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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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러니까.......

서너달전부터 알라딘 마을에 이 '맛'에 대한 리뷰가 속속들이 올라오기 시작할 때부터 '저건 의외로 별로일거야'하면서 잘난 척을 하는 게 아니었다.

언제나 그런 식이다.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영화나 책에 대해서 일단은 삐딱선을 타는 나.

'아니, 사람에 따라 재미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 어째 다들 하나같이 재미있다고 한담?  그 재미의 50%는 분명히 거품이고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는 걸꺼야'하면서.

그러면서도 서점에 갈 일이 있을때면 베스트셀러 코너 정중앙에서 '날 한 번 읽어보지? 그런 말 못할 걸?'하는 듯한 이 책을 집었다놓았다 하기를 여러번....결국 며칠 전, 우리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내가 이기지 못하고 '맛'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마의 코스. 신호없이 죽 달려가는 내부순환로 위에서 가도가도 차가 막히길래 조수석의 택배 상자 속에서 삐죽 머리내밀고 있는 '맛'을 몇 페이지 훑어 볼 요량으로 집어든 건 결정적 실수였다.  몇 장 읽지도 않아서 나는 운전 중이라는 걸 순간순간 잊은 채 핸들위에 책을 올려놓고 제발 차가 천천히 가서 이순간에도 계속 읽어나갈 수 있게 되거나 아니면 순식간에 도로가 뻥 뚫려서 집까지 날아가길 바랄 수 밖에 없었다. 이 대단한 재미란!!   

앞 차의 뒷 범퍼에 여러번 부딪힐 뻔 하면서 내부순환로 위에서 첫번째 단편인 '목사의 기쁨'을 다 읽었고 이런 식으로 운전했다간 대형사고 내겠구나 싶어  그 길로 쓔웅 집에 달려서는 초스피드로 씻고 밥 짓고 저녁 준비를 후다닥 한 뒤, 아이는 신데렐라 DVD를 틀어주고 - 엄마, 귀찮게 하면 안 돼! - 두번째 단편인 '손님'을 만났다.

만약 '손님'의 이런 결말을 다른 작가가 소재로 삼았더라면 '뭐야, 완전 엽기잖아...아, 불쾌해...'했겠지만 로알드 달은 내게 무슨 마법을 건 것일까. 이런 찝찝한 얘기도 유머러스하다고 느끼게 되는 까닭은. 

이렇게 열 편의 단편을, 한 권의 책을 순식간에 읽어내리긴 정말 오랜만이다. 아니, 아예 처음인가?

이제서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예전에 '생각만큼 재미없을'거라며 잘난 척했던 내가 우스워보이게까지 만드는 대단한 이야기들을 제대로 만났다. 이제 '맛'은 내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읽었다하면)모두들 나에게 빠져 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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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5-09-09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무서워라. 공포물 같은데. 나도 줄다리기 중인데, 이거 읽다가 2호선 순환선 타고 돌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예감이...

서연사랑 2005-09-10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그 예감이 맞을 걸?
괜히 이기려고 버티지 말고 빨리 넘어오라~^^

마냐 2005-09-10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머, 저 빠져들었어요...호호홋. 리뷰 안 쓰고 버티는 중인데...

서연사랑 2005-09-12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이 쓰시면 리뷰 자체로도 너무 '맛'나지 않을까요?
좀 지나서(지금 바로 쓰시면 제 리뷰가 너무 초라해 보일지 몰라서...방어전략^^)꼬옥 써 주세요~

로드무비 2005-09-21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후딱 읽어야겠군요.
사둔 지 어언 3개월?!
가슴 조이며 읽었어요.
서연사랑님이 앞차 뒤꽁무니 들이받을까봐!^^

서연사랑 2005-09-21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그날 정말 위험했답니다. 남편이 알면 엄청 잔소리했을껄요? 제가 좀 사고쟁이라서.....(자동차 보험 빼고 운전자 보험만 2개예요 ㅠ.ㅠ)
앉아서 3시간이면 후딱 읽으실 수 있을거예요. 3개월을 기다린 보람이 있으시길...^^
 
그림 속 여인처럼 살고 싶을 때
이주헌 지음 / 예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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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 생각한다.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정말 아무 걱정없이 다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대상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누군가에게는 그 대상이 남편(혹은 아내)일 수도 있겠고, 부모님일 수도 있겠고, 형제자매이거나, 아니면 친구일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그 남편도, 부모님도, 여동생도, 친구도 그 대상은 아닌 듯 하다. 뭐 하나 잘난 것 없으면서 쓸데없이 자존심만 강한 나는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다름 사람이 알까 두려워 한다. 친정엄마에게 결혼생활을 어려움을 토로하고 싶어도 "네 선택이었으니 현명하게 잘 살아라" - 결혼식날, 엄마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서 말문을 닫게 되고 나이 어린 여동생에게는 "언니, 왜그러고 사니" 핀잔 주지 않을까 싶어 "잘 지내고 있다"며 화제거리를 돌리고 더욱이 친구들에게는 없는 자랑거리를 만들어 내야 하지않을까 고민하는 나.

8월 초,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전" 전시회를 보러 가는 길에 지하철을 탔다. 며칠 전에 동생에게 주려다 어찌어찌하여 내 차지가 된 <그림 속 여인처럼 살고 싶을 때>를 가방 속에 챙겨 넣고.

1시간여 걸리는 지하철속에서의 시간. 내 얘기를 가만히 들어주면서 내게 조용히 말을 건네는 친구를 옆에 두고 가는 기분이다.

아이에게 새 옷을  사 입히고 싶을 때, 신혼의 날들이 그리울 때, 돈벼락을 맞고 싶을 때, 삶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느낄 때....... 친구는 소리내어 말하지 않지만 그림을 통해 얘기한다. 그래, 그렇겠구나. 네 기분 이해해.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떻겠니. 힘내, 절망을 보지 말고 희망을 보라구.

애써 내 고민을 포장할 필요도 없고 숨길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과 내 생각을 책 속에 투영시킨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를 비난하거나 우습게 보지는 않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림 속 여인처럼 살고 싶을 때>라는 제목과 함께 너무나 우아하게 미소짓는 아리다운 여인의 얼굴이, 표지에서 보여지는 그대로 일세를 풍미했던 유명한 여인들을 모델로 한 책이라고 짐작하게 하지만 실제 책 속의 내용은 생활의 모든 문제를 앞에 놓고 걱정하고 근심할 때 혹은 남과 함께 사소한 기쁨을 나누고 싶을 때 내 얘기에 귀기울여주는  편한 친구처럼 삶에 작은 위로를 건네준다. 

오늘, 높고 맑은 가을 하늘을 이르게 볼 수 있는 이 청명한 아침에 내 편한 친구를 한 번 만나보시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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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8-23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없는 자랑거리라도 만들어내어 자랑하고 싶은 날의 헛헛함이라니!
이 책에도 한 번 손을 뻗어볼까요?^^

서연사랑 2005-08-23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인생이 자랑거리가 넘쳐나서 오히려 감춰야 하는 날이 더 많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요.

마냐 2005-08-24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과 표지, 저자가 주는 인상과 달리....편안한, 작은 위로라...것참 궁금하군요. ^^

돌바람 2005-09-03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깡총깡총, 저 이 책 이떠요. 근데 언제 읽지!^^

서연사랑 2005-09-03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햄스빌 갤러리라고 홈피도 있어....(우리 반말하기로 했으므로^^)
그러면 책 안 봐도 본 거나 같은데....한 번 들어가 보세용~
 
숨쉬는 항아리 - 솔거나라 전통문화 그림책 6 전통문화 그림책 솔거나라 2
정병락 글, 박완숙 그림 / 보림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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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솔거나라 전통문화 그림책 30권.

엄마로서의 Dream이죠. 이걸 한 세트 몽땅 사서 촥 책꽂이에 꽂아 놓는게. 그런데 아이에게 그렇게 사 주는게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하고(보는 건 보고, 안 보는 건 아예 눈길도 안 주고 할까봐), 솔직히 자금의 압박도 있구요. 그래서 감질나긴 하지만 한 권씩, 한 권씩 사 주고 있는데요.

'숨쉬는 항아리', 요건 제가 사 주고 싶어서 벼르다가 산 건데 첨엔 딸의 반응이 영 별로더군요. "이게 옛날 그릇이라구?" 하더니만 휙휙 몇 장 넘겨보고는 잘 찾지를 않는 거예요. 그래서 좀 아차 싶었죠.

그러다 며칠 전, 비가 와장창 오던 오후. 아이가 너무 심심하다고 무조건 나가자고 하더군요. 서점 구경을 갈까 하다가 문득 지나다니다가 본 '옹기민속박물관'에 가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과 제가 우리 동네에 저런 박물관이 있었네 하면서 가보자~했던 곳이라 이참에 '숨쉬는 항아리'책을 딸 손에 들려서 집을 나섰어요. 우리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지라 비가 많이 오는 것도 별 부담은 안 되더군요.



아기자기한 박물관이죠. 아주 거창하고 세련된 건물은 아니지만 정감이 가는 박물관 전경입니다.



여기서 아이들이 직접 옹기를 만드는 프로그램이 있는 것 같더군요. 아이들 작품 앞에서 '숨쉬는 항아리' 책을 들고 사진 찰칵!  자기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조르는군요.



책 중간에 여러 모양 옹기들이 모여 있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에 이 옹기가 나와 있어요. 책을 읽어 줄때는 항아리를 두 개, 아래 위로 겹쳐 놓은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실제로 이런 모양이 옹기가 있고 용도는 술 내리는 옹기더군요. 이름은 '소줏고리'



이건 굴뚝. 책 보면서 서연이가 제일 좋아했던 모양의 옹기죠. 실제로 보니 "꺄아~꺄아~"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여기는 박물관 뜰의 장독대. 여기에 고추장도 있고 간장도 있고, 여기에 담아두면 더 맛난다고 말해주니 관심이 가득했어요.

지하1층, 지상2층으로 다 둘러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구요. 1층 카운터가 있는 전시장에서는 영상물 상영도 해주고 장식용 옹기들도 팔고 있습니다. 기념으로 작은 미니 항아리를 2500원 주고 하나 사 왔죠.

옹기박물관에 다녀와서는 제일 잘 읽는 책이 '숨쉬는 항아리'가 되었구요. 나름 우리의 옹기가 투박하지만 은근한 멋이 있다는 걸 아이도 아는 것 같습니다. 밥 먹을 때 "밥도 작은 항아리에 담으면(?) 예쁘겠다"하네요.

잊지못할 경험까지는 아니더래도 민속촌이나 옹기박물관 같은데 다녀오면 우리의 전통 문화를 그림책으로만 익힐때보다 훨씬 기억에 오래 남고 마음에 와 닿는 경험이 되는 것 같아요. 좋은 경험을 선사해 준 '숨쉬는 항아리'와 함께 한 즐거운 오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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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5-08-16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기 어디예요!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서연아, 안녕 *^^*
서연사랑님, 오랜만인 듯. (인사의 순서가 뒤죽박죽~~)
잘 읽었어요. 감사...

서연사랑 2005-08-16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성여대 아시나요? 그럼 419 국립묘지는요? 거기 근처에 있는 아담한 옹기박물관이예요. 저는 집에서 가까운데 딸기님은 좀 거리가 있군요, 나중에 우이동쪽으로 오실 일 있으시면 한 번 들러보세요. 화려하고 잘 꾸며진 곳은 아니지만 푸근하고 말그대로 옛날냄새가 나는 곳이죠^^
정말 딸기님 한 번 더 뵙고 싶은데 이상하게 용기가 안 나네요. 날씨 선선한 가을되면 꼭, 꼭 아이들 데리고 한 번 만나요~

로드무비 2005-08-17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마이 도러에게 사준 책이네요.
서연이 더 똘망똘망해졌습니다.
순정만화 주인공 소녀 같아요.^^

서연사랑 2005-08-1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말씀대로 똘망해진 것 같긴 한데요, 그래서 요즘 치열하게 싸우고 있답니다. 한 마디도 안 져요......엄마로서 말빨이 안 살아서 이젠 혼내다가 흐억! 할 때가 많아요....점점 더 그러겠죠?? ㅠ.ㅠ

내가없는 이 안 2005-08-18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연이 야무진 소녀 같네요. 로드무비님네 주하랑 동갑쯤 되나요?
이 책 저희 집도 애독서예요. 옹기민속박물관, 많이 좋아보이는데
거리가 좀 머네요. 글과 사진, 잘 봤어요. ^^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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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때로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지금까지 했던 봉사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경험은 어떤 것이었나" 라는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이 때 아이들의 대답은 천차만별이어서 그들보다 십 몇년을 더 산 어른이면서도 바로 그 사실이 너무 부끄러워 질 때도 있고(3년전에 우리반 학생 하나는  중학생때부터 독거노인과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급식 봉사를 매.일. 나가는 학생이 있었다.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바로 그런 학생들이 우리들 어른의 선생님이다!), 때로는 대답을 하는 학생들에 대해 봉사활동을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호통을 치는 경우도 있는데 호통이 날아갈 때의 대답들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 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는데요, 그 사람들을 보면서 제가 건강한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게 됐어요. "

" 보육원에 가서 아이들 목욕 봉사와 식사 도우미 활동을 했는데요, 다녀 오고 난 이후로 부모임께 더 잘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런 대답을 아이들이 자랑스레 할 때 나는 되묻는다, 그래.너희보다 건강하지도 않고 부모님 없는 아이들을 보니 너희가 저런 상태가 아니어서 안심이 되더냐고. 그래서 기쁘더냐고.

열심히 봉사활동 잘 하고 온 아이들에게 격려를 해 주지는 못 할 망정 왠 심통이며 딴지걸기냐 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 안타깝게도 학생들 대부분의 경우는 봉사활동을 함에 있어서 '그들과 나는 하나'라는 생각보다 '그들과 나는 애초부터 테두리가 둘러져 있는 다른 존재들이며 내가 불쌍한 너희를 위해 베푼다'는 생각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오게 되는 것이다.

너의 불행을 보니 내가 그런 처지가 아니어서 기쁘다는 생각으로 도대체 어떻게 사랑을 전할 수 있겠으며 아이들이 무엇을 깨닫고 배우게 될 것인가. 게다가 스스로를 반대편의 그 위치에 대입시키지 않고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 위에 올라가 문제를 바라보면서야 어떻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 배움을 토대로 한 걸음 더 사회 속으로 나아갔을 때  같이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구성원들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사는게 거짓말 같을 때'을 읽으면서는  바로 그런 호통을 나 자신에게 내려치며 읽었다.

그래, 남들 앞에서 떵떵거리지는 못 해도 직업도 있고, 비 피할 집 한 칸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느냐, 그래서 이쯤에서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 아니 어쩌면 내일이라도 당장 내 문제일수도 있는 문제들에 대해 오늘은 눈 감고 못 본 척 하고 싶은 건 아니냐, 네가  그러면서도 아이들 앞에서 입바른 소리를 해 댈 수 있는 것이냐, 이 비겁자, 챙피한 줄 알아라...

얼마전  한 여중생이 전기가 끈긴 집에서 촛불을 켜 놓고 있다가 자다가 숨진 사건이 있었다. 정확하게 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몇 천 원에서 몇 만 원이었을 것이다. 그 여중생의 목숨이 담보로 걸려 있던 전기세는.

그 비슷한 시기에 어떤 신문에서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의 장, 단점을 비교하는 기사를 실었던 적이 있다.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에 살다가 일산의 한 외곽으로 이사를 갔다는 전 00은행장이 인터뷰하길 ' 주상복합 아피트가 통유리로 지어져 있어 외관이 시원하고 전망이 좋으나 여름이면 그 통유리로 햇빛이 온통 내리쬐어 집안이 찜질방 수준인데다가 환기가 잘 안 되니 하루종일 에어컨이 돌아가는데 전기료만 120만원 정도가 나온다'고 했다.

그들은 넘치도록 쬐어지는 햇빛을 몸서리치게 그리워해 본 적이 있을까. 120만원이 아니라 만이천원, 아니 천이백원이 없어서 촛불 속에 사그라진 어린 목숨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야, 전망이 좋단 말이지. 나는 그런 데 언제나 살아보나'하면서 고개를 외로 꼬고 우리 사회의 아픔을 내 문제가 아니니 나는 모르겠다는 식으로 넘어갔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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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8-15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은 글입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되네요. ^-^

로드무비 2005-08-15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정말 갖가지 색의 리뷰가 나오는군요.
끊임없이......^^
서연사랑님의 리뷰도 참 좋습니다.^^
 
피터의 의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45
에즈라 잭 키츠 글, 그림 | 이진영 옮김 / 시공주니어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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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동창이면서 교회 친구이기도 한 A가 3월달에 둘째를 낳았다. 백일 지난 아들과 6살 딸 뒷바라지하느라 집에서 꼼짝도 못 하는 내 친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의 미소만 보면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진다며 내게도 둘째의 압박(?)을 넣는다.

그런데 요즘 첫째가 좀 심통스러워졌고, 잦은 배앓이 및 감기치레를 한다며 걱정이 많다. 아무래도 동생을 본 게 조금은 원인인 것 같기도 하다고...

그러고보니 동생을 본 첫째아이들이 퇴행성 행동을 보인다는 얘기,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본 얘기다. 심지어는 초등학생 녀석이 젖병을 빨기도 하고 집 안에서 기어다닌다나?

우리의 주인공 피터는 뭐 그런 퇴행성 행동으로 엄마아빠를 곤란하게 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쓰던 요람이며 식탁의자가 여동생을 위한 분홍색으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다가 귀여운 일탈(^^)을 결심할 뿐이지!

우리 아이는 아직 동생이 없고(아마 앞으로도 없겠지만) -  해서 이 책을 읽어주면서도 그닥 내용을 눈여겨보지 않는 눈치여서 우리 아이에게는 별 넷짜리 그림책이었지만 동생의 출현으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는 첫째아이들에게는 굉장히 의미있게 다가갈 그림책이다.

혼자 읽기에 딱 좋은 분량이고, 한글을 일찍 깨우쳐서 책을 줄줄 읽는 6, 7살 아이들에게는 좀 심심한 책일수도 있겠다.

그나저나, '에즈라 잭 키츠'라는 이 작가,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구나.

아이도 나도 이 그림책을 사전정보없이 처음 보았을 때 ' 어머! 피부색이 까만 아이가 주인공이네?'하면서 놀라워했는데,

에즈라 잭 키츠 (Ezra Jack Keats) - 1916년 뉴욕 브룩클린의 유태계 폴란드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했다. 그림책에 처음으로 소수 민족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삼았으며, 콜라주, 마블링 등 독특한 기법을 사용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눈 오는 날>, <안경>으로 칼데콧 상을 수상했으며, <안녕, 고양이야!>로 보스턴 글로브 혼 북 상을 받았다. 미국 아동 연구 협회에서 주관하는 '올해의 어린이 책'에 열네번 선정된 그림책 작가.

그린 책으로 <피터의 의자>, <휘파람을 불어요>, <피터의 편지>, <내 친구 루이> 등이 있다. 유니세프에서는 전세계의 우수한 어린이 책 일러스트레이션에 시장하는 에즈라 잭 키츠 상을 설립하였다. 1980년 서던 미시시피 대학에서 '어린이 문학에 대한 지대한 공헌'을 높이 평가받아 메달을 받았다. 1983년 세상을 떠났다.

알라딘의 작가 소개를 보니 위와 같다. 

'그림책에 처음으로 소수 민족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삼다'라.....그림책 보는 눈을 새롭게 띄게 해준 책 목록에 올라갈 작가가 또 한 명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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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7-23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마이 도러도 좋아한 책이에요.
흑인 소년이 단독 주인공인 동화가 드문데 다양한 사람들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아이에게 자연스레 가르쳐주기에
참 좋은 책이라 생각했답니다.
그림도 참 마음에 들었고요.^^

서연사랑 2005-07-23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그림책을 좀 더 일찍 읽어주었다면....하는 후회가 되요.
저도 그렇고, 아이도 그렇고 주인공 소년을 보고 깜짝 놀랐지 뭐예요.....저야 뭐 세상의 편견에 찌들었으니 더 할 말 없지만 이제 6살 아이도 '얼굴이 까매서 별로 안 예쁘다'하니 이런 편견은 어디서 만들어지는 걸까요?
어쨋거나 특이하고 간결해서 재미있게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