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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명 서정시 ㅣ 창비시선 426
나희덕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평점 :
스무 살 즈음 『어두워진다는 것』으로 처음 만난 나희덕 시인은 새 시집이 출간될 때마다 반갑게 구입하는 시인 중 한 분이다. 따뜻한 슬픔. 어지러운 일들 속에 슬픔이 찾아와 아름다운 시가 된다면 그건 괜찮은 일 아닐까 생각하게 해준, 습작이 잘되지 않을 때면 펼쳐보고 위로받았던 시들. 나의 시간 속엔 시인의 시가 혈액처럼 흐르고 있다. 신작 시집 출간 소식을 듣고 시인의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을 찾아 펼쳤다. 나의 시선은 자주 머뭇거렸고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무엇을 찾고 싶었는지 알 수 없어 표지를 쓸어보았다. 다정한 마음이 일었다. 잊고 있었던, 시인의 시를 읽던 언젠가의 마음이 잠시 나를 찾아왔다.
오랫동안 시를 읽지 못했다. #문단내성폭력 이후부터였다. 시를 쓰고 싶었던 마음도 잃어버렸다. 시집을 사는 일은 동경하는 시인의 문장을 탐하는 일이었다. 다 읽지 못해도 손에 쥐는 것만으로 심장이 뛰던, 그런 시절 밖으로 나는 한순간에 던져졌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나와 같은 꿈을 꾸던 어린 친구들이 꿈으로 인해 많은 것을 참고 잃어버려야 했던 일은, 자신을 동경하는 습작생들을 시인이란 이름으로 유린해온 일은 지금도 여전히 시집으로 들어서는 나를 막아선다.
『파일명 서정시』는 나희덕 시인의 시집 제목이라기엔 너무나 낯설었다. 시들도 내가 기억하는 시인의 시들과 많이 달랐다. 무엇이 시인을 시인의 문장을 밖으로 몰아냈을까. 나를 분노하고 자포자기하게 만든 시간을 시인도 어느 길 위에서 걷고 있었겠지. 증언과 증명,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불안과 분노, 재난과 난파로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시인은 더 이상 개인의 슬픔에 몰두할 문장을 가질 수 없는 듯 보였다.
이빨과 발톱이 삶을 할퀴고 지나갔다.
내 안에서도 이빨과 발톱을 지닌 말들이 돋아났다.
이 피 흘리는 말들을 어찌할 것인가. - 시인의 말 中
그날은 돌이 지나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려는 작은 아이와 함께 있었다. 아이가 넘어질까 좁은 방엔 온통 이불이 깔려 있었고 곳곳엔 장난감이 어지러웠다. 그 위로 따뜻하고 노란 봄볕이 잠시 어른거렸던가. 잠이 와 칭얼거리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나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떻게… 어떻게… 저렇게 큰 배가, 순식간에, 뒤집어져,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직 배 안에 있는데, 무언가가 나타나 배를 끌어올려 주면 안 되나, 어서 어떤 조치든 취해지기를, 구조자를 만나기를 내내 바라고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도 침몰해가는 배를 어찌하지 않았다. 뉴스는 에어포켓 가능성을 운운하며 생존자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하루를 이틀을 믿고 매달렸던 그 말..., 그 말을 믿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죄스러워 TV를 볼 수 없었다. 생중계되는 사건과 사고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모든 국민을 죄인으로 만들어버린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날.
우리는 그곳을 세계의 항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부표 하나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가라 앉은 자와 구조된 자 사이에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 사이에서 -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中
더 이상 받아 적을 수도 토해낼 수도 없는, 목에 걸린 말들 속에서
시인은 어지럽게 분노하는 것 같다.
손가락 사이로 힘없이 흘러내리는 말. 모래 한줌의 말. 혀끝에서 맴돌다 삼켜지는 말. 귓속에서 웅웅거리다 사라지는 말. 먹먹한 물속의 말. 해초와 물고기들의 말. 앞이 보이지 않는 말. 암초에 부딪히는 순간 산산조각 난 말. 깨진 유리창의 말. 찢긴 커튼의 말. 모음과 자음이 뒤엉켜버린 말. 발음하는 데 아주 오래 걸리는 말. 더듬거리는 혀의 말. 기억을 품은 채 물의 창고에서 썩어가는 말. 고름이 흘러내리는 말. 헬리콥터 소리 같은 말. 켜켜이 잘려나가는 말. 잘린 손과 발이 내지르는 말. 핏기가 가시지 않는 말. 시퍼렇게 멍든 말. 눌린 가슴 위로 내리치는 말. 땅.땅.땅.땅. 망치의 말. 뼛속 깊이 얼음이 박힌 말.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말. 감전된 말. 화상 입은 말. 타다 남은 말. 재의 말.
- 「문턱 저편의 말」 中
입을 막아선 손아귀에 괴로우면서도 시인은 끊임없이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고 말한다.
그래도 문은 열어두어야 한다
입은 열어두어야 한다
아이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돌아올 수 있도록
고를 수 없는 말들 속에서 시인들은 그저 '아이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이란 말을 꺼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먹고살기 바쁜데, 정치인이 그렇지 뭐, 내가 뭐란다고 달라지겠어? 외면하며 지켜온 삶이 그들의 잘못된 행동과 결정에 동조한 일이 되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입술을 내어주고 먹구름 앞에 짧은 고요를 택했다.
우리가 길을 잃은 시간 위에서 시인이 건져낸 서정시는, 너무나 슬프다.
거친 언어들 속에서 '아버지, 당신의 틀니가 결국 당신보다 오래 살아남았어요' (「자기만의 틀니에 이르기까지」 中)하는 시인 본래의 서정에 가까스로 닿기까지, 그럼에도 머무르지 못하고 '살아있는 자, 씹고 씹고 또 씹어야 한다 씹어 삼켜야만 한다' 스스로를 재촉한다. 그 채찍질이 나에게도 아프게 묻는다. '당신은 도망치고 있습니까?' (「단식광대에게」 中)
도망치려는 자신을 부여잡고 시인은 이 시들을 썼을 것이다.
그런 시인의 모습을 붙잡고, 나도 시집의 마지막에 다다랐다.
시는 나의 닻이고 돛이고 덫이다.
'좋아요'와 '슬퍼요'에 감정을 다치고 매일같이 쏟아지는 인터넷 기사들에 생각을 조작당하며 '우리는 투명인간처럼 살지만'(「혈거인간」 中) 우리가 어렵게 뱉어낸 '나의 말' 은 살아남아 분명 무언가를 바꾼다. 시인에겐 시가 자신의 가장 센 무기이며 자신을 지키는 방패일 것이다. 거친 언어들을 지나 삼십 년 만의 고백이 든 「시인의 말」 앞에서 나는 시인이 두렵게 한 발 한 발 나아왔을 시간을 짐작해본다. 얼마나 어렵게 뱉어낸 시이며, 일궈낸 시집인지도. 그렇게 먼 둘래를 돌아 나희덕의 '서정'으로, 시인이 찍은 마지막 마침표에서 내가 기억하는 시인의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마음을 포개보는 일로 다 되었다. 이 시집이 품고 있는, 우리가 표류한 시간들이 부디 누군가를 일으키고 보호하며 '차마 사람으로 건널 수 없는 사람의 일들을 건너는' (박준 '추천사'中) 다리가 되길 바라본다. 오늘이 만날 수 있게 한 '우리가 처음 만나는 서정시' 속에서,
그러니 부디,
안전하길.