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라는 이름의 여자


 

 

ㅡ 엽편소설

 

 

 

ㅡ 다이안 아버스


내가 사진에 대해 " 관심 " 을 가지기 시작한 때는 시간을 거슬러 도서관에서 우연히 다이안 아버스'라는 여성 사진 작가'를 발견하면서부터였다. 보는 순간, 꽂혔다 ! 이 애틋한 관심'은 롤랑바르트가 << 카메라 루시다 >> 에서 언술한 스투디움'보다는 푼크툼'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 스투디움 > 과 < 푼크툼 > 을 쉽게 풀어서 내 식대로 말하자면 < 스투디움 > 은 "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끌림 " 이고 < 푼크툼 > 은 " 아무나 공감할 수 없는 찌름 " 이다. 스투디움이 집단적 기억을 공유한 자장'이라면 푼크툼은 개인적 기억에 의지한다. 다시 오소리 깻잎 입말사전 스타일로 말하자면 스투디움은 활엽수이고 푼크툼은 침엽수'이다. 프루스트의 <<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 에서 " 마들렌 과자 " 는 푼크툼에 해당된다. 

만약에 소설 속 화자인 마르셀이 마들렌 과자를 먹고 나서 " 마디꾸나 ! " 라는 감탄으로 품평을 끝냈다면 마들렌 과자'는 단순히 스투디움으로 작동했을 텐데, 섬세한 감성을 간직한 마르셀은 단순하게 " 그래, 바로 이 맛이야 ! " 라고 끝내지 않는다. 그는 < 입 > 으로 맛을 보고 < 머리 > 로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린다. 이 기억은 집단적 공유가 아닌 사적 체험에서 비롯된 서사'다. 그러니까 마들렌 과자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기계 장치의 입구'에 해당되는 셈이다. 내게 있어서 다이안 아버스 사진은 < 끌림 > 이 아니라 < 찌름 > 에 해당된다. 그 옛날, 사진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사진을 배울 요량으로 대학로에 위치한 사진 학원을 등록한 적이 있었는데,  이왕 배울 거라면 사진 이론부터 차근차근 제대로 배우자는 마음으로 취업 사진 분과'보다는 입시 사진 분과'에 등록했었다. 

당시 이 학원은 스파르르르르르타 식 교육으로 유명해서 기수가 정해져 있었다. 한 기수 높은 사람에게는 나이 불문하고 선배 대우를 해야 했다. 이를 어기면 하극상'으로 간주했다. 학원 복도에서 한 기수 높은 선배를 만나면 유치원생이 하는 배꼽 인사를 해야 했다. " 안냐세여 ~ " 지금 생각해 보면 원장은 참...... 좆같은 꼰대 새끼'였던 것 같다. 돈은 돈대로 내면서 욕은 욕대로 먹었으니 말이다.  이 학원은 매달 첫째 주 월요일에 사진 품평회를 열였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고욕이었다. 작업한 사진 가운데 마음에 드는 사진 3점을 골라서 작품 제목과 함께 의도를 설명해야 했다. 그리고 필름 종류, 필름 감도, 셔터 속도, 조리개 값, 렌즈 종류 따위를 공개해야 한다. 품평회는 지루하고 따분했다. 사진 대부분은 원숭이가 발로 찍은 작품이었다. 

문제는 내가 찍은 사진이 원숭이가 발로 찍은 사진'보다 나을 게 없다는 데 있었다. 나는 내 미적 감각을 신뢰했지만     평소, 사람들에게 " 예술하세요 ? " 라는 소릴 꽤 많이 듣곤 했다. 예술가 행세를 하는 것 같아 민망해서 어정쩡하게 " 예, 술 좀 합니다 ! " 라는 식으로 넘어가고는 했다          이 신뢰'가 모래 위에 지어진 집보다 허술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게 해 준 품평회'였다. 크게 실망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절망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내 실력이나 다른 녀석들 실력이나 모두 대동소이'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독 두 사람이 내 눈에 거슬렸다. 그들은 " 대동소이 " 라는 표준 군집'으로부터 벗어난 존재였으니 " 군계일학 " 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아니, 군계이학'이라고 표현해야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내가 질투심을 느낀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여자'였다. 땅바닥에 떨어진 솔방울 하나를 사진에 담더라도 그들이 찍으면 뭔가 달랐다. 나는 그들이 품평회 때 설명한 필름 종류, 조리개 값, 셔터 속도로 맞춘 후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피사체를 찍어도 봤지만 결과물은 여전히 원숭이가 발로 찍은 사진보다 나을 게 없었다. 암실에서 필름 현상을 할 때마다 " 닝기미, 조또... 시바 " 라는 소리가 수천 번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도대체 이 실력 차'가 나는 원인은 뭘까 ? 돌이켜 보면, 내가 흥미를 가진 사진 작가는 대부분 여성 작가'였다. 다이안 아버스, 신디 셔먼, 낸 골딘'이 그들이었다. 그 옛날, 스파르르르르르타 식으로 사진을 가르쳤던 학원 품평회에서도 내가 원숭이가 발로 찍은 사진'이라고 판단했던 사진들은 대부분 남자 학원생들이 찍은 작품이었고,

" 어랏, 이것 봐라 ? " 라며 관심을 보인 사진은 여자 학원생들이 찍은 쪽이 많았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니 이 글을 읽고 나서 성차별이라며 페니스를 발기할 필요는 없다. 사진에는 남녀 간 시선 차이'가 존재한다. 남자가 찍은 사진에는 피사체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반면, 여자가 찍은 사진에는 피사체에 대한 공감 능력이 돋보인다. 이처럼 동일 피사체, 동일 조건에서 사진을 찍는다 해도 사진은 다 다르다. 그 차이를 설명하라고 하면 자신있게 설명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분별은 가능하다. 얼마 전, 장사가 안 되서 생선 가게'를 접고 유품관리사'로 전향했다. 말이 좋아 유품관리사'이지 풀어 설명하자면 시신 처리반'에서 일한다. 고독사 해서 시체가 썩거나 살인 사건이 일어나 일반인들이 청소를 꺼릴 때, 

이 일을 유품관리사'가 맡아서 한다. 시신은 국가에서 처리하지만 시신이 남긴 흔적은 고수란히 내가 해야 할 몫이다. 우리는 이 죽음의 흔적을 " 데쓰 블러 " 라고 불렀다. 어제 특수 청소'를 한 곳은 13평짜리 원룸이었다. 사인은 고독사'였다. 파출소 김 순경에게 연락이 와서 급히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자신의 관할 구역에서 벌어진, 특수 청소가 필요한 사건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우리에게 연락을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는 일정 금액을 소개비 면목으로 김 순경에게 지불해야 했다. 시신이 누워 있던 침대는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데쓰 블러'는 다른 사람에 비해 크기가 작았다. 죽은 사람이 갸날픈 몸매'라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시신이 남긴 데쓰 블러'를 닦고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남긴 사진첩을 보게 되었다.

시신뿐만 아니라 유품을 정리하는 것도 유품관리사'가 해야 될 몫이었다. 대부분은 흔히 볼 수 있는 사진이었지만 폴라로이드로 찍은 사진은 은밀한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는 원룸 세입자로 보이는 20대 여성이 벌거벗은 채 방 안에서 혼자 웃고 있었다. 침대에는 사랑을 나눈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침대 시트는 흐트러져 있었고 여기저기 속옷이 녈려 있었다. 그 시트 위에 벌거벗은 몸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여성 또한 흐트러진 시트처럼 머리카락이 헝크러져 있었다. 대번에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사진 속에는 찍힌 대상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은 여성과 찍힌 여성이 서로 연인 사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작업 관례상 옷은 대부분 소각되지만 사진은 유족에게 건내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진첩을 유족에게 인계하지 않기로 했다. 유족이 원하는 것은 사진이나 일기 따위가 아니라 돈이 될 만한 금붙이'였다. 힘든 하루였다. 집에 오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꿈속에서 나는 작명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한 여인이 근심에 가득 찬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지만 딱히 선명하게 떠오르는 얼굴이 없어서 이내 포기했다. 여자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개명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성(姓)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여성은 오 씨'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 오후 " 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 성이 오'이고, 이름이 후'입니다. 오후라고 급히 말하지 마시고 오와 후 사이에 쉼표를 넣어서 발음해 보십시오. 후, 라고 할 때에는 말랑말랑해진 풍선껌을 불듯이 말입니다. "

여성은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여자는 이내 숨을 얕게 들이마셨다가 작게 속삭였다. " 오.... 후. 오, 후...... " 그녀는 후를 발음할 때 날숨을 쉬었다.

꿈에서 깼다. 오후라는 이름, 꽤 근사하다고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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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1 0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5-03-20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얼마만이십니까? 왜 그동안 안 나타나셨습니까? ㅎ
좆같은 꼰대 새끼`ㅋㅋㅋㅋㅋㅋ

어쩐지 예전에 보았던 쎌카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전 그림 잘 그리는 사람 보다 사진 잘 찍는 사람이 부럽더라구요.
그런데 전 내가 내 사진 보는 게 어색해서 사진 찍는 거 아주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데 입니다.ㅠ

유품관리사 일을 하시는군요.
그 일 쉽지 않을텐데 이 일을 하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예전에 시나리오 학원 다닐 때 같은 반 남자 아이 하나가 크리너가 나오는 스릴러물을
쓰고 있다면서 얘기해 주는데 시나리오 내용은 생각 안 나고 그런 직업도 있었구나
새삼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1 05:30   좋아요 0 | URL
뭐. 저도 좀 바쁜 척을해야 사람들궁굼해하지 않겠습니까 ?

하튼... 그 학원 원장 새끼는 정말 좆같은 꼰대 새끼`였어요.
학원이 꽤 큰 사진학원이었는데 돈 벌려고 혈안이 되었던 녀석이었습니다.
사진과 지망하는 학생들 포트폴리오 대신 작성하고 돈 받고 그랬죠. 뭐
사실 그때 ( 지금은 모르겠으나 ) 사진과 지망생들 포트폴리오는 거의 다 학원 선생들이 작성하고는 했죠.

청소를 시작하니 마음이 편합니다.
청소가 제 천직인 것 같아요. 만족스러운 삶입니다.
 
우나기 (화질보정판) (Unagi/3장 구매시 리모콘 홀더증정)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 우나기, 1997  >>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작품 : 성실한 삶을 살던 다쿠오는 어느날 아내의 불륜의 현장을 목격하고 아내를 난자하여 살해한 후, 경찰서로 가서 자수를 한다. 8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후 가석방을 한 그의 손에는 뱀장어가 한 마리 들려져 있다. 다쿠오는 조그만 변두리 마을에 이발소를 차리고 정착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채 오직 뱀장어에게만 관심을 쏟으며 살아가는 다쿠오. 어느 날 그는 숲속에서 자살을 하기위해 약을 먹고 쓰러져있는 게이코를 구해준다. 정신이상자인 어머니와 고리대금업자 애인 사이에서 방황을 하고 있던 게이코는 다쿠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지만 다쿠오는 쉽사리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느날 게이코의 애인이 이발소로 들이닥쳐 난동을 부리자 다쿠오는 분노와 증오로 상대방의 목에 칼을 댄다.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는 다쿠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며 게이코의 뱃속에 있는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줄 것을 약속한다.

 

 

1926년 도쿄에서 태어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와세다 대학교 재학시절부터 연극에 관심을 갖고 희곡을 쓰며 좌파 연극 활동을 했다. 1951년 쇼치쿠 영화사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그는 이후 스튜디오의 도제 시스템과 오즈 영화 스타일에 대한 반감으로 닛카츠로 옮긴다. 새로운 영화사에 정착한 그는 1958년, 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을 유랑극단의 타락한 삶에 비추어 그려낸 <도둑맞은 욕정>으로 장편 영화감독에 데뷔한다. 첫 연출작부터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심을 강하게 나타낸 그는 사회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나 하층계급에 속한 이들의 끈질긴 생명력, 삶의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포착해왔다. 1960년대 가장 문제적 감독으로 손꼽히는 오시마 나기사와 함께 일본 뉴웨이브를 이끄는 주역이 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1965년 '이마무라 프로덕션'을 설립한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TV 다큐멘터리에 전념한 그는 <복수는 나의 것>으로 일본 국내 영화상을 휩쓸기도 한다. 1982년에는 <나라야마 부시코>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여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1997년 <우나기>로 두 번째 황금 종려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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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영화 우나기 소개 글에서 부분 발췌

 

 

 

 

ㅡ 꼼장어의 정식 명칭은 " 먹장어 " 다. 먹장어는 경골어류인 다른 장어'와는 달리 턱뼈가 없어서 무악류로 분류된다. 기생충 흡반처럼 생긴 입으로 기생충처럼 생명체 몸에 붙어 살을 빨아먹고 산다.  모양새와 식습성이 혐오스러워서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다. 주로 껍질은 가죽으로 사용되었는데 해방 직후 먹거리가 부족했던 한국인은 껍질이 벗겨진 채 버려진 먹장어를 먹기 시작했다. 질긴 생명력 때문에 껍질을 홀랑 벗겨 토막을 내도 불판 위에서 꼼지락거린다고 해서 " 꼼장어 " 라고 불렸다.

 

욕망의 아나고

 

보험금을 수령하면 이 지긋지긋한 장어구이 가게를 때려치우고 근사한 카페 하나 차리리라. 나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아내를 죽일 계획을 꾸몄다. 아내와 잠자리를 갖지 않은 지는 오래되었다. 아내는 이유 없이 섹스를 거부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때 아내는 나 몰래 젊은 놈과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아내가 죽으면 보험금은 10억이 나온다. 물론 보험 회사에서는 나를 의심은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있다. 아내는 오늘도 술에 취해 가게 바닥에 누워 자고 있다. 장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셨다고 하지만 그것은 변명'이다. 사내만 보면 추파를 던지는 여자'다. 아내를 살짝 흔들어 보았다. 입을 벌린 채 자고 있는 것으로 보아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 나는 수족관이 있는 곳으로 가서 펄떡거리는 장어 열 마리'를 꺼냈다. 모두 아이 팔뚝 만한 놈들이었다.


내 비장의 무기다. 물 밖으로 나온 장어는 숨을 곳을 찾아 고통스럽게 움직였다. 장어는 어둡고 촉촉한 구멍을 좋아해서 구멍이 보이면 무조건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습성이 있다. 나는 그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붕장어를 일본어로는 아나고라 하는데 한자 표기로는 

 

눈빛에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아내는 입 속에 들어간 장어를 꺼내기 위해 손으로 장어를 잡고 필사적으로 밖으로 빼려고 했지만 미끄러운 장어를 꺼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내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다가왔으나 이내 쓰러지고 말았다. 벌어진 입 사이로 붕장어 꼬리가 보였다. 마치 검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마녀 같았다. 입 속으로 들어간 장어는 살기 위해서 식도를 갉아먹을 것이다. 형사가 물으면 요리를 하기 위해 부엌에 둔 장어가 도망치다가 누워 자는 아내 입 속으로 들어갔다고 할 생각이다. 바닥에 나뒹구는 장어 몇 마리만 남겨둔 채 나머지는 비닐 봉투에 담아 화장실 변기에 버렸다. 바닥에 장어가 너무 많으면 형사가 의심을 할 게 분명하다. 나는 곧바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이제 번거로운 몇몇 절차만 끝나면 보험금이 나오리라.


형사 앞에서 슬픈 표정을 한다는 게 무척 힘들었다. 심각한 표정을 짓자니 자꾸 웃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 가장 좋은 곳은 화장실이다. 화장실에 가서 웃으리라. 변기 카버를 열고 바지를 내린 후 앉았다. 낄낄, 웃음이 났다. 낄낄낄, 계속 웃음이 났다. 그때였다. 묵직한 것이 내 몸을 뚫고 들어오는 통증을 느꼈다. 항문 쪽이었다. 엉거주춤 일어나 살펴보니 장어 한 마리'가 항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 시발.... " 나는 장어 꼬리를 잡고 있는 힘을 다해 빼려고 했으나 힘 좋은 장어는 그럴수록 더욱 세차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 죽음에 대한 공포와 함께 묘한 배변욕 그리고 오르가슴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꼬마 한스가 되었다. 나는 이제 곧 죽으리라. 대장 길을 거쳐 소장으로, 앞으로, 앞으로.... 날카로운 장어 이빨이 내 몸속을 뜯으리라.



에필로그

 

" 9시 뉴스입니다. 첫 번째 소식입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항문에 장어가 기어들어가는 사고로 40대 남성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색정사'로 결론 내렸습니다. 경찰은 평소 김 씨 부부가 섹스리스'로 성 상담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보아,  최근 아내와 사별한 김 씨가 평소에도 장어를 가지고 유사 항문 섹스 행위에 심취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월례 회의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며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다음 뉴스입니다. 이완구 총리 내정자 청문회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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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5-02-1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최종분석`을 본 후, 끝까지 확인해야 할 것은 한국어만은 아니다라고 느꼈죠.^^

곰곰생각하는발 2015-02-12 18:07   좋아요 0 | URL
최종분석 보셨군요...... ㅎㅎㅎ. 역대급 반전이었죠.....
 
의혹 속의 증거 (프루프)
조셀린 무어하우스 감독, 러셀 크로우 외 출연 / 기가코리아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실크보다 부드러운

 

 

 

 

사람들은 말(대화)보다 글(문장)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어서 문장'을 자유자재로 생산하는 작가'를 동경한다. 일단 믿고 본다. 하지만 김수영이나 권정생 선생 같이 언행일치하는 작가'는 흔치 않다. 술자리에서 지저분하게 노는 놈은 거래처 김사장이나 이 작가나 박 시인'이나 모두 대동소이'하다.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몸'이다. 싸나이로 태어나서 얼라로 죽지 않겠다는 다짐과 꿀리지 않겠다는 정신과 꼴리고 싶다는 정신'이 뒤섞인 주체를 나는 " 다이하드바디 " 라고 부른다. diehard :  끝까지 버티는  와   hardbody : 체격이 아주 건장한 사람      가 결합된 합성어'다. 그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일 것이다. 왜냐하면 내게 막 지은 따순 조어造語이니까 말이다. 박근혜 정권 초기, 정권에 빅엿'을 날린 ㅇㅊㅈ 선생이 대표적 다이하드바디'다.

시도 때도 없이 꼴리는 남근적 인간이 바로 다이하드바디'다. 하는 꼴을 보면 이런 말을 하고 싶다. " 에라이, 시발... 모르겠다. 밥은 먹고 다니냐 ? " 영화 << 실미도 >> 는 다이하드바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훈련 도중 부상을 당해서 북파 계획에서 제외된 강성진이 울면서 살아서 돌아오라고 말할 때 정재형이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힘주어 외친 " 우린, 죽지 않아 !!!!!!! " 라는 말은 " 우린 다이하드바디'다 !!!!!!!!!! " 와 일맥상통한다. 이 자리를 통해 고백하자면 그동안 < 조낸 > 과 < 시바 > 로 문장을 완성한 내 글'은 내 글'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다이하드바디'인 것처럼 고백했지만 사실 나는 다이하드바디'가 아니다. 어디서부터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막막하다. 나는 시각장애인'이다.

17살 때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지금은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다. 사람들은 맹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항상 내게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하고는 했다. " 이 세상에서 장님을 속이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단다. 사람이 네 앞에서 하는 말을 믿으면 안된다. 아무리 달콤한 말이라도 말이다. " 나는 그동안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점을 밝히지 않은 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시각장애인'이라고 고백하는 순간 당신은 나를 무시할 테니까. 물론 나는 점자 읽기를 배운 적도 없고 타자를 배운 적도 없어서 읽지도 못하고 타이핑할 수도 없다. 이 지점에서 모두 공통된 질문을 던질 것이다. " 그동안 당신이 작성한 페이퍼와 포스트는 뭡니까 ? "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내가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한 타이피스트'가 내가 녹음한 것을 바탕으로 글을 작성한 것이다.

 

그녀의 본래 직업은 국회 속기사'다. 그녀와 나는 신뢰'로 뭉친 관계'였다. 나는 그녀의 입을 통해 내 글에 대한 반응을 살필 수 있었고, 이 사실을 추호도 의심한 적이 없다. 하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그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ㅡ 오늘 옷을 샀어요. 실크 재질이에요.

ㅡ 내가 앞을 볼 수 없어 유감이군요. 예쁜 옷인가 보네요 ?

ㅡ 한 번...... 만져볼래요 ?

ㅡ  그래도 될까요 ?  

목자가 길 잃은 양을 안내하듯,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실크로드로 안내했다. 놀랄 만큼 부드러웠다. 그 촉감은 내가 지금까지 만져보았던 그 어떤 옷보다 부드럽고 온기 있었다.

ㅡ 이건 옷 단추인가 보네요 ?

ㅡ 네, 단추예요. 

ㅡ 딱딱한 단추만 보다가 스테딜러 연필 지우개처럼 말랑말랑하니 독특해요. 이 옷은 어디서 살 수 있나요.

ㅡ 살 수 없어요. 단 하나뿐인 옷이거든요.

ㅡ 아, 그래요 ?

ㅡ 그래요.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은 실크가 아니라 내 벌거벗은 젖가슴이에요. 당신이 만지는 것은 젖가슴이 아니라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이에요.

나는 화들짝 놀라서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옷을 벗은 채 내 앞에 서 있었던 것이었다. 그, 그그그러니까 그녀는 내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를 놀린 것이다. " 장님을 속이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지 ! " 분노와 혐오가 밀려왔다. 돌이켜보면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고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다. 사랑 때문에 콩깍지가 씌였으니까.  신뢰 관계는 깨졌다. 이제 더 이상 그녀가 한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 공포의 외인구단 >> 에서 까치가 엄지에게 하듯, 그녀는 내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거짓말도 서슴치 않고 했을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내 글'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을까 ? 그녀가 내게 전해준 바에 의하면,  내가 글을 올리면 덧글이 평균 100개 정도 달린다고 한다. 공감 버튼은 300개 정도이며 하루 평균 방문객 수는 10만 명을 넘는다고. 그녀는 일일이 내 팬이 남긴 덧글을 읽어주었다.

" 멋진 페루애 님 ! 당신 글을 읽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살고 있습니다. " " 너무 너무너무너무 재미있어요. 남편과 섹스하는 것보다 차라리 당신 글을 읽는 게 더 짜릿하답니다. 호호. " " 당신은 천재예요. 천재 !!!! " 주로 이런 반응들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게 혼란스럽다. 어쩌면 그녀는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나를 속일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물론 뛰어난 문장 실력을 감안하면 내 포스트에 덧글이 평균 100개 달리고 공감 버튼이 300개 정도 달릴 수도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어쩌면 약간 과장된 거짓말일 수도 있다. 나는 그녀를 해고하고 다른 남자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했다. 이 글을 내 녹음을 바탕으로 그 아르바이트이 작업한 첫 번째 포스트'다.

이 지점에서 이웃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평소 내 블로그는 일일 방문자 수가 10만 명에 육박하는 인기 블로그가 맞습니까 ? 여러분의 솔직한 고백을 듣고 싶습니다.







추신


위험한 선택( proof, 1991 ) ㅣ 주인공 마틴은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믿는다.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다. 어린 마틴은 어머니가 자신에게 창밖 풍경을 들려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맹인을 속이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지. 그는 엄마 몰래 카메라로 창밖 풍경을 찍는다. 그는 말보다 사진을 신뢰한다. 정직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사진 속 풍경을 세세하게 설명해 달라고 할 생각'이다. 그래야 엄마가 거짓을 말했나 아니면 진실을 말했나를 알 수 있으니까,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세월이 흘러, 마틴은 착한 앤디'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를 신뢰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신뢰는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마틴을 사랑하는 가정부의 계략 때문에 앤디는 신뢰를 잃는다. 그에게 아주 오래 전에 찍은 사진을 건낸다. " 사진 설명 좀 부탁하네 ! " 앤디가 사진 한 장을 보며 읽는다. " 창밖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있어요. 오른쪽에 말이죠. 그리고 사진 왼쪽에는 빨간 우체통이 있네요. 사진이 찍힌 날은 좀 특이하네요. 햇볕이 쨍쨍 한데 비가 오고 있어요. 이런 날을 두고 호랑이 장가간다고 하죠. 시바, 호랑이는 좋겠네. 이런 대낮에 응응응도 하고...... "

이 영화는 러셀 크로우와 휴고 위빙'이 할리우드에서 뜨기 전에 만들어진 호주 영화'다. 숨겨진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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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2-06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투브에 가면 이 영화 full movie 버전이 있습니다. 감상하시길....

비로그인 2015-02-06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러셀크로의 워터 디바이너를 재밌게 봤는데 젊은 러셀 크로가 나오니 너무 반갑네요. 꼭 봐야겠습니다. 워터 디바이너는 개연성 없는 뽕끼 로멘스가 난무하지만 눈물나는 가족애가 찡했습니다...(역시 전 뽕끼스타일). 터키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터키 관광 홍보 영화로도 손색이 없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2-06 19:50   좋아요 0 | URL
저는 그런 뽕끼를 마이너 뽕끼`라고 하는데 이런 뽕끼`는 가치 있는 뽕끼`입니다. 그러니까 두사부일체처럼 졸라 우기기만 하다가 느닷없이 가족애 들먹이며 눈물 짜니는 메이저 뽕끼`가 아닌, 뭔가 이창동스러운 절절한 가족애`가 마이너 뽕끼` 아닌가 싶습니다.

참... 이 영화 기회되면 꼭 보십시오. 보다 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옴...

2015-02-07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07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07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07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07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07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부학 교실

 

 

 

 

 

 

 

 

 

내가 네이버 블로그를 닫은 이유는 조카 때문이었다. 조카가 놀러왔을 때, 로그인 한 상태에서 컴퓨터를 켜 놓고 나간 게 화근이었다.  프로필 사진에 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으니 빼도 박도 못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누구는 블로그를 " 과시용 " 으로 사용했으나 나는 주로 " 치료용 " 이었다. 내 블로그는 개인 일기장이나 다름없었다. 불편했다. 내 폐부를 낱낱이 드러낸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스무 살 무렵 알콜치료소에 갈 뻔했던 일이나 정신과 치료를 오랫동안 받았던 경험 그리고 포르노는 주로 CUM 계열을 즐겨 본다는 것까지 적나라하게 적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네이버 블로그를 접고 알라딘에 터를 잡았다. 네이버에서는 하지 못했던 말을 이곳 페이퍼에다 하련다.

 

내 블로그 이웃과 얽힌 끔찍했던 일 때문에 그동안 네이버 블로그에서는 그 일을 차마 말하지 못했었다. 4년 전 일이었다. 경희대 근처 술집에서 떡이 되도록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지갑을 열어보니 택시비는커녕 동전 몇 개와 버스카드 하나가 전부였다. 여름이 갓 지난 이른 가을'이었지만 밤이 되니 제법 쌀쌀했다.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 트럭이 눈에 띄었다. 파란 방수포를 덮고 자면 따스할 것 같았다. 잠시 눈만 붙이자 !   방수포를 올렸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자 셋이 취해서 방수포 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놀랐던 마음은 이내 웃음으로 바뀌었다. 요실금 환자처럼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 혹독한 밤에 나와 똑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마치 새벽 세 시에 불 켜진 창문을 보았을 때 느끼게 되는 동료애'라고 할까 ? 너 - 깨어 있고, 나 - 깨어 있다.  나는 조심스럽게 트럭에 올라 그들 옆에 누워 함께 잠을 잤다. 꿀 같은 단잠이었다. 트럭 안은 따스하고 평화로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 눈을 떴다. 붕 떠 있는 듯한 느낌, 비행기를 탈 때 느꼈던 멀미를 느꼈다. 조심스럽게  방수포를 걷었다. 맙소사, 놀랍게도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것도 벌건 대낮이었다. 나는 달리는 트럭 안에 있었다.  트럭은 남해를 향해 토끼를 쫓는 굶주린 늑대처럼 달리고 있었다.  여러 사실을 종합하니 답은 나왔다. 아, 내가 잠든 사이에 트럭 운전수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남쪽을 향해 밤새 달린 것이었다.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황당하기는 했으나 기분은 좋았다.

 

먼 훗날, 낄낄거리면서 오늘을 추억하리라. 좋은 이야깃거리 하나 생긴 것에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옆을 보니 간밤에 정신줄 놓고 잠을 자고 있던 사내들은 여전히 세상 모르고 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구야. 시 웃음이 나왔다.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생각하니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 옆에서 자고 있는 사내를 흔들어 깨웠다. 잠을 방해하지 말라는 뜻인가 ? 사내는 팔을 휙 돌렸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때 트럭이 급하게 좌회전을 했기에 팔이 젖혀졌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시 그를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사내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지나친 음주로 인해 사망한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급하게 다른 사람을 흔들어 깨웠으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구석에서 죽은 듯 잠을 자는 사람도 같은 반응이었다. " 뭐지 ?!  " 순간, 나는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잠을 자고 있는 게 아니라 죽은 시체였던 것이다. 이 트럭은 시체를 싣고 달라는 차였다. 나는 두려움에 덜덜 떨었지만 달리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트럭은 시속 200KM로 달리고 있었으니깐 말이다. 여기서 뛰어내렸다가는 즉사할 것이 뻔했다. 트럭이 휴게소로 진입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트럭은 멈추지 않고  더욱 속력을 내며 달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 드디어 트럭이 멈췄다. 이때다 싶어서 뛰어내릴려고 했으나 조수석에서 사람이 내리는 소리가 들려서 포기했다. 일단 시체들과 함께 죽은 척해야 했다. 방수포를 살짝 걷어 밖을 보니 하얀 건물이 보였다.

 

건물 구조로 보아 병원인 듯했으나 이미 오래 전에 버려진 병동'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누군가 다가오더니 방수포를 천천히 열어젖혔다. 나는 잽싸게 눈을 감고 죽은 척했다. 방수포를 올린 사내가 낮게 말했다. " 형님, 우리가 어제 얼라들 작업한 게 네 놈이었단가 ? 세 놈이었나 ?! 잘 모르것네.  약빨에 취해서 무덤에서 한 놈 더 건진 것 갔소. "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는 게 아니다. 낄낄거리고 웃는다면 당장 웃음을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 타인의 불행 앞에서 웃는 거 아냐 ~  나는 내가 겪은 내용을 말할 뿐이다. 거짓말이라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 나는 할 수 없이 죽은 척하며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었다. 죽은 척하는 살아있는 생태처럼 말이다. 

 

시체 3구와 함께 내가 실려간 곳은 텅 빈 방이었다. 지난 밤, 시체를 운반했던 운전수와 조수는 네 개의 거치대에 우리를 각각 내려놓았다.  수술실에서나 볼 수 있는 거치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 병원이었던 건물이 확실했다.  여기서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일까 ? 불안감이 엄습했다. 지금이라도 벌떡 일어나 살려달라고 애원할까 ? 애원하면 살려줄까 ? 그럴 가능성은 없다. 나는 유일한 목격자이자 생존자이니 말이다. 고릴라처럼 생긴 운전수가 첫 번째 거치대에 올려진 사내 옷 주머니를 뒤졌다. " 양아치 새끼 ! "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운전수는 사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쩽그랑 !  바지를 벗기면서 주머니에서 떨어진 동전이 소리를 냈다. 먼 훗날, 시체가 발견되더라고 신분을 숨기기 위해 옷을 벗기는 것 같았다.

 

옷은 죽은 자의 신분을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니깐 말이다. 두려웠으나 떨면 안 됐다. 조수라는 사내가 와서 내 옷을 벗겼다. 수치심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조수가 말했다. " 음마, 이 놈의 새끼 ! 토실토실하요. " 사내는 내 다리를 올려 엉덩이를 손으로 벌렸다. 뭐하는 거지 ?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설마, 설마, 설마.......    사내가 운전수에게 외쳤다. " 아따, 성님 ! 성님은 첫 번째 놈이 맘에 든다요 ? 난, 요놈으로 하것소. 음마... 희멀건 게 통통하니 ! 아따, 요놈 똥구멍이 국화무늬일세. " 그렇다, 그놈들은 시간屍姦을 즐기는 악마였다.  아, 아아. 어쩌란 말이냐. 저 놈이 내 몸을 뚫고 들어올 것이다. 나는 결정을 해야 했다. 괄약근에 힘을 주어 공격을 방어할 것이냐,

 

아니면 힘을 풀어 받아들여야 할 것이냐. 사람은 죽으면 괄약근이 풀어진다. 그 사실을 이 녀석들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괄약근에 힘을 주는 순간 내 정체는 발각될 것이 분명했다. 풀자.....  그때 느닷없이 엉덩이 쪽에서 묵직한 통증이 몰려왔다. 야마떼 구다사이.....      내 몸을 파고드는 아픔. 얼마나 지났을까 ? 별로 말이 없던 운전수가 낮게 소리쳤다. " 동상, 이제 그만하오 ! 이제 곧 고객들 올 시간이오 " 고객? 고객들 ?! 누가 여기에 더 온다는 말인가 ? " 네크로필리아 " 가 떼거지로 몰려온다는 뜻일까 ? 그렇게 죽음 같은 시간이 흐르자 한 무리가 시끄럽게 떠들며 수술실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실눈을 떠 상황을 주시했다.  그들은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남녀가 섞여 있었다.  

 

오고가는 말을 종합하니 그들은 의대생인데 성적이 좋지 않아 낙제를 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돈을 내고 불법으로 유통되는 시체를 가지고 해부 실습 과외를 하는 것이었다. 운전수와 조수는 시체 장사꾼이었다. 그들은 불법으로 해부용 시체를 납품하면서 납품 전에 성욕을 해소했던 것이다. 맙소사, 첩첩산중이라더니......  살아 있지만 죽은 듯 살아 있는 내 몸을 저주했다. 내 죄는 술 마시고 한뎃잠을 잔 것밖에는 없다. 이제 곧 산 채로 해부용 사체가 될 팔자였다. 눈을 떠 살려달라고 해도 살려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흰 가운을 입은 여자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는 핀셋으로 내 양물을 툭툭 건드리기도 했다. 아, 아아. 그럴 순 없어.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와중에서 내 성욕은 강렬하게 타올랐다.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강하게 발기했다 ! " 어머 !!! " 여자가 외마디소리를 질렀다. 나는 발딱 일어나 모든 일을 고백하고 살려달라고 빌 생각이었다. 그때 무리 가운데 나이가 많은 듯한 남성이 잘난 척하기 시작했다. " 사체의 혈관 속에 방부액을 주입하며 발기세포가 확장되지. 그래서 해부실습실 남자 사체 성기는 살아 있을 때보다 우람해. 박테리아가 많이 모이는 부분이 바로 입과 성기 부분이거든. 남자의 경우 페니스와 음.... 불알이 대단히 커져 ! 놀랄 일이 아니야. " 이 말에 여자가 되물었다. " 얼마나 큰데요 ? " " 불알이 멜론 크기 정도 돼 ! " # 여자는 낮게 신음했다.  " 잠시만 ! 이 사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 어디서 보았더라 ? 맞다, 곰곰발 !

 

나, 이 사람과 네이버 블로그 이웃이야. 근데....  왜 여기에 누워 있지 ? " 여자는 의대생답게 맥을 짚기 시작했다. 뛰고 있었다. 당연하다, 난 살아 있는 시체니까. 여자가 손으로 내 눈꺼풀을 열어젖혔다.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둘이서 눈싸움 하고 있으니 죽을 맛이었다. 여자가 웃었다. 여자가 웃자 나도 따라 웃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연기를 해야 했다. 동공이 흔들리면 안된다. 눈물을 흘려서도 안된다.  시간이 흘렀다.   31초쯤 ?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박근혜가 흘린 눈물이나 내가 흘린 눈물이나 모두 똑같았다. 슬퍼서 운 것도 아니요, 무서워서 흘린 눈물도 아니었다. 단순히 " 눈깔 " 이 아파서 흘린 눈물이었다.  여자가 소리쳤다. " 곰곰발, 살아 있네. 살아 있어 ! " 한순간 수술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결국 나는 발각되고 말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불행은 발생하지 않았다. 침묵 서약을 하는 조건으로 나는 지옥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여자 의대생이 말했다. " 곰곰발 씨, 내가 당신 블로그 예의주시할 거예요. 허튼소리 끄적이다가는......    호호호. "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아직도 저 끝,  괄약근 밑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공포를 잊을 수가 없다. 이 고백은 오늘 처음한다. 믿어 줄 이도 없을 것이다. 믿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정황이 사실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술 마시고 아무 데서나 잠을 자지 마라. 한뎃잠에 골병든다.  경험자로서 당신에게 충고한다. 지옥을 맛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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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시가 된 부분은 메리 로취의 << 스티프 >> 에서 인용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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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 2014-09-17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낄낄낄낄
나오는 웃음은 어쩔 수가 없군요
괄약근에 힘주고 감정이입해서 읽었음 ㅋㅋㅋㅋ

아 한번쯤은.
숙취로 깨질듯한 머릴 부여잡고 눈떴을때 보이는 것이
누런 내집 천장이 아닌,
새파란 하늘이었으면.

곰곰생각하는발 2014-09-17 18:53   좋아요 0 | URL
웃긴 웃는데 이 글이 100% 사실이라는, 리얼 다큐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군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100% 사실입니다. 아직도 그때 악몽이 떠오릅니다.
수술실, 네크로필리아, 시간, 시체장사꾼, 해부학실습.......

정말 끔찍했습니다. 다음에 자세히 말해드리죠...

서쪽섬 2014-09-18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프 진실입니다. 저도 그 해부학실에 있었죠.

음. 멜론만한 알, 얘길 읽으니 알이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바가 멜론바 정도만 됐으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은 엄한 생각을.
역시 이 꿈을 이루려면 시체가 될 수밖에 없는 건가효.

아.. 멜론바가 아니라 메로나구나..

곰곰생각하는발 2014-09-18 15:49   좋아요 0 | URL
그때 새벽 님은 여자였었죠. 지금은 성전환 수술을 하셔서 남자가 되었지만.....
그때 수술실에서의 인연이 여기까지.. 후훗...
그나저나 시체장사꾼들은 요즘 뭐하고 지냅니까 ?

서쪽섬 2014-09-18 16:58   좋아요 0 | URL
그 장사치들, 그때 얻어 걸린 곰발님만한 사체가 없다며 곰발님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녀석들이 시술을 잘못하는 바람에 저는 자웅동체.. 아수라 백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왕에 달아주려면 메로나를 달아줄 것이지 어디서 먹다 만 누가바를.. 하하 ;;

곰곰생각하는발 2014-09-18 17:2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메로나가 그렇게 큽니까 ? 누가바 무시하지 마십시요. 한국인 평균 페니스 길이가 세계 109위, 전세계 꼴찌라메요 ? 좌절하고 있습니다. 전 제법 메로나 사이즈이지만 어디 가서 자랑하지 않으렵니다. 특히 콩고 같은 나라 가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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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응응한 그 조수 만나면 복수할 거라 전해주십시요. 새벽 양 !

서쪽섬 2014-09-18 17:27   좋아요 0 | URL
물론 맛은 누가바가 꿀맛입니다만!
거짓부렁 마시오! 해부할 때 제가 본 바로는 비비빅 내지 빵빠레였습니다만!
콩고..ㅎㅎㅎ 진짜 압권이죠? 킹콩들만 있나봅니다.

소녀가 꼭 전해드리겠사와~요. 하하 ;;

곰곰생각하는발 2014-09-18 17:42   좋아요 0 | URL
빵빠레라.... 비비빅이라....
목숨 걸고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습니다.
내 페니스를 심히 모욕한 죄로.....
법정에서 지퍼 내리겠습니다.

서쪽섬 2014-09-18 18:15   좋아요 0 | URL
아, 아니 되옵니다. 어찌 그런 흉기를.. 여튼 법정 출두날 네이버에 이웃 공지 올리고 모두 응원(?) 가겠습니다. 하하 ;;

만화애니비평 2014-09-18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체능욕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도 무방한 것인가!!!

곰곰생각하는발 2014-09-18 15:50   좋아요 0 | URL
그렇답니다. 물불가리지 않습니다. 네크로필리아 무서운 놈들임...

에피큐리언 2014-09-19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우, 구라쟁이.

곰곰생각하는발 2014-09-19 11:04   좋아요 0 | URL
이래서 항상 진실을 말할 땐 용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백혜정 2014-10-05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해부학교실볼려고했지만결국엔착신아리1편봤어요.^^* 그래서깜놀하고무서웠음설마해골뼈나올라!ㅠㅠ
 

 

 

 

 

가욋길

 

- 이 글은 엄동 1인을 위한 맞춤 글이다. 모든 딴지를 불허한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사실이지만 : 내 정식 직업은 " 마라토너 " 다. 죽을 둥 살 둥 달려야 하니, 내 인생 이게 뭐니 싶다가도 drunk money '에 취하면 바로 이 맛에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 라는 소리도 새어나온다. 이판사판 악다구니해도 사판'보다 이판'에서 노는 게 낫다는 생각하면 생강처럼 아린 맛도 참고 견딜 수 있었다. 내 소속 팀은 서울역 후암동 동사무소'다. < 그들에게 새로운 날개를 > 이라는 노숙자 재활 프로그램으로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자는 취지로 동사무소로는 최초로 마라톤 팀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를 지지하는 사람은 후암동 주민이 전부였다. 뛰고, 뛰고, 뛰고, 뛰고, 뛰었다. 기록은 신통치 않았지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가난한 후암동 사람들이 특정 대상을 지지할 팀이 있다는 게 중요한 것이지 성적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한때 나는 신용불량자였고 노숙자였으며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상인이었다. 불알 두 쪽과 맨발이 전부인 내게 마라톤은 비타 500이었다. 뛰어서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뛸 수 있었다. 결승선에 도착하면 탈수기에서 갓 꺼낸 빨래처럼 다리에 힘이 쪼옥 빠져서 바닥에 주저앉게 되지만, 나는 이 " 힘 없는 무저항의 순간 " 을 사랑했다. 탈탈 털린 빨랫감과 마라톤 경기를 막 끝낸 롱 디스턴트 러너   왠지, 갑자기, 뜬금없이 하루키 흉내를 내고 싶었다   의 공통점은 빳빳하지 않다는 점이다. 둘 다 빳빳해지기 위해서는 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    빨랫감은 좋은 볕이 필요하고, 마라톤 선수에게는 시원한 물이 필요하다.

 

동사무소 재정 상태가 열악하다 보니 가욋돈이 필요해서  마라톤 학교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마라톤을 가르치고 있다. " 여러분, 영화 << 해적 >> 보셧나요 ? 거기서 유해진이 수영법을 가르치면서 음파음파 하잖아요. 마라톤도 마찬가지입니다. 호흡이 중요해요. 들숨과 날숨을 규칙적으로 쉬어야 합니다. " 그녀를 처음 본 곳도 바로 " 마라톤 학교 " 였다. 그녀가 내게 싸인'을 요청했다. < 행복하세요. - 롱 디스턴트 러너 곰곰발 > 이라고 쓰자, 여자는 화들짝 놀라며 정정을 요구했다. " 어머, 죄송해요 ! 이미 말씀 드린다는 게 그만.... 마라토너 곰곰발'이 아니라 알라디너 곰곰발'로 써 주세요. "

 

시간 날 때마다 알라딘 개인 블로그에 " 달리기 " 에 대한 글을 올리고는 했는데, 그녀가 내 블로그를 눈여겨보고 있었다고 했다. 부끄러웠다. 글이라기보다는 허세가 팔 할'이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내가 싸인을 해 준 최초의 독자였다. 나 또한 그녀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여자'였다. 체구는 작았지만 야물딱지게 뛰었고 수강생 가운데 하프 마라톤 성적이 가장 좋았다. 그녀가 세운 최종 목표는 마라톤 풀 코스 도전이었다. 여자가 개인 강습을 부탁했을 때 나는 바로 승낙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마라톤을 핑계로 자주 만났으나 마라톤 대신 주로 문학에 대해 말했다. " 왜 그렇게 하루키를 싫어하세요 ? " 여자는 하루키 광팬'이었다.

 

나는 온갖 이유로 하루키를 비판했다. 개똥 같은 소리'였다. 돌이켜보니, 그때 나는 하루키가 싫어서 그녀에게 뾰족한 불 화살을 날린 게 아니라 질투에 눈이 멀었다. 사랑에 빠졌다. 눈이 멀었다. 아마츄어 마라톤 대회가 있던 날, 나는 결승선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일반 선수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3시간이 경과했지만 그녀는 아직 결승선에 도착하지 못했다. 사라졌다. 그녀는 경기 도중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경기장에 들어온 선수 기록은 5시간 36분 17초'였다. 그를 끝으로 대회는 끝났다. 하지만 나는 강력하게 항의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결승선을 통화하지 못한, 경기를 포기하지 않은 선수가 있다고, 기다려 달라고.......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서 마라톤을 배우는 수강생이 있었다. ㅡ 강사님, 마라톤 선수와 노래 가수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 ㅡ 모르겠습니다. 호흡이 틀어지는 순간 망친다는 거죠. 가수 지망생이 학원에서 배울 때 제일 먼저 배우는 게 바로 호흡법이에요. 숨쉬기 운동만 하죠. 마치 소림사 영화에 나오는 수련법과 동일하죠. 왜 사부는 기술을 가르치지는 않고 제자에게 물 긷고 밥 하고, 마당만 쓸게 하잖아요. 기술은 가르쳐주지 않고 부엌 밥풀때기나 시키니 화가 난 제자가 한마디하죠. 언제 가르쳐주실 겁니까 ? 바로 이 지점에서 << 생활의발견 >> 법칙이 적용되죠. 사소한 가사일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이 기술이었던 거죠. 뭐, 나머지는 다들 아시잖아요. " 하산하거라 ! " 가수에게 호흡법은 제자가 하루 종일 하는 가사일과 비슷해요. 그래서 마라톤을 배우기로 했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노래 잘하는 가수가 될 거예요. 하하. ㅡ 건투를 빕니다 !  그 수강생은 마라톤 선수가 되어도 될 정도로 타고 난 실력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롱 디스턴트 러너 피지컬 트레이닝 시너지 효과는 발생하지 않았다. 노래 실력은 늘지 않았고, 결국 가수가 되리라는 꿈을 접었다. 오늘도 나는 불알 두 쪽 차고 좆빠지게 달린다. 그게 내 일'이니까. 내 최고 기록은 2시간 20분 43.201929343242초'다. 오늘 페이스는 그닥 좋지 않았다. 달리면서 계속 사라진 여자 생각을 했다. 어디로 갔을까 ? 달리는 내내 그녀 생각만 했다.

 

그러니 기록이 좋을 리 없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이미 2시간이 지났다. 달리면서 주위를 살펴보니 낯익은 건물들이 보였다. 여자가 살던 곳이었다. 산본이었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리기를 멈췄다. 내가 가야 할 정해진 코스를 보다가 다시 그녀가 살던 아파트를 보았다. 저 길은 가욋길'이다. 나는 가욋길로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사라진 이유를 알고 싶었다. 다리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날기 시작했다. 바닥을 보니 내 발은 아스팔트 바닥 위에 붕 떠 있었다.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 나는 곧 바닥으로 떨어졌다. 버스가 나를 쳤고, 나는 10미터나 날아갔다. 비로소 그녀가 사라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달리다가 낯익은 풍경을 보았으리라. 그리고는 가욋길로 뛰었으리라.

 

경기는 끝났다. 우승은 2시간 13분 12.20381283024823948028420384초를 기록한 삼성생명 소속 김달식 선수가 차지했다. 나는 실종 처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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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 2014-09-10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잉크가 다된 싸인펜으로
무심한듯 그려주신 곰발님의 싸인을 득하다니!
(게다가 맞춤글이라니!!)
아아 영광입니다 진정.

생각지도 못한 가욋길을 걸은듯한 시간이었습니다
제 오랜 팬심이 불필요한 말과 과한 흥분으로 표출되었을텐데
아랑곳없이 유쾌한 분위기로 이끌어주셔서 감사했고요.

축축한 마음엔 좋은 볕이 되주고
퍽퍽한 갈증엔 시원한 물이 되주는
곰발님의 보석같은 글에
제 팬질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쭈욱~

곰곰생각하는발 2014-09-10 02:33   좋아요 0 | URL
아니, 이 밤중에 깨어 있다니 또 술 드셨구랴 ?
풀타임 꼭 도전 성공하기 바랍니다.
앞으로는 싸인 돈 받고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오늘 아침 8시까지 마셨습니다.
결과는 막장 분위기였으나 그래도 엄동 님 참석으로 화룡점정이 되었습니다.
엄동 님 아니었으면 정말 수컷들만 모인 꾀죄죄한 자리가 될 뻔했어요..

곰곰손 2014-09-10 0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하~ 옆에 계신분이 엄동님이셨구낭~
난 어인일인지 엄동님이 마냥 남자분인줄 알고 있었음!! ;;;
와아ㅡ좋았겠다~ 간만에 오쉬쁘만나고~
나도 당신들 넘 보구싶은뎅~ ㅠㅠㅠㅠ흑흑흑흑.. 아배고프다ㅡ
먼가 먹어야게따ㅡ

곰곰생각하는발 2014-09-10 11:17   좋아요 0 | URL
사실 나도 엄동 님 남자로 착각했던 적이 있었다. 엄동이라는 글자가 남자를 떠올리게 만들거든...
간만에 오쉬프 만나서 반갑지는 않았다. 늘 만나는 처지이니깐...
그날에 일찍 취해서 먼저 떠났어. 옛날처럼 마시지를 못하더군......

잘 지내고 있었누 ? 명절 음식은 좀 먹었냐 ?
사랑한다, 곰곰손 !
좋은 작가가 되기를... 만화야말로 가장 대중적이며 위대한 장르일거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쪽섬 2014-09-10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헌사글을.. 엄동님 부럽습니다.

헌데 저도 지금껏 엄동님 남자인 줄 았았다는.. :)

곰곰생각하는발 2014-09-10 14:59   좋아요 0 | URL
아마 여성인 줄 안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성의껏 댓글 달았더니 여성이어서 뿌듯했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 어제는 아침까지 술을 마셨는데 저녁까지 잠을 안 잤습니다. 대부분 왜 자면서 술을 깨잖아요.
멀뚱히 잠을 안자면서 술을 깨니 이게 또 묘한 매력이 있더군요...
아침 8시부터 술을 깰려고 ( 아침에 집에 들어가려 했는데 그냥 버스 타고 아무데서나 내려서 막 돌아다녔습니다. 목욕탕도 가고, 놀이터에서 그도 타고, 천변에서 그늘에 앉아 책도 읽고, 잠도 자고.... 그러다 보니 술을 개더라고요..


안 자면서 깨니깐 숙취도 없는 거 같습니다. 이 방법 추천합니다. 단, 몸이 좀 불편함...


엄동 2014-09-10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성이어서 뿌듯합니다 (코팜)

놀이터도 가고, 그늘에 앉아 책도 읽고,
그러면서 술을 깬다..
기발하군요

머 어떻습니까
술먹고 누굴 패는것만 아니라면야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9-11 00:06   좋아요 0 | URL
그나저나 저희 모임들이 호들갑을 떨어서 좀 부담스럽지 않으십니까 ?
평범한 엄동 님을 절세미인으로 만들어놨으니
이거 부담이 가실 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좀 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일종의 신입 회원 신고식이라 생각해 주세요. 시간 지나면 막 대합니다...

엄동 2014-09-11 13:5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하하하하하하
그러니깐요 ㅋㅋㅋㅋ

하지만 다들
개똑같이 말해도 찰똑같이 알아들으시는 사이로 보여 보기 좋습니다 :)

아 그리고 막대하는거, 저 좋아합니다 ㅎ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9-11 16:37   좋아요 0 | URL
그러면 막 대하겠습니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