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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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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 베니스의 상인 > 을 읽으면 울화통이 터진다 !

 

 

셰익스피어의 < 베니스의 상인 > 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읽은 적이 없어도 읽은 것과 다름이 없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판결은 3개가 존재한다. 첫째가 솔로몬의 판결이다, 둘째는 예수의 판결이다. 그는 창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죄 없는 자만이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 아마...이명박 각하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제일 먼저 창녀에게 돌을 던졌을 것이 분명하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이니 말이다.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각하가 예수와 동시대적 인간이었다면 예수의 위대한 판결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섹스피어의 희곡 < 베니스의 상인 > 에 나오는 남장여인의 “ 1파운드의 살과 한 방울의 피 판결이다. 남장여인의 주장은 이렇다 :“ 계약서에는 1파운드의 살을 도려낸다고 했으니 살만 가져 가세요. , 채무자의피를 흘려서는 안 됩니다. 살만 도려낸다고 계약서에 적혀 있을 뿐 피를 흘린다는 소리는 그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죠. 흠흠. “섹스피어는 이 장면을 연극의 절정 부분에 배치한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온다. 승기를 잡았다는 말.

 

 

만약에 채무자가 피를 흘린다면, 당신은 그 벌로 엉덩이 백 대와 전 재산을 몰수하겠어요. 동의하십니까 ?( 이때 샤일록이 몸을 비틀거리며 말을 더듬는다. 남장여인, 이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며 ) 말을 더, 더더더더듬지, , 마마마마마마마마시고 예나아니오, 로만 말씀하세요. 동의하십니까 ?“ 배심원과 재판 참관인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우레와 같은 박수를 ! 브라보, 저 남장여인에게 영광 있으라 !

 

 

이 세 가지가 바로 3대 명판결이다. 그런데 나는 솔로몬과 예수의 판결에는 동의하지만 섹스피어의 판결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명판결이기는커녕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판으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판결은 정말 소가 웃을 일이다. 만약에 내가 샤일록이라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남장 여인의 말에 일단 동의하겠다. , 이제부터는 샤일록의 몸에 들어간 곰곰생각하는발의빙의다.

 

 

, 네네. 그러고말고요. 전 살만 도려낸다고 했으니 도련님의 소중한 피를 훔친다면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요. 일단 도려내겠습니다요 ! 피를 안 흘리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샤일록을 연기하는 곰곰생각하는발 씨의 당돌한 태도에 남장여인은 당황한다. 화가 난 남장여인은 젖꼭지를 바짝 세우며 으르렁거린다. “ 좋아요, 도려내세요 ! 만약에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린다면 그에 따른 무시무시한 형벌이 당신을 기다릴 거예요.“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감은 떨어져야 보기 좋은데, 감이( 걸어서 다가 ) 오면 그때부터는 감이 무서워진다. 저 감의 정체는 뭐야 ? 무서운 예감 ?! , 으으으으. “곰곰생각하는발 씨는 도대체 어떻게 피를 흘리지 않고 1파운드의 살을 도려낸다는 것일까 ?흠흠, 섹스피어 원전보다 페루애곰곰생각하는발 씨의 외전이 더 흥미진진한걸 !“곰곰생각하는발 씨는 정육점에서 사용하는 칼을 들고 채무자 앞에 선다. 그리고는 귀족 남자의 볼을 잡고는 칼로 1파운드의 살을 도려낸다.

 

 

하지만 여러분의 기대와는 달리 곧 경악스러운 사태가 벌어진다. 1파운드의 살점을 도려냈더니 백작 귀족 도련님의 얼굴에서는 피가 철철 넘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남장여인은 화가 잔뜩 나서 태형을 준비한다. 백작 귀족 도련님의 아픔보다 100배는 더한 고통을 안겨주마, 너의 멘탈은 도미노처럼 붕괴될 것이다, 더러운 유대인이여 !“아이구. 에그머니나 !이를 어쩐디요 ?피를 흘렸습니다요. 이거 원...... 약속대로 저에게 태형 100대를 때리십시요. 저의 실수를 제 스스로도 용납이 되지 않으니 100대에 100대를 더 때리십시요. 달게 받겠습니다 !“ 그런데 곰곰생각하는발 씨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여유로운 얼굴이다. 꿍꿍이 속내가 있는 것이다. 이어서 회심의 카드를 꺼낸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곰곰생각하는발 씨의 명연설이다.

 

 

 

, 몽둥이로 내 엉덩이를 때리시되 피멍이 들면 안 됩니다. 멍이 들어도 안 됩니다. 저는 태형에는 동의했으나 내 엉덩이에 피멍이 들어도 좋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 칼로 살을 베다 > 라는 말에는 이미 < 피를 흘리다 > 라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 치도곤을 먹이다 > 라는 말에도 <피멍이 든다 > 라는 내용이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를 흘리지 마라, 라는 요구와 피멍이 들면 절대 안된다는 요구는 모두 억지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억지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저도 당신에게 요구합니다.

 

 

더러운 유대인인 저를 때리시되 피멍이 들면 안됩니다. 당신은 곤장을 때리겠다고만 말했지 멍이 생긴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채무자의 살을 도려낼 때 피를 흘린 것이 약속 위반이라면, 당신 또한 내 엉덩이에 피멍이 들게 만든다면그것 또한 약속 위반입니다. 빚을 담보로 1파운드의 살을 요구하는 저 같은 악덕 고리대금업자도 나쁘지만, 궤변으로 법 해석을 농락한 당신은 더 나쁜 범죄자입니다. 이 판결은 판례로 남아서 백 년, 이백 년, 삼백 년 동안 악용될 소지가 있습니다. 저는 한 사람의 피를 흘리게 만들었지만 이 판결은 앞으로 수백 명의억울한 사람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존경하는 배심원 여러분 !

 

 

법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비추는 한낮의 태양이라고 들었습니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배웠습니다. 저 같은 고리대금업자에게도 법은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저는 여러분이 현명한 판단을 하시리라 믿습니다.법 전체를 농락한 저 사람에게 벌을 내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삐뚤어진 못난 인간에게 벌을 내리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역사에 기록될 증인이 될 것입니다.만약에 제 엉덩이에 피멍이들게 만든다면 저는 그에 대한 대가로 저 사람의 숨통을 끊겠습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 일순, 사위는 침묵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한 남자가 용기를 내 일어서며 박수를 보냈다. 맨 뒤에 앉은 사람도 일어나 박수를 치며 외쳤다. “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인간의 사건에 대한 재판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인종차별에 눈이 멀어서 한 인간의 몰락에만 관심을 가지는 꼴이 되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씨 ! 당신에게 영광을 !“ 상황은 역전되었다. 우레와 같은 박수는 곰곰발에게로.

 

 

 

과연 남장여인은 어떤 대답을 할까 ?남장여인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으며 변명을 할 때 나는 더욱 단호하게 요구할 것이다. “, 더더더더더듬지 마시고 예, 아니오 라고만간단하게 답해 주십시요 !동의하시겠습니까 ?“ 우리가 이 연극에서 깨달아야 할 점은 재치 있는 남장 여인의 설레발이 아니라 불공정한 법의 잣대이다. 만약에 악덕 고리대금업자의 손에 의해 피를 흘려야 할 사람이 백인 귀족 도련님이 아니라 유대인 샤일록이라면 과연 어떤 판결이 내려질까 ? 법이란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인가 ?

 

 

셰익스피어는 철저하게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했다. 고흐처럼 사후에 명성을 얻은 작가도 아니다. 그는 가장 이른 나이 때부터 부와 명성을 얻은 작가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당시의 주류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잘 다루는 귀신 같은 작가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쉽게 말해서 대영제국 백인 주류 귀족의 똥구멍을 잘 긁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셰익스피어는 피 터지게 주류 사회와 싸운 작가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다. 나는 섹스피어보다는 조지 오웰이 더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는 망명 생활을 한 적도 없고, 배가 고파서 굶은 적도 없다. 셰익스피어는 이문열과 비슷하다. 이문열이 대한민국 주류인 한나라당과 중년 남성을 위해 비주류와 여성을 공격하듯이 섹스피어는 대영제국 주류인 귀족 사회를 위한 글만 썼다. 그것은 작가가 가져야 할 사회 인식과 날카로운 비판 정신의 결여라고 할 수 있다. 잔재주는 좋으나 깊이가 없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쓴 사람이 위대하다고 칭송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나는 이토록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적인 시선과 야유를 보내는 문학 작품을 본 적이 없다. 내 기억이 맞다면 샤일록은 재판에 져서 재산을 몰수당한다. 돈을 빌려갔으나 갚지 않은 제국의 백인 귀족 도련님은 돈을 갚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정당한 절차를 통해 이의를 제기한 유대인 샤일록은 재산을 몰수당한다. 이건 좋은 판결이 아니라 악랄한 권력의 남용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그 어느 누구도 이 사실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로맨틱 소동극이잖아, 문학 작품이잖아, 셰익스피어 작품이잖아, 인도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그 대가의 작품이잖아, 현명한 백인이잖아, 백인은 언제나 현명하잖아. 그럼, 그렇고 말고...... 현명한 자는 언제나 백인들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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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코스키가 있는 이야기
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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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세상 모든 똥구멍 !

 

 

 

 

이 작품은 허구이며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는다. “

 

 

- 찰스부코스키, POST OFFICE

 

 

 

 

 

지상파 방송 3사 프로그램을 통틀어서 내가 가장 경멸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 생활의달인 > 이다. 일종의 < 육체 노동 만만세 !> 전파 방송이다. 자전거 짐칸에 탑처럼 상자를 쌓고 달리기, 뚝배기가 담긴 쟁반을7층 다보탑 높이로 쌓아 머리에 이고 배달하기 그리고 중국 음식을 최단 시간 안에 배달하는 배달의 기수들이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특징은 모두 최단 시간 안에 가장 많은 생산량을 자랑한다는 점이다. 혼자서 3명 몫을 한다. , . 멋지다. 그들의 팔과 다리는 기계의 부속품처럼 단 한 점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움직인다. , ! 멋지다, 신난다, 태권 븨이만만세 !( 지랄한다. )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이들 달인의 묘기에 가까운 일 처리 기술은 <대한민국 빨리빨리 > 가 낳은 기형적인 안전불감증처럼 보였다. 자전거 짐칸에 짐을 탑처럼 쌓고 달리는 묘기는 전형적인 과적이 아닐까 ?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짐칸에 적당한 양의 짐을 싣고 달려야 한다고 지적해야 하는 것이 방송의 의무가 아닐까 ?무엇이 그를 위험한 질주로 내몰게 하는 것일까.배달 음식을 최단 시간 안에 배달하는 오토바이 배달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면발이 불기 전에 음식을 배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건 질주를 감행한다. 그들은 200만 원 남짓한 돈벌이를 위해서 한겨울 얼음 빙판길을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것이다. 돌아오는 것은 골병이다.

 

 

 

이처럼 힘든 노동 서사는 곧 가족 이데올로기로 연결된다. 알고 보니, 그 노동자의 힘든 노동은 가족 때문이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이 한몸다 바쳐서 >. , 꽃을 태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다는 그 유명한 열꽃. 이제 노동의 의미는 숭고한 자기 희생과 겹친다. 파토스는 바로 이 부분에서 발생한다. 진기명기에 신기하다며 박장대소하다가 시청자는 가밪기 숭고한 감동을 느낀다. 고된 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손은 어느새 아버지의 손으로 바뀐다. 문제 제기는 지금부터다.

 

 

왜 주류 사회는 노동의 날 것 그대로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을 금지시킬까 ? 한나라-어버이-연합-수구-꼴통-꼰대-사회이며 북파 공작원 및 해병 전우회애국 사랑 실천 마초 연대 주류는 노동자 아버지의 손은 숭고한 것으로 각인시키면서 정작 노동자 손은 다루지 않는다. < 노동자 아버지 손 > 에서 아버지가 빠지면 갑자기 숭고에서 종북 좌파로 빠진다. ( 지랄이 흉년이다. )

 

 

 

인간의 본성은 개미보다는 베짱이에 가깝다. 문화인류학적 접근으로 다가가면 노동은 숭고하거나 신성한 것이기보다는 귀찮은 것에 가까웠고, 오히려 숭고한 대상은 놀이와 축제였다. 그것이 노동과 놀이의 맨 얼굴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출현하면서< 생산성 > 이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자 주인은 노예에게 노동의 가치를 과대포장해서 세뇌시키기 시작했다. “ 노동은 제주산 활 고등어에요. 신성해요, 신선해요, 싱싱해요 !고로 노동의 주체인 노동자는 신성한 존재에요. 게으른 노동자는 죄인이지만 성실한 노동자는 영웅이에요. 깔깔깔. “ 조삼모사요, 눈 가리고 아웅산 수지 다음은 분당 아래 한나라당. 황당무계다. 노동이 형편 없다는 말이 아니다. 노동이란 가치를 미화하지 않고 폄하하지도 않을 때 비로소<노동의 날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 오래된 집단 최면술은 지금까지도 대대손손 내려와서 노예를 바보로 만든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노예다. 속이는 놈도 나쁜 놈이지만 속는 놈도 병신이다. 남들보다 열심히 일해서 이 정도나마 먹고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하기 전에, 남들보다 열심히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살 수 밖에 없는 구조적, 계급적, 계층적 모순에 대한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것일까 ?

 

 

 

겉으로 보기엔 < 생활의 달인 > 은 민중 노동 예찬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주류 기득권 사회인< >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 > 이 고된 노동 시간에 대한 아무런 비판도 없이 무조건 수긍할수록 입이 째지는 놈 < > 이다.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짐칸에 짐을 잔뜩 싣고 달리는묘기에 주목하지 말고 과도한 노동 잔혹사에 주목해야 한다. 혼자서 3명 몫의 노동 생산량을 생산해야지 그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다는 점은 육체 노동의 가치가 형편없이 추락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명징한 징후로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생활의 달인 > 을 생활 밀착형 다큐로 읽을 수 없는 까닭이다.

 

 

 

아마 당신은 이 프로를 보며 고생하는 부모 생각에 가슴 찡한 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 유보하라. 감정이 앞을 가리면 진실을 보지 못하니깐. 소수의 <>이 다수의 <>을 속일 때 가장 즐겨 쓰는 수법이 < 가족 휴머니티’> 이다. 슬퍼서 눈물이 앞을 가리면, 말 그대로 정말 보이는 게 없으므로,쪽팔리게 이런 가짜 서사에 울지 마라. 당신이 현명하다면...... 갑돌이 새끼들이 뿌려대는 최루탄에 속지 말도록.

 

 

 

< 생활의 달인 > 을 보느니, 차라리 < 포르노 >를 보는 것이 더 유익하다. 그것이 더 정신 건강에 좋다. 적어도 포르노는 나에게 < G스팟 공략 기술 > 과 클리토리스를 통증 없이 다루는 방식을 가르쳐주었으며, D컵 젖가슴의 황홀한 탄성력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던가 ?누워도 펑퍼짐하게 퍼지지 않는 젖가슴이란 ! , 싱싱한 계란 후라이를 보는 듯해 ! 흰자위는 퍼져도 노른 자위는 퍼지지 않는 그 탄력말이시. 침대에 누워도 퍼지지 않는 노른자위는 정말 아름다웠어.

 

 

 

찰스부코스키의 장편소설 < 우체국 >은 반 노동 소설이다. 노동 찬양 소설은 수없이 봤어도 반 노동 찬양 소설은 본 적이 없으리라. 당연하다. 왜냐하면 반 노동 찬양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외설에 가깝기 때문이다. 노동 찬양의 대표적 텍스트가 성경인데 (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 ) 사실 이 말은 종교와 국가가 결탁해서 만들어낸 쉰소리에 가깝다. 예수는 끊임없이 당대의 사람들에게 공격 받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 빈둥거리는 예수 > 였다. 일은 하지 않고 선동질만 한다는 비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라는 교회 목사의 말은 뻥이다. 현대의 기독교는 자본가 갑의 편이다.

 

 

 

히틀러도 파시스트이기에 앞서 철저한 자본주의적 인간이었다. 우리가 홀로코스트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한 가지. 히틀러에 의해 자행된 홀로코스트의 최대 희생자는 유대인이 아니다. 유대인 홀로코스트는 날조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유대인보다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집단은 집시와 장애인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히틀러는 인간을 생산의 주체로 판단했다. 그는 베짱이처럼 놀고 먹는 떠돌이 집시와 몸이 병신이어서 공장에서 일을 할 수 없는 장애인을 생산 신화의 불량품으로 판단했고 그런 그들을 지독하게 경멸했다. 그는 그들을 생산성이 떨어지는 집단이라는 이유로 잔인하게 집단 학살을 자행했다. 유대인보다 몇 배나 많은 희생자가 살해되었다. 히틀러는 철처한 자본가 개새끼였다.

 

 

 

그동안 현대 모더니즘 소설이 실존주의와 도덕적 옮바름을 이야기하며 노동의 순수한 가치를 찬양하며 잘난 척할 때, 부코스키는 가운데 손가락을 높이 쳐들며 반기를 들었다. 그가 보기엔 그들의 주장이 배부른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부코스키의 소설 < 우체국 > 은 우리가 그동안 접했던잘난 양반들이 꼴사납게 쓴 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주인공 우편배달부 츠나스키는 도덕적 옮바름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그는

 

 

 

그냥..... 꼴리는 대로 사는 양반이다. 하루 종일 섹스하고, 놀고, 노름하고, 술에 취해 사는 삶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는 노동하지 않는 삶을 꿈꾼다. 그의 소설은 노동가 예찬이다. 역설적이게도 반 자본주의 소설이다. 문장 또한 어찌나 외설스러운지 여성에 대한 묘사는 가히 성희롱 수준이다. 젖퉁과커다란 엉덩이라는 낱말이 따발총처럼 쏟아진다. 아이구, 시끄럽구랴. 그런데

 

 

 

놀라운 점은 책을 덮고 나면 묘하게 슬픔이 찾아온다는 점이다. 우편배달부 츠나스키는 한심한 마초이지만 우리는 어느새 그에게 동화된다. 당혹스럽다. 그는 악당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웅도 아니며 선량한 사람도 아니지만 바로 그 점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왜냐하면 그 소설을 읽는 당신 또한 특별히 악당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선량한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 그의 노동하지 않는 삶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슬프게 다가오는 까닭은 그 스스로가 하층 노동자 계급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마스터베이션이다. 노동의 강도가 육체를 제압할 때, 우리는 고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꾼다. 그것은 불경한 것이 아니다.

 

 

 

소설은 재미있다. 재미있는 정도가 아니라 <존나>재밌다 ! 재미만 있나 ?! 그렇지 않다. 작품도 좋다. 농담과 음담패설이 쉴 새 없이 쏟아지지만 천박하지 않다. 고상하지도 않다. 고상한 척은 부코스키의친척이 아니다. 차라리 적이다. 그의 소설은 자극적이면서 동시에 담백하다. 믿기지 않지만 정말 그렇다. 그리고 전복적이며 도발적이며 웃기고 슬프다. 그것이 그의 소설의 장점이다. , 아아아아. 그의 소설, 정말 좋다 !시부럴, 색정광 찰스부코스키 할아버지 만만세 !

 

 

환갑이 지났어도 강철보다 단단한 딱딱한 ( 태권븨이처럼 곧게 뻗은 팔처럼 휘지 않은 ) 페니스의 일직선을 간직하셨던 스테미너찰스. 그리고 경마 도박광부코스키 할아버지 만만세 ! 술고래 부코스키, 뿜빠라뿜빠뿜빠바 !인천 앞 바다에 사이다 병 대신 그에게 위스키술병을 ! 놓지면 후회하는 소설이 있고, 읽지 않아도 후회되지 않는 소설이 있다. 물론 이 소설은 읽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는 소설이다. 헤르만헤세와앙드레 말로가 지겨울 때, 셰익스피어와 괴테가 한심하다고 생각할 때 읽으면 눈에 번쩍 뜨이는 좋은 소설이다.

 

 

 

 

***

 

조이스는 마침내 달팽이를 삼켰다. 그러더니 접시에 담긴 다른 것들도 천천히 살폈다.

- 모두 작은 똥구멍이 달렸어 !끔찍해 !끔찍하다고 !

- 똥구멍이 뭐가 나쁘냐고 ! 당신한테도 똥구멍은 있잖아. 나도 똥구멍이 있다고 ! 가게에 가서 큼지막한 쇠고기 스테이크를 하나 사봐. 거기도 똥구멍은 달렸어 ! 지구상에는 똥구멍이 널렸단 말이야 ! 어떤 면에서는 나무들도 똥구멍이 달렸는데 못 찾는 것뿐이야. 나무들도 이파리를 싸잖아. 당신 똥구멍, 내 똥구멍, 세상에는 수십억 개의 똥구멍으로 가득 찼어. 대통령도 똥구멍이 있고, 세차장 직원들도 똥구멍이 있어. 판사들도 살인자들도 똥구멍이 있다고. 심지어 자주색 넥타이핀 남자도 똥구멍이 있어 !

- , 그만해. 그만하란 말이야 !

그녀는 다시 구역질을 했다. 미친년. 나는 사케를 따서 한 잔 마셨다.

 

 

- 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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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5-13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myperu.blog.me/20156193588

poptrash 2013-05-14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은 글을 제 글과 이어주셔서 순식간에 제 글이 오징어가 되어버렸네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3-05-14 06:18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왜 그러십니까...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갈 것 같군요. 방긍 아까운 책'시리즈인가요. 고거 주문하고 오는 길입니다.... 정말 부코스키 형님이 대박나셨으면...
 
변신.시골의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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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늙은 시골 의사'가 있다. 그는 한밤중에 생명이 위독한 이웃 마을의 환자'를 진찰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 혹한과 과로 때문에 말이 죽었다. 하녀가 마을을 돌며 말'을 빌리려고 하지만 이 혹한에 말을 빌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화가 난 의사'는 돼지우리' 문짝을 발로 걷어찬다. " 야, 이 시부랄 ! " 그때 건장한 남자가 돼지우리에서 네 발로 기어나온다. 건강한 말 두 필'과 함께 말이다. 10페이지 남짓한 이 단편의 백미는 지금부터다. 의사와 하녀'는 " 돼지우리에서는 뭐가 튀어나올 지 아무도 모르죠. 까르르르... " 웃으며 기뻐한다. 하지만 돼지우리에서 나온 낯선 사내는 늑대처럼 호시탐탐 하녀를 겁탈할 생각뿐이다. 시골 의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할 것인가 ? 자신이 하녀를 남겨두고 집을 비우면 사내는 그녀를 겁탈할 것이 분명하다. 어디서 많이 본 설정이다. 늑대-양의 딜레마'이기 때문이다. 목동은 배를 타고 건너편 섬에 가 병든 양을 보살펴야 한다. 하지만 늑대와 양을 두고 떠나면 양은 늑대에게 먹힌다.

 

 

 

그는 사내와 함께 이웃 마을을 함께 갈 것을 제안하지만 사내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시골 의사는 불안을 간직한 채 늑대와 양을 함께 두고 이웃 마을로 떠난다. 기이함'은 이웃 마을에서 절정을 이룬다. 시골 의사가 보기에 환자는 처음에는 꾀병처럼 보인다. 갑자기 섬에 두고 온 하녀'가 걱정된다. 하지만 알고 보니 환자의 몸은 구더기들이 살을 파먹고 있다. ' 곧... 죽을 것이다 ! ' 명의가 아닌 평범한 시골 의사로서는 그를 살릴 수는 없다. 그런데 이웃 마을 사람들은 환자를 살리지 못하면 의사'를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는 시골 의사의 옷을 홀딱 벗긴 후 환자가 누워 있는 침대에 눕힌다. 이 얼마나 기괴한가 !

 

 

하지만 투덜대지 마라. 악몽은 언제나 말이 되지 않는 짧은 서사들의 총합이 아니었던가. 이것저것 짜집기한 퀄트처럼 말이다. 시골 의사는 알몸으로 빠져나와 집으로 향한다. 하녀는 돼지우리에서 나온 사나운 사내에게 먹혔을까 ? 어쩌면 이 한밤중의 호출은 늑대가 양을 겁탈하기 위해 준비한 치밀한 계획은 아니었을까 ? 양을 구하기 위해서 양을 위험에 빠트리고 간 것은 과연 옳은 판단이었을까 ? 시골 의사는 늙고 기력이 쇠한 벌거벗은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한다.

 

여기까지가 단편 < 시골 의사 > 의 줄거리다. 이 단편은 느닷없는 호명'이라는 측면에서 장편 < 성 > 과 < 심판 > 의 서사 구조와 유사하다. 등장인물들은 누군가로부터 호출되는 순간 무조건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시골의사도 마찬가지다. 그가 병든 양을 구하기 위해 이웃 마을로 떠나는 순간 자신의 하녀는 위험에 빠진다. 그는 가지 않을 수도 있고, 갈 수도 있지만 후자를 선택한다. 아시다시피... 시골 의사의 이 선택은 두 마리 양 모두를 살리지 못한다. ( 혹은 못할 것이다. ) 결국 이 미션은 미션임파서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 양-늑대의 딜레마 > 에서 카프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 인간의 부조리한 삶에 대한 근심은 아니었을까. 카프카의 길 찾기'는 언제나 실패한다. 미션은 항상 임파서블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호출에 인간은 응답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카프카가 바라보는 실존이다. 인간 증명이다. 카프카는 『 시골 의사 』 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나의 모피 외투는 마차 뒤에 매달려 있는데, 내 손은 그것이 닿지 않는다. 그리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환자의 무리 중에서는 아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속은 것이다 ! 속은 것이다 ! 잘못 울린 야간의 초인종 소리에 어쩌다가 덜컹 따라나선 것이다. 결코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제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자살을 시도해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기사가 송출되었다. 그가 죽는다면 24번째 희생자'가 된다. 이 상황을 노동자 재해 보험국 직원이었던 카프카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 우리는 과연 이 꽃들의 낙화를 철없는 행동으로만 치부해야 될까 ? 철탑 위의 노동자가 단식을 선언하며 농성을 벌인다고 해서 권력의 철옹성이 무너질까 ? 하지만 누군가는 올라가서 이 호명에 응답해야 한다. 비록 그의 미션이 실패로 끝날지라도 말이다. 누군가는 철탑에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위의 단편 애니메이션은 야마무라 코지의 작품이다. 코지의 작품 중 < 늙은 악어 > 라는 애니메이션을 씨너스 이수'에서 본 적이 있다. 그림체가 독특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다시 그를 만난다. 애니메이션 < 시골 의사 > 탁, 월하다 !!!

 

 

http://myperu.blog.me/20174539097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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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의 고뇌
에밀 아자르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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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읽은 책들.

 

 

 

10년 전이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 자기 앞의 생 > 이란 책을 발견했다. 내가 그동안 이 책을 읽지 않은 이유는 아동 청소년 책'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나는 꽤나 어려운 소설을 읽었다. 로브그리예, 사르트르, 까뮈,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읽기 어려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던 시절이었다. 마치 구하기 힘든 영화'만 찾아다니는 컬트 마니아의 자랑스러운 필생의 목록'처럼 말이다. 이런 내가 그 흔해빠진 청소년 소설 나부랭이'를...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 자기 앞의 생 > 을 읽었다. 그러다가 그만 눈물을 쏙 빼게 되었고, 그 후 며칠 동안 도서관에 비치된 로맹가리/에밀아자르의 소설'은 모두 읽게 되었다. 나의 닉네임인 " 페루애 " 도 그의 단편집 <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 > 에서 따온 것이다. 너무 급히 읽은 탓일까 ? 내가 읽은 로맹 가리의 소설들은 각자의 소설'이 아닌 6권'으로 된 한편의 장편 소설'로 기억되었다. 말이 좋아 " 기억 " 이지, 사실은 " 뒤죽박죽 " 이었다.

 

 

< 자기 앞의 생 > 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 유럽의 교육 > 으로 편입되고, < 유럽의 교육 > 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 가면의 생 > 에 나오는 인물로 착각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 새벽의 약속 > 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엘리엇 카네티의 < 구제된 혀 > 와 혼동하기도 했다. 만약에 누군가 내게 그의 소설에 대해 물어오면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오줌을 지릴 것이다. 결국 나의 독서'는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망각 행위였다. 3초 기억력인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줄거리를 보는 것이 더 경제적인 것은 아닐까 ? 고통스럽게 4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느라 시간을 낭비하느니 말이다. 내 스스로 한심하고, 한심하고, 한심하고, 한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설을 읽느라 밤을 보낸다. < 솔로몬 왕의 고뇌 > 는 로맹 가리의 책 중에서 내가 읽지 않은 몇 권의 책 중 하나'였다. 고로 10년 전 도서관에는 없던 소설'이었다. 전처럼 눈물을 쏙 빼는 서사'는 없지만 여전히 낙관적이며 유머 감각이 풍부한 문장을 선보인다. 사실 그의 전 작품과 이 작품을 비교 평가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왜냐하면 내가 읽은 로맹 가리의 소설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주제에 감히 초기작에 비해 문장의 호흡이 부드러웠다느니, 짧은 문장으로 깊이 있게 파고드는 손 기술에 탄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놀랐다.

 

 

건방지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쓰는 문체가 로맹가리의 문체와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깐 나는 그의 소설을 잊은 것이 아니라 365일 그의 영향 아래 놓인 것이었다. 다만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까마귀'처럼 말이다. 사람이란 결국 자신이 읽은 책들로 만들어진 스타일'이다. 무엇을 채우느냐가 그 사람의 스타일을 만든다, 사상을 만든다. 당신이 여자를 꼬실려고 내뱉은 근사한 말은 누군가가 썼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이거나 로맹 가리의 근사한 문장을 흉내냈겠지 ! 그리고 입만 열면 졸음이 쏟아지는 그 지긋지긋한 말투는 제임스 조이스의 문장을 흉내낸 탓이리라. 이처럼 한 사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은 그동안의 독서'가 큰 몫을 차지한다. 니체를 탐독한 자'가 물개처럼 발랄하게 촐랑거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독서의 총합이 스타일을 만든다. 누군가의 문장은 당신에게 피와 살이 되어 뇌하수체로 흘러 뇌를 조종하거나 전립선을 타고 남근으로 우르르 몰려가 시도 때도 없이 발기시키는 주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또한 그렇다. 잊혀진 것이 아니다. 어쩌면 365일 작동하고 있으나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일지도. 하늘에 떠 있는 인공위성'처럼 말이다. 365일 반짝 반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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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홀 문화인류학 4부작 2 : 숨겨진 차원 - 공간의 인류학 이상의 도서관 47
에드워드 홀 지음, 최효선 옮김 / 한길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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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이제는 에드워드 홀'이다 !

거리 분류가 복잡해서 간략하게 분류했다. 에드워드 홀의 분류와는 차이가 있다.

 

출판사 < 한길사 > 에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조심해 ! 불 질러 버릴 테니깐........ 그동안 절판되어서 구할 수 없었던 에드워드 홀의 문화인류학 4부작'이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출간'되었다. 이로써 내가 보유한 < 숨겨진 차원 > 과 < 침묵의 언어 > 는 중고 똥값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긋 ! 왜냐하면 이 시리즈'는 탁월하기 때문이다. 두고 두고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간격'을 < 거리 > 라고 한다. < 거리 > 라는 단어 대신 < 사이 > 라고 해도 문맥은 통한다. 둘 다 간격이나 공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홀'은 이 거리'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으니, 첫 번째는 " 볼 거 안 볼 거 다 본 " 거리'로 신체적 접촉이 가능한 간격'이다. 만약 당신이라면 누구에게 이 친밀한 거리를 허용하겠는가 ? 가족과 애인'이다. 이 단계의 클라이막스는 섹스'다. 섹스란 결국 나와 타자의 간격이 제로'가 되는 단계'다. 두 번째는 " 악수할 수 있는 " 거리'이다. 애인이나 가족처럼 매우 친밀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나 동료'가 이에 해당된다. 여기까지'는 개인적 거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악수하는 사이'인 타자가 볼 거 안 볼 거 다 본 거리 안으로 진입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 동료가 업무를 가르쳐준다고 뒤에서 당신의 귓구멍에 입김을 불어넣는다면 말이다.

 

성범죄'는 바로 악수나 하는 사이'인 타자가 볼 거 안 볼 거 다 본 거리 안으로 허락 없이 잠입할 때 발생하게 된다. 박시후 사건에서 A양이 화가 난 이유는 박시후를 악수나 하는 사이'로만 인식했기 때문이다. 반면 박시후는 A양과는 달리 볼 거 안 볼 거 다 본 사이'라고 주장하는 것. 누구의 주장이 거짓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원나잇스탠드'라는 것은 악수하는 기간 없이 바로 볼 거 안 볼 거 다 본 관계로 발전할 때 발생하는 파열음'이다. 인간은 이처럼 개인적 거리 침범'에 대해 극도로 예민하다. 바로 그 점이 인간은 동물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모든 동물에게는 도주 거리'라는 것이 있다. 들소는 사자를 보자마자 도망가지는 않는다. 다만 일정한 간격 안으로 사자가 들어오면 그때 도망친다. 사자가 더 접근하면 자신의 목덜미에 사자의 이빨이 박힐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바로 그 간격이 도주 거리'이다. 이처럼 간격이 가깝다는 것은 결국 목숨을 내놓는 행위와 같다.

 

들소의 < 도주 거리 > 를 인간 사회'로 적용하면 오디션 볼 때의 거리'이다. 악수할 수 있는 거리에서 조금 더 벗어난 간격이다. 그러니간 악수는 할 수 없는 거리이다. 오디션 볼 때 이 거리를 유지하는 이유는 머리에서 발끝까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체크를 위해서이다. 이 거리'를 에드워드 홀은 사회적 거리'라고 말한다. 사회적 관계는 주로 이 간격에서 이루어진다. 이 거리'가 최소한의 도주 거리'인 이유는 타자의 이상 증후를 간파할 수 있는 최소 거리이기 때문이다. ( 볼 거 안 볼 거 다 본 거리'나 악수할 수 있는 거리'는 주로 얼굴이라는 부분만을 볼 수 있다. )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먼 거리'다.

 

 

 

그런데 에드워드 홀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았다면 분명히 하나를 더 추가했을 것이다. 바로 < E : 투명인간의 거리 > 이다. 이 거리는 타자를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단계'이다. 우리가 청소노동자나 장애인을 바라보는 바로 그 시선이다. 봐도 못 본 척한다. 관심 자체가 없다. 천민 자본주의가 낳은 우아한 풍경이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다.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간섭을 하기도 한다. 나이를 묻거나 심지어는 혈액형을 묻는 것도 지나친 사적 거리의 침범이지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리니깐 한국 사회는 매우 이중적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청소 노동자나 게이, 장애인을 가시영역 밖의 투명한 존재'로 생각하는 반면, 또한 집요하게 개인의 사적 거리를 침범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한 마디로 턱없이 부족한 소양 탓이다. 김치는 물에 씻어 먹자.

 

6인용 탁자

 

위의 그림은 가로 72인치, 세로 36인치의 6인용 식탁'이다. 심리학자 로버트 소머'는 실험 대상자 6명을 이 식탁에 배치한 후 50여 차례 모임을 갖은 후 대화의 빈도를 체크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F-A 대화가 C-B 대화보다 두 배나 빈번했으며, C-B유형은 C-D 유형보다 세 배나 빈번했다. 그리고 다른 위치에서는 아무런 대화도 관찰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직각으로 대하는 모서리상의 대화가 36인치의 탁자 넓이 건너 마주 대하는 대화의 여섯 배에 달했고, 옆으로 나란히 앉은 유형보다 두 배나 많았다.

- 숨겨진 차원 中.

 

이 결과는 거리 간격의 차이가 대화를 끌어내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지만 < 소리의 거리 >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정면에 있는 타자'를 공격적인 주체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서로 정면을 응시한다는 것은 곧 싸울 자세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짐승은 싸울 때 너 몇 살이냐고 나이를 묻지 않는다. 꼬라보면 덤빈다 ! 그게 짐승의 룰이다. 짐승은 그런 존재다. 위의 실험에서도 드러났듯이 대화의 빈도수가 가장 높은 짝패는 서로 옆'에 있을 때이다.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C-B가 C-D보다 대화의 빈도가 세 배나 빈번한 이유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걸어둔다. ( http://myperu.blog.me/20148051329 ) 에드워드 홀의 문화인류학 시리즈'는 충분히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이다. 내가 무슨 책장사'라고 설레발을 치겠는가. 그저 좋은 책이어서 소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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