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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

 

당신은 내 고백을 믿을 수 있을까 ?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내 고백을 듣고 나면 조롱 할 것이다. 하지만 고백하련다. 나는 전생에 고래였다, 향유고래'였다. 오호츠크해에서 저 먼 태평양까지, 푸른 물속 헤엄치던 거대한 고래'였다. 나는 물고기 떼를 만나면 입을 벌렸다. 입은 거대한 동굴이 되어서 물고기 떼를 유인했다. 내 뱃속에서 물컹하게, 아! 씹히는 것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는 뱃속에 가두면 안 될 것을 가둔 죄'로 인간으로 태어났다. 뼈대 없는 가난한 가문에, 키 작은 루저로 환생하였으니 사람들은 그것을 업보'라고 했다. 내가 고래였을 때,

 

 

 

향유고래였을 때 삼킨 것은 사람이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경을 읽고 나서야 나는 그때 삼켰던 것이 바로 " 요나 " 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요나를 삼켰다. 그 죄에 대한 벌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루저'가 된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내 현생을 지랄같은 업보'라고 말하고, 현대 사람들은 나를 < 루저 > < 아웃사이더 > < 경계인 > 이라고 말했다. 통틀어서 < 乙 > 이라는 계급이었다. 곰곰 생각해 보았으나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내 전생은 새 ( 乙 : 새 을 )가 아니라  물고기였지 않은가 ?

 

이러한 의문은 곧 풀렸다. 옛날 사람들은 새가 죽으면 조개'로 태어난다고 믿었다. 하하하. 지금이야 웃지만 계통과 계보'에 대한 기초가 전무했던 옛날 사람들은 새가 죽으면 물고기가 된다고 굳게 믿었다. 박학다식했던 정약전도 < 자산어보 > 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 속명 새조개 ]

큰 놈은 지름이 네댓 치 정도이다. 껍질은 두껍고 미끄러우며 색깔과 무늬가 참새 깃털과 비슷하다. 아마도 참새가 변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북쪽 지방에는 매우 흔하지만 남쪽에는 희귀하다. .... ( 이청의 주 ) 월령편에는 " 음력 9월에 참새가 큰 물에 들어가 조개로 변하고, 음력 10월에는 꿩이 큰 물에 들어가 蜃( 신 : 무명조개 ) 으로 변한다. " 라고 했다. 그러나 모든 생물이 화생'하는 것은 아니다.

 

- 현산어보를 찾아서, 자산어보 부분 발췌 재인용

 

 

 

무릎을 쳤다, 어떻게 ? 탁 !!! 정약용의 말이 맞다면 내 전생은 물고기였으나 동시에 새이기도 했다. 참새는 죽어서 새조개가 되고, 꿩은 죽어서 무명조개가 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이러한 지식은 조롱거리로 밖에 보이지 않으나 사실 詩는 계통과 계보를 무시하는 세계관'이다. 시인은 말한다. 사랑하는 애인의 벌거벗은 등을 보고 " 당신은 한겨울 헐벗은 층층나무 가지" 였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화생( 化生 ) 은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관이다. 그것은 시적 아우라이지 엉터리가 아니다.

 

물고기와 새의 수상한 관계는 오징어'에서도 드러난다. 오징어는 원래 이름이 烏敵魚(오적어)다. 까마귀 오, 적 적'이다. 까마귀의 적이라 뜻이다. 오징어가 까마귀를 잡아먹는다는 말도 있고, 까마귀가 오징어를 잡아먹는다는 소리도 있다. 진중권과 변희재 이후 최고의 적수다. 그런가 하면 나원이 쓴 [ 이아익 ] 에서는 음력 9월에 까마귀가 물속으로 들어가 오즉어'가 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처럼 물고기와 새'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이 얼마나 멋진 시적 아우라'인가.

 

하지만 오징어란 녀석의 정체를 알게 되면 당신은 학을 떼게 된다. 지금부터 나는 완장을 찬 오징어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당신이 알지 못했던 이중생활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오징어'는 원래 오징어'가 아니었다. 옛날 사람들은 갑오징어'를 오징어라 불렀다. 그렇다면 지금 오징어'라고 불리우는 녀석은 무엇으로 불렀을까 ? 꼴뚜기다. 그러니깐 오징어는 꼴뚜기보다 몸집이 큰 꼴뚜기'인 것이다. 이러한 족보가 세월이 흐르면서 오징어'라고 불렸던 녀석은 < 갑오징어 > 가 되어 계급 서열에서 < 갑 > 을 획득하고, 큰 꼴뚜기는 < 오징어 > 가 되어 < 魚 > 라는 지위를 얻었다. 신분 세탁'을 한 것이다.

 

 

 

반면 몸집이 작은 꼴뚜기는 계급 분화에 따른 결과로 천민의 지위를 얻는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한다는 조롱을 받으면서 말이다. 요새 시쳇말로 하자면 乙이다. 큰 꼴뚜기였던 오징어는 甲과 乙 사이에 놓인 중산층이 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놈은 < 대장 > 이 아니라 < 완장 >을 찬 놈이라고 했던가 ? 오징어가 갑오징어로 옮기는 바람에 공석이 된 영역을 큰 꼴뚜기가 냉큼 차지한 것이다. 오징어가 된 큰 꼴뚜기'는 앞장서서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라며 어물전에서 고래도 아니면서 고래고래 고래 빙의를 하며 소리치고 다녔다. 허어, 통재라.

 

 

 

가만히 뜯어보면 어물전 세계나 인간 세계나 크게 다르지 않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던 놈들이 벼락 부자가 되면 그보다 꼴불견도 없다. 솔잎 먹던 세월은 잊은 지 오래이다.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는 노동자 파업에 대해 늘 부정적이다. 스스로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노동자임을 깨닫지 못한다.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를 멸시하고, 감정 노동자들은 고객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똑같은 방법으로 감정 노동자들에게 푼다. 이것이 다 계급인식이 부족한 탓이다. 큰 꼴뚜기 주제에 자신은 오징어'라고 생각하는 탓이다. 그러니 계급 투표가 이루어질 리가 없다.

 

 

 

꼴뚜기는 꼴뚜기를 지지해야 하는데 큰 꼴뚜기는 갑오징어에게 투표를 한다. 계급 상승에 대한 갈망 탓이리라. 전 오세훈를 서울 시장으로 뽑은 사람은 강남 3구가 아니다. 나는 그들의 투표를 지지한다. 왜냐하면 강남 3구 지지자들은 계급 투표를 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오세훈을 두 차례나 연속으로 서울 시장에 당선시킨 수훈갑은 비 강남 유권자들이었다. 강남 3구 유권자들에게 비아냥거리지 마라.

 

나는 한때 고래였다, 향유고래였다. 요나를 삼킨 벌로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새(乙)가 되었다.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때 내가 삼킨 것이 요나'였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나는 乙이므로 乙를 지지한다. 꼴뚜기였으면서 갑오징어를 지지하는 오징어를 경멸한다. 노동자는 노동자를 지지해야 한다. 이건 한때 향유고래였던 내가 당신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아니,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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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느와르 2013-06-25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건 뭐, 찰진 단문에다 수미쌍관, 화룡점정까지 접수하는군요
ㅡ으윽 곰발님이시여 아흐 다롱디리~~저 강물 어예 건너소

곰곰생각하는발 2013-06-25 11:31   좋아요 0 | URL
걱정마십시요. 곧 한국 문단을 평정할 날이 올것이옵니다.

히히 2013-06-25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맑은 날 잔잔한 호수 안을 들여다 보세요.
품은 것은 날갯짓하는 새요, 뭉게뭉게 양떼요, 늠름한 산줄기 입니다.

갑오징어들아 !
바벨탑건설이 무산되었다하여
乙의 언어를 버리지 말거라.
甲은 神이 아니니라.

곰곰생각하는발 2013-06-25 15:09   좋아요 0 | URL
속초 살 때 얕은 물가인데도 불구하고 멸치떼 비슷한 것은 수만 마리 돌아다니는 게 보입디다.
아, 이거 정말 장관이더군요. 방향을 휙 바꾸면 이게 빛에 반사가 되어서 그 흐름이 보이는데
마치 바람 같았어요. 물 속의 바람이라...ㅇㅇㅇㅇ

히히 2013-06-25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바람이라...!
전에 살던 아파트 앞이 바로 바다고 그 옆으로 갈대밭이 있었어요.
긴 대가 흔들릴 때 마다
갈대소리라 하기 싫고
바람소리로 고집 피우곤 하였습니다.
바람 날려 흐르는 음들은 다 바람소리입니다.
풍경바람소리, 파도바람소리, 우듬지바람소리...

떨어진 것은 낙엽이오나 날리는 것은 秋風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6-26 09:19   좋아요 0 | URL
히히 님 혹시 시인이세요 ? 갈대소리라 하기 싫어서 바람소리라 고집을 피운다라..
이거 시인들의 심성 아닙니까...
파도소리도 아니고 파도 바람소리라... 음...
한시 쓰시는 분 같습니다..

iforte 2013-06-26 0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는 지금 아침시간이예요. 아침식사를 하다가 창문에 붙어서 껍질을 벗고 있는 도마뱀 한마리를 보았네요. 앞마당에 뱀들이 다니는지라 이 불쌍한 것들이 편히 땅에서 볼일을 보지도 못하는군요. 어쨌든, 전 첨 알았네요, 도마뱀이 허물을 벗으면서 몸에 달라붙은 껍질을 먹어버리네요. 그냥 버리는게 아니라. 껍질을 벗어 환골탈퇴....하면 얼마나 좋겠냐만, 도마뱀은 그대로 도마뱀이군요. 뱀이 되지는 못하고.. ㅡ.,ㅡ;; 쬐끔 달라진다고 자기 성분이 바뀐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있죠, 왜.. 그저 껍질을 벗고 약간, 아주 약간 키가 큰것 뿐인데.. 그죠?

어쭈... 지금 막 이 댓글 쓰는 동안 방금 전 변피한 놈이 짝을 찾네요. 숫컷들은 짝짓기 시즌이 되면 목을 빨갛게 부풀리거든요. 쫘아식이... 이제 갓 청소년이 된 놈이...췟. 발랑 까져가지고...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6-26 09:22   좋아요 0 | URL
앞마당에 도마뱀들이 다니다니...ㅎㅎㅎ 훗훗.. 좋은 동네시군요.
제가 좋아하는 녀석들 가운데 하나가 도마뱀입니다.
도마뱀 귀엽죠. 허물 먹는다는 소리는 처음 듣네요. 아니다..... 파충류는 허물을 벗으면 그걸 먹습니다.
왜 그러냐면 고거 적으로부터 자기 흔적 지우기 위해서 먹는다고
내셔널지오그라픽에서 그랬음 ! (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뱀도 자기 허물을 먹습니다. )

근데 그 마당에 있는 돔뱀 큰 건가요 ? 전 지금까지 작은 도마뱀 생각하고 이 글을 썼는데..

iforte 2013-06-26 22:53   좋아요 0 | URL
작은 놈들 맞아요. 완전 성인이래야 검지손가락 길이..? 마당에 도마뱀 있다고 또 마냥 좋지는 않아요. 이것들이 자꾸 벗어놓은 운동화에 들어가는통에 한번은 운전하다가 차 세워놓구 운동화 흔들어서 거기 낀 놈을 떼어놓기두 했구요. 마당에 똥은 어찌나 싸놓는지.. 치우다 치우다 포기...ㅜㅡㅜ. 게다가 이놈들 먹으려구 가끔 밖에서 뱀이 집으로 들어오기도 해요. 뿐인가요. 가끔은 혼자라서 가뜩이나 쓸쓸한데 마당에서, 것두 한가운데서 짝짓기하구 있구... 아주 염장을 질러요. 그래도 이넘들이 젤루 귀여울때는, 제가 햇빛쬘때 마당에서 똑같이 태닝하고 있는 놈들을 볼때.. 무지 평화스러워요, 그때는...

곰곰생각하는발 2013-06-26 23:06   좋아요 0 | URL
도마뱀 잡으로 뱀이 들어오면 곧 뱀 잡으로 곰이 들어오고
곰이 들어오면 곰을 잡으려고 사냥꾼이 들어올 겁니다.
그러면 불법적인 사냥꾼을 잡으려 말을 탄 보안관이 들어올 것이고....
그 보안관 잘생긴 남성일 터이니 좀더 기다려보십시요.
좋은 소식 들릴 것입니다.

iforte 2013-06-25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곰발님 민낯을 드디어 보게되었군요. 예전사진은 사실 좀 독하게 보여서 나쁜남정네 삘이 있었는데... 이제보니, 참 선량하게 생기셨어요. 당신을 선한남정네로 인정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6-26 11:03   좋아요 0 | URL
전 선량합니다, 전 선량합니다, 전 선량합니다, 전 선량합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사실 전 저 사진을 좋아하지 않아요. 뭔가 지독하게 우울해보이잖아요.
원래 우울병을 앓고는 있지만, 흠흠...

곰곰생각하는발 2013-06-26 14:03   좋아요 0 | URL
다시 사진을 보니 좀 골때리게 생긴 것 같아서 다시 사진을 변경했습니다...ㅋㅋㅋㅋ

iforte 2013-06-26 22:55   좋아요 0 | URL
그닥 골때리게 생기지는 않았는데... (피식 피식..) ㅎㅎㅎ
진짜 참 선량하고 순수해 보였는데... 지금 사진도 좋네요. 아마 20세기 초의 어느 시점에 서울에 막 상경한, 서울신사 티내려고 막 치장한 시골양반...? ㅍㅎㅎㅎ 농담 농담.

곰곰생각하는발 2013-06-26 23:06   좋아요 0 | URL
시골스러운 분위기 좋아합니다.
하하하하하....
 

 

 

 

 

 

 

 

 

 

 

 

 

 

 

 

청어람미디어 vs 사흘

 

폐족'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인물은 노무현'이 아니라 정약용 가문이다. 명문가는 하루 아침에 폐족이 되어 귀양을 떠나야 했다. 후에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돌아와 명예를 회복하고 천수를 누렸으나, 형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生을 마감한다. 방대한 저서를 후대에 남긴 동생 정약용과는 달리 형 정약전이 유배지에서 남긴 것은 몇 권이 안 된다. 그중 하나가 < 자산어보 > 다. ( " 유배지에서 남긴 그의 저서로는 『자산어보』와 함께 정부의 소나무 정책에 대해서 쓴 『송정사의』와 우이도에서 홍어를 유통하던 문순득이라는 사람이 바다에 표류하였다가 오키나와, 필리핀 등을 거쳐 4년만에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것을 듣고 저술한 『표해록』등이 있다. " 고 합니다.  )

 

조선 시대 가장 명민한 선비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는 물고기와 하루 종일 놀다가 쓸쓸히 귀천하였다. 이태원의 < 현산어보를 찾아서 1,2,3,4,5 > 는 정약전이 기록한 흔적을 찾아떠난 기록'이다. 이 책은 매우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단 지은이'는 200년 전 정약전이 쓴 < 자산어보 > 에 나오는 발자취'를 따라간다. 그리고는 흑산도의 어류 생태'를 관찰한다. 정약전이 본 물고기와 저자가 본 물고기'를 통해서 저자는 200년 전에 흑산도에서 쓸쓸히 죽어간 정약전과 소통한다.

 

여행기행문이면서 동시에 생태학이면서 도감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약전 선생의 평전으로 읽어도 좋다. 욕심을 조금 더 내자면 메타 픽션으로 읽어도 좋다.  여기에는 저자가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취재한 땀과 열정으로 이루어진 7년이라는 긴 세월이 묻어 있다. 노력은 작가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400컷에 가까운 세밀화와 800컷이나 되는 사진, 그리고 섬세한 레이아웃은 출판사'가 이 책에 헌신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할 만하다. 좋은 책은 출판사가 만든다. 그리고 좋은 독자'라면 적어도 이 책은 읽어야 한다.

 

종종 작가가 쓴 글은 뛰어난데 출판사 때문에 욕을 먹는 책들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제프 다이어가 쓴 < 지속의 순간들 > 이다. 사진 에세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진'이다. 대부분 사진이 가로가 길고 세로가 짧은 직사각형 행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이 선보인 판형은  끔찍한 것이다. 이 책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판본과 거의 흡사하다. 비교를 해보니 가로 크기'가 동일하다. 그러니깐 독자가 흔히 접하는 일반 판형보다 가로 폭이 좁고 세로가 길다는 말이다. 내가 이 판형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이유는 가로 폭이 좁기 때문에 책 속에 삽입된 사진이 상대적으로  작게 인쇄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132mm 라는 가로 폭에 사진을 맞추다 보니 사진 크기가 현저하게 줄어든 것. ( 이 책을 번역한 한유주의 이상한 번역체'는 일단 논외로 하자. )

 

의문점은 왜 굳이 일반 판형도 아닌 변형판으로 책을 뽑았냐는 것이다. 시각 이미지가 강조되는 책'들은 대부분 가로 크기를 키운다. 어린이 그림책 판형을 보면 알 수 있다. 상당수의 그림책은 길쭉한 직사각형보다는  정사각형에 가깝다. 그 이유는 이미지'를 키우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출판사 < 사흘 > 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다. 평범한 영화 감독은 훌륭한 대본으로 형편없는 영화를 만들 수도 있지만, 그 아무리 뛰어난 감독이라고 해도 형편없는 대본 가지고는 훌륭한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충무로에 떠도는 이야기'이다. 출판사도 마찬가지다.

 

출판사는 좋은 책을 형편없는 책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청어람미디어'에서 나온 이 책은 명불허전이다. 야구에 빗대서 말하자면 구단 선수들도 열심이지만 구단 또한 열정'적으로 참여한 결과이다. 그나저나 LG는 가을 축제에 나갈 수 있을까 ? 가을 축제에는 전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야구도 있다. 십 년 넘게 기다렸다. 이젠 지친다.

 

 


 

 

 

 

 

숭어'에 대한 불편한 진실

 

물고기 이름은 주로 - 치'와 - 어/魚'가 많다. 물고기 이름이 궁금하여 " 내가 제일 잘 나가 ! " 라고 외치는 지식인'들에게 물어보니 < ~ 치 > 는 순우리말로 물고기를 나타내는 종결형'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치'로 끝나는 물고기 존함'이 모두 순우리말이라고 착각하면 안된다. 멸치'에서 멸'은 업신여길 멸'이거나 멸할 멸'로 기록되어 있으니, 옛사람들은 몸집이 작다고 해서 제대로 무시한 것 같다. 그리고 꽁치'에서의 꽁'은 아가미 근처에 구멍이 있다고 해서 빌 空'와 합쳐져서 꽁치'가 되었다고, 그런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객관적 사실'이다. 자, 지금부터 쓰는 글은 모두 곰곰생각하는발 박사'의 추론이다. 일리'있는 추론이라면 열렬한 박수를,  황당하다고 생각하면 신랄하게 반론을 제기해도 된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 ~ 치 > 로 끝나는 물고기 이름은 가장 오래된 원형'에 가깝고, < ~ 어 > 로 끝나는 이름은 " 원형의 변형 " 에 가깝다. 그런데 내가 의문을 갖는 것은 멸치와 꽁치'에서 보듯이 왜 한글과 한자'가 혼용되었을까, 였다. 멸치에서의 멸이 한자 滅/蔑'이라면 뒤에 오는 치' 또한 -魚'로 불려야 하는 것이 상식적인 것이 않을까 ? 물론 무슨무슨 어보'에는 멸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생활 입말'에서는 멸치'가 대세였다. 이유는 무엇일까 ? 아... 궁금해서 미치겠군요. 나의 시냅스는 똥구멍에서 등골을 거쳐 빠르게 간뇌'와 소뇌를 거쳐 측두엽으로 빠르게 옮겨갔다. 과연 이 미스테리를 풀 수 있을까 ?

 

 

답은 간단하다. ~치' 대신 ~어'로 부르기 싫은 것이다. 물고기 이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양반 사회의 더러운 차별주의를 엿볼 수 있다. 사실 그 시대 양반 사회'에서는 양반이 아닌 하층민'에게는 한자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름이 없었다. 이름이 있다 해도 그저 개똥이, 간난이, 몽실이,  순둥이'라고만 불리웠을 뿐이다. 한자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름은 어느 정도 신분이 보장될 때에나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잘난 양반'들은 멸어 대신 멸치'라고 부른 것이다. 그들은 공자 맹자 순자 덕자'를 외치며 어른 행세를 했지만 사실 알고 보면 굉장히 저질이었다. 몸집이 작다고 멸해도 된다고 정의하다니 !

 

 

어, 어, 어자로 끝나는 이름은 많다. 양반들은 어떤 물고기에게는 어'라는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어떤 물고기에게는 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그 기준이 무엇일까 ? 여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우선 대부분 ~ 어'로 끝나는 물고기는 잘생겼다. 잘생긴 물고기의 대표적 존함이 바로 < 숭어 > 다. 몸집이 작다는 이유로 멸치의 멸을 멸할 멸'로 부르더니, 잘생긴 숭어'에게는 숭배할 숭'자를 써서 숭어'라고 부른다. 물고기 세상에서는 원빈 정도 된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키에, 날렵한 유선형의 몸매, 초롱초롱한 눈. 누가 봐도 잘생겼다. 보면 꼴린다. 맛도 좋다. 씹으면 달큰하다. 아, 아아아. " 씹 " 으면......

 

 

그러니깐, 이름에 - 魚'가 들어간 물고기는 숭어'를 표준으로 해서 유전적으로 보기 좋은 물고기'에게 한자 이름을 하사한, 일종의 외모 지상 주의적 발상'인 셈이다. 이처럼 < ~ 어 > 라는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유선형 몸매를 유지해야 하고, 유선형이라고 해도 몸집이 너무 크거나 작아도 안 되는 것이다. 숭어보다 조금 크거나 작아야 한다. 개복치는 몸무게가 300킬로그램이 넘는 거대 복어과의 물고기인데 몸집이 크다고 개- 자를 붙여서 " 개복치 " 라고 부르고, 멸치는 작다고 죽어도 좋은 놈으로 정의한다. 참치는 유선형의 몸매이나 덩치가 크다고 < ~ 어 > 라는 감투를 못 받고, 넙치는 넙적하다고 탈락된다. 갈치는 어떤가 ? 길쭉하게 생겨서 탈락이다. 색깔로도 차별을 했다. 가물치는 검다고 가물치'라고 불렸다. 하물며 못생긴 꼼치와 아귀는......

 

 

피는 못 속인다고 작금의 성형 열풍은 다 그 옛날 어르신의 외모를 중시하는 DNA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아귀의 몸값이 비싸다는 사실을, 재수없다고 버리던 물텀벙이 맛이 좋다는 사실을, 감자와 무를 넣고 간장에 칼칼하게 조린 갈치 조림에 침이 넘어간다는 사실을 그 양반들은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멸치'는 국물을 낼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생선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여기에는 한글을 경시하고 한자를 숭배했던 사대주의자들의 볼썽사나운 꼰대 정신'을 엿볼 수 있어서 불편했다. 그것이 바로 기득권이 어떻게 대중을 기만하고 멸시하며 조롱했는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이라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요리사를 굳이 쉐프'라고 부르는 욕망과 무엇이 다를까 ?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말하면 와, 와와와와와 하는 천박한 리액션'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영어, 몰라도 된다. 혹시... 영魚?!

 

 

 

 

+

-치' 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 사람 > 을 낮잡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 저런 치들과 놀아나지 마라 " 할 때의 그 < 치 > 다. 양아치, 장사치 할 때의 - 치' 또한 대상을 낮게 볼 때의 의미'다. 양반들이 보기엔 자신이 속한 계급을 제외하면 모두 천박한 치'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물며 비린내나는 생선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물고기를 처음에는 싸잡아서 ~ 치'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 치' 중에서 보기 좋은 놈들은 골라서 ~ 魚' 라는 한자를 하사했다. ( 치와 어'의 분류가 비늘이 있고 없고 에 따라서 구분되었다고 주장도 있다. )  하여튼 이 의도적인 이분법적 분류에는 한자 사대주의가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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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06-02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물고기들 이름 어원으로 살펴보는 한자 사대주의.. 끄덕끄덕. :)
헌데 곰곰발님, 요즘 정녕 물고기들에 꽂히신 겁니까.

곰곰생각하는발 2013-06-02 13:30   좋아요 0 | URL
물고기는 이미 오래전에 꽂힌 지 오래입니다.
다음 생은 물고기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개싸리 2013-06-0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산어보~ 지은이는 이태원이고 정약전은 자산어보 말고도 저서가 있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3-06-02 14:17   좋아요 0 | URL
앗 그렇습니까... 정태원... ㅋㅋㅋㅋㅋ 아놔... 죄송합니다.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정약전'의 저서가 유일하다는 것은 유배생활에서 유일하게 쓴 책은 자산어보'가 유일하다는 말입니다. .아닌감 ? 혹시 아시거든 말씀 좀 해주십시요.. ㅋㅋㅋㅋ 고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6-02 15:02   좋아요 0 | URL
간단하게 조사해보니 유배지에서도 자산어보 말고 몇 권 더 쓰셨네요.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 아, 쪽팔리다.... )

히히 2013-06-03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포괄적 우리동네에서 유명한 음식이 아구찜입니다.
제가 어릴적엔 꼬들꼬들하게 마른 아구를 사용한 찜이 대부분이였는데 지금은 생아구를 씁니다.
여기에서는 아귀를 물텀벙이라고 하는데 위의 글에서는 물메기를 말하는 것 같으네요.
미더덕 만큼 자신있는 생선이 물메기입니다.
큰바다에서 잡은 것 보다 곱을 주고 사도 아깝지 않은 이 바다의 물메기는 추워지기 시작하면 슬슬나오기 시작하여
김장철(12월중순)에 그 맛이 최고입니다.
시집와서 제일 놀란 음식이 시어머님께서 끊여주신 물메기탕입니다.
술 좋아하는 남편은 환장을 하구요. 감기라도 올라치면 얼른 대령시킵니다.
다음날 아침 언제 그랬냐는듯이 처자식을 어깨에 짊어지고 현관문을 나섭니다.
제가 손님 오면 자신있게 선보이는 음식이 아구수육입니다.
중요한 건 수육에는 대빵 큰 아귀를 쓰면 더욱 맛나요. 그래야 내장맛이 끝내준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6-03 15:42   좋아요 0 | URL
대구시군요. 아귀를 물텅벙이'라고 하면 인천 같기도 하고요. 인천에서는 아귀를 물텅벙이'라고 하더라고요.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뭔가 어류 쪽으로 해박하신 것 같습니다.
물메기탕 좋죠. 비싸서 못 먹음.... -_-
누가 그러더라고요. 내장이 좋아지면 어른이 된 것이다, 라고 말이죠.
전 옛날에 내장만 보면 인상을 찡그리고는 했는데 이제는 내장이 맛있어요..

히히 2013-06-03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동네선 숭어는 고개도 못내밀어요.
떼를 지어 다니는 숭어는 홀치기낚시로도 충분히 많이 잡을 수 있는 흔한 생선이거던요.
저는 생선중에서 멸치를 제일 좋아하는데
볶은 것 보다는 덤석덤석 잔파 썰어넣고 무쳐내면 우리 두딸과 저는 감탄이 절로나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6-03 16:58   좋아요 0 | URL
저도 숭어 맛 잘 모르겠습니다. 숭어 맛 없어서 안 먹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게 바로 멸치회'예요. 아니다 생멸치 무침'이라고 해야하나요.
거제도에서 6개월 정도 머물렀는데 아... 멸치무침 먹고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너무 맛있어요 !!!!!!!!!!!!!!!!!!!!!!!!!!!!!!!!!!!!!!!!!!!!! 이거 위쪽 사람들은 그 맛을 잘 모를 겁니다.
멸치 무침을 아시는 거 보니 통영 분이시군요 !!!

히히 2013-06-03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래도 멸치요리의 왕은 겨울이 채 가시기전 이른 봄의 생멸치조림이 단연 최고입니다.
상추에 쑥갓과 갓한밥, 그 위에 청량초를 넣어 매콤한 조린멸치를 올려 입안으로 한가득 넣으면 정말 끝내줍니다.
여긴 마산 진동입니다.
바다가 눈 앞에 보여도 어촌이라기 보다는 삶의 터전이 농촌에 가까워요.
봄에는 학꽁치, 미더덕, 도다리
여름엔 장어
가을은 오만둥이, 전어
겨울엔 물메기, 대구
위의 생선은 큰바다에도 많이 나지만 우리동네서 잡히는 것은 곱절을 주고 사먹어도 아깝지 않게 맛나요.
여름에 캥핌 갈 땐 고기 대신 장어를 꼭 가져가서 숯불구이해서 먹는답니다.
그리고 매운탕거리도 잊지않고 챙기지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6-03 18:55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아도 멸치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히히 님 재미있게 읽으시겠네요.
부러워요. 통영 참 아름다운 곳이더군요. 반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남해'를 그리워하나도
알게 되었고. 좋은 생선은 별다른 양념 없이도 맛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곧 멸치에 대한 포스팅을 합죠.
전에 써둔 글인데 손질해서 올리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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