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로부터 온 편지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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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이방인> 여러 번 읽다 포기했던 책인데, 이 책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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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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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아버지가 늦은 저녁 사주시던 양념통닭은 그야말로 행복이었다. 저녁식사 때 아버지께서 “고추 한 입 먹으면 통닭 사줄게” 하신 농으로 고추 한 입 물고 벌겋게 달아올라 주방으로 달려갔던 일도 있다. 바스락거리는 봉지가 계단을 올라오다 빌라 2층 우리집 현관 앞에 멈춘다. 두근두근두근…… 띵동! 매콤하고 달달한 향을 풍기며 통닭이 현관을 넘는다. 봉지 속 통닭은 고무밴드로 상자속에 얌전히 고정되어 있지만 벌어진 옆구리로 고소한 기름냄새며 반지르르한 윤기가 새어나와 나를 애태운다. 땅콩가루가 뿌려진 닭조각들이 인정넘치게 담긴 상자가 열리기도 훨씬 전에 나는 이미 통닭을 먹는 시뮬레이션을 끝냈다. 손이며 입 주변 가득 양념을 묻히며 먹고, 아쉬운 맘에 먹은 닭뼈를 다시 뜯었다. 화장실에 동생과 마주 앉아 손과 입을 비누로 닦을 땐 얼굴에 맺힌 웃음이 만져졌다. 뱃속을 가득 채운 행복감이 출렁거렸다. 
 먹고 싶어도 쉽게 먹을 수 없던 귀했던 음식들. 쏘세지 반찬, 치킨, 피자 짜장면 탕수육 들. 불쑥, 혹은 약속으로 부모님이 그 음식을 사주시는 날이면 기다림이 생겼고 매번 특별한 날이 되곤 했다. 이젠 서른 중반이 되어 두 아이의 엄마로 그 날의 음식들을 마주한다. 집에서 해먹는 것보다 배달음식이 시간과 돈에서 경제적이다 할만큼 배달문화는 크게 발달했다. 아이들이 먹고 싶다 할 때, 내가 먹고 싶을 때 전화로 주문하고 내 할 일을 하다보면 4~50분 안팎으로 음식이 배달되었다. 짜장면, 피자, 치킨에서 그쳤던 배달음식은 백반, 떡볶이, 곱창, 도시락, 햄버거 샐러드 등등으로 다양해졌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고민없이 핸드폰을 열어 전화번호를 검색하고, 어플을 통해 맛집을 추천받아 주문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제 방에서 놀다 음식이 배달되어도 내가 불러야 나온다. 상 위에 포장된 음식을 펼쳐 아이들과 먹는데 좀처럼 입맛이 돌지 않는다. 어린 날 통닭 한 마리가 놓인 상은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해보였는데, 피자와 치킨 세트가 오른 상이 어쩐지 허전하기만 하다. 음식이 있으니까 꾸역꾸역 뱃속으로 음식을 집어넣고 있다는 느낌. 아이들도 연신 콜라만 마시다 상을 떠난다. 먹고 싶다 조르다 몇 번의 거절 끝에 먹으면 그 날이 특별해졌던 음식들. 지금 아이들에겐 먹고 싶으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쉬운 음식일 뿐이다. 일회용 봉지를 꺼내 남은 음식을 소포장한다. 흔해지고 쉬워지고 애틋함이 사라진 것들. 냉동실 안에, 전화 너머에 음식들은 널려 있다. 
   
  <황석영의 밥도둑>을 읽는데 내 어릴 적 부모님을 통해 먹었던 음식들이 생각났다. 대학 다닐 때, 직장을 다니며, 자유롭게 사먹었던 음식들 말고 놀이터에 놀다 들어가면 차려져 있던 저녁 밥상이나 시장에서 엄마가 쥐어준 떡꼬치나 핫도그, 고3이 되어 책상 앞에 앉은 내게 퇴근길에 사다주시던 밤식빵 같은 것들, 거기엔 식지 않고 나를 힘나게 하는 온기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작가는 음식을 통해 함께 있었던 이들을 생생하게 추억한다. 버겁고 고통스러웠던 시간 속에서 음식으로 위로 받고, 음식으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나가며 지금에 이르게 된 삶의 걸음은 이제 그 시간을 돌아보며 깊은 그리움을 부른다. 북에서 아버지를 따라 내려와 또 다른 고향을 갖게 하고, 수감 중인 감옥에서, 유배지에서, 어느 날 떠난 여행지에서, 정을 붙이며 그곳에 자신의 흔적을 만들어 나가게 한 매개는 역시, 음식이었다. 삶의 설움을 녹여 간직하게 하는 것, 오늘의 매서운 바람을 견디고 내일로 나아가게 하는 것, 그것은 나를 위해 누군가가 건내 준 한 그릇의 음식, 한 덩이의 희망이었다.
 

 내가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은, 지금은 먹을 수 없다거나 만들 수가 없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그 때의 맛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람이 변했든지 세월이 변했든지 했을 터이기에. 
 -p.83, <배고픈 날, 장떡 지지던 냄새> 부분

 
  이젠 나 어릴 적 내 부모 나이가 되어 하고 싶은 일도, 먹고 싶은 것도 없이 시간을 보낸다. 해야 할 들과 고민은 끊일 줄을 모르고 마음은 늘 복잡하다. 그럼에도 살은 찐다. 좀처럼 채워질줄 모르는 허기가 부끄럽고 괴롭게 되었다. 이 허기의 근원이 무엇으로부터 오는지 나는 어쩐지 알 것 같다. 무엇을 채우지 못해 오는 허전함인지. 무엇을 알지 못해 오는 먹먹함인지. 먹는 일을 본능적인 행위라 여기고 배를 채우는 일 밖의 것을 생각해본 일이 없었는데 그 또한 사람으로써 가질 수 있는 소중한 행위이며, 아름다운 삶의 장면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음식은 죽은 자마저도 곁에 생생히 머물게 하며,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지역마다 개발을 앞세워 아파트가 들어서고 지역의 특성을 지우며 트렌드에 따라 체인점들이 들어서버리는 현재가 씁쓸하다는 작가의 지적처럼, 어느 곳에서건 같은 음식, 같은 시간, 같은 추억을 살다 떠나게 될 일이 두렵고 안타깝다. 편리성을 추구하며 살수록 우리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잃어버린 채 획일화된 입맛과 비슷비슷한 문장들로 채워진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되어갈 것이다. 음식에 대한 추억은 사라지고, 편안해진 세상만큼 왕성해진 식욕과 쉬워진 음식 앞에 우리는 한 알의 약으로 식욕을 조절하면서 일부러 음식을 외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를 불행 앞에, 우리들에게 <황석영의 밥도둑>은 자신만의 도둑을 가지라 경고하는지 모른다. 열심히 바쁘게 살아가는 삶 끝에 결국 나를 웃게 하는 것은 어느 날 넘어져 울고 있던 나를 일으켜 세우고 내 손에 쥐어 준 요쿠르트 한 병, 같은 것이라는 걸, 그 기억들이 삶을 삽질하는 생의 숟가락을 놓을 수 없도록 만든다는 걸, 사람들은 잃어버렸다. 그것을 되찾고 나면, 삶은 분명 달라진다.
 
 책은 뒤로 넘어가는데, 내 기억의 페이지들은 앞으로 앞으로 빠르게 넘어가 나를 행복하게 했던 음식들을, 내가 사랑받았고 위로 받았던 순간들을 떠오르게 했다. 잊어버리다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었던 그 날들을 이 책으로 되찾았다. 어린 날, 얼굴에서 만져지던 그 충만함이 음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 이상 쉽게 만들 수 없을 소중한 몸의 기억이라는 것도, 이젠 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채우기 위해 먹을 음식들이 필요하다. 허기진 곳으로 가라고 맛도 모르고 꾸역꾸역 집어넣던 음식들을 치우고, 나를 생생하게 살아있게 하기 위한 그런 한 상을 정갈히 차려보고 싶다. 그 마음부터 어쩐지 나를 설레고 배부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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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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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불행에 익숙하다. 이야기는 늘 불행을 따라 전해진다. 고단한 시간을 어떻게 지나가는 가에 우리는 관심이 있다. 공감은 쉽게 일어난다. 누구나 조금 다른 불행 위에 놓여있을 뿐이므로. 소설은 악몽을 견디게 하는 힘이 있다. 그것이 진짜이든 아니든 나는 그곳에서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하다 이곳으로 돌아온다. 현실은 조금 덜 잔인하여 견딜 만 했다. 누군가의 고통을 읽고 불행을 음미하다 현실에 돌아와 개운한 얼굴이 되는 내가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날이 많았다.

 

​ 장강명 작가의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읽었다. 그의 전작 『호모도미난스』를 읽고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잃어버리게 하는 치밀한 상상력과 날 선 문장들 속에 상남자의 소설을 읽었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는데,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사건 후에 인물들이 시간을 겪으며 변화하는 심리들을 세심하고 정적인 문장으로 그려내어 사뭇 다른 감정선을 건드렸다.

 

동급생을 칼로 죽인 남자, 그의 손에 아들을 잃은 아주머니, 그리고 위로 받지 못한 유년을 보낸 여자. 이들의 기억이 엇갈리며 소설은 나아간다. 어느 날은 치밀하게 남자를 쫓는 아주머니가 잔인하다 싶었고, 어느 날은 칼로 몇 번이나 찌른 건 용서받을 수 없겠다 싶었고, 또 어느 날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도망치기를 바랐다.

기억은 본인에게 유리하게 흐른다. 그것이 본능이다. 감정이 개입되어 장면이 입력된다. 흩어진 퍼즐이 제자리를  찾아 그림을 완성되듯 그들의 기억 조각이 맞물리며 이야기가 선명해질 때 나는 울컥, 하는 눈물을 견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이 괴로웠다. 나는 누구의 편이었나. 나는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가.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아주머니의 기억에는 남자다웠던 자신의 아들을 남자가 이유 없이 칼로 찔러 죽인 살인이었고, 남자의 기억에는 동급생의 괴롭힘을 참다 참다 저지른 충동이었다. 여자에겐 아버지와 닮았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미움을 받았고,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아버지의 부정을 목격하고 견뎌야했던 불우한 유년이 있었다. 

 남자는 아주머니에게 영훈이는 남자답게 자신에게 친해지길 청했는데 받아주지 못했다고 했다. 여자의 친구는 그녀가 가족으로부터 그렇게 냉대받지 않았노라고, '따뜻한 말도 여러 번 했을 거야. 네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해서 그렇지.' 라고 이야기했다. 고등학교 시절 여자의 열등감의 대상이었던 큰 보람이 중간 보람인 자신에게 은따를 당해 힘들어했었다는 친구의 말은 피해자였던 그녀의 이미지를 한 번에 뒤집는다. 알 것 같았던 그들이 도대체 어떤 이들인지 알 수 없게 돼버린 순간, 이야기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인물들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며 비난과 동정을 보내던 마음이 닿을 곳을 잃어버리고 텅 빈 그릇으로 엎어져 버렸다. 공정했다고 생각했는데 한 순간 판단을 잃어버렸다. 오판의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조차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정적의 시간이 가슴을 무겁게 눌렀다. 함부로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누구의 잘잘못을 이야기할 것인가.

 아무도 그럴 자격이 없었다. 

살아갈수록 말이 줄어드는 까닭은,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기억은 '그믐'처럼, 보이지 않으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흔적일 뿐이다. 남자가 지역 도서관의 의뢰로 마포 지역의 유래를 쫓고 지명에 대한 전승을 검증하러 다니며 반복하는 것은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가짜 유래'를 만들어냈고, 결국엔 '가짜 이야기가 나중에는 진짜 기억이 되었다' 는 것이었다. 결국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닿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것은 진실성을 갖추기 어렵다.

 자, 이제 당신은 이 소설을 읽고 어떤 말을 시작하고 싶은가?  살인? 우주 알? 패턴? 미술관? 집요한 아주머니? 아주머니의 괴롭힘을 뿌리치지 못하는 남자?

 처음의 내가 그러한 물음을 품고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도서관에 대해, 캐비닛에 관해, 남자의 냄새에 관해, 달맞이언덕에 관해 말하고 싶다. 하나의 공간에 담겨 온화한 빛을 내던 남자와 여자의 시간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미 알고 있는 결말로 흐르는 그들의 시간은 다시 보아도 거짓말 같지 않았다. 먹먹하고 따뜻했다. 여자의 평범한 삶 속에 뛰어든 남자. 이별할 줄 알고 있었고, 죽을 줄 알고 있었던 그들이 그럼에도 함께 할 것을 선택했고 그것은 소설이 되었다. 한 개인에게 평범하게 존재하던 패턴을 뒤흔든 '위로'는 희망을 그림자 삼아 남자와 여자 사이를 탄력 있게 오고가고 있었다. 사랑이었다. 그것은, 거짓말이 어려웠다. 


고마워. 너랑 지내는 동안 정말 행복했어.

우주 알을 받아들인 보람이 있었어. -p.143


 끝이 정해진 소설을 읽는 것이라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믐이 되자 지구와 달 사이의 시공간연속체가 뒤틀렸'고 그 달빛을 타고 우주 알이 남자에게 들어왔을 때, 나는 거짓말이 시작되고 있다고 단정했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며 내가 믿었던 것들이 아닌 것이 되고 틀린 것이 되고 도무지 판단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그 생각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늘 그랬듯 독서를 시작하며 의미를 찾고 그것을 품으려던 마음을 멈추고 그저 있는 그대로 문장을 읽어나가려했다. 머릿속에 어지럽게 점멸하는 장면들을 곱씹으며 불편함을 견뎠다. 패턴만 있던 그들의 이야기가 점점 선명해졌다. 그 시간 속에 내가 들어섰다. 함께 슬퍼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 그 날, 나는 63빌딩의 전망대에서 '거대한 미술관'을 상상하며 걷고 있었다. 정해진 방향과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데 순간, 이 미술관에서 꼭 보아야 하는 그림처럼 그가 서 있었다. 그냥 지나쳐도 되었지만 멈추어섰다. 그러지 않았다면 남자와 여자를, 그믐의 비밀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참을 서있고 나서도 선뜻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믐>을 들고 서있는 검은 뿔테 안경의 그가 자꾸 눈에 밟혀서, 떠날 수가 없었다. 나쁜 남자 같은 차갑고 서늘한 얼굴로 내 앞에 서서는 자신 안에 상처를 가장 따뜻한 문장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 정말이지 외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야기가 끝이 날까봐 불안한 마음을 숨기며 그저 있었다. 언젠가는 내가 '남자'의 곁을 지키는 '여자'가 된 것처럼, 처연한 얼굴이 되어 끝내 묻게 되겠지. 도대체 누구였냐고, 당신은 누구였냐고, 그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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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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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며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게 하는 책. 박완서 선생님이 살아온 삶의 시간을 책을 읽는 것만으로, 이렇게 쉽게, 더듬어도 되는 것인지! 부끄러워지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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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봄은 김연수 작가의 소설, <벚꽃 새해>로 부터 온다. 헤어졌던 이들이 각자의 시간을 보낸 후 성숙해져 만났을 때, 다른 곳을 바라보던 그들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걷게 되었을 때, 흩날리는 봄의 벚꽃 잎이 그들의 걸음 위를 가만가만 짚을 때, 그들의 걸음 앞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아무 것도 알 수 없기에 느껴지는 두려움과 설렘. 내게 봄은 그렇게 그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떠올려 보는 것으로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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