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아이를 죽이고 싶었던 여자가 살았네 NFF (New Face of Fiction)
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 지음, 이경아 옮김 / 시공사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환상 없이 쓴 환상소설

 

나는 만연체로 이루어진 긴 문장에 대한 해독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플로베르나 프르스트'를 읽지 못하는 것 같다. 플로베르가 보바리 부인의 옷차림을 설명하느라 몇 페이지를 할애할 때는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보바리 우먼'이 차라리 바바리 맨'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 하여튼, " 내 취향은 아니군 ! " 프루스트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골골거리는 소설을 읽으니 내가 다 골골거리는 느낌이었다. 홍차와 마들렌이라는 과자 이미지만 남았다. 어느 날, 마들렌이란 과자를 먹을 기회가 생겼다. 도대체 마를렌 맛은 어떤 것일까 ?  한 입 베어 물었다. " 내 취향은 아니군 x 2 " 처음에는 " 난독증 " 이 아닌가 의심을 했다. 곰곰 생각하고 후딱 결론 내렸다.

 

난독증'보다는 급한 성격 탓'이었다. 내가 일일 드라마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내용을 질질 끈다는 데 있었다. 내가 네 애비다, 라는 천기누설은 날마다 지연되다 더 이상 미루지 못할 상황이 닥치면 뒷목 잡고 쓰러지거나 기억상실증이 찾아온다(는 식이다). 드라마만 보고 있으면 대한민국에서 기억상실증은 감기보다 흔한 증세'처럼 보인다. " 뭐, 민식이가 기억상실증에 걸렸어 ? 별거 아닌 거 가지고 그동안 호들갑을 떨었군...... "  복잡 섬세한 문장'보다는 간단 명료한 문장'을 좋아하다 보니 추리 / 판타지 / 공포 소설을 주로 읽게 되었다. 적어도 이들 소설은 " 의식의 흐름 " 따위로 독자를 지리멸렬하게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기도 했고,  < 언젠가 소설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 라는 같잖은 허세를 평소 좋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류드밀라 페트루셉스카야'라는 러시아 작가 이름을 처음 접했을 때 떠오른 이름은 아팟차퐁 위세라타쿤( 태국 영화 감독 ) 이었다. 이름 한번 더럽게 어렵군. " 이름 한번 더럽게 어려운 " 러시아 작가가 쓴 단편집 << 이웃의 아이를 죽이고 싶었던 여자가 살았네 >> 는 B가 적극 추천한 작품이었다. " 근래 읽어본 소설집 중 최고 " 라는 평가를 내린 후 " 인간에 대한 그 어떤 환상도 없이 담백하게 써내려갔다 " 고 평가했다. 중매는 잘 서면 술이 석 잔이요, 못서면 뺨이 석 대'라는 속담이 있듯 특정 책을 주위 사람에게 자신있게 추천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대목이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며 추천한 책이 그네에게 맞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싸늘한 눈빛을 보며 늘 생각하고는 했다. 

 

시바, 앞으로 책 추천하는 짓 따위는 하지 말자.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어디 그런가 ! 좋은 책 읽고 나면 소개하고 싶다. 이번 경우는 내게 중매를 선 그녀에게 술 석 잔을 사줘야 할 판이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가릴 만한 작품이지만 내 취향을 고려하자면 이 작품은 " 엑설런트 !! " 다. 이 단편집은 21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었다. 몇몇 작품은 단편이라고 하기보다는 엽편소설에 가까운( 엽편소설 : 단편 소설보다도 짧은 소설. 풀어서 쓰자면 손바닥소설 정도 ?! ) 형태인데 분량이 적다고 해서 깊이가 얕지는 않다. 짧지만 강렬하다. 소설 형식으로 쓴 하이쿠'라고 할까 ? 외형적으로는 공포와 판타지 장르라는 외피를 걸쳤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리얼리즘 계열로 읽힌다.

 

그러니깐, 듀르밀라페트루셉스카야는 공포 판타지 장르 속에 숨어서 헐벗은 민중의 삶을 폭로한다. 읽고 나면 무서움보다는 슬픔이 크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어떤 " 상실 " 앞에서 고통스럽다. 이 상실은 지속된다. 잔혹 동화'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지만 그 흔한 권선징악과 교훈보다는 위로와 슬픔이 팔 할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듀르밀라페트루셉스카야의 환상소설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B의 말처럼 이 소설은 " 인간에 대한 그 어떤 환상도 없이 담백하게 써내려간 " 환상소설이다. 내가 이 소설을 환상소설보다는 리얼리즘 계열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환상소설에서 환상을 빼면 신랄한 리얼리티가 남는다.  환상 없이 쓴 환상소설이라니......

 

 

■  100자평  :  소설로 하이쿠를 짓다.

 

 

 

 

부록

 

 

엽편 소설 : 새벽 3시 동맹자 클럽 ▼

 

새벽 3시 동맹자 클럽. 

 

 

앞으로 이 블로그는 새벽 3시 정각에 글을 올리기로 했다. 글은 새벽 5시'까지 공개되다가 그 이후에는 비공개'로 전환할 예정이다. 새벽 3시에 깨어 있어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반드시 덧글을 남겨달라. 덧글을 자주 올린 사람은 < 새벽 3시 동맹자 클럽 > 회원이 될 자격 조건이 된다. 이들은 모두 창문 1호, 창문 2호, 창문 3호의 직위를 얻을 것이다. 오프라인 모임도 갖을 생각이다. 3의 배수인 3,6,9,12월 셋째 주 주말 새벽 3시에 종로 3가'에서 모인다. 향후 계획'은 추후 공지를 통해 밝히겠다.  

 

주인백 

 

 

 *

 

공지 후 총 5명이 클럽 회원 자격을 얻어 정식 멤버가 되었다. 이들은 모두 새벽 3시와 5시 사이에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가장 많은 활동을 펼친 회원은 창문 2호와 창문 4호였다. 이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불면의 이유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2호의 경우는 어두운 것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포비아적 강박이 존재했고, 4호는 우울한 시인'이었다. 새벽 3시만 되면 어김없이 나는 블로그에 글을 올렸고, 글이 올라오자마자 새벽 3시에 잠 못 든 자들은 이곳에 모여 갑론을박'으로 시끌거렸다. 내 블로그는 그들의 사랑방이었다. 정치적 이슈에서 사형제 찬반 논란, 성적 자유와 성적 억압에 대한 담론이 거침없이 이어졌다. 오고가는 댓글이 400개를 넘은 적도 있었다.  

 

3시부터 5시 사이라는, 그 짧은 시간에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시간에 모두 곤한 잠에 빠져들었기에 그 사실을 몰랐다. 깨어 있는 자들만의 작은 세계였던 것이다.   새벽 세 시 동맹자 클럽 회원들은 모두 고독하고, 우울하며 정신적으로 위태로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세.시.동 클럽 회원'은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었다. 결국 우리는 모임을 갖기로 했다. " 새벽 세 시 종로 3가 만남의광장 ! " 9월 정기 모임에 참가 의사를 밝힌 회원은 창문 2호와 창문 4호였다. 나는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종로 새벽 거리는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아서 을씨년스러웠다. 어둠 속에서 한 여자를 보았다.  

 

긴 머리에 긴 검정 치마를 입은 여자였다. 나는 직감적으로 여자 2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자는 나를 보더니 " 창문 1호 ?! " 라며 물었다. 내가 방긋 웃으면 그렇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하며 4호를 기다렸으나 약속 장소에 여자 4호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거리를 서성이다가 24시 영업을 하는 일본식 주점'으로 향했다. 따스한 사케'에 몸을 데울 생각이었다. 여자 2호는 무척 예뻤다. 짙은 속눈썹은 창백한 피부를 더욱 투명하게 만들었고,  쇄골이 두드러진 어깨 라인은 활처럼 아름다웠다. 이런저런 시답지 않은 농담이 오고갔다. 잠시 여자가 깊은 침묵에 빠졌다. 그리고는 나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여자였다. " 창문 1호 ! 동반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 "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자가 말했다. " 사람들이 자살에 실패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 두려움 ?! 공포 ? 아니에요. 곁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래요. 나는 그들의 자살을 돕고 싶어요. " " 피식... 마치 저승사자처럼 말씀하시는군요.  "  나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입술이 창백해보였다. 우리는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첫 번째 모임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렇게 끝났다.  여자 2호는 첫 만남 이후에도 새벽 3시만 되면 찾아와서 나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여자와의 섹스를 생각하며 혼자 자위를 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위와 자살은 닮았어 !  12월 정기 모임에서도 창문 2,3,4,5 호 모두 참석했다. 특히 창문 2호는 나를 보더니 싱긋 웃었다. 여자는 언제나 신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긴 검정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날따라 여자는 매혹적이었다. 우리 일행은 다시 그 일본 주점에 가서 술을 마셨다. 너무 많이 마신 탓일까 ?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창문 2호는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주위를 살펴보니 모텔인 듯 싶었다. 나는 자는 시늉을 하며 여자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나를 의식해서인지 서서히 블라우스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이어 브래지어 훅을 따는 소리가 들리더니 풍만한 가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하는 탄성이 나도 모르게 쏟아졌다. 여자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젖꼭지를 애무했다.  그리고는 이내 긴 치마'를 벗었다. 그동안 긴 치마에 가려졌던 여자의 아름다운 다리가 보였다.아, 다시 감탄사가 다시 쏟아졌다. 저토록 아름다운 벌거벗은 몸 ! 그런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여자의 발은 바닥에 붙어 있지 못하고 10센티 정도 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자가 히스테릭하게 웃었다. 여자가 다가와 키스를 했다. 그녀의 혀가 내 목구멍 속을 타고 넘어왔다. 순간 그녀의 혓바닥은 새빨간 것이 아니라 검은 혓바닥처럼 보였다. 숨이 막혔다.  

 

나는 다음날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모텔 종업원이 신고를 했다.  내 입속에서는 여자의 긴 머리카락 뭉치가 발견되었다. 경찰은 머리카락 뭉치가 기도'를 막아 질식사 한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과학수사팀은 내가 정액을 사정한 시트를 증거로 쾌락을 얻기 위한 자기색정사로 결론을 내렸다. 보험 회사에서는 색정사에 의한 사고사가 아니라 자살'이라며 이의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는 않아서 결국은 사고에 의한 사망 사건으로 기록되어서 가족에게 생명 보험 5억이 지급되었다. 그 돈으로 동생은 근사한 차를 뽑았고, 어머니는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다녀왔으며, 누나는 루이비통 가방  3개를 장만했다. 물론,  새벽 세 시 동맹자 클럽'은 해체되었다.  

 

 

 

펼친 부분 접기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풀무 2014-08-04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류드밀라 페트루셉스카야, 아팟차퐁 위세라타쿤 .. ㅎㅎ 진짜 이름 긴 것도 환상적인 작품 세계도 공통점!
음 사실 소설 속 에피소드 몇 따서 그 위에 곰발님 얘기를 얹은 그런 괴담식 평론을 은근 기대했었는뎅 말이죵..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었음요. 부담 팍팍! :)

곰곰생각하는발 2014-08-04 16:4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재미있는 구상이네요...ㅎㅎㅎㅎ. 생각해 보면 저도 나름 잔혹동화 비스무리한 글을 꽤 썼습니다. 새벽3시 모임이라던지...ㅎㅎㅎㅎㅎㅎㅎㅎ

엄동 2014-08-05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웃의아이를.."이란 소설도 새벽3시동맹자클럽"과 같은 분위기일까요 매력있는 그클럽에 조인하지 못해 아쉬비~ 작가이름만으로 골이 딩딩해지지만 저소설 읽어보고싶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8-05 13:19   좋아요 0 | URL
오, 읽어보세요. 소설이 뛰어납니다. 그냥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깊은 사려가 돋보으는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강추합니다.
 
나가사키 - 2010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수상작
에릭 파이 지음, 백선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그 남자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속초에서 달방 생활을 할 때 한 남자를 알게 되었다. 그는 본사에서 파견한 근로자로,  본사에서 위탁 관리하는 오픈 지점'을 돌면서 현장 관리를 했다. 가족은 서울에 있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집에 내려가 아내와 어린 딸을 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는 집에 내려갔다 올라오면 늘 근심이 가득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딸이 많이 아프다고 했다. 딸이 너무 어린 나이여서 수술을 미루고 있다고 했다. 초조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우리는 자주 술을 마셨다. 2차는 항상 자신이 머물고 있는 원룸으로 향했다. 혼자 사는 남자가 사는 집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깨끗했다. 방바닥은 대리석처럼 반짝거렸다. 손으로 방바닥을 쓸면 머리카락은커녕 티끌 하나 묻어나지 않았다. 돼지우리에서 사는 나와는 정반대였다.

 

내가 보기엔 청결이 아니라 집착처럼 보였다. 그에게 정돈 강박 증세가 있냐고 물었더니 그는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 아니요, 깔끔한 성격이기는 하나 청소를 열심히 하는 쪽이 아니었습니다. 파견 근무 생활만 10년째요, 본사 근무를 신청했지만 번번히 무시되더군요. 결혼 후, 지금까지 전국 팔도를 돌아다녔습니다. 아내는 아이를 낳을 때에도, 이사를 갈 때에도 언제나 혼자였지요. 늘 미안했습니다. 동기들이 본사에서 중요한 업무를 맡으며 승진을 할 때마다 초조해지더군요. 입사 동기들은 대부분 좋은 자리 꿰찼는데 나는 여기서 뭐하나,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 그때부터 청소에 대한 강박이 생깁디다. " 그는 횡설수설했지만 종합하면 직장 동료에게 무시받지 않기 위해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애매모호한 고백이기는 했으나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술자리가 잦아지면서 그의 원룸에 가는 날도 많아졌다. 갈 때마다 기시감이 들었다. 집안 풍경은 그대로였다. 사물이 놓인 자리는 오차 없이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걸레는 네모반듯하게 접혀 화장실 문 왼쪽에 놓여 있고, 빗자루와 쓰레받이 또한 그 자리 그대로였다. 침대보는 구김이 전혀 없었고, 이불은 개서 침대 끝 왼쪽 모서리에 두었다. 그가 사는 집은 깨끗했으나 온기가 없었다. 그가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한 원칙과 절제는 엄격함보다는 자기 학대처럼 보였다. 그는 오랜 객지 생활 끝에 자신에 다니는 직장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흩어진 마음을 숨기기 위해서 정리 정돈에 매달린 것이었다.

 

얼마 후, 그는 회사를 그만 두었다. 집에 내려가 작은 가게나 하나 차리겠다며 쓸쓸하게 웃었다. 그날, 우리는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셨다. 하지만 코가 비뚤어지지는 않았다.

 

 

 

그( 시무라 씨 ) 는 기상청에서 근무한다. 나이가 56세이니 이제 곧 정년 퇴임 후 노후를 걱정해야 할 나이다. 그 남자는 독신이다. 에릭 파이의 소설 << 나가사키 >> 를 읽다가 문득 속초에서 만났던 그 남자가 떠올랐다. 퇴근하면 하는 일이 없어서 소일거리로 집안 청소를 하다가 이 꼴이 되었다며 웃던 남자는 소설 속 남자와 많이 닮았다. " 사는 일에 크게 실망한 " 그는 작은 빌라에서 혼자 살아간다. 인간에 대한 희망을 품지 않기에 퇴근하면 동료들과 어울리며 술을 마시기보다는 집으로 향한다. 그는 혼자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흩어진 사물들을 모두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물은 조금씩 흩어진 채 발견된다.

 

냉장고 속에 넣어둔 요구르트가 사라지거나 사물들은 조금씩 오차 범위 밖에서 이동한다. 성격이 무덤덤한 이'라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정돈된 일상은 조금씩 흩어진 상태로 돌아온다. 이 균열은 여자 때문이었다. 남자는 집안 구석구석 cctv를 설치해 놓고 직장 내 모니터를 통해 원격장치로 주인 없는 집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때 한 여자가 유령처럼 나타난다. 모르는 여자다. 여자는 다다미 바닥에 앉아 볕을 쪼인다. 행복한 표정은 아니지만 불안한 표정도 아니다. 오히려 평화로운 얼굴이다. 그는 잠시 그녀에게 연민을 느낀다. 여자는 남자(집주인) 몰래 이불 벽장 속에서 숨어 살았다. 형사가 남자에게 말했다. " 시무라 씨, 아마 좀 전에 이미 아셨겠지만 이 여자는 당신 집에서 당신 모르게 일 년 가까이 살았다는 걸 말씀드려야겠군요. "

 

남자는 여자를 미워할 수가 없다. 타자(여자)에 대한 동정은  결국 자신(남자)에 대한 연민으로 돌아온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닮았다. 여자 또한 조용하고 쓸쓸했으니깐 말이다. 저자는 파스칼 키냐르의 문장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뿌리가 같은 대나무는 제아무리 세상 멀리 떨어진 곳에 심어도 똑같은 날에 꽃을 피우고 똑같은 날에 죽는다고 한다. " 중편 분량인 이 소설에서 여자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다. 남자는 여자를 통해서 자신의 쓸쓸한 어깨를, 뒷모습을 본다.  여자도 마찬가지이리라. " 사는 일에 크게 실망한 " 남자는 " 사는 일에 크게 실망한 여자 " 를 본다. 그리고는 이내 마음이 흩어진다. 정돈 강박증에 걸린 사내가 말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여자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을 내놓고 떠난 남자가 궁금했다. 사는 일에 크게 실망했다는 말은 반대로 죽는 일에 대해서도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소설은 " 그 남자의 그 후 " 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  한때 나는 내 삶이 실패한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자주 했고 괴로웠으며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삶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다. 불안이란 그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초조함이다. 그 가능성이 사실로 증명되는 순간 더 이상 궁금해지지 않는다. 요즘 나는 강박적으로 방을 치운다. 침대보를 정리하고 쓸고 닦고 정돈하기를 반복한다. 속초에서 만났던 그 남자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 청소를 하면서 비로소 그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lopia 2014-07-0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가 사는 집은 깨끗했으나 온기가 없었다.

라는 말... 와닿네요, 바로.

곰곰생각하는발 2014-07-03 15:42   좋아요 0 | URL
마침 이 책 70% 세일 중입니다. 이번 기회에 장만하십시요...

lopia 2014-07-04 14:52   좋아요 0 | URL
그러려고 합니다... 3천원이면 정말 저렴한 가격이네요.

엄동 2014-07-03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우리가 불안한건 그럴수도 있을거란 가능성 때문이죠

인간에 대한 희망을 품지 않는 시무라씨가 부러워요

다가서기와 돌아서기를 반복하는
이 뻔한 관계에 신물이 나도
실낱같은 희망은 쥐고 살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7-03 18:29   좋아요 0 | URL
저도 시무라입니다. 전 인간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애, 인류애, 이런 게 좀 우습더라고요... 특히 애국심 이 따위 말이죠.
애'가 들어간 것 중 가장 한심한 거 하나가 바로 애국심 아닌가 싶습니다.

루쉰P 2014-07-03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비정규직 전문가로서 속초에서 만난 분의 이야기가 남 일 같지가 않군요...
파견 근로자 셨나봐요, 근데 그런 초조감을 없애기 위해 방 청소를 하다니, 전 비정규직의 초조함을 이기기 위해 책 사다가 벽장 무너트릴 뻔 했죠. 뭔가 통하는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파견 근로자 얘기에 눈이 뜨여 한번 들어봤습니다.
서재가 하얀 게 눈이 부셔요. 저도 이렇게 꾸미고 싶네요 ㅎ
인간에 대한 가치를 저도 높게 평가하지는 않아요. 근데 인간인지라 높은 가치의 인간을 찾아 보려고 하죠. 이게 인간일리가 없어 하고 말이죠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4-07-04 00:04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루쉰 님. 좋은 이름이군요. 루쉰이라....
왜 파견근로자 대부분은 직장과 숙소가 가까이 있잖습니까.
보통 걸어서 5분 정도 걸리는 곳에 숙소를 얻잖습니까.
그분은 6시 땡 치면 집에 가면 6시 5분이었다고 합니다.
남자 혼자, 뭘 하겠습니까. 그때부터 청소를 했다고 하네요.
그 사람 숙소 가면 온갖 청소 도구가 다 있습니다. 아주 전문적이었어요.
청소 도구가 그렇게 많은 것 처음 보았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그게 취미였죠.
그렇게 청소를 하다보면 몇 시간이 지나간다고........

반갑습니다. 루쉰 님 !

마립간 2014-07-04 09:01   좋아요 0 | URL
루신P님, 저는 인간의 가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의 지성이 뛰어나지 않다는, 그러니까 별볼일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것이 그나마 해결책이 될지, 아니면 별 의미가 없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양극화 아랫쪽에 있는 사람들의 초조감 못지 않게, 양극화 윗쪽에 있는 사람들도 아랫쪽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초조해 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초조감은 아랫계층의 사람을 더 옥죄죠.

아무도 모른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791213

수양 2014-07-04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그렇다면 조만간 언젠가 곰곰발님 벽장에서도 묘령의 여인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은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7-04 11:32   좋아요 0 | URL
요즘은 날마다 침대 밑을 걸레질하는데 떨어진 동전 한 3000원 주웠습니다

수다맨 2014-07-04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가슴 짠한 리뷰입니다. 곰곰발님 덕에 에릭파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네요. 지갑을 열어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7-04 12:10   좋아요 0 | URL
단편 같은 중편 소설입니다. 아쉬운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묘하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그 기본 서사'가 가슴을 치게 만드는 구석이 있습니다. 프랑스 작가가 일본을 배경으로 쓴 소설인데 그 이유는 나중에 나옵니다.
 
여자들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수색수색수색수색수색수색수색.......

 

 

수색 [ 水色驛 ]    :  은평구 증산동 223-27번지에 있는 지하철 6호선 역 이름이다. 이 지역은 한강 하류로 수색'이란 동명에 따라 지하철 개통 때 역 이름을 붙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크누트 함순 소설 << 굶주림 >> 을 읽는다. 이 책은 알라디너 수다맨 님(이하 존칭 생략)이 선물한 책이다. 우리는 허름한 종로3가 고깃집에서 낮술이라 하기에는 애매모호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가 불쑥 책을 내밀었다. " 읽어보세요. 찰스 부코스키가 << 여자들 >> 에서 크누트 함순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였다고 말했잖아요 ! "  그는 내게 동의를 구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 여자들 >에서 찰스 부코스키가 그런 말을 했던가 ?!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의뭉스럽게 웃었다. 이 웃음은 " 나도 알고 있어, 짜샤 ! " 이런 메시지'였다. 우리는 문학판에 대해서 쪼잔한 " 뒤따마 " 를 쉴 새 없이 날렸다. 생각해 보니 지난번 술자리에서도 했던 험담'이었다. 1차에서 끝날 분위기는 아니었다.

 

2차는 근처 호프집으로 향했다. 2차는 김연수 작가도 참석했다. 술이 얼추 들어가자 내 앞에 앉은 수다맨이 자꾸 김연수로 보였던 까닭이다(실제로 그는 김연수 작가와 많이 닮았다). 술자리에서 오고간 말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때 나는 피곤했고 꽤 취했으니깐 말이다. 한때 술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던 주량이었으나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우리는 각자 막차를 타고 헤어졌다. 지금 나는 찰스 부코스키 소설 << 여자들 >> 을 읽고 있다. << 굶주림 >> 을 읽다가 수다맨이 했던 말이 자꾸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읽던 책(굶주림)을 덮고 << 여자들 >> 이란 책을 펼쳐 치나스키가 말했다는 " 크누트 함순이 최고 ! " 라는 구절을 찾기 시작했다.

 

확인 절차만 끝나면 덮을 생각이었다. " 이 노인이 도대체 어느 구석에다 그 문장을 싸지른 거야 ? " 노란 색연필로 밑줄 친 부분을 중심으로 페이지를 넘기다가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었다.

 

 

리디아는 종이에 그리기 시작했다. " 자, 이게 여자 보지예요. 여기 당신이 모르는 게 있을 거야. 음핵. 느끼는 데가 여기거든요. 보다시피 음핵은 숨어 있어. 그렇지만 가끔 나오지. 분홍색이고 아주 민감해요. 숨어 있을 때도 있을 테니까 찾아야 해. 그저 혀끝으로 건드리기만 하면 돼요 ( 30쪽)

 

 

나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리디아, 아.... 리디아 ! 이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에 새록새록 났다. 어느덧, 나는 " 문장 찾기 " 따위를 멈추고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수다맨이 지적한 문장은 95쪽에 박혀 있었다. " 그녀는 이태리에서의 헉슬리와 로렌스 이야기를 했다. 무슨 똥 같은 소린가. 나는 크누트 함순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였다고 말했다. 그녀가 나를 보더니 내가 그 사람 이름을 알고 있다는 데 경탄하며 동의했다. (95쪽) " 찰스 부코스키의 분신 치나스키는 크누트 함순이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엔 찰스 부코스키도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가진 작가'다. 부코스키에게 경배를 ! 하급 노동자 출신으로 술고래이자 섹스중독자였던 찰스 부코스키는 내게 작은 위안을 준 작가'다.

 

그는 그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녀에게나 어울릴 법한,  " 백혈병 " 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술을 퍼마시고도 간은 멀쩡했던 것이다. 만약에 당신이 스스로를 우아하며 고상한 독자'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은 안 읽는 것이 좋다. " 본격 성애 소설 " 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문학적 정제 작업을 거치게 마련인데, 찰스 부크스키 소설에는 그런 게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 촉촉하고 검은 동굴 " 이라는 표현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냥 보지, 자지, 털, 똥구멍 따위가 페이지마다 등장한다. << 여자들 >> 은 그 정점에 위치한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온통 섹스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성애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부코스키 소설에서 섹스 판타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섹스는 낭만적이지 않다. 후끈 달아오르기는커녕 오히려 슬프다. 그가 " 천한 여자일수록 더 좋다. 그렇지만 여자들, 좋은 여자들만 보면 겁이 났다(109쪽) " 라고 고백하는 부분에서는 이상하게 울컥하게 만든다. 문학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는 지났다. 문학은 위대하지도 않고 천박하지도 않다. 내가 정성일이라는 영화평론가를 혐오하는 까닭은 그가 가지고 있는 고상한 열정 때문이다. 그는 영화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현대 예술은 실패했다. 

 

작가들에게는 문제가 있다. 작가는 자기 글이 출판되어 많이 팔리면 자기가 위대한 사람인 줄 안다. 자기가 쓴 글이 출판되어 중간 정도 팔려도 자기가 위대한 줄 안다. 자기가 쓴 글이 출판되어 아주 조금 팔려도 자기가 위대한 줄 안다. 자기가 쓴 글이 출판되지 않고 자가 출판할 돈도 없으면, 자기가 진정으로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위대함이라고는 거의 없다. 존재가 너무도 미미해서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하지만 가장 최악의 작가는 자신감은 철철 넘치되 자기 의심은 전혀 없는 사람이다. 어쨌든 작가들은 피해야 할 존재고 나는 그들을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당최 가능하지가 않았다. 작가들은 일종의 형제애, 어떤 친교를 원했다. 그런 감정 중 어느 것도 글쓰기와 관련이 없고 타자 치는 데 도움이 안 됐다. (199쪽)

 

 

사실 이 리뷰 제목은 " 수색수색수색수색수색수색수색... " 이 아니라 " 섹스,섹스,섹스,섹스,섹스,섹스... " 였다. 온통 섹스 이야기뿐이니 이 책에 어울리는 리뷰 제목으로는 손색이 없다. 제목을 작성하고 나서 낮게 읊조렸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그런데 어느 순간 섹스, 섹, 스섹, 스섹, 스섹, 스섹, 수색, 수색, 수색이 되었다. 하아, 이것 참 ! 수박수박수박'을 연속적으로 발음하면 나중에 박수박수박수가 되는 꼴이다. 지하철 6호선에는 수색역이 있다. 물 수(水) 빛 색(色) 이다. 물빛, 속초에 있을 때 한 여자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 여자는 오지 않았다.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644930 : << 팩토텀 >> 치나스키, 놀이하는 인간.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44583 : << 우체국 >> 이 세상 모든 똥구멍.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혁 2014-06-22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This is 페루애. 이것이 바로 페루애님의 글이군요.

3년전 리즈 시절의 필력을 보게되어 즐겁게 읽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2 13: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언제 호수집에서 한잔 합시다..

수다맨 2014-06-22 14: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드 같은 이들을 제하면 부코스키 소설만큼 섹스 얘기 많이 나오는 소설도 드문데, 이게 조금도 음란하지가 않고 오히려 슬퍼요. 섹스를 하면 할수록 욕구가 채워지는 게 아니라 더욱더 고독의 늪으로 빠진다고 해얄까요....
이런 터프하고, 겉멋 없고, 비타협적이고, 반노동주의적인 작가는 아마 둘도 없을 겁니다. 한국은 아직도 문학적 고상이 남아서 그런지 노벨상 작가는 우대해도, 셀린느나 부코스키 같은 작가에 대해선 냉연한 태도를 보이죠. 이게 참 문젭니다. 저는 김연수의 모든 소설들을 준다고 해도 부코스키 "여자들"과 바꾸지 않을 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2 14:05   좋아요 0 | URL
아니 어떠게 김연수와 부코스키를 비교합니까. ㅎㅎㅎㅎ김연수에게는 영광이겠으나 부코스키 팬들에게는 경멸입니다. 다시 읽어도 재미있더군요. 그냥 인용문만 찾을까 하고 읽다가 읽다 보니 재미있어서 끝까지 다시 읽었네요. 역시 부코스키'란 생각이 듭니다.

르미에르 2014-06-22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수색역 잘 알죠.
한때 은평구 살았음.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2 21:33   좋아요 0 | URL
수색은 막상 물이 없어요. 저도 은평구에서 자랐습니다. 반갑군요..

수다맨 2014-06-22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일이 켄 로치의 "스위트 16"에 관한 평을 썼던 적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제 생각일지 모르지만) 그 글이 정성일이 썼던 글 중에서 무척 쉬웠던 것 같아요. 본인이 켄 로치 팬클럽의 회원(?!)이라는 속내를 밝히기도 했고, 그에 대한 비판적 의견(영화적 기교가 없고 새로운 미학과 우리가 알지 못한 세계를 보여주지도 않는다)도 물론 있었죠.
그런데 정성일의 그 쉬운 글을 보면서 느낀 게, 이런 평론가들은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렵고 복잡한 작품들을 만나야, 자기가 아는 지식들을 동원해서 꿈보다 해몽이 화사한(?) 글을 쓰거든요. 오히려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강하고 명확한 작품을 만나면, 자기가 할 말이 없어서 쩔쩔매는 꼴이라고 해얄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2 21:43   좋아요 0 | URL
제가 늘 하는 소리가 평론가들은 데이빗 린치 영화를 분석할 때는 쉽게 작업하지만 디워 같은 영화를 분석할 때는 애를 먹습니다. 할 말이 없거등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작품을 써야 그럴싸하고, 그걸 또 영화 감독이나 소설가가 이용하기도 합니다. 내가 보기엔 정성일이야말로 속물근성의 전형처럼 보입니다. 인명사전식으로 주구장창 서양 철학자 이름을 나열합니다. 복수는나의힘에서 보여준 그 나열은 전설이 되었습니다만.... ㅎㅎㅎㅎ

만화애니비평 2014-06-22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색수색 섹스섹스 오덕오덕!!!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2 21:44   좋아요 0 | URL
댓글 내용이 불분명하군요... ㅎㅎㅎ

todd 2014-06-2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람의 몸이나 섹스라는 것에 어떠한 판타지가 끼어들지 않을때 야하게 느껴지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더라구요. ㅎㅎ 이 책 재미있을거 같네요~~ 얼마전에 님포매니악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남성 성기가 아주 클로즈업으로 나열되는데..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어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4 12:25   좋아요 0 | URL
저도 로망스'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게 신기하게도 하나도 야하지 않더란 말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성기 노출 따위가 아니란 거죠.
무엇을 보여주는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감추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구한말 사진 보니 그때 우리 조상들은 가슴을 다 드러내놓고 거리를 다녔더라고요.......

행인 1 2014-06-24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이버로 얼른 돌아오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5 01:14   좋아요 0 | URL
허어,,, 술 한 잔 사시면 돌아가리다 1.

행인 2 2014-06-24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이버로 얼릉 돌아오시욧! 2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5 01:15   좋아요 0 | URL
허어,,, 술 한 잔 사시면 돌아가리다 2.

봄밤 2014-06-25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잘 모르고 지나쳤었는데 말예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6 12:09   좋아요 0 | URL
찾아보려다가 아예 읽기 모드로 바꾸면 안 됩니다...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3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현암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매미와 함께 피어싱'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깊고 어두운 구석이 있었다. 청순가련한 여자이기보다는 스모키 화장과 피어싱이 잘 어울리는 팜므파탈에 가까웠다. 매력 있는 여자였다. 손창섭의 단편 << 인간 동물원 초(抄) >> 를 읽어보라고 한 이도 그녀'였다.  어느 날. 그녀는 툭, 지나가는 말을 내게 던졌다. " 매미는 5년 동안 땅속에 살다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 고작 열흘 남짓 살다 죽잖아요 ? 매미는 땅속에 있을 때가 행복했을까요 ? 아니면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가 행복했을까요 ? "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또래끼리 사소한 논쟁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 짧고 굵게 : 빛나는 태양 아래서 죽느냐 > 아니면 < 길고 가늘게 : 어둠 속에서 사느냐 > 가운데 어느 삶이 더 가치있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곰곰 생각하다가 땅속에서 산다고 해서 불행한 삶은 아닐 거라고 두리뭉실하게 말했다. 성의 없는 답변이었다. 성의가 없었다, 라기 보다는 대답이 궁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과학 에세이 모음집 << 힘내라, 브론토사우르스 >> 에 삽입된 " 밝게 빛나는 커다란 땅반딧불 애벌레 " 라는 긴 제목을 단 에세이를 읽다가 문득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진 그 질문이 생각났다. 

 

 

인간 존재의 여러 측면 중에서, 성장과 발생이라는 생명 주기보다 더 기본적인 것은 거의 없다.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을 찬미하지만, 서양인들은 일반적으로 아이들을 덜 발달한 불완전한 성인으로 간주한다. 성인보다 작고 연약하고 무지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인이 되는 것이 최종 목표고, 어린 시절은 위를 향한 경로일 뿐이다. ( 360쪽 )

 

 

 

그 짦음은 성충에게만 따라다니는 속성일 뿐 그보다 훨씬 오래 사는 애벌레 역시 전체 생명 주기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17년을 사는 매미는 어떤가 ? 매미의 애벌레가 영광스러운 며칠을 끈기 있게 기다리며 오랜 기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은 아니다. 애벌레는 지하에서 활동적인 삶을 영위한다. 물론 그중에는 긴 수면기도있지만, 여러 차례 허물을 벗으며 왕성하게 성장하는 기간도 포함된다. (366쪽)

 

 

17년 매미'는 말 그대로 17년 동안 땅속에서 굼벵이로 있다가 세상 밖으로 나와 매미 성충으로써 열흘 남짓 살다가 죽는다. 무엇보다도 곤충류에 속하는 매미가 개나 고양이 같은 포유류'보다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데 17년 매미에 대한 놀라움'은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다.  그것은 곤충이 17년이나 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상에서 열흘 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17년이라는 " 지난한 세월 " 에 놀라고,  10일이라는 " 허무한 세월 " 에도 놀라게 된다. 전자는 굼벵이에 방점을 찍은 것이고, 후자는 매미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만약에 당신이라면 어느 쪽에 방점을 찍을 것인가 ?

  

아마도 그녀는 굼벵이'보다는 매미'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젊었을 때에는 불꽃처럼 살다가 허무하게 사라지는 生을 동경하게 되는 법이니까 ! 어느 날, 그녀는 날카로운 " 무엇 " 으로 온몸을 자해했다. 살은 부풀어올랐고, 핏방울이 맺혔다. 음각으로 판 상처는 공교롭게도 양각으로 이루어진 흉터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 무수한 상처를 보며 안도했다. 그 상처는 죽음에 대한 욕망보다는 생에 대한 의지'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녀에게 논리정연한 대답을 했을 것이다. 굼벵이의 최종 목표는 매미'가 아니라고, 굼벵이는 매미에 비해 덜 발달한 존재가 아니라고, 날개는 진화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고.

 

날개를 가진다는 것이 진화의 최종 목표라면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조류보다 덜 진화한 존재'가 된다.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 반드시 날개가 필요하지는 않다. " 매미는 날개를 얻기 위해, 독수리도 아니면서, 17년 동안 땅속에서 " 독수공방 " 했을까 ? 17년 매미는 개나 고양이보다 오래 사는 곤충이다. 그러므로 열흘 살다가 죽는다, 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매미는 17년을 살았다. 매미가 완전체'라면 굼벵이도 완전체'다. 스모키 화장과 피어싱이 잘 어울리는 그녀는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었다. 나는 그녀가 쓴 우울한 문장을 매우 좋아했다. 좋은 작가'가 되리라 믿는다.

 

" 힘내라, 팜므파탈이여 ! " 검은 터널은 끝에 가서야 환해지는 법이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orgettable. 2014-06-21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벌레의 삶도 삶의 일부라는 걸 예전엔 전혀 인지조차 하지 못했는데.. 이젠 오히려 애벌레에게 더 공감을 하게 된다는건 나의 젊음도 스러져간다는 걸까요 ㅎㅎㅎ

그것의 삶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건 그렇게까지 두루뭉실한 대답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2 09:26   좋아요 0 | URL
저도 항상 매미와 굼벵이를 따로 따로 구분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미는 열흘 밖에 못사는 녀석이라며 안타까워하고는했습니단ㄷ.ㄷ
생각해 보니 곤충치고는 정말 장수하는 짐승 아닙니까. 17년을 살다니...

마립간 2014-06-21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굼벵이의 목표가 매미라면, 삶의 목표는 죽음이죠. 이런 시각이 어떤 이에게는 굼벵이와 삶을 긍정하게 만들고, 어떤 이에게는 굼벵이와 삶을 부정하게 만듭니다.

동양에서는 태어나자마자 1살입니다. 0이라는 숫자개념이 없어 만들어진 오류이지만, 어머니의 뱃속의 1년을 삶으로 인정하지 않은 오류와 상쇄되어 ; 어머니 뱃속에서 1년을 살고 나오는 개념으로 재해석될 수 있게 되었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2 09:28   좋아요 0 | URL
그르네요.... 굼벵이 목표가 매미'라면 결국 죽음에 목적이네요.
0이라는 숫자는 알고 보니 인도에서 나왔더라고요. 반면 서양은 0이라는 숫자를 끝끝내 반대하다가
결국 받아들였다라고 하더군요... 근데 태어나자마자 1살인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아이 뱃속에 있는 것을 포함하니깐 말이죠..

곰곰손 2014-06-21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음각으로 판 상처는 공교롭게도 양각으로 이루어진 흉터가 되었다. ]



아바보ㅡ
이런 문장은 대략 너밖에못쓴다는ㅡ

짜증난다ㅡ ㅎㅎ

넘좋아서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2 09:29   좋아요 0 | URL
허어, 낮부끄럽게 이게 무슨 칭찬이냐.... 근데 문장이 나쁘지는 않네..ㅎㅎ

만화애니비평 2014-06-21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발님 즐거운 주말 되세용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2 09:29   좋아요 0 | URL
뜬금없이 갑자기 웬 인사입니까..ㅎㅎ 만애비 님도 ....

엄동 2014-06-23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말 좋아해요
터널은 끝에 가서야 환해진다는.

..
그치만
인생도 때론
매미의 그것과 비슷하죠

아 환해진지 얼마다 됐다고
다시 터널 속으로 진입합니까. 허무하게

곰곰생각하는발 2014-06-24 12:26   좋아요 0 | URL
엄동 님 오랜만이군요. 교통사고 후 별탈 없으십니까 ?
앞으로 비만 오면 허리가 쑤실 겁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터널은 끝에 가서야 한해진다는 말은 최승자 시에서 읽었습니다.
갑자기 최승자 시인 괜찮은지 궁금하네요.
현대 시인 중 독보적 자리를 갖는 분이기도 한데 말입니다.
 
[힘내라 브론토 사우루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3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현암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외로워도 슬퍼도

 

 

 

 

 

하니는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다고 말하는, 엄마 품이 그리운 사춘기 소녀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에서 소녀는 달리기'로 슬픔을 잊는다. 나애리 나쁜 계집애'가 사사건건 괴롭히지만 씩씩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리라. 하니와 처지가 비슷한 캔디도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다."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우니. 이라이쟈 쌍년이 괴롭혀도 울지 않아. 울면 바보니까. 피식 ~ "  두 소녀, 울지 않는다. 뻐꾸기는 밤에 울고, 앵무새는 몸으로 울고,  알람 시계도 날마다 아침 6시면 우는데, 씩씩한 소녀라고 해서 울고 싶지 않으랴. 다만, 남들 보는 데서 울지 않을 뿐이다. 어금니 꽉 깨물고 눈물을 삼켰으리라. 그런데 캔디 아빠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는커녕  남들 보는 데에서만 눈물을 흘린다. 마치 사람이 볼 때에만 곡(哭)을 하는 귀신처럼. 그는 기자 앞에서 " 아들아, 사랑한다 ! " 울부짖고, 시민 앞에서 " 딸아, 미안하다 ! " 절규한다.

 

그 목소리, 아... 물 먹은 습자지 같다. 고승덕 이야기'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다. 하지만 어른이 남들 다 보는 데서 일부러 눈물을 전시하는 것은 속보이는 태도'다. 박근혜가 울었다, 정몽준도 울었다, 고승덕도 울었다. 이 정도면 새누리라는 이름의 정당(party)은 이번 지방 선거에서 " 눈물의 파티 " 라도 하는 모양이다. 이번 지방 선거 결과를 보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다 하셨는데 대한민국 할아버지는 운다고 떡 하나 더 준 모양이다. 응석을 받아주기 시작하면 버릇이 없어지는 데 말이다. 여당이 잘못하면 회초리를 들지만 야당이 잘못하면 칼을 드는 편애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피도 눈물도 없는 " 그네 " 가 흘린 것은 누수(淚水 : 눈물 루, 물 수)가 아니라 절묘한 한 수'였다.

 

세월호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며 독한 마음을 품은 " 앵그리맘 " 은 그네가 흘린 눈물 앞에서 " 엉크러진 마음 " 이 흩어졌다. 40대 앵그리맘'이여, 조까라 ! 그나마 진보 교육감 후보'가 선전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씩씩한 캔디가 찌질한 아빠를 이겼다. 눈물은 힘이 세지만 눈물보다 힘에 센 것은 용기'라는 사실을 알린 사건이었다.  고승덕은 기자회견을 열어서 구질구질하게 가족사를 늘어놓으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그가 진실이라며 한여름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놓은 말은 구차한 변명처럼 보였다. 좋은 문장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말머리로 시작해서 마침표로 끝나는 간격이 길면 길수록 정성일 문체'가 된다. 사과는 맛있고,  맛있으면 바나나이고,  바나나는 길고, 길면 정성일 문체'다 ! 진실'도 마찬가지'다. 거짓말은 길고 참말은 " 참말로 "  짧다.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쓴 에세이 << 기사가 비숍을 잡다 ? / 힘내라, 브론토사우르스'에 수록 >> 에서 굴드는 " 처음 거짓말을 할 때, 우리는 얼마나 복잡하게 뒤엉킨 거짓의 그물망을 치는가 " 라고 말한 후 " 복잡한 이야기를 정직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을 말하는 것 " 이라고 지적한다. 고승덕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심을 유권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짧게 말했어야 했다. 변명이랍시고 장황하게 말하는 놈치고 진정성 있는 말을 하는 놈은 없어요. 진실은 복잡하지 않다. 진실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진실을 감추기 위해 복잡한 거짓말을 진실 속에 섞기 때문이다. 진심도 마찬가지다. 진심은 복잡하지 않다. 서울시 교육감 후보 가운데 하나였던 문용린이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를 " 패륜 " 이라고 지적했을 때,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그가 자식'을 독립된 주체로 보지 않고 단순히 불완전체 정도로 인식하는 태도'다. 그는 < 아버지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 > 을 < 아버지에게 지지 않겠다는 말 > 로 받아들인다. "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 " 와 " 지지 않겠다는 말 " 를 착각한 것이다. 그에게는 가족 쿠데타'처럼 보인다.  우석훈과 함께 << 88만원 세대 > 라는 책을 쓴 박권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캔디의 고백을 정치 발언( " 아버지를 지지하지 않는다 ! " ) 이 아니라 사적 폭로 ( " 아버지에게 지지 않겠다 !  " ) 로 인식한다. ☞  http://blog.aladin.co.kr/749915104/7028531  캔디는 27살 씩씩한 여성이다. " 생물학적 아버지 고승덕 씨 " 와 정치적 입장과 견해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문용린과 박권일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식은 불초/不肖에 불과하니깐 말이다.

 

<< 밝게 빛나는 커다란 땅반딧불 애벌레 >> 라는 에세이'에서, 굴드는 미성년을 미성숙으로 인식하는 꼰대의 태도'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인간 존재의 여러 측면 중에서, 성장과 발생이라는 생명 주기보다 더 기본적인 것은 거의 없다.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을 찬미하지만, 서양인들은 일반적으로 아이들을 덜 발달한 불완전한 성인으로 간주한다. 성인보다 작고 연약하고 무지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인이 되는 것이 최종 목표고, 어린 시절은 위를 향한 경로일 뿐이다. ( 360쪽 )

 

 

굴드는 애벌레와 성충을 예로 든다. 그는 애벌레가 " 성충을 예비하는, 아직 발달하지 않은 또는 불완전한 무엇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 고 주장한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애벌레는 완전체'다. 나비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 고시오패스 " 고승덕과 " 문제적 역린 " 문용린은 캔디를 단순하게 나비가 되기 전 애벌레 정도로 취급한다. 하지만 틀렸다. 애벌레는 그 자체로 움직이는 독자적인 존재'다. 윤도현 밴드는 < 나는 나비 > 라는 노래에서 애벌레를 원시적 형태'라고 노래하지만 애벌레는 결코 나비의 불완전체'가 아니다.

 

나비가 완전체라면, 전 단계인 애벌레도 완전체'다. 날개 활짝 펼 필요 없다. 총을 든 포수에게 과녁만 넓혀 줄 뿐이니깐. 잉게보르크 바하만은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라고 말했다.  극장에서 극장 간판을 그렸던 내 아버지는 장길수 감독의 영화 < 추락하는 것을 날개가 있다 > 라는 간판을 그리다가 실수로 제목을 < 추락하는 것을 날개가 없다 > 라고 썼다. 하지만 극장 간판이 걸려 있는 동안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사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으니까 !  나는 아버지가 저지른 사소한 실수를 알아차렸지만 모르는 척했다.  중요한 것은 추락이지 날개가 < 있다> 아니면 < 없다 > 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됐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 나비가 완전체라면 애벌레도 완전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누피 2014-06-05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굴드의 글엔 좋은 구절이 구구절절 많군요. 굴드의 글은 모두 다 페루애 님 블로그에서 본 것이지만 말입니다. 무슨 가학성애자들도 아니고 회초리를 그리도 좋아하는지. 때릴 바엔 개잡는 5파운드 곡괭이자루 같은 걸로 때리지 회초리가 뭔가 모르겠네요. 애들 장난도 아니고. 앵그리맘은 옌병, 정의의 손을 들어준 게 아니라 고 캔디의 처지에 동정표를 던진 게지요. 드라마 주인공인데 아무렴요. 오세훈이 때부터 우는 게 당의 전통이 된 모양입니다. 사람이 울게 되면 손석희 씨처럼 당황하며 얼굴을 돌리는 게 인지상정이라는데, 저것들은 카메라 도는 데 대놓고 연기들을 하네요. 몽준이와 승덕이는 대종상 후보쯤 되고, 역시나 선거의 여왕은 눈물의 여왕이었으니 오스카 트로피 하나쯤 받을 만 한 연기였습니다. 아랫 것들과는 그 연기의 끕'이 달라요. 그러니 다들 모르는 척 속아주는 게지요. 드라마 스토리대로 할 만큼 했으니 용서해 주자, 쟤 풀어줘- 하던 눈물의 형사 문재가 생각나는 리액션입니다.

그나저나 간격이 길면 길수록 정성일 문제가 된다, 에서 뿜었습니다. 명문입니다. 그렇죠. 명문과 진실은 짧고 굵죠. 습자아지-처럼 늘어지지 않고 말예요. 호호.

곰곰생각하는발 2014-06-05 16:44   좋아요 0 | URL
특히 이 책은 재미있습니다. 과학 분야를 이 정도 글발을 선보인다는 것은 박근혜 개인기'만큼이나 화려하며, 은은하고, 형광등 10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를 가진 개인기라 생각합니다. 난공불락이죠. 눈물 연기... ㅎㅎㅎ 연기자가 제일 하기 쉬운 게 우는 연기입니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웃는 연기가 힘들죠.

스누피 2014-06-05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무튼 어제 오늘 아 시바...입니다. 꿀꿀합니다. 이 '미개한'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은.

곰곰생각하는발 2014-06-05 16:44   좋아요 0 | URL
앵그리 맘'은 뭐 했을까요 ? 자기 자식 새끼 귀한 건 알아가지고 교육감 후보에는 진보 쪽에 표를 하나 던지더군요.

곰곰손 2014-06-05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내 생각은 이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거나, 또는 없거나 둘 중 하나야.
근데 추락하는 존재에게 날개가 있다면 그건
그렇지 않은 쪽의 사정보단 좀더 슬픈 서사가 된다는 거..
추락하는 어떤 존재에게 있어 날개의 유무를 따짐으로써
희망론으로 받아들이느냐 절망론으로 받아들이냐인데
이건 사실 매우절망적인 얘기야. 버젓이 날개가 있는데 추락해야한다니 말이야.
잉게보르크바흐만이 그 시에서 말하고자 한건, 절망이야.
혹은 절대적인 절망안에서 살짝 맛보는 희망?

딴지가 아니라 지금 내가 그리는 원고가 딱 이얘기임 ㅋㅋ
그래서 추락, 날개, 희망, 절망.. 이따위꺼 좀생각하고지냄(*v*)!!ㅋㅋ

+암튼 정몽준이 설 시장되는 거는,




안봐서 다행이다.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4-06-05 19:29   좋아요 0 | URL
글구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라고 해야 뭔가 그럴싸하긴 해. ㅎㅎ.
이게 아마 이문열 소설로도 나왔을 것이야....
요즘 우울한, 깊이있는 작품을 하는군.
그래, 잘 선택했다. 로맨스는 이제 버려. 아주 고독한 사랑에 대해 써보라구...



앞으로 몽준이는 갈치선생이라고 불러줘...

마태우스 2014-06-05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승덕 씨도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그 정도 복잡한 사정이 있다면 정치를 안하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들추고 싶잖은 가족사가 다 까발려지면서도 정치판에 나서야 할 사정이 뭐가 있을까 싶거든요. 참고로 전 그래서 정치판에 나설 마음이 없답니다^^ 글구 참 신기한 게, 보통 진보가 분열하고 보수는 뭉치는데 교육감 선거에선 늘 진보가 뭉치고 보수가 찢어져요. 왜. 그런지 가르쳐 주세요 스승님.

곰곰생각하는발 2014-06-06 11:12   좋아요 0 | URL
글쎄요.... 통빡을 굴리자면 교육감 선거는 < 새누리 프리미엄 > 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새누리'라는 브랜드는 다른 브랜드보다 당선 확률이 높잖습니까. 무소속 선거이다 보니
왠지 나가면 될 것 같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작동한 것 아닐까요 ?
반면 진보는... 음.... 잘 모르겠군여..ㅎㅎㅎㅎ

마태우스 2014-06-06 17:55   좋아요 0 | URL
아 맞다. 교육감은 당적이 없군요. 역시 곰발님!!

2014-06-05 2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06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다맨 2014-06-06 0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풍자와 대구가 녹아든 촌철살인의 글을 쓰셨네요. 요즘 신문들 ㅡ하다못해 한겨레까지도ㅡ 맛이 간 것처럼 보이는데 이 글이 종이신문에도 실렸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여당이 잘못하면 회초리를 들지만, 야당이 잘못하면 작두를 든다는 저 말이 퍽이나 예리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6-06 11:14   좋아요 0 | URL
대구 요리 먹고 싶군요.... 사실 거제 사시는 분이 대구 큰 거 한 마리 보내주셔서 어제도 미역국 끓여먹었습니다. 맛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