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트 특급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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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 이 글은 친절하게 이 소설의 트릭을 폭로합니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쓴 <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 ㉠ 칼레를 향해 달리던 오리엔트 특급 열차' 안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 열차는 폭설에 의해 멈춘다, 고립된다. ㉢ 범인은 12명의 승객 중 한 명이다. ㉣ 하지만 그들은 모두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즐겨 사용하는 " 고립 " 이 다루어진다는 측면에서 이 소설은 밀실 트릭'이다. 폭설에 의한 고립은 산사태나 폭풍 때문에 외부와 단절된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와 < 쥐덫 > 을 연상케 한다. 이 장치'는 작가가 독자에게 내미는 도전장이다. 범인은 무조건 내부에 있으니 똑똑한 독자여 ! 맞, 춰, 보, 세, 용.  추리소설 마니아'인 당신은 발끈한다. 그녀의 < 그리고 아무도... > 와 < 쥐덫 > 의 트릭'을 미리 경험한 독자'라면 코 파며 잇힝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도 이 소설의 결말을 예상하지 못했다. 독자는 패자가 되고, 저자는 승자가 된다.

 

 

 

 


 

 

 

 

 

 

 

 

12명의 크레타 사람들

 

- 삐에르 비야르를 흉내내며

 

 

①건파이터의 최후 ②집시 엔젤 ③ 위험한 유혹④ 새 2' ⑤해리 구출 작전 ⑥리비에라 ⑦홈 프론트 ⑧고스트 하우스 ⑨하우스 3 ⑩지옥에서 온 멕시칸 ⑪아울 ⑫반칙 게임의 공통점은 ? 정답은 한 감독이 만든 작품이라는 점이다. 바로 알란 스미시/ Alan Smithee ' 다. 만든 작품마다 평단의 저주 같은 욕설을 들어야 했으니 속에서 열불이 났을 터.  < 시민 케인 > 의 오손 웰즈'가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면 알란 스미시'는 저주 받은 감독 열전에서 대왕 자리'를 차지할 만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반전이 하나 숨어 있다. 거창한 것은 아니다. " 알란 스미시 " 라는 감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감독이다.

 

그렇다면 유령이 영화를 만들었냐 ? 그것도 아니다. 영화적 완성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버지가 물려준 이름을 걸기에는 부끄러울 때 사용하는 이름이 바로 알란 스미시이다. 설에 의하면 Alan Smith에 - ee'를 추가했다거나, 'The Alias Men'의 철차를 조합해서 만들었다는 두 개의 설이 있다. " 가공의 인물 " 이라는 뜻이다. 알란 스미시란 가명이면서 동시에 익명들의 조합이다. 이처럼 쪽팔려서 숨은 익명들이 모여서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알란 스미시 필모그라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1명의 알란스미시가 아니라 12명의 알란스미시들'이다. 그것은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가 선보인 <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 에서의 트릭과 유사하다. 살해당한 사람은 1명이지만 그  사람을 살해한 사람은 12명인 것처럼......

 

독자인 당신이 아가사 크리스티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이유는 부분/1명의 범인'에 집착한 나머지 전체/ 12명의 범인들'을 보지 못한 까닭이다. < 오리엔트 특급... > 에서 " 범인은 다. 오직 범인들이 있을 뿐이다. " 그러므로 범인은 nothing'이고, 범인들은 thing'이다. nothing'이란 < 아무것도 아니 > 거나 < 단 하나도 없 > 는 존재를 가리키는 대명사이기에 아가사 크리스티의 도전장에 뿔난 당신이 계속 씩씩거리면서 < 범인 > 을 찾는 데 집착할수록 당신은 점점 아무것도 없는 헛것'을 찾는 데 진땀을 흘릴 것이다. 저자가 노린 것은 바로 그것'이다.

 

알리바이'는 alius ( 다른 ) + ibi ( 거기에 ) 를 합친 것으로 " 다른 + 장소에 " 라는 뜻이다. 그러니깐 용의자가 살인이 일어난 장소'에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알리바이'다. 현장부재증명/現場不在證明'은 곧 타소존재증명/ 他所存在證明'을 의미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 장소A에 내가 없었음/부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장소 B에 내가 있었음/존재'를 증명 " 하면 된다. 그렇다면 다른 장소에 당신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대상은 누구인가 ? 바로 누군가가 당신을 보고 있었다는 설정'이다. 그것은 응시다. 알리바이란 2명 이상이 (살인현장이아닌) 다른 장소에 함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하지만 혼자일 때는 성립이 될 수 없다. < 오리엔트... > 에서 12명의 용의자가 모두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12명 각자가 다른 장소에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류가 발생한다. 12명의 용의자가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곧 12명의 용의자 가운데 살인 사건 당시에 혼자'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논리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왜냐하면 12명 가운데 1명은 살인자이므로 반드시 혼자일 수밖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12명 모두 다른 장소에서 누군가와 함께 있을 수가 있을까 ? 결국 12명 가운데 최소 1명은 살인자이고 나머지 1명 이상은 살인자를 도와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된다.

 

포와르는 수사의 초점을 범인'이 아니라 범인들'에 맞추어 사건을 해결한다. 이 과정에서 포와르가 고심했던 부분은 < 범인들 > 이라는 범위'다. 만약에 A를 범인이라고 가정한다면 A의 알리바이를 증명한 B는 공범자가 된다. 그렇다면 공범자인 B의 알리바이를 증명한 C의 진술은 믿을 만한 것인가 ? C의 알리바이를 증명한 D는 ?! 만약에 공범자인 B와 공범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C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면 C 또한 공범자일 가능성이 높다. 포와르는 이러한 방식으로 D, E, F, G, H, I, J, K, L 의 공통분모'를 찾아낸다. 그들은 모두 한통속이었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의도했던 바는 아니겠지만 소설은 공교롭게도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처럼 보인다. 데카르트가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라고 주장했다면, 라캉은 " 타자가 나를 보고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라고 주장한다. Alibi란 결국 존재 증명이다. < 나 > 라는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진술이 아니라 타자의 진술에 의해서이다. 예를 들어 무인도에 고립된 로빈슨 크루소'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사회로부터 사라진 사람이거나, 실종된 사람, 잊혀진 사람, 죽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가 nothing에서 thing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어야만 가능한다. 타자가 그를 발견하는 순간 그는 살아서 돌아온 사람이 된다. 늑대인간, 설인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는 이 세상에 없는 존재들'이다.

 

< 오리엔탈 특급... > 은 <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 의 세련된 확장형'처럼 보인다. < 애크로이드... > 가 제임스 쉐퍼드'라는 인물이 말하는 거짓 진술'이라면, < 오리엔탈 특급 > 은 12명나 되는 제임스 쉐퍼드가 말하는 거짓 진술이다. 독자는 그들에 의해 농락당한다. 그래야 재미가 있다. 그게 추리소설의 룰이다. 고전이 되어버린 이 소설이 가진 트릭을 말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발설'이 될 수 없다. 범인은 1명이 아니라 12명이다. 이런 속임수라면 우리는 기꺼이 속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인간이 가진 능력 가운데 가장 신뢰가 안 가는 부분은 < 눈 > 이다. 형광등은 1초에 60번이나 깜빡거리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시력 좋은 파리만이 깜빡거리는 조명 때문에 죽을 맛이다. 알리바이'란 결국 인간이 가진 기관 가운데 가장 믿지 못할 눈에 의지하는 진술 방식'이다. 그래서 처소존재증명'은 늘 불완전하다, 존재는 불안이다 !

 

거짓말 패러독스'에서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만 한다. 그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 포와로 ) 추궁 때문에 억지로 입을 연 ( 살인자 ) 자백들'은 액면 그대로 진실일까 ? 살인자들이 말한 정의에 대한 심판 운운은 과연 진심이었을까 ? 논리적으로 따지고 보자면 그들이 말한 진술은 거짓말일 확률이 더 높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100%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크레타 사람은 입만 열면 거짓말만 하는 사람들이다. 만약에 대다수 공모자들이 댓가를 받고 죽은 아이의 부모를 도운 것이라면 ?! 그렇다면 그것은 청부살인이 아닐까. 살인자들이 말한 마지막 진술은 진짜 속내를 숨기기 위한, 포와로의 연민을 건드려서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발버둥인지도 모른다. 

 

포와로가 명석한 두뇌로 모든 사건을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판단을 흐리게 만든 것은 피해자 12명이 전하는 진술이었다. 포와로는 연민 때문에 판단을 그르친다 !  소설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로 끝난다.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것은 탐정 포와로'가 연민 때문에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결국 포와로는 크레타 사람이 말하는 거짓말에 속은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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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pia 2013-04-08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도우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네요. 알란 스미시...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4-09 00:31   좋아요 0 | URL
아, 세븐에 나온 캐릭터를 기억하네요. 후후.. 맞습니다. 알란 스미시나 존도우나 홍길동이나 무명씨'나 모두 같은 말입니다.
 
위대한 영화 1 위대한 영화 1
로저 에버트 지음, 최보은.윤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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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애버트.

 

 

 

로저 애버트의 부고를 듣고 나서 그가 쓴 < 위대한 영화 > 를 다시 읽었다. 세 번째 읽는 중이다. 나는 그가 어떤 영화에 대해 내린 가혹한 혹은 관대한 평가가 정당한 것이었는가, 라는 의문이 종종 들기는 하지만 그가 뛰어난 문장가'라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저널리즘 비평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는 커다란 성과를 이룩한 것처럼 보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로저 애버트가 쓴 < 위대한 영화 > 를 처음 읽고 났을 때는 실망이 컸다. 영화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와 내가 가진 어쩔 수 없는 틈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읽고 나서 생각이 180도로 바뀌었다. 문장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어떤 영화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아우라'를 글로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아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가령 파스빈더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 에 대해 파스빈더는 감정의 고양된 상태와 침울한 상태를 영화에서 모두 제거하고,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조용한 절망만을 간직한다. “ 라고 담담하게 써내려갈 때 그의 영화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문장에 감탄했을 것이다.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 조용한 절망 > 이라는 문장을 읽을 때, 나는 울컥했다. 좋은 문장은 결코 잰 체하지 않는다. 그의 문장 몇몇을 소개한다. 아마... 당신은 아래 문장을 읽고 피,똥,쌀, 것이다.

 


 

 

노스페라투 : 노스페라투는 암과 전쟁, 질병과 광기 등, 새벽 세 시에 잠에서 깨어난 우리의 걱정거리 모두를 다룬 영화다.

 

 

3는 늘 애매모호한 시간이다. 오후 세 시는 무엇을 하기에는 너무 늦거나 이른 시간이며, 새벽 세 시 또한 잠을 자거나 깨어나거나 하기에는 너무 늦거나 이르다. 이 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애버트는 근심을 새벽 세 시라고 묘사했는데, 근심이란 원래 생각만 많지 실천하지 않는 것들의 총합이다.

 

지난해 마리앵바드에서 :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책은 아동용이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더 이상 얼버무릴 수 없을 때까지 끝없이 전개되고 반복되며, 다시 예전 이야기로 되돌아가기를 되풀이한다는 것을 어른들은 알고 있다.....( 중략 ) 영화 관람의 재미는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미리 내놓는 것은 패배나 다름 없다.

좋은 영화는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결말은 관객이 선택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 오고가는 교감이다. 그런데 해피엔딩은 결말이 명확하다. 애버트는 그것을 어린이용 서사라고 말하며 패배라고 규정한다.

 

카사블랑카: 마지막 장면의 클로즈업에서 버그먼의 얼굴은 혼란스러운 감정을 표출한다. 혼란스러웠을 법도 하다. 촬영 마지막 날까지도 비행기에 오를 사람이 누구인지를 확실히 아는 사람이 영화 관계자 중에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버그먼은 영화가 어떻게 끝날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 배경 사연은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감정의 신뢰성을 높여주는 기묘한 결과를 낳았다. 그녀는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어느 쪽으로 불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애버트가 훌륭한 문장가인 이유는 : 그녀는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어느 쪽으로 불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라는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성일이라면 이 문장을 이렇게 묘사했을 것이다. “ 할리우드 시스템은 배우와 스텝 간의 계급적 차이를 조성한다. 그것은 결국 비디제시스와 디제시스 간의 운명적 간극의 문제이며, 불화를 조성하고, 소통은 단절되며,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그러니깐 버그만이 공항에서 보여준 혼란스러운 연기는 매우 이상한 방식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녀의 연기는 디제시스에 어떤 주관성을, 내면화를, 착각을, 부정확성을, 무엇보다도 비현실성을 부여한다. “ 라고 쓰지 않았을까 ? 정성일이 쓴 골때리는 만연체는 참... 쓰다. 쓸개 같은 문장이다.

 

쉰들러리스트: (스필버그)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바를 수백만의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방식으로 말할 줄 아는 사람이다.

쉰들러 리스트를 좋아하지 않지만, 애버트의 스필버그에 대한 간결한 정의는 좋아한다. 스필버그는 확실히 자신이 말하고 싶은 바를 수백만의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방식으로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분명하다. 이 문장은 고스란히 로저 애버트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로저 애버트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바를 수백만의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방식으로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비록 그가 내린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그가 써내려간 문장을 읽으며 기꺼이 즐거워한다. 그것은 결코 쉬운 설득이 아니다. 로저 애버트가 가지고 있는 힘은 설득에서 나온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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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과 진단 - 문학 삶 그리고 철학
질 들뢰즈 지음, 김현수 옮김 / 인간사랑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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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들뢰즈'에게 빅엿을 !

 

 

그는 미스테리한 인물이었다. 한겨울이었는데도 가을 바바리에 검은 양복 바지가 전부였다. 말도 거의 없었다. 점심은 굶는 모양이었다. 비쩍 마른 몸에 퀭한 눈, 콧구멍 사이로 삐져나온 콧털 ! 유독 광대뼈가 튀어나온 그는 웃을 때마다 썩은 이'를 드러냈는데 웃음소리는 내지 않았다.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남자였다. 그는 직원이 아니라 일이 바쁠 때 일손을 거들기 위해 긴급 투입된 나이 든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며칠만 일하기로 했는데 일이 꼬여서 몇 개월을 그와 함께 하게 된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의 허리띠 " 바클 " 이었다. 서울대 문양'이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그가 서울대를 나온 운동권 학생으로 수배가 되어서 자신의 신분을 속인 채 도망 중이라는 설도 있었고,  출소하자마자 이곳에 왔다는 소문도 있었다. 가을에 잡혀서 다음해 겨울에 풀려나, 옷은 가을 옷 하나가 전부라는 그럴 듯한 추론도 덧붙여졌다. 내가 그 형'과 친하게 된 이유는 들뢰즈 때문이었다. 나는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고 들뢰즈의 < 앙띠 오이디푸스 > 을 읽고 있었는데 그가 오더니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물었다. 내가 그에게 책을 보여주었더니 그는 소리 없이 웃으며 들뢰즈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들뢰즈에 대한 상식이 없으면 묻지 못할 질문들이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한 가지 소문이 더해졌다. 서울대 철학과'라는 소문이었다. 며칠 후 그가 내게 오더니 책을 몇 권 내밀었다. 들뢰즈의 책 3권이었다. < 소수집단의 문학을 위하여 > < 의미의 논리 > 그리고 그 문제의 < 비평과 진단 > 이었다. 빌려주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자신에게는 필요없는 책이라며 가지라고 했다. 들뢰즈 그룹 스터디 때 사용하던 책이라 낙서'가 많다는 귀뜸도 해주었다.

 

책 < 비평과 진단 > 은 마치 편집 교정자의 작업 같았다. 밑줄과 책 모서리를 접은 양이 무척 많았다. 그리고 잘못된 띄어쓰기를 표시하기 위해 v 자를 표시하고, 온갖 교정 부호들이 페이지마다 가득했다. 그뿐이 아니다. 엄청난 메모'가 페이지마다 가득했다. 소문은 도망 중인 서울대 철학과 운동권'에서 전직 출판사 교정 직원'으로 바뀌었다. 내가 보기엔 이 책은 그룹 스터디의 흔적이 아니라 교정자의 작업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기는 읽었으나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제 9장 < 어린이들이 하는 말 > 에서 번역가는 문장에 的을 남발했다. " 부모적인 형태 " , " 부모적 인물들의 단순 확대 " , " 지도 제작적 개념 " , " 인칭적... " , " 천상적 상황 " 등등... 이 짧문 시론에 과녁 적이 넘쳐났다. 태어나서 만파식적에 대해서는 들어봤으나 " 지도 제작적 개념 " 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도통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이해 못하면 덮는 게 상책이다. 책을 덮고 났더니 묘한 컴플렉스가 생겼다. 하여튼 그는 그렇게 몇 개월을 함께 하다가 사라졌다. 그와 함께 이 책도 책장 어딘가에 박혀서 몇 년 동안 먼지만 쌓이고 있었다. 내가 다시 이 책을 꺼내서 읽게 된 계기는 < 필경사 바틀비 > 때문이었다. 읽다가 문득 들뢰즈'가 이 책에 대해 언급했다는 기억이 떠올라 찾아보니 그 옛날 < 비평과 진단 > 에 수록되어 있었다.

 

그때는 멋모르고 읽었을 때이니 다시 읽으면 이해가 가리라. 그런데 웬걸 ?! 여전히 무슨 소릴 하고 있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이 책과 관련된 글을 찾다가 로쟈 님'의 페이퍼'를 보게 되었다. 아이구야, 그런 문제가 있었구나. 다음은 < 비평과 진단 > 에 수록된 " 바틀비 혹은 상투어 " 에 나오는 문장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사하게 처신하는 소송대리인의 비정상적 행동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어찌 그를 제대로 알 수 있을까 ? 소송대리인은 중요한 직업상의 승진을 한다. 사장 슈레버(Schreber ) 또한 승진하고 나서야만 정신착란을 면할 수 있음을 상기해 볼 수 있다.

- p 137

 

로쟈 님의 친절한 해석에 의하면 사장 슈레버'가 아니라 법원장 슈레버'라고 한다. 프로이트에 나오는 그 유명한 법원장 슈레버 말이다. 그런데 번역가는 법원장을 동네 사거리 사장님'이라고 번역을 했다. 솔직히 나는 이 문장을 읽었지만 그냥 동명이인이려니 했다. 법원장 슈레버'는 프로이트를 대충 알아도 알 수 있는 인물이니 번역가가 실수를 한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맙소사 ! 들뢰즈의 서적을 번역할 정도이면 들뢰즈에 대한 기본적 상식은 갖추어져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알뛰세르의 책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맑스에 대해 해박해야 하고, 라캉의 책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먼저 프로이트에 대해 알아야 한다.

 

 

 

 

 

 

 

 

 

 

 

 

 

 

 

 

 

 

 

들뢰즈의 책 번역도 마찬가지다. 들뢰즈는 < 앙띠 오이디푸스 > 와 < 천 개의 고원 > 을 썼을 정도이니 프로이트는 기본이 아닐까 ? 프로이트는 1911년 < 편집증 환자 쉬레버 - 자서전적 기록에 의한 정신분석 > 이라는 중요한 글을 발표한다. 설령 번역가가 프로이트를 읽지 않았다고 해도 들뢰즈는 < 앙띠 오이디푸스 > 에서 " 기관 없는 신체 " 를 다루면서 그 사례로 법원장 슈레버'를 중요한 인물로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라캉도 법원장 슈레버에 주목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하지는 않겠지만 법원장 슈레버'는 편집증 환자의 슈퍼스타였다. 그런데 어떻게 법원장 슈레버'를 동네 아무개 회사 사장님이라고 소개를 할 수가 있는 것일까 ?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그것은 마치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를 프로이트의 아내로 소개하는 꼴과 무엇이 다른가. 번역가가 들뢰즈에게 빅엿을 먹인 꼴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책에 그어진 수많은 밑줄과 메모 그리고 교정 부호들은 인쇄가 잘못되어 발생한 오탈자'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이상한 번역으로 인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문장에 대한 재해석이었던 것은 아닐까 ? 저 위의 문장을 책에서 찾아보니 사장 슈레버'라는 문장 앞에 밑줄을 긋고는 물음표 ( ? ) 두 개가 신경질적으로 써져 있다. 그나저나 그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을 지 궁금하다. 한겨울 가을 베이지색 바바리와 검은 양복 바지 하나'로 겨울을 버티던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 여전히 수배 중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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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과 사이코
스티븐 레벨로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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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히치콕과 관련된 책은 의외로 많다. 그만큼 히치콕에 대한 현대인의 열광'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히치콕에 대한 가장 탁월한 저서는 트뤼포가 히치콕을 인터뷰한 < 히치콕과의 대화 > 다. 이 인터뷰는 위대한 스승/히치콕'에 대한 제자의 존경/ 트뤼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터뷰어의 미덕은 겸손이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좋으나 단정적이서는 안 된다. 주체는 인터뷰이/감독이지 인터뷰어/평론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정성일은 질문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그가 박찬욱과 영화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언제나 박찬욱보다 많이 안다는 전제로 대화를 시작한다. 미친 짓이다. 지첵의 < 삐딱하게 보기 > 도 명불허전이다. 지첵은 히치콕을 통해 라캉으로 가는 길을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이 책과 함께 < 항상 라캉에 대해... > 도 읽어볼 만하다. 그리고 < 여성 괴물 > 과 < 너무 많이 알았던 히치콕 > 은 여성적 시각으로 히치콕 영화를 해부한다. 끝으로 < 히치콕 > 은 히치콕을 다룬 전기 중 가장 꼼꼼하다.

 

 

 


 

 

 

 

 

 

 

 

" 그건 영화에서 흔히 쓰는 방식이지 ! "

 

 

 

왕가위와 히치콕은 서로 정반대의 작업 스타일'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왕가위는 편집에 목숨을 걸었고, 히치콕은 촬영에 목숨을 걸었다. 사실 < 동사서독 > 은 자신의 영화에 대해 스스로 신뢰를 할 수 없어서 우왕좌왕한 결과였다. 영화 촬영 도중 내용이 바뀌어 동사 역을 맡은 배우가 서독을 하고, 서독을 연기하던 배우는 동사 역을 하게 되었다. 한 달 동안 찍었던 촬영은 없던 일이 되고 다시 찍기를 반복했다. 제작 기간이 2년 가까이 소요되자 왕조현은 자진 하차'를 하고 사막을 떠난다. 왕가위는 자신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에 대해 몰랐던 것 같다. 그는 산더미처럼 쌓인 필름을 편집실에 가지고 가서 100분 분량으로 간추리는 작업에 몰두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당연히 서사는 엉망이었다. 하지만 왕가위는 행운아였다. 과정은 엉망이었지만 결과는 언제나 훌륭했으니깐 말이다. 그가 원한 것은 서사가 아니라 이미지'였기 때문이었다.

 

반면 히치콕은 만약을 대비해서 다양한 설정으로 찍는 어설픈 짓따위는 하지 않았다. 철저한 계산 아래에서 촬영이 되었기 때문에 자투리 촬영 필름을 남기지 않았다. 사실 영화사가 자투리 필름으로 편집실에서 장난을 치는 꼴사나운 짓을 보고 싶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 컸다. 영화사는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을 들어내려고 해도 그 장면을 대체할 촬영분이 마땅히 없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제작했던 데이빗 셀즈닉은 히치콕의 이러한 꿍꿍이를 두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히치콕의 촬영 방식을 < 직소 퍼즐 > 이라고 불렀다. 직소퍼즐 게임이 1000조각 중 하나'라도 없으면 완성이 안 되듯, 히치콕 영화 또한 한 조각이라도 없으면 완성이 되질 않았다. 아이구야, 화가 난다. 화가 나 !!!

 

 

영화 < 사이코' > 는 히치콕 입장에서 보면 저예산 영화'에 가까웠다. 총제작비로 80만 달러'가 들어갔다. 티븨 30분 단막극 하나에 평균 10만 달러의 비용이 들어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는 티븨용 90분짜리 특별판'이라고 해야 된다. 그는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 실제로 티븨 드라마 촬영 팀'과 작업을 했다. 이유는 촬영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였다. 티븨 제작 시스템에 익숙한 기술자들은 히치콕의 의중을 쉽게 이해했고 일을 빨리 빨리 밀어붙였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 영화의 흥행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위의 영상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지금 보아도 파격적인, 6분짜리 사이코 예고편이다. 그는 이 예고편에서 관객을 철저하게 속인다. 히치콕은 부인의 방'을 안내한 후 침대를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여긴 그 여자의 방입니다. 침대에는 그녀가 누웠던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오메, 후덜덜덜덜 ! " 그는 예고편에서 존재하지 않는 부인'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설명한다. 그것은 자신의 트릭을 감추기 위한 계산이었다. 더군다나 예고 끝에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은 쟈넷 리'가 아니라 베라 마일즈'이다. 예고편이란 영화를 보기 전에 상영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 영화 < 사이코 > 를 보기 전이었던 관객들은 베라 마일즈'가 살해당하는 것으로 알았을 것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영화 속에서는 최고의 스타 중 하나였던 쟈넷 리가 30분 만에 살해당한다. 이처럼 예고편은 온통 거짓말투성이'다.

 

 

            

 

내가 히치콕의 샤워 씬'에서 가장 궁급했던 장면은 샤워 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정면에서 찍은 장면이었다. 정면에서 찍었다면 물방울이 카메라 렌즈에 튀어서 흔적을 남길 텐데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아서 늘 궁금했었다. 거기에 대한 해답은 위의 동영상 속 남자가 비밀을 가르쳐준다. 정답은 샤워 꼭지의 가운데 구멍을 막고 꼭지 원 둘레에만 물이 나오도록 고안한 장치'이다. 그러니깐 물줄기는 모두 카메라 바깥으로 흘러내리고 정작 중심부는 물이 내리지 않는 구조가 된 것이다. 태풍의 눈처럼 말이다.

 

히치콕이 즐겨 사용했던 말 가운데 하나는 " 그것은 영화에서 즐겨 쓰는 방식이지 ! " 였다고 한다. 완곡하게 거절을 하지 못했던 히치콕은 돌려서 < 진부하고 뻔한 것 >을 < 즐겨 쓰는 방식' > 이라고 돌려서 말했다. 그것은 곧 거절의 뜻이었다. 50년이 지난 이 영화를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쇼킹'하기보다는 오히려 클래식'하다. 이제 그가 사용했던 영화 기술은 표준이 되어서 이제 즐겨 쓰는 방식이 되어 버렸다. 시간은 이처럼 새로운 것을 낡은 것으로 만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나도 마스터피스'는 영원하다는 점이다.

 

 

▦ 참고로 영화 속 피는 초콜릿 시럽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칼이 " slashing " 하는 소리는 칼로 수박을 찌를 때 나는 소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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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Lengua Salvada / The Saved Language (Paperback, Translation)
Canetti, Elias / Debolsillo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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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된 혀.

 

속초로 떠나기 전 책장 2개 분량의 책을 헌책방에 판 적'이 있다. 간직할 책과 팔 책을 분류했던 것이 아니라 그냥 모서리 책장에 있는 책'을 모조리 팔았다. 여비가 없어서 판 것은 아니었다. 와,신,상,담. 바늘 침대에서 잠을 자고, 쓸개를 먹는 심정으로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에서였다. 책이 없는 텅 빈 책장은 일일이 못을 빼서 분리한 후 겨울에 장작으로 쓸 요량으로 창고에 쌓아두었다. 책장이 있던 자리엔 네 개의 꼭지점이 방바닥에 흔적을 남겼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나는 법.

 

그날 밤 그 돈으로 술을 마셨다. 내가 지금 마시는 술은 내가 판 책이구나. 묘한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내 아내가 몸을 팔아서 벌어온 화대'로 술을 마시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술에 취해서 책장 속에 꽂힌 책들을 보다가 엘리어트 카네티의 < 군중과 권력 > 에서 시선이 멈췄다. 아, 그래.... 엘리엇 카네티 ! 나는 빠르게 그의 저서 < 구제된 혀 > 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무심코 팔아버린 책 속에 이 책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서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라면 아쉽지 않은데 이 책은 1982년 심설당에서 나온 이후로 출판이 안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구하기도 힘들 뿐더라 내게는 매우 뜻 깉은 사연이 있는 책이었다. 그런데 그만 이 책을 팔아버린 것이다. 책을 판 지 며칠이 지난 후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다행히 책 분류 중이어서 보관 중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 책은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는 아직까지 책을 팔지 않고 있다. 내가 이 책을 구입하게 된 것은... 그러니깐  5년 전 일이다.

 

예일여고 헌책방에서 카네티의 < 구제된 혀 > 를 발견했을 때, 나는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었다. 이 책이 여기서 발견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낡아서 누렇게 변해버린 종이를 넘길 때마다 종이가 바스러질까봐서 조심스레 책장을 넘겼었다. 마치 비본을 보는 것처럼. 이 책을 헌책방에 내다 판 사람은 누굴까 ? 다행히 책 뒷장의 빈 속지'엔 책 주인의 메모'가 적혀 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녕 ! 반갑다.

아마 이 글을 읽을 즈음이면 너는 헌책방에 있을 것이다. 예일여고 < 숨어 있기 좋은 책방 > 이겠구나. 내가 이 책을 그곳에 팔았거든. 네가 자주 다니던, 너의 집 근처 헌책방이잖아. 우리가 종종 가던 그 책방. 내 예상이 맞다면 너는 이 책을 발견하고는 기뻐할 거야. 왜냐하면 네가 그토록 찾던 그 책이었으니깐 ! ( 혹시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닌 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 책을 사지 말아주세요. 단 한 사람을 위해 쓰여진 러브레터이니깐 말이죠. ) 나... 누군지 알겠니 ? 애린이야. 한애린 ! 이제 기억나지 ? 그동안 난 몸이 아팠어.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가 결국 졸업은 하지 못하게 되었어. 병원에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거든. 문득 네 생각이 나더구나. 나... 널 좋아했거든. 죽기 전에 널 찾고 싶었지만 이젠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추한 몰골로 널 만날 수도 없었을 뿐더러, 너의 소식을 접할 수도 없었어. 넌 감쪽같이 지상에서 사라졌더구나. 혹시 네가 그토록 가고 싶다던 페루로 떠난 것일까 ? 오랜 고민 끝에 이렇게 너에게 러브레터를 보낸다. 네가 좋아하는 책의 빈 속지에 말이다. 넌 내게 말했지. 이 세상 모든 연애편지를 접어야 한다고. 접고 접어야 편지봉투 속에 들어간다고 말이지. 하지만 난 접지 않고도 너에게 띄울 수 있어. 지금처럼 ! 이 글을 발견했을 즈음이면 난 멀리 떠났을 거야. 헌책방이란 헌책방은 모두 뒤졌어. 전국을 돌아다녔지. 어렵게 얻은 책이다. 내가 너에게 주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선물이다.

 

안녕, 나의 날개접은새 !

2002.4.01 애린

 

 

 

 

가 그녀의 이 메모 편지를 읽었을 때는 이미 6년이 지난 후였다. 그러니깐 2007년이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책방 주인에게 책을 내밀었다. 주인이 나를 바라보았다. 댁이 ***이요 ? 네에, 제가 ***입니다 ! 혹시 이 책을 판 사람 기억하세요 ? " 그럼... 기억하고 말고 ! 그 아가씨는 이 책의 주인이 있다며 내게 당부를 했다오. 그리고 책 값도 이미 지불했어요. 잠시만... 그 아가씨가 두고 간 사진이 있었는데... 아, 여기 있구려 ! 사진을 주며 꼭 이 사람에게 이 책을 주라고 하더군. 언젠가는 올 거라고 하면서 말이지. 내가 그때의 일을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아가씨가 슬피 울어서 생각이 나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지만 인연이 아니라고, 자신은 곧 먼 곳으로 떠난다고... 이 책은 이미 값을 지불했으니 그냥 가지고 가시구랴. 아픈 사랑 너무 오래 두지는 마시구랴. 사실 이 책 한 권 때문에 그동안 책방을 접지 못했다오.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그토록 슬피 우는가 호기심이 생겨서 이 책을 읽다가 그 아가씨가 쓴 메모를 읽었다오. 읽지 말았어야 했어. 손님을 애타게 기다린 건 그 아가씨뿐만이 아니라오. 이 늙은이도 손님을 기다렸소. 이젠 가게 문을 닫아야 할 것 같아. 어디 가서 술이나 한 잔 합시다. 이제 손님 얼굴이 기억 나는구려. 아니, 그동안 왜 그렇게 발길이 뜸했소? "

 

*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대입 재수 학원에서였다. 한 여자가 필기를 하지 못했다며 교재를 빌려달라고 했다. 바로 그 여자였다. 창백한 여자였다. 여자와 나는 문학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쉽게 친한 사이가 될 수 있었다. 우리는 종종 문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는 했다. 엘리엇 카네티에 대한 이야기와 카프카와 그르니에의 섬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우스갯소리'로 나중에 둘이 동업을 해서 헌책방을 열자고 했다. " 내 책과 네 책을 모으면 꽤 근사한 헌책방이 되지 않을까 ? " 그녀는 맑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말은 제안이 아니라 고백이었다. 그땐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우리의 인연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할 말과 못할 말을 남겨둔 대 우리는 그렇게 잊혀졌다. 그녀를 헌책방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이면서 동시에 못할 말이었던 사랑 고백을 한 것이다. 책이면서 동시에 연서인, 고백이면서 동시에 유서가 되어버린 책을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언젠가 내가 헌책방을 열면 가게 이름을 < 애린 책방 > 으로 하겠어. 잘 자라, 캄캄한 밤 하늘을 보면 종종 네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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