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실물 , ,


 






 

 

 

 

 

 

 

 

 

 

달방

 

 


 

달방에 머물다가 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기 투숙 중이던 모텔 방을 초대할 만큼 넉살이 좋은 성정도 아니어서 내가 속초에서 머물었던 1년은 외로웠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셨다. 대화라고는 간간이 걸려오는 안부 전화가 전부였으나 그것마저도 끝은 좋지 못했다. 나는 불쑥불쑥 화를 냈고 상대방은 갑작스럽게 화를 내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나 스스로도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머물던 객실 옆 호실에는 저녁에 출근해서 새벽에 들어오는 직업을 가진 여자가 살고 있었다. 나만큼이나 조용했다. 그 흔한 티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느 날, 그토록 조용했던 여자는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울었다.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쏟아져나오는 쇳소리가 방음이 잘 되지 않는 벽을 타고 들려왔다. 이런 울음에는 이유를 묻지 않는 것이 예의여서 카운터 여자'는 잠시 복도를 서성이다가 이내 카운터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가 우는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지만, 또 알 것도 같아서 함께 울었다. 타인을 향했던 연민이 나에게로 돌아오자 내가 미워졌다. 며칠 뒤, 모텔 관리자는 그 여자가 머물던 객실 도배를 하고 있었다. 내가 그 여자의 안부를 묻자 모텔 관리자는 그 여자는 어제 떠났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머물렀던 장기투숙자였다고, 사람이 오래 머물다 보면 그 사람 특유의 냄새가 배서 도배를 해야 된다는 말도 했다. 평소 말이 없던 나는 여자가 떠난 후 더욱 쥐죽은 듯 달방에서 보냈다. 그사이 노무현이 죽었고, 예상하지 못한 전화를 받았다. 헤어진 여자였다. 그리운 사람이었으나 나는 느닷없이 화를 냈고 여자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하얀 침대 시트는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전날 술에 취해 벽을 향해 술병을 던졌는데 온전히 침대가 깨진 병조각을 받아냈던 모양이었다. 그 상태로 누워 잠이 든 것이다. 등골에 유리 파편이 박히자, 나는 곱추처럼 혼자 걸어서 속초중앙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다친 이유를 집요하게 물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치료를 받고 병원 문을 나서다가 시장에 들려 순댓국집을 찾았다. 매운 다대기를 듬뿍 넣어주세요.                그해 내내 폭설이 내렸고 다음 해'에도 그치지 않고 내렸다. 3월에도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걸을 때마다 무릎까지 잠겼다. 며칠 후, 나는 속초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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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모르텔 2017-10-15 0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애물단지 고양이들이 글자판기에서 주무시는데 , 깨우게 만드시는군요~아 눈물나!! .. 참놔..ㅎ
오래전 절간살때 발바닥에 술병쪼가리들이 박혀 무지 아팠던 기억이..ㅎ;;
... 글읽다가 무의식에 박혀있던 제 기억쪼가리도 빼버렸네요~ 곰닥터님~꾸벅(_ _)

곰곰생각하는발 2017-10-15 11:35   좋아요 0 | URL
네에. 참 신기하죠. 가장 아팠던 시절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가장 많이 생각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