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할 땐 스피노자 땐 시리즈
발타자르 토마스 지음, 이지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마음 교정 구락부

 

 

< 에티카 / 스피노자 > 를 읽은 적은 없지만  < 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 를 읽은 적은 있다. < 에티카 > 라는 단어'가 스피노자'가 특허를 낸 낱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대중의 " 암묵적 동의 " 와 " 정서적 합의 " 라는 것이 있다.  에티카(윤리학) 하면 스피노자'다. 그런데 신형철이 쓴 < 몰락의 에티카 > 에서는 스피노자'에 대한 언급이 한번도 없었기에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 작가의 말 > 을 대신한 프롤로그'를 훑어보아도 스피노자에 대한 언급은 없다.

 

대신 3페이지 분량이 조금 넘는 프롤로그에는 프로이트, 니체, 하이데거, 들뢰즈/가타리, 토마스 만, 르네 지라르, 루카치, 밀란 쿤데라, 가라타니 고진, 셰익스피어, 알랭 바디우'와 같은 세계 지성인의 이름이 미친 듯이 쏟아진다. 한국 문학 평론집을 읽을 때마다 발견하게 되는 이 < 진풍경 > 은 언제나 씁쓸하다.  정작 스피노자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신형철은 < 에티카 > 를 읽지 않은 것은 아닐까 ?  그런데 타이틀로 < 에티카 > 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좀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 판단이다.

 

나 또한 스피노자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 에티카 " 라는 책 제목과 " 깊게 파기 위해서는 넓게 파라 ! " 라는 잠언이 전부였다. 내가 스피노자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이유는 윤리학'이란 말 자체가 고리타분'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17세기 철학자'라는 옵션도 크게 작용했다.  철학의 계보'를 따라 체계적으로 읽기에는 나는 지나치게 아마츄어였다.  현란해서 현기증이 나는 현대 철학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 하지만 들뢰즈'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길래, 일단은 알기 쉽게 풀어 쓴 스피노자 입문서인 < 비참할 땐 스피노자 > 란 책을 읽기로 했다. 하지만 책을 처음 넘겼을 때의 당혹감'이란......

 

우선 책 만듦새'는 뭔가 초현실적'이다. 표지 디자인에 사용된 서체는 마치 불량 식품 봉지에 인쇄된 조악한 글자 같다. 굴림체도 아니고, 돋움체도 아닌, 그렇다고 영화 자막체'도 아닌 초록색 제목은 압도적일 만큼 충격적이다. 싸구려'에 대한 키치적 접근일까 ? 안'을 살펴보아도 초현실적인 분위기'는 그대로다. 레이아웃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급히 인쇄한 홍보물 디자인'보다 후졌다. 이런 책 디자인,  참.... 오랜만이다. 출판사 < 동문선 > 보다 후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책 디자인에 신경을 쓰는 출판사가 책 내용도 훌륭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앍고 있는 나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읽어보기로 한다.

 

그런데 반전은 지금부터다. 처음에는 30분 정도 대강 훑다가 던져버릴 생각이었는데 내용은 책 모양새와는 달리 매우 알찼다. 스피노자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발타자르 토마스'가 쓴 내용은 성실했고, 번역은 무척 깔끔했다. 번역된 철학서'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그 신랄한 번역투'는 깔끔하게 정리 정돈이 되어 있었다. 오히려 이 책에 비하면 신형철이 쓴 < 몰락의 에티카 > 가 번역투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존재'는 스피노자 자체'이다.  카프카 식으로 말하자면 스피노자는 < 도끼 > 와 같은 존재였고, 니체 식으로 말하자면 스피노자는 < 망치 > 와 같은 존재였다. 여기에 사족을 하나 더 붙이자면 김훈 식으로 말하자면 스피노자는 < 칼 > 과 같은 존재였다.

 

이 짧은 스피노자 소개글을 읽고 < 에티카 >를 판단하는 것은 우습지만,  내가 이 책에서 경험한 < 에티카 > 는 21세기 신경과학자가 타임머신을 타고 17세기로 돌아가 작성한 텍스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피노자에게는 철학자 특유의 관념적 허세'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철저하게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몸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놀라운 사실은 스피노자는 17세기 인간'이라는 점이다. 현대 신경 뇌 과학자들이나 알 수 있는 정보'를 스피노자는 이미 400년 전'에 이미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뇌 신경'에 관심이 많아서 뇌 신경 과학서'를 꽤 읽었는데 현대 뇌 관련 과학서'들이 말하는 뇌와 마음의 관계는 이미 스피노자가 꿰뚫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혹시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는 아니었을까 ? 내게 있어서 스피노자는 < 미래의 철학자 > 이자 < 미지의 철학자 > 이다. 그러므로 < 에티카 > 는 < 미래의 책 > 이면서 < 미지의 책 > 일 것이란 판단이 든다.  < 비참할 땐 스피노자 > 는 주전 공격수들이 헛발질과 똥볼을 찰 때, 수비수와 예비 후보들이 선전을 펼친 축구 경기'와 같다. 출판사'가 성의 없이 헛발질'을 할 때, 이 책을 살린 것은 전적으로 스피노자, 발타자르 그리고 번역가의 힘이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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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orte 2013-07-23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곰발님이 추천! 비참할때, 우울할때, 무력할때... 어쩐지 꼭 구원받아야 할 듯한 영혼으로 만드는 제목들 때문에 선뜻 꺼려했는데.. 함 읽어봐야겠네요. 그런데 이 책들 읽으려면 한참 기다려야겠어요. 지금은 안 비참, 우울, 무력하니까요. 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7-24 01:23   좋아요 0 | URL
제목도 좀 웃겨요. 아마 제목은 출판사 권한인 것으로 아는데 원제는 스피노자와 함께 행복하기'인가, 뭐 그럴 겁니다. 생각해 보니 < 비참할 땐 스피노자 > 도 뭐 그리 나쁜 건 아니지만 제목만큼은 원제 그대로 해주는게 전 좋더라고요.

내용은 무척 좋습니다. 강추입니다. 스피노자 자체에 매력을 느겼어요. 스피노자 책이 어렵다고 하네요. 그래도 함 읽어보렵니다... 흠흠..

만화애니비평 2013-07-24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알튀세르가 자신을 스피노자 주의자라고 했겠군요. 그는 분명히 마르크스주의자였는데 말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3-07-24 14:09   좋아요 0 | URL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 항상 뽑는 사람이 스피노자'라고 하더라고요.. 자세히는 잘 모릅니다만.. 흠흠...

히히 2013-07-24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곰...발님 글을 처음 접하고
그 이후의 글은 거의 빠트리지 않고 정독을 했다고해도 켕기는 데가 없을 정돈데
자신있게 추천한책은 스피노자군요.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 오늘 배송되어 왔는데
님은 스피노자로 더위을 인내하라 하시니
끄덕끄덕 받아들이지요.
절래절래 도망가지나 말아야 할 텐데...

곰곰생각하는발 2013-07-24 14:11   좋아요 0 | URL
강신주가 아마 유일하게 단 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면 스피노자를 뽑겠다고 한 말이 얼핏 생각나는데요.
아닌가 ? 하여튼.... 스피노자'가 요즘 인기를 얻는 것 같습니다.
저도 스피노자에 대해서는 거의 깜깜이'라 잘 모릅니다.
강신주 선생이 무슨 얘길 하나 궁금하네요..

yamoo 2013-08-01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하철에서 우하하하...웃으며 이 글을 읽었습니다. 옆에 앉은 사람들, 앞에 앉은 사람들 한 번씩 쳐다보더군요.ㅎ
이 책...서점 가판대에 깔린 걸 봤는데...표지가 대략 후져서 그냥 지나쳤었는데....읽어 봐야 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솨~~

아, 근데 저는 이상하게도 강신주가 싫더이다. 왜 싫은지는 잘 몰겠다는..--;;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9 10:59   좋아요 0 | URL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
댓글 늦게 달았군요. 흠흠.....
표지는 후졌지만 내용은 알차요. 읽기를 권합니다.


이유없이 싫은 사람 있어요. 이땐 대책이 없습니다.ㅎㅎ
 
토리노의 말
벨라 타르 감독, 야노스 데르지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가 상징성'에 기반을 둔다면, 벨라 타르는 현시성'에 방점을 찍는다. 그것은 즉물성이다. 벨라 타르는 그 어떠한 첨삭 없이 날것을 현시함으로써 진실을 보게 만든다. 그의 영화는 온갖 상징으로 압도되는 알레고리화'라기 보다는 쿠르베나 일리야 레핀의 소박한 그림에 가깝다. 그는 < 과정을 과장 > 없이 보여준다. 양말을 신고, 바지를 입고, 셔츠를 입고, 그 위에 스웨트를 걸치고, 마지막에 외투를 입는다. 그리고 옷을 벗을 때는 그 역순을 편집 과정 없이 집요하게 보여준다. 말의 장신구를 입히는 과정과 벗기는 장면도 지루하도록 반복된다. 결국 과장 없는 과정의 목격을 통해서 관객이 깨닫는 것은 우리가 깨닫지 못했던 일상의 반복'이다. 인간은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감독은 생의 의지를 죽음의 묵시록과 연관시켜서 인간은 시지푸스처럼 부조리한 존재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벨라 타르는 生은 환희가 아니라 형벌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생의 의지'에 대한 경멸을 의미할까 ?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늙은 남자가 얼어버린 감자'를 씹을 때, 우리는 어떤 숭고함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 숭고함은 생의 찬양이 아니다. < 겨우 > 살아야 하는 인간'에 대한 감독의 연민이다. 영화 < 토리노의 말 > 에서는 니체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니체가 늙고 병든 말의 목덜미'를 잡고 울다가 미쳐버린 곳이 바로 토리노'다. 이 일화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은 롤랑 바르트의 < 카메라 루시다 > 이다. 그는 " 1889년 1월 3일, 학대받아 숨진 말의 목덜미에 울며 매달리던, 연민'때문에 미쳐버린 니체 " 라고 적는다. 나는 이 하나의 문장 때문에 이 책을 사랑했다. 그것은 박완서의 < 그 남자네 집 > 에서 한때의 찬란을 " 내 생애 구슬 같은 겨울 " 이라고 말해서 내 심장을 뛰게 했던 것과 같은 울림이다.

 

- 토리노의 말 vs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중 

 

 

 

 


 

 

 

 

 

 

 

 

말(馬) 과 말 (語)

 

 

영화사가 쏟아내는 과장된 광고 카피'에 동의한 적은 없으나 < 토리노의 말 > 에 대한 " 압도적 걸작 " 이라는 문장'에는 동의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롱테이크'는 타르코프스키가 60년대 만든 최고 걸작 < 안드레이 류블레프 > 를 떠올리게 만든다. 단 서른 개의 롱테이크로 만들었다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한국 영화 평론가들이 우상으로 여기는 ■ < 서편제 / 임권택 > 롱테이크'가 쪽팔려서 미칠 지경이다. 벨라 타르가 이 영화에서 선보인 롱테이크'는 앞으로도,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감상하지 못할 것이다. 이로써 나는 두 개의 과장 광고'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머지 하나는 < 칼의 노래/ 김훈 > 에 대한 " 벼락 같은 축복 " 이라는 카피다. 걸작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참고 견디는 것'이다.  좋은 약은 쓰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단 한번도 카프카의 소설이 재미있다고 느낀 적이 없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도 마찬가지이고, 우엘벡의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책에서 재미 만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  가왕 조용필은 피날레를 장식하는 법, 전율'은 언제나 마지막에 등장하는 슈퍼스타'다.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끝은 도도한 법이다.  

 

■ 1. 정성일은 작가주의자'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번 믿으며 끝까지 간다는 말이다. 위대한 감독이 만든 모든 영화가 위대하다는 생각이 바로 작가주의적 시각이다. 그런데 이러한 찬양은 극히 위험하다. 미술가와 영화감독은 다르다. 그림은 오로지 화가 혼자의 붓으로 완성하지만 영화는 수많은 분야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결과이기 때문에 그렇다. 작가주으적 시각은 미술 작품에는 적합하지만 영화에는 적합하지 않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 다크 라이즈 > 는 훌륭하지만 그 속편은 형편 없기 때문이다. 임권택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길소뜸은 좋은 영화이지만 천년학'은 끔찍하고, 달빛 길어올리기'는 지역 특산품 홍보 영화 같다. 정성일은 미술 작품과 영화 작품을 혼동하는 것 같다.

 

 

< 토리노의 말 > 은 재미'가 없다. 무대라고는 늙은 남자와 딸, 병든 말, 돌집 그리고 바람'이 전부인 영화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대사도 거의 없다. 무성영화처럼 진행된다. 감독은 지루한 일상을 지독하게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여자는 일어나면 옷을 입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 나르고, 한쪽 팔이 불편한 늙은 노인이 옷을 입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감자를 삶는다. 기계적 반복이다. 벨라 타르'는 이 장면을 편집 없이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 영화는 그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면 압도적인 감정'이 몰려온다. 이 압도적 몰입'은 스펙타클'과 유사하다.  벨라 타르'는 지구 종말'을 다룬 그 무수한 헐리우드 스펙타클 무비 감독을 병신으로 만드는 재주가 탁월하다. 이 영화를 보다가, 니체를 생각하다가, 병든 말을 생각하다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생각하다가, 결국에는 으앙 으앙 울게 된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서사는 < 시지푸스의 신화 / 알베르 까뮈 > 이다.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 놓고 나서 뒤돌아서면 바위가 바닥으로 굴러서 다시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놓아야 하는,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해야만 하는, 이 일상의 반복 ! 까뮈가 시지푸스 신화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 희망 없는 노동 " 이다. 이 일상이라는 형벌의 중심에 시지푸스'가 있었다면, < 토리노의 말 > 에서는 여자가 있다. 여자는 기계처럼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것은 마치 시지푸스가 바위를 굴리는 것과 같은 의미 없는 반복이다. 그리고 돌집은 명백하게 시지푸스 산에 대한 은유이다.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늙은 남자와 여자는 오로지 이 돌집을 벗어나기 위해 얼음처럼 차가운 감자를 씹는다. 하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병든 말과 물이 마른 우물과 그치지 않는 칼바람'은 고립을 더욱 강화시킬 뿐이다. 그들에게 희망은 없다. 실존'만 있을 뿐이다. 희망이 없는 실존은 얼마나 허망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형벌은 " 없는 희망 " 을 있는 것'처럼 만들어내는 것이다.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는 없는 희망'을 마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익살꾼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희망'은 달콤한 사탕에 지나지 않는다. 내일 처형에 처해질 것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형수에게 간수가 희망을 말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사기'이다. 프르스트는 이런 말을 했다 " 행복은 몸에 좋다. 하지만 정신의 힘을 길러주는 것은 고뇌'다."  이 말을 살짝 비틀어 인용하면 이런 말도 된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몸에 좋다. 하지만 정신의 힘을 길러주는 것은 (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인식'이다.  이 인식의 전환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김난도의 < 아프니깐 청춘이다 > 따위를 지독하게 혐오하는 까닭은 없는 희망을 억지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우스가 시지푸스의 귀에 대고 " 저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놓는 임무를 완수한다면 너에게 자유의 신분을 줄께 ! " 라고 말하는 잔꾀'와 다르지 않다. 바위는 반드시 아래로 구르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미션파서블한 것처럼 보이는 임무는 사실은 미션임파서블'한 과제'이다. 지금의 성난 청춘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인식이다. 나는 김난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김난도여, 사과나무는 당신이나 심어라 !  

 

< 겨우 > 라는 단어가 있다. 겨우는 없다고 하기에는 조금 있는 상태이고, 있다고 하기에는 없는 것이나 다름 없는 < 있음 > 이다. 그러니깐 없음 < 겨우 < 있음'의 순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늙은 남자가 얼음처럼 딱딱한 감자를 씹을 때, 우리는 이 "겨우" 를 목격하게 된다. 까뮈의 부조리'는 < 겨우 > 를 의미한다. 결핍과 과잉 사이의 존재가 실존이요, 부조리다. 실존은 곧 겨우'다.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겨우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여기서 겨우'라는 좌표를 다시 설정하자. 없음이 절망을 의미하고 있음이 희망을 의미한다면 겨우는 절망과 희망 사이에 놓은 변곡점이 될 것이다. 벨라 타르'는 이 영화를 끝으로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의 선언은 자신의 한계에 따른 절망'이라기 보다는 어떤 성취의 결과처럼 느껴진다.

 

 

 

 

 

 

 

계속 이어지는 글

 

1. 흥분이 가시지 않아서 계속 쓰게 된다. 사실 이 영화는 불가능에 가까운 영화라고 보아야 한다. 당신은 이 영화에 대해 무엇이 위대한가, 라는 질문을 할 수가 있는데 첫째 이런 식으로 영화를 찍으면 촬영이 미션 임파서블'하게 된다. 이 영화에 쓰인 쇼트가 30개 정도'라는데 보통 영화에서는 최소한 1000개 이상이 쓰인다. 마이클 베이 같은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들의 영화에는 보통 4000에서 5000개까지 찍는다. 결국 이 영화의 쇼트가 30개라는 것은 30개 모두를 롱테이크로 찍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가능한 모험에 가깝다.  2.  영화 첫 장면에 나오는 트래킹 장면'은 매우 아름답다. 말의 움직임과 카메라의 동선이 정확히 일치해야 하는데 영화는 무엇보다도 훌륭하게 이끌고 있다. 깜짝 놀랐다. 3. 말의 연기도 훌륭하다. 아마도 수많은 엔지를 통해 얻어낸 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 노력에 경배를 ! 

 

5. 지금 오프닝 롱테이크 장면 ( 마차 장면 ) 을 보고 있는데, 롱테이크가 이렇게 다양한 앵글'을 선보였다는 것 자체가 미스테리'처럼 느껴진다. 일정한 회색톤을 유지하는 야외 촬영 장면도 기적처럼 보인다. 정말...... 뛰어나다. 압도적이다 !!

 

6. 아... 다시 보니 정말 끝내주네. 사실 이 영화 볼 때에는 독감에 걸려서 누워서 보았다. 그냥 좋은 영화이겠거나 생각했을 뿐 이렇게 좋은 영화인 줄은 상상을 못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드는 의문 중의 하나가 사나운 바람을 어떻게 동원했는가 였다. 물론 거대한 선풍기를 돌리는 것이 일반적인 해결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 환풍기에 의해 만들어진 바람은 뭔가 작위적이다. 왜냐하면 전경의 나무의 환풍기 바람에 의해 가지가 흔들리지만 멀리 떨어진 후경의 나무는 7월의 나무처럼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람이 동원된 장면을 볼 때는 항상 근경과 원경을 눈여겨보는데 이 영화에는 영화 속 나무 전체가 흔들린다. 닝기미... 환풍기 100대를 설치했다는 것을까 ? 이리저리 찾아보니 답은 헬리콥터'였다. 헬리콥터'라면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헬리콥터를 사용하면 동시 녹음을 할 수가 없다. 결국 이 영화의 모든 야외 음향은 녹음실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이 영화가 놀라운 점은 바로 완벽한 소리에 있다. 내가 바람으로 동원된 헬리콥터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 이유에는 마치 동시 녹음'처럼 진행된 음향 때문에 깜빡 속은 것이다. 굉장하다. 스고이 !

 

7. 바람의 디테일과 함께 극찬받아야 할 점은 바로 소리'이다. 바람 소리'를 잡아낸 음향은 탁월하다. 묘하게 음악적이다. 8. 롱테이크는 필연적으로 공간의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왜냐하면 쇼트와 쇼트 사이의 편집은 기본적으로 조작'이다. 하지만 롱테이크는 하나의 쇼트이기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감독은 리얼리티를 위해 롱테이크를 선호한다. 쉽게 말해서 폭력 시퀸스에서 쇼트를 남발하면 관객은 그 장면이 가짜 액션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영화 < 올드 보이 > 에서의 복도 폭력 장면'은 진짜 폭력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롱테이크로 찍혔기 때문에 그렇다. 벨라 타르'가 이 영화를 30개의 롱테이크로 찍은 이유는 사실주의에 대한 집착 때문처럼 보인다. 그것은 마치 귀스타프 쿠르베의 고집을 닮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천사를 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천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9. 이 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평단의 해석처럼  < 토리노의 말 > 은 창세기가 아닌 묵시론을 말한다.  창조가 아닌 소멸이다. 6일째 되는 밤, 빛 대신 어둠이 찾아온다. 그리고 영화는 7일'이 되기 전에 끝난다. 늙은 노인과 여자는 이 혹한과 어둠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까 ? 감독은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웃의 말을 빌리면 인간이란 멀쩡한 것을 엉망으로 만드는 존재이다. 

 

10. 이 영화는 무성 영화는 아니지만 거의 무언 영화'에 가깝다. 2시간 30분 동안 대사가 거의 없다. 집시와 이웃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을 제외하면 전체 다이알로그는 2분이 채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최소화했다. 결국 이러한 미니멀적인 경향은 겨우'와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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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2013-07-11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바람을 녹인 봄의 희망이 퇴각하였다고 해서
여름의 진군이 절망은 아닙니다.
우듬지 그늘이 있지 않습니까?
복날이, 휴가가, 공포영화가, 핫팬츠가, 소나기가, 등목이.....
겨우를 절망에 가깝게 두기 보다는 억지로라도 희망의 부스러기에 둘랍니다.
더 나은 희망은 없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겨우가 희망으로 바뀌는 감동만 있을 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2 00:06   좋아요 0 | URL
덧글의 여왕이십니다. 제가 지금껏 본 덧글 중에서 퀄리티가 가장 탁월하신 분이십니다.

히히 2013-07-12 15:3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곰...발님 글에서 받은 번쩍임만 할라구요.
날마다 까진 글이 곰...발님 스럽지만
속초, 한가인, 아리랑치기류의 글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걸 보면
단언컨데
당신은 따뜻합니다.
곰...발님의 시에서 언급한 김밥 속재료의 부실함을 숨기기위하여 잔뜩 뿌린 깨처럼 말입니다.
깨 뿌린 김밥이 터지면 훈기가 돕니다.

새벽 2013-07-12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허.. 어제 네이버가 낮에도 DB 점검을 했다더니.. 이웃들의 여러 글들을 새글 알림에서 누락시켜 놨군요.

토리노의 말 보고 저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전대미문의 영상 표현을 이렇게 의외로 접하게 될 줄이야..

사탄 탱고를 비롯해서 벨라 타르의 다른 영화들을 찾아보고 싶은데 아직 엄두를 못내고 있구요.

'겨우'라는 키워드를 비롯해서 문장 문장이 팍팍 꽂힙니다.

이 글 읽고 기존 평론가들은 반성 좀 해야 할 것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2 12:23   좋아요 0 | URL
충격 제대로 먹었습니다. 사실 저 사탄탱고 봤습니다. 8시간인가...
근데 이상하게 그날 따라 졸리더라고요. 영화는 아마 채 3시간 못 보고 나머지 5시간은 잔 것 같습니다.
영화가 지루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날 몸상태가 최악이었습니다.
항상 감독에게 미안합니다. 다시한번도전을 해야겠어요....

iforte 2013-07-13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발님이 이리도 극찬하시니 꼭 한번 봐야겠습니다.
말이 없는 영화하니, 어려서 본 '불을 찾아서' (Quest for fire)란 영화가 생각이 나는군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한 영화였는데... 지금도 인류학 서적을 접하면 꼭 이 영화의 장면들과 대조해보면서 이해를 도모한다죠.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4 03:05   좋아요 0 | URL
이 영화는 뭐랄까... 미니멀하다고 해야 할까요 ?현상학적 반응'이라고 개인적으로 쓰고 싶군요.
지루하고 재미없죠. 하지만 잘 견디면 압도적 감동이 몰려옵니다.
롱테이크 3분짜리 하나 만들려면 감독이 모든 에너지를 다 쏟는다고 하죠 ?
그만큼 좋은 롱테이크 만드는 거 힘이 들다고 해요.
그런데 이 양밤은 120분 내내 30개 롱테이크로 찍었어요. 미쳤어요 !!!!!!!!!!!!!!!!!!!!!!!!!!!!!!!!!!!!!!!!!!!!!!!!!!!!!!!!!!!!!!!!!!!!!!!1
 
클림트, 황금빛 유혹 다빈치 art 9
신성림 지음 / 다빈치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붕어 : 실패한 모든 사랑은 목에 걸린 가시다. 

 

 

 

 

집이 쫄딱 망했다. 정확한 기억을 복기할 수는 없지만 그 많던 짐들은 단칸방으로 이사를 하면서 매우 단촐한 살림으로 변해 있었다. 좋게 말하면 이사'이고, 나쁘게 말하면 도주'였다. 우리 가족은 그 겨울밤에 신나게 달린 것이다. 야호 ! 야밤도주인 것도 모르고 말이다. 단칸방으로 이사하기 전까지는 강남 은마 아파트에 살면서 출퇴근 가정부까지 둔 넉넉한 생활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단칸방으로 쫒겨난 식구들은 칼잠을 자야 했다.

 

아, 갈치처럼 모로 누워 잠을 자야 하다니. 이제와서 부끄러울 게 뭐가 있나. 어머니는... 음, 그러니깐, 그게, 음, 험험, 에에... 복부인이셨다. 당시에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렸는데 어머니는 아파트를 사고 팔고 하면서 꽤 많은 돈을 버셨던 것 같다. 쉽게 번 돈은 쉽게 날리는 법, 욕심이 화를 불렀다. 그때 빚쟁이들 돈은 제대로 갚으셨나 모르겠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그 사실을 묻지 않았다.

 

 

이사를 간 곳은 변두리 촌구석 농촌 마을'이었다. 마을에는 유독 고목이 많았는데 여름만 되면 송충이들이 비처럼 떨어지고는 해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런가 하면  이웃집 아저씨'는 병색이 깊어 보였다. 늘 기침을 달고 사셨다. 아저씨는 평상시엔 어두운 방 안에서만 지냈는데 기운'을 조금 차리면 늘 낚시 도구를 챙겨서 근처에 있는 저수지를 향하고는 했다. 아저씨의 유일한 스포츠이고 외출이었다. 솜씨가 꽤 좋으셨던 모양이다. 어망에는 늘 붕어들이 가득했다. 아저씨는 씨알이 좋은 붕어는 어머니'에게 주었고 나머지 붕어로는 붕어즙'을 만들어 약처럼 복용하셨다. ( 낚시를 하지 않는 날에는 산에 가서 뱀을 잡으시고는 했다. )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좋은 이웃이었다. 당시 쌀도 궁하던 살림이어서 붕어'는 매우 훌륭한 반찬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아마, 서로 먹겠다고 다투며 허겁지겁 먹은 모양이다. 붕어 가시'가 내 목에 걸린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목에 가시가 걸렸는데 그것을 미련하게 방치하다가 119에 실려갔던 모양이다. 죽다 살아났다는 말은 거짓말이고, 그냥 꽤 아팠나 보다. 호되게 당하고부터 나는 붕어나 붕어 요리'만 보면 헛구역질이 났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때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남아서 강력하게 반응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웃 아저씨는 그리 오래 살지 못하셨다. 어느 날이었다. 나는 깊은 밤,  통곡 소리에 깨어났다. 그땐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저씨의 죽음을 알아차렸다.

 

 지금도 아저씨를 생각하면 집 밖에 걸려 있던 어망이 생각난다. 내 목구멍을 넘기지 못한 가시처럼 그해를 넘기지 못한 아저씨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붕어 비린내가 떠올랐다. 내가 목격한 첫 번째 죽음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 나는 붕어에 대한 묘한 포비아'를 가지고 있었다. 공포라기보다는 헛구역질이 났다. 정확히 말하면 공포는 아닌 것 같다. 붕어'는 조금 더 확산되어서 나중에 금붕어'만 봐도 속이 울렁거리게 되었다. 아, 이 빌어먹을 붕어 새끼들 !

 

내가 붕어'에 대하여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때문이었다. 첫사랑 여자가 있었다. 그녀가 일본에서 보내온 선물이 일본어로 된 구스타프 클림트 화집'이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였다. 내 취향은 클림트보다는 에곤 쉴레'였으나 클림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 그림을 보고, 보고, 보고, 보았다. 그런데 그림 중 하나'가 계속 내 심기'를 건드렸다. 벌거벗은 세 여자'가 있는 그림인데 세 여자 사이에 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다. 볼 때마다 속이 울렁거렸다. 그림 속 생선'이 내 속을 뒤집어놓은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그림의 제목이 바로 < 금붕어 > 였다. 일본어에 까막눈이다보니 일본어로 된 책을 보아도 알 턱이 없었다. 내 속이 울렁거렸던 이유다. 이러한 특이 증상은 세월이 흐르면서 나아졌다. 이제는 붕어'를 보면 속이 울렁거리지는 않는다.

 

 

첫사랑은 무뚝뚝한 여자였다. 나는 토말에서 자주 앓았다. 그럴 때마다 아무도 모르게 손톱이 자라듯 손금'이 자랐다. 부끄러웠다. 그후 황량한 이리 하나가 바람결에 소식을 전해와서 페루'로 향했다. 리마에서도 나는 시름시름 앓았다. 그곳에서 마추픽추 사진이 담긴 여행엽서'와 몇 장의 편지'를 도쿄에 있는 그녀에게 보냈다. 가을이 오면 하드커버 책 페이지 사이사이에 꽃잎을 넣어 말리듯, 나는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마른 칼을 접어 보냈다. 어쩌면 그 칼은 도착하기도 전에 바스락 바스락 부서져 티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도 가끔 편지를 보냈으나 편지는 오지 않았다. 수취인불명'이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린 모양이었다. 술에 취하던 어느 밤, 나는 편지를 담은 상자를 들고 언덕에 올랐다.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서 분지르자 고사목 가지들이 경쾌하게 부러졌다. 담배를 한 모금 피웠다.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그냥 언덕길'을 내려왔다. 아직도 나는 그 편지들을 간직한다.  

 

두 번째 사랑은 오래 사귀었으나, 결국은 헤어졌다. 세월이 약이려니 생각했다. 몇 년이 지났으니 이젠 잊혀질 만도 하다. 그러나 잊고 있다가도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기억은 유년 시절의 통증을 잊었지만 몸은 종종 그 통증'을 기억해내고는 했다. 목구멍 깊숙이, 옹이처럼 박힌 그 생선 가시'를 기억해낸다. 환각통'이다. 그렇게 떠오를 때가 있다. 실패한 모든 사랑은 목에 걸린 가시다. 

 

기형도 시인은 나무는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를 가득 피웠다고 썼다. 아, 나는 기형도처럼 멋진 문장을 쓸 수는 없어서 김밥은 황폐한 재료를 숨기기 위해 돌돌 말린 김밥 위에 깨를 잔뜩 뿌렸다고 썼다. 김밥이 다 거기서 거기지만 김밥 속 재료가 부실하면 할수록 깨가 잔뜩 묻어 있다.

 

고급 재료가 듬뿍 들어간 김밥보다는 당근, 단무지, 시금치가 전부인 꼬마김밥에 깨를 아낌없이 뿌린다. 그것은 마치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이파리를 피우는 나무의 방식과 같다. 이처럼 저렴한 음식에는 깨 인심이 후하다. 어쩌면 기형도 시인은 시장 한 모퉁이 좌판에 쪼그리고 앉아 꼬마김밥을 먹다가 시상이 떠오른 것은 아니었을까 ? 김밥은 황폐한 재료를 숨기기 위해서.... 라고 하기엔 창피하니깐 나무의 은유를 끌어들인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고소한 참기름이 발린 김밥에 잔뜩 묻은 깨를 볼 때마다 내 生을 스치고 지나간 사랑했던 가난한 사람들이 생각난다. 엄마의 싸구려 인조 모피가 생각난다. 결혼식과 장례식 때에만 입는 장롱 속 아빠의 검은 양복도 생각난다. 가난한 몸이 부끄러워서 아낌없이 쏟아내는 황홀한 사치가 생각난다. 철없던 시절, 잔뜩 뿌려진 깨를 부끄러워한 적이 있었다. 실패한 모든 사랑은 목에 걸린 가시다.

 

 

 

 

 

+

아시다시피... 나는 삼천포의 명수다. 쓸데없는 소리'가 팔 할이다. 붕어 가시에 목이 걸린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사랑이야기로 빠지는가 하면 죽방멸치 이야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김난도'가 튀어나오는 형식'이다. 처음부터 내가 삼천포로 빠진 것은 아니었다. 한때 내가 입에 달고 다닌 소리는 " 요점만 말해 ! " 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것은 비과학적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삼천포를 경멸했어 !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고부터 절실히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는 직장 생활은 모두 요점만으로 이루어진 세계란 점이었다. 이것 하세요, 저것 하세요 ! 그때부터 삼천포가 그립기 시작했다. " 화가는 바람을 그리기 위해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그린다. " 윤희상 시인의 말이다. 마찬가지다. 나는 실패한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목에 걸린 가시에 대해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삼천포, 그리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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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06-04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우아한 눈짱입니다. 대단한 글쟁이가 알라딘에 나타났다길래 들려 보았습니다. 소문대로 글을 제법 잘 쓰시군용 ^^

곰곰생각하는발 2013-06-04 20:31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칭찬하시니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군요.

2013-06-04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3-06-04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곳은 이래저래 상당히 불편하다.
하지만 나의 친애하는 곰발의 글을 감상하기 위해
기꺼이 알라딘에 가입하기루 했다. ....랄까!!
나 이미 가입되어 있었음.(!!) 진작에 들어올걸..

곰곰생각하는발 2013-06-04 20:50   좋아요 0 | URL
이 새끼... 여전히 거칠구나...ㅎㅎㅎㅎㅎㅎㅎㅎ
여긴 우아한 분들이 많아서 너처럼 거칠게 댓글 달면 뭐라 그러신다. 나도 여기서 엄청 조신하게 굴어.
여기 알라딘'이야.

iforte 2013-06-0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쓸데없이 저도 삼천포행에 끼어들기로. 저도 에곤 쉴레, 무지 좋아합니다. 실은 첨부터 좋아했던건 아니고요. 빈에 놀러갔다가 클림트 그림 보러 들어간 미술관에서 에곤 쉴레 작품들을 보고 완전 푹 빠졌다는.. 에곤 쉴레 팬을 만나는게 쉽지는 않은데, 반가운 맘에... ㅎㅎ
그리고 윗분 댓글에 심히 공감합니다. 알라딘에 뜬 대단한 글쟁이, 맞습니다. 잠못자고 일하는 틈틈이 서재에 방문해 혹시 새로운 글 안올리셨나 확인하는 수고를 하게끔 만드시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6-04 20:56   좋아요 0 | URL
눈짱은 저의 소울메이트입니다. 녀석 여기까지 친히 방문해주셨네요.
좀 거친 녀석입니다요... 허허허허... ( 하지만 엄청난 미인이며 위대한 작가이기도 하죠 )

저도 에곤 쉴레에게 끌립니다. 처음부터 그 미묘한 살갗에 압도되었다고 할까요.
저도 클림트를 좋아했다가 워낙 클림트 붐이 일다 보니 묘하게 반감이 생기는 그런 스타덤... 뭐 그런 거...
언제 에곤 쉴레에 대한 리뷰를 써야겠군요...

2013-06-04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4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5 0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5 0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5 0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5 0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5 0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5 0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5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5 0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히히 2013-06-05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붕어는 잊데 가시는 추억의 보상으로 남겨두시길...
실패한 사랑이라 할 지라도 그것은 죽지못하고 숨쉬고 있으니
현사랑에 찔리면 목에 걸린 가시로 위안을 받을지어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6-05 14:41   좋아요 0 | URL
아멘 !!

히히 2013-06-05 14:5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푸하하하!
당신을 유머왕으로 임명하노니
순명하고 따르라.

곰곰생각하는발 2013-06-05 16:47   좋아요 0 | URL
왕은 명하고, 명은 곧 왕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과 왕과 명으로 이루어진 세게이다. ( 김훈 흉내 냈습니다. )

히히 2013-06-05 17:0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명하면 왕이 되는 것이고 왕이 아니면 명하지 못하는 것이냐.
(저도 흉내 잘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3-06-05 17:23   좋아요 0 | URL
그렇다. 멍한 왕은 백성이 고생한다. ( 저도 흉내 잘내져 ? )

히히 2013-06-05 17:4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잉!

네가 기어이 나를 이기려 드는구나.
너에게 버티면 버티어지는 것이고
버티지 않으면 버티어지지 못하는 것이드나
패배를 받아들이는 힘으로 승리를 열어갈 것이다.
(김훈쌤하고 똑같쭁?)

곰곰생각하는발 2013-06-05 18:00   좋아요 0 | URL
생은 사고 사는 생이다. 있다는 없다고, 없다는 있는 것 아니겠느냐..
ㅎㅎㅎㅎ. 졌습니다. 더이상흉내를 낼수가없군요.
내친 김이 흑산 읽고 있는데... 진도가 영 안 나가네요.
어찌 다 비슷해요. 칼의 노래가 워낙 강렬해서 그런가.... 칼의 노래나 현의 노래나 흑산이나 거의 비슷함...

twinspica 2013-06-05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혼자서만 생선을 씹고 있는데 목에 가시가 걸릴 것 같습니다... 쿨럭

곰곰생각하는발 2013-06-05 16:46   좋아요 0 | URL
목이 막힌 거지 가시가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사라진 알파벳(들)
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44 = 1'이다.

 

 

특정 장르'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닥치는 대로 읽고 보는 편이다. 깊게 파기보다는 넓게 파는 스타일'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깊게 파기 위해서는 넓게 파야 한다. 그래야 깊게 팔 수 있는 법이니깐.  추리 소설'도 건드려 보고, 하드보일드 소설'도 찔러 보고, 공포 소설도 펼쳐 본다. 그리고 스릴러'도 살짝 간본다. 설핏 보기엔 곁가지만 요란하게 뻗는 것 같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 범죄 소설 > 이라는 큰 범주에 속하니 간보는 독서 취향이'기보다는 편식 없이 맛보는, 탐미적 춘향이'라고 스스로 자위한다. ( 자위'하니 하루키'가 생각난다. 나는 하루키'만 읽지 않는다. )

 

 

연쇄 살인'을 다룬 범죄 소설은 대부분 서로 무관해 보이는 사건'에서 공통분모'를 찾는 과정을 다룬다. 무관에서 유관으로, 비정형에서 정형으로, 그리고 무질서(엔트로피)에서 질서(네트로피)를 찾아내는 과정이 바로 수사'이다. 그러니깐 스릴러'란 < 차이/다름'에서 동일성 - 같음, 통일성, 공통점'을 뽑아내는 과정 > 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애거사 크리스티'는 이 방면에 있어서 도가 튼 도사'였다. < 오리엔트 특급 살인 > 에서 탐정 포와로는 국적과 신분이 서로 다른,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12명의 열차 승객'에게서 어린이 유괴'라는 단 한 가지 공통 분모를 뽑아낸다. 12명의 승객은 무질서를 나타내는 카오스'를 의미하지만, 포와로는 이 카오스에서 이들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코스모스'를 발견한다.  12 = 1'이다.

 

 

그런가 하면 < abc 살인 사건 > 에서는 A로 시작되는 마을'에서 A로 시작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해되고, B로 시작되는 마을에서는 B로 시작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해되는 사건을 다룬다. 전형적인 묻지 마 범죄'이다. 살인자는 살인을 게임'이라고 생각하고는 포와로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그리고는 도전장에 이런 말을 남긴다. " 나, 잡아봐라 ! 히히히 "  하지만 눈치 빠른 포와로는 서로 무관해 보이는 무질서에서 공통분모 하나를 뽑아낸다. " 잡았다, 이놈아 ! 으하하. "

 

 

< 차일드 44 > 도 같은 맥락이다. 희생자는 주로 여자아이이거나 남자아이'이다. 나이대는 십대 후반까지 다양하다. 살인이 벌어진 장소'도 넓게 흩어져 있다. 전형적인 카오스'이다. 네트워크 사회 이전인 50년대 자폐적인 스탈린 공포 정치 시대를 감안하면 이 사건들은 모두 개별적 범죄'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인공 레오'는 희생자 입 속을 채운 검은 흙(으로 추정되는 나무 가루)와 발목에 묶인 올무'를 통해 이 사건이 연쇄살인자에 의한 단독 범행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니깐 마흔넷 건의 살인 사건에 대한 범인은 마흔네 명이 아니라 한 명'인 것이다.  44 = 1'이다.

 

 

< 차일드 44 > 는 범주를 스파이 소설'에 묶느냐, 아아니면 스릴러 소설에 두느냐에 따라 별점'에 달라질 것 같다. 이 소설을 스파이 소설'로 보면 ★★★★★ 이지만 스릴러 소설'로 묶으면 ★★★ 정도. 이래저래 평균값을 내니 ★★★★ 이다.  스파이 서사'로는 매우 탁월하지만 스릴러 서사'로는 그리 훌륭한 설정은 아니었다. 지못미, 톰 롭 스미스 !  나는 연쇄살인마의 살해 동기'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살해 목적이 작위적이었다. 결국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가족 서사극인가 ? 눈물이 앞을 가린다.

 

 

톰 롭 스미스 씨'는 소설이 생각보다 잘 빠지자 끝에 가서 욕심을 냈는지도 모른다. 하드보일드했던 스탈린 시대의 비참'은 느닷없이 웅장한 그리스 시대의 비극'이 되었다. 하지만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전체적인 구성은 탄탄하다. 글 재주도 좋고, 괄약근'을 조이게 만드는 서사 배치도 훌륭했다. 역시 똥구멍과 화투 패'는 쪼여야 맛이다. 차라리 살인자가 가진 살해 동기'를 매우 심플하게 설정했다면 탁월한 작품 하나 나올 뻔했다. 스콧 스미스의 < 심플 플랜 >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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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라진 알파벳(들)
    from 새빨간 활 2013-05-01 06:48 
    양들의 침묵 : 사라진 알파벳(들) b, u, s. 희생자는 모두 “ 가죽이 벗겨진 채 ” 죽는다. 더군다나 희생자의 목에는 커다란 나방의 고치가 걸려 있다. 연쇄살인범‘은 < 버펄로 빌 > 이라고 불리는 놈이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또 다른 연쇄살인범’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가 바로 한니발 렉터 박사‘ 다. 그의 이름이 암시하듯이 그는 죽은 자의 살갗을 벗기기보다는 차라리
 
 
새벽 2013-05-02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중3에서 고1 올라가던 겨울방학. 우등생이던 주변 친구들은 모두 성문영어와 수학정석을 파고 있을 때
애거서 크리스티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 한 달 남짓 기간에 거의 오십 여 권을 읽은 것 같아요.
그 당시 곁다리로 더불어 읽은 게 필포츠, 엘러리 퀸 등의 추리소설 몇 권이구요.

그 이후 범죄 소설은 읽지 않았는데.. 여기 소개하신 차일드 44도 그렇지만 말미에 살짝 언급하신
심플 플랜이 무척 땡깁니다. 샘 레이미의 영화도 좋았지만 왠지 파고 같은 작품에 비해선
개인적으로 뭔가 2% 부족을 느꼈었거든요. 소설이 그 2%를 채워 줄 것 같은 느낌.. :)

곰곰생각하는발 2013-05-02 19:26   좋아요 0 | URL
참 신기해요. 추리소설은 딱 중학교 때까지만 읽습니다.
가만 보면 학교 사회가 추리소설은 안 좋은 거니 이젠 고전을 읽자구나, 이런 태도 같아요.
그냥 꼴리는 대로 재미있는 책 읽으면 장땡입니다.

새벽 2013-05-02 20:0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그런 면도 있지만 그때 당시엔 대부분 고교 시절 독서 전반을 놓게 됐죠.
요즘이야 수능이다 논술이다 하면서 폭넓은 독서도 권장하는 분위기지만
학력고사는 독서는 교과서, 참고서, 문제집에 국한시켜 버리는 측면이 있지 않았습니까.
더구나 한샘 국어, 하이라이트 국어가 학생들의 독서에 대한 로망을 완전히 말살시켰구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3-05-02 20:14   좋아요 0 | URL
한샘 국어... 한샘 국어 아직도 있나 모르겠습니다.
수학 정석, 한샘 국어... 참... ㅎㅎㅎㅎㅎㅎㅎ.
맞습니다. 고교 되면 아에 책을 읽을 수가 없었죠. 읽는 놈은 공부 못하는 놈들이나 읽는..
그래서 제가 공부를 못했나 봐요. 전 고등학교 때 세계문학전집은 거의 다 읽었습니다.
한 100권 넘게 읽었을 겁니다. 수학 시간에 소설 읽고 그랬거든요..

새벽 2013-05-02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샘국어 요즘도 있답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주류 참고서는 아니구요.
그 자리를 수능에 맞춘 다른 참고서들이 차고 앉아서 또 비슷한 행각을 벌이고 있어요.

재밌는 건 당시 곰곰발님 같은 학생들에 대해서 선생님들도 자각하고 있었단 사실입니다. 적어도 저희 반에선..
학교 공부엔 관심 끊고 실존철학서부터 맑스까지 읽던 급우가 있었거든요.
담탱이 말이.. 너무 일찍 깼구나. 인생 고달파질텐데..
그리고 적어도 몇몇 학생은 전교 수위를 다투는 우리반 일등 아이보다
그 아이를 더 우러러 봤구요. 겉으로 내색은 안 하면서.
갑자기 그 친구 궁금해지고 보고싶고 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5-02 20:27   좋아요 0 | URL
사실 제가 내신이 거의 꼴찌였는데, 자화자찬입니다만, 전교에서 저 모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체육복, 교련복 산 기억이 없어요. 그냥 빌려 입었습니다.
아이들 잘 빌려주더라고요..ㅎㅎㅎㅎㅎ.
제가 학교 선생들에게 무진장 맞았어요. 일진 이런 거여서가 아니라 그냥 눈빛 맘에 안든다고 ㅎㅎㅎㅎㅎ.
저도 책을 읽게 된 계기가 내 친구 때문인데, 이 친구 집안이 거의 다 미쳤어요. 농담이 아니라 자살하고, 죽고, 정신병원 가고... 그 친구가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더라고요. 그래서 지지 않으려고 저도 읽은.. 일종의 허세죠.
왜 중2병들은 그런 거 열심히 하잖아요. 컬트 영화만 찾아다니고 말이죠..ㅎㅎ

새벽 2013-05-02 20:5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선생들이라고 정말 다 같은 선생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때 우리 한문 선생님은 그 친구와 대화 된다고 엄청 좋아하면서
방학 때면 책 왕창 선물하고 그랬는데... 저도 그때 곁눈질로 돌베개 출판사 책 몇 권 주워 읽었구요.

허세, 중이병.. 그런 건 절대 아니죠. 출발은 비슷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페루애님은.

비록 공교육 아닌 사교육 쪽에 있지만 전 그런 학생들이 이쁩니다.
벌써 제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학생들도 가끔 있거든요.

엄마 말쌈 따라 수능에 논술, 경시대회에만 미쳐서 뺑뺑이 도는 학생들에겐..
일단 밥값은 해야되니 최선은 다하지만 속으론 그럽니다.
참 너 인생도 답답하다.. 너만 답답하게 끝나면 모르는데 판검사 되고 의사돼서 남들한테 누끼칠까 겁난다..

음. 얘기하다보니 덧글이 원글과 너무 멀리 나간 감이 있네요. 하하 ;;
저녁은 드셨는지.. 좋은 저녁 시간 보내세요..
 
오리엔트 특급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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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 살인 : 명탐정 포와로'는 독자를 속였다 !

 

 

- 내 제안에 잘못된 것이 도대체 뭐가 있죠 ?

- 개인적인 일입니다만, 나는 당신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래체트 씨.

 

오리엔트 특급 살인 中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91705

 

우리는 소설가의 < 말 > 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더군다나 탐정 소설인 경우, 탐정이 내린 추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독자인 당신은 셜록 홈즈나 포와로가 내놓은 결과에 대해 절대적 신뢰를 보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엉터리 결론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삐에르 바야르는 이 사실을 상기시킨다. 무슨 말인가 하면 소설 속 홈즈와 포와로는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고는 의기양양하게 end를 고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는 점이다.

 

< 오리엔트 특급 살인 > 이라는 추리소설을 예로 들자면 포와로는 범인들에게 감쪽같이 속는다. 포와로가 속았다는 것은 곧 이 책을 쓴 애거서 크리스티'도 속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물며 독자라고 안 속을 수 있나. 지금부터 나는 < 오리엔트 특급 살인 > 에서 애거사 크리스티 여사'가 자신이 만들어놓은 캐릭터들에게 어이없이 속는 진풍경을 설명하도록 하겠다. < 오리엔트 특급 살인 > 은 모두가 아는 내용이다. 형식은 밀실 트릭이라 할 수 있다. 폭설로 정지된 열차.1등실 객실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그리고 범인은 12명 가운데 1명...

 

모두 다 아는 내용이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스포일러 유출이고 나발이고,  호들갑은 떨지 말자. 함정은 " 1/N " 에 있다. 우리는 늘 이런 밀실 트릭에서 범인을 < N 명 가운데 1명 > 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서 < ~ 명 가운데 1명 > 이 아니라 < 12명 모두가 범인 > 인 트릭을 만들어낸다. 그 유명한 " 오리엔트 특급 살인 트릭 " 이다. 소설 마지막에 밝혀지는 결말은 < 식스 센스 > 를 능가하는 반전이었다.애거사, 떼돈 버셨다. 브라보, 크리스티 여사'에게 영광 있으라 !

 

그런데 포와로는 범인들에게 속았(을 수도 있)다. 물론 독자인 우리도 속았(을 수 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포와로는 래체트'가 신변 보호를 요청하자 단번에 거절한다. 거절 이유는 상당히 의외다. 레체트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란다. 단지 그 이유 하나가 전부다. 포와로는 그가 이유없이 미운 것이다. 추리'란 논리 싸움인데 이 논리 싸움에 감정이 들어가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다. 포와로는 시작부터 탐정이 가져야 할 기본적 자세를 버린 것이다. 포와로'는 레체트 앞에서 당신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기에 제안을 거절한다는, 매우 무례한 말을 한다. 래체트 씨에게는 치욕이었으리라. 마음의 상처를 입었으르라. 그런데 이 마음의 상처'는 곧 진짜 상처가 된다. 다음날 그는 칼에 찔려 죽는다. 자상은 12 곳이었다. 난도질이었다.

 

포와로는 이 살인사건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래체트 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래체트는 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길은 살인범을 잡는 것이다. 그런데 일이 묘하게 꼬인다. 1등실 승객 12명'은 모두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다. 알리바이'는 alius ( 다른 ) + ibi ( 거기에 ) 를 합친 것으로 " 다른 + 장소에 " 라는 뜻이다. 그러니깐 용의자가 살인이 일어난 장소'에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알리바이'다. 현장부재증명/現場不在證明'은 곧 타소존재증명/ 他所存在證明'을 의미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 장소A에 내가 없었음/부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장소 B에 내가 있었음/존재'를 증명 " 하면 된다. 그렇다면 다른 장소에 당신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대상은 누구인가 ? 바로 누군가가 당신을 보고 있었다는 설정'이다. 그것은 응시다. 알리바이란 2명 이상이 (살인현장이아닌) 다른 장소에 함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하지만 혼자일 때는 성립이 될 수 없다. < 오리엔트... > 에서 12명의 용의자가 모두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12명 각자가 다른 장소에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논리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12명 가운데 1명이 살인을 했다면 1명은 반드시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살인을 할 때는 반드시 혼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2명 모두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적어도 살인자 1명과 더불어 그를 돕는 공범 1명 이상'이 이 사건에 개입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와로는 초점을 < 범인 > 이라는 단수에서 < 범인들 > 이라는 복수에 맞춘다.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12명 모두 범인이라는 것이다.

 

살인자들이 최후 진술에서 밝힌 살인 동기는 죽은 래체트'는 악당 가운데 최고 악당이요, 죽어 마땅한 놈이었다는 진술이었다. 그는 아이 유괴범이며 살인자. 그리고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간 자였다. 결국 1등실 12명은 모두 이 사건과 관계된 사람들이 모여서 죽은 아이'의 복수를 대신하기 위한 모인 것이었다. 그것은 순수한 복수였다. 죽은 영혼을 달래기 위한 응징이었다(라고 살인자들은 진술한다.중요한 것은 이 진술의 신빙성'이다. 거짓말이 늘수록 신뢰는 무너지는 법이다. 양치기 소년처럼 말이다. ) 그런데 놀랍게도 포와로는 살인자(들)가 늘어놓는 변명을 듣고는 이 사건을 덮기로 한다.

 

이 지점에서 포와로는 수사를 망친다. 왜냐하면 12명의 승객이 모인 이유는 반드시 인간적인 복수심 때문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죽은 아이의 할머니(백만장자)가 12명에게 살인에 대한 보수를 지불하기로 하고 청부살인을 지시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 그러니깐 12명은 돈을 위해서 모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포와로는 슬픈 얼굴로 진술을 나열하는 살인자들이 고백하는 말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12명은 첫 페이지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페이지 끝까지 거짓말(들)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크레타 섬 사람들인 것이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은 결국 끝에 가서도 거짓 변명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포와로는 이 거짓말쟁이들이 마지막에 하는 말도 끝까지 의심했어야 했다. 억울하게 죽어간 어린 아이에 대한 복수라는 이 비장한 서사'는 거짓말쟁이가 하는 또 다른 거짓말'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포와로는 그걸 믿는다. 왜 ? 정답은 처음부터 래체트가 싫었으니깐. 12명의 마지막 진술은 또 다른 대응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포와로는 속는다. 그는 이성과 논리로 사건을 풀어나가기보다는 감정적으로 이 사건을 풀어나가다가 그들에게 속은 것이다. 포와로가 떠났을 때, 남은 12명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엔 반전이 하나 숨어 있다. 과연 포와로는 그들에게 속았을까 ? 그는 속지 않았을 수도 있다. 속는 시늉을 할 뿐이다. 죽은 척하는 생태처럼 말이다. 얼어죽은 동태는 정말 얼어서 죽은 것인가 ? 아니면 죽어서 동사한 것이가 ? 그는 자기합리화'를 위해 사건을 미해결 상태'로 방치한다. 왜냐하면 이 살인 사건에 대해 포와로는 절반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포와로는 래체트를 " 교활한 짐승 " 이라고 판단했었다. 하지만 다른 이가 래체트 씨를 보는 판단은 전혀 다르다. 어떤 이는 래체트를 " 매우 품위 있는 " 사람이라고 말한다.

 

포와로가 래체트에게 가지는 선입견'은 결국 래체트를 죽음으로 몰고갔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범인이 열차 안 승객이라고 생각해 보라. 포와로의 명성을 생각하면 끔찍한 짓이다.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홧홧할 것이다. 그래서 포와로는 이 사건을 죽은 아이에 대한 인간 복수극이라는 살인자들의 진술을 믿는 척하는 것은 아닐까 ? 포와로는 결국 자신의 실수를 숨기기 위해서 사건을 은폐하고자 한다.  래체트가 죽어 마땅한 놈이 되는 순간 자신의 실수는 용납이 된다.  핵심은 거기에 있다. 그러니깐 포와로가 사건을 덮는 것은 얼핏 인간적인 처사 같지만 사실은 은폐하려는 몸짓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비겁하고, 비겁하고, 비겁하고, 비겁하고, 비겁하고, 비겁한 사람인지도...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우리는 모두 속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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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명탐정 포화로는 독자를 속였다
    from 내가 사귀는 이들, 翰林山房에서 2013-05-14 07:59 
    * 명탐정 포와로는 독자를 속였다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11271 곰곰이생각하는발님의 ‘명탐정 포와로는 독자를 속였다’를 읽고 떠오른 생각 ‘앗,페아노 공리계’ * 추리소설추리소설은 마치 수학에서 방정식을 푸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X가 얼마냐? (답으로 무슨 수인가?) 알 수 없죠. 그러나 X+2=5라는 방정식이 제시된다면 답은 3이란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추리소설은 방정식과 같은 구도로서 ; X
 
 
마립간 2013-04-17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글을 남기는 것 같은데, 글 잘 읽었습니다. 공감 이상 추천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4-17 12:20   좋아요 0 | URL
아이고... 감사합니다. 공감 이상 추천이시면 알사탕 주십셔 ~ ( 농담입니다. )

순오기 2013-04-18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인에 뜬 글 눈팅만 했는데 댓글 따라 와 인사 드립니다.
글을 참 잘 쓰는 분이 알라딘에 둥지를 틀었구나, 감탄했습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4-18 12:2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더욱 매진하여서 순오기 님에게 쏘옥 드는 문장을 다듬기 위해
절차탁마하겠습니다 !!

? 2013-05-27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포와로는 탐정을 은퇴할 생각이였고 자신이 맘에 들지 않는 사건일 경우 받아들이지 않고 싶어하는 상황이였다. 그리고 "포와로는 이 살인사건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래체트 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래체트는 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길은 살인범을 잡는 것이다."라는 것은 조금 억지라고도 볼 수 있다. 래체트의 제안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범인이 그를 죽이고 싶어하는 것은 바뀌지 않을 것이며, 누군가가 진짜로 노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리고 얼굴이 맘에 들지 않습니다 라고 말한것도 일종의 핑계일 것이다.
너무 비난하는것 같아 죄송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7 20:54   좋아요 0 | URL
아이고.. 아닙니다요.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