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작가님의 이름이 친숙해 책을 읽었었다고 생각했는데 도서목록을 보니 제대로 읽은 책이 없네요. 그러고 보니 <저녁의 구애>를 들었다 놓았던, 기억이 더듬어져요. 이번 수상으로 작가님을 다시 뵈었으니 이번 기회에 작가님의 소설을 읽어보려 합니다. 이상문학상 수상 진심으로 축하드리구요. 상에 대한 부담감으로부터 자유로우시길,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응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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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이 반짝이는 동안 눈꺼풀이 깜빡이는 동안 어둠의 지느러미는 우리 곁을 스쳐가지만 우리는 어둠을 보지도 듣지도 만지지도 못하지 뜨거운 어둠은 빠르게 차가운 어둠은 느리게 흘러간다지만 우리는 어둠의 온도도 속도도 느낄 수 없지 얼마나 다행인가 어둠이 아직 어둠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나희덕, <어둠이 아직> 중에서 # 아직 살아내야 할 어둠이 남은 자리에서 어둠을 마주보고 드문드문 눈을 깜빡이는 별들에 관해 아픈 자리에 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은 분명 시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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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의 기적 - MBC <휴먼다큐 사랑> 감동실화
이영미 지음 / 아우름(Aurum)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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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한 시에 물을 끓인다. 늦은 밤의 고요 속을 유영하는 따뜻한 기운에 하루종일 웅크렸던 마음이 풀린다. 12월이 되니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보는 마음이 된다. 12월은 무언가를 시작하기 보단 시작한 것들의 자리를 돌아보며 쓸쓸하고 아파하는 달. 그렇게 아프고 나서 새해를 맞는 달. 뜨거운 물에 인스턴트 커피를 푼다. 내일을 위해, 이것은 내게 용기가 필요한 일. 오랜만에 책상을 정리하고 앉는다. 생각이 나면 끄적이던 노트들에, 거기에 붙은 포스트잇에, 책 사이에 남겼던 시간의 흔적을 찾았다. 고개를 들면 창문 위에 불안하게 맺혀 있는 물방울들이 보였다. 벽지 위에 흐릿하게 지워졌던 곰팡이 자국들이 하나 둘 선명해지기 시작하면, 내게 겨울이 시작된 거였다. 그렇다면 올해도 어김없이 내게 겨울이 찾아왔다. 곰팡이와 함께 오는 겨울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2013년의 새해를 맞을 즈음, 내가 적어놓은 목표가 있었다. 

 

* 지호와 연호에게 따뜻한 엄마 되기

* 2013 서재의 달인 되어보기

* 영어회화 시작하기

* 아빠 챙기기

* 이사갈 집 구하기

 

무엇보다도 나는, 연약한 가족을 위해 살 수 있기를 원했다. 아이들에게. 부모님께. 나를 위한 삶에 욕심내며 아파하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나를 위해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들 속에 스스로를 다독이기는 쉽지 않았다. 집과 동네를 떠나지 못하는 짧은 동선 속에서 나는 무수히 헤매고 넘어졌다. 곁에 있는 아이들이 상처 받을 것이 두려웠지만,  좀처럼 마음은 억울함을 내려놓지 못했다. 마음이 아픈 것을 참으려하자 자도 자도 졸음이 쏟아졌다. 잠만이 무거운 현실을 잠시 가려준다는 걸 몸은 알고 있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 의식은 계속 몸 속에서 잠을 만들어냈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면 곁엔 아주 작은 나의 아이가 놀고 있었다. 좁은 방, 그 공간 안에서도 아이는 삶에 대한 거대한 호기심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그렇게 한 해의 반이 지나갔다. 오늘과 같을, 지루한 내일을 보낼 일을 매일 두려워하면서.

그런 나의 마음을 깨운 건, 한 장의 사진과 다급한 메세지가 담긴 기사였다. 머리를 민 한 쪽에 선명한 수술자국, 작은 몸에 너무 많은 줄을 달고 병실의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 해나였다. 2차 수술 후 위급한 상황에 처한 해나를 위해 모두의 기도를 필요로하는 기사였고 좀처럼 외면할 수가 없었다. 많은 기사를 부러 찾아 읽었다. 유해진PD의 블로그에서 지나온 아이의 시간을 읽었고 새글이 올라오기를 매일 기다렸다. '해나의 기적'을 다운 받아 보았을 때, 나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 몸 속을 씻어내는 듯한 눈물이었다. 그 뒤로 해나는 늘 마음에 있었다. 가족 외의 누군가를 위해 이토록 간절한 기도를 해본 적은 없었다. 내 생의 시간을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도 처음이었다.

 

해나의 책 『해나의 기적』 을 품에 안은 저녁.  남편이 안방으로 잠을 자러 들어가고 작은방에서 혼자가 되면 눈물이 쏟아졌다. 매일 마음속으로 해나를 부르고 이야기했던 나날들. 내 작은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보면서, "해나야, 어서 나아서 우리 아가가 하는 모든 것을 너도 해봐야지. 넌 꼭 그럴 수 있을거야." "해나야, 비가 내린다. 잘 자고 있니? 어떤 꿈을 꾸고 있니." "해나야, 너를 생각하며 아줌마도 아줌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께. 너도 힘내." 

 해나의 엄마가 쓴 이 책에는 어느 날 아픈 아이를 낳은 죄인이 되어버린 엄마로써 할 수 밖에 없었던 선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 쪽으로 열심히 달려온 작은 생명이 세상에 남긴 기적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많은 이야기가 사랑다큐를 통해 볼 수 있었던 내용이지만 곳곳에 해나의 엄마로써 아이를 낳았을 때 겪었던 갈등과 불확실한 내일로부터 느껴야 했던 절망, 그러나  그녀가 삶의 고비마다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해나 때문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희망은 누구나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실현된다는 것을, 해나의 가족은 몸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평범했던 한 가정에 다가왔던 불행. 기도가 없이 태어난 아이는 아무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었지만 반대로 아무도 내일을 살 수 없다 이야기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내일 앞에 모두가 포기했던 아이. 그러나 스스로 삶을 붙잡고 힘든 시간을 견디며 살아 준 아이. 너무나 작은 몸으로, 다가오는 고통을 씩씩하게 견디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밝은 웃음으로 환하게 살아내던 아이, 해나. 해나의 이야기는 내가 쉽게 포기하고 저버렸던 삶에 대한 태도를 돌아보게 했다. 할 수 없는 것에 떼쓰지 않고 가질 수 있는 것에 행복할 줄 아는 아이의 모습 앞에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해나가 어서 예전의 웃음을 되찾기를 기도하면서 나는 점점 허상 같은 것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내가 가지고 있던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숨쉬는 것, 먹는 것, 걷는 것, 아이와 뛰어 노는 것, …… 아무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가 감사했다. 아이에게 훌륭한 엄마가 되려던 욕심을 내려놓자 아이의 마음이 들리기 시작했고 아이의 울음을 달랠 수 있었다. 평범한 삶 속에서 가족과 나눌 수 있는 체온이 바로 기적임을, 해나는 나에게 알려주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살아야 할 의무와 책임을 갖는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그 기본적인 사실조차 잊고 지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삶이 어렵고 사는 것이 힘겨워서, 삶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저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저 역시 많았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해나는 삶이란 살아낼 때야 의미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전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아픈 삶이라도 살아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아픈 삶이라도 살아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 이영미, 『해나의 기적』, p.51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기적처럼, 삶을 새롭게 만나게 한 해나. 하루하루 커가며 옹알이가 또렷한 말이 되고 표현이 되어가는 내 곁의 아이를 보면서 해나를 생각한다. 여전히, 해나가 누리지 못하고 떠난 삶의 많은 것들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눈물이 맺히지만 이젠 더 좋은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해나를 축복한다. 그리고 그 아이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지만 갖지 못했던 삶을, 나는 누리고 있다는 마음으로, 매일 매순간 모든 것에 할 수 있는 최고의 힘과 용기로 마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삶은 분명 살아내야 할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다는 것. 그것은 내가 내 삶을 외면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을 때 어느 순간 느낄 수 있을, 황홀 같은 것일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순수하게 육체적인 차원에서의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 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 어떤 실마리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랍니다. 

-조셉 캠벨, 『신화의 힘』, p. 29

 

많은 책들이 내게 삶은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낼 때, 의미는 자연스럽게 나를 찾아올 것이라 이야기한다. 기적도 행운도 행복도. 모두 이유없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고. 해나가 떠난 뒤, 나는 이 책을 다시 펼쳐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많은 이들의 기도와 응원을 뒤로하고 떠난 해나, 그 삶이 안타까워 아주 오랫동안 툭하면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나도 이런데 아이의 엄마는,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싶어 마음을  쓸어내리지만 좀처럼 진정되지 않던 시간들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에서 이 책을 다시 든 건, 이 책을 처음 들었던 순간 바로 리뷰를 남겨 많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었지만 쓸 수 없었던 글을 이제야 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고, 또 다시 삶이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한 지금의 내게 그 마음을 되찾아 주기 위함도 있다. 

 

20대의 중반, 나는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있었을 때. 누구나 내게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살고 있겠다고, 말하던 때었다. 그럼에도 도망칠 수 없던 일상은 계속되었다.  늦은 퇴근 후 누구와든 이야기를 나누고 싶던 나는 화장대에 앉아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살아야하는 지 물었다. 이토록 꾸역꾸역, 무엇을 위해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야하는 지 물었다. 오래 말이 없었다. 그도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기위해 사는 것이 아닐까, 라고 말을 보탰다. 그 때는 위로가 되지 못했던 그 말이 이제는 진실임을 안다.

 

뜻밖에도 지금은 책을 읽던 순간 순간 웃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몸이 아픈 아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사라지게 하는, 오롯이 밝고 명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해나의 예쁜 사진들. 서울대학교 어린이 병원 중환자실에서만 지내온 아이라고는 느낄 수 없게 제 나이 때의 귀여움을 만면에 띄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슬픔과 동정은 사라지고  제 삶의 몫을 열심히 살아내는 해나가 기특했다. 나 또한 그렇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낼 것을 다짐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사진 속의 해나는, 그렇게 응원을 건내고 있다. 짧은 생이었지만 분명 누구나 느끼지 못할 삶의 '황홀' 을 느꼈을 해나. 그것으로 행복해하며 떠났으리란 생각. 지금은 슬픔보다 아이가 있어 빛나던 그 자리가 더욱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고 슬픔이 무뎌진 자리가 또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해나의 밝은 미소 앞에 또 한 번 두 손을 힘주어 쥐어본다. 그리고 가만히 되새겨 본다. 지금 나는 기적 속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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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박물관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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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익은 시간의 아름다움을 이제는 볼 수 있다는 게, 그것이 낡음과 늙음의 슬픔이 아닌 빛나는 자리로 들여다보인다는 게 나는 더 이상 슬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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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라 문서
파울로 코엘료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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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줄도 어투루 지나칠 수 없는 책. 페이지가 작고, 가벼운 책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넘겨지는 페이지의 속도는 늦어졌고, 위로받은 마음이 그렇듯 곧 희망이 만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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