다..
나와 님, 혹시 기생충 리뷰 쓰셨나요 ?

나와같다면 2019-06-28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나는 ‘기생충‘ 이 슬펐을까?

마태복음 5장 45절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최소한의 공의라고 생각했다
악인이나 선인에게 공평하게 내리는 햇빛과 비

그 믿음이 깨졌다

갑작스런 폭우로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

비가 많이 내린 덕분에 미세먼지 하나 없는
맑고 깨끗한 하늘을 선물 받는 사람

기우의 계획이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6-29 12:28   좋아요 1 | URL
나와같다면 님 댓글 읽고 한 꼭지 더 썼습니다.



4 공의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태복음 : 5장 45절). 해와 비는 공공재‘다. 그 혜택을 받는 자가 불의한 자‘라 해도 불의한 자‘조차 공평하게 해와 비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달리 기택과 근세는 가난하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볕을 차단당한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자에게 내리는 비‘는 단비가 아니라 범람이다. 하지만 가난한 자에게 내리는 비의 범람은 박사장에게는 단비이다. 비 그치면 미세먼지 없는, 볕 좋은 맑은 하늘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공의를 불의로 만든 주체는 하나님인가, 자본제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