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책 사러 서점 가요 ?
이십 세기말, 디카( : 디지털카메라)가 세상에 등장했을 때 필카( : 필름 카메라)를 다루는 사람들은 모두 짐승털카메라를 비웃었다. 하지만 디카는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고 필카는 추억의 물건으로 몰락하고 말았다(이제 필름 카메라는 한강 미사리 밤 카페 진열대에 놓인 인테리어 소품으로 남아 그나마 근근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캔 로치는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었던 지구의 마지막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손으로 필름을 다루며 편집했던 직업군 또한 종말을 고했다. 필름이여, 안녕 !
전자책과 종이책의 대결도 이와 유사했다. 업계에서는 필카의 전광석화 같은 몰락을 예로 들며 전자책이 곧 세계를 지배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종이책은 여전히 건재하다. 종이책만이 가지고 있는 물성과 지적 허세를 자랑하고 싶은 독자의 " 가시성의 욕망 " 이 겹치다 보니 종이책은 죽지 않아 ! 종이책은 한숨 깊은 문학소녀에게 이렇게 속삭이리라. 오빠는 몸 성히, 성히, 성히 잘 있단다. 종이책을 단순하게 상품의 흥망성쇠로 접근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왜냐하면 종이책은 오래된 상품의 한 종류'라기보다는 인류 문명과 함께 한 문화적 자산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 밀리의 서재 >> 가 전자책 플랫폼이라는 사실은 친애하는 이웃의 글을 통해서 알았다. 눈동냥으로 밀리의 서재라는 이름을 간혹 보긴 했으나 책 관련 방송 프로그램'이려니 했다. 호기심이 생겨 살펴보니 정액제로 월9,900원을 내면 전자책 30,000권을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일단 " ㅡ 9,900원 " 이라는 박리다매의 자본적인 너무나 자본적인 자본주의적 센티멘탈에 빈정이 상했다. 또한 " ㅡ 무제한 " 이라는 표현도 눈에 거슬렸다. 마치 무한리필 고깃집 마케팅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인당 9,900원을 내면 배가 터지도록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괴깃집의 전략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
어떤 이는 밀리의 서재 플렛폼 방식을 두고 시대 변화를 거스를 수 없는 공유 경제 형태의 소비 방식'이라고 주장했으나 무제한이라는 타이틀을 단 무한리필이 21세기 공유 경제의 최신 버전이라면 무한리필 삽겹살집도 21세기 최첨단 공유 경제 플렛폼이라고 주장해도 된다. 고무줄 바지 입고 무한리필 식당에서 품질 낮은 고기를 허겁지겁 배 터지게 먹다 보면 차라리 좋은 고기를 파는 식당에서 우아하게 여유있게 칼질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고기를 먹고 싶다는 소비자의 식욕을 탓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당신이 소위 전문가라는 고독한 미식가'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당신이 고독한 미식가라면 박리다매로 파는 식당 때문에 정직한 맛으로 승부를 거는 작은 식당이 문을 닫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야 한다.

소설가 김영하가 광고 모델로 등장하는 밀리의서재 광고 문구는 " 요즘도 책 사러 서점 가요 ? " 이다. 책 사러 서점에 가는 행위는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20세기 쇼핑 행위'라는 뉘앙스로 읽힌다. 마치 백종원이 " 요즘도 동네 골목 식당에서 식사하세요 ? 이제 더본호텔 푸드코트1)에서 식사하세요 ! "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볼에 헛바람 넣고 " 작은 독립 서점 응원합니다, 뿌잉뿌잉 ! " 했던 김영하2)가 돌변하여 " 시발, 아직도 서점에서 책 사냐? " 라며 타박이나 하고 있으니 씁쓸한 마음 금할 길 없어 오늘도 나는 달콤쌉싸래한 씀바귀.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글을 써서 성공한 몇 안 되는 인기 작가'가 광고 욕심에 부나방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박리다매 플랫폼에 뛰어드니 그 꼴이 참 장관. 영화 << 해바라기 >> 에서 열연을 펼쳤던 김래원의 성대모사를 빌리자면 " 꼭 그렇게 했어야만 했냐 ? " 책을 팔아서 노후 걱정 없이 살 만큼 부를 쌓았던 인플루언서라면 그동안 자신의 문장을 따스하게 품었던 종이책과 동네 책방'에 대한 리스펙트는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작가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 내가 이 광고를 통해서 느끼는 것은 " 예의 상당히 졸라 없음 " 이다. 마시던 우물에 침 뱉고 떠난 꼴이다.
사람들은 전자책의 장점으로 종이책에 비해 여러 방면에서 읽기에 편리하다는 점을 뽑는다. 달리 말하면 종이책은 전자책에 비해 불편하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불편하다는 것은 독서 행위에 있어서는 단점이 아니라 최대 장점이라는 점이다. 나는 종이책이 전자책에 비해 불편하기 때문에 애써 종이책을 읽는다.
1) 백종원이 운영하는 호텔
2) 문학동네와 전속 계약을 맺었던 김영하 작가'가 최근 출판사와의 계약 기간이 만료된 모양이다. 야구 용어를 사용하자면 FA 신분인 셈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김영하 1인 출판사(임프린트 출판사)를 차릴 것 같다는 소식이다. 김영하 출판사의 첫 책은 밀리의서재에서 종이책 특별 한정판으로 나오는 모양. 이제 그는 작가에서 출판사를 굴리는 사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작가 신분이었을 때에는 동네 책방과의 상생을 그토록 강조하더니 사장이 되고부터는 요즘 누가 서점 가서 책 사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밀리의서재에서 출간하는 종이책은 일반 서점에 배포되지 않고 회원들에게만 판매되는 한정판이기 때문이다). 사업가 부심 쩐다. 인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