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은 乙이 욕망하는 도깨비감투'이다. 완장만 있으면 싸울 필요도 없다. 선빵을 날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완장이 없는 乙은 알아서 쫀다. 전, 쫄면입니다. 우우우. 전, 울면이에요. 우우우. < 남양유업 사태 > 에서 영업사원이 대리점 주인에게 행패를 부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甲이기 때문이 아니다. 완장을 찼기 때문이다. 완장은 갑질'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유사 아이언맨 갑옷 슈트'다. " iron man " 을 한자로 풀면 쇠 철/鐵에 얼굴 면/面'이니, 유사 갑옷인 완장을 차고 으스대는 놈은 철면피한 놈이라 할 수 있다. 甲과 乙 사이에 완장'이 존재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甲을 욕망하는 乙이거나 유사 甲이거나, 사이비 乙이다. < 완장 > 은 감투(갑옷) 아래 계급이다. 갑질보다 지저분한 짓이 바로 완장질'이다. 팔 완(浣)에 글 장(章)'을 풀어쓰면 문신(文身)이 된다. 浣=身 이고, 章=文'이다. 팔뚝에 그림 그리는 놈은 옛부터 깡패 새끼'라는 소리를 들었다.

 

- 완장은 문신(文身)이다 中

 

 


 

 

 

 

 

 

 

출생의 비밀,

을 듣고 통곡하다.

 

집에 누런 족보' 하나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궁금한 거라 ! " 이 서책은 무엇을 담은 질그릇이옵니까? " 라고 물으니, 아버지는 꽃씨와 바람'에 대한 이야기'라 하셨다. " 잘 새겨듣거라 ! 태초에 꽃이 있었나니, 꽃이 피어 바람이 불면 조금 먼 곳에 꽃씨'가 날아 또 다른 꽃이 피고 지고 피었나니, 너는 그 태초의 꽃에서 가장 멀리 날아, 가장 먼 곳에 핀 꽃이란다. 알겠느냐 ? " - 이런 식으로 대화가 오고갔을 리'는 없다. 족보가 있었기는 했으나 들보처럼 켜켜이 먼지만 쌓인 채 짐짝 속에 박혀 있었다. 아버지는 족보를 펼쳐서 읽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족보가 있다는 것은 조상이 양반'이라는 증거다, 라고만 말씀하셨다. 그때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시던 어머니가 한 말씀하셨다. " 똥구멍이 찢어져도 양반 타령이네. 하이고, 내가 이놈의 ●씨 집안에 시집와서 고생한 거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눈물이 ! 이것들아, 명심혀 ? 밥이 양반이여, 밥이 ! "   

 

어찌 되었든, 아버지는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후손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 썩어빠진 정치 이야기를 하실 때는 캄캄한 밤하늘에 떠 있는 인공위성'처럼 눈이 반짝거렸다. 충청도 출신인 아버지가 진보 진영쪽 인사들을 자주 언급하신 걸 보면 정치적 안목은 있으셨던 것 같다. 특히 아버지는 한시'를 좋아하셨다. 아버지의 필체가 한석봉은 아니더라도 아마츄어 중에서는 갑 중의 갑'이셨다. 아버지는 양반이 맞아 !  하지만 나는 국사 시간'에 충격적인 사건을 접한다. 국사 교사가 말했다. " 혹시 이 반에 ●씨 성 가진 사람 있나 ? " 내 성이 그 흔한 김이박'은 아니기에 나 혼자 손을 들었다. 선생은 방긋 웃으며 ●씨 성'의 유래에 대해 말했다. 선생이 하는 말이 맞다면 아버지가 말씀하신 태초의 꽃은 < ●다구 > 라는 사람이었다. 성'이 뼈 씨'였다면 뼈다구요, 깔 씨였다면 깔다구, 싸 씨였다면 싸다구'였을 뻔 !

 

그나마 ●씨였다는 것이 위안을 주었다.  그렇다면 ●다구'란 어떤 위인'이었을까 ? 선생이 풀어놓은 이야기 보따리는 차마 이 자리에서 다 풀 수가 없을 정도로 고약했다. 그에 대한 소사'를 적자면 그는 원래 고려인으로 몽골에 귀화한 인물로 원나라 장수가 되어서 고려시대 삼별초를 무자비하게 제압한 오랑캐 장군'이었다. 그는 고려 땅에 10년 넘게 주둔하면서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 권세가 하늘을 찔렀으리라. 성욕이 꽤나 발달해서 예쁘장한 처자가 있다 싶으면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욕심을 낸 모양이었다. 결국 나란 인간은 그가 뿌린 정념의 소산이었던 것이다.  사실 그는 고려에서는 위세가 등등했으나, 원나라 입장에서 보면 강북의 어두컴컴한 곳에 파견을 보낸 장수에 지나지 않았다. 고려인이 보기에는 ●다구는 아이언맨갑옷슈트'를 입은 인물이었지만 사실 원나라 천황이 준 것인 갑옷이 아니라 완장이었다. 

 

●다구'는 지방 파견 근무자'였다.  아이들이 박장대소했다. 한 달치 왕따 티켓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내 엉덩이에 선명한 몽고반점'은 내가 몽골의 후예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주홍글씨 A였다.  내 낯빛이 어두워지자 국사 선생은 나를 위로한답시고 대한민국에서 순수 혈통을 가진 성 씨는 별로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그것은 나를 위로하지 못했다. 선생은 내 눈치를 살살 살피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니들, 여름에 수박 먹제 ? 수박 맛있제 ? 그쟈 ? 그 수박 ●다구'가 최초로 들어온기라. 알고 먹으래이. 곰곰발이 덕분에 니들 이 여름에 수박 먹는기라. " 이 말은 나를 위로하기 위한 작은 술책이었으나 이미 화딱지가 나 있는 상태여서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가 ? 원 펀치 쓰리 강냉이 불광동 도깨비풀이 아니었던가 ? ●다구'라는 인물에 대한 뒷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만 보면 안 될 것을 보게 되었다.  ●다구 본관이 < ●● > 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본관도 < ●● > 이었다. 성도 같고 본관도 같은 것이다. 우우우, 출생의 비밀은 밝혀졌구나. 그래서 내가 대한민국에 대해 이토록 삐딱했구나. 어흥 ! 지금 생각해 보면, 국사 선생은 사이코 변태 새끼'였던 것 같다. 아마... SM 성향 중에서 S였을 것이다. 가끔 내 글에 등장하는 < 천●● > 도 그 선생 때문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다음은 선생이 한 말이다 :  " ( 출석부를 보며 ) 천●● ?! 천●● 누고 ?! 니가 ? 크크크크. 니 조상 누군지 아나 ? 천방지축이란 말 있제 ? 꼴통을 천방지축이라 하제 ? 여기서 천방지축은 천방지축마골피'에서 나은 기라. 승/姓이야, 승 ! 섹스 말고 사람 승. 옛날 천민들 성이란 말이다. 天씨는 무당, 方씨는 목수나 미장이, 地씨는 장의사, 丑씨는 소백정, 馬씨는 말백정, 骨씨는 뼈(고리)백정, 皮씨는 가죽백정(갓받치) "

 

이 말에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다. 두 달치 왕따 티켓'이었다. 특히 대한민국 성 씨의 50% 차지하는 < 김이박최정 > 은 도도하게 천●●룰 비웃었다. 시부랄 새끼들 ! 그 흔해빠진 성이 뭐가 그리 좋다고 ! 이 자리를 통해 고백하지만, 사실 그때에는 내 조상이 오랑캐 장군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이어서 그 친구에게 무당의 자손이라고 시간 날 때마다 놀렸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천●●'가 나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 닝기미 ! 나는 무당 자손이지만 네 조상은 오랑캐 시다바리나 했구나 ? ㅋㅋㅋㅋㅋ. 어차피 끼리끼리 노는 거다. 그러니깐 앞으로 나 놀리지 마라. 우리 친구 아이가 ! " 나는 친구의 말에 당나귀처럼 흐엉흐엉 울었다.  하지만 까르르르르 웃는 김,이,박,최,정 씨 또한 그렇게 신나게 웃을 처지는 못 된다. 사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자신의 성을 가진 사람은 전체 인구 중에서 30% 정도 밖에 안 되었다.

 

대부분은 성도 없고, 이름도 없었다. 저잣거리에서 개똥아, 라고 외치면 정확히 345,754,643명이 뒤를 돌아볼 정도였다. 꽃분이, 예쁜이, 간난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조선시대 양반 사회가 붕괴되면서 신분제도에 변화가 찾아왔다. 이름이 없던 사람들은 이름을 지어야 했다. 무당이나 백정 혹은 장의사였던 이들은 각자 직업에 따라 성을 지었다. 하지만 양반 집에서 노예로 살던 사람들은 딱히 직업이라고도 할 수가 없어서 주인의 성'을 그대로 따왔다. 그러니깐 김이박최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중 절반은 노예였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 아버지, 우리 조상은 ●다구 오랑캐 장군이었다면서요 ? " 아버지는 한시를 필사하시다가 멈추셨다. 낯빛이 어두워지셨다. 아차, 싶었다. 조상을 욕보인 탓이었을까 ? 아버지는 획 돌아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 그럴지도 ! " 방긋, 방긋, 방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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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2013-11-19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쥐뿔도 없는 것들이 양반타령 내가 낸데 완장타령이지요.
피부색만 다르지 '모건프리먼' 닮았던 아버지나
전형적인 남방계얼굴인 저를 보더라도 토박이는 아닙니다.
몽고반점은 흑인아이에게도 나타나는 걸로 봐서
족보는 신빙성을 잃었다고 받아들일 수 밖에요. ㅜㅜ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9 07:43   좋아요 0 | URL
오호, 혹인 아이에게도 몽고반점이 있군요. 흠흠....
혈통 따지는 인간들 보면
뭔가 좀 변태 같지 않습니까 ?
인간과 뱀이 교접한 것도 아니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나온 인간인데 뭔 놈의 피부색 운운....
하여튼 변태 새끼들 가틈..

Nina 2013-11-21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성씨에 대한건 잘 모르지만
지역색에 대해 한가지 확실히 느낀건 있어요. 충청도 사람들 유머감각 하나는 진짜 남다르다는거!
코미디언 중에 충청도 출신이 많이 보이는것도 괜히 그런게 아니겠죠.. 하다 못해 인간극장에 나오는 출연자를 봐도 충청도 분들 나오시는걸 보면 유난히 웃겨요 ㅎㅎㅎㅎ 저번 인간극장에 염소 키우시는 충청도 아저씨 나왔는데 웃겨 쓰러지는줄 알았다니까요.
페루애님 아버님 고향이 충청도라고 하셨나요. 페루애님이 그래서 유머감각 있으셨나..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1 18:39   좋아요 0 | URL
충청도 맞습니다. 코드가 참 기가 막혀요.
저도 충청도 노인들 하는 소리 들음 어찌나 우기드니...

능정과 능글이 아주 교묘하게 얽혀 있어요.
하여튼 충청도 시골 가서 한 달 정도 살면 재미있을거 가타요...ㅎㅎㅎㅎㅎ
 

 

 

 

 

 

심장이, 뛴다

 

- 이 이야기는 100% 실화'이다.

 

 

 

 

 

 

4월이 오면 늘 병원을 찾는다. 봄철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피부 발진에 의한 열꽃이 피어서 피부과를 찾았다. 더군다나 감기로 고생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의사는 피부 상태 대신 내 눈동자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내과 진찰이 필요하다며 빠른 시일 안에 검사를 받도록 조치를 취했다. 며칠 후 나는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다. ,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말들이 오고가겠지 ? 간암 말기입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십시오. 말랑말랑한 감성은 개나 주시구요. 일주일 후 진찰 결과를 받기 위해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의사가 말했다. ... 별다른 이상 소견은 보이지 않습니다. 간 수치 정상이고요, 당도 정상입니다. 혈압도 정상이군요. “ 의사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마자 말이 이어졌다. .. 정상인데 한 가지 조금 우려되는 상황이 있군요. ,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만....... “  의사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 심장이 뛰지 않아요. 혹시 독신이신가요 ?“ 

 

내가 네, 라고 답하자 의사는 부럽다는 듯 입을 오므리며 오, 라는 감탄사를 흘렸다. 오므린 입술이 마치 괄약근 같았다. 의사는 30대 중반으로 보였는데 이미 머리는 다 빠져서 문어처럼 반들반들했다. 갑자기 아랫배에서 묵직한 통증이 왔다.  “ 혹시 그동안 은행 대출 이자를 꼬박꼬박 내셨나요 ? 앞으로는 내지 마십시오. 무단 횡단을 하거나, 거리에 침을 뱉거나, 한밤중에 주차된 자동차 백미러를 발로 차서 부러뜨린 적 있으신가요 ? , 오해하지 마세요. 그건 아니고요. ,네네.. 없으시다고요. 그렇다면 오늘 밤 주차된 자동차 백미러를 발로 차도 됩니다. “ 농담도 잘하셔.  크크크크.  내가 웃자 의사도 지지 않으려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내가 하하 하고 웃으면, 그는 하하하하 하고 웃었다. 내가 다시 하하하하하하 하고 웃었더니 그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고 더 길게 웃었다. 나중에는 서로 섞여서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 그럼 저는 살아 있는 시체'네요. 크크.

- 자기 비하는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 사실... 일주일 동안 검진 결과 때문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의사선생님께서 이렇게 화기애애한 농담을 하셔서 긴장이 싹 풀렸어요.                                                

- ( 정색을 하며 ) 농담이라뇨 ?

- 네에 ?!

- 농담이라뇨. 선생님의 심장은 정말 뛰지 않습니다. 심 ! 장 ! 이 ! 뛰 ! 지 ! 않 ! 는 ! 다 ! 고 ! 요 !

- 뭐요 ? 아니... 의사라는 양반이 진료 환자 앞에 두고 쌍말을 하네. 이보슈, 심장이 멈췄는데

어떻게 이렇게 살아서 돌아다닙니까 !

 

나는 벌떡 일어났다. 뭐 이런 개 같은 ! , ......어어어어이 없어. 나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심장이 뛰지 않아?!  하하하. 집에 돌아와 뜨거운 방바닥에 등을 지지고 누워 오늘 낮에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곰곰 생각해 보았다. 심장이 멈추면  곧바로 죽는다는 것은 지나가는 개도 다 아는 사실 아닌가 ?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손바닥에 전해지지 않았다. 두꺼운 가을 후드를 입고 있어서 그러리라. 옷을 벗고 다시 손을 얹었다. 이러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그런데, 정말 심장이 뛰지 않는 것 같았다. 심장이 오른쪽으로 이사를 했나?!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 그지 깽깽이 같은 돌팔이 새끼 때문에 별 걱정을 다 하는군 ! 에이, 시부럴 !  그래 나 그냥 곰곰 생각하는 시체, ! "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청계천 의료 기구 상가를 찾아 < 청진기 > 를 구입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 그지 깽깽이 돌팔이이며 해삼 멍게 말미잘 문어 같은 의사가 못내 괘씸한 거라. 좋아, 내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당신을 허위 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손해 배상을 청구하리라.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을 두고 시체라고 비아냥거리다니 ! 몽돌처럼 생글생글 웃는 그 의사의 얼굴을 떠올리며 다짐에, 다짐에, 다짐을 했다. 두고 봅시다잉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상자를 뜯어 청진기를 왼쪽 심장 위치에 대 보았다. 그런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라 ?! 고장인가 ? 메이드 인 차이나 ? 차이나는 국산 제품과 비교하면 확실히 차이() . 불량품인가하지만... 청진기는 고장이 아니었다. 시험삼아 마당에 엎드려서 잠을 자고 있는 개에게 청진기를 대 보니 펄떡거리는 심장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그러나 내 심장은 뛰지 않았다. 그렇다, 내 심장은 의사가 시큰둥하게 말한 경고처럼 뛰지 않았다 !!!!

 

*

 

나는 그 의사를 다시 찾았다. 의사는 나를 보더니 방긋 웃으며 말했다. “ 올 줄 알았습니다. 심장이 뛰지 않는다고 말하면 대부분은 같은 반응을 보이고는 하죠위는 음식물을 분해하는 기능을 하죠. 폐는 숨을 쉬는 기능을 맡고 있습니다. 간은 독소를 분해합니다. 그렇다면 심장은 ? 섣불리 대답을 못하시는군요. 심장은 맹장처럼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장기랍니다. 맹장처럼 떼어낼 필요도 없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 포르노 여배우를 케스팅할 때 중요하게 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항문입니다. 항문이 예뻐야 하거든요. 국화 무늬'를 최고로 치죠. 그런데 사실 우리 같은 일반인에게는 항문이 보기 흉하든 예쁘든 어떻든, 항문이 어떻게 생겼나 전혀 궁금하지 않아요. 심장도 마찬가지죠. 속에 있으니 쓸모없다고 굳이 떼어낼 필요는 없습니다. 심장이 가장 중요한 장기라구요 ? 후후,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어요.

 

심장은 매우 게으른 장기죠. 평생 팅가팅가 놀다가 일 년 정도만 일을 하죠. 간이 부지런한 개미라면 심장은 놀고 먹는 베짱이입니다. 심장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때에만 두근 두근 움직이지요. 선생님은 최근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신 적 있으셨나요 ? 심장이 떨리고, 설레고, 기쁘고, 슬프고, 안아주고 싶은 누군가가 있었나요지금 사랑,   하는 사람 있습니까 ? “ 의사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모기가 내 검은 눈동자를 쏙 빼먹는, 그런 통증 같은 사랑을 한 적이 아득하구나. 멈춘 지 오래된 협궤열차였구나. 부끄러웠다. 눈물이 났다. 오래 전 헤어졌던 모서리 같던 여자가 생각났다. 그때 내 심장은 거칠게 뛰고 있었으리라. 눈물이 났다. 그가 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심장이 뛰고 있는 사람은 현재 전체 인구의 16.7%에 불과합니다. 거의 대부분 심장이 멈춘 상태죠. 사랑해서 결혼을 한 사람들의 심장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89% 정도는 뛰지 않아요. 사랑이 식었기 때문이죠.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외로운 건 당신만이 아니니까요. 심장 없이도 살아갈 수 있어요. 그러니 사랑 없이도 살아갈 수 있죠. 하지만 10월의 연어처럼 펄떡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리는 삶을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군요. 선생님 나이 때가 되면 단단한 심장보다는 딱딱한 페니스'에 신경을 쓰죠.  요즘 아이들은 우리 같은 세대'를 꼰대'라고 하더군요. 청춘과 꼰대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 청춘은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꼰대는 페니스가 남근남근거리죠. 아, 미안해요 ! 취미로 힙합을 하다보니 라임에 늘 신경을 쓰게 되는군요.  사람들은 착각을 해요. 사랑과 섹스에 대해 말입니다. 제 심장도 멈춘 지 꽤 오래 되었습니다.

 

외롭고, 쓸쓸했다. 심장이 사나운 야생 들짐승처럼 뛰던 옛날이 생각났다. 고운 여자였다. 착한 여자였다. 가난한 여자였다. 그 여자 생각만 하면 자주 심장이 아팠다. 남산을 오르는 길, 어느 모퉁이에서 나는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그 여자의 손을 잡았었다깡통 뚜껑을 열면 튀어나오는 삐에로 용수철 장난감처럼, 내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 자주 가슴을 쳤다.  하지만 이제는 다 옛일이 되었다. 그날 나는 의사가 농담삼아 던진 충고대로 주차된 자동차 백미러를 발로 차서 부러뜨리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대신 못으로 주차된 차의 문들을 모두 긁어주었지.......

 

*

 

나는 그 길로 서울을 떠나 강원도 고성에 터를 잡았다. 죽은 시체나 다름없는 나에게 속세에서의 출세와 부귀영화가 다 무엇이랴 ! 도시 속 좀비'로 사느니 차라리 자연 속에서 세월을 낚을 요량으로 선택한 길이었다. 직업도 구했다. 내 직업은 머구리였다. 취미로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취득했었는데 이 취미 활동이 요긴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우주복 같이 생긴 옛날 잠수복을 입고 물밑 바다에서 왕문어를 잡는 일이었다. 이 머구리는 일반 잠수복과는 달랐다. 착용하는 장비만 해서 50kg에 달했다. 3,40미터 해저에서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무거운 중량이 필요했다. 일반 잠수복은 산소통을 지고 잠영을 하지만 머구리는 우주복 같이 생긴 잠수복 안에 공기를 공급하는 공기 튜브가 따로 있었다. 이 공기 튜브를 책임지는 사람을 줄잡이라고 불렀는데, 줄잡이는 머구리가 물밑 작업을 할 때 배 위에서 머구리에게 공기를 주입하는 튜브가 꼬이지 않도록 관리를 하는 일을 했다 

 

나는 물밑 작업을 끝내면 입에 물던 똥줄을 머구리 옷 속에 넣었다. 그러면 옷은 풍선처럼 부풀어올랐고, 그 부력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곳 사람들은 산소 공급을 하는 튜브'를 똥줄이라고 불렀다. 무게만 50kg인 머구리 장비를 지고 바다 밑바닥에서 작업하는 일은 말 그대로 똥줄이 타는 일이었다. 몹시 힘 들고, 마음 졸이는 작업이었다. 스크루'에 튜브가 잘리기라도 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인생도 그닥 다르지 않으리라. 우리는 날마다 똥줄을 문다. 선주와 줄잡이 그리고 머구리는 그날 잡은 수확량을 서로 사이 좋게 나누었다. 선주가 4이고 줄잡이와 머구리가 각각 3를 챙겼다. 왕문어의 경우 20kg에 평균 40만 원 선에서 거래가 되어서 몇 마리만 잡아도 독신인 나는 며칠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운이 좋은 날은 하루에 왕문어를 다섯 마리나 잡고는 했다.

 

물론 잡히지 않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왕문어를 잡지 못했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나는 왕문어 사냥 틈틈이 전복이나 해삼 따위를 잡아 어망에 담아서 시장에 내다팔았고, 남은 것은 술안주로 먹었다. 줄잡이인 왕씨'는 함경북도 출신으로 탈북해서 이곳 고성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새터민이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줄잡이를 하지만 왕년에는 꽤 유명한 머구리'였다고 한다.  그는 술만 마셨다 하면 전설 속에 등장하는 괴어 목격담을 말하고는 했다. " 으마으마한 기야. 내래, 고렇게 큰 놈은 첨 봤지비. 백두산 크기라면 믿갔어 ? 안 믿갔지. 안 믿갔지. 나라도 안 믿지. 하지만 내래 진짜 봤지비. 이보우, 내래 진짜 봤다니깐 !! " 그럴 때마다 나는 빙글빙글 웃었다. 줄잡이 왕씨가 말하는 괴어'는 크라켄'인 것 같았다. 전설 속 괴어'다.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난파된 선원들이 간신히 섬에 도착했더니 그곳은 섬이 아니라 수면 위로 떠오른 크라켄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해양 모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녀석이 바로 크라켄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다 이야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닷속 생명체는 전체의 30%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심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명체가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고 있다.  줄잡이 왕씨가 본 것은 정말 크라켄이었을까 ? 

 

 

운명의 날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그날따라 물질하기가 힘들었지만 먹고살려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거대한 바위 동굴을 발견했다. 어두컴컴했다. 그때 동굴 속에서 대왕문어 다리가 꿈틀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리 굵기로 보아 족히 300kg은 되는 놈이었다. 어림잡아 계산하니 600만원의 몸값이 아닌가나는 작살로 다리를 냅다 찔렀다.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바위 동굴 속에서 갑자기 거대한 물체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것은 왕문어가 아니라 대왕오징어였다. 전설 속에서만 존재했던, 줄잡이 왕씨가 술만 마셨다 하면 흥분해서 말하던 바로 그 크라켄'이었다. 너무나 커서 전체를 볼 수도 없었다. 내 앞에 그놈이 있는 것이다. 잔뜩 화가 난 크라켄의 촉수가 내 몸을 감쌌다.  내 몸을 휘감은  촉수는 너무 강력해서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내 몸은 발판에 감겨서 바닷속 깊숙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한편 튜브를 관리하던 줄잡이도 이상 증후를 발견했다. 줄 패에 감긴 공기 튜브가 빠른 속도로 물 속으로 빠지자 줄잡이 왕씨가 성급하게 줄을 잡아당겼지만 거대한 크라켄을 이길 수는 없었다. 줄은 이내 끊어졌다. 왕씨'는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얼굴은 창백했다. 물 속에서 줄을 이렇게 빨리 끌어당길 수 있는 놈은 크라켄 밖에 없었다. 지금 바닷속에 그놈이 있는 것이다 ! 선주가 급히 뛰어왔다. " 무슨 일인겨 !!!! " 왕씨는 넉이 나간 사람처럼 촛점 없이 바닷속만 쳐다보았다. " 무슨 일인겨 !!!! " 선주가 다급하게 묻자 왕씨가 말했다. " 그, 그그그그놈이다..... " 선주가 물밑을 보자 거대한 검은 물빛이 출렁거렸다. 평상시 물빛이 아니었다.

 

*

 

줄이 끊어졌다는 사실은 내 생명줄이 끊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빠른 속도로 동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수압이 점점 높아졌다. 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내 몸은 수압에 의해 귀와 코 그리고 입에서 쉴 새 없이 검은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의 색이 검다는 사실은 산소가 거의 없다는 것을 뜻했다. 피의 주성분인 헤모글로빈은 산소와 결합하면 빨간색이 되는데 반대로 산소가 없으면 검은색이 된다. 정맥혈이 검실검실한 이유는 바로 산소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극한의 고통과 두려움이 다가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심해 속에서 나는 혼자였다. 외로웠다. 그때였다, 그때였다, 그때였다 !  캄캄한 바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환해졌다.

 

 환영이 보였다. 산소 결핍으로 죽어가는 잠수부들에게 종종 보이는 환영이었다. 수압과 무호흡에 따른 뇌의 산소 공급이 차단되면 뇌는 종종 이상 반응을 보이고는 했다. 내 앞에는 화창한 봄날 내가 사랑하던 모서리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웃었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 둥근 어깨, 엷은 입술, 웃을 때 쓸쓸하게 그늘이 지던 눈가의 주름. 그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가 나에게로 다가와서 내 뺨을 어루만졌다. 그리고는 손으로 위를 가리켰다. 심해 속에서 바라본 수면은 아름다웠다. 에메랄드 빛 수면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나는 여자를 향해 사랑해 라고 속으로 말했다. 그때 어디선가 북 소리가 들렸다. 낯익은 소리였다. 그것은 내 심장 소리였다. 멈췄던 심장이 뛰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그 여자를 사랑했었다.

 

, 옛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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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 2013-11-16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옛일이 되었다.
..


아 토욜아침부터 찌질하게 ㅠ
시야가 흐릿흐릿

술이 덜깨서" 그런거라 자위하며
왼쪽 가슴에 슬며시 손을 대어 봅니다.

언제고 다시 뛰거든
씨근펄떡"이게 뛰지 말고
바운스바운스 콩콩"
한결같이 조심스럽고 끈기있기 뛰기를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6 11:04   좋아요 0 | URL
머구리에 대한 다큐를 걸었으니 함께 봅시다..

하늘바람 2013-11-17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모 단편소설이네요 재미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7 13:31   좋아요 0 | URL
재미있나요 ? 나름 야심작입니다...

히히 2013-11-18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개구쟁이였던 여고시절에 지리산 골짝에서 캠핑하며 머구리 아니 머저리짓을 하다가
저를 포함한 과년한 처녀들을 물귀신으로 만들 뻔 했죠.
그때 그니까 죽음의 문 앞에서
캄캄한 물속이 환해지는 신비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고 죽음이 자연스럽게 찾아왔을 때
재차 그러한 체험을 한다면 두려움에 떨며 목숨을 마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9 07:46   좋아요 0 | URL
호오.... 그런 경험이 있으셨군요. 저는 오토바이 타다가 떨어져서 논두렁에 박힌 적 이는데
그때 붕 떠 있던 그 짧은 시간이 1시간 정도 되는 것 같더군요.
다 보였어요. 세세한 것 모두가 .. 돌맹이 숫자도 셀 수 있을 정도 여습니다.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엽편소설 no.6

 

 

 

 

 

 

 

문화촌 공원 그림자 사교 클럽.

 

 

 

 

 

바닥에서 뒹군 모양이었다. 헛구역질이 나서 눈을 뜨니 공원이었다. 내 인생이 그렇지, . 나는 벚꽃나무 아래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여 ! 나를 부랑자라고 판단하지 마시길.  술에 취해서 정신을 잃은 것뿐이니깐 말이다.  가만히 누워서 눈을 뜬 채 보니 내 옆에는 벚꽃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가끔 바닥에 눕는데 너는 항상 바닥에 눕는구나 !그 생각을 하니 그림자가 안쓰러웠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보니 그림자가 2차원 평면이 아닌 3차원 입체감으로 보였다. 어라 ?! 그림자에 높이가 있는 것이었다. 아이고, 술에 너무 취해서 헛것이 보이는 것이다. 머리가 빙글빙글 도니 풍경도 빙글빙글 돌았다. 오래 전에 헤어진 여자친구 생각이 났다. 그림자를 껴안아 보았다. 그림자였지만 왠지 포근했다. 나는 외로웠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는 귀신인 모양이었다. 귀신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외롭지는 않을 터였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이 밝은 후였다. 머리가 지끈 아팠다.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 그림자. 그래, 그림자 !해가 뜨자 그림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며칠 후 다시 그곳을 찾았다. 벚꽃나무 그림자는 그곳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림자를 자세히 보니 진짜 그림자가 아니었다. 내 예감이 맞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으로 세팅을 하고, 얼굴과 손도 검은 색으로 분칠한 여자였다. 그것은 일종의 위장이었다. 그림자로 위장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맙소사, 세상에 이런 일이 ! 만날 누워 있는 것을 보면 직장 생활이 힘든 모양이었다. 나는 가자미처럼 바닥에 납작하게 누운 그림자를 깨웠다. 그림자가 일어났다. 검게 칠한 얼굴의 윤곽은 희미했으나 여자임에는 분명했다. 내가 말했다.

 

직장 생활이 힘든가 봐요 ?“

네에, 전 아이들을 가르쳐요. 교사에요 !“

그렇군요. 그런데 왜 집도 없이 공원에서 노숙 생활을 하시죠 ?“

재작년에 안양천변이 장마 때 물에 잠겨서 떠내려갔어요.

그래서 이렇게 그림자 생활을 한답니다. “

... 집이 떠내려갔다는 말씀이죠 ?“

아뇨. 안양천변이 떠내려갔어요 !“

어떻게 하천이 떠내려갑니까 ?“

그야 저도 모르죠. 하여튼 하천이 떠내려갔으니 집도 같이 떠내려갔겠죠.“

그러니깐 집이 떠내려갔다는 말씀이잖아요. “

아니죠. 하전이 떠내려갔다니까요. 호호호. “

하하하. “

호호호. “

그림자로 살아가는 분들이 많은가요 ?“

저기, 그네 옆에 있는 갈참나무 그림자 보이시죠 ? 저 분은 기러기 아빠에요. 대기업에 다니지만 애들 유학비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죠. 등골이 휘어서 집도 팔아버리고 저렇게 그림자 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

 

그네 옆에서 그림자 흉내를 내며 납작 엎드려 있던 남자가 우리의 대화 소리를 들었는지 벌떡 일어나 겸연쩍은 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깜짝 놀랐다. 그림자가 부스스 움직이며 일어났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나 ! 나는 그 동안 그림자인 척하는 사람들에게 깜빡 속은 것이다. 여자는 계속 말했다. “ 저기 가로수 그늘 흉내를 내는 사람이 누군지 아시나요 ? 바로...... 가수 이문세에요. 회사 하나 차렸는데 망했다고 하더군요. , 이건 절대 비밀이에요. 연애인이잖아요. 자존심이 무척 세요.  여자의 손짓을 따라가니 가로수 그림자가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의 대화를 엿들은 모양이었다. 그는 격하게 울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 저도 이 공원에서 그림자로 살 수 있나요 ?“ 여자는 내 말을 듣고는 나를 또렷이 바라보았다.

 

이때 쓰레기통 그림자를 흉내 내던 남자가 기지개를 켜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 아따, 시부럴. 알콩달콩별사탕 놀이 하오 ? 아직도...... 모르것소 ? , 여긴 아무나 들어온다요 ? 그림자에게도 자격이란 거시 있는 거시지라. 생각 안 나요 ? 아저씬 작년 저 아카시아 나무에 목을 매 자살을 했단 말이오. 경찰차 와불고, 119 와불고, 그날따라 바람도 불고, 난리도 아니었지라. 으메, 으찌나무섭던지 ! 여태 자신이 죽은 귀신이란 것도 모르셨소, ? 형씨, 저길 보시오 !“ 나는 쓰레기통 그림자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다. 아카시아 나무엔 그림자가 없었다.

 

우리에게도 불문율이란 것이 있지라. 사령의 혼이 깃든 나무엔 그림자 집을 안 짓는다요. 으메, 저곳이 명당이었지, 명당 ! 형씨가 목 매 죽기 전에 내가 살던 곳 아니오. 참말로 징허요. 형씨 땀시 내가 이로코롬쫓겨나서 쓰레기통 연기나 하는 거 아니것소. 내가 왕년에 명품 사극 전문 배우 아니었소. 엑스트라 세계에서 나 모르면 간첩이지라. “ 쓰레기통 그림자의 말에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벚꽃이 그만하라고 쓰레기통에게 손짓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 귀신 주제에 뭔노무 스카프로 멋을 낸다요. 멋 내면 뭐 허요, 치맹적 매력의 소유자면 뭐 허요. 투명인간 같은 우리들 눈에나 보이지, 일반 사람 눈에는 보이기나 허것소 ? 당신 같은 귀신이나 우리 같은 그림자는 이 사회의 투명인간이오. 잉여인간일 말이오 ! 내가 당신같은 귀신이면 불알 두 쪽 당당히 내불고 돌아다녀 !“

 

쓰레기통 그림자가 툴툴거리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네모난 금속 쓰레기통이 놓인 자리에 가더니 몸을 둥글게 말아 그림자가 되었다. 다른 그림자에 비해 힘들어보였다. 하루 종일 몸을 말아 그림자가 되어야 하다니. 그가 내게 보인 적개심이 이해가 갔다. 아카시아 나무 그림자로 살았으면 지금보다는 편한 삶이었으리라. 아카시아 나무를 바라보았다. 어렴풋이 그날이 생각날 것도 같았다. 바람 불면 흔들렸을 내 몸을 생각하니 울음이 쏟아졌다. 여자가 나를 위로했다. “그래요. 당신은 오래 전에 죽었답니다.  하지만 슬퍼 마세요. , 내 몸 안으로 들어오세요. “ 여자가 내 옷을 벗겼다. 나는 금새 알몸이 되었다. 이때 몇몇 사람이 공원을 지나갔으나 소리를 지르거나 도망치지는 않았다. 다만 걸음이 빨라진 것 같았다. 그렇구나, 유령이구나. 나는... 보이지 않는 유령이구나.

 

나는 여자의 검은 구멍 속으로 숨었다. 촉촉하고, 따스하며, 부드러웠다. 젖가슴 또한 생각보다 컸다. 젖가슴만 큰 것이 아니었다. 여자는 전체적으로 몸이 컸다. 나는 바닥에 누웠고 여자가 나를 덮었다. 벚꽃 그림자가 뚱뚱해졌다. 쓰레기통 그림자가 우리의 정사를 훔쳐보더니 한 마디 했다. “으메, 씨브럴 !치맹적 매력의 소유자는 죽어서도 인기가  하늘을찌른당가. 좋아서 좋것네. 좋아서 좋것어.음메좋것어. 시브럴, 오지게 허네. “ 쓰레기통 그림자는 또 다시 툴툴거렸다. 하지만 나는 너그러웠다. 이미 죽은 귀신이었으므로 !살아 있는 사람에게 못된 귀신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공원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벚꽃나무 그림자가 뚱뚱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느 누가 그림자에게 관심을 보일까, 어느 누가 밑바닥을 이해할까. 그때였다. 엄마와 함께 지나가던 사내아이가 벚꽃나무 그림자를 보더니 말했다. “ 엄마, 저 나무 그림자가 다른 날보다 뚱뚱해졌어! 저 나무도 엄마 아빠처럼 밤에 레슬링 했나봐 ?엄마는 밤에 옷 홀딱 벗고 아빠랑 레슬링 하면 뚱뚱해지잖아. 아기 나왔잖아. 저 나무도 레슬링 했나 ?“ 엄마는 아들의 따귀를 때리며 황급히 그 자리를 피했다.

 

*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벚꽃나무 그림자는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위장을 지우고 화장을 하니 여자는 제법 예뻤다. 내가 옷을 입으려고 하자 쓰레기통이 소리쳤다. “ 아따, 시부럴 ! 유령이 뭔 놈의 패션이오. 훌라당 벗고 사시오 !“ 그 말에 여자도 동조했다. “ 그래요, 당신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벌거벗는 자유는 죽은 자의 특권이에요. 저도 유령이 되면 이 놈의 브래지어벗고 다니고 싶어요. 얼마나 불편한지 아세요 ? 더 자요. 아무도 당신의 달콤한 잠을 깨울 사람은 없으니깐. “ 여자가 내 입에 키스를 했다. 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깨웠다. 눈을 뜨니, 나를 깨운 사람은 경찰이었다. 경찰 옆엔 중년의 여자가 있었다. 내가 발딱 일어서자 여자는 연신 어, 어머 어머머머머 라며 고개를 외면했다. 내가 보이나 ?! 그럴 리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유령이므로 !투명인간이므로 ! 경찰이 나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 주민 신고를 받고 나왔습니다. 다 큰 어른이 이게 뭡니까 ? 어서 옷을 입으세요 ! 당신을 공공장소 음란죄로 긴급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

 

을 정도의 중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오.  어서 옷이나 입으시구려. “   경찰 옆에 있던 여자는 외면하는 척하면서 계속 나의 남근을 쳐다보았다. 소나무 훈제로 노릇노릇 구운 독일 소시지가 생각나리라. 크고, 쫀득쫀득하며, 알싸한 그런 맛. 먹고 싶겠지. , 쳐다보라지 ! 난 유령이라고. 내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난 유령이야. 내가 보이기는 하나 ?“  내 말에 경찰이 짜증난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이 양반이 제정신이 아니구만 !  당신이 유령이면 난 브르스윌리스요!!!! “  이때 화장실 옆에 놓인 쓰레기통 그림자가 마구 흔들렸다. 쓰레기통은 웃음을 참느라 엎드린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 아차차. 그림자들이 날 골탕 먹였구나. 쓰레기 같은 자식과 벚꽃(벗고) 나를 품은 여자의 합작품이구나.  이문세도 웃음을 참느라 미세하게 그림자가 떨렸다.얼굴이 화끈거렸다.

 

두 손으로 그곳을 가렸지만 어디 포크로 소시지를 가릴 수가 있던가 ? 부끄러워서 동동거렸다. 속았구나 ! 내가 동동거릴수록 쓰레기통은 거의 웃음을 통제할 수 없게 된 모양이었다. 울음 섞인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웃음도 지나치면 고통이 된다. 안다, 다 안다. 나도 웃음이 나왔다. 난 유령이 아니었다. 멋지게 속았다 ! 나는 경범죄로 벌금 10만 원을 내고 풀려났다. 그날 밤 벚꽃나무 그림자는 내 사연을 듣고는 깔깔거리며 박장대소 했다. 멀리서 쓰레기통이 웃는 소리도 들렸다. 전라도 특유의 사투리가 깊게 벤 웃음소리였다. 징허게 웃었다. 그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갈참나무도 웃었다. 가로수도 웃었고, 벤치도 웃었다. 문화촌 공원 간판 입석도 웃었다. 그리고 벚꽃도 신나게 웃었다.

 

정말 유쾌한 여자였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공원 그림자들과 친해졌다. 쓰레기통과도 친해졌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명품 쓰레기통 그림자 연기를 칭찬했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 연기에 혼신을 다했다. 그는 서울시 소유 금속 쓰레기통보다도 더 네모 반듯한 그림자를 연기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로수 이문세 씨와도 친해졌다. 술에 취하면 기분이 좋아진 이문세는 노래를 부르고는 했다. “ 가로수 그늘 아래에 서면 / ...... /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 가을 창가에 기대어 보네 / 이렇게도 아름다웠던...... /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여인 / , 우우우우우.......“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아카시아 나무 그림자가 되었다. 달의 위치에 따라서 방향을 정한 후 눕기만 하면 되었다. 왜냐하면 그림자의 위치는 광원에 따라서 달라지니깐 말이다. 내 마음대로 방향을 정할 수는 없었다. <일정한 방향으로 누웁시다 !>문화촌 공원 그림자 클럽의 유일한 원칙이었다. 그렇다고 모두 다 같은 방향으로 눕는 것은 아니었다. 은행나무 그림자는 예외였다. 우리가 모두 동남쪽으로 누울 때 은행나무 그림자는 가끔 동남쪽으로 누웠다. 은행나무 그림자는 대부분 북서쪽으로 누웠다. 과학자의 눈으로 보자면 그것은 해괴한 일이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광원에 따라 그림자는 일정한 방향으로 지는 것이아닌가 ! 하지만 이 해괴한 일에 대하여 의심을 품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 남은, 그림자가 되지 않은, 투명인간이 되지 않은, 바닥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림자가 된 자에 대하여, 투명인간이 된 자에 대하여, 바닥이 된 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무도 그림자와 바닥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 빌어먹을..... 이런 신파는 개나 줍시다. 다시 명랑으로 돌아옵시다. 은행나무 그림자를 연기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개였다. 검은 리트리버였다. 온몸이 검은 색이라 달리 분장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눕기만 하면 되었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개였다. 언제부터인가 공원을 떠돌던 개는 그림자가 되었다. 개는 낮에도 공원에 남아서 북서쪽을 바라보고는 했다. 바람이 불면 코를 씰룩거렸다. 옛집 생각이 간절한 모양이었다나는 벚꽃나무와 결혼하였다. 그림자끼리 결혼한 세계 최초의 커플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쓰레기통은 여전히 말이 많았고, 가수 이문세가 연기하는 가로수 그림자는 여전히 우울해 했다. 그리고 기러기 아빠인 갈참나무도 변함없이 가족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직장 일을 끝내면 바로 문화촌 공원으로 왔다. 그는 제일 먼저 화장실에 가서 양복을 벗고는 검은 타이즈로 갈아입는다.

 

그의 몸은 온통 상처투성였다. 내 시선을 의식한 듯 그가 말했다. “ 바닥엔 별별 것이 다 있습니다. 별 빼고는 다 있지요. 둥근 돌, 모난 돌, 작은 돌, 큰 돌...... 그중에서 항상 모난 돌이 이렇게 몸에 박힙디다. 자식은 모난 돌입니다. 그게 아버지의 운명 같습니다. 내가 공원 모퉁이 갈참나무 그림자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가족들은 알고 있을까요 ? 모르죠.  알아서도 안 됩니다. " 그는 검은 구두약으로 자신의 얼굴을 칠했다. 그는 분장을 마치고는 갈참나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피곤한 모양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었다. 모난 돌에 상처 입지 말라고 힘차게 바닥을 쓸었다. 쓰레기통 그림자가 시큰둥하게 바라보았다. 아따, 징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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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쉬쁘만젤쉬땀 2013-11-02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이런 글을 좀 더 많이 써달라는 거~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2 15:25   좋아요 0 | URL
알겠습니다. 선생님 !

별다 2013-11-02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https://www.facebook.com/type4graphic

이 사람은 최근에 sns 시인이라고.. 하이쿠같은 시를 sns에 올린 것이 공감을 많이 얻어서 책도 낸 사람인데요. 페루애 님의 언어유희를 보면 이 사람에 전혀 못 미치지 않는 것 같아요. ㅎㅎ 전통 출판 시장도 좋지만 이런 쪽으로 진출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3 19:51   좋아요 0 | URL
결정적으로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하지 않습니다.. ㅎㅎㅎㅎㅎ.
링크 걸어둔 이'는 꽤 자주 보게 되네요. 유명인이기는 한가 봅니다. 허허..

엄동 2013-11-04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좋아횽!!

투 떰즈 업!! d●b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4 15:14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까 ? 캄사 ~
 

엽편소설 no.5

 

 

 

 

 

 

 

특별요리'를 위한 특별요리  

 

  

그곳은 심야식당'이었다. 외대에 위치한 자그마한 가게'였다. 그곳에서는 새벽 시간에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간단한 음식과 술을 팔았다. 우리가 이곳을 자주 찾은 이유는 오코노미야키 때문이었다. 애인은 이 요리'를 좋아했다. 한번 맛을 본 사람은 이 맛을 잊지 못했다. 우리는 맥주와 오코노미야키를 시켜놓고는 새벽 늦게까지 이야기를 했다.  자주 오다보니 주인'과도 친해졌다. 그는 키가 크고 과묵한 사내'였다. 자전거로 세계 여행'을 떠나는 꿈을 가진 남자'였다. 내가 심야식당'을 다시 찾은 것은 2년이 지난 12월 깊은 밤이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키가 크고 과묵한 사내는 여전히 그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그가 나를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빙그레 웃길래 답례로 방그레 웃어주었다. 그는 작년에 자전거로 일본을 횡단했다고 짧게 말했다. 나는  맥주 한 잔 마시고는 말없이 나왔다. (물론 술값은 계산 했다.) 

 

나는 그 이후로도 술에 취하면 습관처럼 혼자서 그 심야식당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특별 요리'를 준비할 터이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단골 손님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특별히 내놓은 음식이니 부담 갖지 말고 맛있게 먹으라고 했다. 음식값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요리가 나오기 전에 사내는 내게 따스한 정종을 내놓았다. " 찬바람이 불면 사케만큼 좋은 술도 없죠. " 나는 중탕으로 따듯하게 데워진 술병에 차갑게 언 손을 녹였다. 그가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망설이듯 내게 말을 했다. " 두 분의 방문이 뜸해지다가 한동안 오지를 않더군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 따로따로 오기 시작했습니다. 각자 다른 일행들과 이곳을 찾거나 아니면 손님처럼 혼자 오고는 했죠. 그때 알았습니다. 두 분이 헤어졌다는 사실 ! 제가 보기엔 두 분 다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손님처럼 그 여성분도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습니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그리고는 말없이 자리를 떠나고는 했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두 사람은 아직도 서로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구나.  두 분 모두 오코노미야키'를 핑계로 다시 이곳에서 우연히 만나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운명이란 참으로 오묘하더군요. 소율 씨'가 오던 날에는 윤아 씨'는 오지 않고, 반대로 윤아 씨가 오던 날에 소율 씨'는 오지 않았습니다. 항상 엇갈린 것이지요. 저는 그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한 달 전 윤아 씨'가 이곳을 찾아왔어요. 그리고는 내게 부탁을 했죠. 소율 씨가 이곳에 오거든 특별요리를 부탁한다고 말이죠. 그를 잊지 못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주 찾아왔으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는 더이상 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제가 그녀의 결혼식이었습니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딸그랑 ! 그때 술에 취한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주인'은 영업이 끝났다며 손님에게 양해를 구했다. 가게 안이 조용해지자 그가 다시 말했다. " 오늘 소율 씨가 이곳을 찾아와서 반가웠습니다.  오늘 이곳을 방문하는 마지막 날이 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소율 씨'가 이곳을 잊지 않고 찾은 이유는 윤아 씨를 잊지 못한 까닭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잊어야죠. 제가 소율 씨에게 내놓은 술은 취생몽사'란 술입니다. 마시면 기억이 사라지는 술이죠. 그리고 오늘 제가 선보일 특별요리는..... "  그가 선보인 음식은 도미 요리'였다. 고소하고 쫄깃했다. 씹을 때마다 짭조름한 맛과 함께 허브 향이 났다. 급히 마신 술 탓이었을까 ? 아니면 깊은 슬픔 탓이었을까 ?

 

*

  

얼마나 잤을까 ? 내가 눈을 떴을 때 심야식당은 불이 꺼진 채 아무도 없었다. 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주방 쪽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방 쪽으로 시선을 돌려서 살펴보니 그는 마침 요리를 하기 위한 준비'에 바빴다. 커다란 솥에 물을 끓이고 있었다. 물 속엔 육수를 내기 위한 식재료가 한가득이었다. 그는 내가 뒤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 이놈의 인간들은 뭘 처먹었는지 뼈가 단단해. 토막을 내다가는 이내 칼이 무디어지고는 하지. 그래도 어쩔 수 있나. 우리 같은 외계인에게는 지구인이 최고지. 잘 처먹어서 쫀득쫀득해. 지구인은 통통해서 마블링이 최고지. 일 년 간 이 특별요리를 위해 저 녀석에게 최고급 사료를 먹인 보람이 있었어. 최고의 마블링이야. 그동안 네 놈에게 먹인 특별요리는 사실 오늘의 특별요리를 위한 특별요리인게지. 허허허. 아, 침이 고인다. 침이 ! 오늘의 특별요리에 침이 고인다. 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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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11-03 0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이 엽편이 참 좋군요.
헌데 곰발님 외대 쪽에 자주 오시나요? 예전에 모임도 여기서 주로 있었던 듯한데..
저도 인연이 많은 곳. 지금 사는 곳에서도 버스 몇 정류장이면 금방일 정도로 가깝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3 19:50   좋아요 0 | URL
가끔 갑니다.. 후후, 그 근처 사시는 군요. 아는 사람들이 그곳에 몇몇 있어서
가끔 놀러가고는 합니다.

엄동 2013-11-0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명의 만화를 떠올리며
목 아래까지 솜이불을 끌어올려 덮은 듯
편안한 마음으로 시이 작.

오 역시 반전이
짧지만 강한 임패엑 트.

이래서 술마시고
아무데서나 엎어지면 안된다니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4 15:16   좋아요 0 | URL
죽다 살아났어요. 앞으로는 술 먹고 잠자는 버릇은 반드시 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원래 술에 취하면 정신이 말똥말똥한 스타일인데
요즘은꾸벅꾸벅 조네요....


티비도 아닌 피비 2013-11-05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라딘 블로그는 너무 하얘요.
저는 알록달록 장미 스킨이 좋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1-06 02:51   좋아요 0 | URL
아이고.. 티비도 아닌 피비 님...........
내 늦둥이 막내 같은 피비 님............
사실 저도 너무 하얗고 창백해서 고민 중입니다.
썬텐을 좀 해야 할 듯합니다
 

 

엽편소설 no.4

 

 

 

 

세상의 모든 무게'를 재는 방법.

 

 

 

나는 그동안 < 무게를 잴 수 없는 것'에 대한 무게 > 를 재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 슬픔 >, < 한숨 >, < 절망 > 따위'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저울이 필요했고  각고의 노력 끝에 특별한 저울'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나는 저울 설계도가 도난당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찢어버렸다. 이로써 내가 만든 특별한 저울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저울이 되었다. 내가 이 저울을 사용해서 첫 번째로 잰 것은 종이에다 낙서를 하는 데 소요된 < 연필심 > 의 무게였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다음과 같다.  ① 종이의 무게를 잰다.  / ② 종이 위에 연필로 낙서를 한다. / ③ 문장이 쓰여진 종이'를 다시 측정한다. /  ④ 3 에서 1 의 무게'를 뺀 나머지'가 낙서를 하는 데 사용된 연필심의 무게'이다. 그리고 < 한숨 > 처럼 손에 잡을 수 없는 비물질'에 대한 무게도 이 특별한 저울이라면 가능했다. 우선 ① 바람 빠진 풍선'을 저울에 단다. ② 그리고 삶에 지친 사람에게 풍선을 불게 한 후 그 무게'를 다시 단다.

 

② 에서 ① 를 뺀 차'가 바로 한숨의 무게'이다. 그 무렵,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게'에 대한 호기심에 충만했었고 이 세상에서 무게를 잴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확신에 차 있었다. 심지어는 < 영혼 > 의 무게'도 측정했으며, < 유령 > 의 무게'를 재는 데에도 성공했다. 대체로 유령은 평범한 영혼보다 무게가 많이 나갔는데 가장 무거웠던 유령'은 굶어서 죽은 귀신'이었다. 그 유령의 무게는 사막 코끼리 150마리를 합친 무게'와 같았다. 이름은 미스 벨벳 리사' 였다. 그녀는 19세기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으로 2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굶어서 죽었다고 했다.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는 감자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었다. 나는 벨벳 리사 양을 설득한 후 씻김굿을 벌려서 무거운 영혼을 위로했다. 굿이 끝나자 그녀는 평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 벨벳 리사 !  그녀에게서 제라늄 향이 났다. 나는 서재로 돌아와 내 주위를 감싸고 있는 사물들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들, 세상의 모든 것들,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과 만질 수 없는 모든 것에게는 고유한 무게'가 존재했다. 존재는 무게'다 !  " 그래, 하품은 3그램, 빗은 900 그램, 백열 전구의 끊어진 필라멘트 선은 1그램......  "  나는 사전에 나오는 단어 순서대로 무게를 재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생전에 이룩해야 할 거대한 도전이요, 과제였다. 나는 < 낱말 무게 사전 > 을 집필하는 데 모든 것을 걸었다.  모든 진행 과정이 순조로울 수만은 없었다. 가장 애를 먹었던 낱말은 "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의 더듬이 한 쪽 " 이었다. 채집 과정도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에게서 더듬이 한 쪽을 뽑는 작업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어느새 나는 국어사전 맨 마지막에 기록된 < 힘 >이란 단어'를 끝으로 길고 긴 여정을 끝낼 수 있었다.

 

 아, 이로써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재는 데 성공했구나 ! 내가 무게를 측정하지 않은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바벨탑을 짓다고 무너졌다면, 나는 잴 수 없는 무게를 재서 금자탑을 이뤘구나 ! "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 세상에 하나뿐인 저울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그만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저울 자체의 무게'를 측정하지 않은 것이다. 정작 무게를 재는 저울의 무게'는 재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이 저울을 어떻게 잰다는 말인가 ? < 저울 > 은 모든 것을 잴 수는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한 무게'를 잴 수는 없었다. 나는 이 역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 이후 나는 세상 모든 것의 무게를 재려는 욕망이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부질없는 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 나는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웠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 숨을 쉴 때마다 내 입에서 감자 썩는 냄새'가 났다. " 닝기미, 생각해 보니..... 감자 썩는 냄새'의 무게도 재지 않았군. 맙소사 ! 세상의 모든 무게를 쟀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잰 무게는 티끌'보다 작은 것이었어. 에라이.... " 나는 힘없이 웃었다. 그때 폴 오스터'가 내 침실을 방문했다. 그는 헝크러진 머리에 몰골이 형편없었지만 눈빛만큼은 매섭게 빛났다. 헤비스모커'였던 그는 내 침대 곁에 의자를 끌고와 앉자마자 연신 담배 연기'를 내품으며 내 건강이 회복되기를 기원했다. 나는 웃으면서 폴에게 말했다. " 야, 시방새야 ! 여긴 금연이라네.. 허허허 " 그는 현재 영화 시나리오 한 편을 쓰고 있는 중이었는데 줄거리가 성겨서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웨인 왕'이라는 감독과 함께 < 스모크 > 라는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한다고 했다. 하지만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내 침실은 폴 오스터가 내품은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속이 타들어가는 모양이었다. 내가 폴 오스터에게 말했다. " 자네, 담배 연기의 무게를 재는 방법을 아나 ? " 폴 오스터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내가 말했다. " 담배 연기의 무게를 재는 것은 영혼의 무게를 재는 것과도 같아. 먼저 피우지 않은 담배의 무게를 저울에 잰다네. 그리고는 그 담배를 피우면서 저울에 재를 털고 다 피운 꽁초도 올려놓은 뒤 다시 무게를 재는 거야. 처음 무게와의 차이가 바로 연기의 무게라네.한때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게'를 달고 싶었다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어. ”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내 몸에서 제라륨 향이 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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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10-30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무게를 잴 수 없는 저울 ; 러셀의 역설이군요. - 역시 수학과 친하신 곰곰발님이십니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6650239

곰곰생각하는발 2013-10-30 16:49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수학과는 정말 친하지 않는 놈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반전이 숨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2013-10-30 16: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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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0 16: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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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1 09: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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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1 0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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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1 13: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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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1 15: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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