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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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간은, 그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될 것임을 예견하게 한다.

어떤 하루는, 떠올리면 언제라도 눈물이 날 것이라는 걸 미리 알게 한다.

-p.194

    

 

 

  들어서기가 쉽지 않았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발이 푹푹 빠졌다. 머뭇거리고 망설였다. 돌아서고 싶었다. 그런데 돌아섰다가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알 수 없는 끌림과 돌아섬으로 한 달 가까이 이 책과 있었다. 가붓한 책을 두 손에 안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멀리서 가늘게 파도소리가 울렸다.

'이 소설을 정미경의 진정한, 그리고 유일한 유고작이다'

 작가의 죽음은 늘 실감 나지 않는다. 책이 있기 때문에, 책이 살아있기 때문에, 거기에 그도 있다.

누군가의 말은 그녀가 살아 건네는 말처럼, 분명 그러했다.

 

시간의 앞뒤와 공간이 뒤엉킨,

섬 사이의 섬.

 

  마음의 병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우는 '미친 애의 엄마'인 것을 견디지 못하는 엄마에게 쫓겨 이 섬으로 왔다. 이곳은 엄마의 유년이 담긴 곳이고 그때의 동무였던 정모 아저씨가 도망치듯 돌아와 숨어든 곳이기도 하다. 더운 여름 서커스 천막 속에 홀로 남겨졌던 어린 판도도 계절 없이 '독하게 추운 날들'을 지나 이삐 할미 손으로 이곳에 들었다. 섬사람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답을 하는 대신 귀와 입을 닫기로 했던 그때의 아이는 자신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서는 하루도 살아내지 못했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섬에 든 사람들. 그들은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리고 빠르게 달리던 시간에서 위태롭게 쏟아졌지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주는 하늘과 바다와 바람의 풍경 속에 상처를 씻고 눈물을 흘리며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갔다. 앞사람의 걸음에 제 발을 포개며, 무어라 채근하지 않고 다만 가파른 숨소리를 염려하며. 서로를 눈으로 더듬어 보살폈다. 휴대폰의 온기가 있던 손엔 따뜻한 말들이 고였다. 텅 비어 있던 이우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기억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며 스스로 차오르고 있음을 느겼다.

  난감하고 버릇없어 보이던 이우의 상처와 단단하게 도서관을 지어가던 정모 아저씨의 아픔 들은 서로의 마음에 기댈수록 섬 공기 속에 흐리게 번져갔다. 아무것도 아닌 듯이, 판도가 바라보던 섬과 섬 사이의 붉은 덩어리처럼, 아.름.답.게.

  이우를 보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어떤 구절 앞에서 스위치를 올린 것처럼 머릿속이 환해지기 시작한' 판도. 이우를 찾아온 엄마의 존재에 질투를 느끼기도 하는 그의 모습은 반가운 균열이었다. '책으로만 읽었을 뿐인' 많은 일들이 판도의 인생에도 일어나려 하고 있었으니까.

 

해가 질 시간이다. 이렇게 물구나무를 서서 크고 붉은 덩어리가 섬과 섬 사이로 흘러내리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배꼽 깊숙한 곳이 따끈해졌다. -p.26

     

 빛나는 소금과 바다 냄새들 틈에서, 나도 잠시 마음을 말렸다. 

 섬처럼 떠있던 문장들은 다시 읽을수록 선명해져 곳곳에 새로운 이야기를 채워나갔다. 어느 누구에게나 있을 통증과 슬픔들은 읽지 않아도 느껴지고 만져졌다. 나 또한 그 시간을 지나고 있다는 것일까. '터무니없는 죽음도 악다구니 같은 억센 슬픔의 순간이 지나가면 곧 일상이 되는' 시간을 '밀물과 썰물을 받아들이듯' 살아내고 있다는.

어쩌면 미완의, 잠시 발이 묶인 이 호흡에서 무너져내려 멀리 허공을 바라보고 희미한 문장을 더듬어보는 일이 이 소설의 완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소금 창고는 바람이 지나는 길에 있다. 바람을 맞으며 정모는 바닷가 마지막 소금 창고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둔덕이 사라지면서 몽돌밭이 바다까지 이어진다. 거의 매일 이곳으로 오지만 풍경은 매번 달라진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내가 걸어오지 않았던 또 다른 풍경이 보인다. 애잔하게 나부끼는 삘기, 하늘, 바다, 섬과 섬, 섬 뒤의 섬. 정모에게 이것들은 풍경도 색채도 아닌 시간이다. 언젠가 이 시간은 멈출 것이다. 그때도 바람은 남아 있을 것이다. 자글자글 몽돌이 파도에 쓸리는 소리 역시.

정모는 눈을 감고 바람이 실어 온 냄새를 깊이 들이마셨다.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저 아이는 떠날 것이고 소금 창고 도서관도 문을 열겠지. 그 다음엔. 그 다음은 일은, 그때 생각하면 될 것이다.

-p.58

 

 고통 속에서도 잔잔히 퍼지는 삶의 단호함을,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가만히 있어주는 자연의 고요함을, 작가는 아름답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리웠던 따뜻함이 못내 슬펐다. '이 소설을 쓸 무렵부터 그녀의 몸이 급격히 무너져내리기 시작했'으나 그녀의 문장은 꼿꼿이 서서 저무는 삶을 지나며 들려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아픔도 행복도 결국 살아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멀리서 보면 비슷하게 빛나는 별이거나 노래라는 걸. 팽팽하게 당겨진 줄이 툭 끊어지듯 찾아오는 죽음도 그 틈에서 꿋꿋이 이어지는 삶도. 한줄기 바람으로 뒤섞이는 가벼운 것이라는 걸. 그러니 애써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나에게 말해주는 듯 했다.     

 

 그녀가 남겨준 아름다운 문장 속에 그렇게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당신의 아주 먼 섬'이 있다.

귀와 입을 닫고 가만히 담겨 있을 만한, 그곳에 들러 숨을 고르면 좋겠다.

  

 산책하듯

 이 책을 거닐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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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 -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화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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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다워야 한다는 것, 여성스럽다는 것.

딸은 결혼하면 출가외인이 된다는 것.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어 당연하게 요구되는 희생.

이건 다 무얼 위한 말들인가.

여자니까 조신해야 하고,

여자니까 의견을 세우기보단 수용하는 쪽이 되어야 하고,

여자니까 나의 일은 누군가의 만족을 위해 미뤄둘 줄 알아야한다는

원래 그런 거야, 라는 그 생각들.

그 모든 것들을

넌 잘 배우고 잘 자란 괜찮은 여자야, 라는 인정을 받기위해

마치 나를 위한 것처럼

이해하고 착각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너무나 공포스러워서

숨이 막혔다.

 

"남자들한테 싫다고 한 적 있어?"

"응"

"그러면 뭐라고 해?"

유리는 또 웃었다. "안 믿어."

"여러 번 말하면 되잖아. 화를 내."

"냈어." 우리는 수진의 손가락을 부드럽게 쥐었다.

"그들은 내가 화낸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싫은 척하는 거라고 생각해." -p.230

 

폭력과 강압으로 피해를 입고도 내가 술을 마셔서, 짧은 치마를 입어서, 그들에게 여지를 주어서, 나의 잘못으로 인해 일어난 일은 아닐까, 나는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니까, 로 이어지던 진아와 수진, 유리의 생각이 견딜 수 없이 슬프고 가슴이 메였다. 그들의 상처와 고통 이후 일어난 일은 더욱 참혹했다. '그랬어? 그럴 수도 있지. 그러게 왜 따라갔어.' 로 시작해 결국 누구의 이해도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자신을 짓누른 가해자 앞에 홀로 남아 내 탓으로 돌아서게 되는, 이 사회가 만들어가는 터무니 없는 결론을, 목격하고도 어찌할 수 없는 나를, 견디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실수였다고? 그래. 얼마든지 양보해서 실수라고 말해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나야.

왜 내게 실수했어? 너는 내 몸에 실수를 하고 맘 편히 사라졌는데, 왜 내 몸은 그저 실수로 끝나지 않지? 왜 내 몸이 아픈 거지? 왜 네 실수 때문에 내 몸이 찢겨 나가고 뒤틀려야 하지. 수진은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프고, 소문날까봐 두려워하고, 누구에게 말도 못 하면서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실수라고? 하지만 너는 현규 같은 남자에게는 실수하지 않겠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번역가에게도, 저 교수들에게도, 너는 얌전하고 착한 남학생처럼 앉아 있겠지. 그러면서 무슨 생각을 하니. 창고를 떠올리나? 네가 실수해도 상관없는, 네가 원하는 대로 실수해도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 그 창고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니?

그 창고가 나야?       

 -p.238

 

옛날 이야기다, 로 담담히 맺는 듯 하지만 수진의 기억은 그 때의 통증과 분노가 여전히 그녀 안에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어떤 무엇이, 누가, 여자는 그렇게 해도 된다는 존재로 여기게 만든 것일까. 침묵이, 방조가, 외면이 '신경 쓰지 마. 네가 신경 쓸 것 없어.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야. 완전히 다른 사람이야.' (- p.202, 강화길 「호수-다른 사람」, 『2018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중) 라고 여기고 피하려 한 마음이 그들을 더없는 나락으로 밀어버렸다.

 

이건 욕구를 참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욕구를 참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데서 발생하는 문제다. -p.259

 

결국 가해자가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다른 손을 잡고, 복수를 위해 수진도 여자도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길 선택하며 '다시 강간당하느니 차라리 강간하는 인간이 되고 말겠다'로 이어지는 분노는, 그 삶은, 결국 엄마 닮아 팔자가 그렇다는 말로, 걔가 그렇지 뭐라는 말로, 그럴 줄 알았다는 말로 사람들 입에 메아리가 되어 번져갔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기억되는 여성 범죄들. 가해자의 극악무도함은 사라지고 피해자의 피해사실과 어떻게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가를 소비하길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또 다른 얼굴의 가해자가 아닌가.

 

너무나 많은 단추가 잘못 끼워져 있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입을 우린 가진 적이 있었던가.

       

나는

내 생각대로 살아 온 것이 아니라

주입되어온 생각들로 생각하는 것이라 착각하며 살아온 것이었다.

      

 

단지 나로 살고 싶을 뿐인데,

누군가를 향한 강요된 희생도 양보도 없이

나 자체로 나의 삶을 살아가고 싶을 뿐인데.

순간   

이 말을 꺼낸 나를 건방지게 볼까봐 고민하며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하기 위해

부드럽게 거절하기 위해 노력하려하는 나는

여자로 태어났을 뿐인

나는,

 

무엇이 다른 존재인가.

무엇이 다른 존재여서 갖고 노는 물건처럼 여기려 하는가.

 

소설의 마지막은 마무리되지 않는다. 작가는 이야기의 마지막을 책을 읽고 있는 '너'에게 던진다.

'왜냐하면 이야기의 마지막 장. 모든 것이 끝나버린 그 순간, 대답할 사람은 바로 너니까. 그렇다. 이제는 네 차례다.'

잘못 끼워진 단추 주변을 머뭇거리던 손이 포개지기 시작했다. 찢기고 다칠 것을 각오하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부당한 피해를 전하기 시작한 사람들. 나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녀들에게 스며들어 분노하고 앓았던 그 시간들을,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이야기가 부디 해피엔딩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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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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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여름 결국 에어컨을 들여놓았다. 작년 무더위에 밤잠을 설치고 땀을 매단 채 놀던 아이들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20개월 할부로 들인 스탠드 에어컨은 현관을 넘기도 전에 거대함으로 나를 압도했다. 또 하나의 빚이, 내 것이 되는 순간이었다. 거실 벽을 뚫고 팔뚝만 한 선뭉치가 힘겹게 빠져나갔다. 마음대로 바깥에 거치대를 매달 수 없는 임대 아파트의 비좁은 베란다엔 거대한 실외기가 낯선 곳에 입양된 동물처럼, 웅웅거렸다.
 설치기사가 떠난 후 어질러진 집을 정리하는데 불안했던 마음은 옅어지고 피식 웃음이 세어 나왔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숨바꼭질을 하고 뛰어다니는데 어쩐지 나는 고요해져 엎질러진 모든 슬픔을 감당할 용기가 생겼다. 아이들 소리에 아랫집에서 올라올까 전전긍긍하던 마음도, 오시면 사정을 잘 말씀드려야지 하는 여유로 바뀌어 있었다. 이 기적 같은 마음들이 숨 막히는 더위를 걷어내는 에어컨 바람 때문이란걸, 나는 알았다. 신이 나 연신 웃고 떠들던 6살 작은 아이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한 마디를 던졌다. "엄마, 우리 에어컨 사길 정말 잘했다, 그치?"

 점점 슬픔에 무뎌지는 나를 본다. 삶에 냉정해지고 냉철해지는 건 좋은 걸까. 나는 내 아이의 울음도 안아주지 않고 방에 들어가 스스로 견디길 명령했다. 아버지의 입원도, 누군가의 사정도 슬퍼하기 전에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을 먼저 찾았다. 일이 손에 잘 안 잡힌다는 남편에게 속 끓이는 걱정이 없어서라고 마음이 편해 괜한 불만이 생기는 거라 재촉했다. 다독이기 전에 먼저 잘못을 짚었다. 그래서 따라온 결과는 네가 감당해야 할 몫이고, 그러니 견디라고. 스스로에게도 똑같이 적용하려 애썼다. 나는 요즘, 어느 날의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은 내가 울지 않을까 봐, 그게 가장 두렵다.

 그런 내가 그들 부부의 대화를 읽다 무너질 뻔했다. 
 평범한 가정에 불시에 일어난 상실과 그 거대한 부재에 몸을 던지려는 부부를 막은 건 곁을 지켜주려 애쓴 부모가 아니었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길 두려워 않는 마음을 붙잡아 앉힌 건, 안타까워 하던 이웃의 시선이 자식을 잃은 그들을 피하며 수군거림으로 변해가는 그곳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건, 떨어진 집값 때문이었다. '절벽처럼 가파른 이 벽' 아래서 그들을 붙잡고 있는 건, 빚이었다.

욕심부리지 말고 감사하며 살자고 다짐한 게 엊그제 같은데. 영우가 떠난 뒤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조용해진 이 집에서  아내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도배지를 들고 있자니 결국 그렇게 도착한 곳이 '여기였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p.33, 「입동」 부분 

  가족을 위해, 아이를 위해 애써 이곳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유가 사라지고 난 후에도 살아야 할 이유는 남아 나를 면죄했다. 스스로 끝낼 수 없는 삶. 그렇게 빚을 지고 빚을 갚느라 아등바등 살면서도 남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기분이 자주 들었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 '그러나'를 자꾸 생각나게 했다. 부부는 아이를 잃었으나(「입동」), 찬성은 에반을 잃었으나(「노찬성과 에반」), 도화는 이수와 헤어졌으나(「건너편」), 나는 교수 임용에 떨어졌으나(「풍경의 쓸모」), 억울한 오해를 받게 되었으나(「가리는 손」), 남편을 잃었으나(「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바깥은 여름이나 저마다의 부재를 견디며 다른 계절을 사는 이들. 살아내야 할 시간은 이어졌고 그것은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었다.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어찌될까. -p.145

 

「침묵의 미래속 '나'는 '뚜렷한 얼굴도 몸통도 없이' 모호하면서도 어쩐지 현실이란 박물관에 전시되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헤어짐을 불사하며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박물관에서 자신들의 아이를 빼돌리고, 도망쳤으나 누구도 그의 언어를 이해해주지 못해 다시 박물관으로 돌아와야 했던 사내와, 죽으며 '온전한 문장 하나 완성 못하고 숨을 거두' 었으나 그 모든 것을 아무 일 없듯 덮어버리는 고요를 나는 어딘가에서 본 것처럼 익숙하게, 그러나 눈은 마주치지 못한 채 마주하고 있었다.


 '공짜를 바란 적 없'지만 삶은 늘 서운하고 서럽게 흘러갔다. '다른 사람들은 모'를 저마다의 비명을 지르며, 우리는  떠밀려갔다.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면서. 그것을 어쩔 수 없었던 나의 피해로 덮으면서. 시간이 지나면 다 견딜만해진다는 그 말을 구명튜브처럼 붙잡고 외로움을 견뎠다.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p.142, 「풍경의 쓸모」 부분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기를, 옳은 것을 옳다고 이야기하기를 점점 주저하게 된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견디는 이들을 보면서 그 고통이 내게로 옮겨붙을까, 내게 일어나면 어땠을까 두려워 잠을 설치는 날들. 부끄럽게도 나는 그렇게 나이를 먹고 있다. 몸을 숨긴 채. 내가 지켜야 할 두 아이들을 품고.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만은 곁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절박하지만 여유로운 척 가끔 사람들과 차를 마시며, 어제의 일과 내일의 일 들을 나눴다. 그 대화들은 저마다의 부재 속으로 어지럽게 빨려 들어가 치유가 되거나 상처가 되었다. 
 담담하게 읽어가던 소설에서 내가 흔들렸던 건 그들이 누군가로부터 이해를 받던 순간이었다. 부부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학생을 구하려다 함께 떠나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이 그리움으로 바뀌고, 다문화가정의 아이란 이름표로 스스로 치러야 했을 비용과 그런 아이의 마음을 가만히 덮는 엄마의 나지막한 목소리 속에서 힘겨웠던 한 계절이 애써 닫히고 또 다른 한 계절이 열리려 하는 것을 보았다. 고된 더위를 뚫고 다가오는 한 줄기 찬 바람처럼, 숨 막히는 삶 속에 맡아지는 위안.

 그 또한 ''삶'이 '삶'에 뛰어드는 행위'가 아닐까.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뛰어들 수 있을까.


 사는 일은 누군가에게 빚을 지는 일이라는 걸, 그 빚을 누군가에게 갚으려 애쓰고 그러다 불쑥 누군가가 내게 갚기도 한다는 걸. 그렇게 내 삶을 빚이 붙들어준다는 아이러니 속에서, 그 마저도 빚이 되는가 싶은 슬픔 속에서 나는 가만히 내 생에 쌓인 빚의 쓸모를 생각해본다. 돈과 생과 타인과 시대에 진 빚들이 움직여가는 나의 삶을. 저마다의 빚을 갚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만드는 슬프면서도 아름답게 빛나는 생을. 한 권의 책이 내게 가져온 잠시 뜨거웠던 눈물을. 나는 이 여름과 함께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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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릉 산책 - 2016 제16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정용준 외 지음 / 문예중앙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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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된 후로 글쓰기에 책임감과 부담감을 갖게 되셨다던 정용준 작가님의 언젠가의 말을 잊지 않아요. 수상 축하드립니다. 늘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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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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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인터넷 카페에 들르는 일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가족과도 나누지 못한 고민을 그곳에 글로 내려놓으면 지나치던 이들이 자취를 남겼다. 경험을 담은 조언과 위로는 알 수 없는 신뢰와 힘을 만들어냈다. 댓글에 댓글이 달리며 공감이, 대화가 이어졌다. 작고 소소한 일상에도 칭찬과 격려의 호응이 남았다. 누군가가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일상은 아름다웠다. 인터넷 카페에서 이들은 앞뒤 사정 따윈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후를 염려할 것도 챙겨야 할 무엇도 없었다. 과거도 미래도 없이, 지금 다정했고 따뜻했다. 
 『댓글부대』를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이곳에 얼굴 없이 모여들게 된 것일까. 이웃과 친구가 아니라 얼굴 없이 존재하는 인터넷 속 이들에게 걱정을 나누고 일상을 나누게 된 것일까. 다정한 말로 격려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그러다 유예 없이 화를 내고 폭언을 던지면서, 형성되고 파괴되는 관계란 무엇일까. 옹기종기 모여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너무나 당연해서 무감했던 그 공간을 들여다보기 시작하자, 나는 점점 짙어지는 서러움과 쓸쓸함을 느꼈다.   

 장강명 소설 『댓글부대』는  2012년 대선과 관련한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이후, 사이버 공간에 나타난 '제2세대 댓글부대'를 주인공으로 한다. 얼굴 없이 행해지는 폭력과 조작, 그로 인해 일어나는 왜곡과 오해, 타깃이 붕괴되고 분해되는 과정들이 입이 떡, 벌어지도록 차려진다. 
 팀-알렙으로 함께 활동하는 찻탓캇과 삼궁, 01査10. 이들은 의뢰받은 사람을 향한 댓글 공격 - 정치인들의 비방, 개인이나 기업을 향한 근거 없는 모략과 모함-으로 여론을 만들고 압박하는 일을 실행하며 돈을 벌었다. 팀-알렙은 자신들의 철저한 연구와 계획으로 끈끈하게 뭉쳤던 사람들을 선동하여 서로 헐뜯고 분노하다 등돌리게 했다는 점에서 강한 자부심을 느꼈다. 세상을 주무르고 있다는 착각. 돈을 아껴 여자를 만지기 위해 김밥천국을 들러 단란 주점을 가던 찌질이들이 의뢰인의 상류층 밤 문화를 나란히 앉아 누릴 때, 그들은 불길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한 바가지의 물이면 곧 꺼져버릴 거품처럼.  
 무심히 보아 넘겼던, 때론 동조했던 댓글이 누군가의 계산된 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나를 몸서리치게 했다. 그곳에선 모두가 서로에게 대접받기를 구걸하고 있었다. 기분이 상하면 상대의 옆구리를 발로 차기도 하면서.

사람이란 게 참 신기해요. 진짜 그 짧은 글로 상처를 입어요. 여러 명이 댓글로 '너 틀려먹었다, 저질이다, 반성해라' 이러고 돌아가면서 공격하면 어지간한 사람은 버텨내질 못해요. 웃기죠? 아는 사람이 하는 말도 아니고, 앞으로 만날 일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 당사자에 대해 쥐뿔 아는 것도 하나 없는데. 사실은 남자 셋이서 돌려쓰는 가짜 아이디인데. -p.81

 현실에서 아무것도 되지 못한 존재의 손에 다정한 신호로 일어난 관계는 무방비한 이들을 휘어잡았다. 칭찬과 공감이 절박한 세상에 작은 버튼 하나로 여는 창은 보고 싶은 세상과 듣고 싶은 이야기들만이 가득했다. 그곳은 같은 생각을 가진 무리에 숨어들어 다른 생각을 향해 비방할 수 있었다. 불편한 메아리가 돌아오면 상대를 물어버릴 듯 으르렁거리다 언제든 내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보이지 않게 주입된 생각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주무르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 채. 댓글로 여과 없이 내뱉고 키득거렸던 언어를 정제하여 내뱉어야 하는 현실은 불편했다. 그런 현실을 물고 들어가 기다리고 있는 회원들과 씹고 뱉으며 느끼는 동질감은 컸다.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많다는 안도. 찌질한 인사가 나만은 아니라는 생각. 안쓰럽고 처절한 모양새로 가장 잘난 듯 취하는 포즈는 벌거벗은 몸을 보는 것보다 더 치욕스럽고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 그 치욕을 견뎠다. 책임감이 소멸된 공간으로써, 그곳은 나를 나이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호랑이인형이 머리에 쓰고 있던 커다란 탈을 벗었다. 탈 아래에는 머리카락이 땀에 푹 젖은 찻탓캇 또래 젊은이가 있었다. 여드름이 덕지덕지 난 청년이었다. 청년은 탈을 화장실 바닥에 내려놓고 세면대에 머리를 숙이더니 세수를 했다. 그는 못이 말랐던지 손바닥에 수돗물을 받아 몇 차례나 마셨다. 땀 냄새가 시큼하게 났다.
찻탓캇은 자신이 호랑이인형을 쓰고 춤을 추며 돈을 벌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p.179

 호랑이인형을 쓴 현실과 댓글로 만들어진 허상의 현실. 이 둘이 대비되어 만들어낸 비애는 사실이었다. 사실을 외면하면서 진실에 끌리는 사람들의 모순. 가장 연약한 그 틈을 파고드는 만들어진 진실에 사람들은 마음을 쏟았다.
 호랑이인형을 외면했던 찻탓캇은 많은 돈을 벌었고 술집 여자의 기둥서방이 되는 꿈을 꾸었지만 마지막은 배신이었다. 인정받았다고 자신한 일에서 모든 쓸모를 다한 뒤 살해됐다. 고위 간부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자만이 들어찬 젊은이들의 축배엔 죽음의 마침표가 찰랑거렸다. 가상의 공간을 그럴듯한 진실로 꾸며 뒤엎던 자신만만한 이들은 결국 자신들의 삶을 조작하는 돈과 권력의 힘은 제어하지 못 했다. 

"읽는 모두가 조금씩 불편해지길 바라며 썼다."

 나쁜 일을 저지른 이들이 벌을 받듯 불길한 축배의 잔이 당연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했던 건 결국 이용당한 약자가 벌을 받고 일을 벌인 이들은 가만히 남게 된다는 점이었다. 서로를 이용하고 이용당하며 무언갈 얻길 바라는 사람들의 폭력성은 끊임없이 우리들의 허전한 마음속에 가장 따뜻한 손으로 다녀갈 것이다. 
 장강명 작가의  『댓글 부대』가  '2016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을 때, 이미 많은 이들이 인터넷 속에서 일어나는 허울들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곳을 다시 찾아가 허울을 만지고 동조하길 멈추지 않는 까닭은, 현실에선 찾고 노력해야 하는 관계들이 찾아와 놓이기 때문이다. 내가 자르고 붙일 수 있는 관계들이, 그 폭력성이, 그리고 거기서 오가는 온기나마 나의 존재감을 어루만지고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외로움에 다가 서고, 그 후엔 상대를 조종하려 애쓰는 모순 속에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조종하고 조종 당하고 서로 낚고 낚이면서.
 빠르게 읽히지만 빠르게 잊혀지지 않는 소설이었다. 
 
 어느 날 내가 속해 있는 지역 카페에서 한 중고차 딜러의 글을 읽었다. 얼마 벌지 못해도 자신의 일에 소신을 갖고 일하는 그는 아는 이에게 중개금 약간만을 받고 중고차를 연결해주었다. 그런데 그 차에서 중개 전 알아차리지 못한 결함이 발견되었고 자신이 수리비를 물어야하는지, 수리비를 부분이라도 물어야겠지만 이래저래 빠져나가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 일이 헛헛하다는 울음 섞인 하소연이었다. 댓글은 그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열심히 사는 그에게 중고차를 연결받고 싶다는 지지로 이어졌지만... 나는 어쩐지, 잘 짜여진 광고로 읽혔던 것이다. 그가 벌인 진실 장사에 낚여가는 사람들의 모양을 보면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얼굴이 되어 내가 믿는 것이 진짜일까, 아니 가짜일 수도 있잖아? 하는 마음을 오락가락하며 확신을 찾아 그 글을 들락날락했던 기억. 소설을 읽고 난 후 나는 확실히 인터넷 카페를 찾는 횟수가 줄었다. 감정이 매마른 것일까. 볼 것을 보고만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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